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조니 캐쉬

last modified: 2015-02-24 23:53:59 by Contributors

풋풋했던 그의 얼굴에 주름이 늘었다. 하지만 그 깊이만큼 그는 전설이 되었다.

John R. "Johnny" Cash.
1932.02.26~2003.09.12

미국싱어송라이터, 그리고 America’s Foremost Singing Storyteller[1]

컨트리 음악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아티스트다. 장르적 특성 때문인지 컨트리 가수들이 대부분 그 내부에서 활동하고 인기를 얻는 반면, 그는 끊임없이 외부 세계와 소통하며 음악적 저변을 넓혀왔다. 2004년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100 Greatest Artists'에서 31위에 올랐는데, 컨트리 가수로는 유일하다.

별명은 Man in Black.[2]
모든 공연을 시작하기 전 "Hello, I'm Johnny Cash"라는 인사말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3]

Contents

1. 특징
2. 음악
3. 결혼 생활
4. 조니 캐쉬 프로젝트
5. 여담

1. 특징

그는 컨트리 음악계에서 일종의 반항아(outlaw)로 분류되었다. 특유의 중저음과 독특하고 진보적인 사운드도 기존의 컨트리와 확연히 다른 점이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성향이 여타 컨트리 가수들과는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수감자, 하층민, 노동자, 북미 원주민 등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노래했으며, 심지어 죽기 전 이라크 침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4] 그의 가치관은 아래에 나온 "Man in Black"의 가사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반복된 약물 복용과 체포도 그의 반항적 이미지에 한몫했으며, 그나마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이 여타 컨트리 가수들과 비슷한 점이다.[5]

2. 음악

데뷔곡인 "Cry, Cry, Cry"부터 "Walk the Line", "Ring of Fire", "Man in Black", "Get Rhythm", "Sunday Morning Coming Down", "A Boy Named Sue", "Understand Your Man", "Don't Take Your Guns to Town", "What Is Truth", "The Ballad of Ira Hayes",[6] "Jackson"[7] 등 수많은 명곡이 있지만, 하나만 꼽자면 단연 "Folsom Prison Blues".[8]


이 곡은 그가 서독에서 공군으로 복무하던 시절 다큐멘터리 영화 <Inside the Walls of Folsom Prison>을 보고 만든 곡이다. 1956년 처음 발표되고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으나, 더욱 크게 성공한 것은 그로부터 십여 년 후 1968년 라이브 앨범인 <At Folsom Prison>을 발매하면서다. 앨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앨범은 같은 해 1월 13일 폴섬 감옥[9]공연을 녹음한 것이다.[10] "Folsom Prison Blues"은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4주 간 1위를 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I hear the train a comin'
It's rolling round the bend
And I ain't seen the sunshine since I don't know when,
I'm stuck in Folsom prison, and time keeps draggin' on
But that train keeps a rollin' on down to San Antone...
When I was just a baby my mama told me. Son,
Always be a good boy, don't ever play with guns.
But I shot a man in Reno just to watch him die
When I hear that whistle blowing, I hang my head and cry...

I bet there's rich folks eating in a fancy dining car
They're probably drinkin' coffee and smoking big cigars.
Well I know I had it coming, I know I can't be free
But those people keep a movin'
And that's what tortures me...

Well if they freed me from this prison,
If that railroad train was mine
I bet I'd move it on a little farther down the line
Far from Folsom prison, that's where I want to stay
And I'd let that lonesome whistle blow my blues away...


가사가 굉장히 노골적인데, 대표적으로 "I shot a man in Reno/just to watch him die"(난 리노에서 한 남자를 쏘았지/그저 그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라는 구절은 처음 들으면 깜짝 놀랄 내용이다.[11] 이에 대해 그는 "손에 펜을 쥐고 곰곰이 생각해 봤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데 가장 최악의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말이 떠올랐어요"[12]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범죄를 옹호하거나 지지하기 위해 이 곡을 쓰고 감옥에서 공연을 한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시 수감자들이 기본적인 인권도 누리지 못한 채 억압된 생활을 하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더 나아가 하층민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데 보다 심층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그는 수감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A first offender needs to know that somebody cares for him and that he is given a fair shake. The purpose behind prison reform should be to have less crime. The prisoner has to be treated like a human being. If he isn't when he gets out, he won't act like one. (Johnny Cash)

〈At Folsom Prison>은 그의 음악 인생에서는 물론 미국 대중음악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명반이다.[13] 약물 복용으로 잠시 침체기를 겪던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이 건재함을 증명해냈고, 특유의 반항아적 이미지를 굳히게 된다.

또 다른 명곡인 "Man in Black"은 그의 가치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다. 그는 왜 항상 검은 정장을 입는지 소회를 밝히며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설 것을 이 노래를 통해 다짐했다.


Well, you wonder why I always dress in black,
Why you never see bright colors on my back,
And why does my appearance seem to have a somber tone.
Well, there's a reason for the things that I have on.

I wear the black for the poor and the beaten down,
Livin' in the hopeless, hungry side of town,
I wear it for the prisoner who has long paid for his crime,
But is there because he's a victim of the times.

I wear the black for those who never read,
Or listened to the words that Jesus said,
About the road to happiness through love and charity,
Why, you'd think He's talking straight to you and me.

Well, we're doin' mighty fine, I do suppose,
In our streak of lightnin' cars and fancy clothes,
But just so we're reminded of the ones who are held back,
Up front there ought 'a be a Man In Black.

I wear it for the sick and lonely old,
For the reckless ones whose bad trip left them cold,
I wear the black in mournin' for the lives that could have been,
Each week we lose a hundred fine young men.

And, I wear it for the thousands who have died,
Believen' that the Lord was on their side,
I wear it for another hundred thousand who have died,
Believen' that we all were on their side.

Well, there's things that never will be right I know,
And things need changin' everywhere you go,
But 'til we start to make a move to make a few things right,
You'll never see me wear a suit of white.

Ah, I'd love to wear a rainbow every day,
And tell the world that everything's OK,
But I'll try to carry off a little darkness on my back,
'Till things are brighter, I'm the Man In Black.


1985년 그는 리스 크리스토퍼슨, 리 넬슨, 일런 제닝스과 함께 하이웨이맨(The Highwaymen)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는데, 컨트리 끝판왕 네 명이 모인 말 그대로 슈퍼그룹이었다. 침체기를 겪고 있던 그는 이 작업을 통해 다시금 재도약했다.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이 만료된 이후에는 릭 루빈이 이끄는 아메리칸 레코딩스(American Recordings)와 계약했다. 그리고 1994년 <American Recordings>를 시작으로 'American' 시리즈를 연이어 내놓았다.

2002년에 발표한 <American IV: The Man Comes Around>[14]에서 나인 인치 네일스의 1994년 곡 "Hurt"를 커버했는데, 그의 덤덤한 목소리와 그의 일생을 반추한 뮤직비디오가 큰 주목을 받았다. 마치 가왕 조용필이 2013년 앨범 <Hello>로 한국 가요계에 파장을 일으켰듯이 세대를 뛰어넘는 음악적 깊이로 자신의 건재함을 널리 알린 것이다. 원곡자인 트렌트 레즈너는 물론 평단과 대중 모두 극찬했고, 2011년 타임지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뮤직비디오 30편 중 하나로, 2012년 영국 음악 잡지 NME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직비디오로 꼽았다. 그리고 그는 2003년 MTV VMA의 '올해의 비디오'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VMA에 이름을 올린 최고령 아티스트'라는 역사를 새로 썼고, 그 중 촬영상을 거머쥐었다.[15] 나이 많은, 그것도 컨트리 가수가 젊은이들의 시상식인 VMA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Cry Me a River"로 그를 제치고 '최우수 남성 비디오'를 수상한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수상소감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This is a travesty! I demand a recount. My grandfather raised me on Johnny Cash, and I think he deserves this more than any of us in here tonight. (Justin Timberlake)


3. 결혼 생활

그가 두 번째 아내인 준 카터[16]를 처음 본 것은 1950년이었다. 수학여행으로 테네시쉬빌을 갔는데, 컨트리 음악의 성지그랜드 올 오프리에서 공연 중이던 그녀를 얼빠진 듯 바라보았다고 한다.[17] 그리고 데뷔 후 1955년 그가 오프리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준과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된다. 이때 둘은 각자 막 결혼한 상태[18]였는데, 그는 "Hello, I'm Johnny Cash and I'm going to marry you someday"라고 자기소개를 했다고 한다.

"Really?"
"Yeah."
"Well, good. I can't wait."

둘은 이후 같이 투어를 다니게 되고, 13년이 흐른 1968년[19]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에서 공연을 하던 중 조니가 준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결혼. 로맨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더군다나 준이 컨트리 음악계의 귀족 가문이라 할 수 있는 카터 가의 딸이었기 때문에 둘의 결혼은 세간의 화제를 불러왔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컨트리 음악계의 란젤리나 커플인 셈. 불륜 비스무리한 것도 비슷하네... 둘은 35년을 인생의 동반자로 지냈고, 아들 존 카터 캐쉬를 낳았다.


둘의 대표적인 듀엣곡인 "Jackson".


2003년 5월 15일 준이 심장 수술 경과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머지 않아 4개월 후 9월 12일에 그 역시 당뇨 합병증으로 그녀 곁으로 갔다.[20] 2003년 6월 5일 마지막 콘서트에서 그는 "Ring of Fire"를 부르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The spirit of June Carter overshadows me tonight with the love she had for me and the love I have for her. We connect somewhere between here and heaven. She came down for a short visit, I guess, from heaven to visit with me tonight to give me courage and inspiration like she always has. (Cash)

2005년 개봉한 호아킨 피닉스, 즈 위더스푼 주연의 영화 <앙코르>(Walk the Line)가 둘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21]

이 정도 싱크로율이면 훌륭하다!

4. 조니 캐쉬 프로젝트


"검은 옷의 사나이의 살아있는 초상화"(Living Portrait of the Man in Black)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구글 크롬이 그의 유작인 <American VI: Ain't No Grave>[22]의 수록곡 "Ain't No Grave"[23]뮤직비디오를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드는 디어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인 크리스 밀크와 디지털 미디어 예술가인 아론 코블린이 주축이 되었고, 둘이 만든 영상 그림판을 기초로 누구나 온라인 계정을 만들고 자신만의 프레임을 제작해 영상에 집어넣을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점수를 매길 수록 매 순간 새로운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진다.

The Johnny Cash Project is a visual testament to how the Man in Black lives on – not just through his vast musical legacy, but in the hearts and minds of all of us around the world he has touched with his talent, his passion, and his indomitable spirit. It is this spirit that is the lifeblood of The Johnny Cash Project. Thank you for helping Johnny’s spirit soar once more. God bless. (Chris Milk)

아래는 프로젝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2010년 9월 30일까지의 결과물로 탄생한 뮤직비디오다. 최신 버젼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여담

어렸을 때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감명을 받아 '괴물'을 "나쁜 부분들을 모아 만들었지만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made up of bad parts but trying to do good) 캐릭터로 생각했다고 한다.[24]

첫 싱글이었던 "Cry, Cry, Cry"를 녹음한 후 그가 받은 돈은 2.41달러.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의 독특한 복장 때문에 동료 가수들은 그를 장의사라고 놀렸다.

1965년 그랜드 올 오프리에서 출연 정지를 당한다. 이유는 마이크 스탠드로 바닥에 있던 조명을 깨버려서였다. 역시 상남자다 물론 이후 해지된다.[25]

1969년부터 71년까지 ABC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조니 캐쉬 쇼>(The Johnny Cash Show)를 진행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컨트리 음악이 미국 전역에서 사랑 받는 장르는 아니기 때문에[26] 컨트리 가수가 공중파에서 단독쇼를 진행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가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때 그는 다양한 뮤지션들을 초대해 협연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밥 딜런, 이 찰스, 스티비 원더, 에릭 클랩튼, 루이 암스트롱, 조니 미첼, CCR, 다이아몬드, 해거드, 리스 크리스토퍼슨.

평생 좋은 음악적 동료였던 밥 딜런과 함께

감옥에 간 적은 없지만 모든 사건을 다 합치면 총 7일 간 구류당했다.

1972년 백악관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을 만났다. 수감환경 개선을 의논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는데, 분위기도 풀 겸 닉슨은 그에게 간단하게 몇 곡 불러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때 요청한 곡이 멀 해거드의 "Okie from Muskogee",[27] 가이 드레이크의 "Welfare Cadillac",[28] 그리고 그의 히트곡 "A Boy Named Sue". 앞의 두 곡은 백인 보수주의자들이 무척 좋아하는 곡이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이 요청을 거절하고 자신의 곡 중 가장 진보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What Is Truth", "Man in Black", "The Ballad of Ira Hayes"를 차례로 불렀다. 역시 그다운 배짱. 원래 짜여진 대본과 달리 기자들 앞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돌발상황에 닉슨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One thing I've learned about Johnny Cash, is that you don't tell him what to sing"이라고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대인배 닉슨? 하지만 이와 별개로 그는 여러 번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닉슨을 꼽았다. 병 주고 약 주기

1977년 내쉬빌 작곡가 명예의 전당, 1980년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 1992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각각 헌액되었다.[29]

1996년 네디 센터 아너스를 받았다. 헌정 공연으로 리스 크리스토퍼슨이 "Sunday Morning Coming Down", 일 로벳이 "Folsom Prison Blues", 밀루 해리스가 "Ring of Fire", 그의 딸인 로잔느 캐쉬가 "Walk the Line"을 불렀고, 마지막에 다함께 부른 곡은 "I'll Fly Away". 영상 속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클린턴과 영부인 힐러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1999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30]

----
  • [1] 매니저였던 사울 홀리프가 그를 설명하며 만든 말이다.
  • [2] 그는 항상 검은 정장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대부분의 남성 컨트리 가수들이 카우보이 모자에 청바지, 카우보이 부츠를 입고 신었던 모습과는 상반되는 옷차림이었다. 그는 노래 "Man in Black"을 통해 검은 정장을 입는 '숭고한' 이유를 밝혔는데, 사실 투어를 오래 하면서도 깔끔해 보이는 데 검은 정장이 가장 유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첫 공식적인 공연에서 검은 정장을 입고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일종의 부적으로도 생각했다고 한다.
  • [3] 모든 무대를 시작하기 전 그는 이 한 마디만 했고 곧바로 "Folsom Prison Blues"를 연주했다. 1970년에 같은 제목의 앨범도 냈다.
  • [4]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공화당원인지 민주당원인지 확언하기는 어렵다. 참고로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대통령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인데,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앨 고어를 지지한 적도 있다.
  • [5] 참고로 그는 가스펠 앨범을 여러 개 냈다.
  • [6] 북미 원주민계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인 아이라 헤이즈의 비극적인 죽음을 노래한 곡이다. 조니 캐쉬는 미국 사회에서 철저히 무시당하는 북미 원주민들의 권리를 위해 다방면에서 앞장섰는데, 백인 위주의 보수적인 남부 사회에서는 이때문에 이 곡을 보이콧 하기도 했다. 참고로 아이라 헤이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에 나오는 세 인물 중 한 명이다.
  • [7] 아내인 준 카터와의 듀엣곡
  • [8] 그의 첫 그래미 수상곡이기도 하다.
  • [9] 캘리포니아 주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감옥이다.
  • [10] 당시 그는 오전 9시 40분, 오후 12시 40분에 공연을 했는데, 앨범에 수록된 것은 12시 40분 공연이다.
  • [11] 실황 앨범인 만큼 중간중간 환호성이 들리는데, 이 구절에서 나오는 환호성은 녹음 후에 추가된 것이라 한다. 수감자들이 간수들의 보복이 두려워 범죄 행위에 관련된 가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내지 못했기 때문.
  • [12] "I sat with my pen in my hand, trying to think up the worst reason a person could have for killing another person, and that's what came to mind."
  • [13] 2012년 롤링 스톤지에서 선정한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88위에 올랐다. 2004년에는 미 의회도서관이 선정한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영구 등재되었다.
  • [14] 그가 죽기 전 나온 마지막 정규 앨범.
  • [15] 이 외에 2004년 그래미에서도 뮤직비디오상을, 2003년 CMA에선 '올해의 싱글'을 수상했다.
  • [16] 준에게는 조니와의 결혼이 세 번째.
  • [17] 카터 패밀리(The Carter Family)는 컨트리 음악 초기의 대표적인 밴드로 준은 열 살 때부터 엄마인 메이벨을 따라다니며 공연했다. 조니는 어렸을 적부터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 [18] 당시 조니는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이 넷, 준은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이 하나 있었다.
  • [19] 그동안 준은 첫 번째 이혼 후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딸도 낳았지만 다시 이혼했다.
  • [20] 준은 그가 자신이 죽은 후에도 계속 음악을 하길 바랐고, 실제로 그는 마지막 4개월 동안 60여 곡을 녹음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정규 앨범이 여러 번 나온 것은 모두 준 덕분.
  • [21] 이듬해 리즈 위더스푼은 이 영화로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 [22] 그의 78번째 생일인 2010년 2월 23일에 발매되었다.
  • [23] "Gonna Hold This Body Down"이라고도 알려진 이 곡은 미국의 오래된 가스펠 노래다.
  • [24]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범죄자를 가엾게 여긴 그의 사고방식이 여기에서 기인한 것인가 아닌가 싶다.
  • [25] 또 다른 컨트리 음악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행크 윌리엄스도 1952년 알코올 중독과 계속되는 리허설 불참으로 그랜드 올 오프리에서 출연 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다만 그는 이듬해 1월 1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복귀하지 못했다.
  • [26] 컨트리 음악은 인종, 지역에 많이 영향을 받는 장르다. 일반적으로 남부 백인 중산층이 좋아하는 음악. 다만 연령대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폭넓은 편이다.
  • [27] 히피족과 반전 운동가들을 비판한 노래.
  • [28] 과도한 복지 제도를 비판한 노래.
  • [29] 이 세 곳에 헌액된 컨트리 가수는 그를 포함해 행크 윌리엄스, 미 로저스, 윌스, 먼로, 이렇게 총 다섯 명밖에 없다. 또한 다른 네 명이 "초창기에 영향을 주었다"(early influence)는 명목으로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반면, 그는 정식적으로 락앤롤에 대한 업적을 인정 받아 헌액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 [30] 같은 해 공동 수상자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 티스 레딩, 모키 로빈슨, 토메.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2-24 23:53:59
Processing time 0.1976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