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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last modified: 2015-04-01 19:11:15 by Contributors

(ɔ) Ed Westcott (U.S. Government photographer) from

Julius Robert Oppenheimer
1904.04.22 - 1967.02.18

핵폭탄을 만든 남자.

미국의 핵물리학자.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였다.[1] 당시 그는 미국이 실제로 핵폭탄을 실전투입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결국 실전투입이 이루어지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작품으로 인해 사망하자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고 전후 수소폭탄 제조에 반대했다.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오해 받기도 하는데 그는 어떻게든 원폭 투하를 막아보려했지만 강경파인 폰 노이만 같은 사람을 논리로 이겨낼 수가 없었다.

원래 뉴욕의 부유한 독일계 유대계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귀족적인 분위기에서 부모의 엄청난 교육 열정아래서 자라났고, 본인의 머리도 비상해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 아버지는 대부호로서 아들을 위해서 뉴멕시코에 농장을 사줄 정도였다. 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 학과공부뿐만 아니라 독일어프랑스어에 매우 유창하게 되었는데, 유창한 독일어능력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본인의 언어능력도 출중하여 네덜란드어를 1주일 만에 공부해서 강의할 정도였다고 한다. [2] 게다가 산스크리트어취미로 공부하여 힌두원전을 직접 볼 수 있을 정도. 하버드 대학교 화학과를 들어갔고 입학때부터 졸업때까지 최우수성적을 받으며 3년 만에 우등졸업을 하였다. 이후의 그는 임브리지로 유학을 갔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은 그다지 과학이 발달한 나라가 아니였으며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에 비해 한수 아래로 평가되고 있었다. 오펜하이머가 하버드를 졸업하고 유럽으로 간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러더퍼드보어로 대표되는 영국의 실험물리학 전통은 그와 잘 안맞았고, 그는 신경쇠약 및 우울증에 걸리는 등 [3]의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영국을 떠나 독일의 괴팅겐 대학으로 옮겼고, 이곳은 당시 이론적인 양자역학이 태동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의 유창한 독일어가 크게 도움이 된다. 오펜하이머는 우울한 영국에서는 적응이 불가능했지만, 이론적인 면만을 다루는 괴팅겐에서는 물만난 물고기처럼 공부하여 9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그는 귀국하여 미국에 양자역학을 도입했다. 이어서 칼텍과 UC버클리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물리학의 대가가 된다. 이렇게 20대에 명교수가 되었고, 30대에는 세계적인 양자역학 및 소립자물리학의 대가가 되었다. 그리고 당시 대공황 시절 유행하던 좌파사상에 경도되기도 했다. 여러 좌파운동에 참여하고 스페인 내전의 공화국군에 대한 모금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매카시즘 시절 그가 크게 곤욕을 치르는 원인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맨해튼 계획이 시작되자 그의 물리학적 명성때문에 39세의 나이에도 불과하고 이를 총괄하게 된다. 맨해튼 계획이 군계획이었기 때문에 당시 형식적으로 중령 계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한번도 관리업무를 맡은 바가 없었으나 이를 훌륭히 완성하여 수천 명의 과학자가 동원된 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결국 미국은 이들이 개발한 원폭으로 일본 제국을 항복시키고 태평양 전쟁을 끝낸다.

그래서 그는 무차별 살상을 하게 되는 대형 핵무기보다는 전술적인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전술용 핵무기를 개발하는 계획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미국은 1950년부터 '셰이크 다운' 또는 '오프 태클'이라는 소련 공격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이것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발진한 미국의 핵폭격기들이 소련의 곳곳에 400에서 600개의 핵폭탄을 투여하는 제3차 대전 시나리오이다. 결국 이 계획 때문에 오펜하이머는 다시 한 번 미국의 핵 정책에 경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엄청난 살상력을 지닌 수소폭탄이 개발되기에 이른다.

오펜하이머는 수소 폭탄 제조에 반대하였다가 모든 공직에서 쫓겨났다. 미국에서 그의 영향력은 매우 컸으므로, 미국 정부는 그의 명예를 실추시킬 목적으로 이른바 '오펜하이머 사건'을 때마침 일어난 광신적인 매카시즘 속에서 유발시켰다. 그리하여 그는 빨갱이몰리고 쫒겨나게 된다.

빨갱이로 몰린 후로는 정보접근 권한을 잃어버려서, 미국이 실시한 최대의 원폭 시험인 1954년 비키니 환초 핵실험의 정보도 얻지 못했다. 친구 핵물리학자에게 '그냥 숫자 하나만' 말해달라고 부탁하자 그가 '15'라고 대답해줬다고... 안습.

그가 남긴 말 중 의미심장한 게 있다.

"If the radiance of a thousand suns were to burst at once into the sky, that would be like the splendor of the mighty one...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수천 개의 태양의 휘황찬란함이 하늘에서 일시에 폭발한다면 이는 전능한 자의 광채와도 같으리...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The Bhagavad Gita(힌두교 경전) 11장 12절과 32절(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부분)의 변형
당시 발언을 녹화한 기록


그가 이 말을 인용해서 읊은 직후, 그의 동료 케네스 베인브리지(Kenneth Bainbridge)는 더욱 직설적으로 자신의 후회감을 표현했다. 그가 말하길,

"From 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
(이제 우린 다 개새끼가 됐어.) 희대의 패드립퍼 강아지는 천재과학자를 낳는다고 한다
-이 말은 게임 Braid에서 인용되기도 했다.

그가 생각했던대로, 그의 첫 핵폭탄 트리니티(Trinity, 삼위일체)가 터진 이후, 인간은 자신을 멸망시킬 수 있는 위대한 생물이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까딱 잘못하면 핵전쟁으로 한순간에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비록 심각한 부작용의 우려 때문에 달갑지는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강대국간의 전면전쟁을 수십년간 대단히 성공적으로 억제해왔다. 어쩌면 개틀링 박사의 이상이었던 "인간들이 무시무시한 병기를 손에 쥐면 무서워서 안 싸우겠지!"를 이룬 건 오펜하이머일지도 모르겠다.

물리학 이외에도 예술이나 문학 쪽에도 엄청난 재능을 가진 엄친아였다. 어릴 적에 출판사에 보낸 편지를 너무 잘 써서 어른으로 착각당했던 걸 보면 그냥 천재인것 같다. 게다가 문제를 보기도 전에 답을 맞췄다는 카더라도 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 중에 "나의 탁월함이 두렵다네."라고 한 걸 보면 자뻑도 상당했던 걸로 보인다. 사실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는 '야 나 멋지지 않냐' 수준의 농담이다. 물리학자 폴 디랙[4]은 오펜하이머가 시를 쓴다는 소리를 듣더니 "시는 모두가 아는 사실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게 표현하는 것이고 물리학은 그 전에는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둘은 병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식을 알아볼 수 없는데? 과학지상주의, 과학추종자의 최후

실제로는 굉장히 부드럽고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세심하다 못해 오히려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었고 (본인이 매우 뛰어남에도) 친구들의 성취를 보며 초조해하고 심지어 열등감에 다른 친구의 목을 조르기까지 했다. 맨해튼 계획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본인의 물리학적 능력과 성취 역시 괴수급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저런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열등감은 나중에 극복했고, 세심한 배려를 가진 성격이었다. 매우 반항적인 젊은 천재 리처드 파인만은 원래 맨해튼 계획에 참가하지 않으려 했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와 아내의 관계를 읽은 오펜하이머가 친절하게 매주 휴가를 주고, 병원 치료까지 제시해 줘서 그에 감동한 파인만은 미국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오펜하이머를 위해 맨해튼 계획 참가를 결정했다. 괜히 미국 정부에서 그에게 계획의 책임자 자리를 맡긴 게 아니다.

엄청난 애연가인 덕분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담배핵무기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그냥 애연가 수준이 아니라 보기 드문 헤비스모커였다고 한다. 담배 파이프나 꽁초가 입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고. 워낙 담배를 입에 물고 살아서 이미 30대부터 기관지가 좋지 않았는데,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충고를 씹고 그냥 계속 담배를 물고 살았다. 젊은 시절에 뉴멕시코로 놀러 갔다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숙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다고 한다. 오펜하이머는 허기가 져서 몹시 지친 상태였는데, 누군가가 파이프를 권했고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고는 그때부터 헤비스모커가 되었다고.

이 사람과 대비되는 소련측 인물이 고르 쿠르차토프이다. 마치 세르게이 코롤료프베르너 폰 브라운의 라이벌 구도처럼 쿠르차토프와 오펜하이머도 비슷한 라이벌이었으며, 후에 반핵운동에 동참한것도 똑같다.

이 인물에 대한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5]가 있는데 무려 1,000페이지가 넘으며 실제 두께가 장난이 아니다. 서울대학교의 최형섭 교수(번역 당시에는 교수가 아니었다)가 한글로 번역했는데, 워낙 양이 방대하여 번역에만 수년 걸렸다고.

무한도전 총무가 쏜다 특집에서 하하가 이 책을 고르며 또 널리 알려지게 됐다. 하하는 단순히 두껍고 비싸보여서 정준하의 계산을 헷갈리게 할 목적으로 고른건데, 내용도 너무 방대하고 어려워서 고른 직후에 멘붕(...) 후에 2011년 3월 13일 무한도전 "정총무의 책책책 책을 좀 읽읍시다" 편에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름만으로 원고지 3장(600자) 중 4~5줄(80자~100자)을 채우고, 오펜하이머의 아버지가 부자여서 많이 사줬을 것 같아 좋겠다거나 명문 대학을 간 게 부럽다고 하는 등 [6] 엉망인 독후감을 써서 큰웃음 빅재미를 준다.

그가 남긴 말들은 다음과 같다.(출처: 위키쿼트)

I can't think that it would be terrible of me to say — and it is occasionally true — that I need physics more than friends.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내가 끔찍한 사람이 되는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가끔은 사실이더라고.) 나에겐 친구보다 물리학이 더 필요해.)
- 동생 프랭크 오펜하이머(1912년 8월 14일 ~ 1985년 2월 3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If atomic bombs are to be added as new weapons to the arsenals of a warring world, or to the arsenals of the nations preparing for war, then the time will come when mankind will curse the names of Los Alamos and Hiroshima. The people of this world must unite or they will perish.
((전략)전쟁을 준비하는 국가, 혹은 전쟁"중"인 세계의 무기고에 원자폭탄이 신무기로써 추가된다면, 인류가 로스앨러모스와 히로시마라는 이름을 저주하는 날이 올 겁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반드시 결합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죽을 테니까요.(후략))
- 1945년 11월 16일, 육군과 해군이 (2차대전에서의) "우수함"을 시상하는 자리에서 상을 받을 때 연설하며.




We knew the world would not be the same. Few people laughed, few people cried, most people were silent. I remembered the line from the Hindu scripture, the Bhagavad-Gita. Vishnu is trying to persuade the Prince that he should do his duty and to impress him takes on his multi-armed form and says,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I suppose we all thought that, one way or another.
(우리는 과거의 세계로 돌이킬 수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일부는 웃고, 일부는 울었으며, 대다수는 침묵에 잠겼다. 난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비슈뉴는 왕자가 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그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자신의 여러 팔이 달린 형태를 취하고는 말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아마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 트리니티 핵무기 실험에 대해 언급하며.


이 유명한 문구는 린킨 파크의 네 번째 앨범 A Thousand Suns의 수록곡 The Radiance에 인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고질라(2014)코믹콘 티저 예고편(소음주의)에서는 일부 구절이 인용되어 나왔다. 원작의 고지라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생각해보면 적절한 원작반영의 일환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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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맨해튼 계획에는 엔리코 페르미, 존 폰 노이만, 리처드 파인만 등의 거의 외계인급 두뇌들이 총집결해 있었다. 당시 영/미/캐나다/(옛)독일계 A급 과학기술자들을 모두 긁어모은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 [2] 물론 네덜란드어는 영어, 독일어와 매우 가까운 편이다.
  • [3] 지도교수를 독살하려까지 했다
  • [4] 정말 거의 물리, 수학밖에 모르고 그 부작용으로 사회성이 거의 바닥을 달리는 수준의 사람이다.... 그래도 강의는 잘했다고
  • [5] 신개념의 에너지인 핵을 완성한 오펜하이머를, 그리스 신화에서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한 제목.
  • [6] 오펜하이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이 하하의 독후감 중간에 나온다. 그냥 졸업한 정도가 아니라 하버드 화학과를 3년 만에 summa cum laude(최고 성적)를 받으며 졸업. 게다가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나와서는 최정상급 물리학자가 되었다는 점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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