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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수박차

last modified: 2015-01-12 12:43:16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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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수 유니폼이 삼성이 아닌 것은 넘어가자
수장님은 아직도 2군에서 놀고 있는데 막내가 먼저 각성해서 1군 풀타임 뛰고 있다

Contents

1. 개요
2. 등장 배경
3. 결과
4. 해체
5. 근황
6. 여담
7. 같이 보기

1. 개요

롯데의 이왕기름넣을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과 LG의 방화신기를 이었던 2009년 삼성 라이온즈의 잉여 투수 5명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는 잉여 불펜 3명의 이름을 따 조원수[1]로 불리다가 시즌 중반 들어 2명이 추가되면서 조원수박차가 되었다.분명히 말하지만 수박과는 관련 없다(...).[2]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모 팀의 불펜이 이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카더라

2. 등장 배경

2009 시즌, 철벽을 자랑하던 삼성의 불펜은 시즌 전부터 권오준의 부상 이탈로 위험 징조를 보이더니 안지만, 오승환마저 부진하다가 부상으로 뻗어버리는 등 최악의 난조를 보였다. 거기에 대체 자원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제 역할이라도 하고 있던 지승민[3]진갑용현재윤의 부상으로 인해 포수 문제가 심각해지자 두산 베어스채상병과 트레이드 되었고 1군에서 어느 정도 보여준 것이 있던 권오원, 김진웅은 부상, 임동규는 군입대로 인해 쓸 수 없는 상황인[4], 계속된 악재만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기회를 얻은 다섯 명의 신인급 투수가 바로 현근, 최제, 김상, 성훈, 우찬.

물론 이들은 나름대로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기용되었다.
  • 조현근은 2007년과 2008년 1군에서 원 포인트 릴리프나 패전조로서 제 역할을 했었다.
  • 입단 2년차였던 최원제는 입단 당시 투타 양쪽으로 기대를 받다가 결국 투수를 선택했는데, 빠른 속구로 촉망받았다. 2008년에 2군에서 32경기 56⅓이닝 2승 3패 2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점 3.51로 고졸 신인치고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었다. 2009년에도 2군에서 평균자책점 1.82를 기록했다.
  • 김상수는 2006년 삼성에 입단한 후 3년을 2군에서 담금질했는데, 2008년에는 2군에서 20경기 80이닝 5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49를 기록했다. 승운이 안 따르긴 했지만 팀내 다른 투수들과 비교했을 때 아주 좋았다.
  • 차우찬은 2006년 입단 후부터 계속 주목 받아온 투수 유망주였다. 사실 차우찬을 3명과 같은 불펜투수로 묶기엔 좀 억울한 부분이 있는데, 물론 이는 선발로테이션이 붕괴되었던 탓이지만 2009년에 차우찬은 선발투수로 19경기 등판했는데 이 해 삼성 선발투수 중 3번째로 많았다. 사실 그렇게 묶이진 않았는데, 왜냐하면 선발로 나왔을 때 임팩트가 다른 의미로 너무 커서 묶이지 않고 혼자서 욕을 집중적으로 먹었다.
  • 앞서 4명과 달리 박성훈은 다른 이유로 기용되었다. 2008년 겨울 장원삼과의 트레이드 파문으로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원래 장원삼과의 트레이드만 아니었으면 그냥 방출될 선수였다. 트레이드가 무산된 후, 거금이 껴있긴 했지만 장원삼의 트레이드 상대란 이유로 확 떠버렸기에 원래 계획처럼 방출해버릴 수도 없고 일단은 그냥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돼버린 것. 더욱이 2009년 이전 1,2군 성적은 괜찮았던 4명과 달리 박성훈은 2군 성적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2009년 시즌 초반부터 기용된 4명과 달리 박성훈 2009년 7월부터 기용되기 시작했는데, 1군에 올라오기 전까지 2군에서 25경기 60⅔이닝 4승 3패 2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4.45으로 부진했었다. 박성훈은 1군에 올라온 자체가 큰 성과였고 기대감도 거의 없던 쩌리여서 여기에 낄 수준도 안 돼서 조원수박차란 말은 사실 잘 안 썼다.

3. 결과

하지만 이들이 저지른 결과는 실로 참담했으니......

조현근 : 34경기 48이닝 1패 5.81
최원제 : 40경기 38이닝 3승 1패 1홀드 5.21
김상수 : 43경기 60이닝 3승 3패 2홀드 6.00
박성훈 : 20경기 31⅓이닝 1패 5.17[5]
차우찬 : 42경기 109⅓이닝 6승 9패 1홀드 6.09

참담한 평균자책점에서 보다시피 당연히 삼성 팬들에게 어머어머한 욕을 먹어야 했다(...)

이들의 방화는 그나마 남아 있던 권혁정현욱의 부담만 가중시켰다[6]. 결국 과부하가 걸려 둘 다 시즌 후반에는 두들겨 맞아나갔다. 선발 역시 상태가 메롱이었던 삼성은 끝내 2009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여 13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었다.

물론 이들을 위해 작은 변명을 하자면,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조원수박차 탓으로만 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불펜 위주의 야구는 일단 선발진이 허약하면 필연적으로 불펜진에 과부하가 걸릴 수 밖에 없는데 삼성은 당시 선발진이 최악이었다. 배영수는 다패왕에 7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었고 외국인선수 루넬비스 에르난데스는 성적 부진으로 퇴출되었다[7]. 그나마 윤성환프란시스코 크루세타, 에르난데스의 대체 외국인선수 브랜든 나이트가 분투했지만 사실상 제대로 된 선발이 3명 밖에 없었던지라 신고선수 출신 프로 초년생 이우선이 선발로 나와야 했을 정도로 심각했다.[8]

그런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는 신인 중심의 조원수박차가 아니라 안지만과 오승환이 남아 있었어도 어려운 시즌을 풀어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선수단 전체적으로 부상자가 속출했을 뿐 아니라 8번이나 스윕을 당하는 등 팀 케미스트리마저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시즌 막판까지 롯데와 치열하게 순위경쟁을 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의 희망고문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이들의 부진은 매우 아쉬운 점이 있다.

덤으로 당시 '지키는 야구'를 표방하던 불펜 야구 위주의 선동열 체제에 대해 의문이 나오던 시기에 해당한다. 선동열 감독은 그동안 불펜의 힘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는데, 막상 그 불펜이 무너진 후에 대체한 선수들은 선동열 감독의 별명 중 하나인 '투수 조련사'란 별명이 무색해질 정도로 너무나도 형편 없었기 때문. 그 시기까지만 해도 팀 컬러를 바꾼 선동열 감독에 대해서 그래도 우승했으니까 상관없다던 분위기였던 삼성 팬덤은 결국 이때를 기점으로 선동열 체제에 등을 돌리게 되며, 동시에 KIA 팬들과의 긴 반목이 시작되었다.하지만 KIA팬들도 불과 4년 뒤 자기 팀도 그 꼴이 날 줄 예상이나 했을까?

4. 해체

2009년 12월 박성훈10억짜리김상수가 현금 20억과 함께 히어로즈의 장원삼을 상대로 트레이드되며 해체되었다. 장원삼이 전 해에 트레이드 파문을 겪었던 만큼 트레이드만 성사되었다면 삼성은 방화범 한 명을 처리했었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내용은 장원삼 참조.

5. 근황

캡틴 조현근은 시즌 종료 후 경찰청에 입대했다. 2010시즌에 16경기에 13홈런을 맞거나 2011시즌에 127⅓이닝동안 160안타를 맞는 등의 조원수박차의 캡틴 근성이 어디 안 간다는 걸 보여주었다(...) 제대 후인 2012년에는 시즌 시작하기 전에 토미 존 서저리로 시즌 아웃되었고 2013년에야 1군에 다시 올라올 수 있었다. 하지만 패전조로도 자리잡지 못하고 영 좋지 못한 구위를 보이다 결국 경산행.
그리고 2013년 한국시리즈에 좌타상대 피안타율 팔푼 우타상대 4할이라는 변태스탯을 이유로 원 포인트 릴리프로 합류했다. 1차전은 그럭저럭 잘막았으나 6차전은 그리 좋진 않았다.

최원제 역시 시즌 종료 후 조현근과 함께 경찰청에 입대했다. 2010시즌 퓨처스리그 남-북부 통틀어 세이브 1위, 2011시즌 우규민에 이은 2선발로 활약하며 조현근보다는 나은 기록을 올리고 2012년에 팀에 복귀했으나 어깨 부상으로 넉다운, 10월이 되어서야 1군에 올라와 딱 1경기 던졌다. 거기다 그나마 빠른 구속과 구위가 폭망하면서 망주로 취급되었고 2013시즌에는 패전조로 나와 털리고 다시 경산행(...) 2군에서 선발 로테이션에도 끼지 못하고 있는 실정. 결국 2014 시즌부터 타자로 전향했다.

김상수는 트레이드된 넥센 히어로즈에서 2010, 2011시즌 오히려 평균자책점이 2009시즌보다 상승하는 등 오히려 더 나빠졌다(...) 그나마 2012시즌 4점대로 개선되었다가 2013시즌 다시 5점대로 회귀하고 말았다.

박성훈은 넥센에서 2010시즌에 그나마 2009시즌보다 향상된 모습을 보였고 2011시즌 퓨처스리그 다승왕을 먹는 등 그럭저럭 괜찮게 활약하다 2012시즌 각성하여 2점대 방어율을 찍으며 넥센 불펜의 한 축으로 쏠쏠히 활약했다. 그리고 2013년 다시 폭망하여 2009시즌과 비슷한 성적을 올렸다. 원점회귀2

차우찬은 2010시즌 선발로서 각성하여 10승을 올려 승률왕을 차지했고 규정이닝에 6⅔이닝 모자라면서 안타깝게 평균자책점 2위를 놓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다음 시즌에도 10승을 올리며 쏠쏠히 활약했다. 2012시즌에 차르봄바가 되고 말았지만... 2013시즌에는 롱릴리프와 선발을 오가며 좋은 활약을 보이며 다시 한 번 10승을 올렸고 평균자책점 또한 5위에 해당하는 좋은 성적을 올렸으나 또 규정이닝 부족으로...

6. 여담

현재는 위의 다섯 명이 불을 지르는 경우나 하지만 차우찬, 박성훈을 제외하고는 1군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 선동열의 선수 육성을 깔 때 종종 보이곤 하는 키워드. 이래 봬도 네이버 자동검색에까지 올라와 있다.

이들이 활동한 시기는 2009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가 작성된 시기는 4년 뒤인 2013년그러니까 선동열이 KIA를 추락 시켰을 때이다(...) 그리고 조원수박차라는 말이 생긴 이후에도 조원수란 말을 주로 썼다.[9] 차우찬은 임팩트가 너무 커서 묶이지 않고 당당하게 개X차[10], 차X차 라고 불렸으며, 박성훈은 앞에 말했듯 기대감이란게 없었던 쩌리였다.

사실 이 당시에는 이우선도 이에 못지않게 못했지만, 신고선수 출신 신인인데도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올라왔다는 점과 에이스 킬러[11]라는 이미지가 작용하여 조원수박차 라인에서는 벗어났다. 다음 해부터는 선발 등판을 줄이고 불펜 등판이 늘어나며, 좋은 추격조로 활동하기도 했다.

위에 언급한 연유로 개씹차차우찬을 빼고 이우선을 넣어 현근, 이우, 최제, 김상, 박성조선원수훈팀에 조선의 국노와 원수가 다 있었단 말이라는 바리에이션도 존재하긴 했다. 다만 조원수(박차)에 비하면 매우 마이너하다.

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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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세 글자의 어감이 참 그럴듯 했다. 마치 X 같은 웬수들을 연상시켰다.
  • [2] 이 항목이 조원수박차임에도 사실 조원수박차란 말은 많이 안 썼다. 이유는 뒤에 읽어보면 나온다.
  • [3] 이 해 최종 기록이 43경기 34 1/3이닝 1세 8홀 2.88. 애초에 원포인트 전문 선수라 그렇게 많은 이닝을 먹은 건 아니지만 최원제, 박성훈과 이닝은 비슷하고 평균자책점은 조원수박차와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나은 수준. 하지만 그 이후 후배들에게 담배셔틀을 시키는 등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 [4] 물론 셋 다 조원수박차 시대 이후에도 두번 다시 1군을 밟아보지 못했지만 이들이 09시즌에 제 몸상태를 유지했다면 큰 도움이 될 만한 선수들이었다. 권오원은 좋을 때는 권오준, 권혁과 묶어 KKK트리오라고 불렀을 정도였고 김진웅 역시 삼성에서 기대하던 대형 유망주로 전성기 때가 끔찍한 투저타고였던 것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다. 임동규 역시 불펜에서 2점대, 선발로 3점대를 기록한 적이 있었던 투수였다.
  • [5] 참담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앞에서 말했듯 너무 쩌리여서 생각보다 욕은 안 먹은 편이다.
  • [6] 이 시즌 권혁은 홀드왕, 정현욱은 홀드 2위를 차지하였다. 한 팀에 홀드 1, 2위가 함께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굴려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오승환까지 빠진 탓에 돌아가면서 마무리로도 나왔다.
  • [7]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은 에르난데스가 퇴출된 후에 밝혀졌다.
  • [8] 근데 선동열은 그 와중에도 윤성환을 공 꼴랑 80개 던지게 하고 내리는 등 그 남아있는 선발진도 제대로 안써먹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윤성환이 공을 많이 던질 체력이 안되나 싶었으나 류중일부임 이후 윤성환은 100개는 기본에 보통 110개는 던지고 내려온다...
  • [9] 위에 짤보다 훨씬 퀄이 높은 조원수짤이 있는데 찾은 분이 있으면 추가바람.
  • [10] 지금은 2010년 에이스 모습을 보여줬던 당시를 10차 라고 부르기도 한다
  • [11] 2009시즌 방어율 1위에 2패만을 안았던 김광현과 이 해 폭망하긴 했으나 그래도 명색이 메이저리거 출신인 김선우를 상대로 선발승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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