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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

Contents

1. 개요
2. 극심한 식량난
3. 불편한 징병제
4. 병영부조리
5. 빈곤함
6. 조직문제
6.1. 정치장교의 존재
6.2. 호위사령부
7. 건설 부대의 존재
8. 북한군 사건 사고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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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겠지만 군인 맞다. 농부나 죄수나 수용소 수감자들이 아닌 엄연한 군인들이다!

병졸: 젠장 내가 여기 농사 지을라고 왔나? 힘들어 죽겄다. 배고파 죽겄다. 굶어 죽겄다.

병졸: 염소 동무! 날레날레 오라우! 안그러면 아오지라요!
염소: 이보시오. 사람 동무, 내레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상관없시요.

분명 상위항목에는 멋지게 열병식을 하는 사진이 실려 있지만, 조선인민군의 현실은 그야말로 시궁창이다. 말이 좋아 군대지, 탄약이 모자라 사격훈련을 소리로모의로 하는 것은 물론이오탕탕!푱푱, 보급이 모자라 식량조차 잘 배급되지 않는 총체적 난국이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군대에만 모든 예산을 몰빵했는데도 이모양이라는 것에서 북한의 안습한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북한의 경제 사정이 안 좋아서 그런거도 있지만, 진짜는 정치가 부정부패의 절정을 달리고 있고, 체제선전, 우상화에만 거의 국가예산의 반 이상을 꿇어넣은 것도 한 몫한다.

물론 이들도 군대는 군대이고,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들은 질만 낮지 충분히 사람을 살상할 수 있으며(배가 고픈 건 군인이지 그들이 든 무기들이 아니니까),하지만 총알이 고프겠지 그들의 존재 자체가 전쟁의 위협이 되고 있는건 맞다. 따라서 지나치게 강대국 보듯 두려워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치게 얕잡아보고 방심해서도 안된다.[1] 조선인민군 항목과 한국군 vs 북한군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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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8일에 개최된 '조국해방전쟁 정신적 승전(…) 60돌 경축 열병식' 연습 도중 기절해서 실려가는 북한 육군 병사로 해당 사진은 외신 기자가 찍은 사진.

사실 열병식이나 사열식 등의 행사에서 개인의 건강, 긴장도, 날씨에 따라 전장병들이 쓰러지는 경우는 쫄쫄 굶는 북한 말고도 건장한 남자만 있는 외국 의장대나 근위대도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북한군이 열병식 도중 기절하는 것은 요덕 수용소까지 각오해야 한다. 전제왕정 국가의 폐단 그나마 열병식 연습 도중에 쓰러졌기에 망정이지 열병식 도중에 김정은이 보는 앞에서 쓰러졌으면(…) 다만 아오지까진 아니더라도 해당 하전사의 인생은 완전히 꼬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부 나이를 똥구멍으로 쳐먹은 높으신 분들본인들은 군대 가지도 않았으면서 "북한군은 깡따구 넘치는데 우리 젊은이들은 군기가 빠졌어!"라고 일갈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음은 그 깡따구 넘친다는 북한군의 현황이다.


솔직히 말해서 딱 한 달만 물만 주는거나 다름없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워낙에 막장이기 때문에 군인들이 식량을 못받아 쫄쫄 굶고있는 상황은 다반사이며, 심각한 경우는 물조차 배급받기 어렵다고 한다. 북한의 정수시설과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은 진짜 심각할 정도로 열악하며, 어떤도시는 수도시설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2] 그마저도 좋은 수도공급은 평양에서도 극히 일부 이외엔 잘 되지 않는다.거의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이 우물이나 강물을 길어다 마시는게 그 이유다. 도시지역의 수도 공급망과 식수공급시설은 구한말에 세워진 것을 90년 가까이 쓰고 있으며, 그나마 유지되던 것이 고난의 행군으로 인하여 운영 유지가 어려워짐에 따라 시설 노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무엇보다 평양 같은 곳에서의 수도 공급망은 수도 책임자조차도 어디에 배관이 묻혀있는 지 모를 정도로 공급망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다고 할 정도이니... 진짜 답이 없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마실만한 깨끗한 물을 배급받지 못해서 빗물이나 흙탕물이나 모래와 오물, 쓰레기, 배설물로 가득찬 썩은 물조차도 감사하면서 마셔야 할 판국이다. 참고로 썩은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북한군의 모습이 과거 해외 다큐멘터리에 촬영된 적이 있다. 그야말로 안습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쉬리라든지 반공물처럼 위엄 있고 악랄한 군대 모습은 머나먼 옛날 얘기로, 지금은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거니와 윗옷 벗고 농사일하거나 피곤에 지쳐 잠자는 북한군 모습은 가 앙상해서 군인들도 굶주린다는 걸 실감했다고 하니 말 다했지 뭐(...). 한편 경수로 공사 일로 북한에서 1년 넘게 지내다가 온 일을 만화로 그린 오영진[3]의 만화를 보면 외국인들이 여럿 있는 경수로 공사장 근처에 주둔하여 경비를 서는 북한군들도 하루종일 농삿일 하거나 총을 내팽개치고 낮잠자는 당나라군 모습만 봐서 황당했다고 할 정도였다. 외국인들이 보던 말던 태평하게 잠자던 모습에 다른 외국인들도 "쟤들 군대 맞냐?"며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병역비리는 북한에도 만연해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의무복무가 무려 10년인데다가 안 그래도 문제가 많다고 여겨지는 한국군과도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한국군에게 매우 큰 실례일 정도로 근무환경이 시망상태이기 때문에, 북한에 돈 있는 사람들이 자식을 군대보내려고 하는 게 이상한 거다. 이러한 심리를 관원들도 모르는 것이 아닌지라 이를 이용해서 아예 군면제는 얼마 식으로 뇌물 몇 푼만 쥐어주면 쉽게 군면제를 받을 수 있다. "뇌물 몇 푼 쥐어주고 마느냐, 금쪽 같은 내 아들을 사지로 내몰 것인가."는 돈 있는 부모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이를 단순히 남한의 병역비리 문제와 동일선상에서 생각하면 안 된다. 게다가 차라리 면제가 나을 지경의 병역비리도 자행되는데 고관대작이 자기 자식을 뜬금없이 조선인민군 장성에 앉혀버린다. 누군지도 모르겠는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사단장으로 부임해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는 것이 조선인민군이다. 이건 농담따먹기가 아니라 실제로 최룡해가 이 과정을 거쳐서 조선인민군 차수가 되었다. 애시당초 최고 지도자의 고모나 고모부라는 이유로 행정관료가 대장 군복 입고 다니는 동네이니...

2. 극심한 식량난

"국경을 지키는 군인에게조차 식량을 제공할 수 없어서 탈북자나 밀무역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아야 겨우 먹고산다는 지경에 처한 국가로 실로 심각한 곤란에 처해 있다."
W. 리브시(Livesy)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북한군의 화전 경작에 대해 언급하며.

현재 북한의 대표적인 어려움들중 대표적인 4가지를 꼽자면 식량난[4], 전력난[5], 수송난[6], 자재난자재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건 그 유명한 무한성말고도 북한의 국도와 도로가 썩어빠질 정도로 안 좋은걸 알수있다. 등을 볼수 있다.

북한군 특수부대 작전장교 출신의 임천용의 말에 따르면 남한에서는 남한이나 국제사회에서 지원되는 식량이 북한군에 많이 간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오해라면서, 북한의 특수부대도 하루 한 끼 을 먹고 있고 고기배급은 까마득한 옛말이고, 지휘관조차 군수물자를 보급 받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고 증언했다. 이어 "때문에 모자라는 군수물자는 도적질로 충당하고 있는 상황으로 북한군은 군인집단이 아닌 강도, 폭행의 단체."라고 말했다. "집짐승을 함부로 길렀다가는 군인들이 싹 털어버린다."면서 "돼지머리라도 집 주인 몫으로 남겨두는 도적은 예쁜 도둑, 돼지 꼬리도 남겨두지 않으면 지독한 도둑놈이라고 표현하는 말까지 있다."고 전했다.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두려워할 것 같은(?) 특수부대원들도 쫄쫄 굶는다고 한다. 이쯤 되면 답이 없다.

그나마 먹고 살만했던 고난의 행군 이전에도 마른 옥수수 몇알에 감자 하나로 연명하던 인민군들은 매일같이 쫄쫄 굶다시피했고 그럼에도 혹독한 훈련이 이어져서 실성하는 군인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군인들이 살겠다고 뭔 짓을 했다면 사기행각을 벌이고 다녔는데 삽 하나나 통나무 하나를 들고 가정집에 들어가서 밥 한끼와 교환하자고 밥을 얻어먹고는 팔겠다고 가져온 물건은 그냥 은근슬쩍 그냥 들고 가는 것이다. 즉 밥만 먹고 사라진다.(...) 그래서 주민들이 인민군=도적떼로 보는게 당연하다. 그래서 주민들은 답이 없는 것들로 보고 멸시와 조롱에 가득찬 태도를 가지고 보고 있다.

북한군의 보급 상태를 여실히 알려주는 일화는 북한군의 육류 보급 현황이다. 북한군은 1년에 단 4번 식단에 고기가 올라간다.[7] 그런데 2010년대 들어 보급상태가 안습이 되면서 1년은 고사하고 복무기간동안 식단에 고기가 올라가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가 된다. 아예 안나올 때도 있다.[8]

게다가 고기를 설사 준다 해도 그 고기도 우리가 생각하는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가 주로 먹는 가축이 아니라 야생에서 잡은 너구리고라니, 토끼를 준다(...). 참고로 토끼고기를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토끼는 가죽이 정말로 두꺼워서 덩치는 똥개만한데 막상 도축해보면 먹을 고기가 별로 없다. 정말 보급이 좋으면 군에서 직접 키우는 염소 고기나 오리고기가 배급된다고 하는데, 그런 부대는 손을 꼽을 정도다. 또 고기의 질은 장담할수 없다. 폐사된 동물의 고기라도 먹여서 유지를 해야되기 때문이니까. 근데 그마저도 병사들은 굉장히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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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너네는 불고기도 못먹제?
한국군: 오늘 메뉴불고기야? 다른 것 좀 나와라.

그래서 다른 나라, 당장 저기 밑에 남한에서도 일상적인 고기 배식을 가지고 북한에서는 대단히 감격스러워한다. 북한에서 가축이란 가축은 죄다 잡아먹거나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많이 죽어서, 고기 보급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김정은도 군인들에게 고기를 넉넉하게 못먹여 안타깝다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지가 다 쳐먹었으면서

위의 선전은 합성도 뭣도 아닌 북한에서 진짜로 쓰인것으로서, 2011년 7월 13일 희천 2호 발전소 건설현장에 동원된 인민군 군인들이 김정일이 보내준 불고기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저런 포스터를 만들어 붙인것이다. 남한이나 다른나라 입장에서는 거의 코메디나 다름없는 내용의 형편없는 프로파간다지만 북한 인민들은 진심이다. 저런 하찮은 내용으로까지 선전물이 만들어질 정도면 북한이 평소에 얼마나 빈곤하게 먹고사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북한군은 대개 한 가지 식재료를 가지고 여러 반찬을 만든다고 하나 써는 방법만 다를 뿐이지 실상은 전부 . 단지 써는 방법만 다르게 했을 뿐인데 반찬 가짓수가 늘어나다니 오병이어의 기적? 모 웹툰의 어떤 선생님닭가슴살로 비슷한 기적을 행하신다[9] 기본적으로 오래 묵은 중국옥수수를 섞은 옥수수밥을 내는데, 밥주걱을 쓰면 주걱에 밥이 눌려 상대적으로 밥을 많이 퍼내게 된다고 숟가락 두 개로 밥을 먼저 솎아낸다. 이렇게 숟가락으로 집어낸 밥은 얼핏 많아보이나 부피에 비해서 밀도가 적다. 그래서 꾹꾹 누르면 부피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이건 뭐 뻥튀기도 아니고(...)[10]

반찬은 무를 가로로 썬 것 하나와 세로로 썬 것 하나 뿐이다. 보통 소금에 절인 짠지지만 그냥 생무를 썰어낼 때도 있다고 한다(...). 명절일 경우엔 여기에 삼각형으로 깍둑썰기를 하고 고춧가루를 버무린 깍두기가 추가되며 배추오오 명절엔 배추도 주네와 무로 구성된 백김치, 된장을 내는 특식그게 특식이라고?이 나오지만 된장과 백김치마저도 일반 하전사들에겐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군인들이 1년 내내 옥수수밥에 무짠지만 먹는 셈이다![11] 더 골때리는 것은, 그나마 있는 염장배추나 염장무도 소금을 넉넉히 치지 못해 썩어들어간다는 것이다(...). 혹시 소금도 모자란 거냐?[12][13] 가끔씩 랜덤으로 꿀꾸리우스가 아무 부대나 갔을때에는 반찬이 무가 아닌 다른 채소들도 나온다 카더라. 하지만 막장 부대에선 가짜 음식을 내보인다. 안습. 전시행정이냐?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도적질하는 걸 군인들이 자랑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탄했다. 심지어 "알아서 훔쳐먹든지 해라. 군은 먹을 거 지급 안 한다"고 하여 군납창고를 털어버린 경우까지 있다는 증언까지 있다. 먹을 거 훔치는 것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거 싹 다 훔쳐서 암시장에 내다 팔든지 먹을 거랑 바꾼다고 한다. 전기선에서 문틀까지 죄다 뽑아버리니 군납창고가 텅텅 비다 못해 폐허가 될 수준. 게다가 이 짓거리를 하는게 사병뿐만 아니라 군관, 그것도 대대장이 대대 정치군관과 짜고 무기고 등 창고 문짝을 몽땅 뜯어서 팔아먹거나 갱도 포병이 갱도를 보호하는 철문짝을 뜯어내서 팔아먹었다는 북한 내부문건이 공개되었는데(추적60분 2014년 12월 6일 방영분) 북한에서 19년간 군생활을 했던 탈북자가 "이새끼들 미쳤네 대단하네"라고 혀를 찰정도로 돈버는데 물불을 가리지를 않는다! 놀라운 건 걸려도 영창을 며칠 보내고 복귀한다는 점. 높은 분들도 차마 강력하게 처벌하진 못한다고. 더불어 그나마 군인들이 훔쳐갈 먹을 것도 저질 쌀이 대부분이며, 질 좋은 남한산 쌀은 높은 놈들이 처먹는다는 거 다 안다고 할 정도. 결국 하다하다 이젠 군납창고도 싹싹 털려 더 털 게 없으니 자기 부대 지휘관 집까지 털어버릴 때도 있다. 하지만 지휘관들도 남의 집을 턴다. 당장 내 코가 석자다 보니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이러는 거니깐...

90년대 후반, 외국인들이 북한 암시장을 몰래 찍은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을 때, 국내 언론에선 그 동영상에 찍힌 꽃제비들이 길바닥에 떨어진 음식찌꺼기를 주워먹고 있던 것만 거론했지만 화면 속에 정복 차림 북한 군인들도 암시장에서 밥을 사먹던 장면이 찍혔던 바 있다. 위에 나온 갖가지 군납품으로 배를 채우고 있던 군인들 모습도 찍힌 셈이었다. 더군다나 2011년이 되면서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아예 군인이 민가를 습격해서 식량을 탈취해가고 그걸 또다른 군인이 탈취하는 짓거리를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군기가 매우 엉망이라 탈영이 속출하고 있다. 그나마 탈영도 안 하고 도둑질도 안 하는 하전사들이 없지는 않은데, 이런 병사들은 대부분 장마당의 큰 상인이나 외화벌이 일군 등 어느정도 먹고 사는 집안 자식들로 집에서 돈을 보내줘서 버티는 것이다.[14]

실제로 그나마 사정이 좋은 DMZ 민경부대들도 TOD를 통해 살펴보면 보통 하는 일은 농사에 겨울엔 초소에 근무 투입도 안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15] 이 덕에 대북 정보 수집 첩보원들은 정보수집이 아주 쉬워졌다고 한다. 그 이유로 판문점에서만 군인이 있다. 물론 보여주기식이지만...심지어 돈만 주면 핵실험장 정보조차 얻을 수 있다.

북한에서 이를 잘 알고 있는지 면회제한을 일시적으로 풀어주어 자취생 군인들이 늘어났다 카더라. 물론 군내 환경개선조치라기 보다는 군내사정이 안습한 점 때문에 벌어진 자구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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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도 라
엄청난 키차이
숏다리의 마지막 자존심인 벨트 위치
내가 센터다! 깝치지 마라!
실은 전투시 은폐엄폐에 유리하고 피탄면적을 줄이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DMZ미합중국 육군 헌병|북한 육군|대한민국 육군 헌병.[16] 사진 중앙에 있는 북한군은, 당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왔다. 폭풍에 휘말려 남한까지 떠내려 왔다가 DMZ를 통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한국군이나 미군이나 판문점에서 근무하는 장병들 특히 헌병 들은 그 중에서도 가리고 가려뽑은 건장한 병사들이기는 하지만, 북한군의 저 모습은 저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사실 저 군복도 낡은 군복을 보이기 싫은 북한군의 요청으로 그 날 공수되어 들어온 것을 입고 갔다고 한다. 저 사진이 찍힌 건 2006년인데, 그때는 그래도 괜찮았던 편으로 지금은 북한군 장병들의 키가 저보다 훨씬 더 작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아랫동네아래에 있어서 아래를 보면서 싸워야 하고 윗동네에 있어서 를 보면서 싸워야 하는 건가

그런데 사실 식량난은 이전에도 심각했다. 탈북군인이자 그리고 사기꾼(...) 정연이 쓴 책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에는 1989년 김태식 일병 월북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가 우리 민경 대원들보다 체격이 좋아 놀랐다고 술회하고 있다. 민경대원이면 인민군에서도 나름 고르고 골라 배치한 최정예 병사들인데다가,1989년에 20대 초중반의 군인이었다면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북한의 리즈시절에 태어난 세대인데도 벌써 답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북한에 대흉년으로 무수히 사람이 굶어죽던 1996년에는 북한군 사관(부사관) 2명[17]이 동시에 귀순한 적이 있는데 둘 다 키가 160도 안 되었던데다가 빼빼 마른 상태였다. 며칠동안 숨어서 천천히 와서인지 배가 고파 제발 먹을 것 좀 달라고 간청하여 사병이 먹던 짬밥을 주자 허겁지겁 먹으면서 이게 정말 남조선 장병들이 먹는 밥이냐고 놀라워하던 적도 있다. 당시 이 둘을 발견하여 귀순을 받아주던 제5보병사단 부대원들이, "북쪽 사정이 그리도 열악하냐?"라는 질문에 "눈물날 정도로 어렵다. 이 정도라면 고급 장교들이 먹는 수준이다."라는 말을 했었으며 한 사람은 이렇게 잘 먹는 군대를 우리가 뭔 수로 이기냐 한숨까지 쉬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둘이 먹은 짬밥 메뉴는 하얀 쌀밥, 생선 조림, 군용 된장국, 채소 볶음, 두부, 김치였다.

게다가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중반은 일명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던 1990년대에 태어난 자원들이 군 입대를 하는 시기이다. 고난의 행군 당시에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 같은 핵심 인재들한테도 식량 배급이 거의 없었으며, 당원들 마저도 많이 굶어죽었다.

이 당시 영양실조의 후유증이 얼마나 컸는지, 북한에서는 한국군 기준으로는 공익이나 면제자도 현역복무 판정을 받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신장이 137cm 이상이 되면 현역 판정을 받는다. 본격 루저 군대인가? 대한민국 기준으로 저 정도면 9~10살짜리 애들 평균 키다.[18] 한국군 기준으로는 신장이 159cm 이상부터 현역 판정을 받는다. 즉, 기준이 20cm가 넘게 차이나고 있다. 137cm이면 남한 징병검사 기준으로 6급, 제2국민역조차 아닌 병역의무 면제 판정이며, 장애인복지법 기준으로는 지체장애 6급으로 판정되어(145cm 이하) 장애인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정도다. 각 군에서 정예 중의 정예로 취급되는 특수전 병력의 지원 자격 요건이 북한은 평균 160cm밖에 안된다.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신장이 173cm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캐안습.

거기다 이젠 언제부터인가 137cm에서 131cm[19]로 또 줄었다.이젠 또 얼마나 줄여질레나하지만 이걸로도 목표치에 미달해서 결국 여성 징병제가 2015년 4월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격투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싸움에서 하드웨어(체격조건)을 극복하기는 매우 어렵다. 키 2미터가 넘는 떡대들 사이에서 180의 단신(상대적으로)으로 수준급의 실력을 유지하는 에밀리아넨코 효도르가 대단하다고 칭송받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태평양전쟁때 미군 평균 키가 175, 일본군 키가 165로 10cm 차이였는데도 반자이 돌격해서 애써 붙어봐야 떡실신당하기 일쑤였는데 위에 나온대로라면 지금 한국군 키는 평균 170이고 북한군 평균키를 150이라고 잡아도 20cm나 차이가 난다!!! 게임으로 만들어서 백병전 밸런스를 맞추려면 한국군을 맨손으로 싸우게 해야 할 판이다!! 게임으로 백병전시 한국군을 맨손으로 싸우게 해도 한국군이 압도할 판인게 북한에서 후송되거나 집에서 치료하고 와야할정도로 중증인 허약증(중증 영양실조)의 기준이 소총을 들고 100m를 30분안에 걸어 들어간다면 그건 허약이 아니라고 한다! 3분이 아니라 30분이고 낮은 포복도 아니고 단순히 걸어가는 거다!

또한 군인은 애초에 군장 등 무거운 물건을 많이 들고 다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일단 체격이 어느정도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저런 북한군의 작은 체구는 전투력 이전에 군장조차 제대로 운반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북한 당국도 이를 고려했는지 보병장구류를 경량화하기로 했다. 기존 장구류 무게 총합이 25kg인데 이를 17~18kg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목적. 그런데 그 방법이 전투식량 및 구급약 휴대분의 축소조정, 담요 및 천막을 위장우의와 방한내피로 대체하는 것으로, 작전지속능력에 현저한 저하를 유발할 수 있는 방식이다.(…)[20] 그나마 전투력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화기류나 방호장비류는 안건드리는 게 용할 지경.

영양실조는 신체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정신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는데, 1990년대부터 시작된 북한의 기근은 수백만 명을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21] 국가적인 소아 영양실조를 초래했고 이로 인한 정신지체북한 잠재적 군입대 대상자의 4분의 1을 면제시킨 바 있다.

평양과 평안도를 방어하는 최정예부대는 그나마 보급이 잘 된다고 하는데, 그 보급이 잘 된다는 부대에서조차 자체적으로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괜히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이런 부대를 시찰하면서 식량 자급이 잘 되고 있다고 칭찬하는 모습지랄을 한다. 속으론 부글부글 끓었을 거다. 자기 먹어 치울게 없으니까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방송 같은 북한 관제 언론에 나오는 게 아니다.

사실 그 식량자급이라는 것도 말이 쉽지...북한 농업이 왜 망했는지를 보면 안되는 이유가 나온다. 군부대라고 해서 딱히 농자재를 국가에서 공급해주는 게 아니다. 하다못해 종곡 하나 보장되는 게 없다. 이러니 농사를 지으려면 종곡과 농기구와 소도 훔쳐와야 한다!(...) 기껏 농자재와 종곡을 어떻게 확보한다 해도 애초에 부족한 양을 일부 훔쳐온거라 넉넉할 리도 없을 뿐더러, 군부대 인근의 산악지대들은 농업생산력도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불어 북한에서 육류공급을 늘리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 보통 토끼오리, 게사니(거위) 같은 '풀 먹는 집짐승'이나 양식의 대표주자인 메기 등인데, 일단 이런 가축들을 제대로 키우려면 그만큼의 먹이 공급이 필요하다. 말이야 풀 먹는 집짐승이라 먹이 생산하는 수고가 덜 든다고 하지만, 수백명의 사람들에게 넉넉히 고기를 먹일 정도가 되려면 대체 토끼를 몇백마리, 오리를 몇백마리 키워야 하는지, 그 천 단위에 이르는 짐승들이 먹어치울 풀의 양이 얼마일지 생각해보자(...). 게다가 대부분의 산업화된 가축 사육은 기본적으로 영양소를 첨가한 배합사료를 통해 가축의 빠른 성장과 빠른 육류 생산을 노리는데, 당연히 사람 먹을 주식작물 생산도 버거워하는 북한에서 영양소는 고사하고 가축 사료를 제 때 대는 것도 가능할 리가 없다. 메기양식으로 가면 이야기는 더 심각해진다. 메기는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빠르게 성장시키려면 온수 공급이 필수인데, 군부대에서 온수공급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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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이 매우 심기가 불편했던 정보전사들은 체제선전용 사진으로 합성하는 위엄을 선보였다.대갈장군 머리도 커진 건 덤 어머나 뒤쪽의 차원이 워프됐어요

3. 불편한 징병제

북한군은 근본적으로 사실상 징병제에 가까운 형태인 지원병제를 취하고 있었다. 이는 북한군의 과거 병력이 한국군보다 적었다는 사실에서도 기인한다.[22] 기본적으로 군에 복무하면 조선노동당 입당 등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23]

하지만 1975년 이후로 급격하게 병력을 100만으로 늘려가면서 형식적인 지원병제에서 벗어나서 아예 징병제 개념을 적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당원이 아니면 출세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되므로, 입당하기 위한 것과 식량배급 문제 때문에 거의 반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서(…) 징병제랑 큰 차이는 없다. 왜 식량 문제가 나오냐면, 북한의 배급제도는 민간인보다 군인에게 식량을 다섯 배 정도 더 주기 때문이다.
잠깐 그게 다섯배였어?! 민간인에겐 아예 안 주니까 0X5=0????
2003년부터는 병역 자원이 모자라자 징병제로 전환했는데, 애초에 전환하나 안 하나 어차피 대부분이 군대 가는 건 똑같다. 물론 잠시 징병제였다가 다시 모병제로 전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링크 정확한 실상은 워낙에 폐쇄국가인 탓에 파악하기 힘든듯 한데 북한 당국이 군입대를 독려하고 심지어 키가 작아서 군 입대에 적합하지 않는 소년들에게 "군대 가면 큰다!"는 거짓말까지 해가며 입대를 강요하는 걸 보면 징병제가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보통 남녀 모두 17세가 되면 입대하며, 남자는 27세, 여자는 23세까지[24] 즉, 남성은 복무를 무려 10년이나 한다. 그런데 이것도 90년대 말의 13년에서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은 자신이 언제 전역할지 모른다. 전역 날짜는 당의 필요와 명령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선군정치'를 운운하나, 가장 민첩하고 활발하게 배우고 익혀야 할 20대를 군에서 허비한다는 것은 북한의 국력 신장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으로는 2010년대쯤 해서 7년으로 줄어든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이 늘어났다고 하는 말도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인가

북한은 폐쇄국가이고, 노동자/농민 독재를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대한민국문제처럼 사회적응에 관한 문제는 상관 없다 하더라도 사회 곳곳에서 "훌륭한 노동력"인 20대 젊은이들이 군대에 장기 복무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 남한의 인구는 북한의 약 두 배다. 그런데 남한의 복무기간은 2년이고, 북한의 복무기간은 8년~10년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남한에 비해 노동생산성 및 국력 신장에 약 15~20배가량 더 부담을 지고 있는 셈이 된다.[25] 북한의 경제 상황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거기에 더욱 흠좀무한 것은, 90년대 말에 모 부대에서 김정일에게 충성서약을 한답시고 조국이 통일될 때까지 휴가를 반납하자!안 돼!고 했다가 진짜로 전군에 휴가 반납이 강요되어 10년의 복무기간 동안 단 며칠을 제외하면 군대에서 산다.(...) 그래도 군대가 유지는 되던 시절에는 이 며칠 간의 휴가에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까지 할 거 다하고 다시 군으로 돌아가기도 했다는 탈북 장교의 증언이 있기는 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기본적으로 북한군 자체에는 휴가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도 않으며 있는 경우에도 그 기간이나 횟수가 적다. 애초에 탈북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휴가를 줘도 어차피 집에 가고 싶어도 교통이 엉망이라 가지도 못해서 그냥 반납한다고(...). 하지만 반대급부로 부대 밖으로는 걸핏하면 나간다. 애초에 부대 내에서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크게는 중대장이나 소대장 인솔 하에 갯벌에 가서 조개를 캐오든(...)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아오든(...) 어디 가서 농사를 지어오든(...) 해야 하고, 이도저도 안되면 민간인을 털든가 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민간인이 술이나 담배를 주고 1개 분대 정도의 군인들을 해결사(...)로 동원하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는 복무를 끝마치고 나서 무리배치라고 해서 다른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당해 노동력을 착취당해야 하는 경우다.가드맨이네? 이 경우 보통 열악한 환경의 집단 직장에 강제로 배치되므로, 고향에서 떨어져서 살아가게 된다.

동요계층들은 장교같은 건 꿈도 못꾸고 잘 해봤자 공병부대, 운전병 정도밖에 갈 수 없으며, 건설부대, 대공포병, 해안포병 등에도 많이 배치된다. 적대계층들은 원래는 군 입대가 불가능했지만, 2000년대부터는 건설부대에 입대할 수 있다. 근데 말이 좋아 건설부대지 하는 짓은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적대계층들은 안 가려 한다고. 자원입대 해봤자 남는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렇게 부담이 될 정도로 과다한 청년인력들을 군대에 붙들고 앉아있으니블랙홀 반대로 그 인력을 어떻게든 써먹으려 궁리할 수밖에 없다.화이트홀 실제로 북한 전역에서 벌어지는 건설사업들을 보면 군부대가 투입 안 된 곳이 없다. 작게는 마을회관부터 시작해서, 평양시내 유희시설, 평양시내 아파트(!), 도로나 철도 공사, 심지어는 세포군에 조성중인 풀판(국영목장)조차 군부대가 도맡아 하는 실정이다.

중학교(구 고등중학교)를 마치자마자 대학에 입학하는 직통생들은 합법적으로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입 기준이 출신성분 1/3, 정치조직생활의 평점 1/3, 시험성적 1/3이라는 참으로 어이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안 그래도 적은 대학 정원의 50% 이상은 제대군인과 직장인에게 배분되기 때문에 직통생은 전체의 10% 이내에 불과하다.

있었다인 이유는 2011년부터 직통생 제도가 완전히 사라지고 모든 대학들이 군복무를 이행해야만 들어갈 수 있도록 되었기 때문. 다만 평양 룡성구역에 있는 국방대학만은 직통생을 받는다고 한다. 애초에 군 관련 대학이기 때문.

하지만 위의 면제사례는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루트의 이야기이고, 북한에서 주로 군면제를 받는 방법은 뇌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아오지를 가더라도 뇌물 찌를 돈만 있으면 빠져나올 수 있는 동네라는 특성상, 뇌물써서 군면제 받는 건 일도 아니다. 아예 징병검사나 징집을 담당하는 관원들이 군면제 가격표를 따로 정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으니, 어느 정도 돈있는 사람들은 뇌물 몇 푼 쥐어주면 그냥 면제된다. 당장 관원들도 나라의 봉급보다 이들이 찌르는 뇌물을 바탕으로 삶을 꾸리고 있으니 말 다했다.[26] 위에서 등장한 이정연씨의 책 때문에 '북한에서는 고위층일수록 자식을 최전방 민경부대에 보내려 한다'는 식의 인식이 한국에 제법 퍼졌는데, 여타 탈북자들의 증언과 교차검증해보면 이것도 가끔씩 윗선에서 '붐'을 조성할 때에나 눈치를 봐서 보내는 것일 뿐, 분위기가 사그라들면 금세 자식을 최전방에서 빼내 후방으로 돌리거나 하는 행태가 일상적이다. 그러고보니 이정연 글에서 고위층 자제 이야기 나온 적 있나?

이를 남한의 병역비리와 동일선상에서 생각하는 건 안 되는 것이, 이 동네는 10년13년 의무복무를 기본 베이스로 깔고 들어가는데다, 근무환경마저 도저히 이게 군대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시망 상태이다.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북한주민이 아무리 정보가 통제가 되고 있다 한들 이러한 상황을 모를리는 없으며, 당연히 자신의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뇌물 몇푼 쥐어주고 면제시켜 버린다. 북한에서 병역비리는 남한과는 달리 그야말로 자신의 아들의 생사를 가르는 일인 것이다.

2014년 9월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여성도 전부 징병 대상이 되며, 복무기간도 남자 11년, 여자 7년으로 조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기사 복무기간 연장 및 신검 통과 신장을 낮추는 짓거리로도 규정된 병력을 채우지 못했는지 2015년부터 여성 의무 복무제를 도입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2015년부터는 남성의 경우에는 특수부대나 경호부대를 제외한 일반 부대로 가는 남성들을 대상[27]으로 아예 키, 몸무게, 시력 등의 신체검사 기준 자체를 없애기로 하였다고 한다.

4. 병영부조리

한줄 요약: 그냥 구 일본군 강화판

북한군에도 병영부조리가 있는데 북한군중공군, 국부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소련군의 영향을 받았지만 소련군에도 병영부조리는 존재했다. 하지만 이들도 일본군식으로 양성된 인재들이 합류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일본군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았다. 그런데 똑같은 영향을 받은 아랫동네 군대는 미흡하긴 해도 일본군의 영향을 없애려 노력이라도 하는 반면 이놈들은 오히려 일본군 따위는 비교도 안될만큼 더 막장이 되어가고 있다[28]. 그런데 북한에서는 자기네들이 겪고 있는 막장 테크에 대해서 입을 싹 씻고 "남조선은 인권상황이 가장 열악한 곳이고 미제의 식민지라서 미제놈들의 도움이 없으면 남조선 괴뢰군은 우리가 공격하면 박살날 것이다."라는 식의 정신승리를 늘어놓고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거 같은데?

창군 초기에는 평등한 인민의 군대를 반드시 만들겠다며 간부와 병사가 함께 밥을 먹고 정치지도원이 불합리한 지휘체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김일성의 만주에서 했다는 빨치산 활동에 근원을 둔 평등한 게릴라 부대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당시 한반도는 일본식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황이었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인민유격대 대원을 모집할 시기 일제시대에 배운 그대로 제복에 각반 차림으로 합류했더니 '준비가 잘 되어있다'고 칭찬 받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상의 내용은 이향규가 쓴 김석형 구술자료집인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에서 참조했다.

김일성 또한 빨치산 노릇을 하다 일본군에 쫓겨 소련의 극동여단으로 도망가서 이전의 교리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소련식 군사훈련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김일성이 빨치산 노릇 했던 것은 해방 시점에서는 수십년 전이고 이미 새롭게 교육도 받았고, 김일성의 빨치산 그룹은 한 줌의 숫자에 불과했으니, 빨치산 전통을 계승한다는 선전은 정말로 선전에 불과한 '허풍'이었고, 북한군은 일본식 군사 문화의 잔재와 소련식 위계질서가 섞인 곳이 되었지만 자기 자신들은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소련군 똥군기와 일본군 똥군기를 섞어다가 "이게 바로 항일 빨치산 전통입네!" 하고 들이퍼마시는 웃기는 구도가 되어버렸다.

실제로 초창기부터 북한군의 문화는 빨치산 게릴라 문화와는 크게 달랐다는 증언이 있다.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하다가 모택동의 팔로군과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이 의용군 형식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례가 꽤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상하 위계가 지나치게 완고한 북한군에서는 생활 못하겠다"고 하며 중국으로 돌아갔다. 인민해방군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당시 중국군은 계급이 없는 군대였다.[29]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으로 유명한 김학철씨의 책에 이들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어느 탈북자가 쓴 북한군 병영부조리에 의하면 뒷배경 없는 사람이 군에 입대하면 휴전선에 배치된다고 하며[30] 신병이 전입하면 선임들에게 술이나 먹을 것, 중국산 담배 등을 상납해야 하는데 집에 편지를 보내 암시장에 가서 중국 술이나 중국 담배를 사서 부쳐달라고 한다. 그런 반면에 이들이 지겹게 말하던 남조선 괴뢰군은 외출만 나와도 외산 담배나 외산 술을 쉽게 눈으로라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만일 그러지 못하면 선임에게 제대로 찍혀서 사올 때까지 구타를 당한다고 한다. 그러다 정 나오지 않으면 도둑질을 시키며 농가 쪽에서 음식을 훔쳐오게 한다. 또 하루 12시간 말뚝근무에 가장 더럽고 위험한 작업은 도맡아 한다고 한다. 만일 조금의 불만이라도 가지면 '위대한 장군님을 호위하는 군생활을 하면서 반항을 한다'고 역적죄로 몰아가기도 한다.

남자 군인들이 이런 상황이니, 여군은 대놓고 매춘부 취급하며 아예 성상납으로 편하게 군생활 할 수 있다며 좋아라하는 막장스런 여군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이 평등하라고 나온 공산주의로 시작한 주제에 하라는 평등은 안하고 사회에서도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계급을 때려박고 국가급으로 군대놀이를 하기 때문에 북한 영토 자체가 거대한 병영이나 다름없다.

공식적으로는 저 세 가지 계급만 있지만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40~50개 가량의 계급이 있고 심하게는 같은 계층끼리도 서로 군대식 서열, 기수, 위계를 구성하고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어차피 군대 전역하고 사회 나와봤자 장소만 다르고 총만 안 잡을 뿐 군대처럼 지역 이탈도 마음대로 못하니 북한은 군대 가나 안 가나 상관없이 똥군기를 당하거나 가하는 암울한 인생인 건 똑같다.

5. 빈곤함

북한이 90년대 이후 경제난을 겪자 군에 대한 지원과 배급이 줄어들게 되지만 훈련강도는 여전히 높아 빈약한 영양상태에서 결국 사기저하로 신음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경제난으로 인해 그 훈련이란 게 대규모 전술 훈련 같은 게 없다는 게 문제.

이는 2010년의 연평도 도발 천안함 폭침 사건 등으로 북한군의 경계령이 강화되고 김정일 이후 선군정치가 강화된 이후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 북한군 안에서는 탈영병이 너무 속출해 처벌조차 곤란한(...) 상태까지 왔다고 한다.

북한내의 경제난으로 인한 보급난, 한국전쟁당시에 사용했던 T-34/85를 아직도(!) 사용하는 낙후된 무기체계, 게다가 북한의 특전사는 강하훈련을 위한 비행기를 확보 및 활용하지 못해서 탑을 쌓고 그 위에 기어올라가서 공수훈련을 하는 열악함, 남한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빈곤한 국방비 등으로 인해 북한군은 더 이상 질적인 면에서 한미 양국군과 비교자체가 안 될 정도로 밑으로 추락해버렸다. 이미 90년대에 미군 측 조사에 의하면 시리아군과 더불어 연료가 부족하여 공군 및 전차 훈련수요가 극도로 적은 열악한 군대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나마 시리아군은 이후 러시아 및 이란과 관계 개선으로 연료 보급이 늘면서 조금이나마 달라졌지만 북한은 그런 거 없다.

북한이 가난하기 때문에 연간 1인당 평균 교탄소모량 2발(…)이라는 안습한 수준의 사격 훈련 실정을 자랑한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1년에 전군 평균 2발이다. 당연히 사람들마다 1년에 2발씩 줄 리는 없으니 아예 한 발도 못 쏴본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백만 명이라는 과도하게 많은 숫자를 감안하면 후방부대의 경우 사실상 10년동안 한 발도 안쏘고 뺑이만 치다 제대하는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군 전군 1인당 평균 교탄소모량이 200발, 미군은 1,100발이다. 북한군은 경계근무시 실탄을 3발 내준다고 한다. 실탄 3발 갖고는 헤드깡도 못한다! 실제로 경계근무를 서는 북한군 사진을 보면 소총만 둘러메고 있지 국군의 탄입대에 해당하는 탄창가방은 안 갖고 있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총 따윈 장식입니다 단, 민경부대나 특수부대는 제외하고.

이게 어느 정도인지 끝까지 감이 안오는(...) 사람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보충역들도 4주 기초군사훈련동안 40발 가까이 쏜다. 일반적인 보충역은 훈련소 2주차 사격훈련에서 영점사격 5발 + 야간사격 5발 + 주간사격 20발을 쏜다. 실제로 실탄은 30발 정도를 사격하며 기준 미달로 재훈련을 거쳐야 할 경우나 사격 통제관의 재량으로 이보다 많이 쏠 수도 있다. 거기다 4주동안 실탄뿐만 아니라 연습용이라서 점토로 만든 폭죽이긴 해도 무게와 실제크기는 동일한 수류탄에 공포탄까지 다 쏴보는데, 한 나라의 정규군이 대한민국 보충역보다 훈련이 열악하다는 게 문제다. 거기다 수류탄은 훈련소(주로 논산)에 따라 실제 수류탄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31] 결정적으로 보충역은 그냥 이등병 제대로 처리한 후 2년 뒤부터 예비군으로 또 계속 쏜다. 총 쓸 일이 별로 없는 공군의 경우에도 분기별로 1회씩, 적어도 80발은 쏜다. 다만 공군도 부대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데 공군 헌병 출신 모 위키러는 현역시절 앞에 나온 분기 사격에 월간 1회 씩 월간 사격을 한 경우도 있다.[32]
심지어 적군 상대하는게 아닌 시위진압을 하는 전의경조차도 최소한 1년에 한번이라도 사격연습을 실시한다.
더 심지어는 아예 현역 군인도 아닌 민간인 신분의 예비군조차 1년에 1인당 10발씩 실탄사격을 시킨다.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 기준으로 동원훈련가서 쏘는 탄약 총합이 40~50발 정도 된다. 예비군 훈련이 이렇다. 현역은 교탄을 더 많이 소모한다. 본격 남한의 예비군보다도 교탄을 적게 소모하는 북한의 현역군인의 위엄.

이러한 상황이다보니 북한군에선 대규모 전술훈련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래선 북한군의 10년 근무한 부사관이 한국군 일개 일병보다 훈련면에서 더 낫다고 보장하기 힘든 상황. 훈련도로만 따지면, 유사시 제대로 싸우는 시늉이라도 낼수있는 병력은 오히려 남한군보다도 훨씬 적을 확률이 높다.(...)

그나마 육군은 이 정도라도 교탄을 소비해가며 훈련하지 공군은 더 안습하다. 북한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실비행 훈련 시간이 연간 2시간에 불과하다. 월간 2시간이 아니라 연간 2시간 맞다. 한 달에 날씨 좋은 날을 택해서 10분~20분씩밖에 못뜬다. 대한민국의 정예 공군 파일럿들이 연료 아낀다고 연간 130시간밖에 훈련을 못하고 나머지는 죄다 시뮬레이션 훈련으로 때워버리는데 북한군 공군은 이보다 더 안습하다. 다른 항공기 역시 마찬가지인지라 뜨질 못해서 남한에서는 특전사의 경우 ch-47(시누크)를 띄울 연료 아껴야 한다며 기구강하로 때워버리는 일도 있는데 북한군 공수부대는 그 기구강하를 할 연료조차 없어서 그냥 공수탑을 만든 뒤 거기까지 기어 올라가서(...) 강하훈련을 한다. 한국의 어떤 기자가 생각난다면 기분 탓



항공 및 반항공군은 아예 땅바닥에 지도 그려서 항공기 모형과 판떼기 계기판으로 훈련을 하고 있다. 워 썬더 리얼리스틱의 전술지도상황 김정은이 빵 터질만 하다. 일반적인 국가 지도자들은 자국군이 저런식으로 훈련을 하고 있다면 분노하며 호통을 치거나 열악한 현실에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뜬다. 해당 상황은 2014년 12월 9일에 '오중흡7련대칭호를 수여받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58군부대'를 시찰한 것으로, 북한에서 오중흡7련대칭호라고 하면 그야말로 정예중의 최정예라는 소리다.[33] 혹시 이게 한국 종편에서 악의적으로 짜집기한 게 아닌지 의심이 간다면, 북한 쪽에서 유투브에 버젓이 올린 보도영상을 확인해보자.(23:20부터) 리춘히 아줌마가 아주 당당히 도보비행훈련장에서 진행하는 훈련을 보시면서 비행사들에게 군부대의 비행장뿐만아니라 생소한 비행장들에서의 리착륙기동방안과 지형을 깊이 연구학습시키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고 밝히고 있다. 아니 저걸로 어떻게 이착륙 기동을 한다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실내 시뮬레이션 영상이 나오는데, 아무리 해도 군용 시뮬레이터라고는 불러주기 힘들고 사실상 게임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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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지대에는 모조 땅끄를 만들어 배치하고 있다. 은근히 고퀄

그리고 한 뉴데일리기레기가 이것을 진짜 탱크로 알고 기사를 올렸다. 웃을 준비하고 사진에 커서를 댄 후 1초 기다려 보자.


미국놈들이 미쳐도 드럽게 미쳤습니다!
근데 1분 56초 쯤에 저거 데크차료프 아닌가? 리인액트가 아닙니다… 본격 박물관 총기 집합소.
저거 하나만 이베이에 팔아도 몇 달치 식량이 생길것 같은데. 밀덕들이 좋아합니다.
1분 48초에 사격장면이 있다. 근데 맨 앞의 병사의 손가락을 봐라 -> 어? 방아쇠를 눌러도 발사가 안돼..하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잠시 눈물좀 닦아주자...
어르신들 불러놓고 뭐하는 지거리야!!!

2013년 공개한 노농적위대[34] 선전 동영상에는, 사격훈련중 총기고장으로 사수가 쏘는 시늉만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것도 대외 공개용 선전 동영상에!(1분 47초)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서 사수의 절망감이 느껴진다[35] 사실 그 외에도 배경에 등장하는 기관총에 탄창이 없다든가, 기관총에 탄을 고작 5발 물린다든가, 위장망이 플라스틱이나 남조선에선 시장에서 파는 수박 나를 때나 쓰는 비닐이라든가, 대전차 화기를 몸과 같은 방향으로 두고 엎드린다던가[36], 벌써 러시아 군대에서는 퇴출당한 RPD, RPG-2, 그리고 2차대전 때 쓰이던 DP-28을 아직도 쓰고 있다던가, 환갑이 다 되어 보이는 노인이 소총수라든가사실 총이 선임이다[37]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쏘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일반적으로 선전물은 A급 장비를 다뤄야하는게 정상인데저런 중앙아시아 테러리스트 들도 잘 안쓸 고물 중의 고물 무기를 가지고북아프리카 민병대도 MG43쓰는데! 선전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북한군의 열악한 실태를 생생히 알 수 있다.

북한 전차부대 장교의 탈북 수기에 의하면 1년에 탱크 운전하는 시간이 10시간이 못 된다고 한다. 그것도 남한에서 훈련한다고 갱도로 탱크를 숨기거나 중간 중간 점검하기 위해 시동 돌리는 시간 포함. 이것들을 뺀다면 1년에 3시간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결국 10년의 군생활 동안 한번도 기동훈련에 참가 못한 운전수가 수두룩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장교인 자신은 15년의 복무기간 동안 꼴랑 3회의 기동훈련을 했다고 한다.

이때 공산주의 특유의 시스템적 문제가 발생하는데, 하도 탱크가 습한 갱도속에 오래 있어서 잔고장이 많이 나지만 쓰질 않으니 고장이 나질 않고, 10,000킬로를 뛰면 의무적으로 중수리 공장에 보내야 하지만 그 10,000킬로를 뛸 수가 없다. 하지만 단지 중수리 공장 노동자 동무들을 놀릴 수 없다는 이유로 거의 움직인 적도 없고 고장도 없는 탱크들을 교대로 중수리 공장으로 보낸다고 한다.

물론 탱크 돌릴 기름도 없으니 사격할 포탄도 마찬가지. 포탄이 없어서 포사격 훈련은 기관총 사격으로 대체. 그것도 조준수가 딱 3발 발사한다. 여기에 더하여 탱크에서 쓰는 연유와 전차 배터리 까지 다 가져다 팔아서 먹고 살기 때문에 전쟁나면 전투불능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흔히 말하는 "북괴가 와도 서울까지 오려나 모르겠다."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서울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쓸려나가겠지만 그 전에 서울까지 도달하는 데 실패한다.

2014년 12월 현재 북한이 최대 규모로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

6. 조직문제

흔히 110만 대군이라고 알려진 인민군이지만, 이런저런 허수들이 워낙 많아서 주의해야 한다. 단순히 병력을 부풀린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 내부에 실제 전투력이라고는 볼 수 없거나, 실제 전쟁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병력들이 적지 않게 껴 있기 때문.[38]

6.1. 정치장교의 존재

북한군에는 정치장교가 남아 있으며, 이중의 감시를 위해 보위사령부가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소대, 중대, 대대 등의 각 단위에는 지휘관, 정치지도원, 보위지도원 등 3명의 군관이 있다. 모든 계획은 이 3명이 동의해야 시행할 수 있으며, 3명의 군관이 서로를 감시한다. 경비정 등 작은 단위에는 지휘관, 정치및보위지도원 등 2명의 군관이 있다.

원응희 전 보위사령관은 공군사령부의 정치위원(소장) 시절 6개월 넘게 끈질기게 공군사령관을 도청하고 감시해 끝내 그를 반혁명분자로 숙청(...)시켰다.

정치장교의 문제점은 이미 소련이 장대한 희생을 거쳐서 완벽히 증명을 했다. 지휘관과 정치장교의 의견이 안 맞으면 무슨 꼴이 나는지 보고 싶다면 영화 결호의 초반부 전투를 보자. 그나마 혁명전쟁기에야 정치장교가 무식한 하전사들을 대신해 편지를 써주거나 읽어주는 역할이라도 했지(...). 이 때문에 북한 내에서도 오극렬을 중심으로 그나마 제정신이 박힌 일부 장군들이 김정일을 설득해서 김일성에게 정치장교 제도를 없애자고 건의했는데, 그때 김정일이 김일성에게 직접 들은 말이 "너 정치장교들이 없어지면 군대가 누구를 향해 총부리를 들이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였다고 한다. 주권국가라는 집단이 자신의 군대를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이 나라가 얼마나 막장인 나라인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39]

게다가 얘네들은 하나도 아니고 보위부원 하나가 더있다! 한국에도 기무사가 있다지만 기무사는 어디까지나 기밀 보호 역할이지 지휘관이랑 대놓고 맞먹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소대단위에서만 지휘관급이 3명이니 지휘관별로 파벌이 존재하여 갈등이 심하다. 이정연은 생각보다 합의도 잘 되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고 했지만, 이것도 잘해봐야 90년대 초중반까지의 이야기고 군대마저 시장경제와 화폐에 잠식된 90년대 후반 이후로는 그런 거 없다. 왜냐? 군대 조직이 외화벌이라든가 쌀장사, 뇌물 같은 각종 이권사업에 깊숙이 연루되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 라인의 하전사를 입당시키고 자기 라인의 창고장을 임명해야 뭐라도 건질텐데 그나마도 나눠먹을 만큼 풍족하지가 않으니 상호 디스전 정도는 그냥 일상이다. 더욱이 보위부의 존재는 소대원내의 소위 두더지라 불리우는 프락치의 존재도 추가된다. 그야말로 전쟁나면 인원 수십명의 소대도 지휘관 3명의 지휘를 받아 전투를 벌여야하니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군사작전이 가능할리가 없다.

정치장교와 보위부 둘 다 막장이지만, 특히 보위부는 지휘체계도 완전 다르고 기관의 성격도 군부와는 맞지 않아 갈등이 더 큰 편이다. 탈북 간부들도 둘 다 씨발같지만 그래도 보위부가 더 좆같다고 증언한다. 실제로 별 잘못도 없는데, 앙심을 품은 보위부원들의 모함에 의해 누명을 쓰고 숙청당한 사례가 매우 많다. 북한외교관 고영환이 쓴 '평양 25시'를 보면 이 과정이 아주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문제는 김일성이 이렇게 철썩같이 믿었던것과는 달리 정치장교와 보위부원 모두 실제로는 도무지 쓸데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 정치장교와 보위부원이 쌍으로 손을 잡고 김씨 정권 전복을 계획했던게 바로 6군단 반란사건이다.[40] 자기 아버지 죽자마자 이런 반란사건을 맞닥뜨렸음에도 정치장교와 보위부 제도를 없애지 않은 김정일도 참(...) 더 큰 문제는 이런 놈들이 인민군 110만명 중 10만명을[41] 잡아먹고 있다는 사실(...).뭐 우리에겐 좋지만[42]

6.2. 호위사령부

호위사령부는 수도 평양과 국가웬수원수인 김정은을 경비하는 것이 목적으로, 휘하에 호위총국, 평양경비사령부, 평양방어사령부, 기타 독립여단들을 두고 무려 12만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게 왜 조직문제에 들어가는지 의아해하는 위키러들을 위해 비유를 하자면(...).

한국군이 세종시 방어에만 최정예 2개 군단 병력을 짱박아두고 있다고 하면 어떨까? 참고로 세종시는 제32향토보병사단 1개 사단이 평시에 지키고 있다.

물론 한국군도 수도방위사령부가 있고 수도군단이 조직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국군은 기본적으로 적의 선제 공세를 막아낸 후 진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군대고 서울은 판문점에서 고작 30km 떨어진 도시다.[43] 그렇다, 여러분들이 논산에서 행군 훈련할 때 전군장 메고 무박으로 걸어다녔던 그 30km다. 그런데 북한은 휴전선에서 140km나 떨어진 평양 한 곳만을 방어하는 데 전 군의 10%에 달하는 병력을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다들 잘 알겠지만 북한은 선제타격을 통해 남조선을 해방시키겠다고 대놓고 떠들어대는데도 말이다. 뭐 하자는건지

병력의 손실도 손실이지만, 후방에 뚝 떨어진 수도를 방어하는데 저렇게까지 많은 병력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는 쉽게 답이 나온다. 겉보기에는 강력한 군사력을 강력한 사상과 정신력으로 무장시켰다지만, 실상은 스스로도 그 군대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것. 때문에 호위사령관은 필요시에 인민군의 그 어느 부대라도 배속시켜 지휘가 가능하다. 그것도 인민무력부가 아닌 조선로동당 비서국을 통해서. 보위사령부는 애초에 전투력과는 무관한 집단이기라도 하지, 여긴 귀중한 전투력을 자기 멋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러니 호위사령관의 권한과 위세는 가히 인민무력부장과 동급이다. 문제는 편제상 호위사령관은 어디까지나 인민무력부장의 부하라는 것이다. 현대판 츠슈타벨

7. 건설 부대의 존재

아래의 글의 사건 사고에도 나와 있지만 북한에는 건설 부대scv라는 것이 있다.

이 건설부대가 다른 국가에 있는 공병 부대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한 골룸한 존재이다. 북한군이 120만명이라고 하는데 우리측에서는 이들중 무려 30만명이나 건설부대라고 판단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에 따라 선택적 징병제를 하는데 출신 성분이 안좋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 바로 건설 부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군생활 잘해도 승진이나 당원으로서의 출세나 이딴 건 없다. 그런 주제에 국가에 필요한 민간 건설사업에 동원하여 직사게 일만 시키는 사기는 바닥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은 잃을 게 없다는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출신 성분 때문에 차별을 받았고 군대와서도 차별을 받아 이미 인생 막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이들은 신분만 군인이지 실질적으로는 그냥 징용 노동자에 불과하다. 전군 교탄소모량 2발인 마당에 이들은 총 한발 못쏴봤음이 뻔할 뻔자이며, 전술훈련은 커녕 전 국토를 돌아다니면서 노가다하는게 전부다. 심지어 북한에서 도로 포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기도 하다. 유사시 도저히 온전한 전력으로 쳐줄수가 없을 정도.

출판사 플래닛 미디어에서 탈북자 이정연이 지은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라는 책에 북한군 건설부대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좋은 내용이 있으니 원문을 그대로 옮겨 적겠다.

건설 부대 하전사들은 싸움을 해도 무리지어 삽, 쇠스랑을 들고 무지막지하게 덤빈다. 매 맞은 건설병들이 부대로 돌아가서 어디 부대 군인들에게 맞았다고 이르면, 지하에서 일하던 하전사들까지 모두 연장을 들고 나온다. 여기에 소대장급 군간들까지 가세해서 산과 능선을 헐떡거리며 넘어와 겁도 없이 해당 대대로 쳐들어 간다.
건설부대가 온 뒤로 전연군단에서는 군단 지역의 각종 사고, 범죄, 주민신고가 20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어째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이랑 비슷한 것 같다. 레이너 특공대 건설로봇들도 아니고
이렇게 부대들끼리 패싸움한다는 것은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인증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 전혀 통제를 못하는 것이다. 아래 글은 민간인들이 모 건설부대에게 붙인 별명이다. 그런데 이 별명이 워낙 절묘해서 해당 부대에서는 이 별명을 정식 명칭처럼 사용한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건설국 제 000부대 제 0000여단 0대대

제1대대 폭풍대대
이들은 주변 50리 안팎의 모든 민가, 군인 병영에 들어와 도둑질을 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싹 쓸어간다. 주민들이 미리 대책을 세우고 농작물이든 가축이든 뭐든 간에 전부 숨겨놓고 지켜도 소용이 없다. 야밤에 하다못해 가을걷이한 밭에 겨울철에 부려먹는 소먹이로 쓸 옥수수단을 세워 놓은 것들까지 모조리 쓸어간다. 이것은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강력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비유해서 붙인 명칭이다.

제2대대 빨치산 대대
이들은 낮에는 절대 민가에 내려가지 않는다. 밤에만 주민들이 숨기고 위장해놓은 김칫독, 쌀 저장고, 가축우리(가축우리를 땅에 토굴식으로 파놓아도 알아챔), 장독을 모두 파간다고 한다. 이들이 겨울에 닭을 훔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일단 뜨거운 불에 돌을 구워서 식지 않도록 잘 싸가지고 간다. 그 다음 돌을 올려놓은 손을 닭우리에 슬그머니 들이대면 닭들이 절대 소란피우지 않고 살그머니 돌 위에 앉는다. 이렇게 하면 닭들이 마대로 쌀 때까지 조용하다고 한다. 이들은 이 방법으로 하룻밤에 농장 닭 수십마리를 모조리 쓸어간다.[44]

제3대대 마적대대
이들은 주로 강도짓을 많이 한다. 북한 강원도의 특성상 열차와 버스가 없어서 험한 산길을 도보로 걸어다니는 군인과 민간인이 많은데, 그들은 하도 많이 다녀서 웬만한 산의 지형은 다 안다. 마적대대는 이런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신부 집에 가는 신랑의 예물 보따리, 휴가 갔다가 귀대하는 군인들의 배낭짐 등을 모조리 빼앗는다. 일단 험상궃은 얼굴에 삽날자국이 있는 하사들중 덩치 좋은 사람들을 골라 그들을 위협하고는 모조리 빼앗는다. 단 구타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곱게 생긴 아녀자들은 몸까지 뺏기는 일도 있다. 군복 상의를 벗어 던지고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서서 인상쓰는 모습이 임꺽정을 연상시킨다. 나도 이런 경우를 당한적이 있다. 나와 또다른 세 명이 군복을 벗어놓고 가라고 하기에 권총으로 공포를 쏘자, 모두 도망쳤다.

제4대대 야생대대
이들은 병영 이외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여단장이 시찰후 하도 기막혀서 특별히 건설국에 사정해서 담요, 백포, 마도라스, 취사 장비, 개인 세면도구까지 모두 새 것으로 주었다. 하지만 이것도 며칠이 지나 모두 없어졌다. 고참에서 신병까지 모두 담요나 식기를 훔쳐 주민 지대로 내려가 술, 계란, 닭 같은 것으로 바꿔 먹었던 것이다. 주민들에게는 꼭 필요치 않은 물건이지만, 그래도 무작정 훔쳐가는 것보다 뭐라도 가져와 바꾸자는 그들의 소행이 가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들은 야생대대답게 담요와 그릇 없이도 잘 자고 잘 먹고 아무 불평 없이 지낸다고 한다. 이들은 잘 때 자신의 신발, 군복 등을 꽁꽁 묶어 끌어안고 잔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슬쩍 가져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병영 안에서도 그런 일이 허다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건설부대로 가장 유명한 부대는 7총국과 8총국이 있다. 이름만 들으면 뭔가 당에서 직속으로 관리하는 그럴듯한 조직 같지만, 실상은 북한 어디든 가서 공사를 도맡아 하는 노가다 부대들이다. 김정일은 과거 인민군 2개 사단이 경의선 공사를 위해 대기 중이다라고 떠든 적이 있으며, 2014년 현재도 북한은 평양시내는 물론 세포등판 건설장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 '군인건설자들'이 건설사업에 매진 중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애초에 20대 청년들을 죄다 군대에 묶어둔 이상 그 군대를 쪼개서 사회 생산부문에 투입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뻔한 노릇이다.

8. 북한군 사건 사고

대표적으로 6군단 반란사건과 정춘실 약탈사건이 존재한다. 이하는 정춘실 사건의 전말.

이 사건은 탈북자 이정연의 글에서 상당부분 인용한 것으로, 복수의 소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약탈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은 사실이나, 이정연이 저지른 일은 아니며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사칭한 것으로 추측된다. 아래 글에서는 서술의 편의상 이정연의 말이 100% 맞다고 가정한다. 글 하단에 적혀 있듯 사기를 치고 중국으로 달아난 사람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1992년 겨울 정춘실 前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직접 강원도의 항구에서 자강도 전천군 상업관리소까지 생선을 옮기던 도중에 북한군에게 세 번씩이나 털렸다(…). 정춘실은 한 때는 김일성을 아바이라고 부르고 김정일을 오라버니라고 부르던[45] 유일한 북한 여자로, 노력영웅 칭호를 두 번이나 받고 각종 언론매체에서 열심히 띄워주던 사람이며 당시에는 전천군 상업관리소장을 맡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에 해당. 정춘실은 원래 별볼일없는 사람이었지만 김정일을 만나 접견자가 되면서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가 되었다. 정춘실의 가족들 신발치수까지 다 정리해놓은 상세한 가계부를 본 김정일의 눈이 뒤집어지면서 정춘실에겐 영웅 칭호가 내려졌고 김정일은 정춘실을 본받아 숨은 영웅 따라 배우기 운동까지 벌였다. 이를 정춘실 운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춘실은 평양으로 불러 대의원을 시켜준다.

요약하자면, 첫번째는 정찰부대에게 20kg 생선상자 20여개를 빼앗기고, 두번째는 건설부대에게 차량 휘발유를 빼앗기고, 마지막에는 다른 건설부대에게 생선 남은 것 전부와 각 차량의 스페어 타이어(…)를 털렸다.

1차는 전연군단 정찰부대원 10여 명이었다. 이들은 강원도 통천-고성 지역을 산악 야간행군하는 동계교방(국군 위장 침투훈련)에 참여했다. 그들은 폭설로 인해 낙오했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명령을 어기고 고속도로를 행군하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고속도로 상에 5t짜리 냉동탑차 2대가 나타나자 정찰조는 꼼수가 발각되는 것을 우려해 길을 막고 트럭을 정지시켰다. 운전수는 정찰조의 국군 전투복장을 보고 벌벌 떨고 있었고, 정찰조는 트럭 화물칸에서 청어, 가자미, 광어, 도루묵 등의 생선을 발견했다. 정춘실이 제지했지만, 정찰조는 생선을 실컷 빼앗은 후 '빨리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이 부려놓을 거'라고 협박하면서 공포탄을 두어 발 쏴서 내쫓았다. 그 생선은 집결지에서 소대원들끼리 나눠먹었다.

2차는 원산-평양 고속도로 상에서 금강산 발전소 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이었다. 밤중에 트럭 2대로 고속도로를 가로막아 놓고, 정춘실이 걸려들자 차량 휘발유를 빼앗았다. 냉동탑차 운전기사가 길을 막은 트럭 번호를 기억해 내 체포되었다.
3차는 평양-전천 구간의 경비대 건설부대였다. 남은 생선 전부와 냉동탑차의 예비 타이어(…)까지 빼앗아 갔다. 이 쪽도 시간과 장소가 명확해서 잡혔다.

텅빈 트럭을 끌고 도착한 정춘실은 즉각 노동당 중앙위원회에 정식으로 신소하였다. 이로 인해 인민국 총정치국, 작전국, 보위사령부, 정찰국 등의 합동 검열조사단이 들이닥쳐 해당 사건의 주모자들과 가담자들을 색출했다. 이 사건으로 10여 명이 군사규율및군민관계훼손행위로 총살형을 당하고 소속부대 지휘관들은 불명예제대 또는 노동연대 등으로 처벌받았다.

이정연에 의하면 정찰부대원들만 유일하게 발각되지 않았다고 한다. 합동 검열단은 "몇 날 몇 시 경에 통천-고성 간 도로에서 훈련한 애들은 나와라. 다 알고 있으니 순순히 자수하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이들은 통천-고성 간 도로에서는 공식적으로는 훈련한 적이 전혀 없다. 생선 훔쳐 먹은 것도 입단속을 했으니 걸릴 리가 없다. 합동 검열단은 "남조선군 복장을 하고 훈련한 것이 너희들밖에 더 있느냐?"라고 추궁했지만, 그 지역에 다른 경보병 여단과 806훈련소 부대도 있었다고 발뺌하자 넘어갔다고(...) 한다.

이게 군대야 깡패집단이야 군의 탈을 쓴

근데 정춘실은 나중에 횡령을 한 것이 걸려서 2000년에 숙청됐고(...) 이후 탈북했다. 각설하고 이러니 평범한 북한 주민들은 얼마나 털릴지(...) 감이 안 잡힌다. 안습. 그런데 막상 이렇게 털어간 군인들이 또다시 누군가에게 털리고, 그렇게 약탈한 물건들조차 군인들끼리 서로 털고 털리고를 반복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아이러니.

몇몇 대북매체에 따르면 2014년 7월 20일 김정은이 직접 참관하는 방사포 사격훈련에서 포탄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인민군의 탄약 관리가 부실하여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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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오히려 사정이 과거보다 열악해졌기 때문에 발악을 더욱 위협적으로 하므로(벼랑끝 전술, 미사일 발사쇼 등) 이 부분을 항상 경계하자는 것이다.
  • [2] 또한 기후적으로도 강수량 자체가 남한보다 압도적으로 적은 지역이 많은 탓도 있다. 당장 지리시간에 배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서북과 관북지역은 남한의 영남지방보다도 넘사벽으로 비가 잘 안오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거기다 인재가 겹친 상황이니 식수를 비롯한 물 사정이 어떨지는 안 봐도 비디오일 것이다.
  • [3] 한국전력 기술자이며 만화가. 하지만 만화는 부업이다.
  • [4] 원래 수송난 자리에 식수난이 있었는데, 이건 식량난의 하위 카테고리로 놓아도 무방하다. 사실 북한의 식수난은 식량난에 밀려 관심을 못 받아서 그렇지 꽤 심각한 상황으로, 이는 낡은 통수시설, 강하천 등 식수원의 오염과 가뭄으로 인한 고갈, 치수사업의 중단 등이 주 요인으로 작용한다. 덕분에 주요 도시들에서는 아예 도시 우물을 파서 식수를 해결하는 판. 그리고 식수난은 수많은 제3세계 저개발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 [5] 1980년대부터 전력부족->석탄 생산량 감소->석탄 수송 차질->전력 부족->석탄 생산량 감소->석탄 수송 차질의 악순환이 돌고 돌면서 1990년대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화력발전소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특히나 북한의 탄광들은 대부분 갱도식이라 전기가 없으면 펌프 가동이 멈춰버려 내부에 지하수가 들어차 쓸 수가 없게 되므로 더더욱 치명적이다. 그나마 발전원천이 풍부한 수력발전은 한반도의 하상계수가 워낙 극과 극인지라 정작 전력이 필요한 겨울철엔 제대로 가동이 힘들고, 수풍발전소를 비롯한 상당수는 잘해봐야 1960년대, 심하면 일제강점기의 설비로 가동중이라 효율도 시망상태다. 2000년대 들어서 이리저리 발전소를 짓고는 있는데, 발전소 건설현장 영상들을 보면 사람 손으로 통나무와 돌을 날라 강을 막은 후(...) 살수대첩 수공설 증명 공사 후반부에서나 중장비를 동원하는 수준이다. 이러다보니 다른 곳도 아니고 그 유명한 희천발전소가 구조적 결함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판이다. 어차피 그 쥐어짜낸 전력도 수도인 평양과 주요 군수공장, 우상화 선전물이 공급 1순위인데 그마저도 송전설비가 개판이라 손실이 어마어마하다(...)
  • [6] 전기가 없으니 철도가 운행이 안 되고, 차량으로 대체하려고 해도 차량생산능력과 도로수준 모두 시망상태다. 원료가 수송이 안 되니 물건이 생산이 안 되고, 석탄이 수송되지 않으니 전기가 안 나오며, 교과서가 수송되지 않아 수업을 못한다!(...)
  • [7] 1달을 1년으로 잘못 쓴 게 아니라 정말로 1년에 4번이다! 김정일 생일(2월 15일), 김일성 생일(4월 15일), 조선로동당 창건일(10월 10일), 그리고 한국군혹한기 훈련에 해당하는 동계훈련기간 개시일(12월 1일). 그것도 이게 보급상태가 좀 낫던 시절의 이야기다.
  • [8] 그나마 보급 나와도 돼지가 장화 신고 건너간 물을 조금 마시고 나머지는 위에서 다 떼먹는다고 한다.
  • [9] 스토리 담당 seri의 블로그를 보면 실제로 이 부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 [10] 남한도 1970년대까지는 군대에서 식량이 부족해 이런식으로 배식을 했다.
  • [11] 원래 본 항목엔 탈북장교 이철호 씨가 남한의 재료들로 북한군의 명절 특식을 재현한 영상이 있었으나 유튜브에서 그가 업로드한 모든 영상이 삭제되었으므로 영상을 못 본 이들을 위해 동영상에서 보여졌던 내용들을 기술한다.
  • [12] 소금이 워낙 흔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잊기 쉽지만, 인류의 기나긴 역사 내내 소금은 상당한 귀중품이었다. 염전 운영에 필요한 비용이나 노동력, 부피와 무게가 상당한 소금의 운송에 필요한 운송 역량 등을 생각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고, 특히 수송망이 박살나버린 현재 북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당장 식량난에 허덕이던 1990년대에도 북한 정부는 동해안에 제염소(염전)를 확충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현재도 소금생산계획의 완수 여부는 농수산업 및 광공업 부문의 생산활동과 함께 중요한 보도내용이다.
  • [13] 다만 평양같은 경우는 가정마다 김치 1톤(작은 배추로 약 600포기)을 구비할 정도로 소금이 충분한 듯하다. 군대와는 다르게 고추장과 고춧가루도 나름 넉넉히 들어간다! 다만 살기 위해서 먹는 거다 보니 김장할 때에 배추 속에 명태돼지고기, , 미나리, 낙지, 뱅어, , 부추 등등 영양 보충이 될 만한 건 다 때려넣고 버무려 이걸 다시 배춧잎으로 싸다가 만두마냥 끓이거나 삶아먹는데 맛이 남한과는 비교가 안 되게 좋다고(!!!).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만큼 이웃집과 군대에서 털어간다는 것 정도(...).
  • [14] 뚱땡이우스가 멍청한건지 못본건지 모르지만 이런 상태는 그나마 괜찮은 거다. 진짜 위험한데는 핵시설인데, 거기서 돈 몇푼 쥐어주면 관련 자료와 핵무기 정보를 거저로 얻을수 있다 한다! 추적 60분에서 나왔다.
  • [15] 땅이 척박한 고지 정상에 GP가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민경부대들은 화전을 일구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가끔 밭에 불을 놓다가 GP 초소(북한군 GP는 거의 대부분이 지하화 되어있고 초소 하나만 달랑 나와있는 경우가 많다.)를 태워먹는다거나, 불을 끄지 못해 며칠동안 GP 주변 고지가 불덩어리(...)가 되는 보는 입장에서는 그만한 개그가 없지만 웃지못할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 [16] 계급이 중위이고 녹색견장을 찼는데 지휘관 휘장을 차지 않은 것으로 보아 헌병 소대장.
  • [17] 1996년에 사관급으로 칭해질 정도의 고참 하전사였으니 198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것이라면 80년대에도 어려웠던 듯하다.
  • [18] 이젠 성조숙증 때문에 8~9살 평균 키다.
  • [19]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하면 초등학교 2~3학년 수준의 신장이다.
  • [20] 안그래도 체격 좋은 남한 병들조차 혹한기 훈련때 텐트는 기본, 바닥은 판초우의와 담요로 덮고 야전상의에 깔깔이 상하의 세트에 내복에 쫄쫄이까지 껴입고 침낭에 기어들어간채 이걸로도 모자라서 핫팩 십수개를 터트려도 미친듯이 춥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안그래도 체격이 넘사벽 열세인 북한 하전사들이 텐트 안치고 담요도 없이 깔깔이랑 판초우의 하나만 입고 맨바닥에서 잔다? 문자 그대로 얼어죽을지도 모른다.
  • [21] 미국의 사망율이 당시의 북한과 같았다면 무려 천이백만 명이 죽었을 것이다.(...)
  • [22] 75년 판문점 도끼사건 당시 북한군 총병력은 55만 명이었다. 당시 한국군은 60만 명이었다.
  • [23] 똑같이 중국도 군필자가 중국 공산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이유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수뇌부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기 때문.
  • [24] 단, 여성의 경우에는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상대적으로) 체격이 좋은 사람만 복무하게 된다.
  • [25] 2 (인구가 1/2밖에 안 되므로 1/(1/2)=2) × 4 (복무기간이 4배임) × 2 (여군도 징집함) = 16
  • [26] 사실 징병제몽골군도 한화로 쳐서 약 70만원의 국방세를 내면 정식으로 면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공식적으로 법에서 정한 것이다.
  • [27] 참고로 북한의 모병 절차는 경호부대가 먼저한 다음 그 다음으로 특수부대가 마지막으로 일반 부대나 공병으로 가는 사람들을 뽑는다고 한다.
  • [28] 북한의 경우, 북한 정부부터가 최고 존엄이라고 칭하는 김일성 일가 주도의 체제를 지키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막장을 달리는 나라가 아닌 다른나라에서 퇴출 되거나 배척 되는 것만 도입하여 자기네들 입맛에 맞게 개악(改惡)시키는 경향이 있다.
  • [29] 중국 인민해방군은 인해전술이나 대륙의 기상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달리 처음부터 청렴한 체계로 구성된 군대였던지라 병영부조리가 적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이 "신사적인 군대"로 평가되기도 했으니...물론 병영부조리 항목에서 보이듯 요즘은 더 이상 아니다.
  • [30] 사실 휴전선 부근은 전방이라 근무시 실탄이 지급되는 데다가 기후가 따뜻하고 최전선이니 당연히 최소한의 급양이 제공된다고 하나(…) 이는 북한의 경제적 형편이 그나마 좋았을 시절의 이야기다.
  • [31] 물론 복무기간 동안 단 한번이지만 매년 입대자 수를 따졌을 때 수만 발의 수류탄이 매해 터지고 있다니 이건 흠좀무. 하지만 수류탄 훈련 교관 처지가 더 흠좀무하다.
  • [32] 비행단 헌병 기준 장갑차소대 혹은 기동소대는 월별로 '실거리 사격'이라는 훈련을 받으며 비행단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육군 사격 훈련장을 빌려서 실시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사격훈련과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이에 대한 휴가의 불이익이라든지 하는 것은 없다. 이 때 부대마다 다르지만 보통 20발씩 사격하는 경우가 많으며, 표적은 자동화 표적을 사용한다. 즉, 비행단 헌병 기동소대의 경우 1년 교탄 소모량은 통상 분기별 25발, 월별 20발씩 해서 340발 가까이 된다. 단, 월별 실거리 사격의 경우 부대의 사정에 따라 이월되거나 생략될 수도 있다.
  • [33] 오중흡은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시절 동료로, 김일성 부대가 일본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자신이 지휘하는 7연대가 김일성부대인 척 하고 일본군을 유인해 김일성을 피신시키고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이 오중흡의 아들이 바로 오극렬이다.
  • [34] 대한민국 예비군 정도의 부대
  • [35] 농담이 아니라 최소한 한국군에서 저런 선전 동영상 찍다가 문제가 생겼으면 생방송이 아닌 이상에야 사수가 사실대로 보고하고 조치 후 다시 촬영했을 것이다. 저걸 말도 못할 정도면...
  • [36] 대전차 로켓은 반동을 억제하기 위해 후폭풍이 발생하는데, 이 후폭풍은 직격으로 맞으면 사람은 으앙 주금. 이때문에 대전차 화기를 쏠때는 후방에 장애물이 있어도 안되는데 영상의 저 하전사처럼 엎드려 쏠려고 하면 다리가 날아간다. 엎드려쏴도 가능한데, 그러면 몸체 자체를 90도로 틀어버리는 무반동총 특유의 사격자세를 취해야한다. 사격할 땐 꼭 다리를 벌려야하지만 이 때는 예외다. 벌리면 후폭풍이나 발사 화염에 다리가 날아갈 수 있기에 다리도 일자로 꼭 붙인다.
  • [37] 대한민국 예비군의 경우 30대 이상은 대부분 간부들이다.
  • [38] 후술할 내용들에 따르면 정치장교 10만, 평양 방위병력 12만, 건설부대 30만을 뺀다고 가정하면 실제로 휴전선에서 남한군과 맞붙게될 전력으로 쳐줄수 있는 북한군은 110만-50만해서 총 60만 가량. 그나마도 많이 봐준거고, 후방부대와 전략 예비대로 빠지는 병력, 그리고 대단히 열악한 보급사정과 훈련도를 감안하면 북한군의 실제 전투 가능한 병력은 더더욱 줄어든다. 특히 남한은 방어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병력을 동원해 방어할수 있고, 예비군까지 동원한다면 오히려 북한이 남한에게 쪽수로 밀려버리는 상황이 쉬이 연출될수 있다.
  • [39] 다만 이건 버전별로 조금씩 다르다. 일단 오극렬이 총대를 멨고 퇴물 오진우가 김일성에게 달려가 어떻게 정치장교를 없앨 수 있냐고 읍소한 것까지는 공통적인데, 김일성이 정말 대놓고 "누구한테 총부리" 운운까지 했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
  • [40] 정작 감시대상인 군단장은 거병을 완강하게 거부하여 정치장교랑 보위부원에게 독살됐다.(...)뭐가 뒤바뀐 느낌
  • [41] 물론 정치장교가 소대장에게는 배치되지 않고 중대장에게 1명씩 배치되긴 하는데 그럼에도 정치장교가 저렇게 많은 이유는 대대장에게 3명, 연대장에게 5~6명, 사단장에게 10명 이런식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 [42] 정치장교 항목에도 나온 이야기지만, 이럭저럭 60년 이상 유지되어 자기 체제 내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사회의 거의 전부를 이루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제정시대에 교육받고 임관한 군 지휘관을 신뢰하지 못해서 감시역으로 정치장교를 배치하던 초기 소련 시스템에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현 시점에서는 군 지휘관보다 정치장교나 보위부원이 더 정권에 충성스러울 것을 기대해서 감시역으로 배치했다기 보다는 상시적 감시체제의 일환으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보는 쪽이 더 적절하다. 만약 누군가가 정권에 반기를 들 결심을 하더라도, 지휘와 감시체계가 저따위로 꼬여있으면 병력을 동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기도 하고.
  • [43] 북한에서 최전방도시 취급하면서 4군단을 짱박아놓은 해주조차 판문점에서 직선으로 85km나 떨어져 있다.
  • [44] 닭을 훔치는 이야기는 군대 정훈교육 시 탈북자가 자주 해주는 말이다! 여기서는 돌로 되어 있지만 모 탈북자는 쇠꼬챙이를 데워서 살살 꼬드겨서 닭을 훔친다고(...).
  • [45] 김일성 역시 '내 양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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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3 13: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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