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조선공산당

last modified: 2014-05-18 20:12:24 by Contributors

朝鮮共産黨. 1925년 4월 17일 창건된 한국공산주의 정당.
당을 조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는 박헌영, 단야, 원근이 있다. 이 세 사람은 삼인당(三人黨), 트로이카라고 불리게 된다.

일제강점기조선총독부로부터 '치안유지법'[1]으로 수 차례 탄압을 받아 해체와 재창당을 여러번 겪었다. 이 시기를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1차 조선공산당, 강달영을 중심으로 한 2차 조선공산당, 김철수를 중심으로 한 3차 조선공산당, 차금봉을 중심으로 한 4차 조선공산당으로 나눈다. 하지만 내부분열이 만만치 않았으며, 박헌영파와 반박헌영파를 비롯하여 여러 분파주의로 나뉘었기에(엠엘파, 화요파, 서울파, 서상파 등) 이들의 대립은 생각 이상으로 심했다. 이러한 공산당의 파벌 대립은 후에 김일성 에게 종파주의 숙청이라는 명분을 얹어주고 독재를 강화하는 빌미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결국 제 4차 조선공산당 검거가 벌어진 1928년 해산되었다. 4차 공산당 검거 사건 이후에는 사실상 중앙위원이 궤멸되었으며, 코민테른의 권고에 따라 당을 재건하려는 공식적인 노력은 중단되었다. 하지만 코민테른을 배경으로 한 권영태 중심의 국제파와 이재유와 김삼룡, 이현상의 2차 트로이카와 함흥의 이주하를 중심으로 한 국내파가 다시 갈렸으며, 이재유가 검거된 이후에는 1940년대에는 체포를 면한 관술, 만기출소한 이현상, 국내로 귀환한 박헌영을 주축으로 경성콤그룹을 결성.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하기도 했었다.

해방 이후, 1945년 8월 15일과 8월 20일 각각 장안파와 재건파가 출범하였는데, 1945년에 박헌영이 장안파를 해체시키고 8월 24일 최종통합되어 '조선공산당'이라는 당명으로 재건되었다가 1946년 6월에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미군정에서 대대적인 공산당 간부 체포작업에 들어가자 조선공산당은 더욱 급진적 성향으로 흘러가게 된다.[2] 1946년 11월 23일 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과 합당하여 남조선로동당이 되었으므로 남로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이쪽 관련 인물로는 박헌영-주세죽 부부, 조봉암-김조이 부부, 단야-고명자 부부, 허정숙[3]-원근 부부가 있다.

고명자, 주세죽, 허정숙은 경성에서 신여성이자 사회주의 계열 여성운동가로 활약하여 "여성 트로이카"라고 불리었는데, 주로 여성우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
  • [1]국가보안법의 원형이다.
  • [2] 당시 조선공산당은 '대중적인 투쟁'을 결의하면서 노동자,농민들을 선조하여 총파업에 맞서 대응했었다.
  • [3] 민족변호사 허헌의 딸이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4-05-18 20:12:24
Processing time 0.0813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