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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지휘자)

last modified: 2015-03-21 13:48:46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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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약력
3. 수상 경력
4. 이모저모
4.1. 목수정 사건
4.2. 오페라 레퍼토리
4.3. 해외 오케스트라와의 내한 기록
4.4. 디스코그래피
5. 그 외
6. 고액연봉과 각종 논란

1. 개요

대한민국출신의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1953.1.22 출생. 저명한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위대한 클래식 지휘자들을 소개하는 자신의 저서 '거장 신화'에서 1950년 이후 출생한 지휘자 중 최고의 거장으로 사이먼 래틀, 카르도 샤이, 레리 게르기에프, 사페카 살로넨과 정명훈을 꼽았다. 정명훈은 동양인으로서 36세에 불과한 나이에 세계 최고의 오페라좌 중 하나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현 파리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에 취임할정도로 일찌기 음악적 역량을 인정받은 지휘자이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 전 세계의 주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수많은 명연을 남긴 거장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첼리스트 명화의 남동생이기도 하며, 셋이서 피아노 3중주단인 '정 트리오' 를 구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2. 약력

한국전쟁 후반기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일곱 살에 서울시립교향악단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 제11번을 협연하면서 신동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한인 식당을 개업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한 어머니를 따라 건너가 계속 피아노와 음악 이론을 배웠고, 1967년에는 시애틀에서 독주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71년 뉴욕의 매네스 음악원에 입학해 나디아 라이젠버그에게 피아노를, 칼 밤베르거에게 지휘를 배웠고, 누나 정명화가 스위스의 주네브 음악 콩쿠르의 첼로 부문에 참가했을 때 피아노 반주자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1973년에는 서독 뮌헨ARD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로 입상했고, 1974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용해[1] 당시 한국인들은 한국 정부의 강한 반공 정책 때문에 참가할 수 없었던 소련의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스타니슬라프 이고린스키와 공동 2위로 입상했다. 이 소식은 한국에서도 경사로 여겨졌고, 콩쿠르 직후 바로 귀국해 김포국제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 후 본격적인 피아니스트 연주 활동을 벌이면서 같은 해 10월 네기홀에서 독주회를 가지기도 했고, 1975년에는 영국의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도 참가했지만 마이클 휴스턴과 공동 5위를 하는 데 그쳤다. 이후 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 교향악단일본 순회 공연에 협연자로 동행했고, 마르티농타니수아프 스크로바체프스키 등의 지휘자들과도 미국과 일본에서 협연했다.

1975년에 매네스 음악원을 졸업한 직후 전액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해 본격적인 지휘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음악원 관현악단과 뉴욕 청소년 관현악단 등을 지휘해 무대 경험도 쌓기 시작했다. 1978년에는 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이끌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발탁되어 지휘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1979년에는 를 뒤투아가 지휘한 같은 악단과 함께 차이콥스키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연주했던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영국 음반사 데카에 취입했다.

1980년대 초반 부터는 빈 교향악단, 츠버그 교향악단,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파리 관현악단 등을 객원 지휘하며 점차 지휘자로서의 활약을 넓혀나갔다. 1984년에는 서독으로 거점을 옮겨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고, 스웨덴의 비스(BIS)와 영국의 ASV, 서독의 코흐(Koch) 등에서 예테보리 교향악단과 잉글랜드 노던 신포니아, 자르브뤼켄 방송향 등을 지휘해 닐센모차르트, 쇼스타코비치교향곡, 드보르자크의 현악/관악 세레나데 등의 녹음을 취입하면서 지휘자로서 음반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르브뤼켄 재임기에는 전임자 스 첸더의 노선을 따라 기존 레퍼토리 외에 현대음악 작품의 공연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해 무트 라헨만의 '먼지(Staub)', 윤이상의 교향곡 3번의 세계 초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오페라 지휘도 이 시기를 전후해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1986년에 파리에서 프로코피예프의 불의 천사로 메이저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고 같은 해에 베르디시몬 보카네그라를 지휘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뷰했다.[2] 1989년부터 1992년까지 피렌체 시립 극장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며 이탈리아 오페라를 자주 공연하기도 했다.

1989년에는 다니엘 바렌보임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으로 유명한 바스티유 감옥터에 새로 지어지고 있던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 파리 국립오페라)의 음악 감독에 공식 취임하기도 전에 해고되자 초대 음악 감독이 되었고, 1990년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사후 베를린 필의 차기 상임 지휘자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던 린 마젤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선출되자 빡쳐서 예정된 스케줄을 취소하면서 대역으로 베를린 필 데뷰 공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같은 해 도이체 그라모폰(이하 DG)과 전속 계약을 맺었고, 데뷰 앨범으로 전년도에 바스티유 오페라 관현악단과 녹음한 비제의 관현악 모음곡이 출반되었다.

바스티유 오페라 재임기에는 오페라 공연을 위주로 하면서도 프랑스 현대음악계의 거장 작곡가였던 올리비에 메시앙의 작품 연주에 중점을 두었고, 이 시기 DG에서 출반된 앨범도 대다수가 메시앙의 관현악 작품을 담고 있다. 메시앙은 생전에 정명훈의 지휘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고 하며, 투랑갈릴라 교향곡 같은 경우에는 직접 음반 해설을 집필하기도 했고 말년에 작곡한 '4인을 위한 협주곡' 을 정명훈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4년에 프랑스 음악계에서 벌어진 정치권 싸움에 휘말려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 감독 자리를 임기 종료 전에 사임해야 했는데, 이게 빌미가 되어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관계가 잠시 악화되기도 했다. 이후 몇 년 동안은 객원 지휘자로만 활동하다가 1997년에 이탈리아 로마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고, 아시아 지역 악단 단원들을 비시즌기에 모아 조직하는 페스티벌 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산타체칠리아 외에도 빈 필하모닉, 시카고 교향악단, 필라델피아 관현악단, 왕립 콘서트허바우 관현악단,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등의 공연에도 객원 지휘자로 무대에 올랐고, DG와 EMI 등에서 이들 악단과 음반 취입도 병행해 진행했다.

1998년에는 KBS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하면서 고국에서 첫 중책을 맡아 화제가 되었는데, 취임 후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악단 경영진과의 심한 불화로 인해 사임한 흑역사도 있었다. 2000년에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바스티유 시절 그랬던 것처럼 메시앙의 관현악 작품 음반화에 주력하면서 스트라빈스키라벨, 베토벤, 드보르자크, 무소륵스키 등의 작품도 음반으로 취입했다. 2001년에는 소니CEO이자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흡수해 대규모 악단이 된 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단 이사장이었던 오가 노리오의 부탁을 받고 특별 예술 고문에 부임했다.

2006년에는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이명박의 요청으로 서울시향의 예술 감독 겸 상임 지휘자에 부임했고, 부임 직후 대대적인 오디션을 진행해 전체 단원의 1/3 가량을 교체하면서 타성에 젖어 있었다고 비판받고 있었던 악단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단원들과의 갈등도 심했지만, 오디션 후 젊고 역량있는 신진 연주자들과 관악 파트의 적극적인 외국인 단원 영입으로 확연히 향상된 연주력을 보여주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그리고 2009년에는 DG와 5년 계약으로 매년 두 장씩의 앨범을 발매하는 계약을 맺으면서, 한국 뿐 아니라 NHK 교향악단 같은 아시아 톱클래스 악단도 못해본 메이저 레이블과의 장기 계약을 성사시킨 기록을 남겼다.

서울시향 부임 이후 활동 중심을 해외에서 한국으로 점차 옮겨가고 있는데, 2014년 현재 상임에 해당하는 직책은 라디오 프랑스 필과 서울시향 두 악단에서만 맡고 있다. 그리고 라디오 프랑스 필의 경우 핀란드 출신의 코 프랑크를 후임으로 내정하고 퇴임할 뜻을 밝혔기 때문에, 향후 활동도 서울시향 지휘 위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해외 악단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한 것은 아닌데, 2010년에 도쿄 필에서 퇴임한 뒤 계관 명예 지휘자로 계속 악단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사상 첫 수석 객원 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시향에서 했던 것처럼 해당 악단과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진행 중이다. 여러 악단과 객원 출연하는 대신 소수의 악단과 오랜 기간에 걸쳐 밀접한 관계를 맺는 편이며, 미국 관현악단과는 인연이 없는 편이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관현악단인 라 스칼라 필하모닉과는 특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해당 오페라극장 음악 감독이었던 카르도 무티, 스승이기도 했던 줄리니에 이어 이 악단과 세 번째로 자주 공연한 기록을 갖고 있다.

2010년대 들어 북한과 음악 교류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추석 연휴 중이던 2011년 9월 12일에 서울시향 행정 직원 두 사람을 대동하고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다.서울신문 기사 사실 방북 계획은 이전에도 있었는데, 1990년 여름에 공연 제의를 받았지만 한국 정부의 방북 허가가 나지 않아 무산되었다. 2006년 10월에도 윤이상관현악단을 지휘하러 갈 예정이었지만, 때마침 북한에서 지하 핵실험을 강행하는 바람에 역시 취소되었다. 주로 어린이 음악 교육과 남북 관현악단 교환 공연 등 행정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방문이었고, 일정 중 조선국립교향악단은하수관현악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허설 참관 중에 잠깐 지휘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방북 성과는 이듬해인 2012년에 은하수관현악단의 창단 이래 첫 해외 공연으로 나타났는데, 3월 14일에 파리의 살르 플레옐에서 진행된 공연의 2부 순서에서 라디오 프랑스 필과 합동으로 연주한 브람스교향곡 1번과 앙코르 두 곡을 지휘했다. 10월 18~20일에는 2001년 12월의 공연 뒤 소원한 관계였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메시앙의 네 개의 교향 명상 '승천' 과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을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고[3]로 인해서 결국 무산되었고, 리스티안 예르비가 대신 지휘했다.

2013년 1월 25일 서울시향과 바그너 음악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공연을 약 세 시간 앞두고 급성 요통이 발병해 급작스럽게 취소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회복한 뒤로는 예정된 공연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7월에는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에서 자식들과 손녀를 위해 직접 선곡한 첫 피아노 독주곡집 녹음을 ECM 스탭들과 제작했고, 해당 녹음은 12월 말에 출반되었다. 2014년 5월 8~10일에는 베를린 필 무대에 약 12년 만에 다시 출연해 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과 진은숙의 첼로 협주곡,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을 지휘했다.

2014년 12월 빈 슈타츠 오퍼(Wiener Staatsoper)음악 감독직에서 중도 사임한 프란츠 벨저-뫼스트(Franz Welser-Möst)를 대신해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리골레토(뉴 프로덕션)를 지휘했고 동 극장 데뷔 공연이었던 시몬 보카네그라 공연(2011년)에서 빈 슈타츠 오퍼 단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2016년 가을 빈필의 아시아 투어를 이끌게 되었다.

3. 수상 경력

  •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 2위 (1974)
  • 이탈리아 음악비평가협회 프랑코 아비아티상 (1988)
  • 이탈리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상 (1989)
  • 프랑스 올해의 음악상, 프랑스 음악비평가협회 선정 올해의 아티스트 (1991)
  • 프랑스 디스크 그랑프리, 미국 엑설런스 2000상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 음반. 1992)
  • 프랑스 레지옹도뇌르훈장 슈발리에(3급) (1992)
  • 프랑스 클래식 음악의 승리상 중 최고의 지휘자상과 최고의 음반상, 프랑스 최고 오페라 연출상 (1995)
  • 일본 레코드 대상 (베를리오즈환상교향곡 음반. 1995)
  • 한국 금관문화훈장 (1996)
  • 일본 아사히 방송 ABC음악재단의 96 ABC 인터내셔널 음악상 (1996)
  • 한국 호암상 (1997)
  • 프랑스 클래식 음악의 승리상 두 번째 수상 (2003)
  •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코망되르(1급) (2011)
  • 이탈리아 베네치아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 평생음악상 (2013)

4. 이모저모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에는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비관적이고 까탈스러운 성격이었다. 물론 차이콥스키 콩쿠르 같은 경우 자신도 인상적인 경험이었다고 회고하고 있지만, 5위 입상에 그친 리즈 콩쿠르 같은 경우에는 '연습이 부족했다' 면서 자신의 경력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논조의 인터뷰도 한 바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또 결혼한 뒤로 보다 인자하고 여유로운 성품으로 바뀌었다고 술회했다. 환골탈태한 성품 덕분인지 자선음악회를 자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유니세프의 국제 대사로 마약퇴치와 청소년 구호 및 교육활동에도 앞장 서고 있다. 2008년에는 태안 반도 기름유출사고의 구호를 위한 자선음악회를 기획하기도 하였다. 관련기사 서울시향의 희망드림 콘서트

지휘 활동에 매진하게 된 이후로는 피아니스트 활동이 매우 뜸해졌는데, 그나마도 1979년에 녹음한 데카 음반차이코프스키 피협 1번과 1990년대 중반에 정트리오 멤버로 지휘와 피아노 연주를 겸해 DG에 녹음한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 같은 협주곡들, 정트리오 멤버로 데카와 EMI에 취입한 베토벤과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3중주곡들 같은 실내악들, 누나 정명화와 녹음한 첼로 소품집, 이탈리아의 메조 소프라노 가수 칠리아 바르톨리의 독창곡집인 '사랑의 노래' (데카)나 한국 베이스 가수 광철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공연 실황 앨범(소니 뮤직 코리아) 같은 가곡 반주 음반들 정도가 정명훈이 피아니스트로 남긴 몇 안되는 기록물이었다. 하지만 2013년에 상술한 대로 ECM에 첫 독주곡집을 취입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 첫 앨범을 내놓게 되었다. 2014년 6월 일본에서 첫 독주곡집 쇼케이스를 가졌고, 대전, 대구,창원,고양,서울 에서는 30여 년 만의 단독 리사이틀 일정이 잡혀 있기도 하다. 일본 쇼케이스에서의 인터뷰에 따르면 ECM에서 두 번째 독주곡집 녹음을 제의받은 상태라고 한다. 결국 2014년 11월 첫 독주곡집 녹음을 했던 이탈리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두번째 독주곡집 녹음을 하기로 확정 되었다. 레이블은 역시 ECM. 물론 수준급 피아니스트로 여전히 그의 연주력이 상당히 훌륭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독주자로서의 활동기간이 매우 짧았고 거의 오랜동안 지휘에 전념하였던 터라 연주의 완성도에 회의를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미 한국인 지휘자중 에서는 제일 저명한 지휘자이며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에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유독 고국인 한국에서만 까이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도 외국 지휘자를 까는 경우는 없었다 목수정 사건(아래 참조)때문에 까이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 이 사건은 그냥 목수정의 병크에 가깝고 그냥 우리나라 음악가라서 열폭심에 깐다는 견해도 있다. 조수미도 같은 맥락으로 까이고 있다고... 흠좀무. 그러나 정작 자신은 세간의 비평에 별로 신경쓰지 않으며 자신의 연주에 대한 평론 기사조차도 잘 읽어보지 않는다고 한다.대인배 라기 보단 독불장군 스탈? 심지어 자기가 지휘한 음반도 잘 안 듣는다고 하니 말 다한 셈(...). 심지어 자신이 연주한 실황 음원이나 음반을 들으면 몸이 아플 정도라고 한다(...).

음악적으로는 악보에 충실하며 열정적인 박력과 섬세한 서정미를 잘 살린다는 평이다. 지긋한 연배와 경력에도 불구하고 10~20대의 젊은 연주자들과 협연하기를 즐기며 악단 단원 선발 오디션에서도 젊은 연주자들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리허설은 기대 수준도 높고 연습 강도도 몹시 강해서 단원들이 인간적으로는 존경하지만 리허설 때는 매우 힘들어한다는 말도 있다. 일본의 음악 잡지 '음악의 벗' 에서는 사이먼 래틀, 레리 게르기에프와 함께 앞으로를 이끌어나갈 3대 지휘자로 뽑히기도 하였다.

일본 비평계에서도 호의적인 평을 많이 받는 보기 드문 한국 음악인인데, 활동 초기에는 아무래도 한국인들의 인식에 널리 깔린 반일 감정 때문에 다소 거리를 두는 경향이 많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지휘자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런던 교향악단, 라 스칼라 필하모닉,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같은 세계 각지의 관현악단들과 일본 순회 공연을 자주 개최하면서 앙금이 많이 사라진 모습이다. 일종의 명예직이기는 했지만 타 악단을 통합한 후의 도쿄 필을 별 탈 없이 이끌면서 보여준 모습도 긍정적으로 비춰지고 있고, 베를린 필 악장인 카시모토 다이신과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최연소 1위 입상자로 유명한 쇼지 사야카 등의 일본 연주자들과도 자주 협연하거나 녹음을 하는 등의 협업이 많은 점도 이러한 평가에 일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 일본 황실의 황태자인 나루히토와도 기회가 되면 실내악 협연을 하는 등의 이벤트 공연도 일본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DG와는 서울시향의 음반을 계속 출반하고 있고 일본 음반사들과도 음반 제작을 하고 있는데, 킹레코드에서는 NHK 교향악단 실황 시리즈 중 베르디의 레퀴엠이 포함되었고 엑스톤에서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취입한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발매했다. 도쿄 필 특별 예술 고문 취임 후 2002~2004년 동안 진행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실황도 녹음되어 IMX 클래식스라는 음반사에서 여섯 장의 CD 세트로 발매되었는데, 이게 현재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정명훈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이기도 하다.

4.1. 목수정 사건

국립 오페라 합창단 집단 해고와 관련해 해고 철회 운동에 지지를 호소하러 온 사람들의 청을 거절한데다가 직접 관련도 없는 최근 촛불시위 관련 발언("그러니까, 당신들이 그 100만 명이나 촛불 들고 거리에서 서서 미국 쇠고기 안 먹는다고 시위하는 그런 사람들이란 말이죠?" 이하 생략)까지 해버렸다는 내용을 진보계 인사 목수정이 자신의 블로그에 까발리면서 아고라에서 신나게 질타를 당했다.[4]

당시 국립 오페라 합창단은 신임 유인촌 문화부 장관 취임 이후 예산 절감을 이유로 해체가 결정됐는데,[5] 졸지에 실업자가 된 오페라 합창단 단원들은 각계에 해체 반대 지지서명을 받는 중이었다. 이들은 정명훈이 2003년 자신들과 함께 까르멘 공연을 하고나서 프랑스에도 없는 최고의 합창단이라며 극찬을 했었다는 이유로 명망있던 정명훈에게 꼭 지지서명을 받길 원했고 정명훈의 형을 통해 지지서명을 요청했다. 당시 이들을 돕던 진보신당에선 파리지부 당원인 목수정 등을 보내 정명훈에게 서명을 직접 요청한 것이다.

과거 정명훈은 사회당 정권이던 미테랑 대통령 시절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에 임명되어 좌파로 분류되기도 했었고[6], 1994년 보수당이 집권하며 부당하게 해고 당하자 소송을 걸어 끝까지 물고 늘어져 해고 취소 판결을 받아냈었다. 이 때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노조는 정명훈을 위해 부당해고 반대 서명을 해준 적도 있었고 이는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때문에 목수정 일행은 정명훈이 지지서명 정도는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참고로 정명훈이 처음 노조에게 요청한 건 파업이었는데 노조는 평상시 그와 사이가 나빴던 탓에 큰 표차로 파업을 부결했다.관련기사 파업한다고 그렇게도 욕하다가 지가 해고당했다고 파업해달라고 징징댔으니...

하지만 지휘자의 활동은 대체로 연주자의 노조 활동과 부딪히기 마련이고 특히 노조의 활동이 가장 잘 보장된 프랑스에서 숱한 파업을 겪은 정명훈은 노조에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사람이었다.[7] 이 때도 서울시향 개편 문제로 노조와 첨예하게 대립하였고, 서울시향에 그를 임명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등 친정부적인 인물이었다. 이로 인해 지지서명을 거부하고 서명을 요청하던 목수정 일행과 언쟁을 벌였다.

이에 대해 여론은 목수정이 새벽 1시에 일면식도 없던 정명훈을 사전 약속도 없이 찾아가서는, 경호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말싸움까지 벌이고는 오히려 정명훈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여론몰이를 한다는 식으로 강하게 비난하는 글이 많았다. 심지어 같은 진보계로 분류되던 진중권까지 목수정을 비판하면서 목수정에게 많은 비난이 가해졌으며, 심지어 진보계의 전여옥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여파로 기사를 내보낸 신문사인 레디앙 측은 목수정이 상처입었다며 졸렬하게 덧글란을 폐쇄했다.

참세상에 올라온 목수정의 반론에 의하면 그들은 정명훈의 비서와 사전약속을 해서 낮에 찾아갔고, 비서를 통해 불어로 된 서명운동 용지를 전해주고 아침에 받아가기로 한 뒤, 한글로 된 문서가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다시 인쇄한 용지를 들고 호텔로 찾아갔는데 마침 호텔로비에 손님과 함께 있던 정명훈과 우연히 마주친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정명훈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던 것이고, 한참동안 언성을 높인 것은 정명훈 혼자였고 자신들은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대꾸한 것 뿐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정명훈 측의 해명이 없기에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침묵은 긍정이라 하지 않던가..

실제로 정명훈과 목수정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은 쇠고기 문제나 아프리카 사람을 돕느니 하는 것이 아니다.

정명훈은 서명 거부 때, '그 사람들이 서명을 해서 구제해줘야 할만큼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이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클래식 음악하면 막연하게 대우받고 귀족적일거라 생각하지만, 실제 열악한 환경에서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음악인들도 많다.[8] 특히 한국정서 상 유달리 문화예술계에서 노조를 세운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어 호응도 많이 받지 못하는 편이다.[9]

목수정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 역시 생계를 가진 생활인이고,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연대를 해야하고, 사회적 약자인 개개인들은 때로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이들을 지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의 공립 관현악단들에 입단하는 것은 고시 소리를 들을 만큼 어렵지만 그 뒤에는 철밥통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 발전을 게을리 하는게 현실이다. 정명훈이 KBS 교향악단을 4달만에 사퇴의 형식으로 해임된 것은 오디션을 둘러싼 악단원과 불화가 가장 큰 원인이었고[10] 서울 시향의 경우에도 취임 후에 철저한 경쟁체제로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수준이 향상됐다는 평을 듣는다. 정명훈이 경쟁과 실력을 강조하는 것은 상임지휘자로서 당연한 업무집행인 것이다.

4.2. 오페라 레퍼토리

  • 모차르트-돈 조반니,마술피리,후궁탈출,이도메네오
  • 브리튼-피터 그라임즈
  • 베토벤-피델리오
  • 베버-마탄의 사수
  • 로시니-세빌리아의 이발사,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윌리엄 텔
  • 베를리오즈-트로이 사람들
  • 바그너-방황하는 네덜란드인,탄호이저,트리스탄과 이졸데,라인의 황금
  • 베르디-가면 무도회,운명의 힘,리골레토,오텔로,돈 카를로,팔스타프,시몬 보카네그라,운명의 힘,라 트라비아타
  • 비제-카르멘
  • 무소르크스키-보리스 고두노프
  • 차이코프스키-에프게니 오네긴
  • 푸치니-나비부인,라 보엠,토스카
  • 드뷔시-펠레아스와 멜리장드
  • R.스트라우스-살로메
  • 메시앙-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 쇼스타코비치-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
  • 생상스-삼손과 데릴라
  • 프로코피예프-불의 천사

이후 추가 바람.

4.3. 해외 오케스트라와의 내한 기록


  •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82)
  • 바스티유 오페라 (1990,1994)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95)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1996,2006)
  •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1997,2000)
  •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2002,2007,2013)
  •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03,2005)
  •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2006,2015)
  • 라 스칼라 필하모닉 (2008)
  •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2012)
  •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16)

4.4. 디스코그래피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28번, 29번/ 노던 신포니아 오프 잉글랜드 (SKC, 1983년)
모차르트 교향곡 28번/ 남서 독일 방송 교햐악단 (ALLEGRIA)
드보르작 현악 & 관악을 위한 세레나데/ 노던 신포니아 오프 잉글랜드 (ASV 1983년)
림스키-코르사코프 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시의 전설 모음곡.쇼스타코비치 교향곡 6번/ 자르브뤼켄 방숑 교향악단 (KOCH 1985년)
윤이상 교향곡 3번/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 (1985년)
드보르작 트리오 1 & 3번/ 정 트리오 (DECCA 1986년)
멘델스존,브람스 트리오 1번/ 정 트리오 (DECCA 1987년)
라헨만 관현악을 위한 먼지/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 (BMG/RCA 1987년)
드보르작 교향곡 7번,8번/ 괴텐부르크 심포니 (BIS 1987년)
닐센 교향곡 5번,바이올린 협주곡/ 괴텐부르크 심포니/ 강동석 (BIS 1987년)
차이콥스키 트리오,쇼스타코비치 트리오 1번/ 정 트리오 (EMI 1988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4번/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 (KOCH 1988년)
닐센 교향곡 1번,플루트 협주곡/ 괴텐부르크 심포니 (BIS 1989년)
메시앙 투랑갈릴라 교향곡/ 바스티유 오페라 (DG 1990년) -Grand Prix du Disque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메시앙 그리스도의 승천/ 바스티유 오페라 (DG 1991년)
생상스 삼손과 데릴라/ 바스티유 오페라 (DG 1991년)
비제 카르멘 모음곡,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1&2번, 아이들의 놀이/ 바스티유 오페라 (DG 1991년)
베토벤 트리오 1, 4, 5, 7번/ 정 트리오 (EMI 1991/92년)
림스키-코르샤코프 세헤라자데,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바스티유 오페라 (DG 1992년)
쇼스타코비치 므첸스크의 멕베스부인/ 바스티유 오페라 (DG 1992년)
베르디 오텔로/ 바스티유 오페라 (DG 1993년) - Diapason d’or
베를리오즈 이탈리아의 해롤드,로마의 사육제 서곡/ 바스티유 오페라 (DG 1993년)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뒤티외 메타볼/ 바스티유 오페라 (DG 1993년)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DG 1993년)
메시앙 미소,빛나는 무덤,잊혀진 제물,4인을 위한 협주곡/ 바스티유 오페라 (DG 1994년)
메시앙 피안의 빛/ 바스티유 오페라 (DG 1994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4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DG 1994년)
로시니 슬픔의 성모/ 빈 필하모닉 (DG 1995년) - Orphée d'or
베를리오즈 파우스트의 겁벌/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DG 1995년)
드보르작 교향곡 3번, 7번/ 빈 필하모닉 (DG 1995년)
사랑의 노래/ 바르톨리 (DECCA 1996년)
베토벤 3중 협주곡,베토벤 로망스 1 & 2번/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정트리오 (DG 1996년)
A Hymn for the World/ 로마 산타 체칠리아/보첼리,바르톨리 (DG 1997년)
A Hymn for the World/ 로마 산타 체칠리아/터벨,보첼리,바르톨리 (DG 1998년)
포레 레퀴엠,뒤리플레 레퀴엠/ 로마 산타 체칠리아/ 터펠,보첼리 (DG 1998년) - Classical Brit Award
체칠리아 & 브린/ 로마 산타 체칠리아 (DG 1998년)
브람스 헝가리 무곡 5번, 교향곡 1번/ 아시아 필하모닉 (DG 1998년)
Sacred Arias / 안드레아 보첼리 (필립스 1999년)
루이스 바칼로프 미사 탱고 & 탱고세인,피아졸라 리베르 탱고/ 로마 산타 체칠리아 (DG 1999년)
베르디 4편의 성가,아베 마리아 etc/ 로마 산타 체칠리아 (DG 2000년)
메시앙 협곡에서 별들에게/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DG 2001년)
드보르작 현악 & 관악을 위한 세레나데/ 빈 필하모닉 (DG 2001년)
뒤티외 바이올린,첼로 협주곡/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르노 카퓌숑, 트룰스 뫼르크 (Virgin 2001년)
이탈리아 서곡집/ 로마 산타 체칠리아 (DG 2001년)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 & 슈만 피아노 협주곡/ 마르타 아르헤리치 (France DG 2001년)
말러 교향곡 1번/ 로마 산타체칠리아 (MUSICOM 2001년)
프랑스 아리아/ 런던 심포니/ 벤 헤프너 (DG 2001년)
메시앙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변용/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DG 2001년) - German Record Critics Prize
브람스 교향곡 2번,라벨 피아노 협주곡/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세드릭 티베르기엥 (EXTON 2002년)
베토벤 교향곡 전곡/ 도쿄 필하모닉 (IMX 2002~2003년)
베토벤 교향곡 5번/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France DG 2002년)
말러 교향곡 4번/ 로마 산타체칠리아/ 조수미 (MUSICOM 2002년)
라벨 다프니스와 클로에/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DG 2004년)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사야카 쇼지 (Japan DG 2005년)
드뷔시 성 세바스티앙의 순교/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DECCA 2005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시카고 심포니 (CSO Resound 2006년)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다이신 카시모토 (SONY 2006년)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DIDIER JEUNESSE 2006년)
베를리오즈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DECCA 2007년)
라벨 어미거위,볼레로,쿠프랭의 무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France DG 2007년)
브람스 2중 협주곡/ 구스타프 말러 유스/ 르노 카퓌숑,고티에 카퓌숑 (Virgin 2007년)
루토스와프스키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DECCA 2007년)
메시앙 그리하여 나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소망한다,성찬식을 위한 찬송가 etc/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DECCA 2008년)
메시앙 천국의 색채,신의 현존에 대한 3개의 작은 기도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DG 2008년)
바르톡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NAIVE 2008년)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연광철 (SONY 2009년)
드뷔시 바다,라벨 라발스,라벨 어미거위/ 서울시향 (DG 2010년)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서울시향 (DG 2010년)
말러 교향곡 1번/ 서울시향 (DG 2010년)
브람스 교향곡 4번/ 체코 필하모닉 (EXTON 2011년)
차이코프스키 보칼리제, 교향곡 6번 비창/ 서울시향 (DG 2011년)
베토벤 교향곡 9번/ 서울시향 (DG 2012년)
베토벤 교향곡 5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서울시향/ 김선욱 (DG 2013년)
피아노 소품집 (ECM 2013년)
베르디 오텔로/ 라 페니체 (C Major 2013년)
진은숙 생황,첼로,피아노 협주곡/ 서울시향 (DG 2014년)
말러 교향곡 9번/ 서울시향 (DG 2014년)

5. 그 외

  • 2000년에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National de France) 음악 감독에 내정되어 일본 투어까지 다녀온 상태였으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단원들의 요청으로 후자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게 된다. 취임 당시 몇몇 단원들이 감사의 뜻으로 애국가를 연주하는 모습이 프랑스 텔레비젼을 통해 방영되기도 하였다.

  • 이명박 대통령 재임기에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향 예술 감독직을 제의받은 인연으로 고려대학교의 음악대학 설립 계획에 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다른 음대/음악원의 견제와 정치적 문제, 재정난 등으로 인해 사실상 무산되었는데, 이 때문에 정명훈의 정치적 행보를 의심하는 이들이 종종 떡밥으로 들고 나와 까기도 한다.

  •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그를 모델로 한 "정명환"이라는 지휘자도 있었다. 극 중 강마에의 라이벌 캐릭. 재미있는 점은 실제 정명훈은 강마에와 더 가까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오래 거주한 탓에 해당 국가의 요리들을 좋아한다고 하며, 특히 피렌체 시절부터 맛들인 이탈리아 요리의 열광적인 팬이라고 한다. 단순히 음식을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텃밭을 가꾸고 요리까지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동아일보 출판부에서 직접 이탈리아 요리 레시피가 중심이 된 요리책 '정명훈의 Dinner for 8'을 내기도 했다.

  •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엘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에 따르면 리카르도 샤이,리카르도 무티,다니엘 바렌보임과 함께 법정 최고액 개런티(30,000유로)를 받는다고 한다. 이는 이탈리아 국내 한정이며 해외에서는 더 많은 개런티를 받는다고 후술 되었다.

  • 16세때 구입 했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여태까지 써오다가, 최근에서야 오스트리아의 명기 뵈젠도르퍼(Bösendorfer, MODEL 290 Imperial)피아노를 구입했다고 한다.

  • 오래 전부터 60대 이후에는 책임지는 직책을 맡지 않고 교육 활동에 매진할 것이며 마음 맞는 오케스트라와 객원만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쳐 왔다.

  • 얼마 전 서울 시향 실황 녹음 연주회에서 5번이나 벨소리가 울렸고, 이게 실황 CD에 고스란히 담겼다. 덕분에 국내 음악 감상 관련 에티켓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6. 고액연봉과 각종 논란

많은 언론에서 고액연봉(10년동안 14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금액과 이런저런 가쉽거리기사들이 많이 나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음악애호가들입장에서는 정명훈급정도의 커리어와 실력을 가진 지휘자는 세계에 20명도 채 되지 않을것이며 클랙식의 본고장인 유럽(축구로치면 프리미어리그,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이 아닌 클랙식의 변방중의 변장인 아시아권에서 활동하려면 그정도 금액으로는 택도 없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다. 게다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통역이라든지, 사소한 협조인원들까지 금액으로 표현하면 최소 2배이상의 금액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연주자들과의 연봉차이 역시 연주자들의 연봉이 적은것이 문제이지, 정명훈의 연봉이 많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연봉을 적게 받는다는 의견이 강하다. 실력있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베를린필 등등)의 단원들의 경우 보통 연봉이 1억정도 된다고 하니.

조수미와 차범근과 같이 실력으로서 외국에서 인정받지만 국내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있을정도. 서울시향역시 정명훈이 지휘를 한후로 상당한 실력향상이 있으며 아직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되기에는 먼길인데 이제와서 정명훈을 해고한다면 이제까지의 투자를 물거품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특정 지휘자(비록 음악감독(또는 예술감독)이랄지라도)에게만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오케스트라의 음악성이나 다양성면에서 부정적인 면도 있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또 정명훈 관련해서는 서울시향에 관련한 문제 즉 서울시향의 실력문제가 아닌 정명훈의 행동에 대한 서울시향 내의 각종 문제들이 거론되고 있는 판국이다. 서울시 감사결과 정명훈에게 제기 되었던 각종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난 상황이다.기사 PD수첩 2015년 2월 10일 방송분 하지만 그 '의혹 사실'건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도 있다. 단정짓기는 어려우니 참고할것.http://www.huffingtonpost.kr/hyungjin-hong/story_b_6535774.html
http://pds27.egloos.com/pds/201502/19/20/Did_Maestro_Chung_behave_unethically_KR_v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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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74년 이후 미국 시민권을 쭉 보유하고 있다가 90년대 중반에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6091970336
  • [2] 첫 오페라 지휘는 줄리어드 음악원 재학 시절에 공연한 푸치니나비부인이었고, 그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젊은 음악가들을 후원하는 재단의 도움을 받아 모차르트의 후궁 탈출을 지휘하기도 했다.
  • [3] 정확히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나중에 기사를 통해서 제대로 알려졌다. 하와이의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바닷물 속에 있던 바위를 보지 못하고 다이빙을 했다가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 [4] 정작 프랑스 의 예술공연노조와 정명훈이 지휘자로 있던 바스티유오페라 합창단은 흔쾌히 지지해주었다고 한다.
  • [5] 아이러니한 것은 예산 절감을 이유로 국립 오페라 합창단을 해체했지만 정작 오페라단 전체 예산은 더 늘었다.
  • [6] 당시 KTX 입찰을 놓고 독일, 일본등과 경쟁 중이던 프랑스가 전략적으로 정명훈을 임명했다는 의견도 있다.
  • [7]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단원들에게는 "당신들 지금처럼 파업하면 한국에선 감옥에 가" 라고 했다.
  • [8] 2001년 기준으로 국내 최고대우를 받던 KBS 교향악단 단원 평균 연봉이 2500만원 선이었고, 2005년 서울시향 수석연주자 연봉이 3500만원 선이었다. 이 단원들은 명문음대 출신에 유학 갔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 [9] 유럽은 말할것도 없고 미국조차 악단이나 오페라 단원들이 고용조건 등으로 인해 파업을 하는 일이 벌어진다. 드라마 작가들도 노조를 구성하고 있어 이들이 파업할 경우 드라마 자체가 못 나온다.
  • [10] KBS 교향악단은 미트리 키타옌코 퇴임 후 끊임없이 악단 운영과 관련된 잡음이 터져나왔고, 키타옌코의 후임으로 부임한 함신익도 창단 이래 최악의 내분 상황에서 불명예 퇴진하고 악단도 KBS와 계속된 불화 끝에 재단법인체로 독립해 재출발할 때까지 수많은 공연 취소와 그로 인한 비판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그 결과 한 때는 독보적인 국내 원톱이던 위상이 서울시향에 완전히 역전당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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