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정성일

last modified: 2015-04-14 13:21:49 by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2. 자주 쓰는 말
3. 인터뷰
4. 외부링크


鄭聖一. 1959~

1. 소개

대한민국영화 평론가. 평론가 생활을 하다가 <카페 느와르>로 영화감독 데뷔를 하였다.[1]

평론집으로 <필사의 탐독>,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가 있다. 영화를 감독하면 평론집을 내겠다고 약속을 했었기 때문에 감독 데뷔에 맞추어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국내 평론가 중에서도 영화평을 길고 어렵게 깊이 있게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료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누군가 정성일의 어떤 하나의 평론보다 더 뛰어난 평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정성일처럼 매 순간 모든 영화에 대해서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대결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은 한국에서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라고 평가했다.

글이 좀 어려운 경향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어렵게 써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정성일 본인이 젊었을 때 했던 번역가 시절의 문체가 남아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스스로도 이 때문에 문체가 엉망이 되었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글이 번역체로 써 있다고 생각해 보라(…). 흠좀무

정성일 자신에게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명백한 정의를 내렸다. "나에게 영화는 언제나 순정이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에 거리를 두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한다. 영화 비평글을 길게 쓰는 성향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요약할 수 없는 비평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스스로 말했는데, 이것은 역시 영화에 대한 그의 쉼없이 깊은 사랑이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비평에서 리뷰의 역할을 아예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의 영화평론이 리뷰 위주로만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있다.[3] 또한 "영화평론가에게는 영화가 최우선이다."라는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는 평론가이다. 과거 모 평론가가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알려달라는 청소년의 질문에 "인문학적 교양이 있어야 영화를 봐도 깊게 이해할 수 있으니 영화를 당장 많이 보기 전에 인문학적 교양을 먼저 쌓아라"라고 한 이야기를 듣고 매우 분노하며 "절대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다. 영화평론가에게는 언제나 영화가 우선이다. 나는 수천편의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한 교양공부도 해 왔지만 아직도 영화가 뭔지 확실히 모르겠는데, 어떻게 영화를 먼저 안 보고 인문학 공부를 먼저 하라는 말인가. 그런 지식을 익히고 나면 자신의 지식에 맞는 영화로 자기 취향이 변하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영화를 보다보면 자신이 관심있어지는 인문학적 분야는 생기게 마련이고, 그때가서 공부하면 되는 거지. 영화를 나중에 봐서는 절대 안 된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

그래서 최소한 자신은 그렇지 않은 쪽 방향으로 "좀 더 멀리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그의 입장에서 '최고의 영화 비평'은 영화를 만든 감독 및 제작자와의 인터뷰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박찬욱과는 정성일의 철저한 씬 분석을 토대로 하여 '친절한 금자씨'에 대해 무려 5시간 동안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4]보통 정성일이 여러 씬 분석을 깊게 많이 해서 쓴다면 십중팔구 꽤 강하게 비판하는 글이다. 실제로 정성일은 인간적으로는 박찬욱과 30년 넘은 형동생 사이이고 인간 박찬욱은 낙천적이고, 꾸준함과 근성을 가지고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라며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외하면 박찬욱의 영화에 대해 긍정적이기보다는 비판적인 성향의 평론을 많이 한 평론가이다. 먼저 그가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했던 '공동경비구역 JSA'에 대한 평론은 "이 영화는 진정성이 있다. 빨갱이 영화와 반공 영화의 어느 편에서도 서지 않으며, 친절하게 설명하다가 이 우스꽝스러운 영화 속 상황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영화 속 장르가 영화 바깥 세상을 공격한다. 영화 속에서 미스터리와 코미디를 넘나들며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다가, 사건을 파악할 때쯤부터 조마조마하게 몰고 가는 아이러니야말로 우리를 처연하게 만드는 반성적 성찰에로 이끌고 간다. 이런 정치적 아이러니를 연출하는 분단국가의 상황에 제발 이제 종지부를 찍자고 간절하게 호소한다. 나는 이보다 더 맹렬하게 통일을 다그치는 우리 세대의 전쟁영화를 본 적이 없다."면서 그 영화에서의 서사와 연출방식에 대해 극찬했다. 그러나 자 이제 시작이야'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서는 "이 영화 속 모든 것은 항상 그 시점에 정확히 도착하여야만 한다. 인과 관계가 배제되었으나 결과가 원인을 채우려드는, 신비주의가 서술과정을 장악한 코미디. 무정부주의자면서 '민중은 무산계급과 다르지 않으며,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 무산계급에게 나눠주자"는, 그래서 자본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을 자기도 모르게 추구하는 반공주의적인 영미(배두나)의 정치적 모순은 이 영화를 정치성과 결별하게 한다. 마지막에 동진(송강호)을 무정부조직이 살해하는 장면에서 선언되는 유죄는 그저 그가 영미를 죽인 부자라서이다. 혁명을 참여하지 않고 그를 방해했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된다는 점에서 스탈린주의가 어슬렁거린다."라며 비판했고, '올드보이'에 대해서는 "한국 영화지만, 한국이란 국적성을 탈색시키까지 할 정도로 너무나 국적성이 없다. 그 영화 속 일이 일본에서 일어났건 대만에서 일어났건 뭐가 달라지겠나.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미학에 집중한 채 한국이라는 국적 자체가 낯선 작가주의는 결국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는 영화 마지막에 남녀주인공이 자신들이 어떤 관계인지 알지 못한 상태로 함께 외국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끝난 이유를 이제서야 얼핏 알 것 같다."며 비판했고, '친절한 금자씨'에 대해서는 인터뷰 이후에 별개로 따로 박찬욱에 대해 쓴 글에서 살짝 언급하면서 "영화 속 이금자가 복수의 순간 한단계 멈춘 것에서 그가 한단계 점핑한 것을 느꼈다. 이건 그가 악한 것 앞에서 그 실체를 보고 부서져 나가는 대신 반대로 악한 것의 앞에서 선한 것을 생각함으로써 그 안에서 그것을 다시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한 것이다. 여기서 그의 태도는 대중들이 세상 안의 악을 넘어갈 수 있도록 도우려는 선행의 의지가 보인다"며 칭찬하는 듯 말하는 부분도 있지만 대체적인 내용은 "솔직히 말해 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약점도 많고, 진부한 구석도 좀 있다. 마지막 복수장면에서 신파스럽고 쥐어짜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 자신의 테마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 이 영화에서 그는 그의 테마에 대해 빛과 그림자나 공간, 배우의 연기 등 미학적으로만 고민한다. 그는 테마라고 생각되는 것을 그저 소재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테마에 대해서 감독의 일부 의지는 볼 수 있지만 그 영화 자체의 윤리적 태도를 알 수는 없다. 니체가 반문한대로 선한 의지 자체가 선이라 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박찬욱의 것이다. 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려 보자."라며 잔인하게 돌려까기비판하기도 했다. 심지어 영화적 성향에 대해 "박찬욱과 홍상수는 그렇게 세계 영화들에 대해 뛰어난 교양을 가졌으면서도, 한국 고전영화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홍상수는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꽤 오래하기라도 했지만, 박찬욱은 한국 영화의 연출부나 조감독 경험이 있으면서도 그렇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하도 비판을 많이 해서 심지어 박찬욱은 JSA에 대한 정성일의 평론에 대해 말하며 "JSA는 형이 제 영화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인 글을 써주신 영화에요."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라며 좋아하기도 했다고 한다.박찬욱 보살설? 어떤 인터뷰에서의 정성일은 박찬욱에 대해 '20대 초반 어릴 적부터 봤는데, 평소에 조용하다가도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체계적으로 잘 말하고, 글을 너무 잘 써서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훌륭한 영화 평론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하여 놀랐다.'평론이나 하지 감독을 왜고 하였다. 물론 정성일은 정말 박찬욱이 평론가였던 시절에도 분석도 잘 하고, 글을 잘 쓰는 좋은 평론가라고 말한 적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걸 디스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후에도 박찬욱이 영화에 대해 언론에 말했던 견해들과 충돌되는 것이 꽤 있었다. 박찬욱이 '영화는 아무리 미디어가 발전되어도 영화관 상영이 중심이어야 하고, 난 영화관 상영을 위한 영화를 계속 만들 것이다'고 한 말에 대해서는 '그가 영화관 상영을 우선으로 고려하여 제작한다는 의견은 존중하지만, 혹여 영화를 영화관에서만 상영되어야 하는 존재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동의할 수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TV나 컴퓨터 등을 통해 영화를 보게 되는 것, 그리고 이를 목적으로 영화가 제작되는 것 역시 다양성의 측면에서 충분한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 적도 있다. 또한 예술영화를 좋아하며 트뤼포의 말을 따라서,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영화를 여러번 보는 걸 즐겨 온 정성일에 대비해, 박찬욱은 B-Movie 애호가 출신에, 많은 영화를 봤지만 평론하던 시절처럼 필요성을 느낄 때를 제외하고는 재미가 있건 없건 같은 영화를 두 번 보지 않아 왔다고 한다.처음부터 안 맞았어

한국 영화 관객이나 영화 애호가들의 세태도 안타까워 했다. 자신이 어릴 적에 영화란 건, 특히 걸작이란 영화관에서 상영할 때 안 보거나 TV에서 영화 방영해줄 때 안 보면 평생 언제 다시 볼 지 알 수 없는, 아니 평생 못 볼거라고 생각하던, 그래서 그 영화보는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걸 잊고 영화보는 것에만 모든 집중력을 투자하는 '일생일대의 가장 절실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는데, 지금은 인터넷 같은 강한 미디어의 힘을 이용해서 언제라도 볼 수 있고, 보다가도 중간에 멈추기도 하고 건너뛸 수도 있으니 오히려 미뤄두기만 하고 어쩌다가 볼 때도 별로 집중해서 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 그것이 한국에서 영화비평계의 가치와 폭을 좁히는 영향도 미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생각해 봐라. 좀 집중해서 봐야 나중에 비평글 내용을 알아먹지, 대충대충 보니까 비평글 열심히 써놔봤자 무슨 장면에 대해 뭐라고 쓴 건지 알아먹을 수가 엄서요. 영화보고 그냥 재미있네 없네 따져서 인터넷에 별점이나 쳐 매기고 끝이지.. 이 글을 읽는 위키러들 중에서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스스로 영화 애호가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성해 보자.애초에 그렇게 절실하지 않은 사람을 애호가, 시네필이라 할 수가 있나

영화 잡지 월간 키노에서 글을 기고하기 전부터 이미 이 분야에서는 유명인사였다. 책도 언젠가 영화감독이 되면 출간하겠다고 할 정도로 글을 모아 출판하는 데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의 글을 모아놓은 웹페이지는 정성일 본인이 만든 게 아니라 팬인 김석영 씨가 만든 것인데, 정성일의 저서에도 이 사이트에 대한 언급이 나올 정도로 실로 대단한 사이트.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FM정은임의 영화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출연해서 영화에 대한 분석을 하는 방송을 하다가 사정상 잠시 그만두었는데, [5] 그러나 그가 자리를 비운지 반년도 안 되어, 1995년에 프로그램이 아예 없어지는 바람에 다시 출연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2003년 10월에 다시 프로그램이 부활하자 2004년 1월에, 거의 10년만에 다시 참여하게 되기도 하였다.[6] 이 때의 기억에 대해 그는 매우 긍정적이다. 처음에는 딱히 영화에 큰 관심 없이 프로그램을 맡고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프로그램을 잘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뿐인 그저 그런 아나운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갈 수록 정은임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영화를 대하는 성의[7]가 커지는게 보여서 '내 편견이 완전히 틀렸었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도 모자라 그녀에 대한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방송을 들어보면 정은임은 그가 나오는 날에는 제대로 이야기를 못했다(?). 정성일이 그날의 주제에 대해 쉬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방송이 거의 제대로 된 대화의 형식이 되지 못하였다. 정성일이 혼자 계속 이야기를 하면 정은임은 거의 중간 질문 한두번을, 겨우 정성일의 멘트 틈을 비집고공부해서 준비해 온 날카로운 질문인데 질문할 시간을 줘야 할 거 아냐 들어가서 겨우 하는 정도고 그 외 다른 멘트는 한마디[8] 제대로 치기 힘들었을 정도[9].. 그래도 그녀 역시 정성일의 영화에 대한 열정에 대해 잘 알고 있어 곤란한 와중에도 배려와 호의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직업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유명한 영화 비평가로 자리잡은 이후에 그의 아버지와 통화를 했는데,

아버지 : 너 도대체 요즘 무슨 일하고 지내느냐?

정성일 : 요즘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고, 그에 대한 잡지도 만들고 있습니다.

아버지 : 아니 그러니까 그런 거 말고 진짜 일 말이야. 무슨 일하느냐고?

정성일 : ..(침묵)
[10]아니 혹시 물리적인 일 말씀하시나? 힘과 변위의 스칼라곱

정성일이 지지하는 한국 영화감독은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가 있다. 이 중 임권택과 김기덕에 관해서는 정성일 본인이 제작, 편집의 이름으로 책을 냈을 정도.[11]

의외로 귀여니의 팬이며 귀여니의 소설을 다 읽었고 귀여니에 관한 글들도 여러 번 썼다. 귀여니와 직접 만나 인터뷰도 했다. 물론 문학적으로 높게 평가한 것은 아니고, 귀여니의 글들은 청소년들의 놀이문화의 일종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름 모를 예술영화나 감독을 자주 추천하기 때문에 허세를 부린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정성일의 경우 영화제의 심사위원 등을 맡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할 때도 자주 있다. 물론 이유는 좋은 영화를 모두와 함께 보고 싶어서. 단순히 리뷰에 언급하면서 본인 자랑용으로 쓰는 경우와 작품을 알리고자 하는 경우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성일이 상업영화에 대한 관심만이 아닌 예술영화나 저예산 독립영화 등에 애정이 큰 평론가가 된 동기는 1970년대였던 그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라디오에서 소개된 네 클레망 감독의 '금지된 장난'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경복궁 맞은 편에 있던 프랑스 문화원에 가게 되어 그곳에서 하는 상영회에서 영화를 본 경험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충격을 받은 영화는 다른 영화였다. 프랑스 문화원에 도착했을 때 '금지된 장난'은 상영시간표가 안 맞았고, 어쩔 수 없이 먼저 본 영화가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정성일의 영화인생을 바꿔 놓았다는 장 뤽 고다르의 '기관총 부대(Les Canabinier)'ㄷㄷㄷ였다.[12] 그것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영어 자막의 프랑스영화였는데 굉장한 충격[13]을 받았다고 한다. 그 영화를 보고 '아하, 영화라는 것은 카메라로 찍는 거구나'라는 걸 깨닫는 순간[14] 영화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버리고, 그때까지 영화를 봐왔던 과거로 어린 정성일 자신이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매력에 빠져 그 이후로도 그곳의 상영회에 매번 참석하게 되고 관람 후 영화를 같이 본 대학생들과 감상을 나누는 경우도 생기고, 가벼운 토론도 하게 되면서 예술영화 자체의 매력과 영화에 대한 토론, 평론의 재미에 점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영화에 대한 공부도 당연히 따로 깊게 했지만)계속 그런 영화들을 찾아다니며 보게 되면서 영화에 대한 지식과 경험의 폭을 넓혀갔다고 한다.왜 하필 시작이 고다르였는가? 운명의 장난이여[15][16] 이후 2학년 때 프랑스문화원에서 본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는 나중에 100번도 넘게 다시봤다고 할 정도로 위대함을 느꼈다고 한다. 거기다가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영화감독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타고난 고다르광이네. 그걸 100번을 어떻게 보지? 대학에 가고 나서는 독일 문화원에서도 영화를 보면서 영화동호회 써클 활동까지 하다가 독일 문화원장이 독일로 강제 송환되면서 군대[17]를 갔다고 한다.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은 군대를 갔다 온 뒤부터 시작된 것이라 한다. 지인들이 스태프들로 들어갔던 이장호 감독 영화를 보면서 한국영화가 좋아졌다고 한다. 그 후 임권택 감독 영화를 본 뒤에는 영화에 관련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도 생겼다고 한다.

물론 영화자체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그때인건 아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영화를 자주 보여줬는데, 초등학생 때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작품을 보게 되고 나서부터라고 기억한다. 그 이후 어린 나이임에도 그 영화가 너무 좋아서 나중에 본 벤허마저도 재미없게 느껴졌다고 한다.

2000년 제 1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초대 프로그래머로서, 영화제의 중심 목표인 디지털, 독립영화라는 특성, 현재도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 다만 전주시와의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사표 내고 본인이 만들다시피 한 영화제와 인연을 끊은 것은 유명한 흑역사. 결국 그 해 정성일 평론가가 빠진 영화제는 급하게 치뤄져 휘청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천영화제 사태 이전에 이미 영화제에 정치권이 손대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보여주었던 사례.

그 후 2007년에 시네마 디지털 서울 (이른바 CinDi) 이라는 영화제를 세워, 2012년에 CJ에서 재정지원을 중단해 폐지될 때까지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영화제를 꾸려나갔다. 영화제의 기조가 '아시아 신인감독들의 디지털 영화'라는 점에서 위의 전주국제영화제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곽재용, 박찬욱#, 이준익 감독과는 데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월간지 <>에 연재하기 전에는 입에 풀칠하느라 글도 더 쉽고 단순하게 썼었고, 정성일 본인이 혐오하는 별점평가까지도 했었다. 스스로도 이때를 흑역사로 생각하고 있고, 이때의 필명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팬들이 당시 필명이 '정예린'(...)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때의 글들도 다 찾아내서 글모음 사이트에 올려놓았다.(...) 남의 흑역사를 들춰내지마! 팬이 안티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의 유명한 명언[18]을 실천이라도 하듯 오랫동안 꿈꿔왔던 영화감독으로서 첫 작품을 내놓게 되었다. <카페 느와르>가 바로 그의 첫 영화.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 사이에선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지만 씨네 21 평론가들은 좋게 평가해줬고, 대체로 딱 정성일이 만들 법한 영화라는 반응. 해외에서는 베니스영화제를 비롯 11개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19] 신하균정유미가 출연하지만 상영시간이 3시간을 넘으며, 유럽 영화들에 영향을 받은 실험적인 영화이기에 난해한 면이 있다. 그가 한없이 흠모한다고 말한 장 뤽 고다르의 영향이 짙은 영화. 영화 비평가 이동진은 '영화 물리학 실험'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20] 의외로 웃기다는 이야기는 있긴 하다[21]

2. 자주 쓰는 말

정성일의 글을 읽다보면 무심코 반복하는 건지 노리고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그만의 기괴한 말들이 있다. 아래는 예시. 더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결국 실패할 것이다"
"~라는 물음과 ~라는 물음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
"말하자면 ~인 것이다"
"~의 가장 놀라운 재능은 ~라는 것이다"
"첫번째 포스트 ~영화이다"
"~의 변증법"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여기서 함께 끌려들어오는 것은"
"이 때 물론 작동을 멈추는 것은"
"~이 되기 직전에 멈춘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약간의 우회."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시기 바란다."
"~하는 중이다"
"~라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우스꽝스럽다"
"역겨운 일이다"
"나에게 ~가 허락된다면"
"이보다 더 ~한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쓰레기"
"~는 우리에게 ~로 도착한 것이다"
"망연자실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 -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A라는 B. B라는 A(혹은 A')"
"지금 우리에게 도착한 이 영화는"
"-할 때 나는 -해진다"
"여기에는 ~가 있다."
"~로 철수한다 or ~로 철수하기 시작한다"
"~라 말한다면 정확하다."[22]
"윤리적", "정치적", "미학적"[23]



이 어휘들은 평소 영화에 대한 말을 할 때도 그대로 쓰인다. 90년대 초, 중반에 출연한 라디오 방송(MBC의 FM영화음악)을 들어보면 위 어휘들을 자주 들을 수 있다. 허문영 영화평론가의 말에 의하면 "문어체는 정성일의 구어체"라고 한다. 평소 말할 때도 글의 문체대로 똑같이 말한다는 뜻이다.[24]

3. 인터뷰

정윤철 영화감독의 인터뷰 "감독, 평론가에게 묻다": 정윤철 감독, 평론가 정성일을 만나다
김혜리 기자의 인터뷰 김혜리가 만난 사람 - 영화평론가·영화감독 정성일
이동진 기자의 인터뷰 정성일 평론가, 영화제 개최에서 감독 데뷔까지
『F.OUND』 인터뷰: 정성일, 온 마음을 다하다 Part1 Part2
『중등교육』 인터뷰 영화는 저에게 세상과 만나는 방법입니다 -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네21> 16주년 창간 기념 토크쇼 정성일 감독 토크쇼 영상
진중권의 문화다방Part1 Part2
제4회 KT&G 상상마당 어바웃북스 '오늘 꺼내본, 어제의 잡지#

4. 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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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영화 인터뷰 글이 올라와 있다. (#)
  • [2] 철학자 질 들뢰즈의 잠언
  • [3] 물론 이는 대부분의 평론가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 [4] 이 인터뷰는 그의 저서 '필사의 탐독'에 실려 있다.
  • [5] 그 직후 박찬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 [6] 그러나 2004년에 다시 폐지되게 된다. 또 그로부터 몇개월 지나지 않아 정은임 아나운서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같은 해 7월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생사를 오가는 중태에 빠져 8월에 사망한다.
  • [7] 프로그램 시작하던 처음에는 그리 깊은 지식이 보이지 않았지만, 점점 영화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 오는 게 느껴졌고, 스스로 주요 멘트들을 작성해 오면서 자신에게도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게 좋았다고 한다.
  • [8] 자세히 들어보면 정성일이 말하는 도중에, 정은임이 뭔가 말하려고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리면, 정성일은 개의치 않고 다음 문장을 계속 이어간다.선생님, 제가 말하려는 거 안 느껴지시나요 결국 정은임은 말하는 것을 포기. 정성일이 멘트를 하도 멈추지 않아서 영화광들 중 정성일의 평론을 좋아하던 팬들조차 "정성일 선생님 나오실 때, 좋은 정보나 분석내용을 들으면 적곤 하는데, 하도 말씀이 빠르고 끊기지 않아서 옮겨 적는데 신경쓰느라 제가 간첩이 된 것 같아요. 비밀 암호문을 전달받는 방송을 듣고 적는 것 같다니까요."라는 식의 내용으로 엽서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왜 이래요 선생님 심지어 2004년에 프로그램이 부활하여 정성일이 돌아온 뒤부터는, 아예 포기한 정은임이 웃으며 "긴 설명이 필요없는 분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던 그 분. 이 분이 나오시는 날엔 저 역시 여러분들과 함께 조용~히(웃음) 이 분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정성일씨 모셨습니다."라며 농담섞인 소개멘트를 하기도 했다.그래도 신경쓰지 않고 그 날도 계속 얘기만 한 남자 정성일
  • [9] 그래도 방송인의 사명감(?)으로 어떻게든 말은 안 끊으면서 리액션을 하려고 중간중간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위대한 방송인
  • [10] 사무직이든 현장직이든 일반 회사에서 하는 일을 말한 걸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영화와 관계가 없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사 기자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해 1년 정도만에 그만두었다고 하고, 이에 대해 아버지가 매우 싫어하였다고 한다.근데 영화 평론가도 기자처럼 영화인 인터뷰하는 일도 꽤 있는데, 잡지사 기자랑 별로 다르지 않은 거 아닌가 아마 그 영향으로 나중에도 저런 대화가 있게 되었던 듯.
  • [11] 직접 쓴 것은 아니다. 임권택에 관한 책은 인터뷰 모음이고, 김기덕에 관한 책은 편집에 참여했다.
  • [12] 당시 사회전체적으로 반공 분위기가 강해 누벨바그처럼 영화퀄리티를 떠나서 내용에 사회주의성향이 조금이라도 보이던 영화들, 특히 고다르처럼 사회주의를 넘어 68혁명에 감화된 나머지 중국마오쩌둥에 대한 대사가 들어간 영화(국 여인)까지 만들 정도로 그 성향이 강한 영화인의 영화는 국내 어디서도 상영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가 없었는데, 특별히 프랑스 문화원은 프랑스 대사관의 관리하에 한국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를 접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 [13] 정성일은 이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심각한 표현으로 설명했다.
  • [14] 일반인들이 볼 때는 너무 당연한 거지만 고다르가 말하는 영화가 '카메라의 예술'이라는 걸 안다면 이게 얼마나 단순하면서 가장 중요한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다.
  • [15] 참고로 막상 그 다음으로 본 '금지된 장난'은 자신이 기대했던 충격적인 감흥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스토리와 음악이 모두 그냥 일반적으로 봐온 영화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 [16] 참고로 교묘하게 정성일의 경험과 프랑스 영화사가 맞아떨어지는 것이 있는데, 르네 클레망은 프랑스 영화사적으로 고다르가 속했던 당시 '카이에 뒤 시네마', 즉 누벨바그 멤버들과 사이가 매우 나쁜 감독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벨바그 멤버들이 평론가 시절, 카이에 뒤 시네마 잡지에서 당시 최고의 프랑스 감독 중 하나였던 르네 클레망의 작품을 매우 강하게 씹었비난한 적이 있다.
  • [17] 1980년 5월에 입대하여 1982년말에 제대하여 군생활을 29개월 가량 했다고 한다.
  • [18]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의 3단계가 있다고 했는데 첫번째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 두번째가 '영화평을 쓰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 [19] http://user.chol.com/~dorati/critic/for_cafenoir.htm 에 카페느와르와 관련된 정보가 정리되어있다.
  • [20] 근데 별을 3개 반이나 줬다. 이동진이 그렇게 별점에 후한 사람이 아닌 것을 고려해 보면 꽤 높은 점수다..영화 비평가 선배라고 대우하는 거냐
  • [21] 프랑스 최고의 지독한 시네필 평론가 출신이던 고다르와 통하는 부분이 있긴 하다. 그러나 50년 전부터 나왔던 고다르 영화들을 오마주한 수준이라 고다르처럼 혁신적이라고 할 수야 없지
  • [22] 방송할 때는 상대가 "~~라는 말씀인가요?"라고 하면 "정확합니다." 라고 말한다.
  • [23] 이 세가지는 정성일이 영화의 가치를 판단하는 3대 기준이다. 제일 중요한 게 윤리성. 정성일은 항상 도덕과는 구별된다고 하는 "영화의 윤리성"에 대해 강조한다. 영화는 항상 자신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만들어놓은 질문에 어떻게든 대답을 하고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관객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영화의 윤리성이라 한다. 윤리적이지 않은 영화는 관객이 그냥 보고 아무 변화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상품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그렇다고 미학성, 정치성이 다 딸리면 무시한다. 어느 정도는 되어야 정치적, 미학적으로 훌륭하더라도 윤리적(누누히 말하지만 '도덕과 윤리'의 윤리가 아니다)으로 동의할 수 없는 영화는 그래서 정성일이 항상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런 미학성과 정치성의 측면에서 능력이 있는 감독이기 때문에 윤리적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능력이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미학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영화라도 윤리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면 그 영화를 지지한다. 대표적인 것이 과거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미학적으로도 문제가 많고, 정치성도 보이지 않지만 '영화적 컴플렉스가 없는, 순수한 액션에 대한 열정'으로 나아가는 작품이라며 극찬했다.
  • [24] 그러나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처럼 공적인 관계로 만난 사람들과 대화할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이지, 아예 실생활을 "~합니다."하는 문어체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그가 자기 과거를 방송에서 이야기하거나 할 때 "당시 그 어려움에 처해, 저는 그 선배에게 '형, 우리 이제 어떡해요'라고 호소했습니다." 결국 마무리는 또 "~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 영화의 대사를 방송에서 읽거나 할 때는 그 인물의 "~했어요."라는 구어체 말투를 충분히 정상적인 톤으로 표현한다. 심지어 본인이 감명깊게 본, 혹은 진짜 좋아하는 영화일 때는 특히 그 인물의 감정에 몰입해서 마치 성우처럼 대사를 표현하기도근데 그게 여배우일 때도 많아서 한다. 이런 걸로 보아 실생활 전체가 문어체라는 게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 혹은 공적인 관계에서의 말투만 문어체라는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실생활에도 결국 공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많아서 구어체를 듣기가 어렵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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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13: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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