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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섭

last modified: 2015-04-07 21:05:28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

대한민국 해군의 제독. 31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2. 생애

1958년 1월 2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정확히 본가 쪽은 강원도 횡성이라고 한다. 성남고를 졸업한 뒤 1976년 해군사관학교 34기로 입학하여 1980년에 항해소위로 임관했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대위 시절에 국방대학원에서 안전보장 석사를 받았다. 1989년 소령으로 진급했고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랭커스터대학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해군대학과 한국해양전략연구소의 학술지, 회의를 통해 다수의 해군력 관련 논문을 발표하는 등 맹장 타입의 제독보다는 학자에 가깝다.

2006년 제독이 되면서 제2전투전단장[1],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부장 등을 지냈다. 2011년에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해군교육사령관에 올랐다. 2012년에는 해군작전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4년 10월에는 해군본부로 옮겨 참모차장이 되었다. 이미 중장으로 4년을 근무했고 해군의 인사적체가 타군에 비해 심각한 터라 세 기수를 건너뛸 가능성도[2] 제기되어 참모차장이 마지막 보직이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해군참모차장 재임 중에 해군참모총장인 황기철 제독(해사32기)이 통영함 비리 사건으로 조기 사직함에 따라 2015년 2월 23일에 해군참모총장으로 내정되었다.

이미 대한민국 공군에서는 2014년 4월에 1980년 임관자인 공사 28기 공군대장 최차규 장군을 배출했고 대한민국 육군에서도 2014년 하반기에 1980년 임관자인 육군대장 김현집 장군과 장준규 장군(모두 육사 36기)을 배출한 관계로 해군에선 상대적으로 기수가 늦어져 인사적체가 일어나던 상황이라 33기에서는 제독이 나오기 힘들었다. 황기철 제독의 임기에서 중장 최선임이었던 옥회 제독(해사33기)은 그대로 예편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3] 장성 인사가 좀 뜬금없이 이뤄진 관계로 4월 정기인사까지는 제대하지 않을 것이다.


2015년 2월 27일에 취임했다. 보직 및 진급 신고는 2월 26일에 했다. 방산비리 문제에 엄중히 대처할 것을 취임사에서 밝혔다.

하필이면 해군사관학교 69기 졸업식(2월 26일)을 이틀 남긴 2월 24일에 해당 인사 문제가 불거진 터라 해군 장교단은 좀 뒤숭숭했다고. 4월에 정기인사인데 왜 2월로 앞당겼는지... 졸업식엔 황기철 제독이 참여했다. 당일 정호섭 제독은 청와대에 가서 보직/진급 신고를 해야 해서 졸업식 다음날인 27일에 취임했다.


취임 후 서해 NLL을 방문한 정총장. 인터넷에선 윙가르디움 산이없싸, 아씨오 마운틴, 국방부와 마법의 지팡이 등의 짤방으로 통하고 있다.

3. 여담

작전사령관 시절에 소말리아에 납치됐던 제미니호 선원 구조작전과 북한이 쏘아 올린 장거리미사일(은하-3호)을 탐지, 추적, 인양을 지휘했다.

안미희 씨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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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제2함대 휘하의 전투전단. 해체되었다가 2015년에 2해상전투단으로 부활.
  • [2] 해군에는 사례가 있긴 하다. 문정일 제독(해사23기)에서 남해일 제독(해사26기)으로 참모총장 자리가 간 것.
  • [3] 2014년 4월에 공사 28기인 최차규 장군이 배출되면서 동기인 중장 2명이 전역해야 했지만 공군의 경우 새로 중장을 올릴 만한 기수가 없단 이유로 동기들이 그대로 유임되었다. 공사 28기인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김영민 장군, 공군사관학교장 김형철 장군이 계속 남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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