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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1992년 3월 24일 1996년 4월 11일 2000년 4월 13일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Contents

1. 개요
2. 과정
3. 결과
4. 철새의 계절
5. 선거결과
6. 출구조사의 실패


1. 개요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는 1996년 4월 11일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이다. 투표율은 63.9%였다.

의원 정수는 299명[1]으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와 같았다.

정당여당신한국당야당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통합민주당. 지금과는 달리 1인 1표제였으며 비례대표 의석은 지역구에서 각 정당이 득표한 것의 합산으로 결정했다.

2. 과정

14대 대선 낙선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에 있던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실력을 과시 한 뒤, 그해 말 정계복귀를 선언하며 통합민주당에서 나와 새정치국민회의(약칭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로서 야권은 크게 개편되었다. 국민회의의 대선을 노린 안정, 보수적 행보에 통합민주당은 진보, 시민사회계 인사를 영입하며 맞섰다.

3. 결과

국민회의는 민주당계 야당표의 분열로 서울에서 부진하여 79석에 그치고 거물급 정치인이 낙선했다.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에서 김대중이 한 석 차이로 떨어졌다. 이때 이종찬, 노무현이 출마했던 '정치 1번지' 서울시 종로구를 비롯해 수도권의 30여개 지역구에서 표 분열로 신한국당이 쉽게 의석을 얻는 어부지리가 속출했다. 공교롭게도 종로구에서는 신한국당의 이명박 후보가 지역구 초선[2]으로 당선되었다(...) 국민회의는 서울에서만 16석이 뒤집혀 고작 18석을 확보, 서울지역 1당을 여당(27석)에 내주게 되었으며, 100석 확보는 물론 1당 확보를 장담하던 김대중 총재로서는 쓰라린 패배였다.

이 때 김대중 총재는 유래 없는 화자찬에 들어간다. 허세가 섞여 있는 억지성 발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위기에 빠진 지지층을 추스르는데는 큰 역할을 했다는 평.

“이번 선거에서 왜 모든 언론은 국민회의가 패배했다고 보도하지요? 패배가 아니라 약진이란 표현을 쓰라고 언론에 요구하세요. 65석이 79석이 됐고 전국 58개 지역에서 3000표 차 이내의 초접전을 벌였는데 이게 민심이 아직 국민회의를 안 떠났다는 의미가 아니고 뭡니까. (중략) 신한국당이 170석에서 139석으로 준 것이 이긴 것이냐, 국민회의가 65석에서 79석이 된 게 진 것이냐. 뭐가 패배고 승리냐. 이걸 기조로 당 기자실에서 성명을 발표하라”#

19대 총선에서도 민주통합당이 써먹을 수 있는 말이다

민주자유당에서 탈당한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은 충청도와 함께 TK지방을 공략하여 전국 정당으로 홍보했으며, 충청권을 싹쓸이 하고 TK(대구광역시))에서도 선전해 50석으로 대약진했다. 13대 총선통일민주당을 제외하면 제3정당으로서 최대 의석을 확보한 것으로, 통일민주당은 총득표 상으로는 2당이었고 3당 합당으로 사라진 것을 고려하면 역대 제3당 최대 의석이라고 볼 수 있다.

통합민주당은 울산시, 안동시에서 의석을 확보하면서 영남권에서 선전했음에서 의석 수가 30석에서 크게 줄어들어(15석)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게 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의원들이 신한국당으로 빠져나가는 등의 암흑기를 겪었다. 결국 1997년 대선 정국때 신한국당과 합당, 한나라당으로 통합했다. (이 때, 통합민주당에서 노무현, 김원기 등 일부 정치인들은 한나라당과의 합당에 참여하지 않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여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도왔다.)

여당 신한국당은 정치신인 공천[3]과 야권분열로 인한 수도권 의석 확보로 당초 예상보다 선전한 139석을 확보했으나 대구, 경북지역에서의 부진으로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그러나 장학로 제1부속실장의 수뢰 혐의 등으로 인해 신한국당이 참패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상당히 선전했기 때문에 15대 총선의 승패를 따지자면, 신한국당의 반쪽 승리라고 볼 만하다.

당장은 여당 139석, 야권 144석, 무소속 16석(12석은 영남 지역 무소속)의 절묘한 의석이었다. 그러나...

4. 철새의 계절

신한국당은 선거 직후에 통합민주당[4], 자민련[5], 무소속 의원을 대거 영입,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며 96년 연말의 크리스마스 노동법 정국을 예고했다. '의원 빼가기'로 신한국당은 157석까지 의석이 늘어났으며,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총 의석은 122석으로 줄어들었다(국민회의 79 + 자민련 43). 특히 97년 11월,신한국당이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영입한 이후엔 자민련 대변인이었던 안택수(대구 북구을), 반여당 선언으로 공증을 했던 백승홍 의원(대구 서구을) 등등 TK 자민련 의원들의 대다수가 여당으로 이동해버렸다. (후에 97년 11월 통합민주당과의 합당으로 한나라당이 출범하면서 의석은 자그만치 165석의 거대 여당이 되었다.)

1997년 12월 15대 대선의 결과로 제1야당인 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제2야당 자민련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면서, 다시 신'여소야대' 현상이 일어났다.[6] 이후 김종필 총리 인준이 부결 되는 등 구 여당인 한나라당의 정국 파행으로 결국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전후해 연립 여당의 역'의원 빼가기' 공세가 시작되었다. 바야흐로 철새의 전성시대

1998년 4월 애초부터 탈당이 예고되었던 김종호, 박세직 의원을 시작으로 오장섭, 이완구[7], 이의익 의원이 자민련에 들어가더니, 4월 29일 서정화, 이성호, 김인영, 이강희, 서한샘 의원이 국민회의로 이적했다. 이어서 5월에 김명섭, 정영훈(국민회의 행), 이택석(자민련)의원이 탈당했고, 8월에는 한나라당 홍문종 의원[8]이 탈당해 국민회의로 입당했다(국민회의 87석, 자민련 48석. 한나라 과반 붕괴). 이로서 여대야소 복귀가 확실화 되자, 8월 28일에는 이인제-이만섭의 국민신당까지 국민회의에 합당을 하면서 7석이 추가되었고, 김학원 의원은 자민련에 입당했다. 9월 초에는 PK계의 노승우, 김충일(국민회의 행), 차수명 의원(자민련 행)이 한나라당을 다시 탈당했으며, 최종적으로 9월 8일에는 한나라당의 유용태, 김길환, 박종우, 송훈석 4명까지 받아들이면서 국민회의 101석(개헌 저지선 확보), 자민련 52석의 153석 안정 과반 의석을 확보했으며, 한나라당은 140석으로 의석이 줄었다.[9]

상당수 '철새' 의원들은 16대 총선에서 낙선했으나(이른바 낙선운동의 영향), 젊은 의원들의 경우 2014년 현재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5. 선거결과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신한국당 국민회의 자민련 민주당 무소속
서울 (47) 27 18 0 1 1
부산 (21) 21 0 0 0 0
대구 (13) 2 0 8 0 3
인천 (11) 9 2 0 0 0
광주 (6) 0 6 0 0 0
대전 (7) 0 0 7 0 0
경기 (38) 18 10 5 3 2
강원 (13) 9 0 2 2 0
충북 (8) 2 0 5 0 1
충남 (13) 1 0 12 0 0
전북 (14) 1 13 0 0 0
전남 (17) 0 17 0 0 0
경북 (19) 11 0 2 1 5
경남 (23) 17 0 0 2 4
제주 (3) 3 0 0 0 0
지역구 (253) 121 66 41 9 16
전국구 (46) 18 (34.5%) 13 (25.3%) 9 (16.2%) 6 (11.2%) 0 (12.8%)[10]
총합 (299) 139 79 50 15 16

6. 출구조사의 실패

총선 출구조사 안습 전설의 첫 막을 올렸다.(...) KBS, MBC, SBS 방송3사가 전년도 지방선거 투표자 조사결과가 정확하게 나오자 정치권에서 투표자조사를 용인하도록 법을 바꾸었고, 방송사간의 지나친 경쟁을 피한다는 취지(일단 말은 그렇다. 물론 현실하고 거리가 멀었지만) 만큼 공동 투표자 조사를 시행했고 이 투표자 조사결과를 저녁 6시에 정각에 발표 했다.[11] 이 투표자 조사에선 신한국당이 압도적으로 과반 확보(175석)하는것으로 나왔으나...[12]

정작 개표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망했어요 최종 개표결과는 신한국당 139석으로 예측의석보다 36석이나 적게 나왔고 국민회의는 8석(투표자조사:71석), 자민련은 16석(투표자조사:34석), 민주당은 4석(투표자조사:11석) 무소속이 8석(투표자조사:8석)이나 많이 나왔다. 그 덕분에 밤새도록 방송3사에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그 후폭풍으로 인해 방송3사는 사과방송을 해야했고 덧붙혀 외신에서 희대의 비웃음거리로 소개되는등 굴욕을 당해야했다. 또한 투표자 조사를 시행한 여론조사 기관들의 신뢰도도 추락해 광고조사의 신뢰성이 떨어졌다. 이는 1997년 한국갤럽에서 15대 대선 결과를 맞추고 나서야 해소된다. 하지만 총선 출구조사는 여전히 안습이라는건 안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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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역구 253명, 전국구 46명
  • [2] 전국구를 지냈기 때문에 재선의원이었다. 하지만 2년 뒤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 받던 중에 자진 사퇴하여 보궐선거 크리. 이 자리는 국민회의로 나온 노무현 후보가 차지했다.
  • [3] 모래시계 검사로 떴던 홍준표,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 김문수 등 정치 신인들을 수도권에 대거 공천했다.
  • [4] 이규택(경기 여주군), 황규선(경기 이천시·이천군), 최욱철(강원 강릉시을)
  • [5] 최각규 강원도 지사, 유종수(류종수, 춘천시을), 황학수(강릉시갑) 등 강원도 지역 정치인을 죄다 끌어들였다. 이로서 을병 의원(삼척시, 국민회의 합류)을 제외하곤 모든 강원도 지역 의원들이 신한국당 의원이 되었다. (이렇게 된데에는 무소속 당선자가 많았던 당시 삼척시의 배경도 있다. 영동 자체가 무소속 당선자가 많긴 했지만 그러나 동해시와 합구가 되면서 그 유명한 최연희(...)의원의 등장으로 16대 총선부터는 장을병 의원이 큰 표차로 낙선, 보수 텃밭이 되었다.)
  • [6] 당선 직후 국민회의 이석현 의원의 '한국/남조선 병기 명함' 파동으로 자진 탈당, 의석이 더 줄어들었다.
  • [7] 2014년 국회 후기 새누리당 원내대표.
  • [8] 2013년~2014년 새누리당 사무총장.
  • [9] 이 명단에는 국민회의 1석, 자민련 2석의 명단이 빠져있다.
  • [10] 1인 2표제가 시행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표(死票)로 분류되었다.
  • [11] 이 와중에 MBC에서 상당수 지역구에서 불법(지금은 불법은 아니었지만 당시엔 투표소에서 500M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출구조사를 하는건 불법으로 지정되어있었다.) 출구조사를 벌이다가 타 방송사에 의해 무산되는 해프닝이 있었다.(물론 이 출구조사 결과는 선거당일에 당연히 발표되지 않았고 선거 다음날 MBC 뉴스 프로그램에서 자사가 벌인 출구조사가 정확하다고 홍보했을때 공개되었다.)투표자 조사결과가 틀리고 출구조사 결과가 상당히 정확한걸로 나오자 출구조사 거리 규정 완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 동안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정작 16대 총선에선 망했어요.
  • [12] 참고로 당선자 예측발표했을땐 오차범위(+-4.3%)따윈 쌩까고 조금이라도 앞서면 그냥 당선예상! 이런식으로 발표했다. 물론 오차범위를 감안해도 신한국당 130-189석, 국민회의 54-82석, 자민련 25-37석 민주당 11-14석, 무소속 4-10석으로 너무 범위가 넓기 때문에 사실상 당선자 예측이라는 의미가 없다시피한 조사이긴했다.(특히 자민련과 민주당, 무소속의 경우 예상 의석을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전국구 득표율에서도 국민회의-자민련-민주당의 경우 오차범위 내에서 맞쳤으나 신한국당의 경우 실제 득표율(34.8%)보다 훨씬 나왔(...)다.(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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