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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정

last modified: 2015-04-15 09:34:19 by Contributors


서울 SK 나이츠 No.9
주희정(朱熙正)
생년월일 1977년 2월 14일
국적 한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출신학교 동아고 - 고려대학교 중퇴
포지션 포인트가드
신체 사이즈 181Cm, 79Kg
프로입단 1997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 입단
소속팀 원주 나래 블루버드(1997~1998)
수원/서울 삼성 썬더스(1998~2005)
안양 KT&G 카이츠(2005~2009)
서울 SK 나이츠(2009~ )
등장음악 Apink - Mr.Chu

2008~2009 한국프로농구 MVP
김주성(원주 동부 프로미) 주희정(안양 KT&G 카이츠) 함지훈(울산 모비스 피버스)

1997~1998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신인
프로농구 출범 주희정(원주 나래 블루버드) 신기성(원주 나래 블루버드)

2013~2014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후보선수상
변기훈(서울 SK 나이츠) 주희정(서울 SK 나이츠) 유병훈(창원 LG 세이커스)

2008~2009 한국프로농구 이성구기념상(국내선수)
강대협(원주 동부 프로미) 주희정(안양 KT&G 카이츠) 윤호영(원주 동부 프로미)

2000~2001 한국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MVP
서장훈(청주 SK 나이츠) 주희정(수원 삼성 썬더스) 르커스 힉스(대구 동양 오리온스)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KBL 데뷔 이전
2.2. 나래에서의 데뷔
2.3. 삼성 시절
2.4. KT&G 시절
2.5. SK 나이츠 시절
3. 선수로서의 특징
4. 기타 사항

1. 개요

KBL의 기록 제조기

서울 SK 나이츠의 포인트 가드. KBL 역사상 최다 경기 출장, 통산 최다 어시스트, 통산 최다 스틸, 통산 최다 반칙을 기록한 살아있는 KBL의 전설이다.

2. 선수 생활

2.1. KBL 데뷔 이전

조모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 연락이 끊겼고, 아버지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다. 매번 얼굴을 잊어버릴 때쯤 하면, 다시 집으로 오고 그랬다고.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어려움을 이겨내고 농구 선수로 성장했다.

동아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으나 당시 고려대에 신기성, 김병철, 김승민 등 좋은 가드 자원이 많아 일찍 빛을 보지 못하였다. 결국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2학년을 중퇴하고 일찍 프로의 문을 두드린 끝에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2.2. 나래에서의 데뷔

지독한 연습량으로 연습생 신화를 써내려 갔다. 나래 시절 명룡 감독은 주희정을 보고 '밥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운동만 하길래 오히려 내가 말릴 지경이었다'고 회고했으며 본인도 농담 삼아 '농구에도 더블 헤더 경기가 있으면 좋겠다' 말한 바가 있다. 대학 중퇴하고 들어온 선수가 데뷔 시즌에 놀라운 활약을 보이며 일약 스타로 부상하는데 성공했다.

1997-98 시즌 신인왕, 스틸상, 수비5걸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나래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맹활약하면서 전년도에 이어 나래가 6강 PO에 안착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마침 신인상에 있어서 가급적 농구대잔치 출신 선수들을 배제하기로 결정된 상황이라[1] 프로농구 초대 신인왕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시즌 성적은 12.7 득점, 4.1 리바운드, 4.2 어시스트, 2.9 스틸.

그러나 대학 시절 그의 앞 길을 가로막던 신기성이 또 다시 드래프트에서 지명되면서 그의 앞길이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신기성과 완벽하게 겹치기 때문에 공존은 거의 불가능했고, 결국 당시 최명룡 나래 감독은 기회 보장 측면에서 주희정과 병수를 삼성으로 보내고, 양경민, 승기를 받는 2:2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2.3. 삼성 시절

주희정은 삼성에서 팀을 이끌며 대활약을 시작했다. 정통파 센터는 없지만, 포워드와 가드 위주로 팀을 꾸려가던 2000년대 초반 삼성에게 주희정의 가세는 안정적인 리딩을 할 수 있는 화룡정점의 순간이었다. 삼성에서 꾸준히 활약하면서 삼성의 부활을 이끈 주희정은 결국 2000~01 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 MVP를 받으며 이규섭, 티머스 맥클레리, 문경은 등과 함께 삼성 썬더스의 우승을 견인한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10.8득점에 11.8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한 것.

그러나 우승 직후 시즌 주희정은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리며 우승하던 시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2001~02 시즌이 끝나며 삼성은 서장훈을 영입하게 되는데 당시 주희정은 플레이 스타일상 서장훈과의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속공과 가드 & 포워드 중심의 빠른 농구에 익숙했던 주희정은 서장훈의 영입 이후, 세트 오피스 상황에서 위력을 보이지 못하며 팀 컬러에서 겉돌기 시작했다.

결국 2004~05 시즌이 끝나고 안양 SBS의 이정석과 트레이드된다.

2.4. KT&G 시절

2005~06 시즌 SBS에서 인수된 팀인 안양 KT&G에서 슬슬 삼성 우승 시의 주희정의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마침 이 때의 KT&G는 속공과 포워드 중심의 농구로 팀 컬러가 변했던 상황이었고, 이는 볼 소유 시간이 길지만 그만큼의 효율을 내던 주희정에게는 딱 맞는 타입이었다.

드디어 2008~09 시즌에는 퀸 챈들러와 화려한 2대2 플레이를 펼치고 속공을 전개하면서 미친듯한 활약을 보였다. 챈들러 외에 다른 팀 동료들이 제대로 힘을 못 쓰는 상황에서도 주희정은 팀을 플레이오프권으로 이끌었으나, 안양 KT&G는 뒷심이 모자른 모습을 보이며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그 정도로 그 시즌 주희정의 모습은 독보적이었다. 08~09 시즌 성적은 평균득점 15.1점, 8.3 어시스트, 2.3 스틸 등. 08~09 올스타전에서는 그의 MVP 수상을 응원하는 팬들이 '정규시즌 MVP에 팀 성적이 반영되면 안된다'는 피켓을 든 적이 있다. 결국 서장훈과의 MVP 대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KT&G 시절 막판에는 유도훈 감독이 물러나고 전력보강과 특별한 지원 없이 기약없는 리빌딩에만 몰두하는 팀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여러 차례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리빌딩에 돌입한 팀 사정에 의해 김태술, 김종학과 맞트레이드되는 형식으로 09~10 시즌 전에 다시 SK로 이적.

2.5. SK 나이츠 시절

SK 이적 후 SK는 방성윤의 팀이며 좋은 조언자가 되겠다는 인터뷰를 했다.하지만 방성윤은 은퇴크리 화려한 멤버를 자랑하며 우승 후보 소리 들으면서도 플레이오프도 제대로 못 나가던 SK와 김진 감독의 승부수였으나, MVP 받고 온 주희정조차도 09~10, 10~11 시즌 SK나이츠를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주희정 본인도 팀과 같이 몰락(...)하면서 트레이드를 야심차게 추진한 김진 감독은 시즌 중도 사퇴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다. 과연 농구계의 LG 트윈스...

10-11시즌 개막 전에 김승현과 트레이드 오퍼가 있었다는 말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정지욱 기자 블로그 참조 그러나 트레이드는 이뤄지지 않았고, 팀의 에이스 자리는 2011-12 시즌에 혜성처럼 등장한 김선형에게 넘어갔다. 나이도 분명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기량 저하기는 하지만, 급작스러운 몰락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는 팬들도 많다.

2012-13 시즌에는 주전을 완전히 김선형에게 내주고, 벤치에서 뛰고 있다. 전반적으로 뛰어난 활약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없으면 김선형의 체력이 방전되므로 있는 것이 낫기는 하다. 2012년 11월 4일 KGC와의 경기에서 통산 4,900어시스트를 돌파하면서 최초의 5,000 어시스트 돌파를 눈 앞에 두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11월 7일 KGC와의 경기에서 통산 5,000 어시스트를 돌파했다. 현역선수 중 어시스트 2위는 3175개의 김승현, 3위 2122개 임재현, 4위 1913개 양동근인데 모두 주희정이 넘사벽이다. 현재 평균 5.7개로 KBL 어시스트 1위를 달리고 있는 가드 김시래라고 해도 5000 어시스트까지는 20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하다.

sk시절 내내 볼을 들고 코트를 한바퀴 돌면서 공격 시간을 다 소비했기 때문에 동네한바퀴 돈다는 소리를 박수교 해설위원에게 듣기 시작햇다.팬들 역시 주렁쇠,주봉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또한 실력에 비해서 과한 연봉을 받았기 때문에 먹튀라는 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2013-14 시즌을 기점으로 나아졌고 그 결과 생애 첫 식스맨 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로써 KBL 출범 이후 처음으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받은 선수가 되었다.

2014-15 시즌에 9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위인 추승균이 738경기, 현역 중 1위가 임재현으로 600경기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이다.

3. 선수로서의 특징

기본적으로 팀을 많이 타는 모습을 보인다. 속공 위주의 컬러를 가진 팀에서 그야말로 날아다닌다. 속공 전개에 있어선 KBL 최고 수준. 주희정 자신이 달려나가는 스피드도 빠른 데다 그 상황에서 앞으로 찔러주는 패스도 일품이다.

외곽슛에선 능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는데, 삼성 썬더스를 우승으로 이끌던 시절에는 '저 놈에게 외곽슛은 없다, 버려라!' 라고 상대 팀이 노마크로 만들어 놓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3점슛을 터트려 상대를 패닉에 빠트리는 상황을 자주 선보였다. 안경선배? 00-01 시즌 결승 상대였던 창원 LG 세이커스가 이 주희정의 뜬금 3점에 제대로 당한 케이스. 그러다 도로아미타불이 된 외곽슛 능력을 보였는데, 꾸준한 연습을 통해 안양 시절부터 제대로 향상된 3점 능력을 보였고, 이런 3점 능력이 MVP시즌의 활약을 뒷받침했다. 그런데 SK나이츠로 간 후 3점슛이 어째 다시 퇴보된 모습을 보인다. 어깨 부상 이후 수술로 인해 어느 정도 3점슛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하프코트 상황에서의 지공은 속공 전개 시 보여주는 능력에 비해 많이 모자라다. 같이 2 대 2 플레이를 해주는 선수가 있으면 하프코트 상황에서도 좋은 위력을 보여주나 같이 움직여주는 선수가 없으면 그냥 보통 포인트 가드 정도. SK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도 본인의 기량 감퇴도 있겠으나 지공 위주의 선수 구성을 가진 SK에서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

점프가 높은 건 아니지만 공이 떨어질 자리를 찾아 쏙쏙 받아가는 리바운드 능력은 일품. KBL에서 한국인 선수 중 리바운드 순위를 꼽으면 서장훈 다음에 위치한 일도 자주 있다.

그리고 그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무렵 35분을 웃도는 평균 출장시간에도 큰 부상을 입고 경기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금강불괴이다.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7-2008시즌부터 2012-2013시즌까지 54경기 전부 출장했다.

이런 탁월한 리바운드와 그에 연계된 속공 전개 능력 때문에 안양 시절부터 제이슨 키드에서 비롯된 주키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SK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주봉사, 주레기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었다.

4. 기타 사항

농구팬들이 말하던 00년대 이후 4대 가드 (이상민, 김승현, 신기성, 주희정) 중에서 가장 평가가 낮았으나 특유의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2010년 12월 19일 삼성전에서 통산 4500 어시스트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통산 어시스트와 스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갱신할 선수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2013년 11월 7일 안양 KGC전에서 통산 5000 어시스트를 달성했다. 7일 현재 현역선수 중 어시스트 2위는 3175개의 김승현(35·삼성), 3위는 2122의 임재현(35·KCC)이다. 이들이 모두 베테랑인데다 어시스트 1위인 김시래의 평균 어시스트가 5.7개인 것을 보면 이 기록은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이라 하겠다.

거의 프로 원년부터 꾸준하게 뛰어와서 프로농구의 역사와 함께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2014-15시즌 기준 18시즌째) 팬들에게는 프로농구계의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말도 듣는다. 대학을 거쳐서 들어 온 동기들(조상현, 황성인, 조우현, 김성철, 강혁, 조동현 등)이 모두 은퇴한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4-15시즌 프로농구 국내 선수 전체를 통틀어서 문태종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선수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때문인지 좋은 가정, 많은 아이들을 원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이 슬하에 넷이다.

메이비볼륨을 높여요에 사연을 보냈다가 전화 통화가 된 적도 있다.

국내에서의 활약에 비해서 국대 활약이 전혀 없다.
선수시절 내내 성인 국대 1군에 뽑힌적이 2번밖에 없고 모두 저조한 활약을 펼쳐 국내용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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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칙적으로는 신인 자격은 이상민(...)도 주어져야 하지만, 이상민은 이미 상무에서 뛰며 농구대잔치를 통해 성인 실업 무대에 데뷔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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