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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군

last modified: 2015-04-11 07:15:00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1.1. 수뇌부
1.2. 이름
2. 역사
2.1. 본토에서 놀던 때
2.2. 대만으로 쫓겨간 뒤
3. 현황
3.1. 징병제
3.2. 주 임무
3.3.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박
3.3.1. 중국군 vs 대만군?
3.4. 군별
3.5. 조직
3.6. 계급
3.7. 중화민국군의 장비 목록
3.7.1. 육군
3.7.2. 해군
3.7.3. 공군
3.8. 관련항목
3.8.1. 관련 기관과 제도
3.8.2. 미디어

1. 개요

(ɔ) 中華民國國防部製作,Bigmorr改繪 from

중화민국군대. 중화민국국군(中華民國國軍)이라고 한다. 2008년 국방비가 105억달러로 GPD의 2.5% 수준이었다. 화민국군 육군은 13만, 중화민국군 해군은 3만8천명, 화민국군 공군은 3만5천명 수준이다.

영어로는 Republic of China Armed Forces라 하며 영어권에서도 중국군(Chinese Armed Forces)하면 보통은 인민해방군(People's Liberation Army)로 받아들인다. 중국이 너무 크기 때문에 대만의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보인다.

1.1. 수뇌부

2015-01-31 기준이다. 통수권자는 총통이며 국방부장(국방장관)이 국방 관련 업무를 지휘하며 참모총장을 두고 있다.

총통 국방부장 참모총장
© jamiweb (cc-by-2.0) from
© 玄史生 (cc0) from
마잉주 가오광치(高廣圻) 테파(嚴德發) 육군상장

위의 가오광치는 대만 해군 상장(대장)으로 2009년 진급하였고 2013년 8월 8일부터 2015년 1월 30일 까지 대만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대만도 한국 못지 않게 문민통제 측면에서 평가가 좋지 못하다. 사실상 합참의장인 참모총장을 거친 인원들이 그대로 국방장관이 된다. 장제스 시절에는 공산국가처럼 현역 장성이 국방부장으로 재직하는 일이 계속되었고, 군 참모본부도 국방부가 아닌 군 통수권자인 총통의 직접 지휘를 받기까지 했다. 이러한 방식은 대만의 민주화가 본격화된 1990년대부터 수정이 시작되어 2002년 통과된 국방2법, 즉 <국방법>과 <국방부 조직법>에 따라 문민통제의 제도화 및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문화하면서 겨우 해소되었다. 다만 국방부장에 장성 출신이 주로 입각되는 관행은 여전히 남아있다. 1990년대 초중반에 리덩후이가 국립대만대학 총장, 경제부장 등의 순수 민간인을 국방부장에 임명하기도 했지만, 결국 장성 출신으로 회귀해야 했을 정도였다.

1.2. 이름

정식 이름은 "중화민국 국군"으로 처음에는 "국민혁명군"이였으며 당시에는 중국 국민당의 군대였기 때문에 줄여서 "국민당군", "국민군", "국부군(國府軍)"이라고도 불렸다. 대만으로 정착한 뒤에 "중화민국 국군"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냉전 당시에는 중화민국과 수교한 나라들에 한해서 "중국군"이라고 불렸고 반대로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에서는 "대만군"이라고 불렸으나 중화민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오늘날은 세계적으로 "대만군"이라 통칭되고 있다. 중화민국 안에서는 "국군"으로 불여부르기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중화민국 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언론 등에서 "타이완군"(台军, 타이쥔)이라고 하며 대만 지역의 민병대의용군, 또는 한국독도경비대 같은 준군사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다. 세대 차이가 많이 나는 연세 많은 중국인에 한해서 아직도 "국민당군"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2. 역사

2.1. 본토에서 놀던 때

중화민국군은 손문(쑨원)에 의해 조직되기 시작하여, 장개석(장제스)에 의해 조직구조가 가다듬어졌는데, 이것이 '국민혁명군'이라 한다. 당시 중국을 자국편으로 끌어들여 제국주의의 포위망을 뚫으려는 소련의 인적, 물적 지원으로 포군관학교가 세워졌고 여기서 배출해 낸 장교들이 국민혁명군의 기둥이 된다. 장개석은 이런 자원을 가지고 북벌을 개시하였고, 북경을 지배하고 있던 군벌 세력을 정리하고 중국을 통일하였다. 문제는 군벌세력들이 투항하면서 자신의 군대를 국민혁명군에 형식적으로 편입시켰으나 실제로는 투항한 군벌세력은 예전과 명목상 국민정부에 속한다는 것만 내세웠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중국 각지를 할거하면서 자기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처럼 장개석의 말을 잘 안듣는 군벌들도 많았고, 장개석 본인조차도 자신이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직속군만 지원을 해주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사실 국공합작은 손문이 먼저 제안했던 것으로, 참가한 공산주의자들은 손문 사후 장개석이 숙청에 들어가면서 적으로 돌아서게 된다.

이런 군벌군 소속을 합한 국민혁명군은 200-300만에 이르는 대병력이었으나, 실제로 중앙정부의 명령을 받는 장개석 직속의 부대는 약 30만명에 불과했다. 히틀러 집권 전까지 독일과 중국은 군사교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개석 직속부대는 최신식 독일제 화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런 장개석 직속부대는 우월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장교들의 무능때문에 중일전쟁 초기 창강 유역 전투(상해, 남경)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했고, 이렇게 직속부대가 와해된 장개석은 아무것도 못하고 임시 수도인 중경(충칭)에 틀어박혀 군벌들에게 일본군과 싸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군벌들은 자기병력이 분쇄되는걸 아까워해 대체로 일본군과 싸우는 걸 싫어했고, 국민혁명군에 형식상 편입되었던 염석산(옌지산) 같은 경우는 아예 일본군과 단독 강화를 맺을 정도였다.

일본군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북평 앞에 자리잡고 앉아있던 와중에도 끝까지 공산군은 쳐부수려고 최후의 공세를 준비하던 중, 보다못한 구 봉천군벌 출신 장학량이 그를 납치해서 강제로 공산당과 평화협정을 맺게 할 정도였다. 게다가 최후에는 결국 공산주의자들한테 쫓겨서 대만섬으로 쫓겨난 걸 보면...

이런 내막에다가 당시 부패가 이루 말할 수 없던 점, 군대가 마을을 습격해 강제로 남자들을 끌어다가 징집해가는 사태가 벌어지자 마을에서는 자경단을 조직해 군대를 물리치는(!) 지경이라 전투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힘들 정도.

그런데 의외로 장개석의 중앙군은 장비나 훈련수준은 높은 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독일군을 모델로 삼아 독일출신의 교관과 장비를 도입했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군으로부터 장비를 지원받았다. 그런가 하면 공군 훈련장은 동양최대급으로, 일본군 조차도 탐내는 그런규모였다고...

그러나 허우대는 좋았어도 내실에서 문제가 많았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거의 막장급 전투력을 보이면서 일본군에게 참패를 거듭하였다...(물론 이긴 전투도 없지는 않다.)

장개석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뇌물을 받지 않고 청렴하니 저놈은 공산당이 분명합니다라는 장군이 나오질 않나, 그 장군이 지목한 사람이 진짜로 공산당 스파이였다거나 할 정도면...

더욱이 군벌을 중점으로 조직된 군대인지라 군벌들의 힘이 컸고 이로인하여 부정부패가 심각했다. 이는 나중에 중국군에서 복무한 몇몇 창군초기 한국군 인사들에게서도 나타난바 있는 문제였기도 했다.

숫적 우세와 장비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지지를 뿌리끝까지 잃고 결국 패망한 점에서 베트남 전쟁의 남베트남과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그리하여 국공내전에서는 인민군에게 휩쓸려 가다가, 결국 대만섬으로 쫓겨가게 된다. 대만이라는 고립된 전략적 선택을 함으로서 스스로 국민당군의 주력들을 본토에 남겨두는 형식이 되어버렸고 그결과 버려진 국민당군들은 나중에 미얀마 국경을 넘어가 밀림지역의 군벌화등으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2.2. 대만으로 쫓겨간 뒤

본토의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창립을 선포하는 와중에도, 대만에서 오늘내일 하고 있던 상황. 그러다가 중국이 민병대로 이뤄진 상륙대를 금문도에 한번 밀어넣어 봤다가, 대만군이 간신히 밀어내게 되었다. 심지어 금문도에 물자 보급임무를 수행하던 대만군의 상륙함이 물자 보급외에 함장및 승무원들의 필요에 의해 밀수(!!)를 하려고 출항 예정 시일을 넘겨 꾸물대다가, 부근 어민들에게 징발한 목선 따위를 타고 금문도에 상륙하려던 공산군을 발견하고는 탑재한 40mm 기관포로 개발살내버린 사례도 있다고 한다. 당시 대만군의 막장 상황과 상륙대라고 집어넣은 공산군의 한심한 수준을 비추어볼 수 있는 일화. 그리고 그 이후로 한동안 중국은 해군을 양성하고 전투력을 혁신...하려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그쪽으로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대만을 치지 못하게 된다. 그 이후로도 가끔 분쟁이 일어났고, 금문도 전투가 유명하다. 그러나 중국이 본격 대만 상륙은 계속해서 뒤로 미루다가 지금까지 왔다.

루머에 따르면 장제스는 1949년 7월에 한국 진해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중국에서 갓 후퇴했던 터라 대만인구가 1000만이 조금 안 되었는데 군인은 무려 60만이었다. 쟝제스는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니 중화민국군 해군을 한국에 주둔시켜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승만한국인들의 민족감정을 고려해 반대했다. 국전 당시에 장제스인민해방군에 맞서 중화민국군을 투입하고 싶어했지만 확전을 우려한 미국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당시 공군이나 해군은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압도했다. 대신 한국화교 청년들이 한국군에 들어가 통역이나 심리전 요원으로 투입되어 인민해방군을 상대했다. 드물게는 전투병으로 가기도 했다. 일부 전선에서는 중국인들끼리의 전투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화교 참전전우회 소속의 참전용사들이 거의 세상을 떠났고 화교들의 70% 가량이 북미나 대만으로 이주한 탓에 자료를 추산하기가 어렵다.(출처: 구술사료선집5 한국화교의 생활과 정체성, 2007, 국사편찬위원회, p.37)

1960년대에는 대한민국과 대만의 공조 아래 중국인으로 가장하여 북한에 투입된 화교 출신 정보요원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대만 정부가 모두 이 문제에 무관심하고 한국화교 인구가 적어 사회에서 반향 자체가 거의 없다.

3. 현황

3.1. 징병제

대만군은 한국처럼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군대 중에 하나인데, 대만의 병역자원 소집과 관리업무는 역정서에서 한다. 한국의 병무청국방부 소속의 관청이지만, 역정서는 내정부 소속 관청이다. 대만의 병역의무자가 징집이나 소집통지서를 받으면 타이중에 있는 성공령이라는 신병교육기관으로 입대를 하게 된다.

2014년부터 종전 1년에서 기초군사교육만 4개월 받는 것으로 줄어든다. 또한 21만명의 총병력으로 재구성된다. 2011년에 만 18세가 되는 병역자원부터 적용된다. 1년 늦게 태어난게 무슨 죄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은 어차피 복불복...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고..

"대만 여성들은 국방세를 내며 이를 불이행할 경우 공장에 끌려가서 강제노동한다"라는 말이 떠돌지만 거짓말이다. 어디서 퍼진 얘긴지 모르겠지만 공장 강제노동은 물론이고 국방세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근거자료

현재 복무 기간은 한국보다 훨씬 짧은 1년이다. 거기다 주말에는 집에도 갈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이것이 그들의 휴가이며, 모을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1년의 복무기간중에 한번도 안나가고 버틴다면 1년 막바지에는 104일의 휴가를 받아 집에서 놀 수 있다. 작은 섬의 군대다 보니깐 가능한 일. 한국은 그렇지가 않으니 군인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직에 익숙해질만하면 전역하고 새 자원을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로 말이 많다고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투경찰순경, 공익근무요원, 산업기능요원이 있고, 예비군제도도 한국과 거의 같다. 대만의 공익근무요원은 신체등급이 낮은 경우 외에도 현역대상자도 요건을 갖춘 상태에서 신청을 하면 심사후에 문제가 없으면 편입된다고 한다. 단, 종교적인 이유로 편입된 경우(여호와의 증인 신자등인 경우) 군사훈련 면제.

월급은 대만군 쪽이 좋다. 게다가 의무복무기간 1년이 지나고 연장근무하면 2012년 기준 이병 월급이 기본급 100만원정도. 월급은 둘째치고 (병)전역자에 대한 대우는 확실히 한국보다 훨씬 좋다.

그러나 90년대까지도 구타내무부조리등 한국군에 있던 악습과 비슷한 양상의 전개도 많았다. 특히 이런 문제는 한국군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고 이런 관행은 과거 국민당군의 부패문제와 결부해서나 기존의 중국의 군에 대한 전통적인 부정적 인식이 한몫을 했다. '좋은 쇠는 못으로 쓰지 않듯이 제대로 된 남자는 군에 가지 않는다'라는 기존의 중국 한족들의 특유의 병역기피현상 인식이 군에 대한 사회적인식 전반이 극단적으로 낮아진 원인이기도 하다.

95년 황궈장(黃國章) 해군장병 의문사를 기점으로 현재는 '대만군의 군 인권 어머니' '황마마'라고 하는 천비어(陳碧娥)씨의노력으로 대만군이 상당히 군내부문제와 내부문화가 변화하긴했다. 이분은 1995년 6월 군복무 중이던 아들 황궈장(黃國章)이 우울증으로 배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군 당국의 설명과 달리 며칠 뒤 발견 된 아들의 시신은 상처투성이에다 머리엔 쇠못이 박혀 있었다. 딱봐도 살인이 맞다. 문제는 중화민국 국방부에서는 제대로 조사를 안하려 했던 것. 이러니 군인권운동가로 활동할 만하다.

이전까지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니 한국군보다 더했다! 게다가 상관의 학대랑 복무부적응으로 자살한 군인에게 터무니없이 낮은 액수의 장례비만을 주고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조사도 안한것은 덤이다.

실제로 95년이후부터 대만군의 군인권문제제기도 사회적 논쟁과 함께 천비어씨는 중화민국 국방부로부터 미친 여자라고 부를 정도였다. 국방부에 가서 항의하다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인 노력을 통해서 현재는 대만 국방부 역시 그녀를 인정하고 있다. 천비어씨는 2007년 7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군의문사 유가족들이랑 군내 사고로 죽은 병사 유가족, 군인권활동가들과 만나 그들을 위로하며 활발한 토론을 햇다.

결국 2014년부터 4개월로 단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군복무 개혁안이 예고되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라는 공룡만한 군대와 대치중임에도 불구하고 모병제를 계획한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이 대한민국의 병역의무와 비교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중화인민공화국대만을 먹지 않는 대신 "하나의 중국만 잘 지켜주면 너네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던 절대 터치안함"이란 조건으로 대만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대만 측에서 중국에 대해 전쟁, 독립, 통일(중화민국의 주도로)을 하지 않는 한 북한마냥 흡수통일을 할 계획은 없다. 이 상태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현상유지만 잘 할 자신만 있다면 모병제가 비현실적인 방안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병역의무를 대만의 병역의무와 무조건 비교하는 것은 큰 오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15년 모병제로 전환 할 계획이지만 모병률이 미달 되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 게다가 2013년 7월에는 부대에 휴대폰을 반입해서 군기교육대에 갔던 훙중추 상병이 제대를 앞두고 갑자기 의문사하는 사고가 터지면서 군대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시선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관련 영문위키

2014년 시점에서는 엄청난 희귀본인데 2002년경 대원을 통해 개같은 내 인생(원제:狗臉的歲月) 이라는 제목의 대만 만화가 한국에 정발된 적이 있다. 작가 개인의 자전적인 만화로 군대 시절을 소재로 삼았는데 한국의 병영만화들처럼 군대 찬양 혹은 그 시절 참 좋았지라는 시각이 아니라 ' 내 인생에서 가장 개같던 삶의 부분 ' 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그려낸 만화다. 대충 주호민 <>의 암울한 버전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대만에서 이런 만화가 출판됐다는 게 참 후덜덜하지만 상술된 천비어 씨의 사회운동 덕분에 군의 악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진 그 당시 사회분위기의 덕을 본 것도 있다.

3.2. 주 임무

최근까지도 대만의 주요 정책중 하나가 본토 수복이던지라(현 상황에선 말도 안되지만;;), 1960~1970년대에는 거의 대한민국파공작부대 삘의 '본토정찰대' 같은 부대가 있는가 하면, 해병대를 대량양성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론 중국의 유사시 공격을 방어하는 체제로서, 공군과 해군의 비중이 높고, 해병대는 상륙지점에 대한 반격작전 중에 주로 사용되는 계획이라고도 한다. 냉전기 미국이 중국 내륙을 정찰할 때 U-2기를 대만해군 소속으로 하고 대만군 조종사를 태웠다.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이 구소련으로 가게 된 것도 중공-대만 공군의 공중전 중 불발된 미사일이 미그기에 꽂힌 채로 돌아가 노획(?)된 것이 시발.

현재 대만군은 1970년대 말 이후부터 대만군의 전략인 본토수복은 실질적으로 폐기되었다. 이는 슨 행정부핑퐁외교를 통해서의 외교적 고립이 가속화되는등의 문제에서 나타난 대만의 고육지책으로서 이를 통해서 대만군은 기존의 60만 대군을 점진적으로 감축해나갔다.

본토수복이라는 전략의 폐기이후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타이완섬등의 대만의 행정력이 미치는 지역의 도서방위가 최우선으로 목표로서의 신속대응군화와 해공군의 육성에 주력하고 있으며 중국의 군사력 성장에 의한 비대칭 전력 강화도 한몫을 하고 있다.

3.3.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박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박 때문에, 돈이 넘쳐나서 산다고 하는데도 아무도 무기를 팔지 않는 암담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만해협에서의 전력은 대만군이 해군과 공군 모두 우세였으나 90년대 중국의 경제 성장과 냉전 종식이후 중국군은 러시아에게 최신 무기를 도입 할 수 있게 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되어 2000년대 들어서 그 우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중국군의 성장과 달리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고립과 중국의 압박으로 무기 도입선을 상실하게 되면서 신규 장비를 도입하지 못하게 되었고, 오로지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는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동시에 대만과는 자동적으로 단교)하면서 대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제정한 만관계법에 따라 "대만이 자체 방어를 위해 필요한 능력, 용역을 제공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

문제는 대만에게 사실상 하나뿐인 무기 공급선인 미국조차 무기 판매에 있어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대만관계법>에는 미국이 대만이 제공할 수 있는 무기를 '방어용'으로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대만이 사고 싶다고 해서 뭐든지 파는 게 아니라, 미국의 정치적인 판단과 고려에 따라 해당 무기의 판매 여부를 결정한다는 의미. 이에 따르면 중국 본토 공격에 사용될 수 있는 장거리 타격무기(예: 탄도/순항미사일) 등은 제공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이 방어용 무기조차도 대만에 바가지를 씌워서 팔고 있다(...). 일례로 얼마 전 대만이 UH-60을 크게 비싼 옵션 없이 도입했는데도 그 가격이 대당 600억에 달했다. UH-60이 중형헬기 중에서는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는 것을 감안해보더라도 저 가격은 크게 비싼 가격이다. 대형헬기인 AW-101조차도 저 가격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뭐 사실상 독점 사업인데다, 진짜로 무기를 파는 주체인 미국의 방산업체들은 미 정부와 달리 영리 추구 집단이므로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긴 하다.

이에 대만은 자체적으로 대부분의 무기를 마개조 수준으로 개조하고 국산개발을 통하여 중국과의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유럽에서 무기를 사면 중국에서 수출국에게 직 간접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대만에게 군함과 무기체계를 팔았던 프랑스는 중국의 프랑스로 부터 수입중단과 함께 공동무기 개발이라는 당근을 던져주어서 이탈을 시켰고. 영국독일은 대만에 무기를 안 팔아도 아쉬울게 없는 상황이니, 대만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개인 화기류는 거의가 수입산 내지 수입 무기 개량판으로 버티고 있다. 일반 병의 화기인 T시리즈는 거의가 AR-15AR-18의 개량판. 특수목적용 화기들은 그냥 수입해서 쓰고 있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던 조지 워커 부시 재임시기에는 키드급, 패트리어트 미사일등 5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의 무기 도입을 했었지만 이조차도 이지스 구축함인 알레이버크급을 중국의 반발로 도입하는데 실패하여 키드급을 받게 된 것처럼 한계가 있었다. 정권이 교체된 뒤에는 이전에 비해 중국과의 갈등을 피하려는 미국의 신중한 입장으로 인해 대만이 요청한 F-16 등의 신무기 도입들은 지연되고 있다. 반대로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겠다고 나서는 게 중국에 대한 위협용 카드로 사용될 수도 있다. 한편 이천년대 이후 양안융합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적으로 본토의존도가 높아졌다. 그 전에는 중국에서의 사업기회를 일본, 한국에게 빼앗기고 구경만 한다고 또 말이 많았다. 또 인적 교류가 활발해졌고 대만의 집권 정부도 전보다는 친중성격을 보이고 있다. 중국정부가 대만 선거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이 많았다. 중국은 부지불식중에 대만을 홍콩처럼 다루겠다는 의도가 뻔해보인다. 이런 사정때문에 대만이 미국의 태평양 방어에 극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고급 무기를 지원하는 것도 예전같지는 않은 상황. 미국의 러시아, 중국 견제 거점 및 태평양 방어 최일선은 대한민국, 일본, 호주이며 대만은 이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지기는 하다.

해군의 경우 수상함 중 VLS를 장착한 함선이 존재하지 않고 단장미사일 발사기를 운용하는 함들로 구성되어 대응성이 부족하다. 그나마 4척 있는 키드급이 초기형 이지스함과 버금가는 능력을 갖고 있는 정도다. 기어링급을 2003년까지 운영하는 것도 그런데 그것도 수량이 부족하여 중고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을 추가적으로 도입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페리급은 성능상 한계로 중국해군을 상대로 생존을 보장 받기 힘들기에 도입시에 이지스 시스템을 장착하자는 주장도 꾸준히 내부에서 제시되고 있다. 실전배치된 이지스시스템 중 가장 작은 SPY-1F는 프리드요프 난센급에 장착된 레이더인데, 이 함선은 충무공 이순신급과 비슷한 체급이며 페리급보다는 당연히 한 체급 위다. 따라서 사실 저 계획도 사실은 무리수가 있는 셈. 대잠 전력도 빈약하여 대잠전을 위한 고정익기와 헬기가 부족하다. 예를 들어 대잠초계기의 주력은 S-2T 트래커가 주력인데 22대를 퇴역시키고 소수만을 운영 중이고 이를 대체할 P-3C는 2013~14년에나 인도 받을 수 있다.

가장 암담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분야는 잠수함 전력이다. 중국의 막강한 공군전력에 방해 받지 않고 적 잠수함 감시와 수상함, 상륙함 전력을 효과적으로 저지 할 수 있는 잠수함 전력은 2차 대전 시기 건조된 가피급 2척과 1982년 네덜란드에게 도입한 해룡급 2척 뿐이다. 해룡의 경우 총 6척을 도입할 예정 이였으나 중국의 압력에 네덜란드가 굴복하면서 좌절되었다. 대만 역시 잠수함의 중요성을 알기에 지속적인 노력을 하였으나 계속 좌절되던 중 2001년 4월에 미국이 8척의 디젤 잠수함을 판매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도입 가능성이 생겼다. 미국은 이미 디젤 잠수함을 포기한지 50년 가까이 되어 기술을 상실하였기에 미국이 건조하는 게 아니라 유럽에서 구매하여 대만에게 인도해야 하는데 디젤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유럽이 즉시 잠수함 판매 불가 선언을 함으로서 '언제든 대만이 필요하면 미국이 도와준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고 자신만만해 하던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후 잠수함 도입에 있어 미국은 설계비로만 3억 달러를 요구하였고 그나마도 2010년 1월 미국 국방 안보 협력기구에서 의회에 제출한 대만에 수출 할 무기 목록에서 잠수함과 F-16을 제외함으로 결국 2011년 현재까지도 미국은 잠수함을 확보하지 못하여 대만은 언제 잠수함을 가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상황이며 향후 국내 개발이든 미국을 통한 도입이든 전망도 밝지 않다. 설사 그렇게 대만에 잠수함을 팔겠다는 국가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일단 미국의 손을 한 번 거쳐야 하므로 대만이 또다시 바가지를 쓸 것임은 기정된 사실이다(...).

그렇다고 원자력 잠수함을 대만에 수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우방국이라고 해도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떄문이다. 애초에 미국은 맥마흔 법안에 의거하여 핵무기 및 핵기술의 이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들인 영국과 프랑스의 핵개발도, 사실상 해당 국가들의 독자 개발이었고 여기에 꼼수를 통해 미국이 간접적으로 기술을 지원해준 형태였으며 그나마 가장 중요한 원잠 개발은 미국의 기술 지원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그럴 능력이 있다는 가정 하에)대만이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도입 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중국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뜻과 같다.

공군은 대만의 최우선 투자 분야로 F-16A/B 블럭 20 150대와 미라지 2000-5 58대가 주력이며 F-CK-1징궈 전투기 130대가 이를 보좌한다. 그외에 유사시을 대비하여 60대의 F-5E/F형을 보관 하고 있다. 또한 조기경보기 전력으로 E-2 호크아이를 운용하고 있다.

80년대 말 미국의 F-16판매 거부와 유력한 대안인 F-20의 연달은 추락으로 노후화된 공군전력이 교체되지 못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미국의 판매와 프랑스와 접촉으로 미라지 2000을 확보하면서 전력 교체에 성공하였다.

F-16A/B는 1990년대 초 대만이 F-16C/D을 요청하자 중국을 의식하여 F-16A/B형을 제공하였다. 성능 자체는 C/D 블록 50형에 비해 크게 떨어졌으나 1998년 암람을 포함한 다향한 무장을 판매하면서 준하는 수준까지는 성능이 향상되었다. 미라지 2000은 프랑스와 중국의 관계가 악화 되었을때 접근하여 라파예트급 호위함과 같이 도입하였다. 미라지 2000은 우수한 전투기로 성능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미국의 무기만을 사용하던 대만은 이를 운용하기 위하여 미카 미사일등 프랑스제 무장을 대규모로 도입해야만 했고 미국제가 아닌 이질적인 장비를 운영하면서 F-16에 비해 막대한 유지비가 들고 있다. 때문에 조기퇴역까지 검토했을 정도였지만 대체전력확보(F-16 추가도입)도 여의치 않고 성능(특히 공중전능력)도 아깝기 때문에 정비관련 추가예산을 신청했다고... 미라지 2000의 유지비용이 f-16 전투기의 유지비용보다 3~4배 비싸게 나오는 자료도 있다. 물론 부정적으로 세간에 알려진것과 달리 프랑스는 이에 대한 정비지원을 계속해주고 있기에 작전활동 자체는 이상이 없다... 고는 하는데... 미라지 2000의 스네크마 m-53 엔진에 문제가 생기자 제작사인 다쏘 사의 엔지니어들이 와서 대만공군 정비사들과 함께 m-53 엔진의 터빈 블레이드 문제점을 찾아내 이 문제가 없는 부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E-2T/K는 최신 성능 향상계획이였던 호크아이2000이 적용된 기체들이며 총6대를 장비하고 있다.

대만의 공군전력은 앞에서 본거와 같이 아시아에서도 강한 편에 해당하는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단지 그 주변 공군들이 죄다 한가닥 하는 미 공군, 대한민국 공군, 항공자위대, 러시아 공군, 인민해방군 공군여기서도 조선인민군 공군은 제외다 등이라 존재감이 없는 것뿐(...) 또 주적인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J-11은 대만 공군에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에 대비해 대만은 격납고를 북한과 같이 지하에 건설하여 항공기를 보호하고 있고 큰 곳은 공군 전력의 절반이 들어갈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중국의 위협으로 부터 대항하기 위해 보관 중인 F-5E/F 대체 수단으로 F-16C/D 블록50형을 60여대 요구하고 있으며 기존의 F-16도 블록 50 수준으로 향상 시킬려 미국에 요청 중이나 미국은 신규 판매에 소극적이다. 미국의 경제가 더 안좋아지면서 미국 국채를 대량 매입해둔 중국을 여느때보다도 더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존의 F-16 성능 향상 사업이 그나마 미국의 긍정적인 반응이 있는것을 위안 삼아야 할 지경이다.

대만의 F-16 성능 향상은 F-16의 최신계열인 F-16V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세부 내용으로는 보유하고 있는 145대의 전투기에 레이시온사의 RACR 또는 노스롭 그루먼사의 SABR AESA 능동형 레이더, 신형 GPS시스템과 관성 항법 장치 및 전자전 시스템, 록히드 마틴사의 스나이퍼 또는 노스롭 그루먼사의 라이트닝 목표조준 포드, AIM-9X 미사일, JDAM, GBU-24 페이브웨이 폭탄 장착 등을 할 예정으로 이 정도이면 J-10이나 J-11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겠지만 성능향상이 완료 되는 시점에서 J-20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기에 중국군에 대한 견제가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성능 개량사업은 결국 18억5천만 달러에 록히드 마틴사가 선정되었다 경쟁회사인BAE 시스템스가 크게 반발하였다. 이 회사는 현재 대한민국 공군의 F-16/KF-16 개량사업을 진행중인 회사이다. 당시 록히드마틴은 F-16V가 아닌 그보다 떨어지는 F-16CJ급을 목표 개량형으로 대한민국 공군에 제시했다가 탈락하기도 했다.

대만군 성능 개량사업은 선정자인 미 공군이 평가 후 선택에 따라 록히드 마틴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대만이 회사를 선정한게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대만이 미공군의 F-16 개량사업인 CAPES에 업혀가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CAPES 예산이 삭감되면서 대만은 또다시 안습해졌다. 어쩌면 그 대신 이미 확정된 대한민국 공군의 KF-16 개량사업에 끼어갈지도 모른다. 또한 개량사업시에 레이더 테스트 비용을 대만이 지불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선택한 레이더가 차후 타국가가 선택하여 장착시에 처음에 비용을 지불한 국가는 테스트비용을 일부를 돌려 받게되는데 대만은 계약에 따라 돌려 받지 못한다. 이 정도면 호구도 이런 호구은 없을거 같다. 레이더는 아니지만 과거 대한민국 육군이 MD500 경헬기를 대량 도입할때 한국군의 요구로 토우 대전차미사일을 장비하는 대전차형을 개발(당연히 개발비는 한국에서 냈다.)했는데 이후 이스라엘이 MD500 대전차형 30대를 사갔을때 로열티 명목으로 대당 2만 달러씩 총 60만 달러를 돌려받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굳이 공개적인 압박이 아니더라도, 대만에 무기가 넘어가기만 하면, 며칠 안에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해당 무기의 제원은 물론 정비 기술까지 다 알아간다는 소문이 있다. 과장이 심한 내용이긴 하지만 실제로 국군내 북한 스파이에 대한 소문처럼 대만인들 사이에서 꽤나 말이 많은 일중 하나이며, 대만군 내에서 주기적으로 색출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어찌되었건 대만군의 정보 보안 자체가 의외로 취약한 건 사실로 보인다.

2011년에 현역 대만군 장성이 중국군에 기밀 정보를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 체포된 사건이 있었고,# 2014년에는 E-2K 조기 경보기의 정보를 공군 중령이 직접 중국 스파이에게 넘긴 행위로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반대로 대만에서 중국측에 스파이 활동을 펼친 경우도 있다.#

의외로 최신무기에 속하는 AH-64E 아파치 가디언은 수월하게 도입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미정부가 아파치 기술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공격헬기는 고성능만이 장땡이 아닌 물건이라 전차를 잘 사냥할수 있을정도로만 만들면 되고, 이런 조건이라면 중국군도 쓸만한 물건들을 독자개발하는 중이기 때문에 제공권 장악의 핵심인 전투기나 지상전 승리의 핵심인 전차보다는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한 듯하다.

3.3.1. 중국군 vs 대만군?


너무 뻔하여 비교할 필요가 있나 싶은 부분(...)
사실 국가의 규모를 생각하면 대만의 군사력은 우수한 편이라 보아도 좋다. 하지만, 중국을 상대로 보면 넘사벽이라는 것이 문제. 중국은 기본적으로 병합의 제1목적으로서 대만을 제1순위로 두고 있기 때문에 지상군 전력만 전체의 40%를 대만방면의 난징군구에 집중시켜놓았을 정도이다.

중국과 대만 간에 전쟁이 벌어지면 18일 만에 대만이 완전 점령당한다는 전쟁 시나리오가 2006년 대만 국방부에 의해 나온적도 있다.# 외국쪽에서는 이보다 더 비관적으로 판단한다.기사 길게는 7일 적게는 72시간내로 대만이 일방적으로 패배를 한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전체 군사력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보통 대만 vs 난징군구로 보는 편도 강하다. 물론 그래도 중국이 압도적이라서 문제이다.

특히 공중전에서는 미군이나 주변국의 지원없이는 12~24시간내로 괴멸하고 제공권을 아예 상실한다고 평가할 정도로 절망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게다가 중국은 J-7와 같은 구형 전투기를 무인화를 추구하고 있기때문에 양안전쟁시에 대만공군의 전투기들과 미사일과 같은 유도무기들을 대량으로 소모시킬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제공권 장악에서 12시간 이내로 가능하다라는 설은 더 힘을 얻고 있다. 그렇게 대만공군의 F-16급이 소모되면 나머지 로우급 전투기들은 난징군구가 대량으로 보유한 J10/11만으로도 일방적인 학살을 벌일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30일은 소요되어야 타이완을 완전 점령할수 있다고 평가를 하고 있다.(미군 개입을 포함했다고..)


사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아니라 준군사조직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와 싸우더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이를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 내부의 '반란진압'으로 간주하기위해 무장경찰부대가 대만 점령의 선봉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대만군 전력도 전력인지라 인민무장경찰부대가 초기 투입되기 보다는 대만에 대한 군사적 견제를 하는 난징군구 전력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그 난징군구 전력도 막기 벅찬게 대만이다.

따라서 인민무장경찰부대는 타이완 점령후 통제화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양안전쟁시에 지상전조차도 엄밀하게 말하면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이 하는게 아니라 해군 소속의 해군육전대와 공군 소속의 공수부대가 할 것이라는 예측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당장 난징군구 옆의 광저우 군구에 공수사단이 1개 집단군급의 규모로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투입되면 대만육군의 주력인 6군단과 붙으면서 수도 타이페이에서는 수도방위의 전략기동군인 대만군 해병대와 싸우게되어있다.

의외로 인민해방군 육군의 기계화 비중은 적은데 타이완 육군의 기갑전력이 M48 패튼을 기반으로 한 용호 전차 정도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구태여 상륙자원을 잡아먹는 MBT를 대거 투입하기보다는 신속 전개가 가능한 해군육전대나 공정집단군의 경전차, 장갑차와 각종 대전차전력으로 타이완군 기갑전력을 상대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물론 현재 인민해방군에 제대로 된 3세대 전차 전력이 없는 것도 한 몫 하고.... 99식 전차 항목의 안습한 기록들을 보면.... 그나마 저 수준미달의 전차도 수량이 얼마 없어서 러시아미국, 한국 같은 쟁쟁한 강호들을 상대할 동북지역에 배치하기도 힘들어서 난징군구에는 탱크 바이애슬론에서 T-72B만도 못한 것으로 드러난 96식 전차나 배치해야 할 상황이다.

말이야 타이완이나 남중국 일대가 MBT를 대거 운용할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한반도나 일본도 MBT 굴릴 환경이 아니기는 마찬가지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공히 전차가 쓸모 없다고 생각했던 지형에서 전차를 굴려 크게 재미를 봤다. 당장 타이완군부터가 틈만 나면 M1 에이브럼스 계열 3세대 전차의 획득 가능성을 탐색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기사. 대만의 공업기반 자체가 전차를 생산할만한 중공업 분야능력이 안된다. 타이완이나 베트남이 제대로 된 3세대 MBT를 확보했다면 지형조건 따위 거르고 난징군구나 광저우군구 역시 어떻게든 3세대 MBT를 배치했을 것이고 침공 시나리오에서도 인민해방군의 육군 기갑부대가 비중있게 등장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지상군 전력의 40%를 집중배치하면서도 동시에 기계화전력에도 증강을 하는 추세라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상륙작전을 제대로 수행할수 있는가 여부가 달려있는데 예전같으면 할수 없었지만 지금은 중국해군의 대양해군 전력도 많이 강화되었던데다가 잠수함 전력이 부족한 대만에 비해 잠수함전력역시 강화중인 중국해군에 맞서서 제해권 제압이 대만해군으로서는 쉽지도 않기에 제해권과 제공권 문제에서 중국이 거의 압도적인 현실이나.. 그와 별개로 중국해군의 상륙작전 독자적인 수행능력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가 관건인데 현재 중국해군의 상륙주정들을 감안할경우 과연 여단급 이상의 상륙작전을 수행할수 있는가 여부도 관건이다. 상륙작전의 능력은 결국 아무리 지상에 3세대 전차가 많고 막강한 기계화전력이 있다고해도 그것을 작전지역으로 상륙시키지 못하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대만군의 집중적인 훈련상황을 봐도 중국 인민해방군의 상륙작전 초기에 제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훈련이 집중되어있는터라 중국군의 독자적인 상륙작전능력의 수준이 타이완에서의 작전수행이 차질이 될수 있는가 여부가 될것이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상륙작전이 제대로만 성공하고 공수사단들이 제대로 낙하하여 작전을 수행할 펼칠경우 대만군으로서는 상당히 방어할 곳이 많아져서 병력을 분산할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즉 이때를 기점으로 대만군의 방어능력이 어느수준인가 여부도 상당한 관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실제로 대만을 침공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중국을 경계하던 미국이나 일본, 러시아 등이 이를 묵과할 리가 없다. 당장 우리 한국만해도 해안교통로 지역에서의 중요길목이 바로 대만지역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중국이 한국의 혈맥을 쥐는것을 묵인할 가능성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미국만해도 대만에 지원한 미국제 무기들이 넘어가지 않게 하려면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며 동시에 대만이 넘어갈경우 미국령 괌이나 동남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 그리고 일본의 오키나와 지역 자체도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넓어지기 때문에 위협이 될수 밖에 없다. 지금 중국 해군은 필리핀해를 왔다갔다하며 미국과 일본을 간보고 있지만, 중국이 대만을 접수하면 필리핀해에서 중국해군을 밀어낼 명분이 없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이나 일본과는 적대할 생각이 없는터라, 미국이나 일본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면서 대만을 접수하는게 목표이다.

게다가 중국의 양안전쟁 시작은 결과적으로 중국이 현재 추구하는 도련선 전략과도 맞물리는 문제이고 나중에 이어도나 북한문제에서 중국이 군사적 개입을 얼마든지 할수 있다라는 정치적 메세지도 함유하기 때문에 주변국으로서는 한국-미국-일본-동남아지역은 상당히 긴장과 위협적인 행동으로 판단할수 밖에 없다.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로는 대만 국민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를 모두 감수하고 대만을 병합할 필요성이 크지 않기에 중국의 대만 무력 병합시나리오는 아직까지는 현실성이 없다. 대만 국민들중에서 본토인들조차도 중국과의 통일에 호의적이지 않다고 한다. 하물며 기존의 타이완 출신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1996년 "대만 분리독립"에 우호적이던 리덩후이의 총통 3선을 방해하기 위해 중국은 대만을 겨냥해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였으나 오히려 대만 국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오고 민진당 표까지 리덩후이에게 몰리는 바람에 리덩후이 총통가 3선을 하는 결과를 낳았다.

만일 양안합병 시나리오의 경우는 중화민국한국의 정치 시스템이 비슷하기 때문에 한중합방 항목에서 "한국"을 "대만"으로 순화시켜 읽어보면 이해가 될것이다.

3.4. 군별

3.5. 조직

중화민국군은 미군의 영향을 받아 육,해,공 3군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해병대에 해당하는 해군육전대가 해군 밑에 있다. 독특한 점은 헌병사령부가 각 군 사령부와는 별도로 존재하는 점인데, 일단 전체 헌병병과는 육군에 소속되어 있지만 헌병사령부는 국방부 직할 사령부로 육, 해, 공군 사령부와 동일한 위상을 갖고 있다. 이는 헌병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국가 헌병대처럼 민간인 대상 경찰업무까지 맡고 있는 특수성을 감안한 것.

  • 참모본부(한국군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
  • 육군사령부
  • 해군사령부
    • 해군육전대사령부
  • 공군사령부
  • 헌병사령부
  • 후비사령부(후방지역 방어 담당, 한국 육군의 제2작전사령부에 해당.)
  • 연합후근사령부(전 군의 지원병과를 통합. 중국군의 총후근부와 유사함.)

3.6. 계급

계급 순위를 대/중/소가 아니라 상/중/소로 나누는 점과 영관급을 교관급이라고 부르는 점, 준위가 없는 점 등이 주적인 중국 인민해방군과 똑같다.

육군 계급장




  • 장성급
    • 상장 - 다른 나라의 대장에 해당. 원래 명칭은 이급상장이었으나, 2013년 일급상장 계급이 폐지되면서 명칭이 그냥 '상장'으로 변경됨.
    • 중장
    • 소장
  • 교관급(다른 나라의 영관급)
    • 상교
    • 중교
    • 소교
  • 위관급
  • 부사관
    • 1등사관장
    • 2등사관장
    • 3등사관장 : 1~3등사관장의 육/공군 계급장은 상사 계급장에 갈매기가 계속 덧붙여지는 부사관 계급장을 사용하나, 해군 계급장은 미국 해군 준사관 계급장과 비슷한 계급장을 사용한다, 하지만 준사관으로 대우하진 않는다.
    • 상사
    • 중사
    • 하사
  • 병사급
    • 상등병
    • 일등병
    • 이등병
  • 폐지계급
    • 특급상장 - 다른 나라의 대원수에 해당하며 장제스 한 사람만이 부여받았다. 2000년부터 정식 폐지.
    • 일급상장 - 다른 나라의 상급대장에 해당. 참모총장(한국의 합동참모의장에 해당) 한 사람만이 부여받는 계급이었으나. 2013년 폐지되고 참모총장 직위는 이급상장이 보임되는 것으로 변경됨.

3.7. 중화민국군의 장비 목록

3.7.1. 육군

3.7.3. 공군

3.8. 관련항목

3.8.1. 관련 기관과 제도

3.8.2.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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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1 0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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