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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

last modified: 2015-04-11 14:16:18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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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인 항목.

Contents

1. 개그우먼
2. 가수, 파이브돌스 멤버
3. 총기난사범
3.1. 범행 과정
3.2. 인적 사항
3.3. 이로 인한 논란
3.3.1. 한국인은 사과해야 하는가?
3.4. 기타
3.5. 관련항목


1. 개그우먼

KBS 공채 23기 개그우먼. 1983년 2월 2일 생이다. 개그 콘서트순정만화 코너에서 고독한 소년 푸르매 역을 맡았다가 그 푸르매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년 푸르스르매로 배역이 바뀌었다.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 지구를 지켜라에서 권재관에게 바가지를 긁는 아내 역으로 출연. 2011년 12월부터는 어제 온 관객 오늘 또 왔네에 아들(김장군)의 어머니 역으로 출연.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 그래서인지 서남 방언을 잘 구사한다.

2. 가수, 파이브돌스 멤버

승희 항목 참고.

3. 총기난사범

주의 : 사건 사고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설명이 있습니다. 개개인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열람에 주의해 주십시오. 실제 사건을 기초로 하여 작성되었으므로 충분한 검토 후 사실에 맞게 수정해주시길 바랍니다. 범죄 등의 불법적인 내용 및 따라하면 위험한 내용도 일부 포함되었을 수 있으므로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수정자는 되도록 미풍양속에 어긋나지 않게 서술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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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 본인은 자신이 차별당하는 동양인들에게 희망을주고 예수처럼 죽었다고 생각하는것같다.

#

1984년 1월 18일, 충청남도 아산시~2007년 4월 16일(현지시각, 한국은 4월 17일 )

1984년 충청남도 아산시 모종동(현 온양동)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 가족을 따라 서울로 이사가 도봉구의 아파트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 다니던 대학생으로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켜서 학생과 교수를 비롯한 33명(본인 포함)을 살해했다. 미국에서는 Cho Seung-Hui로 알려져 있다.

사건 초기에는 중국인이나 중국계 미국인으로 이후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잘못 알려졌으나 조승희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이민 후에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적이 없다. 유학생들도 흔히 사용하는 영어 이름조차 사용하지 않았던 점[1]으로 미루어볼 때 법적으로는 한국인이 맞다. 다만 8살 이후로는 계속 미국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한국인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경우다. 사실 아래의 항목에 서술되어 있지만 한국인이냐 아니냐란 논란 자체가 불필요한 사건이다.

3.1. 범행 과정

1차와 2차 범행 중간에 우체국에 비디오 메세지를 보냈으며 이후 방송국에 도착해서 메시지가 발견됐다. 2차 범행 이후 권총을 머리에 쏴서 자살했다. 안면이 완전히 날아가서 범인의 신원 파악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항목 참조.

3.2. 인적 사항

1993년에 어머니가 미국인 강도에게 살해당했고 아버지가 얼마 후 재혼을 했다는 오보가 있었는데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조승희의 친척이 강도 피해를 입었을 뿐 조승희 어머니는 입지 않았다. 참고.

8살 때 미국으로 이민갔으며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상당한 외톨이로 친구나 부모와의 대인관계는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도 친했다는 사람이 없다. 사회에서 고립되었다는 증언들이 많다. 그의 가족들은 이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상담도 많이 받고 엑소시즘까지 하려고 했을 정도. 그러나 그의 이런 사회적 고립은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꽤나 심각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가족이 이민을 가기 전 살았던 동네의 주민들에게 그의 대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를 기억하는 대다수의 주민들이 "말이 없어도 너무 없는 아이" 라고 기억했다.

이 점에 있어서 잘못한 것은 정신적 고통을 받음이 분명한데도 적절한 치료가 아닌 종교로 얼버무리려 했던 것이 아동학대가 아니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가족들도 조승희가 사회성이 없는 것을 심각하게 걱정하여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누나의 인터뷰에 의하면 동생의 사회적 고립과 특이성은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이 인식하고 있었고 부모들도 이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고.

조승희의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간 전형적인 한국 서민들로 미국 현지에서도 동네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고 세탁소를 경영하며 열심히 사는 조용하고 겸손한 소시민이었다. 조승희의 성장환경에 대해 더욱 의문이 드는 것은 손위의 누나는 명문 프린스턴을 나와 미국 국방부 쪽에서 일하며 사회생활도 원만한 재원이라는 것. 하지만 누나와는 달리 조승희는 공부는 잘했지만 사회성이 완전히 결여되고 주위와 단절된 청년으로 자라났다. 이것은 외부적인 요인이나 인종 차별로 인한 결과라기 보다는 조승희 본인에게 어떤 심리적 또는 정신적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한다.

여하간 이런 사회성이 결여된 성격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집단괴롭힘(bullying)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더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도 학교 내 왕따나 집단괴롭힘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데 조승희의 경우는 본인의 문제 있는 성격에 인종 차별까지 기인하여 학창시절에 다른 학생들에게 심하게 집단괴롭힘을 당해왔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전혀 소리내어 읽으려 하지 않다가 교사가 F학점을 주겠다는 위협에 가까스로 했는데 그 발음 때문에 같은 반 학생들은 모두 큰 폭소를 터뜨리며 비웃었고 심지어는 "중국으로 돌아가라" 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옷을 찢기거나 또는 맞는 등 전형적인 집단괴롭힘을 심하게 당했으며 이런 것은 그에게 미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키운 것 같다. 조승희를 기억하는 고등학교 동문들은 "정말로 사람들이 그에게 너무 잔인했고 그는 심하게 괴롭힘을 당한 게 맞다" 라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방송국에 보낸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서 특정 인물을 비난하는 것이 아닌 미국 대중들을 적대시하는 메세지를 남긴 걸 보아 사회 자체를 증오한 것 같다. 미국 사회에서 부적응하면서 피해망상과 우울증으로 사회를 증오하게 된 것. 물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멀리 지낸 것은 사실이지만 죄없는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하고 주변에 큰 슬픔과 충격을 준 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항간에 조승희가 아메리칸 아이돌에 예선 참가를 했다는 사실이 나도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유머 사이트에서 비꼬는 의미로 조승희가 참가했다고 한 것을 한국 언론에서 조승희 모친 강도 사건처럼 오보를 하면서 생긴 오해이다. 문제는 이 오보가 진짜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 EBS 다큐에서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조승희가 관심을 요구했다' 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항목은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조승희가 아메리칸 아이돌 예선에 참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그가 아메리칸 아이돌에 자신이 춤추고 노래부른 것이 담긴 동영상을 보내 참가신청은 했다. 물론 대회에는 떨어졌지만, 많은 범죄심리학자들은 이를 조승희가 사회와 어느정도 화해할 의지가 있었다고 말한다.

3.3. 이로 인한 논란

3.3.1. 한국인은 사과해야 하는가?

미국에서는 수많은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지만 이 사건은 그 중에서도 최악의 수준으로 스케일이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애도를 표하고 미국 현지에서의 한국 홍보 프로그램 방영이 취소되는 등 여러 파장이 있었다.

사건 이후 조승희가 한국인이라서 <한국인이 미국에 사죄 혹은 죄책감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여론이 있었다. 김지하 시인은 사죄의 뜻이 담긴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 사과 사절단을 파견하자고까지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으로 미국인들이 사건 후 <한국계라고 해도 미국인이 그런 건데 한국이 미안할 필요는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이 기사화된 적이 있다. 다만 해당 기사에 대해서는 내용의 진위 논란이 있다. 확인 바람. 그러나 분명 조승희가 미국 시민권을 가진 적이 없고 유학생들도 흔히 사용하는 미국이름조차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적으로는 한국인이 맞고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표현은 틀렸으나 8살 이후 미국에서 살았던 점을 고려해야 하며 이민을 안 갔다고 하더라도 조승희 개인의 범죄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집단적인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는 내용상 무리는 없다.

미국의 한 사설에서는 조승희 사건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도덕적, 합법적으로 조장한 것이 아니기에 "한국인들이 희생자와 미국 사회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다" 는 요지의 글에 대해서 실었다. 여기.

집단이 단지 구성원이었다는 이유로 개인의 범죄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이상하며 나치홀로코스트에 대해 사과하는 것 같은 특수한 집단 사과의 예는 집단의 구성원이 특정 집단을 그들의 관점에서는 합법적으로 공격할 수 있게 조장한 것이었기에 사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승희의 경우에는 한국인들이 그의 범죄를 전혀 조장하지 않았다. 만약 조승희의 범죄를 미리 알았다면 정상적인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막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미국 내 여론으로 인해 한국 사회의 집단 죄책감은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와 한국인의 진실성 있는 애도 정도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이후 조승희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서 반한(反韓) 여론이 조성되거나, 외교적인 문제가 된 적은 없다.

하지만 현지에서 델리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몇몇 한국인들은, 이와 관련 조롱당하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심지어 메뉴판에 여기 와서 소란 피우지 말고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말도 써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 건 아니고, 2001년 9/11 공격 이후 그 사건과 무관한 무슬림들이 당한 수모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이나 선생들이나 범인을 "한국인" 이 아니라 "어떤 사이코 살인마" 혹은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범죄" 로 인식해서 특별히 따돌림을 당하는 일은 드물었다고 한다.

3.4. 기타

총기를 난사한 사실이 여기저기서 보도되고 국내에서도 보도되자 학교에서 말없이 집단괴롭힘를 당하는 아이들은 예비 살인마라는 이미지를 갖게 만들어서 교우 관계 회복에 큰 장애를 안겨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라도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을 도와줄 생각은 안하고 이러고 있으니 어디든 답 없는 사람들이 있는 건 마찬가지인 듯.

생전에 조승희를 알았던 사람의 증언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솔직히 인정하건대, 우리는 그를 너무 못되게 대했습니다. 어떤 경우 잔인하고 비열하기까지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그에게 공개적으로 대답을 강요하면, 그의 목소리는 너무 낮고 작아서 마치 동굴 속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지요. 우리는 그에게 물건을 집어던졌고 그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1달러 지폐를 내밀면서 그에게 무슨 말이든 하면 주겠다고 놀렸지요. 이제 되돌아보니 그 당시의 내 행동이 창피하기 그지 없습니다"

- 익명을 요구한 고등학교 동창

"내가 조승희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순간은 일대일 강의를 하던 시간이었어요. 나는 그에게 다른 학생들과 의사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말했고, 그는 처음으로 내게 난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라고 대답했죠.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안녕, 잘 지내?(Hi, How are you?)라고 말해보라고 했죠. 그는 언젠가 그렇게 해보겠다고만 말하고는 그게 끝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한참 뒤에 그가 총기 난사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에게 안녕, 잘 지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듣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 버지니아공대 루신다 루이 교수

앞서 말했듯이 살해당한 사람은 조승희 본인을 포함해 33명. 츠야마 살인사건보다도 2명 더 많다. 제 2의 우범곤 사건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조승희 사건 당시 미국 언론에서 블로그 등을 이유로 "범인은 밀리터리 덕후의 중국인 유학생" 이라는 오보를 내보냈다. 그리고 몇몇 국내 사우스파크 팬들 중에는 조승희 관련 에피소드가 나올 것 같다고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설레이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안 나왔지만.

이 당시 어느 중국계 미국인총기매니아로서 용의자로 떠올랐는데 이 사람 블로그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가중되었다. 이 블로그에선 무려 수백여 정의 각종 총기를 사모은 그 중국계 사진이 한가득 올라왔기 때문이었는데 본인은 되려 이런 관심도로 접속자가 엄청나게 늘어서 별다른 변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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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에 연재된 백무현 만평에서는 부시가 이 사건으로 미국산 무기의 우수성이 증명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식의 내용을 올렸으나 애초에 발터 P22 권총은 독일제고 GLOCK-19는 오스트리아제 총기다. 고인드립인데다가 사전지식 없이 본인의 무식만 인증한 병크. 결국 다음 날 사과만평을 올렸다. 근데 부시라면 진짜로 저런 말을 할 법도 하다는게 문제지만

개그맨 황현희가 이 사람을 닮았다는 이유로 출연금지를 받기도 했다는 루머가 있다. 그리고 황현희 본인과의 인터뷰로 말 그대로 루머로 끝났다.

2009년 초 디씨인사이드 코갤에서는 K4라고 해서 킬러조, 류시퍼, 혜느님, 버지니아 조 중에서 버지니아 조가 이 조승희였다. 그러나 그 이후 갱인, 스틸곽, 그랜드현우, 발치몽 등 수많은 범죄자들이 발굴돼서 혜느님과 함께 묻혔다. 4chan에선 한때 몇몇 잉여들이 필수요소로 쓰거나 총기난사 사고 중 가장 하이스코어(...)를 기록했다고 영웅 취급하며 그의 날을 기린 적도 있다. 한 유저가 조승희의 기록을 깨겠다며 총기난사를 /b/에 예고했다가 다른 유저들이 FBI에게 이를 알려준 덕분에 FBI가 총기난사를 예고한 그 유저를 체포한 일도 있다. #

인디 밴드 주로파 옐로우의 노래 '구름 위를 걷다(2008)' 와 이장혁의 '조(2008)' 는 조승희를 소재로 한 곡들이다.

여담이지만 미국의 모 변호사이게 다 게임 때문입니다. 게임을 탓하세요 라는 말로 수많은 게이머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2011, 12월 8일. 버지니아 공대에서 또 다른 총기 사건이 일어나 이목을 끌고 있다. #

그 밖에 조승희가 생전에 썼던 계산기가 경매로 올라와서 논란이 되고 있다. 99달러짜리가 4300달러까지 값이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 4월 한국계 이민자가 벌인 오이코스 신학대학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조승희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 범인 고수남도 미국 이민 부적응으로 벌인 일로 파악되고 있다.

사건 이후 조승희의 이름이 알려지자 나이가 비슷하고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의 미니홈피가 네티즌들에게 털리는 일이 발생했다.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냐' 라는 식의 비난을 받았다고.

결국 동명이인 조승희는 대문짝에 내가 안 죽였다 라고 써야 했던 헤프닝이 생겼다(...). 개명도 진지하게 생각했을 듯[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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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텍의 4/16 추모비.
원래 비석은 조승희의 몫을 포함하여 총 33개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잘려나간 채로 훼손되었고 결국 철거됐다. 남은 비석은 32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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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 증거로 대학교에서 그의 룸메이트는 그를 씅(Seung)이라고 불렀다.
  • [2] 사실 이런 범죄자와 이름이 같아서 개명하는 사례는 매우 많다. 실제로 유영철이나 강호순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개명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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