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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민

last modified: 2015-03-15 22:48:56 by Contributors


이름 정선민
생년월일 1974년 10월 12일
국적 한국
출신지 경상남도 창원[1]
출신학교 마산여고
포지션 파워포워드
신체 사이즈 184Cm, 79Kg
프로입단 1993년 SKC 여자농구단 입단
소속팀 SKC/SK증권 여자 농구단(1993~1998)
광주 신세계 쿨캣(1998~2003)
시애틀 스톰(2003~2004)
천안 KB국민은행 세이버스(2004~2006)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2006~2011)
청주 KB국민은행 스타즈(2011~2012)

1995-96 농구대잔치 MVP
정은순(삼성생명) 정선민(선경증권) 정은순(삼성생명)

1999 한국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 MVP
정은순(수원 삼성생명 비추미) 정선민(광주 신세계 쿨캣) 정은순(수원 삼성생명 비추미)

2000 한국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MVP
정은순(수원 삼성생명 비추미) 정선민(광주 신세계 쿨캣) 변연하(수원 삼성생명 비추미)

2001 한국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2002 겨울리그 MVP
변연하(수원 삼성생명 비추미) 정선민(광주 신세계 쿨캣) 이미선(수원 삼성생명 비추미)

2006 한국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MVP
타미카 캐칭(춘천 우리은행 한새) 정선민(천안 KB국민은행 세이버스) 전주원(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2007~2008 한국여자프로농구 MVP
전주원(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정선민(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최윤아(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2009~2010 한국여자프로농구 MVP
최윤아(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정선민(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강영숙(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2007-2008 한국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MVP
즈 맥윌리엄스(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정선민(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하은주(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Contents

1. 개요
2. 기록
3. 선수 생활
4. 기타


1. 개요

자타공인 전주원과 함께 여자 농구의 양대 끝판왕이자 지존. 별명은 바스켓 퀸. 이 별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농구 관계자나 팬은 아무도 없다. 국내 제일의 포워드이자 센터, 그리고 대한민국 여자농구 레전드 중 한 명. 1993년 성인 무대에 데뷔해 2012년 은퇴할 때까지 20년동안 한국 여자농구의 대들보이자, 여왕으로 군림한 선수다.

2. 기록

정규시즌[2]
415경기 19.61점 7.57리바운드 4.28어시스트 1.86스틸 필드골 46.0% 3점슛 22.2% 자유투 87.1%

플레이오프
83경기 17.90점 7.35리바운드 4.61어시스트 1.76스틸 필드골 42.8% 3점슛 22.0% 자유투 82.5%

3. 선수 생활

마산산호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농구에 입문했다. 그 후 마산여자중학교를 거쳐 마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2부터 고교대회 MVP를 차지하면서 일찍부터 거물급 루키로 평가받았는데, 스카우트 싸움 끝에 결국 1993년 SKC로 진로가 확정되었다. 데뷔 시즌에 농구대잔치 신인상을 받으면서 일찍부터 능력을 보여줬다.

팀 창단 후, 우승이 없던 SK증권[3]을 이끌고 세 차례 농구대잔치 우승을 일궜다. 그 때 함께 우승을 만든 주역이 유영주, 김지윤, 이종애로 지금도 WKBL의 주역인 선수들이다. 그러나 1997년 우승을 차지하고도 팀이 해체되면서 드래프트를 거쳐 신세계 쿨캣으로 이적하게 된다.

WKBL에서 신세계의 4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2003년 한국 여자 농구 사상 최초로 WNBA에 진출했다. 다만,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해서 바로 돌아왔는데, 신세계로 복귀한 것이 아니라 2004년 국민은행으로 이적했다. 국민은행에서는 딱히 별다른 수상이 없다가 2006년 10월 신한은행으로 이적, 그 때부터 다시금 정상을 늘 유지했다.

WKBL에서 MVP만 무려 7번을 차지했다. 이 기록은 거의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도 많이 받아서 2008-2009 시즌에는 일부러 후배인 최윤아에게 기자들이 표를 몰아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적수가 없어서 2009-2010 시즌에 바로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득점왕에 오른 것도 네 차례, 심지어 2002년에는 센터임에도 불구하고 스틸 부분 1위에 올랐다. 완벽한 만능 선수. 또 한 가지의 기록이 절대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통산 최다 트리플더블 기록이다. 무려 13차례의 기록을 세워서 WKBL 역대 최다 기록을 가지고 있다.

국가대표로 여자 농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동료인 전주원, 정은순, 유영주 등과 함께 국가대표를 이끌면서 2000 시드니 올림픽 4강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반대로 그녀가 없던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전패로 탈락하는 수모를 기록했으니까, 그녀의 비중을 짐작할만 하다.[4] 국가대표로 복귀한 이래 다시 맹활약, 2008 베이징 올림픽 8강과 2010 세계선수권 8강을 이끌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좌절되었고, 결국 그녀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력은 2010 세계선수권이 되었다.

2010-11 시즌에서도 신한은행이 또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본인은 부상으로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이미 이룰 것은 다 이룬 신한은행 대신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요청, 결국 곽주영, 허기쁨이 신한은행으로 가고, 정선민이 국민은행으로 가는 1:2 트레이드가 성립되었다. 점프볼 서민교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임달식 감독과의 불화나 프런트와의 갈등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WKBL 챔프전 우승이 단 한 번도 없는 국민은행으로 가서 말년을 장식할 듯 하다.

2011-12 시즌 국민은행에서 활약하며, 팀을 챔프전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챔프전에서 3전 3패로 신한은행에게 패하며, 자신의 능력으로 신한은행 상대로 복수하려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패배가 확정적이자 분해서 우는 장면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결국 이 분해서 우는 장면이 정선민의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 2011-12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 은퇴를 공식 선언하고,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접었다. 2012년 4월 30일 은퇴 기자 회견을 가진다. 은퇴 후에는 농구 선수가 아닌,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겠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2013년 ABC 선수권대회에서 코치로 합류하여 활동했다. 그리고 2014년 6월 서울 인헌고등학교 남자농구부의 코치로 선임되어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여자코치가 남고팀 코치로 활동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 코치로서의 행보를 기대해보자.

2014년 12월 1일 여자프로농구 부천 하나외환의 코칭스태프로 합류했다.

4. 기타

동생인 정훈종은 전주 KCC 이지스에서 선수로 뛰었다. 그러나 누나에 비해서 선수로서 이룬 것은 없다.

아직 미혼이라는 점이 아쉽다. 거의 농구와 결혼한 것이 되었는데... 전주원처럼 빨리 자기 짝을 찾았으면 하는 생각을 많은 농구팬들이 가지고 있다. 그래도 언론 인터뷰를 보면 결혼할 생각도 은근히 표하고 있으니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 듯. 다만, 만나는 친구나 후배들이 남자로 안 보인다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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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옛 마산 출신
  • [2] 통산 8140점 3142리바운드 1777어시스트 771스틸
  • [3] SKC에서 운영 주체가 바뀌었다.
  • [4] 물론 이 당시에는 전주원을 비롯해 이름있는 노장 선수들은 다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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