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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인 게이시

last modified: 2015-07-17 22:56:59 by Contributors


저 남자의 정체를 알게된 카터 영부인의 표정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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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분장을 한 존 웨인 게이시

1942년 3월 17일 ~ 1994년 5월 10일

미국의 대표적인 연쇄살인자. 평소에 광대 분장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해왔기에 '광대 살인마'라는 별명이 있다.

원래 평범한 가정 출신이었으나, 아버지가 알콜중독자라서 그를 학대하였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여성적 성격이 되었고, 이것은 나중에 그의 성적 취향에 영향을 미쳤다. 한편 11살때 이마를 다쳤는데,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성격이 난폭하게 변한 것 같다.

그럭저럭 고등교육을 받은 뒤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으나, 부인 몰래 여러차례 남색 행위를 하였다.게이 그러다 1968년에 크게 걸려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그 와중에 부인에게 이혼당했다. 1970년에 가석방된 후에 과거를 숨기고 업가로 변신하였다. 그래서 일리노이 주의 대형 건설사업가로서 지위를 누리면서, 한편으로는 광대 분장을 하여 지역 고아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민주당원으로서 정치에도 관여하여 카터 대통령의 영부인과 사진을 찍기에 이르렀다.[1] 맨 위의 사진이 바로 그 사진이다. 그러나 이 모습이 그의 전부는 아니었다.

게이시는 사업이 번창하는 즈음부터 다시 범행을 시작하였다. 이제는 단순한 이나 강간만이 아닌 살인으로 발전하였다. 처음엔 자기 회사의 직원이 대상이었으나, 점점 대담해져서 길가는 청소년들을 몰래 납치해서 강간 후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범행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은 1978년 12월의 13일, 로버트 피스트(Robert Piest) 살해 혐의로 체포되면서다. 피스트는 새로운 사장을 만난다며 알바로 일하던 약국을 다녀간 뒤 실종되었는데, 그 약국의 새로운 사장이 바로 게이시였다. 게이시가 수사협조를 거부하자 경찰은 영장을 발부받아 가택수색을 했다. 가택수색 결과 2개의 운전면허증과 반지들, 각종 마약과 포르노 잡지들과 게이관련 서적이 발견되었다. 물론 이것만으론 피스트 살해 혐의를 입증할 순 없었다. 거기다 게이시의 이웃들은 게이시는 절대 그럴 인간이 아니라며 변호하여 수사는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경찰은 마약 소지 혐의로 기소한 뒤 수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게이시의 집에서 피시트가 끊은 약국 영수증이 발견되었으며, 이전에 실종된 사람의 차가 게이시의 소유로 된 것이다. 결국 게이시는 자신이 피스트를 죽였고 시체를 차고에 묻었다고 진술한다. 경찰은 게이시가 진술한 차고를 발굴하기에 앞서 끔찍한 악취를 풍기고 있던 집의 마루 밑을 발굴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무수한 시체가 발굴되었다. 게이시는 자신이 72년부터 살인을 시작하여 최소 30여명을 살해했다고 진술하였다. 물론 이전에 게이시를 체포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마을에서 명망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경찰들은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피스트의 경우에도 게이시의 집에서 비명소리가 나 경찰들이 출동했지만 게이시를 보고 그냥 돌아가 버렸다.

게이시가 밝힌 살해수법은 먼저 화려한 말빨로 희생자를 유인하여 수갑을 채운 후, 입에 옷가지들을 집어넣어 비명을 못 지르게 한 다음, 강간과 고문을 하고 살해하는 것이었다.

경찰은 그의 집에서 28구의 시체를 찾아냈으며 근처의 강에서도 시체 몇 구를 찾아냈다. 게이시는 시체를 강에 버린 이유에 대해 무덤을 파면 등이 아프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진실은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경찰이 찾아낸 시체는 최종적으로 33구에 달하며 이를 근거로 게이시를 기소하였고 1980년 사형이 확정되었다.

재판 때 게이시는 자신이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며 주장하였고 변호인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증인으로 게이시에게 강간과 고문을 당했다 버려진 링갈을 내세웠다. 하지만 당시 링갈은 게이시에게 당한 끔찍한 범행으로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었고 배심원들은 이를 게이시가 미친 게 아니라 오히려 얼마나 잔혹한 범죄자인지를 입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사형 역시 합당하다고 판단했으며, 집행은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1994년에 있었다. 게이시는 KISS MY ASS[2][3]를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의 사형집행 중에 약물이 응고되어 체내에 주입되지 않아서, 튜브를 교체하는 등 소동이 있었고, 이때문에 다른 사형수들에 비해 꽤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에 비난 여론이 있었지만 사형 집행관은 "그는 그가 죽인 사람들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죽었소."라며 답변했다.

수감중에 그림에 소질을 보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중 대부분은 피해자 유족들이 구입해 불태웠으나[4] 소수의 작품은 살아남아 한 박물관에 소장된 상태. 여러 명사들이 그 그림에 서명[5]을 했다. 그들은 게이시의 연쇄살인에 대해 알지 못하고 일반 화가인 줄로만 알았다고.

만화 스폰(spawn)에서 등장하는 광대 악마인 클라운(Clown)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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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저 사진의 공개는 후일 카터의 인기를 하락시키는 한 원인이 되었다.
  • [2] "웃기고들 있네", 또는 "X까"로 해석된다...
  • [3] 이에 그의 재판을 담당한 변호인은 자기를 죽여도 희생자는 돌아오지 않는다를 뜻한다고 주장했다.
  • [4] 공식적으로 화형식까지 치뤘다니 그에 대한 원한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 [5] 저명한 야구선수들은 물론이고, 닉슨 전 대통령마저 낚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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