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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프레드릭 헨델

독일어: Georg Friedrich Händel
영어: George Frideric Handel


▲ 헨델의 사라방드(Sarabande), 영화 배리 린든에도 쓰였다.



▲ 수상음악(Wassermusik) 中 "Alla Hornpipe" HWV.349. 톤 쿠프만 지휘,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

독일출신의 영국 바로크 작곡가 중 한 사람(1685~1759). 바흐와 동갑이다. 독일어로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겠지만, 영국으로 귀화했기 때문에 보통 영어식인 "조지 프리더릭 헨델"로 읽는다.

일명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린다.그런데 알아둘 점은 이 명칭은 오직 일본과 한국에서 통하는 것이다. 게다가 음악의 어머니같은 표현을 쓴다는 것 자체가 동양음악을 비롯한 비서양 음악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행위다. 쓰지 말자. 이런 정작 유럽과 미국에선 아예 이런 명칭에 낯설어하고 헨델을 아주 영국인으로 여기는 영국에선 "남자인데 뭔 어머니야?" 라면서 이상하게 여긴다. 쓰지 말자. 별다른 별칭이 없으니 그냥 바흐랑 쌍벽이었다는 의미라고만 이해하자.

독일 할레에서 궁정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라면서 음악에 관심과 두각을 나타냈다. 아버지가 헨델을 자그마치 63살에 낳았다! 일흔 다섯까지 장수했으나 헨델 나이는 열한살...].아버지는 그를 률가로 키우려 했지만 재능을 알아본 지인들의 도움으로 음악계에 입문한다.

주로 오라토리오(오페라악곡의 절충형)으로 히트를 쳤고, 종교음악을 작곡하던 바흐와 달리 주로 현대의 개념으로 치면 중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바흐는 주로 대위법과 선율을 중시하는 고전적인 작법으로 작곡하였는데, 헨델의 경우 화음을 중심으로 음향적인 효과를 중시하여 작곡하였기 때문에 좀 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젊은날 빚쟁이들을 피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1727년에 귀화했고 그에 따른 많은 일화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영국 왕(조지 1세)이 하노버 공국의 선제후(選帝候)가 되었을 때 그에게 용서를 받기 위해 만들었다는 뱃놀이용 "수상 음악(water music)이 대표적이다.

생전에 그는 많은 표절 시비를 겪었고 말년에는 실명까지 한다. 그를 치료하다가 되려 장님으로 만든 돌팔이 의사는 바로 바흐도 엉터리로 치료하여 실명시켰다. 바로크 시대를 연 동갑내기인 바흐와는 죽어서까지 한번도 대면하지 못했지만, 이 돌팔이 의사라는 접점(...)이 생겼다는 것이 아이러니. 그러나 헨델은 실명까지 했으면서도 근성으로 오늘날까지도 널리 연주되는 라토리오 <메시아>를 작곡하면서 본좌의 자리에 등극했다.

<메시아>의 한 부분인 할렐루야는 기립하는 전통까지 있다. 이 전통은 초연에 참석했던 영국 왕 조지 2세가 이 부분에서 감격에 못 이겨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이래 현재까지 지켜져오고 있다고 알려져 왔는데, 사실은 조지 2세가 이 곡의 초연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지각해서 할렐루야 시작할 때 딱 왔다고 한다. 왕이 도착하면 전원 기립을 해야하는 룰에 따라 극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기립을 했고, 이게 왕의 지각에 대해 쉴드를 치려다보니 저런 설로 와전된 것이라 한다.

죽어서 영국에서도 본좌들만 안장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뉴턴다윈과는 분야가 달라서 그런지 성당 내에서 안장된 위치가 다르다. 영국에 변변한 음악가가 없는(...) 관계로 헨델의 위상은 높아 질 수 밖에 없었다.

바흐와는 달리 사생활이 꽤나 어지러운 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다 자신의 사생활을 대부분 비밀로 묻어두어 후세인들이 헨델의 일생을 이해하는 데 꽤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식탐이 굉장한 양반이었다고 한다.

헨델이 하루는 어느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당의 웨이터에게 이것저것 주문을 시작했는데 테이블 3개 분량에 이르는 주문을 하자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선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헨델은 "왜 그렇게 꾸물대는가?" 라고 묻자 웨이터는 혹시 일행 분들이 오시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헨델 왈 "일행은 바로 여기있잖는가?" 하며 주문을 하고선 차려놓은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웠다고 한다.

또한 헨델은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하였는데 젊은 시절엔 꽤나 현피를 많이 했다고 한다.

자신의 신곡 리허설을 하던 1721년 어느 날. 소프라노(프리마 돈나)가 헨델이 지시한 방식으로 부르지 않고 오묘한 애드립을 치며 지멋대로 불러댔다. 그러자 헨델은 화를 내면서 "이년아 그 따위로 부를 거면 창문밖으로 내던져 버리겠다."고 했다. 소프라노는 허세로 생각하고 계속했지만, 뚜껑이 열린(?) 헨델은 진짜로 소프라노를 잡아서 창밖으로 던져버리려고 했다! 다행히 주변의 단원들과 지인들의 만류로 헨델이 노여움을 풀고, 다시 리허설이 진행됐다는 후새드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기서 소프라는 말이 좋아 소프라노지, 당시의 A급 소프라노는 장미란에 버금가는 체격을 갖는 게 다반사였다. 지금에 비해 열악한 음향시설에서 관객들이 모두 들을 수 있는 풍부한 성량을 내면서도 음악적 기교를 내야 했으니 그만한 체력을 갖춰야 했고, 그러다 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현재 우리가 '소프라노'하면 떠올리는 그 체형의 소프라노가 많아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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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2-03 14: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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