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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국회의원 선거


Contents

1. 개요
2. 배경
3. 과정
3.1. "낙천 운동"
4. 초박빙선거
5. 결과
5.1. 또 다시 실패한 출구조사
5.2. 50:50 국회
5.3. 국회의원 목록
6. 관련항목


1. 개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0년 4월 13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이다. 투표율은 57.2%였다.

2. 배경

의원 정수는 273명[1]으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비해 26명이 줄었다. 정당은 공동 여당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야당한나라당, 민주국민당, 민주노동당, 년진보당(사회당의 전신), 희망의 한국신당 등이 참여하였다. 지금과는 달리 1인1표제였으며 비례대표 의석은 지역구에서 각 정당이 득표한 것의 합산으로 결정했다.

3. 과정

여당새천년민주당은 수도권을 석권하고 충청도(충북 제외)와 강원도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지만, 자민련과의 선거공조 무산과 영남의 결집으로 한나라당이 과반에서 4석 모자라는 133석으로 제 1당의 자리를 차지한다.[2] 한편 자유민주연합은 텃밭인 충청도에서 부실한 성적을 낸다.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과반은커녕 제 1당도 차지하지 못한 선거라 사실상 한나라당의 승리로 간주되었다. 본격 충청북도가 캐스팅보터가 된 대표적 선거[3].

정리하면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선방[4], 한나라당의 약진, 자민련의 교섭단체 달성 실패로 요약된다.

민주노동당도 저조한 성적을 내며 4년 후를 기약한다. 청년진보당은 서울 전 지역구에 출마한 젊은 후보를 중심으로 진보정당 치고는 만만찮은 2~5%의 득표를 올렸으나[5] 이후로는 득표가 이것보다도 훨씬 저조해서(...) 의미 없는 결과나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 낙천 현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국민당은 기대와는 달리 지역구전국구를 1석씩 건지는 등 대패하였다. 반면 자민련을 탈당한 한때 김종필의 가신이었던 김용환의 정당이었던 2010년국민중심연합 "희망의 한국신당"은 살아남는다. 김용환은 화평과 함께 손을 잡았으나 사실상 홀로 나와 홀로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저비용 고효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거물들이 대거 낙마한 민주국민당을 생각하면... 이 당이 정당사적으로 의미가 있다면 캐스팅보더로서의 역할과 최초로 총재제를 폐지하고 (최고위원)제, 즉 집단지도체제의 원형을 도입한 정당이란 정도다.

3.1. "낙천 운동"

'함량 미달 정치인에 대한 낙천·낙선 운동'을 벌인 광범위한 시민단체연합인 '2000년 총선 시민연대'가 처음으로 등장해 힘을 발휘한 선거이기도 하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안티 조선일보"운동으로 대표되는 언론개혁 운동과 "깨끗한 정치"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시기의 산물이지만, 야당(한나라당)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이들을 지원해 선거에서 유리하게 활용하게 했다는 식의 비판이 일었다. 게다가 이들 시민단체가 김종필과 정몽준에게 명예로운 은퇴를 권유한 것도 치명타. 결국 이래저래 DJP 공조는 큰 손상을 입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선관위에 의해서 낙천운동은 불허# 2000년 총선 시민연대 낙선운동 불허되었으나, 선거법 개정으로 낙선 운동이 허가 되면서 낙천 열풍은 4년 뒤인 2004년 17대 총선까지 계속되었다.

4. 초박빙선거

초접전의 본좌급을 보여준 총선이다... 이미 경기도 광주시의 문세표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고, (자세한 것은 광주시 참고.) 이 총선에서 광주시 외에도 몇백표 차로 승부가 갈린 곳이 10여곳이다.

  • 서울 동대문구11표차

    다만 동대문구을은 위장전입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줬다고 판단되어 선거 무효(당선무효와는 다르다.)처리되었다. 양 후보가 모두 위장 전입을 한 것으로 밝혀져 그 숫자차이가 표차보다 많다는 이유였다. 재출마도 가능했었다고 했으나[6], 김영구 당선자는 선거무효로 의원직을 상실했고 재선거에 낙선자 허인회가 재출마했으나 또 낙선하고만다. 그때 치뤄진 재보선에서 당선된 사람이 바로 한나라당의 홍준표다. 결국 17대 총선에서도 또 대결을 펼쳤으나 홍준표가 아슬하게 당선된다. 홍준표도 15대 총선에서 불법선거운동으로 당선무효된적 있었는데

  • 경북 봉화군/울진군 19표차(김광원 vs 김중권[7])
  • 서울 용산구 113표차(설송웅[8] vs 진영)
  • 경남 진해시 115표차(한나라당 vs 무소속)
  • 서울 동작구146표차등등...

위에 거론된 곳 말고도 몇백표차로 당락이 갈린 곳이 자그마치 7곳이나 더 있다. 대표적으로 마포구을의 주천 vs 수관. 황수관 박사가 691표차로 석패했는데, 2013년 시점에서는 두 맞수 모두 고인(...)

19대 총선이 초접전이었다지만 사실은 표차로는 18대에 미치지 못하고, 이 16대 총선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9]

결과는? 용산구, 성북구갑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나라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서울에서만 4곳 ~ 6곳(위의 2곳과 서대문을, 마포구 갑/을, 구로구 갑) 에서 한나라당이 오차범위에서 승리. 한나라당은 처음에 출구조사에서 불리하게 나올 때는 "남북 정상회담 발표가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 라고 반응했지만 결과는 도리어 한나라당에 유리했다. 양당의 의석이 갈린 지역이라고 볼만 하다.

5. 결과

제16대국회의원 선거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민주국민당 국신당 무소속 합계
서울 17 28 0 0 0 0 45
인천 5 6 0 0 0 0 11
경기 18 22 1 0 0 0 41
강원 3 5 0 1 0 0 9
대전 1 2 3 0 0 0 6
충남 0 4 6 0 1 0 11
충북 3 2 2 0 0 0 7
광주 0 5 0 0 0 1 6
전남 0 9 0 0 0 1 10
전북 0 11 0 0 0 2 13
부산 17 0 0 0 0 0 17
대구 11 0 0 0 0 0 11
울산 4 0 0 0 0 1 5
경남 16 0 2 0 0 0 16
경북 16 0 0 0 0 0 16
제주 1 2 0 0 0 0 3
지역구 112 96 12 1 1 5 243
비례 21 19 5 1 0 - 54
총합 133 115 17 2 1 5 273

비례대표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인
한나라당 7,365,359 39.0% 21
새천년민주당 6,780,625 35.9% 19
자유민주연합 1,859,331 9.8% 5
민주국민당 695,423 3.7% 1
한국신당 77,498 0.4% 0
공화당 3,950 0.02% 0
민주노동당 223,261 1.2% 0
청년진보당 125,082 0.7% 0
무소속 1,774,221 1.08% 0
총합 18,904,740 100.0% 46

5.1. 또 다시 실패한 출구조사

이 선거에서 처음으로 출구조사를 했는데[10](4년 전 총선에서도 예측조사를 했지만 이는 출구조사가 아닌 전화조사로 예측한거였다.) 출구조사에서는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될 걸로 예상되었지만 개표 결과는 반대로 한나라당의 원내 1당이 되어 1996년 총선에 이어 방송국에서 또 다시 사과방송을 해야했다.[11]

5.2. 50:50 국회

16대 국회는 한나라당이 1당을 차지했으나 새천년민주당이 의석을 불리면서 어느 당도 과반(137석)을 점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호남지역 무소속을 더하면 민주당은 119석에, 반 한나라당계 보수가 20석을 구성했으니 그야말로 절묘했다. 결과가 이렇게 되자 캐스팅보더 역할을 해야할 정당이 없었기에 여야의 협의정치로 대부분의 법안이 처리되었다.

DJP의 파국, 즉 충남 진검 승부가 자민련이 큰 타격을 입으며 끝났지만, 민주당은 찬밥 더운 밥을 가릴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두 당은 다시 손을 잡고, 새천년민주당에서 자민련에 의원을 '꿔주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진다. 즉, 민주당 의원 중 3명(송석찬, 배기선, 송영진)을 자민련으로 이적시켜 교섭단체 조건인 의원수 20명을 맞추도록 한 것. 그런데 또 자민련 의원 한명이 이런 꿔주기에 반발해 탈당[12]하자 안돼!/돼! 한명을 더 꿔주었다!(...) 같은 일이 8년 뒤 자유선진당에서 일어나는데... "꿔줬다"는 표현이 참으로 정확하게도, 얼마 못가 양당의 공조가 붕괴된 뒤 이들 네명의 의원은 민주당으로 복당한다. 어찌되었든 당분간 여당은 새천년 민주당 + 간신히 교섭단체 만든 자민련 + 사실상 와해된 민주국민당(한승수) + 정몽준 등으로 아슬아슬한 과반을 만들고 국회의장 선출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재보궐 선거에서 족족 이기고, 일부 여당의원[13]과 충남권의 김용환, 강창희가 한나라당으로 이적하면서 16대 국회 2기(2002년 6월부터)가 시작되는 김대중 대통령 말기에는 한나라당이 140석이 넘는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 속에 전반기 국회는 국민신당 출신의 이만섭 새천년민주당(여당) 의원[14]이, 후반기 국회는 야당 한나라당의 박관용 의원이 의장직을 맡았다.

16대 국회는 마지막 해인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따른 정치적 갈등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국회이기도 했다.

5.3. 국회의원 목록

6.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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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역구 227명, 전국구 46명
  • [2] 이때 노무현후보가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종로 대신 부산에서 출마하고 낙선한다. 후에 그가 대통령이 되는 밑거름이 된다.
  • [3] 한나라 3, 민주 2, 자민련 2.
  • [4] 기존의 100여석에서 의석수는 늘렸지만, 과반은커녕 제 1당도 달성하지 못한터라 선방이라는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 [5] 일부 지역은 자민련을 달고 나온 군소후보나 민주노동당 후보를 앞서기도 했다.
  • [6] 당선무효면 아예 재출마가 불가능하다.
  • [7] 원래는 5공 유력인사였으나 김대중의 사면으로 국민의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다.이 당시에는 새천년민주당으로 출마했다.
  • [8] 초대 민선 용산구청장이자 역사강사 설민석의 아버지. 4.19 혁명 당시 중동고등학생으로 이승만을 만난 시민(학생) 대표 5인 중 한명. 새천년민주당 소속. 후단협 출신이 되나 열린우리당에 갔다가 불출마를 했다. 18대 대선에서는 새누리당에 입당해 박근혜를 지지했다.
  • [9] 참고로 18대 총선 최소 표차가 성남시 수정구의 129표차이다. 그리고 초접전이라던 19대 총선의 최소 표차가 고양시 덕양구갑의 170표차에 불과한 걸 생각해보자.
  • [10] 사실 지난 총선에서 MBC에서 자체적으로 출구조사를 하긴 했지만 타 방송사의 제지로 실패(...)
  • [11] 사실 각 지역구마다 출구조사를 하면 표본이 부족해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아예 19대 총선의 경우 전국 단위로 출구조사 했는데도 망했어요...
  • [12] 나중에 국회의장이 되는 강창희 의원이다.
  • [13] 강성구, 김윤식, 원유철, 이근진, 전용학, 김원길, 박상규
  • [14] 14대에서 한 번 국회의장을 맡은 적이 있다. 이 때는 민주자유당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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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11 23: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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