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조선군

last modified: 2014-10-11 23:53:28 by Contributors

조선군이라 하면 두 가지 군대를 칭한다.

북한군을 보고 싶다면 조선인민군을 참고.

Contents

1. 조선군대
1.1. 활약
1.1.1. 초기
1.1.2. 중기
1.1.3. 말기
1.2. 군사 과학기술
1.3. 주요 장비
1.4. 유명한 군인
1.5. 유명한 전쟁
1.6. 대중 매체
1.7. 기타
1.8. 참조항목
2. 조선 주둔 일본군

1. 조선군대

z2_cp03220349000-1.jpg
[JPG image (15.06 KB)]

조선군의 상징인 좌독기.

말 그대로 조선의 군대. 대한제국이 조선을 이으면서 대한제국군으로 이어졌으나,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 하면서 대한제국군은 해체되었다.

1.1. 활약

1.1.1. 초기

조선 건국 초기. 중기나 후기에 비해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며 지금의 국경선을 그려놓는데 일조했다

조선 초기의 군사적 활동은 고려 시대의 연장선으로 북방의 만주족(여진)에 대한 방비와 회복으로 요약된다. 지금의 압록강 두만강 국경을 확립한 이후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비 일변도의 조선으로 바뀌게 되지만.

조선 초기의 장비나 군대는 마찬가지로 고려 시대의 연장선으로 기본적인 보병 기병 수병 조합에서 근접전이 강조되는 형채였다. 어디까지나 후기에 비해서지만, 이때는 아무래도 조선도 영역을 확장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한 예로 조선 중기에는 근접전을 담당할 팽배수와 중기병[1]전력도 충분히 갖추어진 나름 강군이었다. 하지만 건국 아버지라 할만한 태조-태종-세종 3대 왕이 워낙 나라 관리를 잘 해놔서(...) 200여년간 대규모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를 거친 덕분에 북방[2]을 제외하고는 군사에 소홀해지게 된다.

1.1.2. 중기

평화를 누렸던 남부 지방을 시작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 되면서 각지에서 명장이나 검객, 덤으로 졸장들도 나온 시대이다(...) 하지만 군사와 경제 쌍방으로 혼란스러워진 상황에서 군사는 보다 실용적으로 개편되었으며 명나라는 청으로 바뀌어 다소 험악해지게 된다.

임란 이후 총포류의 위력을 깨닫고 총포류를 보급한다. 김충선같은 항왜들의 도움으로 조총의 주력무기화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후 청의 침입과 명나라 파병으로 여러 번의 실전 경험을 가질 수 있었으나, 병자호란 당시 쌍령 전투로 대표되는 운영의 미숙함과 불운으로 결국 패배한다. 어찌되었든 임진왜란 이후 중국으로 부터 불랑기포와 같은 더욱 발전된 화기가 도입되었으며 이후 효종때에 이르러선 숙달된 조총병들을 청나라의 요청에 따라 선 정벌에 파견하기도하였으며 이쯔음 네덜란드에서 표류해온 박연하멜등 유럽인들에 의해 더욱 발달된 화기를 제한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대개 부족한 공업능력과 자원[* 무엇보다 조선은 구리와 화약을 제조하는데 중요한 염초의 자체 생산이 매우 어려워 항상 이것들을 중국과 일본을 통해 수입해왔다. 염초는 그나마 초전법등으로 제조가능하나 유황은 수입에 의존하다 간신히 진산 근방에 광산을 찾은 이후 광산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겨우 자급자족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 숙종때다. 이런 탓에 발전이 유럽에 비해 매우 뒤쳐졌던 것은 분명하다.

조선 전기의 무술도 이쯔음 개편되는데 중국, 일본의 것을 받아들이고 개량하여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무예도보통지를 제외한 다른 무예들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어찌되었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효종때를 지나며 조선의 방위체계는 정조때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쌓아온 방위체계가 정조 사후 수십년 만에 철저하게 붕괴되는 이유가 있었으니...

`

1.1.3. 말기

세도정치와 매관매직 등으로 군도 부패의 온상이 된다. 군 지휘관들이 다 정권의 누군가와 커넥션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사병화 되었고, 가뜩이나 군사에 신경을 쓰지 않던 조선군의 군사력은 더더욱 약화. 큰 변화로는 러시아를 시작으로 서구열강의 침입이 있다. 중기의 군사 개혁이 있긴 했으나 더 많은 전쟁과 교역으로 성장한 서구 열강이나 특히 일본은 조선보다 발전한 군사 장비로 조선을 압도하게 된다.

이는 강화도에서 발생한 서구열강과 일본에 의해 발생한 사건들로 병인양요신미양요의 경우 둘다 프랑스군과 미국군을 후퇴하게 했으나 조선군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일본이 일으킨 운요호 사건의 경우 그대로 격퇴하기는 커녕 일본의 요구에 따라 개항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조선도 중기 이후로 천보총이나 방탄복 같은 장비를 도입하고 있었어나 무기 교역이나 군사 개편은 없었던 탓에, 그리고 무능하고 부패한 세도정치로 인해서 나라 꼴도 말이 아니어서 결국 일본에 의해 유린당하기 시작한다. 다만 개항 후 군개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신식군인 별기군과 구식군인과 엄청난 차별로 임오군란이 일어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주변의 여러 열강등이 개입하고 정권이 친중, 친일, 친러 등으로 널뛰기를 하면서 침입한 외국 세력이 군권을 장악해 버리고 편제마저 그때그때 바뀌는 등 간섭으로 인해 제대로 군제 개혁이 추진될 수 없었다. 개혁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갑오개혁때가 군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적기일 수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갑오개혁은 조선이 시도하려던 자주적인 개혁을 일본이 막고 오로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을 강요한 개혁이었으므로 일본의 방해로 군제개혁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나마 갑오개혁 중 그런대로 서구화된 군대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위대련대가 설치되어 근대식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으나 그들을 지휘하는 정부 및 군지휘관부터 매국노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국가 방위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나라를 지키기는 커녕 오히려 훈련대의 경우 친일파 대대장들이 일본에 빌붙어 을미사변때 일본군과 한패가 되어 자신들의 지휘관인 훈련대장 홍계훈[3]이 지키고 있는 궁궐을 습격하기도 했다. 거기서 홍계훈은 자기 부하들을 막으려다 죽고 친일파 매국노의 지휘하에 훈련대는 궁궐을 지키던 아군 부대인 시위대를 공격해 와해시키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는 등 외세 개입에 의한 난맥상이 노출되고 있었다.

인터넷 밀덕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문제점 이전에, 이미 근본적으로 지휘부부터가 철저히 썩어있었던 것이다. 예산이 부족하느니, 무장이 부실하다느니 하는 것은 사실상 부차적인 문제였던 것. 실로 우리가 뼈저리게 되새겨야 할 역사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대한제국으로 바뀌면서도 이 문제점은 그대로 겪게 된다. 자세한 것은 대한제국군을 참고할 것

1.2. 군사 과학기술

대규모 전투로 나라가 혼란했던 조선 초기의 북방 영토 개척 시기, 왜구 격퇴 시기 및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기술적인 발전이 있었다. 주로 중국에서 들여온 화포를 개량하는 방식으로 전쟁 중 발전하였으나 평화기에는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계속 그자리를 머물렀다는 한계도 있다.

신기전(神機箭)은 1448년(세종 30년) 만들어진 최초의 다연장 로켓 개념의 무기이다.[4] 개발에만 그치지 않고 신기전을 실전배치 및 운용하였다. 이 시기에 조선은 일부 독자적인 과학적 기술의 발달이 있었으며 로켓 형식의 무기를 운용할 줄 알았다. 신기전을 발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화차는 신기전기(神機箭機)로 불렸고 지금도 설계도가 남아 있다.

신기전은 고려시대 최무선에 의해 발명된 로켓병기인 주화(走火)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병기도설〉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 함께 비장의 무기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기전은 화약의 사용량이 너무 크고 명중률이 떨어져 실효성은 떨어졌다고 한다. 신기전은 크기와 형태에 따라 대신기전(大神機箭), 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 중신기전(中神機箭), 소신기전(小神機箭)으로 나뉜다.

대신기전은 길이 5.6m, 사거리 2km, 최대 3km. 공격용 발화통을 장착한 무기이다. 1448년 세종 때 만들어졌다고 하며 90개가 제조되어 의주성에서 사용되었다. 화약은 약 3kg으로 조총 1000회 발사 분량이다. 목표 지점에 다다르면 폭발물이 자동으로 터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번에 1발씩만 발사할 수 있다.

산화 신기전은 길이5.3m. 사거리 2.4km, 최대 3.4km. 공격용 발화통을 장착한 무기로 대신기전보다 길이만 짧은 것뿐이지 사거리나 폭파범위는 다르지 않다. 다만 탄두에 철편(쇠파편 조각)이 내장 되어 있어 살상능력이 더욱 강력해진 무기이다.세계 최초의 2단 로켓이다.1단이 다 소모되면 지화가 점화되어 600미터를 더 날아갈 수 있다. 한번에 1발씩만 발사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비격진천뢰라는 폭발시간을 조절하여 내부의 철조각으로 주위에 피해를 주는 포탄도 개발하였다. 주로 인마 살상용으로 사용되었으며 바위에도 파편이 박힐 정도로 강력한 성능이라고 한다.

1.6. 대중 매체

임진록 2에서는 당연히 등장한다. 주인공 세력 답게 어느 하나 딱히 튀는건 없는 그냥저냥한 무난한 진영. 자세한 설명은 임진록 2/조선 유닛 항목 참고.

1.7. 기타

대체적으로 어느 국가에서나, 친위 목적으로 강한 전투력을 유지하는 중앙군의 군인과 장수들이 병영에 붙어있지 않으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몰래 땡땡이를 치거나 아무렇게나 나갔다 오는 등의 폐단이 있었고, 점호[5]도 대충. 근무도 몇 푼 쥐어주고 대리를 세우는 등 중앙군만 해도 이 정도인데.. 삶이 하루하루가 전쟁인 함경도 토병과 남해 수군 말고 전체적으로 군기에 문제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조선 주둔 일본군

항목참조.
----
  • [1] 사실 이런 구체적인 병종의 구분보다는 실전 경험이며 훈련 시스템이 해이해지면서 실제로 찢고 죽이는 근접 전투기술이나 장비의 질이 떨어진 것이다. 그대신 화기류는 발달했으니...
  • [2] 북방 지역, 특히 동북면 지역에서는 자신들의 무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
  • [3] 동학농민운동때 전라도 초토사였던 그 홍계훈 맞다. 인터넷 사전 등에는 시위대장으로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보이는데 오류이다.
  • [4] 다연장이 아닌 일반 로켓 개념의 무기는 1232년 중국의 비화창(飛火槍)이 최초이다.
  • [5] 여기서 준비가 철저한 병사가 혼난다. 왜? 혼자 너무 열심히하면 주변이 게을러 보이니까...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4-10-11 23:53:28
Processing time 0.0937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