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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보토

last modified: 2015-01-05 22:56:39 by Contributors


신시내티 레즈 No.19
조지프 대니얼 보토(Joseph Daniel Votto)
생년월일 1983년 9월 10일
국적 캐나다
출신지 캐나다 토론토
포지션 1루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2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44순위 신시내티 레즈 지명
소속팀 신시내티 레즈(2007~ )

2010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조이 보토
(신시내티 레즈)
라이언 브론
(밀워키 브루어스)

목차

1. 개요
2. 초창기
3. 커리어
3.1. 마이너리그
3.2. 메이저리그 : 신시내티 레즈
4. 이모저모

1. 개요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1루수. 레즈의 중심 타자이자 2010년 내셔널리그 MVP에 빛나는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 중 한 명.

등번호는 19번이며 별명은 보토매틱(Votto-matic). 한국 한정으로는 보또준(...).

2. 초창기

조이 보토는 1983년 9월 10일 토론토 온타리오에서 태어났다.[1] 그의 어머니는 소믈리에 겸 식당 관리인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요리사였다. 이탈리아계 혈통인 보토는 어린 시절엔 야구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방에 테드 윌리엄스 포스터를 붙여두기도 했다고 한다.

1997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보토는 농구에서 포인트가드로 뛰기도 하면서 야구, 하키 등 여러 운동을 병행했다. 2002년 고등학교를 마치고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4순위로 신시내티 레즈에 지명받아 프로 세계로 뛰어들었다.

3. 커리어

3.1. 마이너리그

애초에 포수로 드래프트 되었지만 정작 아마추어 때부터 3루수로 많이 뛰어온 보토는 드래프트 당해 루키 리그에서 3루수지명타자로 출전했다.

2003년부터 레즈 구단은 보토를 1루수로 전향시켰고, 수비 부담이 줄어든 보토는 그해 루키 리그에서 준수한 성적을 내고 싱글A로 올라왔다. 싱글A에서 살짝 고전하기도 한 보토는 2004년부터 1루수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2005년에는 살짝 침체기를 겪었지만 2006년에는 타율 .319 46개의 2루타, 22홈런으로 대폭발하며 퓨처스 올스타 게임에서 월드팀 대표로 선발되었고, 노던 리그 MVP를 차지하면서 신시내티의 주목할만한 유망주로 부상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툴이나 운동능력 자체를 높게 평가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타격폼에 대한 자각이 둔하고 떨어지는 운동능력을 보충하기 위해 스윙을 다듬어야 한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피나는 훈련을 거치며 결국 흔들림없는 이상적인 타격폼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7년 AAA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보토는 시즌 종료 후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전체 44위 유망주, 레즈 팀내에선 제이 브루스머 베일리에 이어 3위 유망주로 선정된다.

3.2. 메이저리그 : 신시내티 레즈

2007년 AAA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보토는 그해 확장 로스터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었고, 대타로 처음 출장해 삼진을 당했으나 바로 다음 경기 생애 MLB 두 번째 타석에서 첫 홈런을 뽑아내는 등 24경기동안 타율 .321 4홈런 17타점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한다.

2008년부터 기존 1루수 스캇 해티버그를 밀어내며 첫 풀타임 소화, 첫해 시즌 초반에는 플래툰으로 뛰었는데도 불구하고, 타격 실력을 발휘하면서 풀타임으로 주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2008년 84타점을 기록하며 프랭크 로빈슨이 보유하고 있던 신시내티 한 시즌 신인 최다 타점 기록을 경신했고, 내셔널리그 루키 중에 타율(0.297), 안타(156개), 홈런(24개), 출루율(0.368), 장타율(0.506) 등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신인왕은 시카고 컵스의 포수 지오바니 소토에게 밀려 2위에 그친다.

2009년에 시즌 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해 캐나다 대표로 출전했고, 부상으로 인해 31경기를 결장했지만 시즌 최종 .322 .414 .567 25홈런 84타점으로 기세를 떨쳤다. MVP 투표에선 22위를 기록.

그리고 마침내 2010년에는 150경기 .324 .424 .600 OPS 1.024 37홈런 113타점을 올리고, 출루율과 장타율에서 1위에 오르는 맹활약으로 팀을 15년만의 PO에 올려놓았다. 개인 첫 올스타에도 선정되었고, 좋은 개인 성적과 팀을 PO에 올린 것을 인정받아 알버트 푸홀스를 제치고 생애 첫 MVP의 영광을 안았다. 만장일치에 딱 한 표 모자른 압도적인 MVP.[2] 래리 워커, 저스틴 모노에 이은 역대 3번째 캐내디언 MVP이자 1995년 배리 라킨 이후 첫 레즈 선수의 MVP였다. 아울러 각 리그 최고의 타자에게 수상하는 행크 애런상까지 타면서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다만, 포스트시즌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투수진에 철저히 봉쇄되면서 부진했던 것이 흠이라면 흠.

2011년에도 제이 브루스와 함께 팀의 중심 타선을 이끌었으며, 최종 성적은 .309 .416 .531 29홈런 103타점로, 리그 최다 볼넷과 최고 출루율을 기록했다. 확실히 스캇 롤렌 등의 부진이 겹치며 견제가 심해진 모양새. 또한 수비력을 인정받아 처음으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다만 시즌 중반 트레이드설이 불거지기도 했는데, 그 이유를 몇가지 들자면 점점 상승하는 연봉도 있지만 수준급의 1루 유망주 욘더 알론소[3] 때문이기도 한데, 알론소는 보토 때문에 좌익수로 돌아야 했기 때문이고 보토의 가치가 최정점에 올라있는 상황이기 때문. 한편으로는 이 루머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보토에게 관심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현지 토론토 팬들은 캐나디언, 그것도 토론토 홈 보이 선수가 정말 블루제이스에 입단한다면 로이 할러데이에 버금가는 대접을 해주겠다며 설레발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제이스 팬들의 꿈은 무산되었다. 2012년 4월에 레즈가 2014년부터 시작되는 10년 $225M의 메가 딜을 안겨주며 잔류를 확정지은 것.(...) 이 계약은 당시 시점에서 MLB 역사상 4번째로 큰 규모의 딜이었다. 잔여 2년 계약까지 합치면 총 12년 $251.5M의 무시무시한 규모. 이 계약으로 보토는 캐나다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받는 운동선수가 되었다.

물론 스몰마켓인 신시내티가 무리할 정도로 퍼준 오버페이라는 평이 매우 많지만,[4] 근 몇년간 푸홀스 놀이를 했고 이제 전성기로 들어감을 생각하면 뭐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

2012시즌엔 전반기까지 타출장 .348 .471 .617 OPS 1.087 14홈런 48타점이라는 성적으로 리그 MVP를 찍을 기세로 달렸다. 그러나 7월 16일, 무릎 수술을 받으며 MVP 레이스에 빨간 불이 켜졌고 복귀 이후엔 장타력이 급감한 모습을 보이며 1개의 홈런도 추가하지 못했고 111경기 타출장 .337 .474 .567 14홈런 56타점이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만 리그 최고인 0.474의 출루율과 50경기 가량을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다인 94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2013시즌엔 전경기 출장을 하면서 .305 .435 .491 OPS .926 24홈런 101득점 73타점 fWAR 6.2를 기록했다. 4년 연속 NL 출루율 리더에 올랐지만 장타율이 5할에도 미치지 못했고, 전경기를 출장한 주전 3번타자의 타점이 고작 73개에 그쳤다는 점에서 현지 언론과 팬들 사이에선 홈런과 타점을 노리며 본인이 직접 해결하기 보다는 볼넷을 걸어나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보토의 지나치게 소극적인 타격자세와 중심타자로서의 책임론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단지 팬들만의 의견이 아니라, 더스티 베이커 감독이나 월트 자케티 단장 등 레즈의 수뇌부 역시 보토가 득점권에선 희생 플라이를 노리는 등 타점 생산을 위한 타격을 해야한다고 의견을 내비쳤다.


이러한 변화는 2013년 보토의 타격폼을 2010년 MVP 시즌과 비교해보면 명확하다. 의도적으로 스탠스를 좁히고 스윙을 간결히 하면서 파워를 일정 부분 희생한 대신, 헛스윙을 줄임으로써 더 진화한 선구안을 얻어냈고, 더 많은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양산해 고타율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부분은 추신수제이 브루스 외에는 레즈 타선에 보토의 뒤를 받쳐줄 위협적인 타자가 전무했고, 극강의 출루율로 실질적인 생산성은 높지만 영양가 논쟁이 생겼다는 점에서 2013년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의 상황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2014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62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255 .390 .409 6홈런 23타점으로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다. 향간에는 벌써 먹튀냐며 까는중.

4. 이모저모

  • 보토를 야구인의 길로 이끈건 그의 아버지라고 한다. 93년 월드시리즈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조 카터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미치 윌리엄스를 상대로 우승을 결정짓는 끝내기 홈런을 치자 어린 보토를 토론토 길거리로 데리고 나가 기쁨을 만끽했다고... 그리고 그런 아버지에 대한 보토의 사랑도 각별했는지 2008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동안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앓게 되면서 한 달여간 부상자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2010시즌엔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떤 의미로 보면 인간승리. 'NL MVP' 보토, 우울증 이겨낸 '55만불 선수의 기적'

  • 마이너리그 시절엔 빅리그에 올라갈 때까지 레즈의 홈구장인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를 보지 않기로 스스로 맹세했기 때문에 레즈의 경기나 하이라이트를 잘 보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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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캐나다 출신 야구선수의 절대다수는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출신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캐나다 동부 출신 야구선수는 보토를 포함해 손에 꼽는다.
  • [2] 나머지 한 표는 알버트 푸홀스에게 돌아갔다.
  • [3] 그러나 2011년 12월 맷 레이토스 트레이드로 샌디에고 파드리스로 이적했다.
  • [4] 맷 케인의 5년 $112.5M 계약과 같은 날 발표되어 더욱 더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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