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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last modified: 2015-04-09 18:28:48 by Contributors


미노년이시다.


이름 정동진
생년월일 1946년 4월 23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대구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출신학교 대구상고
소속팀 제일은행 - 해병대 - 제일은행
감독 대구상고 (1977~1978)
삼성 라이온즈(1989~1990)
태평양 돌핀스 (1992~1995)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박영길 (1987~1988) 정동진(1989~1990) 김성근 (1991~1992)
태평양 돌핀스 역대 감독[1]
박영길 (1991) 정동진(1992~1995) 김재박 (1996~2006)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4. 기타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프로야구 선수 및 감독. 주로 감독으로 더 유명하다.

2. 선수 시절

대구상고 출신으로 국가대표 포수로서 명성을 날렸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약 10여년 간 국가대표 포수로서 이름을 떨쳤던 포수였다. 공격력이 뛰어난 타입보다는 수비력으로 빛이 난 타입이라고 한다. 인사이드 워크를 중시했던 수비형 포수로 경기 전 선발로 등판하는 투수에게 상대팀 타자들의 장·단점에 대해 꼼꼼히 메모해둔 것을 전해줬다고 한다. 국가대표 포수 계보에 반드시 그 이름이 들어가는 선수다.

3. 지도자 시절


태평양 감독레옹 까메오 출연 시절

그 뒤 대구상고 감독을 잠깐 지냈지만, 1978년 이후 약 7년 간 제일은행의 평범한 은행원으로 지낸다. 그러다가 삼성에서 한국프로야구 출범부터 꾸준히 영입을 타진한 끝에 1985년에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합류하게 된다. 현역 시절 대구를 대표하던 스타 포수였던지라, 당시 대구 출신 감독이 없었던 삼성이 선수들의 갈등[2]을 중재하고, 포수들의 기량발전을 위해 영입했다. 그리고 그는 특유의 인화력과 지도력으로 선수들의 신임을 얻었고, 그 결과 김영덕 감독이 물러난 뒤 후임 감독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에는 선배인 박영길 타격코치에게 양보했다.

그러다가 박영길 감독이 퇴진한 후[3], 1989년에 후임 감독으로 취임한다. 그 와중에 그룹 차원의 개입으로 장효조, 김시진 등이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고, 반대로 최동원김용철 등이 오는 변화가 일어난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 속에 일단 1989년 시즌에서는 4위로 끝내고, PO 연패를 끊었다. 팀이 도움이 되리라 예상했던 최동원은 부상과 트레이드에 대한 거부 문제로 8월이 넘어 합류하고, 결국 이듬해 조기 은퇴로 이르게 된다. 그리고 준우승한 이 팀을 김성근이 맡게 되면서 올드 삼성팬들이 꼽는 삼성 구단 역사상 최악의 시기가 오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0년에 정규시즌 4위로 출발해 상위권 팀들을 잇달아 연파하면서 한국시리즈에까지 오른다. 그동안 매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좌절하게 했던 해태 타이거즈마저 3연승으로 격파한 것이 인상적이었지만, 정작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LG 트윈스에게 4전 4패로 스윕당해 바로 감독에서 해임된다.[4] 사유는 재계 라이벌인 LG에게 무기력하게 4패로 물러났다는 것. 그 뒤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 유학 도중 1992년 박영길 감독의 후임으로 태평양 돌핀스의 사령탑에 오른다. 부상에 시달리던 투수들을 기다려 줬고, 또 구단에서도 창단 이래 매년 감독을 바꾸는 진통이 있었던 점을 감안해 정동진 감독에게 오랜 시간을 줬다.[5] 그리하여 1994년에 부상에서 돌아온 투수들이 제 몫을 다하면서 돌풍을 일으켜 인천 연고 프로야구 팀 역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당시 상대였던 LG는 너무 강력했고, 또 다시 LG를 상대로 4전 4패로 스윕당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 덕분에 정동진 감독의 한국시리즈 전적은 모두 LG 트윈스를 상대하여 승리 없이 8전 8패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김성근 시절에 달성한 3위가 최고성적이었던 태평양으로서 한국시리즈 진출은 바야흐로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1994년 한국시리즈 진출의 공로로 태평양과 재계약했지만, 1995 시즌은 팀이 현대그룹으로 매각되던 시절이라 분위기도 어수선했고, 주전 투수들의 이탈과 기존의 타선을 이끌던 선수들의 부진이 겹치면서 전년도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정규 시즌 7위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과 함께 계약 기간 1년을 남긴 시점에서 수석코치 김재박에게 감독직을 넘기게 되어 자연히 물러났다. 다만, 그가 기다려 준 인천 지역 내 우수한 연고 투수들은 그 뒤 현대 유니콘스의 전성시대를 이끈 주역이 된다. 그 점에서 현대 유니콘스 전성기의 토대를 닦았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 야구 해설가와 한국야구위원회 규칙위원, 경기 감독관으로 활동했다.

4. 기타

여담으로 S본부 해설위원 시절 낫아웃 오심 사건으로 유명한 1997년 8월 23일 쌍방울 대 삼성의 대구 경기 해설을 맡았다.

사랑의 매가 일상화되었던 군사정권 시절 감독으로써는 보기 드문 덕장 스타일이었다. 대구상고 감독 시절 훈련에 무단불참했던 선수들에게 벌을 주는 대신 "너희들을 잘 통솔하지 못한 내 책임"이라고 말하며 얼차려 자세를 한 뒤 선수들에게 자신의 엉덩이를 10대씩 때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수 중 하나인 이만수가 그걸 진짜로 알아듣고 때리는(!!)일이 생겼고, 이게 소문이 와전되면서 해명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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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 포함
  • [2] 삼성의 경우도 심한 편은 아니지만 대구상고 출신과 경북고 출신 간의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 [3] PO에서 10연패를 했다는 이유로 그룹 기조실의 감사를 받았다고. 예나 지금이나 삼성은 ㅎㄷㄷ하다.
  • [4] 그리고 10년 뒤인 2000년에는 김용희 감독이 현대와의 플레이오프에서 4전 4패로 스윕당해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다시 10년 뒤인 2010년에는 선동열 감독이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전 4패로 스윕당한 후 그 해 말 류중일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10년 주기설의 시조
  • [5] 부임 첫 해 6위, 이듬해인 1993년은 아예 최하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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