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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last modified: 2015-07-25 11:03:04 by Contributors

前 국회의원으로 정치인이지만 정치 이외의 활동으로도 유명하므로 이에 대해 서술합니다. 정치와 관련된 내용은 간략한 사실만을 서술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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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회장
김우중(45대~46대) 정몽준(47대~50대) 조중연(51대~)

대한양궁협회 회장
1983년 창설 정몽준(초대) 정몽구(2~5대)

이 사람하고 헷갈리면 곤란하다 이 사람 헷갈리면 안 되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는데(그 나꼼수 하던 사람) 작성금지라 못 말한다

Contents

1. 소개
2. 정치인이 되기 전
3.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3.1. 국제정치학 박사
3.2. 재산
4. 축구계의 거물
5. 여담

1. 소개

1951년 10월 27일생.정주영 회장의 6남으로, 현대중공업의 대주주[1]이자 새누리당 소속의 7선 국회의원, 전 FIFA 부회장(4선, 현 명예 부회장) 대한축구협회 전 회장.

2. 정치인이 되기 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정주영 회장에게 사랑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그룹을 물려줄 생각도 해봤으나 본인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정치자금용으로 현대중공업 그룹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2]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해 공부에 한이 맺힌 정주영으로서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아들이 대견스러웠을 것이다. 다른 재벌들 만날때도 서울대 간 자식이라고 그렇게 자랑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 때문에서인지 형제들 중에 가장 빠른 31세에 사장이 되는 기염을 토한다. 베짱도 어지간했는지. 천하의 왕회장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놀라운 일을 해낸다.# 부인 또한 명문가인데,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인 김영명 씨이다.

3.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울산 동구)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유치하며 급부상하였고,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4강에 오르면서 대선 후보로 주가가 더욱 상승했다.

대선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국민통합21을 만들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를 했으나 패했다. 정몽준 씨는 이후 지지활동에 나섰으나, 선거일 전날 밤 지지를 철회했다. 국민통합21은 대표 1명만 의원(17대 총선)으로 있는 정당으로 지내다가 2004년 9월 해체되었고 정몽준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입당하여 현재에 이른다. 한나라당에서 대표(2010년)까지 지냈다.[3] 2008년 총선에서 서울특별시 동작구을로 지역구를 옮겨 재선했다. 참고로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동작을에서 그와 대적한 후보는 현대자동차 사장과 현대카드 회장을 역임한 이계안 전 의원이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 같은 당의 김황식, 이혜훈과 경선을 치러 5월 13일에 최종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후보 등록과 함께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 현직 박원순 시장에게 큰 표차로 패배, 낙선하였다. 게다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가족들의 팀킬, 후보자 토론에서의 발언으로 네타 캐릭터에 등극했다(...) 물론 못난 아버지가 된 이 분에 비해서는 미안하게도 포스가 후달리긴 했다. 자세한 내용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화젯거리 항목을 참고.

3.1. 국제정치학 박사

1993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대학원(SAIS)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본인의 프로필에도 '국제정치학 박사'임을 자주 강조하고 있다. 이 점은 본인의 주도로 설립된 아산정책연구원이 최근 빠른 속도로 국내 유수의 국제정치 연구기관으로 성장하고, 자신이 주장하는 핵무장론이 국내외의 주목을 이끌어내는 배경으로 작용했다.[4] 하지만 정몽준의 박사 논문 주제인 "일본의 정부-기업간 관계: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원제: The government-business relationship of Japan : a case study of the Japanese automobile industry)는 외교, 국제분쟁과 같은 일반적인 국제정치보다는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비교정치, 정치경제 부문에 더 가깝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국제정치는 이런 지역정치학 역시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다소 의문이 가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납득의 여지는 있는 편.

3.2. 재산


대한민국 국회의원 재산 상위 1위를 항상 고수하고 있으며 알려진 재산총액은 2조 원대이다. 워낙 천문학적 금액이라 국회의원들의 평균 재산액이 언론에 보도될 때, 정몽준 재산은 반드시 빼고 평균을 계산하는 것이 거의 불문율이다. 평균금액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정도로 재산 액수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2조 원을 300으로 나누면 67억 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정몽준이 부자인 이유는 다른 국회의원들과는 달리 현대중공업그룹이라는 대기업의 대주주이기 때문이다.[5]

나중에 박찬호가 국회의원 되면 상위 10위 안에 들어갈 수도

4. 축구계의 거물

한국 축구사에서 정몽준의 공로는 그야말로 지대하다. 2002 월드컵 유치전 당시 한국은 일본보다 5년이나 늦게 유치 준비를 시작하였으며, 당시 FIFA의 앙 아벨란제 회장은 대놓고 일빠. 사실상 패배나 다름 없는 상황속에서 정몽준은 치열한 축구 외교전을 벌였고 현대그룹의 힘까지 동원하여 기적적으로 공동 개최안을 성사시킨 것이다.

그리고 2002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 그 후의 한국 축구의 비약적인 발전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단 월드컵 개최에 성공한 것 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계의 프라 개선에 자신의 사비까지 써가며 앞장섰고, 그 결과 축구 선진국 못지않은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까지도 한국 축구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몽준과 현대家의 힘이 없으면 한국축구는 지금처럼 돌아가기 힘들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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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AFC회장선거에서 정몽준 지지파가 떨어졌을 당시 사진으로 정몽준의 침울한 얼굴과 대조적으로 미소짓는 제프 블라터. 자세한 내역은 항목참조..

FIFA 회장이나 AFC 회장직도 노렸으나 모두 실패했다. 제프 블라터와 반목했었고 반블라터파이던 나르트 요한손UEFA 회장을 지지하며 그의 FIFA 회장 선거를 열심히 도왔으나 완패를 당했고, 이후 요한손이 블라터 지지를 얻은 미셸 플라티니에게 UEFA 회장 재선에 실패하면서 피파 내에서 블라터파에게 많은 견제를 받아야 했다. 결국 2011년 정몽준은 FIFA 부회장 5선을 노렸으나 블라터의 지지를 받은 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에게 패하여 떨어지고 명예 부회장이 됐다. 하지만 말 그대로 명예직이라 아무런 권한이 없기에 더 이상 FIFA에선 아무런 영향력을 가지진 못한다.

그의 몰락은 한국 축구 국제 외교력의 몰락이라는 말도 있으나 김운용과 마찬가지로 후계자를 전혀 만들지 않고 자신의 집권에만 신경썼다는 지적도 있다.

앙 아벨란제 전 FIFA 회장의 심복이 바로 제프 블라터였다. 덕분에 아벨란제가 물러난 뒤로 터진 그의 비리혐의를 죄다 블라터가 쉴드쳐주거나 덮어버려서 그 어떤 수사도 조사도 이뤄지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IOC 위원장 자크 로게는 전 위원장 토니오 사마란치의 심복으로 역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이 두 조직 부회장, 부위원장인 정몽준, 김운용은 전혀 후계자 및 지지 후임자가 전무했다.

반면 블라터에 맞서다가 지금은 야인이 된 렌나르트 요한손 전 UEFA회장은 후임을 여럿 둬서 이들이 현재도 UEFA 고위직으로 남아서 플라티니의 경쟁후보로 남아있다. 그래서 블라터와 플라티니가 요한손 전회장에 대한 문제를 언급할 때 이들이 똑같이 막아버린 거와 달리, 김운용, 정몽준은 그러질 못했다. 파벌까지 뿌리뽑고 IOC에서 어떤 명예직도 없고 축출당한 김운용과 달리 그나마 정몽준이야 비리적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기에 명예부회장이라는 이름만 그럴듯한 걸 내주긴 했지만.

그의 몰락에 대하여 IOC가 안타까워했다는 후문. 2012 런던 올림픽까진 23살 이하 선수로 3명에 한하여 축구 와일드카드가 이뤄지고 있다.

이후론 21살 이하 선수로 자격을 제한하거나 아예 21살 이하 축구 대회를 올림픽 축구로 대처하고 블라터 뜻대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는 와일드카드 및 올림픽 축구 제한이 바꿔질 예정이라는 루머도 있으나 아직까지 이에 관련되어 확정된 사안은 없다.

사실 한국에선 경악할 일이겠지만 U-20 청소년 월드컵은 유럽 축구리그에서 외면하는 게 크다. 유달리 아프리카에서 청소년 축구와 올림픽 축구 성적이 좋은 점으로 유럽 리그에서 외면하던 게 원인이라는 분석도 많다. 사실 경기 수익도 월드컵에 견줘도 없는 수준이며 우승상금도 없는 명예대회인지라 올림픽 축구에 병합해도 FIFA에선 별다른 피해도 없다. 그저 유망주 발굴이라는 요소로 보면 되니까. 게다가 21살 이하로 와일드 카드를 줄이자면 20살 이하 축구대회와 차이가 없고 유망주 및 선수 혹사라는 비난 및 문제도 없앤다고 여기기 때문에 90년대부터 꾸준히 FIFA에서 논의하던 사항이다.

이젠 피파에선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기에 정치인으로만 활동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와 범현대가는 한국 축구계 쪽에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축구협회장인 정몽규가 그의 사촌동생이기도 하고.

2018월드컵 개최지투표에서 한국은 영국에 투표하고 영국은 2022월드컵에서 한국에 표를 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나왔다. 그리곤 영국 측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항의하자 "이것이 축구다"This! Is! FOOTBALL!라는 말을 남겼다고.....표를 받기로 했다고 너무 방심한것은 아닌가!

2015년에 제프 블라터 회장의 부패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자 사임을 촉구하는 성명을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2015년 7월 20일, 차기 피파 회장 선거에 출마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으며, 8월 쯤에 공식적으로 출마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연합뉴스기사

5. 여담

여담으로 사인(autograph)이 좀 미묘하다. #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한양궁협회 초대 회장이다. 현재야 뭐 정몽구와 그 아들이 하고 있어서 모르는 사실이지만 대한양궁협회 역대 회장 명단에 들어가 있다.

라디오 방송에서 요즘 버스비가 얼마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다가 "한 70원 하나요?"라고 전설의 멘트를 날린 적이 있다.[6] 평생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적이 없으니 더 심각했던 건, 그 이후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교통카드를 보이며 교통요금을 잘 안다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하필 그 카드가 청소년 교통카드였던 것이었다. 그 이후 정몽준 하면 70원 드립이 항상 따라다니게 되었으며 오죽하면 서울시장 후보로 참여한 최근에 공약으로 버스비 70원 해 주나요? 라는 반응까지 나왔을 정도. 이 사건 후 나온 기사에 의하면 기본적인 물가 몇 가질 아예 암기하고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7]

한화그룹과 더불어, 정치인,재벌가들의 병역문제에서 깨끗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본인과 장남 모두 육군 ROTC 장교로 병역을 마쳤으며, 막내아들 또한 ROTC로 보내고 싶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하지만 막내 아들은 이미 골로 갔다 ´육군 제대´ 정몽준 "사회 지도층 자녀 전방복무""병역 의무 엄격히 관리" 강조

축구협회장 당시 연예인으로 유일하게 자비를 들여 원정 응원을 다녔던 김흥국과 친해져서 아직도 절친인건 공공연한 사실. 그래서 매번 선거철만 되면 기자들이 김흥국에게 들붙어서 출마할 거냐고 물어보는 게 관례였는데, 김흥국이 지난 총선에서 출마포기 선언을 한 일이 있다.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한 말이 걸작, "공천을 줘야 출마를 하지!" 친하다고 공천을 다 주지는 않는 모양

정몽준의 아들이 페이스북에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대한민국 시민의식이 미개해서 국가가 미개하다'라고 발언을 하여 서울 시장선거를 앞두고 논란을 일으킨바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사건사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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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때문에 현대중공업은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고 있다.
  • [2] 정치란 게 정치자금이 있어야 돌아가는 법이다. 본인도 대선에 출마한 적이 있으니 아들의 꿈을 이해했을 것이다.
  • [3] 박희태 대표의 양산 재보선 출마로 인한 사퇴로 전당대회에서 차점자로 당선되어 승계
  • [4] 사실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은 너무 불리함이 많은 주장이다. 다만 연구원에서 주최하는 '아산 핵포럼' 등의 각종 행사에 참석해서 늘 언급하기 때문에 꽤나 많은 주목을 받는 편.
  • [5] 2014년에는 조금 변동이 있다. 원래 2위이던 고희선 새누리당 의원은 별세했고,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재보선에서 당선되면서 재산총액 2위를 가져갔다. 무소속 현영희 의원은 당선무효 처리되었으며 이에 의해 10위에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 [6] 2008년 당시 서울 기준 지간선 버스의 요금은 성인 기준 현금 1000원, 카드 900원. 1979년에 일반 버스 요금이 60원, 1980년에 일반 버스 요금 80원이였다.
  • [7] 핑계를 대자면 부자가 아니라 서민이라도 버스를 타지않는 사람이라면 버스비를 잘 모르긴 한다. 하지만 70원은 너무했지. 서민이라면 정확한 버스비는 몰라도 대략적인 물가는 알기 때문에 천원이나 칠팔백원이라고 댈지 몰라도 사탕 한 알도 못 사는 70원이라고 착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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