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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맥

last modified: 2015-03-07 15:23:15 by Contributors

Contents

1. 설명
2. 전기
3. 개발 철학
4.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5. 하드웨어에 대한 비평
6. 로켓 개발
7. 오큘러스 리프트
8. 사생활
9. 기타
10. 존 카맥에 관한 오해와 진실
10.1. 과대평가
10.1.1. 과대평가 1: 존카맥이 3D 그래픽을 만들었다, BSP 개념을 발명했다. 폴리곤을 창조했다. 등
10.1.2. 과대평가 2: 존카맥은 게임 1인칭 시점의 창시자
10.1.3. 과대평가 3: 3D 카드를 본격적으로 적용해서 PC 게임 그래픽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존 카맥이 없었다면 아직도 10년, 20년 이상 뒤쳐진 그래픽의 게임을 하고 있을것이다.이글은 콘솔쪽에 치우친 의견으로 되어 있으니 판단은 여러분이 하셔야 됩니다
10.1.4. 과대평가 4: 3D게임 엔진 시장을 개척하였다
10.1.5. 과대평가 5: 기술 특허를 하지 않고 기술 공유에 매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0.1.6. 과대평가 6: 소스 코드 공개로 3D 기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10.2. 사실에 입각한 업적
10.3. 기타 오해와 진실들

1. 설명

John D. Carmack II. 이드 소프트웨어의 공동창업자이며 기술 감독이자 게임 프로그래머. 컴퓨터 게임사에서 FPS 장르의 창시자격으로 인정되는 인물이다.
게임계의 가장 권위있는 시상식 중 하나인 AIAS(Academy of Interactive Arts and Sciences)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았으며 1970년생으로 수상당시 나이는 31세였다. 시간이 지나서도 관리직으로 넘어가지 않고 여전히 소규모 팀을 유지하면서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하였다. 현재는 이드 소프트웨어를 퇴사하고 오큘러스 리프트의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2. 전기

어린 시절 애플 컴퓨터를 접한 후 진로를 프로그래머로 정했다. 하지만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반대가 극심했는데 어머니는 카맥이 아이비리그 학교에 들어가 교수 내지는 대기업 고액 연봉자 등이 되길 바랬다. 이렇게 어머니와 마찰을 겪으며 성격이 점점 어두워지고 공격적이 되어갔다. 14살 때 애플 컴퓨터를 손에 넣으려고 사제 폭탄을 제조해서 인근 학교에 침입했다가 걸려서 소년원에 1년 동안 가 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 덕분에 Nerd 이미지가 있었음에도 무서운 놈으로 찍혀 주변의 불량배들도 웬만하면 안 건드렸다.

소년원에 들어가 있을 당시 의사가 '이 소년은 다리 위로는 뇌 밖에 없는 것 같다.'라고 써서 무지막지한 천재로 검증받았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 저건 머리 좋다는 뜻도 있지만 '심장이 없다', '이 녀석은 감정이 없다'라는 의미로 한 말이다. 실제로 그 당시 보고서를 죽 읽어보면 카맥의 정신감정을 맡은 의사는 카맥의 지능보다도 무감정함에 더 신경을 썼다.

이후로 결국 집에서 나와 혼자 생활하게 된 고등학교 시절 쉐도우포지, 레이쓰 등의 게임을 만들어 소매점에 직접 판매하기도 했으며, 대학교에 2학기 정도 있다가 자퇴한 후 잡지용 부록 게임 제공 회사인 소프트디스크에 들어가 본격적인 풀 타임 프로그래머로써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존 로메로, 아드리안 카맥, 케빈 클라우드 등 대표적인 초기 이드 소프트웨어 멤버들을 만났으며, 때마침 어포지 사(현재의 3D 렐름즈)의 CEO인 스콧 밀러의 사업 제안을 받고 소프트디스크사를 퇴사하여 이드 소프트웨어를 설립한다.

1990년, 이드 소프트웨어의 첫 작품인 '커맨더 킨(Commander Keen)'을 발매한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아류 게임이었지만[1] 당시 PC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드러운 스크롤을 선보였으며, 어포지에서 사용한 '셰어웨어' 방식을 이용해 판매하여 좋은 홍보 겸 수익고도 갖춘다. 이드 소프트웨어는 거대 유통사에 의지하지 않고도 게임을 발매할 수 있는 셰어웨어 방식을 꽤나 마음에 들어했으며, 이후로도 울펜슈타인 3D와 둠을 셰어웨어로 유통한다. 하지만 둠이 셰어웨어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성공이 거두면서 둠 2부터는 GT 인터랙티브 및 액티비전을 통해 게임을 유통하게 된다.

커맨더 킨 이후 3D 게임으로 개발 방향을 돌려 원시적인 FPS 게임인 '호버탱크 3D'를 개발했지만 별 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였다. 이에 회사 내부에서 '커맨더 킨'의 후속작 및 다른 횡스크롤 게임들을 발매할 동안 존 카맥은 더욱 개선된 3D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고, 1992년 5월 5일, '울펜슈타인 3D(Wolfenstein 3D)'를 발매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가 22세. 그로부터 1년 후인 23세때는 '(Doom)'을 내놓아 일약 스타가 된다.

풀폴리곤 그래픽을 보여준 퀘이크는 26세 때, 그로부터 1년 후인 퀘이크 2를 발매한 때는 27세였으며, 이때부터 일반 대중들에게도 서서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서 매년 열리는 이드 소프트웨어의 퀘이크콘이라는 공식행사에서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등 게임업계에 유명인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이 후 둠 3에서는 충격적인 기술 데모를 선보여 전세계적으로 큰 각광을 받았다.

현재는 기술의 상향평준화로 인해 예전같이 특출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레이지 등의 게임을 통해 아직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뛰어난 프로그래머 중 한명으로 인식되고 있다.

2005년 무렵부터 휴대용 게임(주로 모바일폰 게임) 개발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둠 RPG를 시작으로 다수의 휴대용 게임을 개발하였다. 2010년에는 iOS용으로 레이지를 개발, 발매하였다.

3. 개발 철학

단순함 및 최소주의의 신봉자이다. 개발자가 너무 많으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오랫동안 적은 개발자를 고집하기도 했다. 그 결과 퀘이크 3는 10명, 둠 3는 25명 남짓의 적은 개발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는 언리얼 토너먼트나 하프라이프 2 같은 당시의 경쟁 게임에 비하면 1/3 정도의 수준이다. 그러나 2008년 무렵부터 이드 소프트웨어도 이와 같은 소규모 팀을 유지하다고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공격적인 확장을 거듭했고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하기 위해 니맥스이드 소프트웨어 인수 제안을 받아들여서 현재는 제니맥스의 산하로 들어가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도 개발 효율이나 단순함에 대해 언급을 자주 하는 편이며, "요즘 게임들은 개발하기 너무 복잡하다."는 불만을 여러번 토로한 적 있다. 2005년 무렵부터 둠 RPG를 비롯한 모바일 게임을 만든 건 그 때문이었으며 "결과물이 빠르게 나오는 모바일 게임 개발이 더 재미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드 소프트웨어의 게임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단순한 디자인도 존 카맥의 영향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존 카맥은 원칙적으로 오리지널 둠 이후 게임 디자인에서 손을 떼었으며, 그간 "게임 디자인은 내 영역이 아니다"라고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이건 그냥 회사의 다른 디자이너들 조차 단순한 게임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92년, 둠 개발 당시 언급했다는 "게임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스토리 같다. 있어야 하겠지만, 중요하진 않다." (Story in a game is like a story in a porn movie. It's expected to be there, but it's not that important.)라는 발언이 유명하다. 이 언급은 이드 소프트웨어 게임의 부실한 스토리를 비판하는 용도로 자주 쓰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그 당시의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울펜슈타인 3D가 개발되던 당시는 기껏해야 386~486 컴퓨터가 사용되던 시절으로, 뭔가 대단한 것을 집어넣으려고 해도 성능이 발목을 잡아 구현하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또한 당시의 이드 소프트웨어는 개발 인원이 총 6명이었던 소규모 개발사로 너무 많은 것을 시도했다가는 게임이 언제 나올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의 간판 게임 디자이너였던 톰 홀은 자신이 쓴 100페이지로 구성된 깊이 있는 설정안을 게임에 반영하길 원했고, 그것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여긴 존 카맥은 해당 발언으로 톰 홀의 방향에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표한다. 그리고 카멘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 개발자들도 반대하긴 마찬가지였다. 2011년의 인터뷰를 보면 정말 본인이 저 대사를 언급한 것이 맞는 듯하다.

4.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1995년 울펜슈타인 3D의 소스 공개를 시작으로, 자신이 개발한 엔진의 소스를 GPL 라이선스 하에 공개하고 있다. 1997년에 둠, 1999년에는 퀘이크의 소스 코드를 공개했으며, 이어 2005년에 퀘이크 3, 그리고 2011년에 둠 3의 소스 코드를 공개했다. 퀘이크 3부터 소스 코드 공개 주기가 길어진 것은, 엔진을 라이센스한 회사들이 이른 소스 공개로 피해를 입는 걸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비록 소스 코드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되었으나,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프로그래밍 지식을 필요로 한다. 기본적으로 C++, OpenGL, Win32API, OOP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있어야 비로소 코드가 눈에 좀 들어올 것이다. 또한 오픈 소스로 공개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아무데나 써도 되는 것은 아니다. GPL 라이선스로 공개되었으므로 엔진과 결합되는 게임 소스 코드도 함께 공개해야만 하는 제약이 걸려버린다. 게임 소스 코드를 공개하기 싫다면 여전히 이드 소프트웨어에 라이센스비를 지불해야 한다. 원래 프리웨어와 오픈 소스는 다른 개념이다. 프리웨어는 아무나 무료로 쓸 수 있는 것이지만, 오픈 소스는 말 그대로 소스가 공개만 되어 있을 뿐 라이센스에 따라 사용 조건이 있고 그 조건을 피하기 위해서는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존 카맥은 특허출원이 기술 발전을 저해한다며 매우 싫어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존 카맥의 기술이 큰 주목을 받던 90년대 중반, 특허를 내는게 어떠냐는 동료에 말에 "나보고 특허 내라고 하면 회사 그만 둔다."고 엄포를 놓은 일화가 알려져 있다. 특허에 대한 반대는 인터뷰나 키노트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5. 하드웨어에 대한 비평

존 카맥은 새로운 하드웨어에 대해 거침없이 비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3D 가속 카드와 관련된 일화로는 글라이드 3D(Glide 3D)라는 전용 그래픽 처리기술을 갖고 있었던 부두 그래픽카드에 대해 "글라이드 3D는 어려우니까 안 쓸 거다."라고 말하며 타격을 입힌 일이나, "지포스 4 MX는 둠 3를 돌리기에 좋은 선택이 아니다."라며 혹평을 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당연한 것이, 지포스 4 MX에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셰이더(지포스 3에서 도입)가 없었다. 지포스 2에서 이름만 바꾼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효과 측면에서는 사실상 지포스 3보다도 못했다. 물론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았다.

또한 콘솔 특히 플레이스테이션 3에 대해서는 유독 많은 혹평을 남기며 플빠의 공적이 되었으며, 상대적으로 호평해 왔던 엑스박스 360에 대해서도 디스크 3개로 게임 발매시 과도한 로열티를 부과한다며 'DVD 용량은 충분치 않다'는 단골 떡밥을 다시 환기시킴과 더불어 마소의 비즈니스 정책을 깠다.

콘솔은 주로 제한적인 성능과 어려운 제작 환경 때문에 비판을 많이 했는데 2006년 퀘이크콘에서 그가 두 콘솔 기종을 비교한걸 들어보면 엑스박스 360을 지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잘 보면 "둘 다 병신이고 PC가 최고임"이라는 그의 논지를 찾기 쉽다. 그러나 하드웨어 스펙을 제외하고 개발환경만 따지면 엑스박스 360의 개발환경이 무척 편하다며 매우 호평하기도 했다. 그래서 레이지도 엑스박스를 리드 플랫폼으로 제작했다.

그 외 PhysX 물리 가속카드에 대해서 "이건 쓸데 없는 짓이다"라며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2011년 들어 PC에 대하여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는 정확히 말하자면 PC 그 자체보다는 PC 제조사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픽 카드의 성능은 충분히 빠르니 하드웨어 회사들이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란 인터뷰를 한 바 있다.(브링크 관련돼서 한 말 같다. 또한 15년간 고수해왔던 OpenGL에 대해 D3D가 더 좋지만 귀찮아서 그냥 쓴다'는 논지의 발언도 했는데, 그로부터 몇달 후 발매된 레이지가 AMD 하드웨어에서 헬게이트를 연 후 아예 맘이 돌아섰는지 D3D로의 전환을 암시하기도 했다.

6. 로켓 개발

2000년부터 아르마딜로 에어로스페이스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로켓 제작에 매진하고 있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X Prize 컵에 대한 기사를 읽었고, 완전히 필이 꽃혀서 바로 로켓 개발에 착수했다고. 그에게 동기부여를 했던 X Prize 컵은 이미 2004년에 마소 공동창업자 폴 앨런의 막대한 자금력을 등에 업은 다른 팀이 우승했지만 그 이후로도 로켓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결국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08년과 2009년, NASA의 챌린지 프로그램을 통과하며 85만 달러의 상금을 획득하였다. 하지만 2013년까지 들어간 개발비만 800만 달러는 족히 넘는다. 게다가 모든 개발비는 존 카맥의 주머니로부터 빠져 나간다.

취미 생활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탓인지, 그가 오랫동안 애지중지하던 개조한 페라리를 모두 팔고 현재는 로켓 부품 수송을 위해 밴 한 대를 구입하여 굴리고 있다. 그러나, 2013년 1월 들어서 회사가 점점 어려워지더니, 결국 로켓 개발을 접는다고 한다.

7. 오큘러스 리프트

2013년 8월 7일, 오큘러스 리프트의 CTO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드 소프트웨어의 자문 역은 계속 맡는다고 한다.

2013년 11월 22일,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퇴사한다고 밝혔다. 이드 소프트웨어에 기술 자문으로 계속 남고 싶었지만 일이 그렇게 풀리지 않았고, 관심사를 나눠서 집중하기 힘드니 잘 된 것 같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2014년 8월, 마인크래프트놋치가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리프트 인수 후 마인크래프트로의 포팅이 취소되자 짜증을 낸 트윗에 '코드만 주면 다시 잘 돌아가게 해 줄께'라고 쿨내나는답변을 남겼다. 관련기사

8. 사생활

부인인 '캐서린 안나 강'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둘은 1997년에 처음 만났는데, 안나 강은 이드 소프트웨어 사무실에 방문하여 여성 퀘이크 대회의 스폰서를 맡아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했고, 존 카맥은 그에 응했지만 기껏해야 수십명 정도의 작은 랜파티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안나 강이 주최한 퀘이크 대회에는 2000명의 사람들이 운집했고 존 카맥은 그녀의 능력에 감명받아 반했다는 이야기. 둘은 2000년에 결혼하여 2004년, 2009년에 각각 한 명의 아이를 낳았다. 캐서린은 이렇게 카맥과 인연을 맺은 후 게임계에 뛰어들어 머시니마(Machinima. 쉽게 말해 게임 관련 종합 동영상 업체) 분야에서 크게 활약하기도 했다.


잠깐 그것보다 저 개 눈이...참고로 개의 눈이 빨간 이유는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을 때 흔히 일어나는 적목현상 때문이다. 저 개는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가 아닙니다
왼쪽부터 안나 강, 나인 인치 네일스로 유명한 트렌트 레즈너, 그리고 카맥이다. 트렌트 레즈너는 광팬이라고 하며, 실제로 퀘이크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고사양의 폭력적인 게임을 만들지만 정작 본인은 닌빠 기질이 농후하다. 하는 게임의 대부분이 닌텐도 게임이라고. 이건 간단하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임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존 카맥 본인의 믿음과도 관련 있어 보이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드 소프트웨어 게임이 퀘이크 3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DX는 왜 재미있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시리즈 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대난투 시리즈가 원래 평이나 인기에 비해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게임 시리즈다. 참고로 그가 가장 최고로 뽑는 게임은 메가드라이브소닉 더 헤지호그 시리즈이라고 한다.

유도주짓수를 배운적이 있다. 이드 소프트웨어를 방문한 쇼 호스트를 업어치기로 제압하고 목 조르기를 시전한 적도 있다

2010년 중순을 기점으로 트위터를 시작했다.

9. 기타

집중력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이드 소프트웨어의 초창기 시절 프로그래밍에 심취하여 화장실 외에는 컴퓨터 앞에서 한시를 떠나지 않고 먹고 자고 하면서 며칠을 보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던 존 로메로가 장난끼가 발동해 카맥이 있는 옆 방에서 대놓고 포르노를 틀어서 그를 컴퓨터와 떼어내 보려 했는데 카맥은 시끄럽길래 잠시 코딩을 멈추었다가 '음...' 하는 특유의 콧소리를 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컴퓨터 앞에서 하던 걸 했다고 한다.고자

비디오 게임 사이트인 루리웹에서는 레이지의 PS3 30프레임 소동이나 PS3 개발환경에 대한 불만을 표한 사건 때문에 플빠로부터 3류 프로그래머로 불리곤 했다. 그런데 누군가 오타였는지 잘 몰라서였는지 '13류 프로그래머'라고 지칭한 것이 크게 흥해서 'n류 프로그래머'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으며(n값은 인기와 평판에 따라 오르내린다.) 현재는 18류 또는 그 이하까지 내려가는 등 여러가지로 말 장난의 소재가 되고 있다. 신작 레이지 개발과정에서 PS3의 블루레이 용량을 추켜세웠는데 정작 발매된 게임에서 텍스처 로딩이 개판이자 2^10류 프로그래머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이에 휘말려서 코지마 히데오 등 다른 개발자까지 'n류 개발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다. 하필이면 레이지 PC판이 엉망일 때 존 카맥이 "PC를 게임 개발의 리드 플랫폼으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해서 더 까였다.

둠 3에 목소리로 출연하기도 했다. 자세한것은 둠 3의 생존자 항목 참고.

10. 존 카맥에 관한 오해와 진실

존 카맥은 현대의 컴퓨터게임사에 한 족적을 남긴 인물임에는 이의가 필요하지 않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문제는 일부 추종자들에 의해 그의 업적이 다소 확대해석되어 사실보다 지나지게 과대평가되거나, 심한경우에는 그와 전혀 상관없는 일들도 그의 업적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심한 경우 3D 그래픽을 존 카맥이 발명해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10.1. 과대평가

10.1.1. 과대평가 1: 존카맥이 3D 그래픽을 만들었다, BSP 개념을 발명했다. 폴리곤을 창조했다. 등

울펜슈타인3D는 세계 최초의 텍스처 맵핑이 된 3D 그래픽 게임이다. 퀘이크는 세계 최초의 풀폴리곤 게임이다. 존카맥 BSP개념을 발명했다.

일부 개인 블로그나 게임 커뮤니티에서 위와 같은 주장이 있으나 사실과는 다르다.

일단, 컴퓨터 그래픽에서 3D 폴리곤의 개념은 1959년 MIT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텍스처 맵핑이 된 3D 던전 그래픽은 울펜슈타인3D 개발전에 존 카맥이 만든 "카타콤3D"인데, 이는 당시 개발 중이던 울티마 언더월드의 테크데모를 보고 따라 만든 것이다. 릴리즈 날짜로는 카타콤3D가 더 빠르지만 기술적으로는 울티마 언더월드가 더 진보적이었다. 풀-폴리곤의 완전한 3D 그래픽의 게임도 96년 발매된 퀘이크보다 95년도에 발매된 디센트가 먼저였고, 쟝르는 다르지만 당시로서 엄청난 풀3D의 배경 그래픽을 보여줬던 94년작 버추어 파이터 2 역시 퀘이크보다 앞선다. 그리고 퀘이크 1 발매전인 95년도에 DOS용으로 풀3D에 복합적인 그림자 효과를 보여주며 퀘이크 1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그래픽을 가진이런 테크데모가 나오기도 했다.

일부 존카맥 추종자 또는 옹호론자들은 존카맥이 BSP 개념을 창조했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3D 공간 분할 알고리즘 중 하나인 BSP의 개념은 1969년에 처음 나왔으며 이후 지속적 발전과 변형이 있었다. 존 카맥은 둠과 퀘이크에 BSP 알고리즘을 이용하되 당시의 PC 성능으로 그가 원하던 스타일의 게임을 구현할수 있는 일종의 변형 알고리즘이 적용된 것뿐이다.

일부 옹호론자들은 게임으로는 사용할수 없었던 느린 BSP를 존카맥이 둠과 퀘이크에 적용해 3D 게임에 획기적 발전을 이룩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둠과 퀘이크와 동시대의 유명 3D 게임들 중, 특히 디센트는 퀘이크보다 먼저 풀폴리곤과 라이트맵, 광원효과를 보여주면서도 BSP를 전혀 사용되지 않았으며, 퀘이크 2보다 훨씬 우수한 그래픽을 보여줬던 언리얼은 퀘이크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BSP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더 훌륭한 결과를 보여주었으므로 그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10.1.2. 과대평가 2: 존카맥은 게임 1인칭 시점의 창시자

현대의 FPS들이 둠2, 퀘이크에서 정립된 스타일을 베이스로 삼고 있는것은 맞다. 다만 1인칭 시점 자체가 존 카맥에 의해 최초로 시도된 것은 아니다. FPS 항목 참조. 간단히 반례하나만 들면 울펜슈타인3D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울티마 언더월드의 경우는 위저드리와 같은 1인칭 던전 게임의 후손으로 울펜슈타인과는 다른 진화의 트리를 탔다.

그렇지만 위저드리 이전의 던젼형 게임의 경우 90도 각도로만 움직였지만 울티마 언더월드는 실시간으로 자유각도로 움직이는 던젼이 구현된것은 울티마 언더월드의 테크데모가 최초다. 울티마 언더월드 영상

던젼형이 아닌 게임까지 범위를 넒혀 보자면 더 빠르게는 1990년작 중에 Stunt라는 레이싱 게임도 있었다. 이 게임은 풀 3D로 전방향 회전도 가능하다.

10.1.3. 과대평가 3: 3D 카드를 본격적으로 적용해서 PC 게임 그래픽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존 카맥이 없었다면 아직도 10년, 20년 이상 뒤쳐진 그래픽의 게임을 하고 있을것이다.이글은 콘솔쪽에 치우친 의견으로 되어 있으니 판단은 여러분이 하셔야 됩니다


일반 게임 유저들의 PC 성능이 아케이드와 콘솔 게임기에 한참 못 미치던 시절, 본격적으로 3D 가속카드가 도입되던 시기는 1996년 3DFX 부두 그래픽스가 출시되고 부터이다. 그전에도 렌디션 베리떼 등의 가속 카드는 존재했으나 게임용의 3D 그래픽 가속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던 시기는 부두 그래픽스가 시초라고 봐도 무방하다.

퀘이크가 발매된 시기는 1996년이었고 최초 발매시엔 3D 가속 기능을 지원하지 않았다. 차후 베리떼용 V퀘이크와 3DFX GLIDE용 GL퀘이크가 패치로 나왔을 때, 같은 시기에 툼 레이더, 버추어 파이터 PC 등의 게임도 해당 3D 가속 기능을 지원하였고, 이어 등장한 3D 게임들 역시 3D 가속 카드 지원을 가지고 나왔다.

퀘이크 2보다 약간 먼저 출시된 튜록의 경우는 3D 가속 카드가 없으면 아예 실행이 불가능했으며, 퀘이크 2에선 지원하지 않았던 3D 카드를 이용한 거리 안개효과도 지원하였다. 퀘이크 시리즈의 3D 가속 카드 지원이나 그 인기와는 별개로, 당시 3D 가속 카드의 적용은 당시의 트렌드이자 PC 게임 그래픽의 주요 발전항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것이다.

퀘이크 2 출시 당시 퀘이크 2의 엄청난 인기와 더불어 3D 가속 카드의 본격적인 확산시기가 겹치며 어느정도 보급에 가속역할은 되었을수 있지만 존 카맥이 없었다면 현재 게임 그래픽의 발전이 현재보다 10년, 20년씩 뒤쳐져 있을거란 말은 억지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게다가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둠과 퀘이크의 열풍은 PC 게임시장에 한해서였다. 둠같은 경우 거의 모든 콘솔로 포팅되었지만, 판매량은 다 합쳐도 몇십만장이 안된다. 그러므로 3D게임의 개척시대를 함께한 세가의 버츄어 시리즈나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64 같은 게임들을 제쳐두고 마치 3D게임의 시대를 존 카맥 혼자 열었다는 식의 발언은 당연히 무식 인증이다.


10.1.4. 과대평가 4: 3D게임 엔진 시장을 개척하였다

사실 id소프트웨어는 게임 엔진 시장 개척과는 거리가 멀다. 게임 엔진이란게 정립되지 않았던 당시 시절에도 어떤 게임에 사용된 소스 코드를 타사에 라이센스 주고 그것을 기반으로 별개의 게임이 개발된 사례도 종종 있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둠의 소스 코드를 레이븐 소프트웨어에 라이센스 해주고 헥센, 헤레틱 등의 게임들에 이용되는 등 id소프트웨어도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당시에도 게임 개발을 전혀 안하고 게임에 필요한 일부 기술들만을 개발해 라이센스하는 전문 업체들도 이미 있었다. 다만, FPS 장르가 비교적 초창기였던 당시 시절엔 id소프트웨어와 그에서 파생된 몇몇 개발자들에 의해 설립된 개발사들, 그리고 그들이 대부분 id소프트웨어의 둠, 퀘이크 엔진을 라이센스 받아 사용했기 때문에 id소프트웨어가 3D 엔진 라이센스 시장을 개척했다는 오해가 있는것이다.

10.1.5. 과대평가 5: 기술 특허를 하지 않고 기술 공유에 매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존 카맥에 관한 가장 큰 과대평가 중 하나로, 존 카맥이 대부분의 3D 그래픽 관련 기술들을 개발해서 업계에 공개해 업계 기술력의 전반적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폴리곤과 BSP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노멀맵이나 HDR같은 기술들도 존 카맥이 발명해서 업계에 공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사실 초창기 시절인 울펜슈타인3D와 둠 시절, 그 게임들의 구현 기술들은 매우 비밀스러웠으며 그 구현 방법이 공개되지 않았었다. 특히 둠은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었고, 그 구현 기술은 곧 돈이었기 때문이다.

둠의 레벨 에디터도 공개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내 수많은 아마추어들에 의해 둠의 파일과 레벨 구현 방식에 관한 기술들이 분석되면서 다양한 비공식 맵 에디터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id소프트웨어는 사업 확장의 일환으로 둠의 레벨 포맷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식 맵 에디터나 유틸리티는 공개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 출시된 더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준 듀크뉴켐3D가 게임CD에 관련 에디터와 유틸리티 툴과 메뉴얼을 풀셋으로 기본 포함하였다.

10.1.6. 과대평가 6: 소스 코드 공개로 3D 기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이 또한 매우 과장된 말이다. 이는 각 게임별 발매 시점과 소스 공개 시점에 차이가 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이드 소프트웨어도 장사하는 곳이니만큼 게임을 팔만큼 다 판 다음에야 소스를 공개하는게 정상이다.

이하 각 게임들의 발매일자와 소스 공개일자들은 다음과 같다.

  • 울펜슈타인3D(1992년작) 소스코드 공개 시점 : 1995년
1995년에는 이미 다양한 개발사에서 둠 엔진 이상의 엔진으로 2.5D 엔진들을 만들었던 시기다. 듀크 뉴켐 3D의 빌드 엔진은 이미 1994년에 듀크 뉴켐 3D에서 보여준 기술들(경사로, 반투명, 섹터 이동 등)이 모두 완성된 상태였고 퀘이크보다 먼저 풀3D의 풀-폴리곤 그래픽을 선보인 디센트도 나온 시점이었다. 그 시기에 울펜슈타인3D의 소스 코드 공개로 3D에 무지한 업계에 신지식을 공유해주었다는 주장은 게임사를 잘 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 둠(1993년작) 소스코드 공개 시점 : 1997년
둠은 1993년작이다. 소스코드 공개 시점은 1997년이다. 이미 둠의 알고리즘이 분석될대로 분석되고, 그보다 기술적으로 매우 우수함을 보였던 1996년작 듀크 뉴켐3D의 Build 엔진은 훌륭한 Build 에디터와 함께 개발 알고리즘을 모두 공개한 상태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Netimmerse(후에 GameBryo) 출신 개발자들로 필두되는 몇몇 3D 기술 공유 그룹들도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들에 의해 3D 폴리곤, BSP 가속화, Vertex 라이팅, 라이트맵, Pixel 라이팅과 섀도우 등 진보적인 기술들의 인터넷상 논문 및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미 1995년에도 3D 그래픽 프로그래밍 관련 서적만 구입하더라도 수 많은 예제 코드가 CD 부록으로 제공되던 시절이었다. 1997년에는 이미 OpenGL, Direct3D 등의 서적도 많이 나왔고 예제 코드도 인터넷에서 쉽사리 찾을 수 있던 시기였다. 그보다 늦은 1997년에 듀크 뉴켐 3D처럼 경사면도 구현하지 못하는 2.5D 그래픽의 둠 소스 코드 공개는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예제들처럼 하나의 참고사항은 될 수 있었더라도 그것이 3D 게임 그래픽 기술력의 상향 평준화에 공헌을 했다는 것은 억지 주장일 뿐이다.

  • 퀘이크(1996년작) 소스코드 공개 시점 : 1999년
1999년에는 퀘이크1,2 엔진을 라이센스 한 개발사들 외에도 다양한 개발사들에서 자체 개발 엔진들로 FPS들을 만들었던 시기다. 이것 또한 위의 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999년 시점에서 퀘이크의 소스 코드 공개와 3D 게임 기술력의 상향평준화에는 전혀 영향력이 없다.

  • 퀘이크 2(1997년작) 소스코드 공개 시점 : 2001년
2001년에는 테크 데모 맵만으로도 매우 다양한 기술들을 선보였던 시리어스 샘 같은 게임들도 나왔던 시기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러한 다양한 기술들은 인터넷에 눈문과 수 많은 소스코드 예제들이 돌아다니던 시기다. 이 시기에 퀘이크 1와 크게 다를바 없는 퀘이크 2 소스코드의 공개로 업계에 기술력에 공헌을 했다고 전혀 생각할 수 없다.

  • 퀘이크 3(1999년작) 소스코드 공개 시점 : 2005년
이미 퀘이크 3보다 렌더링 기술력과 네트워크 기술력에서 더 우수함으로 평가를 받은 언리얼, 언리얼 토너먼트(언리얼 엔진 1)의 기술 부분 소스 코드가 2001년에 공개되었다. 2005년에 퀘이크 3 소스코드 공개는 기술 공유라는 점에서 전혀 메리트가 없는 부분이었다. 특히 C++도 아닌 C로만 짜여진, 그리고 난해한 코드들은 더욱이 그랬다.

언리얼 엔진 1은 풀소스 공개가 아니고 퀘이크 3 소스는 풀소스 공개라는 점을 들어 반론하기도 하지만, 엔진의 구조가 다른만큼 언리얼 엔진 1은 언리얼 스크립트 등 코어 부분을 제외하고 렌더링, 네트웍, 사운드 엔진등 기술적인 부분의 모든 소스 코드를 공개했으며, 퀘이크 3 엔진은 구조상 C로 짜여진 통짜형 구조라 전체를 공개하지 않으면 컴파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언리얼 엔진 1은 해당 기술 부분의 소스 코드만 별도로 컴파일이 가능하다.

여하튼, 2005년에 기술적인 퀘이크 3 소스 코드 공개는 기술 공유로서 업계의 기술력의 발전에 대한 공헌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 둠 3(2004년작) 소스코드 공개 시점 : 2011년
2011년에 둠 3의 소스 코드 공개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둠 3 엔진이 개발되던 시기(2001년~2002년)는 셰이더 부분에서 과도기적인 시기라 참고하기에도 부적절한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는 평이다.

물론 위의 모든 과대 평가들이 존 카맥의 잘못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도 여전히 직접 코딩을 하는 순수한 엔지니어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에,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과장된 언플을 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문제는 당연히 무식한 게임 언론들과 무개념의 빠들.

10.2. 사실에 입각한 업적

  • FPS 장르 기반 정립
존 카맥의 업적은 매우 단순하다.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FPS라는 장르를 정립했다. 물론 이것은 존 카맥 혼자만이 아닌 울펜슈타인 3D와 둠 개발 당시의 존 로메로 같은 개발자들과의 게임 개발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개념이지만, 그 중 존 카맥의 원초적이고 심플함을 추구하는 게임 디자인에서 지금의 FPS 장르의 초기모델 정립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한 1인칭 게임이야 고대적의 칼라베스 같은 던전 탐색형 RPG[2] 시절, 또는 아웃런 같은 레이싱 게임들이나 비행 시뮬레이션 등등에서부터 내려온 것이지만, 울펜슈타인 3D은 현재 FPS라고 불리고 있는 장르의 기반을 만든 계기가 된 것에는 명확하다.

위에서 열거한 과대평가를 다 제쳐두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큰 업적이다. 현재의 수많은 FPS와 FPS에 기반한 장르의 게임들이 울펜슈타인 3D와 둠의 기본 디자인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10.3. 기타 오해와 진실들

  • 일본에서의 저평가
8, 90년대 콘솔 게이머들이나 일본 게이머들에게는 상당히 저평가 받는 거장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포르노 발언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에는 텍스트와 캐릭터와의 교감을 중시하는 일본 유저들의 감성에서 상당히 괴리된 사상의 개발자였을 뿐더러, 낮은 사양에 한정된 자원을 노력과 디자인으로 커버하려는 당시 콘솔 분위기나 일본개발자들의 콘솔 충성식 개발 사상에는 완전히 반대인, 눈속임 장식을 부정하고 기술의 구현에만 신경을 쏟는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기술 구현이라는것이 80년대에는 슈퍼 마리오를 PC로 이식하려는 수많은 닌텐도 워너비 수준이었을 뿐이었고, 퀘이크가 세상이 나오기전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는 스즈키 유 같은 자국 크리에이터들이 1993년에 버추어 파이터같은 3D 풀폴리곤 게임을 내놓는데 반해, 같은 해 존 카맥은 여전히 둠같은 2.5D 게임이나 내놓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물론 퀘이크 이후 기술력이 급격히 발전했지만 일본 유저들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으니 시간이 가도 그다지 조명도 받지 못했던 것.

사실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고, 그저 일본은 PC게임 시장보다 콘솔 시장이 수십배 이상 크고 자국의 소프트로 충분히 커버가능하며, 게임 업계의 축이 미국으로 기운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게임은 일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냥 단순히 일본은 미국 게임을 싫어한다. 즉, 그냥 울펜슈타인 3D, 둠, 퀘이크 자체의 인기가 없었으니 저평가되는 거야 당연한 거고, 게다가 퀘이크 2 이후 급격히 성장한 영미권의 게임계의 FPS 열풍과는 달리 일본은 그냥 각각의 회사들이 독자적으로 3D 게임들을 개발하고 있어서 직접적으로 존 카맥의 영향을 받은 부분은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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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이드는 PC버전으로 슈퍼마리오3를 개발하여 닌텐도에 보냈지만 돌아온 대답은 '훌륭한 작업물이나 우리는 PC시장에 관심이없다'였다. 실망한 이드소프트는 마리오를 포기하는 대신 개발에 사용된 엔진을 이용하여 커맨더 킨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 [2] 물론 울펜슈타인 3D 보다 먼저 발매된 울티마 언더월드가 훨씬 진보적인 그래픽과 공간적으로는 완벽한 3D게임엔진을 보여준것은 사실이지만, 울티마 언더월드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1인칭 던전RPG에서 확장된 개념으로서 개발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울티마 언더월드의 경우도 후반으로 가면서 전투가 격렬해지면, 울펜슈타인이나 둠같은 FPS 못지않은 원거리 전투와 근거리 전투가 혼합된 액션성을 보여준것도 사실이긴 하다... 울티마 언더월드가 과소평가되는 부분이 매우 많다고는 할수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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