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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드 위버

last modified: 2015-01-22 18:14:02 by Contributors


위버 형제. 누가 누군지 헷갈리면 골룸


위버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No.36
제러드 위버 (Jered David Weaver)
생년월일 1982년 10월 4일
국적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주 노드리지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체격조건 201cm 97kg
프로입단 2004년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12번, LAA)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2006~ )

Contents

1. 개요
2. 커리어
2.1. 아마 시절과 드래프트
2.2. 데뷔 및 정체
2.3. 폭발
3. 피칭 스타일
4. 이모저모


1. 개요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의 우완 에이스였던 투수. 2014년 기준으로는 개럿 리차즈가 각성하기도 했고 본인도 예전같진 않다. 롱비치 대학 시절 대학 최고 투수라는 간판을 달았던 선수였고, MLB에 와서도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며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뉴욕 양키스,LA 다저스를 거친 친형 제프 위버와 함께 형제 야구 선수로도 유명하다.

2. 커리어

2.1. 아마 시절과 드래프트

한 마디로 요약해 적수가 없었다. 고향 근처의 롱비치 캘리포니아 주립대[1]로 입학해서 대학 리그를 초토화시켰다. 그의 마지막 대학 시즌 성적은 144이닝을 던져 15승 1패 1.62 213삼진에 볼넷은 겨우 21개. 당연히 대학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는 그의 차지가 되었다. 이로써 이미 2004년 드래프트의 최고 유망주[2]로 부상하게 되었다. 모든 팀들이 군침을 질질 흘리게 하는 실력의 소유자였지만 문제는...

그의 에이전트는 모든 구단의 악몽인 에이전트였다.[3]

결과적으로 그의 지명 순번은 쭉쭉 뒤로 밀렸다. 아마 최고의 투수지만 도저히 금액을 맞출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결국 1순위를 가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샌디에이고 홈보이 고졸 유격수 맷 부시를 지명[4]했고, 그 뒤로 저스틴 벌랜더, 필립 엄버, 제프 니만, 머 베일리 등이 먼저 불려나갔다. 보라스가 부른 계약금이 무려 천만불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지명하려고 하지 않는 순간, 애너하임 에인절스가 과감하게 질렀다. 고향과 가까운 지역의 선수를 놓치기 아까워서 대담한 선택을 내린 것.

하지만 협상은 굉장히 지리했다. 보라스가 요구하는 계약금액과 에인절스가 생각한 계약금액은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결국 협상이 굉장히 길어지면서 계약이 무산될 뻔했지만, 막판 위버 본인이 계약 요건을 낮추자고 보라스에게 제안하면서 극적으로 입단했다. 하지만 그래도 일시불로 400만 달러의 계약금을 얻었지만. 계약이 타결된 것이 2005년 5월이라서 마이너리그 데뷔도 그만큼 늦었다.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못했다.

적수가 없었다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는데, 애초에 스터프가 뛰어나다고 보긴 어려운 선수라 기록이 과장되었다는 평가도 받았고 싱글 A+/더블 A에서 3점대 후반의 ERA는 확실히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마냥 못했다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 그가 뛰었던 A+ 캘리포니아 리그의 리그 ERA는 5.00이었고, AA 텍사스 리그의 평균은 4.26이었다. 마냥 못했다기엔 다소 어폐가 있다. 거기에 스탯을 좀 더 자세히 쪼개 보면 꽤 좋은 성적을 기록하긴 했다.. AA에서야 살짝 페이스가 떨어졌지만, 솔직히 얘도 인간인데 맨날 잘할 수는 없잖아(...) 하지만 문제는 보라스가 위버에게 비교한 선수가 바로 마크 프라이어였다는 것. 프라이어는 데뷔 첫 해 더블 A에서 2.60을 찍었고, 비록 세 경기긴 했지만, PCL에서 1.60을 찍었다.[5] 그런 프라이어에게 비교를 당한 위버였던 만큼 사람들의 기대치는 매우 높았던 것.

2.2. 데뷔 및 정체

그리고 솔직히 모든 사람이 오버드래프트인가... 하며 탄식하던 2006년 시즌이 밝았고, 위버는 트리플 A를 무차별적으로 폭격(PCL에서 2.10!)[6]하며 골든스파이크 수상자의 위엄을 보였다. 그리고 2006년 5월 27일 데뷔전 이후, 4연승을 질주하면서 실력을 보여줬다. 다만 아직 마이너리그 옵션이 많이 남아서 부상자 명단에 있던 선수들이 돌아오면서 결국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다. 근데 이 때 돌아와서 그를 강등시킨 주인공이 바로 형인 제프 위버(...) 하지만 형은 부상 이후 돌아와서도 부진했고, 결국 팀이 형을 방출시키면서 그에게 선발 자리를 주었다.[7] 그리고 이 후 꾸준히 선발로 활약하면서 11승 2패 2.56의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신인왕 투표 5위에 올랐다.[8]

하지만 그 뒤로는 다소 정체된 모습을 보여줬다. 2007년 13승 7패 3.91, 2008년 11승 10패 4.33. 2009년 16승 8패 3.75. 분명 나쁘지는 않은 성적이지만, 팀이 기대를 걸었던 에이스로서의 역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플레이오프에서는 매번 에인절스에게 물을 먹였던 보스턴 레드삭스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래도 기대를 걸게 해 줬다.

2.3. 폭발

2010년에 그 조짐이 보였다. 34경기에 선발로 나와 13승 12패 3.01의 성적을 거둔 것. 투구 내용 자체가 괜찮았고, 무엇보다 늘 항상 적게 내주던 볼넷은 그대로인데, 삼진이 늘어 커리어 첫 200탈삼진을 돌파했다. 경륜이 쌓이면서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도 늘고, 드디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보여주는 듯.

그리고 마침내 2011년 완벽하게 자신의 재능이 폭발했다. 단장의 삽질로 인해 전력이 약화된 에인절스에서 유일하게 비벼볼 수 있는 희망이자 에이스로 완벽하게 거듭났다. 후반기 에인절스가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추격전을 펼칠 수 있던 원동력이 위버와 댄 해런, 어빈 산타나 트리오가 맹활약한 덕분인데, 그 선두에서 맹활약했다. 사이 영 상급의 성적까지 찍었지만 막판에 살짝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저스틴 벌랜더에게 트리플 크라운을 허용하고 사이영은 물건너가고 말았다. 그래도 18승 8패에 2.47 정도면 리그 정상급의 성적이다.

2013년 FA가 유력했지만, 전격적으로 팀과 2012~2016 5년간 $85M에 재계약을 맺었다. 시장에 나왔다면 클리프 리CC 사바시아가 받는 연평균 2000만 불 이상의 금액도 가능했으리라는 점, 무엇보다 스캇 보라스를 에이전트로 둔 선수의 헐값 계약이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평가는 아주 좋소.


2012년 5월 2일(미국 시간)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시즌 6번째 경기에서 선발로 나와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121구를 던져서 볼넷 1개와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출루 1회를 허용하고 삼진 9개를 잡아냈다. 에인절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10번째 노히터.

2012년 7월 7일 경기에서 1점대 ERA에 진입하며 리그 평균자책 1위를 고수, 저스틴 벌랜더가 독보적으로 앞서가는가 싶던 사이영 레이스에 불을 붙였다. 비록 구속 저하 때문인진 몰라도 예년보다 탈삼진율이 크게 떨어진 단점이 있으며 BABIP가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불안요인도 있긴 하지만 효과적인 맞춰잡기로 타자들을 요리하면서 시즌 최종 성적은 30경기 188⅔이닝 20승[9] 5패 2.81 ERA 142탈삼진 45볼넷을 기록했다. 커맨드 자체는 준수하지만 2012 내셔널리그 사이역 위너가 구속저하(물론 볼질도 한몫했다)로 인해 얻어맞고 다녔음을 감안하면 운이 따라주고 투구수 관리의 효과[10]를 본 시즌이라 봐야 할 듯. 한편으로 2012년 커리어 100승을 돌파했다.

2013년에는 과장 좀 섞어서 배리 지토 수준으로 구속이 하락하여 영 좋지 않은 2경기를 치른 후 왼쪽 팔꿈치 골절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5월 후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프리웨이 시리즈에 복귀했고, 곧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시즌 최종 11승 8패 154.1이닝 ERA 3.27 117탈삼진을 기록했다.

3. 피칭 스타일

전성기를 기준으로 평균 구속 90마일 전후(최고 94마일)의 포심과 투심, 예리한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선수. 2014년 기준으로는 구속의 저하가 심화되어 포심이나 투심이나 커터나 평균 속도가 시속 86 마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키가 워낙 크고 릴리스 포인트가 높아서 브레이킹볼의 낙차도 타자들이 공략하기에는 상당하고 무브먼트도 꽤 좋다. 구속이 빠르지는 않지만 제구력이 좋고 타자와 승부를 두려워하지 않아 적극적으로 존을 공략해 볼넷을 많이 내주지도 않는다. 또 각각의 구종의 숙련도가 높아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이 모두 수준급. 특히 써클 체인지업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며 투심 패스트볼은 브레이크아웃 시즌인 10년부터 사용했다.

사실 위버는 절대 구속이 빠른 투수는 아니며, 따라서 삼진율이 높은 투수도 아니다. 대학 시절에는 이닝 대비 무시무시한 수의 탈삼진을 잡아냈지만 평균 구속 90마일의 패스트볼로 메이저리그에서 삼진을 많이 잡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높은 탈삼진율을 기록한 2010년 시즌 때문에 위버가 탈삼진도 잘 잡는 투수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꽤 되는데 사실 2010시즌을 제외하면 위버는 항상 리그 평균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탈삼진율을 기록했다. 2012년부터는 평균 아래다.

단, 2010년만큼은 탈삼진율이 엄청난데 이 해 위버는 투심을 장착하며 피칭 스타일에 큰 변화를 주었으며 커브와 슬라이더 두 변화구의 구사율을 높였다. 이 두가지가 합쳐져 타자들이 삼진을 헌납한 것이지, 2011년 부터는 다시 삼진수와 비율이 줄었다. 다시 한 번 2010년처럼 압도적인 삼진율을 보여주길 원하는 팬들도 많으나, 커리어 전반을 분석해 보면 다시 그런 모습을 보여주긴 힘들다고 봐야 할 듯. 대신 커리어 내내 유지되는 위버의 장점은 따로 있다.

보통 타자가 친 공이 땅볼인 경우 장타가 될 확률은 적지만 안타가 될 확률은 높으며, 플라이 볼인 경우는 안타가 될 확률은 낮지만 홈런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땅볼 투수들은 장타를 적게 맞지만 단타를 많이 내주며 점수를 내주는 경우가 많고, 플라이 볼 투수들은 안타는 적게 맞지만 홈런을 많이 맞으며 점수를 내준다.

여기서 위버의 장점이 발휘되는데, 위버는 플라이볼 투수라 안타를 적게 맞으면서도 홈런도 적게 맞는다. 위버의 홈런/플라이볼 비율은 꾸준히 리그 평균 홈런/플라이볼 비율에 비해 낮다. 이는 외야가 넓은 에인절 스타디움 덕분이기도 하지만 위버의 내야 플라이 유도 능력도 한 몫을 한다. 내야 안쪽에 떨어져서 높은 확률로 아웃이 되는 내야 플라이의 비율이 위버는 꾸준히 리그 평균에 비해 높다.

비록 이닝당 홈런 수가 리그 평균보다 조금 더 좋은 정도지 엄청나게 낮은 것은 아니지만, 위버의 투구는 리그 평균에 비해 플라이볼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걸 생각하면 평균보다 높아야 할 홈런 수가 평균보다 더 낮다는 것이다.


투구폼이 타자가 타이밍 맞추기 힘든 것으로도 유명한데, 몸을 한번 비튼뒤 팔다리를 쭉쭉 뻗어 내지르는 마치 탈춤, 용틀임같은 투구폼이다. 형인 제프 위버도 비슷한데 2미터가 넘는 장신에 긴 팔다리때문에 가능한 투구폼이다. 몸을 비틀면서 크로스로 나오기 때문에 투구하는 순간 공이 위버의 몸에 가려서 최대한 뒤에서 나온다. 특히 투수판 오른쪽 끝을 밟고 45도 가까이 크로스로 나오는 투구폼이기 때문에, 팔이 엄청 길고 쓰리쿼터성인 위버의 릴리즈 포인트는 거진 우타자의 등 뒤까지 갈 정도로 바짝 붙어온다. 때문에 특히 우타자들이 타격 타이밍 잡기가 매우 까다롭다. 미국 스카우팅 레포트에도 위버의 투구폼을 Deceptive(속이기 쉬운)라는 표현을 써서 설명할 정도. 정통 오버핸드보다는 쓰리쿼터[11]에 가까운 모션으로 공을 던지며 위버의 큰 몸뚱이가 팔을 가려주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갑자기 뒤에서 공이 툭 하고 나오는 것 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MLB 다른 투수들에 비해 절대 빠른 편이라 할 수 없는 평균 80마일 후반~ 90마일 초반대의 패스트볼 구속에도 불구하고 타자들이 공에 밀려 담장을 넘기지 못하는 플라이볼을 양산해 낸다. 거기에 투심과 커터를 섞어서 구속의 변화를 주고 체인지업과 슬라이더,커브를 섞으면 더욱 더 위력을 발휘한다. 이런 모습이 정말로 극단적이게 되면 팀 린스컴[12], 노모 히데오의 지경이 된다. 이런 괴짜들에 비하면야 위버는 차라리 양호한 수준... 하지만 게선생께서는 이런 위버의 피치가 원바운드성으로 왔는데도 홈런을 때려버리셨다(...) 항목 참조.

이런 괴랄한 투구폼이 에인절 스타디움의 인공 암석과 시너지효과를 내며 이득을 보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팬그래프 글.

단점이라면 투구폼때문에 좌/우 스플릿 차이가 좀 나는 편. 우타자들이야 공이 등 뒤에서 날아와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지만 좌타자들에게는 저 멀리에서부터 치기 좋게 한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일 뿐. (...) 물론 과장을 섞은 표현이고 실제로는 디셉션이 훌륭해 타이밍 맞추기가 쉬운 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좌타자들에게 공략이 더 쉬운 폼임에는 맞다.

플라이볼 비율이 매우 높아[13] 컨디션이 안 좋거나 하락세가 찾아오면 홈런을 우두두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단점으로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에인절 스타디움은 크고 아름다운 외야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홈런만 맞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보일 가능성은 높다.

문제는 과연 홈런을 맞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 실제로 위버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단점은 2011년부터 급격한 구속 저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0 년부터 위버의 패스트볼 평속 변화는 시속 89.9 - 89.1 - 87.8 - 86.5 - 86.2 마일이다. 9 이닝 당 홈런 허용 비율도 2010년 이후 처음으로 1.00 을 넘어 1.12 를 기록 중이다. 선수의 전체적인 승리 기여도를 나타내는 스탯 WAR를 참고하면, 팬그래프가 산정한 2014년 위버의 WAR 은 9월 기준 1.2 인데, 그가 염가 계약을 맺을 걸 감안하면 먹튀라고 할 만한 성적은 아니지만 더 이상 그는 에이스가 아니라 평범한 투수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어 보인다.

2014년도 방어율만 보면 3 점 중반대로 잘해주고 있으나, 위에서 말한 위버의 장점 중 하나인 높은 내야 뜬공 유도 비율도, 생각보다 낮은 홈런 허용률도 올라가는 등 세부지표가 불안해지고 있는 상황. 애초에 린스컴처럼 파워 피칭을 하던 선수는 아니니만큼 구속이 저하되어도 린스컴보다 버틸 수 있는 요령은 갖추고 있지만, 점점 활약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전성기 타 팀의 에이스에 꿀리지 않는 에인절스의 에이스 자리는 2014년 기준 개럿 리차즈에게 내준 상황.

4. 이모저모


마이너 콜업직후를 빼면 에인절스에서는 형 제프와 같은 등번호 36번를 쓰고 있으며, 제프가 LA 다저스에서 잠시 뛰었을땐 인터리그인 프리웨이 시리즈에서 선발 맞대결을 한 적도 있다. 이때 위버 형제의 부모님은 둘 다 응원하려고 이런 유니폼을 만들어 입고 나왔다. 2009년 벌어졌던 이날 형제의 선발 맞대결은 형의 승리. 2010년에는 형이 선발 로테이션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선발 맞대결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위 노히터 영상에도 나오지만 둘째 아들의 노히트를 직접 보는 행운도 얻었다.

2011년 7월 31일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원정에서 사이 영 상을 놓고 저스틴 벌랜더와 대결을 펼쳤는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카를로스 기옌이 위버에게 홈런을 치고 빨리 달리지 않고 쳐다보다가 조롱하는 듯한 행동을 하자 위버가 격분했고, 다음 타자 알렉스 아빌라에게 헤드샷을 날리면서 퇴장을 당한 것. 또한 이날 노히터를 이어가던 벌랜더를 상대로 출루에 성공하자 에릭 아이바가 번트를 시도하고 결과적으로 적시타를 날리며 노히터를 날려버리는 등 앤젤스로서도 상대팀에 대한 보복을 가했다.[14]

2008년 인터리그 LA 다저스전에서 선발 등판해 안타를 1개도 안맞았는데도 패전투수가 되었다. 무안타 승리 항목 참조.

2011년 11월, 롱비치 주립대 체육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마운드에 등판하기 전에 마운드 뒤에 "NA"를 쓰고 등판하는데, 이는 과거 팀 동료이자 친구였던 故 닉 아덴하트를 기리는 것. 닉 아덴하트는 에인절스에서 촉망받던 투수로, 2009년 4월 8일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는데 그 경기가 끝나고 1시간 후 교통사고를 당해 22세로 요절했다. 위버와 아덴하트는 4살 차이긴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같이 활동하던 시절에 친구처럼 지냈다고. 2013년 7월 득남했을 때 아덴하트의 이름을 따 아들 이름을 아덴(Aden)으로 지었다.

추신수가 제러드 위버에게 상대전적에서 강한 모습을 보인다. 통산 상대전적이 '34타수 14안타 6이루타 3타점 1볼넷 4삼진 2몸에 맞는 공 .452 .500 .645 OPS .1145'다. 그리고 추신수가 2014년부터 같은 지구 경쟁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게 되면서 앞으로 질리게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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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제이슨 지암비, 트로이 툴로위츠키, 에반 롱고리아, 밴스 월리를 배출한 야구 명문이며, 매년 1~3라운드 이내에서 지명되는 선수가 나온다. 흔히 더트백스로 불린다.
  • [2] 이후 2007 전체 1픽인 밴더빌트 대학교 출신 데이비드 프라이스가 비슷한 수준의 평가를 받았으며, 그 뒤에 등장한 샌디에이고 스테이트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3] 엄밀히 말하면 아마추어 선수에게는 '에이전트'가 아니라 '조언자'가 맞는 표현이지만, 100이면 100 조언자는 에이전트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에이전트로 칭한다. 지금까지도 보라스 클라이언트이기도 하고.
  • [4] 티븐 드류라는 대학 최고의 좌타 유격수가 있었지만, 그 녀석도 처럼 보라스 빨 때문에 사이너빌리티가 굉장히 낮았다. 결과적으로 그를 지명한 애리조나 디백스는 1년여 가까이 지리한 밀당을 거듭한 끝에 사인에 성공하여 MLB 수준급 유격수로 기용 중이고, 부시는 데뷔도 못한채 불펜투수로 전향해서 마이너를 전전하고 있다.
  • [5] 참고로 그 해 PCL ERA는 4.92였다.
  • [6] 뭐 이 시즌에 PCL은 4점대 초반이라는 이전에 비하면 쨉도 안되는 난이도의 리그였던 것을 감안하자. 하지만 2점대 초반 ERA는 그 어느 리그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자책점이다. 2011년의 어떤 섬나라리그 빼고
  • [7] 전화위복인지 형인 제프 위버는 이 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해 우승 반지를 획득한다.
  • [8] 그 해 신인왕은 저스틴 벌랜더, 2위가 조나단 파펠본, 3위는 프란시스코 리리아노, 4위가 조지마 겐지. 2006년은 괴수같은 신인들이 양 리그에 쏟아진 한 해였다.
  • [9] 데이비드 프라이스와 함께 아메리칸리그 공동다승왕.
  • [10] 2011년에는 거의 매번 선발 등판마다 100구 이상을 투구했지만, 2012년에는 부상자 명단에도 올랐던 바 있는지라 관리를 좀 받았다.
  • [11] 가끔 오버핸드와 쓰리쿼터를 오가며 던지기도 하며 상대에게 더욱 혼란을 준다.
  • [12] 땅꼬마 루저인 린스컴의 더욱 괴악한 딜리버리와 달리 위버는 상체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이는 순전히 키가 1피트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가능한 것. 루저는 울자. 그래도 린스컴은 사이영 2연패도 했잖아...
  • [13] 위버가 활동한 2006년부터 2012년 7월 6일까지 위버보다 GB/FB 비율이 낮은 선수는 크리스 영, 케빈 슬로위, 올리버 페레즈 뿐이다.
  • [14]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위버와 매글리오 오도녜즈 사이의 실랑이가 먼저 있었다. 위버에 따르면 오도녜즈가 홈런을 쳤을 때 베이스를 빨리 돌지 않았으며 그것에 대해 위버가 빨리 뛰라는 식으로 짜증을 냈고 팀 동료인 기옌에게 보복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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