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조선인민군

동아시아의 군대
대한민국 국군 조선인민군 중국 인민해방군 중화민국군 자위대 몽골군

조선인민군
조선인민군 육군 조선인민군 해군 조선인민군 공군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 조선인민군 특수부대 조선인민군 준군사조직

705190318a80a11736d8847cb0101e4e.jpg
[JPG image (591.84 KB)]
north-korea-military-parade-images.jpg
[JPG image (171.29 KB)]
PS13031100280.jpg
[JPG image (167.8 KB)]
northkoreawomenarmy.jpg
[JPG image (62.57 KB)]
nk03222.jpg
[JPG image (158.39 KB)]
i0528297-1325993202.jpg
[JPG image (57.57 KB)]

조선인민군
세계 군사력 순위[1] 36위 (2015년 2월)
상비군 119만 명#[2]
예비군 770만 명#[3]
육군력
3세대 전차 0 대 캐안습
2세대 전차 2,350 대
1세대 전차 2,400 대[4]
그 밖의 구형 전차800+ 대[5]
륙양용 전차 460+ 대
전차 총합 4,200 대 (2011년)
장갑차(APCs/IFVs) 2,582 대 (2011년)
견인포 1,500 문 (2011년)
자주포 1,600 대 (2011년)
다연장로켓 600 대 (2011년)
수송 차량 8,000 대
공군력
헬리콥터 328 기 (2011년)
4세대 전투기[6] 40 기
3세대 전투기[7] 206 기
2세대 전투기[8] 238 기
항공기 총합 약 1,650 기[9]
해군력
4,000톤급 호위함[10] 0 척
3,000톤급 호위함 1 척
2,000톤급 호위함[11] 1 척
초계함, 고속정 473척[12]
잠수함 58 척 (2011년)
전투함 총합 708 척
장비는 60년대 소련군, 군기는 40년대 일본군, 군인들 체격은 초등학생
아이고 의미없다
왠지 양상국심영이 있는 것 같다?
제일 밑 북한여군에서 오나미의 느낌이?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수뇌부
4. 안습한 내부 사정
5. 해외 참전 / 지원 경력
5.1. 직접적인 참전
5.2. 무기 수출
5.3. 군사 훈련
5.4. 기술 이전
5.5. 외국과의 조약/관계
6. 계급
7. 편제
7.1. 육군
7.2. 해군
7.3. 공군
7.4. 전략미사일군
7.5. 특수부대
7.6. 여군
7.7. 준군사조직
7.8. 예술단
8. 참조 항목
9. 출처 목록

1. 개요

한자: 朝鮮人民軍 / 北韓軍
영어: Korean People's Army / North Korean Army

조선인민군은 조선노동당군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정은의 사병이다. 북한에서는 "인민군"으로 줄여부른다. 그런데 아래 3번의 하위항목과 같은 사유로 현재 북한 사회에서는 인민군이 아니라 재산을 골고루 나누어 가진다는 의미로 공산군이라는 아스트랄한 별명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한민국에서 한국전쟁을 다룰 때 조선인민군을 인민군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 전쟁 당시에는 "공산군"이라고도 불렸다. 이후 냉전시기에는 소련 혹은 중국의 꼭두각시 군대라는 혐칭으로 "북한괴뢰군"(傀儡軍) 줄여서 "북괴군"(北傀軍), 이라고 주로 불렀고 현재도 김정은의 꼭두각시로 역시 북괴군이라고 부른다. 다만 냉전 이후 일시적으로 북한군이라고 부르는 일도 있었지만 현재는 다시 북괴군으로 평가하는 상황.

1948년 2월 8일 창설되었으나 1978년부터는 항일 빨치산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강조하기 위해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창설했다는 날인 1932년 4월 25일로 창설 시기를 앞 당겼고, 해당 날짜를 '건군절'로 지정해 공식화하고 있다.

옆나라군대와 마찬가지로, 북한 지역의 군대는 아니다. 조선인민군은 북한의 노동당인 조선노동당의 군대다. 이러한 특징은 사실 공산주의 국가의 특징인데, 공산주의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국가에 속한 군대'가 없다. 다만 인민에 의해 자발적으로 구성된 인민군이 있을 뿐이고, 이는 각 나라의 공산당에 속하는 당군(黨軍)일 뿐이다. 국가에 속한 군대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지와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는 압제의 도구에 속한다는 마르크스의 오랜 이론에 근거한 것이라고 본다[13].

사실 공산권이라고 '인민의 군대'라는 표어가 완전히 허상은 아니었던 것이, 독군일 통일 당시 차마 몰려오는 동독 주민들을 쏘지 못하여 국경을 개방했고, 루마니아 인민군은 차우세스쿠 처단에 앞장섰다. 하지만 조선인민군은 김씨 일족 독재정권의 주구가 되어 인민을 탄압하는데 전력을 쏟아붓고 있으니, '인민의 군대'이기는 커녕 '김씨 일가의 사병'이라고 불러야 할 존재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국정운영은 전반적으로 당의 권한이 강하고 내각을 필두로 하는 국가기관은 그냥 실무기관 정도의 위상이다. 이를테면 김일성 시기의 북한 내각은 아예 이름까지 정무원으로 바뀌었고 당기구를 근간으로 하는 중앙인민위원회가 국정을 다 해먹었다. 김정일 집권 이후로 괜히 북한의 내각 권한을 주의깊게 살피는 게 아니다.

2. 역사


북한이 나오기 전부터 역사를 지닌 조직이다.

1945년 10월 21일 소련 제25군 사령부의 명령으로 보안대가 창설되고 이 과정에서 조선의용군이 배제된다. 보안대의 임무가 철도안전을 포함한 형태의 임무확대가 되어서 철도보안대가 추가로 창설되는 1946년 1월 16일에 철도보안대에 합류하게 됨으로서 북한군의 기초가 된다. 현재도 북한군 군인들의 신분은 철도보안원을 겸임할정도로 이 철도보안대가 조선인민군의 전신이다. 그리고 군내 정치사상 교육과 군사분야의 간부양성을 위해 1946년 2월 평양학원(49년 1월 인민군 제2 군관학교로 개편)과 6월 중앙 보안간부학교(48년 12월제1 군관학교로 개편) 등의 군사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1946년 8월 15일 규모가 확대된 보안대를 통합·지도하기 위해 평양에 보안간부훈련대대부를 창설했고, 9월에는 인민집단군 총사령부로 개칭했다. 1948년 2월 4일에는 민족보위국이 설립되었고, 마침내 북한 정부수립 7개월전인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조선의용군은 1949년 7~8월에 2만명이 북한으로 들어옴으로서 북한군에 최초로 합류하게 되며 1950년 5월에 추가로 약 2만명 가량이 입북한다. 이로 인하여 중국 공산당과 함께 활동한 군대 출신인 경우가 많게 된다. 먼저 김원봉선의용대에서 이탈해 중국 연안지방으로 간 군대인 선의용군이 있다. 또 조선의용군과 함께 태항산에서 결성된 북조선독립동맹의 일부 인원도 포함된다.

그리고 만주에서 활동했던 북항일연군도 조선인민군에 포함되는데, 이 동북항일연군은 완벽히 통일된 군대는 아니었고 만주 일대의 공산주의 계열 유격대들을 공산당 주도로 통합한 일종의 통일전선 연합체 성격을 띠었다고 한다. 김일성이 제1로군 2군 6사의 대장이었다. 김일성은 이후 만주에서 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탄압을 받자, 소련으로 넘어가서 련 극동군 제 88 국제여단에 합류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소련에서 활동하던 소련 유학파 등이 모여서 형성되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느슨한 분위기의 군사조직 연합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점을 두고 북한에서는 "민족적 단결을 통한 인민의 군대 창설"로 평가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 점령되고 나서, 북한군이 서울에 주둔할 당시, 야전병원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한 간호사나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소위 말하는 연안파, 다시 말해 조선의용대 출신 인원들이 김일성과 그의 직통 라인인 소련 극동군 88여단 출신 인물들에 비해 상당히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연안파 군인들은 공공연히 이러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정규군 약 119만명, 예비전력 총합 약 950만명을 보유하고 있어 병력규모상은 세계 3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인구수와 대비하면 군사국가라고 해도 될 정도로 군인의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 인원도 그저 부족한 전투력을 메꾸기 위한 조치로 생각될 정도로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춘 것도 아니다. 참고로 세계에서 3위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그 북한군의 군사력 순위는 기껏해야 20위 후반는데... 40여 개의 나라가 추가되면서 35위로 또 떨어졌다. 사실 평가된 나라가 68개국에서 106개국으로 늘었다. 다만 세계 최상위권의 군사력을 가진 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포함되어 있었기에 나라 비율만큼 순위가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전쟁 당시의 조선인민군선의용군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민군은 북한의 정식 군대이고 의용군한국전쟁 당시 남한 지역에서 자원 또는 징집된 인원으로 편성된 군대를 이야기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김원봉 장군이 이끌던 선의용대를 뿌리로 하는 선의용군이 존재했지만, 이건 다른 군대다. 물론 이들이 광복 후 북한에 돌아와서 안파를 형성한다. 조선의용군의 주요 인물들이 바로 김두봉무정 장군이다.

당연하게도 이 의용군은 북한 정규군에 비해 차별을 받았고, 전쟁이 끝난 뒤에 포로교환을 할 때도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라고 한다.

이 항목에 나오 듯이 통일 한국이 성립되면 군대개편중 최우선 0순위 대상으로 될 것이다. 물론 이웃에 있는 가장 큰 위협요소가 있어 적어도 현재 대한민국 국군의 병력 수를 유지해야 될 것으로 보아 해산되는 북한부대들 중 남한의 징병검사 기준+기타 보위부등 협력경력등의 자격심사 에 충족된 자들 위주로 남한식 훈련을 다시 받아 편입되거나 예비군으로서 훈련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전부 해산하기에는 인력이 크고 남북한 통합이라는 입장에서도 배제되는 문제인 관계로 북한군의 포용과 군사통합의 과정에서 그들이 기용될 가능성은 크다. 수용가능 인원은 대략 5만명 최대 17만명까지 인수할 가능성을 전문가들이 제기하고 있다.

다만 단순히 해체했을 때의 문제는 엄청난 대량 실업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북한 군인 제대군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에 출간한 소설가 이응준의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에서는 통일 이후 실업자가 된 북한 군인의 절망감을 표현했다. 근데 어차피 지금도 실업자는 커녕 남한 노숙자 이하잖아?
하지만 통일 이후 북한 지역에 대대적인 인프라 개발에 의한 토목 건축 사업이 엄청날 것을 생각하면 실업문제는 한동안 걱정 안해도 될 일일 지 모른다. 거기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불법체류자 대신 북한 노동자 취업을 장려하기도 할 것이고, 취업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통일 이후 새로 유입되는 인구 2000만, 이중에 투표 가능한 유권자도 수백만에 달할 텐데 높으신 분들이 표밭 개척에 나서며 이북 지역에 대해 선심 정책을 진행하지 않을리 만무하다.
아무튼 문제가 없지 않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고 암울하게 볼 필요는 없는 일이다[14].

3. 수뇌부


한국 입장에서 보면 조선인민군은 간단히 말해 국가단체, 군벌이다. 다만 한국과 북한의 특수한 관계상 대령급에서 실무회담 등의 접촉이 간간히 있긴 하다.

PYH2013032900320001300_P2.jpg
[JPG image (47.92 KB)]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15]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 총정치국장
김정은 현영철 차수 영길 대장 황병서 차수

인민무력부장에 현역군인이 임명된다는 점에서 문민통제는 씹어먹었다. 다만 당군인 인민군의 특성상 인민무력부장의 지위는 그리 크지 않다. 중국은 북한과 달리 국방부장이 한국의 국방장관과 비슷한 직무를 수행한다. 국방부장이 제복군인 가운데 최선임 대우도 받는다. 정치군인화가 심한 북한이라 총정치국장이 강할 뿐이지 다른 공산권에서는 기본적으로는 군대는 국방장관이 관리했다.

North_Korean_high-ranking_officials.png
[PNG image (1.33 MB)]


상단 사진 앞줄의 왼쪽부터 4.5번째가 총참모장 리영길이다. 안경 쓴 양반. 출처

사진 인물들을 면면을 보면, 왼쪽의 어깨만 나온 자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이며 그 다음은 영춘 방위원회 부의장, 도춘 조선노동당 서기(군수 담당), 정남 인민무력부장, 영길 총참모장, 최룡해 총정치국장이다. 맨 앞의 둘은 리설주김정은이며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의 뒤에 선 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16], 그의 오른쪽에 봉주 총리이다. 박 총리의 오른쪽은 기남 선전선동부장, 최태복 조선노동당 서기(외교), 형섭 최고인민회의[17] 부의장, 석주 내각 부총리이다. 상단 사진은 2013년 12월 17일에 김정일 추도식에 모인 사진이다.

하단 사진은 상단 사진의 1년 전인 2012년 12월 17일 추도식 사진이다. 하단의 인물들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화살표가 붙은 인물을 따라 최태복 조선노동당 서기(외교), 김기남 선전선동부장, 김경희, 영림 전 총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설주, 김정은, 최춘식 제2자연과학원장[18], 최룡해 총정치국장, 장성택, 현영철[19], 격식 전 총참모장, 영춘 전 인민무력부장이다.

사진 두 개를 대조해 보면 알겠지만, 2012년에 추도에 참석했던 김격식, 김경희, 장성택, 최춘식이 2013년에는 불참했다. 또한 2012년에는 미묘한 앞뒤 차이는 있을지언정 김정은-리설주 부부와 다른 간부들이 한 줄에 비슷하게 나란히 섰으나, 2013년에는 김정은-리설주 부부만 확실하게 앞으로 한 걸음 나와 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참고 영상

또한 사진을 보면 죄 육군밖에 안 보이는데, 실제 쪽수가 육군만 많은 구조 탓이긴 하지만, 인민무력부 근무자는 해공군도 육군 피복을 착용케 하는 규정 때문이기도 하다. 답이 없다.

4. 안습한 내부 사정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실은 시궁창 더간단하게 말하면 망했어요
간단하게 말해도 들어가게 된다.

5. 해외 참전 / 지원 경력

5.1. 직접적인 참전

베트남을 소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당시 북한의 슬로건은 '월남에서 미군이 100명 죽으면 남조선에 있는 미군이 100놈 죽는 것이나 같으므로 월남을 도와주어야 한다'였다. 1967년에는 전투기 조종사(비행연대 2개), 1972년에는 공작원을 베트남에 파견해 게릴라 활동을 지원하였다. 기타 수송병, 화학병 등의 형태로 소규모 참전하였다. 북베트남은 훗날 북한군이 요구한 서방진영 군수품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쟁이 끝난후 베트남은 중국과 사이가 벌어졌는데, 이때 친중국 정책을 취하던 북한과도 사이가 벌어졌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후 베트남은 철천지 원수였던 미국과 베프를 먹을 정도로 반중 국가가 된다.

다만 F-5A-37등의 공군 항공기와 M48 전차, M16 소총 등 각종 육군 무기가 북베트남군에 노획되었고 이 중 일부는 공산국가로 흘러들어간 점 등을 봤을 때 소량이라도 노획품을 제공했을 것이다. 폴란드의 경우 북베트남에게 인계받은 F-5와 A-37을 국영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96년에 귀순한 북한 조종사는 F-5를 조종한 선임을 맞이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전투기 조종사 지원 말고도 추정적으로 북한군 심리전 요원등이 활동한 것으로도 추정되고 있다.

  • 4차 중동전
1973년 10월에 발발한 제4차 중동전(욤 키푸르 전쟁) 당시 이집트에 미사일 요원 30명과 전투기 조종사 및 정비사 50명을 파견하였다. 이때 파견된 사람중 하나가 클린턴 대통령 시절 북한을 방문한 명록 차수(당시 대좌). 이때 북한 조종사와 군사고문단들은 큰 활약을 했다고 한다. 당시 공군 사령관이었던 무바라크는 대통령이 된 후 은혜를 갚기 위해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를 끝까지 지켰다.[20]

동맹회의에 가입한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에 80년대부터 군사고문단을 파견하였다. 리비아에도 북한의 군사고문단이 파견되었다. 프란스 알버트 레네 대통령 치하의 세이셸에 전투기 조종사를 파견하였다. 동남아시아 브루나이와 캄보디아에서 저격여단 요원들이 경호 업무를 수행하였다.

5.2. 무기 수출



북한은 1960년대부터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등 전세계적으로 무기를 수출(내지 밀매)하고 있다. 1980년대의 전성기 때는 연간 5억 달러 가량을 벌었으나, 2000년대부터 국제 사회의 감시가 심해지자 연간 1억 달러 정도로 수입이 줄어들었다. 뉴욕 타임스는 "북한의 무기는 저렴하면서도 위력적이기에 경제가 어려운 제3세계 국가들에게 딱 맞다."고 평하였다. 러시아제도 싸지 않냐는 말이 있지만 이런 것은 러시아군 감축의 부산물인 폐기병기를 밀수한 것이 대부분이다. 제대로 규격에 맞춰 생산하게 되면 AK-74도 절대 싸지만은 않다.

아프리카에서는, 디에 라치라카 대통령 치하의 마다가스카르에 고사기관총 등의 무기들을 대여하거나 수출하였다. 2007년 1월 비로봉호를 통해 3,400여t의 무기를 콩고민주공화국에 수출하였다. 2009년경 콩고를 향하던 화물선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임검당해 T-55 전차 부품 등을 압류당했다.

중동에서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스커드 미사일, 곡산형 자주포(M-1978, M-1989)를 이란에 수출하였다. 곡산형 자주포 중 일부는 이라크군에 노획되어 이라크 전쟁에 사용되었으며, 최소 2문 이상이 밀수를 통해 한국군에게 넘어갔다. 1987년 4월 이란에 차호급 경비정(80t대) 3척을 수출하였다. 1990년 11월경 타막골호를 통해 시리아에 스커드 C 미사일 80여기를 수출하였다.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M-1985 240mm 다연장로켓을 수출하였으며, 이는 이스라엘군과의 전쟁에 사용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군이 북한제 140mm 다연장로켓 BM-14를 사용했다. 2009년 미얀마에 M-1991 240mm 다연장로켓을 최소 14문 이상 수출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알려진' 수출행위 외에도 비밀리에 '수출'을 행하는 경우도 빈번히 있다. 2009년 무기를 수출하려다가 태국군에 의해 압수되었다. 목적지는 이란, 스리랑카, 우크라이나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RPG-7, 맨패즈, M-1985 240mm 다연장로켓, 대포동 2호의 부품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당시 벌어진 리비아 내전 도중 리비아 정부군이 퇴각하면서 놓고 간 북한산 무기가 잔뜩 발견되었다. 불도저 부품이라는 식으로 위장 포장을 해서 들여온건데 포장지에 당당하게 북한의 국명이 으로 적혀있는데다가(...) 완제품 무기에도 한글이 적혀있어서(...)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다.

5.3. 군사 훈련

디에 라치라카 대통령 치하의 마다가스카르에서 대통령경호여단을 훈련시켰다.

1983년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치하의 짐바브웨에 교관 130명을 파견해 대통령경호여단(폭풍여단 또는 짐바브웨 제5여단)을 훈련시켰다. 이 여단이 무가베의 반대 정파에 대한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전과 때문에, 2010년 현재도 일부 짐바브웨 국민들은 북한을 증오하고 있다. 무가베는 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2위)와 김정일(3위)보다 더한 세계 최고의 독재자로 선정된 인물로,물론 2012년엔 김정일이 세계최고의 독재자에 선정됐지만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을 세계 1위로 만들었다. 짐바브웨는 끝내주는 친북 국가로, 관공서에는 주체사상 전집이 놓여 있다든가 무가베의 사진과 김일성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든가라는 흠좀무한 국가다. 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부통령을 위원장에 임명하여 추모위원회를 만들었고 심지어 매년 김일성이 사망한 달을 애도기간으로 지정해놓고 행사를 연다고 한다.

IRA, 하마스헤즈볼라, 소말리아 군벌 등의 무장단체를 훈련시켰다.

2007년 5월 콩고민주공화국의 정부군을 훈련시켰다.

5.4. 기술 이전

1994~1998년경 이란은 북한의 '노동 1호' 개발비 전액과 부품을 제공했다. 그 대가로 기술 이전을 통해 이란의 탄도미사일 'Shahab-3', 파키스탄의 탄도미사일 'Gauri'가 만들어졌다. 다른 제3세계 국가들에게도 미사일 기술을 전파하고 있다.

5.5. 외국과의 조약/관계

조-중 우호협력 및 호상원조조약은 전쟁 상태에 놓일 때 중국이 자동개입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중국으로서도 미국과의 전면적 대립은 피하고 싶은 상황인 만큼 북한이 핵이나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시에는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기타로 모잠비크, 리비아, 쿠바, 몽골 등과 협력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외에도 미얀마 군사정부와 모종의 관계를 설립하였다. 두 국가 모두 국제사회에서 삐뚤어진 국가 중 하나.

7.4. 전략미사일군

7.7. 준군사조직

9. 출처 목록

  • 단행본
    • 정연, 2007,『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 플래닛미디어.[22]
    • 강명도, 1995,『평양은 망명을 꿈꾼다』, 중앙M&B.[23]
    • 2012 국방백서

  • 논문
    • 함택영, 1997,「남북한의 군사력 - 사실과 평가방법」, 국제정치논총.

----
  • [1] http://www.globalfirepower.com/
  • [2] 절대수량으로는 순위가 3~4위로 떨어지나, 인구대비로 따지면 주장이 다른 모든 나라조차 1등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약 4.5~5.0%. 상비군이 이 정도나 되는데도 나라경제가 버틸 수 있었다는게 기적은 아니고 미라클 수준. 애초에, 북한 경제가 버티는 걸로 보인다는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닌가?
  • [3] 명불허전 최고순위. 2위는 대한민국 320만명. 심지어 3,4,5위들도 200만이 안넘는다. 스위스나 미국, 이스라엘 조차 이렇게는 안한다. 사실 2차대전 말기 일본군이 국민 약 2500만명을 죽창(...)들려서 내보내려 한바 있는데 사실상 이 950만도 그런 부류로 볼수있다. 인구도 2500만밖에 안되고 경제는 파탄 직전에 이른 국가가 정규군 100만에 예비군 950만을 다 훈련시키고 무장을 시킬수 있는 여력이 있을까? 북한은 징병제라 한국과 동일하다 남자 전체가 예비군이다. 그들이 북한에 대한 애국심이 강하다면 어떻게든 하겠지 하지만 애국심이 있는지 의문이다
  • [4] T-54/55, 59식 전차,등 전혀 현대적이지 않지만 현대 주력전차의 개념을 가진 것들만 포함한다
  • [5] T-34 시리즈등 예비로 돌려지는 전차들이다
  • [6] 4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 [7] 3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 [8] 2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 [9] 북한 항공기 보유수량 출처
  • [10] 다른 국가와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 광개토대왕급을 4,000톤급 호위함으로 분류함. 구축함급은 최하 만재배수량이 5,000톤급 이상인 군함으로 구축함으로 분류하며 모든 국가에 공통적으로 적용함.
  • [11] 2,000톤급은 전후 300톤 까지는 융통성 있게 분류함. 예: 2300톤~1700톤 이면 2,000톤 호위함으로 분류. 4,000톤급은 전후 400톤 까지는 융통성 있게 분류함. 3,600톤 이상부터 4,000톤급으로 분류함. 이렇게 분류하는 이유는 만재 배수량에서 오차가 있고 상당수의 군함들이 이 오차내에서 몰려있기에 그러함.
  • [12] 초계함이나 고속정은 대규모 함대전에서 유효한 전력이 아니다. 이것들은 특작부대를 막을 때 한정적으로 유효하다.
  • [13] 다만, 마르크스의 이론은 정확히 말하면 군대란 본질적으로 권력을 지키고 사회를 억압하는 도구이므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군대가 필요없다'는 것에 가깝다. 구체적으로, 기존의 국가체제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의 자경단쯤 되는 조직(뭐, 이게 중국이나 북한의 '당군'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기는 하다.)이 군대를 대체하고, 종국적으로는 이 조직도 유지될 필요가 없다는 것. 말하자면 영구평화론에 기반한 군대 무용론으로써 주장된 것이지, 그냥 군대를 만들어서 이름만 당의 군대라고 바꿔놓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 [14] 차라리 문제를 걱정한다면 이북 지역의 절대적 빈곤이 해결되고, 남북간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시점이 더 심각할 것이다.
  • [15] 김정일을 영원한 위원장이라고 추대한 뒤 제1위원장이라고 한다고 한다... 김정은이 죽으면 영원한 제1위원장인가? 그럼 그 다음엔 영원한 제2위원장이겠네?
  • [16] 명색은 북한의 허수아비국가원수이다.
  • [17] 북한의 국회로 687석인데 601석이 조선노동당이고 나머지는 관제야당인 사회민주당이 51석, 천도교정우회가 21석, 무소속 13석 규모이다.
  • [18] 한국의 국방연구소에 상당하는 기관이다.
  • [19] 사진에는 'Hyong Yong-chol(형영철)'로 오타가 나 있다.
  • [20] 김일성이 죽고 다음해인 95년 수교협정에 서명한다.
  • [21] 그 외에 해군과 공군의 사령부 직속인 해군사령부협주단과 공군사령부협주단이 있으며, 준군사조직 중에서도 인민보안부와 조선인민내무군 직속의 협주단과 취주악단이 활동하고 있다. 기타 군단, 사단급 부대에도 약간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예술소조-한국의 동아리 개념-활동을 겸하는 공연 단체를 두고 있으며, 각 단위의 경비소대/중대에는 소규모 군악대가 조직되어 의장대 역할도 겸하고 있다.
  • [22] 문제는 '폭풍호' 떡밥 등을 볼 때 이 책에 대한 신빙성이 0에 가깝다. 일단 저자부터가 사기치고 중국으로 도망친 양반. 따라서 포병, 기갑 부분의 상당 부분은 제외했으며, 북한군 내에서 상식적일 것 같은 부분만 게재하였다. 플래닛 미디어는 보수적인 시각을 담은 군사전문 출판사이긴 해도 일단 정보적으로 꽤 볼만한 책을 많이 낸다.
  • [23] 김정일 유모이던 강보비의 조카. 김일성의 외사촌 친척이며 강성산 정무원 총리의 사위이기도 했다. 이 작자는 북한에서도 쓰레기급으로 거짓말 일삼고 횡포가 심하던 자(김정일 수하들도 저 새낀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하소연했을 정도)였는데 강보비를 친엄마처럼 여기던 김정일이 그나마 봐주었기에 살았다고. 그럼에도 김정일 들먹이며 사기 저지르다가 드디어 김정일이 처벌하려는 걸 눈치채고 남한으로 달아나서 지가 반공투사인양 뻥쳤지만 연이은 탈북자들에게 진실이 드러나고 결국 남한에서도 사기 및 달러 밀반출로 구속된 뒤로 잊혀졌기에 이 자의 증언은 신빙성이 매우 적다. 그런데 김정일 사망 후에 경민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직함을 달고 tv 인터뷰를 했다! 장성택 실각설 이후에 교수 직함으로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비롯한 종편에 자주 출연하고 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02 11:03:23
Processing time 0.2339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