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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사상

last modified: 2015-04-10 11:20:11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념
2. 통합성
3. 배타성
4. 민족주의/Nationalism와의 비교
5. 중화사상의 팽창주의
6. 관련 영상
7. 관련 항목


中華思想
Sino-centrism

1. 개념

중국인 특유의 민족적인 자문화 중심주의 사상. 단순히 중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퍼진 화교들이 보유한 사상이다. 골자는 중국 문명이 세계의 중심이며, 그 문화적 역량이 어떠한 다른 문명보다도 우수하다고 믿기에 다른 문명을 오랑캐 레벨로 낮잡아보는 사상을 지칭한다. 말 그대로 중화가 말 그대로 세계 중심에 위치하는 위대한 문명이라는 뜻이며, 그 밖의 다른 나라나 민족은 오랑캐로 여기어 멸시해왔다.

다만 사실 이 단어도 단순히 애국기믹을 보인다고 너무 남발은 말자. 어느 나라에나 있는 정도의 자문화애착은 누구라고 특별한 시각으로 보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런 것은 또다른 편견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사실 '중화'라는 단어가 국가명, 민족명에 정확히 귀속되는 개념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과거 동양의 '중화사상' 이란 특정 민족이 최고이며 우월하다는 것보다는 그냥 '중화'자체가 뛰어난 문명을 가르키는 개념이고 그런 문명국을 추구한다는 사상이었다. 그런 문명부심으로 비문명권의 나라나 민족을 오랑캐라고 무시하기도 했지만 중국이라는 명칭은 나라이름으로 쓴 국가는 태평천국운동으로 서구의 민족개념이 유입되고 그 태평천국의 한족 민족주의 사상을 계승한 신해혁명으로 세워진 중화민국이 최초다. 물론 이전부터도 중국이라고 불리기는 했으나 이민족들이 중국을 정복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중국을 자처한 사례들도 많다. 중국이 민족 정체성에 귀속되던 명칭이라면 이것을 자처하는 순간 이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버려버렸다고 보는게 옳을까? 한 예로 청나라는 40년만에 중국을 자처했다. 정복민족이 40년만에 피정복민족에 동화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을것이다. 물론 만주족은 동화가 심해서 상당부분 정체성이 사라진 민족이긴 하지만 이것은 문화 컨텐츠가 부족하며 숫자도 적은 비농경 민족이 컨텐츠가 풍부하며 수도 압도적인 민족을 통치한 대제국이 약 300년이나 지속되고 난 이후에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이지 초기에는 한족에게 자신들의 전통을 강요하고 만주어 교과서를 만들어 보급했다. 거기다 조선이나 베트남처럼 중원에 위치하지 않은 나라들이 중국을 자처한 사례도 있는데 여기에 현대인의 관점을 적용시켜 이런 소중화사상을 '속국을 자처함, 자주성이 없음'으로 해석하는 것 또한 커다란 오류이며 식민사관의 잔재다. 조선후기 사대부들의 지나친 소중화사상이 나라를 막장으로 몰고간 것은 맞지만 그것과 식민지를 자처한다는건 별개다. 명나라 멸망 이후의 사대부들은 조선이 중국이라고 하며 속국의식이 아닌 자부심을 가졌다. 여기에서 나오는 폐쇄성을 포함해서, 과거의 소중화 사상이 현대의 민족주의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동이, 남만, 북적, 서융 따위의 용어는 여기서 온 것. 특히 남만의 경우는 말 그대로 '남쪽 미개인'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상주 시대부터 확인할 수 있는 일로, 이(夷), 만(蠻), 융(戎), 적(狄) 등을 비롯해 수많은 이민족들이 존재했던 상황을 문헌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후 춘추전국시대에 이민족과의 잦은 충돌을 빚으면서 '중국'과 '중화'의 정체성이 확립되었고, 이것이 대에 오행 사상 등과 결합하면서 이론적으로 정립되었다. 그리고 국제적 왕조인 이후부터는 주변국에도 본격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으며, 대 이후 발달한 성리학은 천자 중심의 질서를 더욱 크게 강요하였다.

명칭인 '중화(中華)'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화사상은 중앙(中)을 중심으로 미개한 주변부를 다스린다는 관념을 깔고 있으며, 따라서 '(동아시아) 세계 유일의 황제' 개념이 정립되어 발전한 중국의 역사 및 세계 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완전한 황제의 통치를 위해서는 '중심부(中)의 절대 권력자인 황제를 정점으로 각지의 제후'로 이어지는 위계 질서가 확립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를 정당화하는 것이 '하늘(天)으로부터 부여받은 권위'(천명) 및 압도적인 인구와 영역에서 기인하는 문화력이었다.

2. 통합성

흔히 중화사상을 '오래된 중국의 민족주의' 정도로 이해하고는 하나 단순하게 볼 것은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혈통적으로 다른 공동체들을 많이 흡수하면서 중국이 성장해 나갔기 때문이며, 중화사상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근간 중의 하나가 '우월하게 세계의 중심에 선 화(華) 문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 북위로부터 이어진 선비계의 혈통이 작용하는 롱집단으로부터 출발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스스로의 문화를 거의 상실하고 한족 국가에 녹아들었고 오히려 정통 한족 왕조로 취급받아왔다. 만주족옹정제동이[1] 출신의 순 임금과 서융 출신의 주문왕을 거론하며 이들도 한족 질서에 편입될 수 있었음을 『대의각미록』에서 주장하여 의 정당성을 삼는 근거로 내세웠다. 한족 항목에서 볼 수 있듯, 실제로 남중국과 북중국은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제법 큰 차이가 있음에도 역대 중국의 국가들은 '중화'의 범위로 이들을 묶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면이 강한 주장으로, 정작 한족 사층이 청 황실을 오랑캐라고 보는 관점은 청 말기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이들 한족 신사층은 지방에 웅거하면서도 '멸만흥한(滅滿興漢, 만주족을 멸절시키고 한족을 부흥시킨다)'을 표방하며 언젠가 '오랑캐의 지배'를 뒤엎을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고, 그것이 대대적으로 폭발한 것이 이른바 태평천국의 난이다. 이는 외세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다고 인식하고 있다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이념이기도 하다. 청나라가 안정된 뒤에 한족에 대한 강경책과 탄압이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니었다. 문자의 옥 항목 참조. 물론 이민족이라는 이유로 잘한 점은 덜 인정받고 정통왕조와 똑같은 병크 저질러도 더 까이는 성향은 컸지만(...) 하여튼 청 말기의 혁명가들은 청조의 지배기간을 중국이 식민지배 당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신해혁명은 한족의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멸만흥한' 이념이나 조선베트남 등에서 내세운 소중화 사상은 소위 오랑캐로 일컬어지는 외래인 중심의 지배를 부정하는 기조에서 성립된 것으로, 뿌리 깊은 중화사상 하에서 정통 중화인이 아닌 오랑캐를 질서의 정점에 세우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 들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즉 소위 '중화인'들이 중화사상을 정당화하는 이유는 중화 문화였지만, 그 기저에는 혈통이나 인적 공동체의 의미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고대 이래 황하 인근 집단이 주변의 이민족을 흡수하며 지금의 한족으로 세를 불려나가는 과정에서 '중화'의 범위는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이것은 중국의 중심 지역에서 인구가 팽창하는 범위 이상으로 이루어진 문화의 확장을 동반한 것이었고, '중화인'의 혈통적, 인적인 구성도 중화사상의 주장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유동하면서 넓어져 갔다. 시대가 지나면서 중국의 영토가 계속해서 확장된 것 또한 이렇게 당연하게 자신을 '중화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국시대에 중국의 일원으로 취급받게 된 , , , , (秦) 등의 공동체는 본래 전혀 다른 정체성을 지닌 '다른 세계'였다는 사실이 상주 시대 기록의 분석을 통해 드러나고 있으나, 역사의 방향성은 이 모두가 '중국'에 편입되는 쪽으로 흘러갔다. 오호십육국시대 중국에 진입했던 수많은 이민족과 , , , 의 정복왕조 역시도 막상 유목민 시절을 벗어나 정주민이 되면서부터는 중국의 압도적인 문화와 인구 속으로 빨려들어가 중화사상에 물들어 이 질서 안으로 편입되었다. 물론 이러한 이민족들이 중국에 미친 영향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시절에 중국인 전통의 상투가 사라지고 변발로 문화적 습속이 바뀌었으며 이후 현대화를 거침에 따라 상투는 다시 부활하지 못했다. 이 외에도 바지 역시 그 유래는 북방민족에서 유래한 것이었고, 중국인들이 한국, 일본인들에 비해 유난히 입식 생활의 비중이 큰 것도 북방민족의 영향이다. 문화란 일방적으로 한쪽이 다른 한쪽을 물들이는게 아니다. 이 경우는 어디까지나 정복자의 강요에 의한 것이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이민족들도 '중화사상'이라는 큰 흐름에 몽뚱그려졌다.

이처럼 중화사상의 막대한 힘이 동아시아에 작용한 결과 근대 이전까지의 2000년간 중국이 방대한 면적과 수많은 인구를 하나의 틀 안에 묶고 이를 제국의 형태로 실현할 수 있었던 중요한 통치 이데올로기로 기능할 수 있었다. 또한 지금까지도 중국이 그 거대한 세력을 유지 가능하면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꾸준히 정치적-통치적 폐쇄성을 띄는 근간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중화사상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문화적 다양성이 사라졌다는 말과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신화가 한국의 세계관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 것도 개별적인 정체성보다 중화사상적인 세계 체제를 지향했던 중화 문화권의 과거사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배타성

중화사상은 자문화 중심주의 사상 가운데서도 그 특성상 당연히 강한 배타성을 깔고 있다.

전근대 중국이 동아시아권에서 막대한 문화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에 따라 중국 바깥 권역은 자연히 오랑캐라고 멸시되었으며, 이를 방위와 결합해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 호칭하며 깔보았다. 이는 중국의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조선 역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례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왕 선조를 만난 나라 사신 송응창은 "조선왕이 고집이 세어 내 말을 듣지 않으려 하니 한심하다. 오랑캐를 설득시키는 일이 이와 같도다"라고 탄식한 바 있다.또한,처음 임진왜란이 발생했을때 조선의 도움 요청에 북경에서 황제에게 두 오랑캐들끼리 싸우는 것이니 도울필요도 없다라는 자국 의견도 있었다. 중국인들에게는 조선도 오랑캐였던 셈.

이러한 배타성 탓에 중화사상은 중국의 외교관계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받기도 한다. 특히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국제적인 위상이 커져가며 더욱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중화사상에 민족주의가 결합되면서, '중국 내 모든 민족은 중화민족'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동북공정과 서남공정 등의 역사 재편 작업을 통해 혈연적으로 티베트, 위구르, 만주 등에 존재했던 여러 역사적인 공동체가 '원래 중국의 한 갈래였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는 특히 문화대혁명과 같은 시기에 해당 지역의 독자적인 문화를 파괴하고 이들을 탄압하는 근거가 되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 대체로 인류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민주주의를 자기 이념의 근거로 삼고 있기에 이와 비교되는 중화사상은 더더욱 큰 비판을 부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화주의만 배타성을 띠고 있다는 주장은 좀 생각해봐야하는게, 비슷하게 민족주의적인 많은 나라들이 모두 강한 배타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폴란드가 유명하며, 이점에 있어선 한국도 별로 별반 다르지 않다.

4. 민족주의/Nationalism와의 비교

중화사상은 민족주의 또는 국수주의와 일견 비슷한 듯 하면서도 차이가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흔히 민족주의로 번역되어 쓰이고 있는 'nationalism'은 근대 영국에서 출발하여 유럽을 중심으로 퍼진 개념이라서 그 이전부터 존재한 중화사상과는 태생이 다르다.

'nationalism'은 특정한 집단의 구성원 개개인이 하나의 공동체인 '민족'에 속한다는 자기 의식을 지니고 이를 대표하는 정체인 국가를 성립 및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이다. 이를 통해 개별적인 국민 국가는 고유의 언어, 문화 등을 누리며 타 국가와 구분된다. 이 개념이 수입되는 과정에서 민족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일단 '근대 민족주의의 수입 이전에도 중화민족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대 이후에나 등장한 개념화 작업이 근대 이전에 존재했다고 보는 점에서 무리한 해석이다.

유럽에서도 소위 '민족주의'로 지칭되는 'nationalism'이 18세기나 되어서야 등장했다고 이야기되는 이유는 'nation'의 구성원들이 뚜렷한 독립적 공동체 속의 자기 정체성을 보유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국민 국가의 보통 교육과 같은 것인데, 유럽에서 이것이 이루어진 것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 이후로나 취급되며, 그것의 실현은 19세기에 들어서야 보편화되었다. 그런데 중국만이 이러한 'nation'의 개념을 근대 이전부터(그것도 기원을 찾자면 상주 시대부터) 갖고 있었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많다. 때문에 최근 학계에서는 '민족'의 개념을 근대 이전에 소급하는 데 조심스러운 편이며, '자국 의식' 정도의 용어로 대체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화(華)'라는 개념은 물리적인 혈통보다는 정신적인 사상, 문화, 관념적인 성격이 강하며, 소위 소중화를 표방한 주변국들도 중화사상을 인정하고 조공 체제와 사대로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한 동아시아에서는 이러한 중화사상에 반드시 중국 중심의 세계 체제가 동반되었으므로, 화이관 자체가 개별 국가의 이념을 덮는 보편적인 세계관의 역할을 크게 했다.

이로 인해 소위 '중화민족'의 구성원이 아니어야 할 조선 등지에서 오히려 스스로가 중화임을 주장하는 사례가 나타난다. 이들이 혈통적, 인적으로 중화를 주장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며, 문화적인 의미가 크게 작용한 것이다. 즉 민족주의라는 말로는 문화의 파급과 세계 체제라는 의미에서 중화사상의 외연을 포괄하지 못한다. 이는 근대 유럽의 민족주의와 달리 독립적인 자기 정체성(이는 타자와의 명확한 구분을 동반한다. 즉 동아시아 세계 자체를 뭉뚱그려 파악하는 중화사상의 기저와는 큰 차이가 있다.)을 가진 공동체의 성립과 이것의 수호를 동반하지 않는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근대 민족주의와 중화사상은 그 근저를 특정한 인적 집단에 둔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을 지니지만, 근대 민족주의는 자기 민족(nation)의 타자와의 명확한 구분, 자기 공동체를 대표할 국가의 건립과 공동체의 정체성 유지에 굉장한 힘을 쏟는 반면에, 중화사상은 문화적 역량(그리고 그것을 통한 외부 세계의 '교화')과 세계 체제라는 의미가 더욱 강조되며 그로 인해 동아시아 체제와 중국의 정체성을 떼어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차이로 들 수 있겠다.

다만 근대 이후 중국에 민족주의가 전파됨에 따라, 근대 민족주의와 중화사상 간에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속성이 강해졌다. 이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입을 겪으면서 대내적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했던 것이기도 하다. 청나라 시절까지의 중화사상이 동아시아 세계의 종주국으로서 일종의 자뻑이었다면, 현재의 중화사상은 '하나의 중화민족'을 주장하는 근거로서 국민 국가의 구성을 위한 자국 통합의 중요한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그 결과 중화사상은 티베트위구르 등의 소수민족 통치를 합리화하는 이념적 이데올로기로서도 기능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대의 중화사상은 19세기 이전의 것과 일정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5. 중화사상의 팽창주의

중국의 한족정권이 한반도를 직접 손에 넣으려고 한 것은 한무제수양제, 당태종, 당고종 정도이다. 그 이후 수많은 외침은 북방의 유목민족이나 일본에 의한 것이었던 게 사실이다. 당고종 이후로 한족정권이 한반도를 손에 넣으려고 시도한 적도 없으며, 한반도 국가를 분명히 이민족국가로 인식했고, 중국의 영역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에 맞춰 한반도 정권들은 외교관계의 한 형식인 사대의 예로 중국을 명목상의 상국으로 인정함으로서 중화질서에 편입함으로서 평화를 얻었다. 당고종 이후로 한족정권이 반도와 직접 국경을 맞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나라 역시 압록강변은 커녕 요동 평야지대를 유지하는데도 힘겨워 했었다.

일단 중화사상은 소국 혹은 속국이 중국이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적인 주종관계를 맺는다면, 중국은 이런 소국에게 문화-정치면에서 원조를 해준다는 것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중화사상이 팽창주의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은 이런 중화질서 내에서 행해진 조공무역에서 손해를 보면서까지 소국을 자신의 편으로 잡아놓으려고 했다. 중국의 팽창은 대체로 한족정권이 아니라 이민족 정권의 손에서 이뤄졌고,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방대한 영역의 반이 넘는 영토 (티벳, 위구르, 내몽골, 만주 등등의 변경지역)는 만주족 정권인 청나라의 손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이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져서, 중화사상은 서방의 제국주의와 다를 게 별로 없는 형태가 되었다. 현재 남중국해 등지에서 이뤄지는 분쟁이나 한반도에 대한 압박은 겉으로 보면 자원을 놓고 벌이는 충돌이지만 실제로는 이들 나라를 장기적으로 장악하여 최소한 제국 주변의 안정을 확보하고, 팽창이 목적이라면 이들 지역을 기반으로 더욱 뻗어나가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도련선 전략이다.[2] 즉 현재의 중화사상은 제국주의, 패권주의라고 봐도 무방하다.

7.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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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왕조 시절 그 지배권 동부에 해당하는 산둥 반도 부근. 한반도나 일본도 취급 자체는 동이라고 할 수 있으나 춘추전국시대 이전에는 지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 [2] 제1~3도련선으로 나뉘는데, 제1도련선은 한반도를 제외한 서태평양 연안 지역. 제2도련선은 한반도를 포함하고 일본 열도까지 영향권 하에 두는 서태평양 전역. 제3도련선은 미국의 하와이 외곽까지 뻗어나가 태평양을 반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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