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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PD

last modified: 2015-03-22 14:56:18 by Contributors

본명 조중훈[1]
출생 1976년 1월 27일
신체 175cm, 63kg
학력 미국 버클리 음대 졸업
데뷔 1998년 "In Stardom"
소속 스타덤 엔터테인먼트
사이트 https://twitter.com/ZoPeeDee

Contents

1. 약력
2. 음반
3. 기타

한국의 힙합 싱어송라이터이자 음반 제작자.

1. 약력

1976년 패션 디자이너인 어머니와 사업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5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파슨스디자인대학과 버클리 음악대학교를 다녔다. 싸이는 버클리 음악대학 후배. 그리고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조PD가 유명해진 것은 1998년 즈음 PC 통신에 'Break Free' 와 '조PD Rules'를 올리면서부터이다. 두 노래 모두 일주일간 몇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2]를 기록하며 PC통신 스타로 뜨게 된다. '조PD Rules'는 미국 따라잡기에만 급급한 한국 힙합을 비판하는 곡이고 'Break Free'는 규제가 심한 방송사들을 디스하는 곡이다.

당시로서는 우리나라는 굉장히 규제가 심했다. 오죽하면 S.E.S바다머리를 탈색했다고 방송사에서 금지를 먹는 수준이었으니... [3] 그런 상황에 방송사들한테 좆같은게 좆같은거지 그걸 어떻게 몰러라는 가사를 Break Free에 넣었으니 당연히 KBS 9뉴스, MBC 뉴스데스크 같은 당시 메인뉴스에도 보도되었다.

조PD는 집안이 원래 부유한 편이였기 때문에 버클리 음대에서 돌아오고 나서 1인 레이블 'Stardom'을 설립한다. 1999년 1월 12일 앨범 In Stardom을 발매. 영어가 아니고 한국어, 그것도 라임을 위해 문법을 파괴한 절름발이 한국어가 아니고 일상어만으로 라임을 맞춰가는 랩 메이킹과 '못 들어본 사운드'로 선풍을 일으키며 50만장을 팔아치웠다. 이 곡은 1997년 초에 청소년보호법을 실시한 후 최초로 청소년 유해 매체물이자 전곡 19세를 먹은 음반이기도 하다. [4]

1999년 In Stardom 2.0을 발매. 타이틀곡 'Fever'는 당시까지 '서태지 열성팬인 배우'에 불과했던 이정현을 피처링으로 발탁하여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주게 된다. 곡 자체도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앨범의 전반적인 퀄리티도 극상이어서 2015년 2월 현재에도 오래된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당시 실험적인 느낌이 줄고 상업적으로 변질했다는 이유로 떨어져나간 팬도 다수 있었다.

당시 싸이, 레이제이 등 스타덤 군단을 조직하고 대한민국 가요계에 처음 크루 개념을 도입 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김진표 3집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기도 했다.

2000년 조PD.Net / Best In East를 발매했다. 타이틀은 1집의 "썩은 XXX"와 2집의 "에피소드 I"의 후속이라 할 수 있는 "에피소드 II"였으며,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를 인용한 곡 이었다. 곡과 뮤직비디오 모두 선정성으로 인해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앨범 수록곡 " Never Give Up Part.Ⅱ"에는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DJ Uzi, Rich[5] 등 소울트레인 출신이 대거 참여 하기도 했다.

2001년 회사명을 "Future Flow"로 바꾼 그는 정규 앨범 "Stardom In Future Flow"을 발매한다. 당시 Wassup이라는 예명을 쓰던 보컬 겸 프로듀서 Ra.D가 앨범의 상당수의 수록곡을 프로듀싱했으며, 덕분에 이전의 1~3집과는 이질적인 분위기의 앨범이 되었다. 데뷔부터 이 앨범까지 4장의 정규앨범은 모두 명반으로 평가받으며 이는 5집까지도 이어진다. 특히 마이스타일의 미래적 비주얼의 뮤직비디오는 그 해 뮤직비디오 상을 석권할 정도였다.

2004년 앨범 "Great Expectation"은 2장의 앨범으로 발매했는데, 2CD로 앨범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 "Pt. 1: Politics And Social Change"과 "Pt. 2: Love And Life"를 따로 발매해서 판매해 주목을 받았다. 제목에서 보여지 듯 Pt.1은 종래에 보여주던 사회 비판적인 앨범이고 Pt. 2는 대중적인 노선의 앨범이었다. 그 중 Pt.2에 수록된 '친구여'는 '노래는 잘 하지만 변변찮은 솔로 히트곡이 없는 퇴물가수'로 인식되던 인순이대한민국 최고의 디바로 재평가받는 계기가 되었다.

'pt.2 love and life'의 수록곡 '친구여'는 그해 최고 인기곡으로 대중음악상 및 각종 시상식을 석권하며 국민래퍼로써 조pd를 인식시켰고, 압도적인 격차로 저작권 1위를 기록하는 등 신드롬을 기록하였다. 조pd는 이후에도 과거 자신이 팬이었던 아티스트들과 공동작업을 몇 차례 했는데, 주현미가 대표적이다.

2005년에는 Brooklyn이라는 클럽을 운영하며,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한 "조PD presents Brooklyn Mix Tape Vol.1"을 발매했다. 오디션에 통과한 신예들이 주가 되는 Vol.2도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무슨 사정인지 예정에만 그쳤다.

2006년 후배인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의 작업을 통해 당시 무명이었던 이들의 지명도 상승시키며 그해 디지털 음원 판매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기록 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는 이후 조pd의 싱글 '랄라랜드'라는 곡에서 같이 다시 작업한 바 있다.

2007년 여섯 번째 정규 앨범 "Money Talks"를 발표 가온차트 6위에 그쳐 이전에 비해 미미한 결과를 낳았다

2008년에는 브아걸 작업을 하면 친해진 윤일상과 공동작업한 앨범 "PDIS"를 발매.

2009년이머의 브랜뉴 프로덕션과 회사를 합병하여 브랜뉴스타덤이라는 레이블을 열었다. 이 때 과거 서로 디스했던 버벌진트가 소속되면서 힙합 씬에서 이슈가 되었다.

2011년 다시 브랜뉴 뮤직이 분리되고, 2012년 레이블 명칭을 원래대로 Stardom으로 변경했다.

2013년 1월 블락비가 소속사 스타덤을 대상으로 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1년간 활동에 대한 정산이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 였지만 블락비 측이 패소 했고 법원은 스타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무렵부터 소식이 끊겨서 팬들은 소식을 궁금해했다. 2013년 8월 스포츠 중계를 방불케하던 컨트롤 디스전이 뜨거울 때도 조PD 쪽은 소식이 없었다. 심지어 블락비의 지코가 조PD를 디스하는 일도 없었다. 15년전 디스를 몰고다니던 조PD도 이렇게 영향력을 잃어가는가 싶었는데...

2013년 8월 27일, 스타덤과 블락비의 공연기획사 쇼노트와의 분쟁이 타협을 보았다는 것,[6] 9월에는 가수로 복귀, 정규앨범을 발표할 것이라는 두 개의 기사가 떴다. 이튿날 블락비 역시 세븐시즌스로 기획사를 옮겨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기사가 떴다.

2015년 3월 18일 미니앨범 "황금알을 낳는 거위 Part.1"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바다(가수)가 피쳐링한 "Candy". 정규앨범은 아니지만 정말 간만에 등장했다.



2. 음반

  • 정규앨범
    • 1집 In Stardom (1998년)
    • 2집 In Stardom Version 2.0 (1999년)
    • 3집 ChoPD.NET/Best In East (2000년)
    • 4집 Stardom In Future Flow (2001년)
    • 5집 Great Expectation - Pt. 1 : Politics & Social Change (2004년)
    • 5집 Great Expectation - Pt. 2 : Love & Life (2004년)
    • 6집 Money Talks (2007년)
    • 7집 Art & Business pt.1 "State of the Art" & pt.2 "Art of Business" (2011년)
  • 비정규앨범
    • <Club Night Mega Mix> (2004년)
    • <보란듯이> (2010년)
    • EP <Victory> (2010년)
    • EP In Stardom V3.0 (2013년)
    • EP 황금알을 낳는 거위 Part.1(2015년)
  • 프로젝트 앨범
    • 싱글 <二色英雄新聞>with 김장훈 (2004년)
    • 디지털 싱글 <Hold The Line> with Brown Eyed Girls (2006년)
    • 프로젝트 앨범 <The Return of Prodigal Son - 돌아온 탕아> with 최정철 (2007년)
    • 프로젝트 앨범 <PDIS>with 윤일상 (2008년)
    • 프로젝트 앨범 <Soulmate Remix Project> with Postino (2008년)
    • 프로젝트 앨범 <JoPD+Park Mi Kyung> with 박미경 (2008년)
    • 프로젝트 앨범 <2 the Hard Way> with Verbal Jint (2010년)
    • 디지털 싱글 <랄라랜드> with Brown Eyed Girls (제아, 나르샤) (2010년)
  • 라이브앨범
    • 라이브 앨범 <2000 조PD Live> (2000년)
  • 참여앨범
    • 믹스테이프 <Brooklyn Mix Tape Vol.1> (2005년)
    • Brown Eyed Girls <Your Story (Special Repackage)> (2006년)
    • Brown Eyed Girls <with L.O.V.E> (2008년)
    • <작전 O.S.T> (2009년)

3. 기타

프로듀서로서의 기량과는 달리 랩퍼로서의 기량은 다소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편. 랩스킬이 밋밋하고, 곡 녹음시 랩을 한소절한소절 끊어서 불러 편집으로 이어붙인다. 드문 기법은 아니지만, 속사포처럼 랩이 쏟아지는 가운데 숨소리 한번 들리지 않는지라 너무 기계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2002년 주석 2집 수록곡인 'The Answer'에 데프콘, 디지털마스터와 함께 피처링으로 참여했는데 이 때 쓴 가사가 디스계의 전설이라면 전설로 남았다. 조PD가 디스하는 대상이 아무리봐도 같이 곡에 참여한 디지털마스터 (이하 DM) 같았던 것. 같은 트랙에 참여한 이를 농담도 아닌 진담으로 디스한 곡은 한국 힙합계에 전무후무하다.

언제나 급박한 우리 삶 그 싸움 속에서 순박한 맘으로 쌓아온 내 음악의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 대박만이 좋은 음악 짧은 생각 막상 멍석깔면 오락가락
맨날 오락이나 하는 니 놈이 무슨 놈의 음악을 무슨 놈의 대박을 또 최고의 쾌락을
일은 하는둥 마는둥하다 결국엔 시큰둥하면서 오락과 하루를 빈둥빈둥
삶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이기기 마지막에 웃는 이를 위한 게임 더욱이
대박의 압박 속에서 드러난 본색 음악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 이 새꺄
띨빡한 놈 낫 놓고도 기역자도 몰라 맘 놓고 제 무덤도 몰라보는 놈이랑 놀면 클나
하물며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데 아무리 골이 비어도 익기 전부터 썩어 졸라

DM이 게임을 얼마나 즐겨했는지는 실력과 DNS로 활동했을 때 앨범 부클릿의 Thanks to 메세지 중 '내 바람의 나라 아이디 해킹한 놈 디졌다'는 언급에서 충분히 드러난다.[7] DNS 앨범 발매 당시 인터뷰에도 바람의 나라에 대한 언급이 있다. #

조PD의 곡에 참여하면서 올라갔던 인지도와 기대치를 이어가지 못하고 조PD 휘하에서 낸 2000년의 솔로앨범에서 폭망해버린 DM이었는데 이에 대해 DM은 조PD의 부족한 홍보를, 조PD는 DM의 게으름을 탓하며 서로의 갈등이 커져가고 있었다. 정황상 짜맞춰보자면 DNS 앨범 발매 직후 반응이 시원찮자 조PD가 역시나하면서 아예 갈라설 각오로 대찬 디스를 썼다 볼 수 있겠다.[8] 이 시절에 대해 조PD는 '음악에만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모든걸 제공해줬는데 일부는 게임만 하더라'라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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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진그룹, 대한항공의 명예회장과 동명이인이다.
  • [2] 참고로 이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덜 발달했기에 채팅은 모두 PC통신. 그런데 PC통신 시절에는 1GB짜리는 커녕 50MB 짜리도 다운받기 어렵고 전화료 많이 나온다고 다운도 많이 못 받았는데 일주일간 몇만을 넘어 거의 십만 정도 다운 수준이면... 대단한 것이다.
  • [3] 이런 규제는 2000년대까지 계속되다가 여성부의 술.담배 검열이 2012~13년경 사라지고 나서는 풀렸다. 요즘은 욕이 나오는 노래도 몇일 후 19세 청취 판정을 받는 등 규제를 완화한 듯.
  • [4] 욕이 안나오는 비애같은 노래마저도 19세 딱지 때문에 맘대로 못 다운받는다.
  • [5] 후에 다른 가수가 Rich(사랑해 이말밖에로 유명한 그 가수. 전 글파이브 멤버.)란 예명으로 활동하면서 예명을 Rich C-Luv로 바꾸다가, 나중에는 C-Luv로 활동하게 된다. 현재는 본명인 태완과 C-Luv를 병행해서 사용하는 중. 현재는 前 YMGA 멤버인 Digital Masta와 함께 Blue Magic이라는 대중가요 프로듀서로 활약 중이다. 그러면서 싱글을 발표하는 등, 본업인 보컬로도 여전히 활동 중.
  • [6] 그러나 블락비의 가처분 신청 건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 [7] 추가로 해킹당하던 시점에 섭 1위 검황 아이디였으며 용마제팔검을 들고 있었다고.
  • [8] 주석의 2집은 DNS 1집 발매 1개월 후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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