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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대니얼스

last modified: 2015-04-09 00:02:37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이력
2.1. 프런트 오피스에 뛰어들다
2.2. 메이저리그 최연소 GM


1. 개요

Jon Daniels. 1977년 8월 24일생.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 텍사스 레인저스의 사장(President of Baseball Operations) 겸 단장(General Manager)으로 재직하고 있다.

만 28세 41일의 나이로 최연소 단장에 등극[1] , 메이저리그 프런트 오피스계의 역사를 새로 쓴 천재 단장.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유연한, 때로는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무브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명단장으로 평가받는다.

이름과 성의 이니셜을 딴 JD라고도 자주 불린다. 이 분은 아니다. 외모에서도 알 수 있듯, 유대인 혈통이다.

2. 이력

2.1. 프런트 오피스에 뛰어들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대니얼스는 헌터 칼리지 고등학교를 거쳐 아이비 리그 명문 코넬 대학교를 나왔다. 대학 시절 전공은 "응용경제학 & 경영(Applied Economics and Management)".

대학을 졸업한 그는 배스킨라빈스 31, 던킨도너츠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앨라이드 도메크(Allied Domecq)의 비즈니스 디밸럽먼트(business development) 부문으로 입사했다.

그러나 대니얼스는 그 일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대학 동문이었던 A.J. 프렐러[2]의 조언으로 야구팀 프런트 오피스의 인턴 자리를 찾게 되었다. 맨 처음 지원한 곳은 보스턴 레드삭스. 인턴십 프로그램의 최종 2인까지 올랐지만 레드삭스가 택한 건 대니얼스가 아닌 제드 호이어였고, 당시 레드삭스에서 근무하고 있던 벤 셰링턴은 인디언스 시절 같이 근무한 조시 번즈 당시 콜로라도 로키스 단장 보좌에게 대니얼스를 추천했다.

그리하여 번즈는 대니얼스에게 6개월 짜리 인턴십 프로그램을 오퍼했고, 대니얼스는 로키스에서 1주일에 275불을 받으며 프런트 오피스에 발을 들였다.

인턴십이 끝난 이후, 대니얼스는 텍사스 레인저스로 자리를 옮겼다. 그를 고용한 사람이 당시 레인저스의 GM 존 하트[3]. 이 시기에 대니얼스는 마이클 영, 행크 블레이락, 프란시스코 코데로 등의 다년계약을 협상하기도 하면서 팀내 입지가 점차 상승하였고, 2005년 10월 4일, 존 하트 단장이 사임하고 구단주 톰 힉스는 만 28세 41일에 불과한 존 대니얼스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연소 GM에 임명한다.

2.2. 메이저리그 최연소 GM

당시 메이저리그뉴욕 양키스브라이언 캐시먼이나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린 보스턴 레드삭스테오 엡스타인을 필두로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의 금융권 출신 GM 앤드류 프리드먼, 그리고 존 대니얼스까지 아이비 리그 출신 고학력의 젊은 단장의 열풍이 불던 추세이긴 했지만, 대니얼스는 어려도 너무 어려서 연륜과 경험이 풍부해야 하는 단장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냐는 의문의 눈초리가 많았다.

그리고 그 우려대로 초기에는 무리수의 연속이었다. 단장직을 맡은 이후 처음 시도한 굵직한 무브가 알폰소 소리아노워싱턴 내셔널스로 보내며 브래드 윌커슨, 터멜 슬렛지, 아르만도 갈라라가를 받아온 것이었는데, 소리아노가 내츠에서 40-40 클럽에 가입한 반면에 트레이드의 메인칩이었던 윌커슨은 그냥 폭망했다. 다만, 돌글러브인 소리아노를 치움으로써 마이너 유망주인 이안 킨슬러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트레이드 취지 자체에 대한 실드의 여지는 있는 편.

이 트레이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애드리안 곤잘레스 + 크리스 영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애덤 이튼 + 오츠카 아키노리와 바꾸는데, 곤조는 파드리스 이적 후 NL 굴지의 1루수로 성장한 반면, 비록 오츠카가 괜찮은 마무리로 활약했지만 애덤 이튼은 부상이 겹치며 부진했다. 비록 곤조가 팀내에선 마크 테세이라나 필 네빈에 밀려 잉여 자원이었다고는 하나 드래프트 1픽의 거포를 넘겨준 것치곤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 2건의 트레이드는 대니얼스 입장에서 흑역사로 꼽힌다.

2006 시즌 종료 이후, 비록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브랜든 맥카시를 받고 DVD 트리오 중 하나인 존 댕크스를 넘긴 것도 결과적으로 좆망으로 끝나긴 했으나 독선적인 지휘로 선수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벅 쇼월터를 해고하고 선수들과의 소통에 뛰어난 론 워싱턴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함으로써 팀 분위기를 쇄신함과 동시에 팀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다.

그리고 몇 개의 실수를 액땜 삼은 대니얼스의 레인저스는 팜, 트레이드, FA를 시의적절하게 이용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순풍을 타기 시작한다.

2007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단행한 마크 테세이라 트레이드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드라고 평가받으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존 슈어홀츠 단장을 떡실신시켰다. 여기서 받아온 선수가 2010년대 레인저스 중흥기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맷 해리슨 + 엘비스 앤드루스 + 네프탈리 펠리즈 + 재러드 살탈라마키아. 여기에 에리크 가녜를 트레이드하며 데이비드 머피를 받아오는 등 짜잘한 트레이드가 있었다.

또한 대니얼스가 단장 취임 이래 중점적으로 한 또다른 일은 팜 관리와 해외 시장을 개척한 것. 대니얼스가 막 단장직에 임명되었을 때만 해도 레인저스의 팜 시스템은 중하위권 수준이었다. FA에다 많은 돈을 퍼붓는 것을 자제하는 대신 중남미 아마추어 시장에 적극적으로 돈을 쏟아부으며 젊고 재능 있는 원석들을 쓸어담았다. 그 결과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들과 함께 팜의 뎁스가 급격히 두터워지며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하면서도 팜도 꾸준히 순위권에 드는 비결이 되었다. 팀 성적이 좋아 드래프트 상위픽을 받지 못하고, FA로 픽을 날리는데도 꾸준히 상위권 팜을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중남미 시장에 대한 물량공세. 이 결과물이 주릭슨 프로파틴 페레즈, 레오니스 마틴, 닐 라미레즈 등으로 나타났다.

트레이드 역시 상당한 성과를 보아서, 카를로스 리와 함께 받아온 넬슨 크루즈비록 약쟁이지만 타선의 주축이 되었고, DVD 트리오 중 2번째 멤버인 에딘슨 볼케즈로 데려온 조시 해밀턴은 MVP급의 전국구 슈퍼스타로 떠오르며 레인저스의 간판타자로 활약한다. LA 에인절스가 버린 마이크 나폴리 역시 잘 줏어서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다 대니얼스는 레인저스 볼파크의 가혹한 환경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투수 지옥인 된 팀 사정 상 투수 유망주들을 과도하다 싶이 긁어모았는데, 상기의 트레이드나 아마추어 유망주 외에도 드래프트로 뽑은 데릭 홀랜드, 토미 헌터, 태너 셰퍼스, 로비 로스 등 외에도 콜비 루이스알렉시 오간도 같은 불확실한 로또들도 마구 긁어모으며 투수진을 두텁게 했다. 이같은 바탕에 마이크 매덕스 투수 코치나 놀란 라이언이 주도한 롱토스 프로그램 같은 정비된 교육 시스템이 파이어볼러들을 양산했고, C.J. 윌슨같은 선수도 불펜 알바를 거쳐 포텐셜을 터뜨렸다. 그 결과 리그 최고의 타자 구장을 쓰면서 리그 최고의 투수진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진취적인 시도들이 팀 전력의 극대화로 나타나면서 길었던 암흑기를 청산하고 2010-2011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하지만, 두 번 다 정상 문턱에서 패퇴했다. 특히 2011 월드 시리즈에선 우승까지 스트라이크 하나 남기고 분루를 삼켜야 했다.

단장으로서 보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자신만의 철칙과 신념이 확고한 동시에, 때로는 과감성과 결단력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2010 시즌에는 준수한 투수들이 많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의 슈퍼 에이스가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저스틴 스모크 같은 유망주를 퍼주고 클리프 리를 데려왔고 리는 포스트시즌 역사에 남을 퍼포먼스로 보상하며 월드 시리즈로 팀을 이끌었다. 2013년 종료 후에는 2년 연속 한끝 차이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게 밀리자 타선 강화를 위해 이안 킨슬러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게 내주고 프린스 필더를 데려오는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또한 알링턴에서 2점대 ERA를 찍은 C.J. 윌슨을 과감히 포기하고 마쓰자카 다이스케이가와 게이의 실패로 일본 투수에 대한 불신감이 없어지지 않았을 무렵에 다르빗슈 유에게 예상을 뛰어넘는 1억불 이상을 배팅했다는 점이나, 주릭슨 프로파라는 최고 유망주가 있는 상황에서 엘비스 앤드루스에게 8년 $120M 이상을 안겨준 것도 그 예. 다만 이것은 이 선수들이 영계(...)였다는 점에서 가능했으며, 나이가 많은 선수들에게는 가차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쇠화가 온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마이클 영을 트레이드 시킨 것. 또한 레인저스 팬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이안 킨슬러 역시 나이가 먹고 그래봤자 추신수와 동갑이지만 성적이 떨어지는 기미가 보이자 바로 트레이드시켰다. 이 때문에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팽시켜버린 테오 엡스타인과 마찬가지로 "정이 없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지만 지나치게 냉정하다"며 비판을 받기도 한다.

FA에서도 그 점이 드러나는데, 대단히 신중해서 5년 이상의 계약은 잘 주지 않으려고 할 정도이다. 일단 30살이 넘어간 선수라면 나이가 들수록 먹튀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대우가 상당히 박하다. 나이가 30줄에 접어든 C.J. 윌슨 거르고 20대 중반의 다르빗슈 유를 선택한 것이나 팀의 간판 스타 조시 해밀턴도 제대로 잡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떠나보냈다. 이러한 철칙이 프린스 필더, 클리프 리, 잭 그레인키 등 스타급 선수를 적극적으로 비딩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에게 뺏겨버리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추신수의 FA 영입 때 많은 레인저스팬들은 대니얼스가 2014년에 32세가 되는 추신수에게 절대 6년 이상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예상을 깨고 7년이나 보장해주자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4]

하지만 이는 '과감성과 결단력'이라는 측면에서 기존 대니얼스가 보여주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무브먼트다. 텍사스의 추신수 영입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의 언론들이 호평을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텍사스 타선에 꼭 필요한 유형의 타자가 추신수였고 [5] 확실한 업그레이드를 위해 텍사스는 추신수를 잡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게 JD의 스타일이다. 거기에 자코비 엘스버리의 7+1년 1억 6900만 달러, 로빈슨 카노의 10년 2억 4천만 달러에 비하면 굉장히 싸게 잡은 셈. [6] 하지만 현재 상황은 박찬호의 재림

추신수 영입에 대한 열의는 JD가 선물을 싸들고 추신수의 자택을 방문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대니얼스의 정성 역시 한 몫해 레인저스는 추신수가 양키스의 1억 4천만불 제의를 뿌리치고[7] 레인저스와 계약하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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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종전 기록은 2002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단장으로 임명된 만 28세 10개월의 테오 엡스타인.
  • [2] 당시 필라델피아 필리스 인턴 직원이었고, 후에 레인저스의 스카우팅 디렉터로 부임해 대니얼스와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 [3] 과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명단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박찬호의 레인저스 입단을 주도한 인물이었지만, 박찬호의 먹튀짓을 시작으로 재직 4년 동안 팀이 총체적 막장에 빠지면서 사임했다.
  • [4] 추신수의 텍사스 행을 부정적으로 보던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단장 성향이 장기 FA 는 안 잡는다' 는 말이었기에 자꾸 반복되는 말에 신물이 난 유저들이 JD 의 별명을 '단장 성향' 으로 만들 정도였다. (...) 그런데 다들 이렇게 반응할 정도로 서른 살 넘은 FA 를 정말 싫어하기는 했다.
  • [5] 현지 언론들은 '케이크 위의 마지막 체리를 얹었다' 라고 표현했다. 한 마디로 화룡점정.
  • [6] 마이클 영, 조시 해밀턴 등 다른 텍사스 출신 타자들과는 왜 이런 계약을 안 했냐고 불만을 드러내는 팬들도 있으나 사실 세이버메트릭스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해가 안 가는 결정은 아니다. 세이버의 총 집합인 스탯, 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인 WAR의 관점으로 본다면 조시 해밀턴은 몬스터 시즌인 2010년을 제외하면 부진한 해의 기록을 빼더라도 4.0 fWAR 정도만을 기록하던 선수이며, 그 2010년의 기록은 2013년 종료 기준 해밀턴의 커리어 BABIP인 .330보다 무려 6푼이 높은 .390의 BABIP에 힘입은 바가 크다. 1WAR의 가치가 450~500만불이며 에인절스가 그를 잡은 비용이 5년 125M인 걸 감안하고 보면 JD 입장에서 해밀턴은 그런 오버페이를 하며 잡을 가치가 없는 선수였던 셈이다. 마이클 영은 더하다. 영은 전형적인 배트볼 히터로 타율 대비 출루율이 낮은 선수였으며 커리어 하이 fWAR가 4.4에 불과하고 보통 3.0 WAR 수준에 머물던 선수였다. 반면 추신수는 부상과 음주로 헤맨 해를 제외하면 풀타임 출장 시 꾸준히 5.0 근처의 fWAR을 기록했다. 물론 세이버메트릭스적인 측면이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JD가 비난을 받을 수도 있으나 냉철한 비즈니스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JD의 결정은 합리적이다.
  • [7] 양키스가 이런 오퍼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인이 거절한 것은 아니라고 추신수가 직접 인터뷰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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