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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

last modified: 2015-02-28 00:56:57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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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애 모습들
오비완...?
-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Sigmund Freud[1]


오스트리아 출신의 의학자, 생리학자(당시 생리학은 비임상의학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연구학문으로의 의학은 생리학과 같은 것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다. 인간무의식을 최초로 규정한 사람이다[2]. 20세기 사상사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학자이다. 심리학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근대 철학에서도 프리드리히 니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등과 함께 무겁게 다뤄지는 학자들 중 한명.

19세기 들어 산업화자본주의가 시작된 서유럽은 가족에 대한 개념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빅토리아식 가족으로 규정된 이 개념은, 가족을 신성하고 도덕적인 것으로 규정지었다. (性)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문란한 성적 규범들은 비난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게 어쩔 수가 없어서, 외적으로는 성을 금기시하면서도 내적으로는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20세기가 되고, 빅토리아식 가정은 출산율과 영아사망률 감소[3]로 인해 미국식 핵가족화되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성에 대한 개념도 양지적으로 변했다. 성혁명이라 불리는 이 현상을 주도한 것이 프로이트이다.

사람의 심리는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이드(원초아)와 에고(자아), 그리고 슈퍼에고(초자아)이다. 이드는 인간이 가진 원초적 본능의 욕구이며, 자아는 이드의 무분별한 욕구를 통제하고, 현실과 조화시키려는 욕구이다. 초자아는 사회적 관념과 형성된 도덕 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서, 이드와 자아의 욕구를 비판하여 행동을 사회규범의 범위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르네 데카르트 이후부터 계속되어 온 이성적 주체라는 존재가 프로이트에 의해 크게 빛이 바래 버린 것이다.

사실 심리학에서 억눌린 욕구 등의 개념을 떠올린 인물로 가장 유명한 정신과 의사일 듯[4]. 그러나 살아있을 적에는 툭하면 섹스 얘기를 꺼내는 미친 사람 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의 이론에서 성과 관련된 부분을 빼면 남는 게 없긴 하지만(…), 리비도가 단순히 섹스 에너지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발달 에너지를 가리킨 것이란 점은 염두에 두자(이것도 말년에 수정한 이론). 말년에는 에로스 말고도 죽음에 대한 욕구(타나토스)에도 신경을 썼다.

왜 하필 섹스라는 주제를 자주 이용했는가에 대해 어떤 책(집단심리학, 좀 낡은책이다.)에선 프로이트 어머니가 젊었기 때문에 남편 몰래 나이어린 삼촌들과 애정관계를 맺어온것(NTR?!?!)을 프로이트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억측. 프로이트는 크게 그의 히스테리 이론과 유아 성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시켰다. 그가 치료했던 히스테리 환자의 대부분이 성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어린 시절 성적인 폭력이나 유혹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관찰(...)에 기반하여 아이는 모두 순수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매우 어린 시절부터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며 성이론을 만든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이 때 성적인 쾌락은 성기뿐만 아니라 구강, 항문, 배설, 가학성 등과 연관된다. 이런 성욕의 다양한 형태가 후에 보편적인 성욕인 '리비도'를 상정하는 근거가 된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잡지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에서는 인기가 많다. 특히, 웹이나 서브컬처 매체상에서 심리학이 어쩌구 하면서 떠드는 글들의 상당수는 프로이트나 카를 융을 내세운 개똥철학적 뜬구름 잡기가 대부분. 특히 성(性)에 관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이론(애초에 모든 심리와 무의식과 행동 즉 인간 삶의 모든 것을 성적 충동으로 규정짓는다 봐도 과언이 아니니)이라 사람들 흥미를 자극하기에 아주 좋아서리...

일부는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에서 정신분석학을 배제하기도 하지만, 심리학 개론서에는 반드시 프로이트의 이론이 등장한다. 그의 이론은 사실상 과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으나, 실제 정신 질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전히 검증해봐야 할 영역으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정신분석학을 반증하는 연구뿐만 아니라, 신경과학으로 정신분석학을 뒷받침하려는 시도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학계에서는 프로이트 시대보다 연구나 이론이 훨씬 진보되었으나, 무의식의 영역만큼은 프로이트 이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그리고 무의식을 비롯하여 그 전까지 철학의 영역이었던 정신세계에 대한 정리를 최초로 시도한 것이 바로 프로이트였다(인간 심리에 대한 연구는 이미 그 전에 브로일러 등에 의해 시도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미 최면술이나 자유기술법 등이 나타났다.). 그 때문에 심리학의 기초 이론엔 프로이트의 이론이 남아 있다. 이 탓에 조금이라도 심리학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융은 몰라도 프로이트는 알 수 밖에 없다. 특히 의학계에서는 임상에서 효과가 있으면 이론이나 근거가 확실하게 확립되지 않아도 사용하기때문에 아직까지도 의대에서는 전문의가 아니라도 나름대로 비중을 두어 가르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분석의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본적인 옵션으로 정신분석 치료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심리학계의 뉴턴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5]

사실 프로이트주의의 가장 큰 의의는 인류의 '보편성'을 강조한 것으로, 프로이트 이후 다른 분야의 학문에서도 비슷한 관점에서의 연구가 지속되어 다윈의 진화론을 왜곡하면서 만연했던 잘못된 우생학적 사상에 간접적으로 일격을 가했다.

다만, 이 사람의 책을 생각없이 읽다 보면 뭐 이런 변태 늙은이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특히 '은 여성의 엉덩이를 상징한다'(...) 같은 부분. 물론 달이 무조건 여성의 엉덩이를 상징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며, 아무런 근거 없이 주장한 것도 아니다. 그는 독일어 속어로서의 의미에 기반했다. 프로이트의 저서를 보면 이러한 언어적 연상을 자신의 이론의 근거로 삼은 부분이 많다. 이는 후에 언어학과 구조주의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말년에는 본인도 좀 지겨워졌는지 '담배가 언제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인터뷰 중 한 언론인이 "프로이트 박사님이 항상 시가를 피는 것도 구강기적 집착 때문이 아니냐", 즉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항상 크고 우람하고 시커먼 검열삭제를 빨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냐라는 질문을 던지자 본인도 쪽팔렸는지 불쾌한 표정으로 시크하게 던진 대답이다.(…) 그러나 구강기는 빠는 '행위'에서 쾌락을 느끼는 시기이지 '성기'를 빠는 데서 쾌락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실 프로이트는 자신의 구강기적 특성을 쿨하게 인정했으며, 자신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를 구강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아마 이름이 알려진 학자 중에서는 현대 페미니스트들에게 가장 많이 까이는 사람. 이유는, '여성들은 본질적으로 남근을 선망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으며, 여성의 성적인 행동은 그것을 갖지 못하기에 보상 심리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당사자인 여자가 듣기에는 해괴하기 그지없는 소리를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이 학계에 일으킨 파문과 정신분석학의 시조로서의 의의와는 별개로, 이런 이유로 그의 학문적인 성과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언뜻 성차별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주장의 맥락을 잘 따져보면 그렇게 성차별적인 발언으로도 볼 수 없다. 당시 팽배했던 남성우월주의에 비추어보면, 프로이트의 주장은 '여성은 정말로 남성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성기의 차이로 인해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여길 뿐이다'에 가깝다. 그는 당시 대부분 여성이었던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여성의 열등성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인식에 의한 것이라는 근거를 마련했다.

약혼녀와 결혼하기 위해 아편중독자 친구에게 코카인을 권한 후 조금 중독증세가 나아졌다고 생각하자 바로 코카인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유명해지고 결국 결혼에 성공한 과거가 있다. 그런데 친구는 아편과 코카인에 함께 중독되어 사망하고 말았다. 본인도 담배를 끊기 위해 코카인을 했다가 담배와 코카인에 함께 중독되었고 결국 구강암으로 사망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엘렉트라 콤플렉스(현재는 양쪽 모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부른다.)란 개념을 만든 사람이 바로 프로이트다.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명칭은 융이 붙였지만. 그 외에도 정신분석학계에서 프로이트가 새로이 도입한 개념을 보자면 셀 수도 없다.

저서인《꿈의 해석》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고전 명서다. 성에 관한 이야기도 적어서 프로이트가 꿈을 어떤 대상으로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부작용으로 자꾸 꿈을 해석하게 된다고... 30년 쯤 전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이 시절부터 정리되어온 꿈과 상징에 대한 사전을 들고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꿈을 보편적인 상징으로 치환하여 해석하는 방식은 정신분석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이다. 성적인 상징들이 갖는 공통적인 경향성은 존재하지만, 프로이트는 문화와 언어, 개인의 경험에 기반하여 꿈에 등장하는 상징이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한편, 언사이클로피디아에서는 프로이트(Freud)와 사기꾼(Fraud)은 한 글자 차이라면서 깐다(근데 묘하게 말이 된다.). 언사이클로피디아 사람들은 정신분석학은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이비 과학으로 취급하기 때문.[6] 이건 칼 포퍼의 영향인 듯 하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적어도 그의 제자들 중 다수가 거의 판타지 소설 수준의 정신분석학을 한 것에 비하면 나름대로 경험적 근거를 가지고 이론을 세우며 그 이론을 수정하는 데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에 대한 사이비과학이라는 비난을 프로이트 혼자서 덮어쓰는 것은 부적절하며, 그 죄는 융과 자크 라캉과 같은 후대의 정신분석학자 혹은 철학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융의 경우 신비주의에 빠져있어, 자신의 학문에 비이성적인 것들을 함축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 편이었다. 프로이트의 경우 이러한 융의 태도에 대해 비판하였지만, 융은 그러한 비판은 간단히 씹어버렸다.

프로이트 본인은 분명히 매우 합리적인 인물로, 자신이 세운 이론을 수정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그래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어했던 프로이트의 제자들에게 모두 배신당했다.). 단지 해석론, 재현방법, 연구 방법에서 엄격한 의미의 과학적 방법과는 약간 다른 형이상학적인 오류를 범한 것은 분명하며, 이것이 현재에 와서 프로이트는 높게 평가해도 정신분석학은 과학에 편입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분석학을 유심론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류이다. 프로이트는 평생 과학자의 위치를 고수한 철저히 유물론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리비도에 도입한 양적인 개념과 경제적인 원리들 역시 유물론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며, 그는 신경과학자로서 언제나 물리적 실체를 가정했다.

실제로, 프로이트는 젊을 적에 어류와 새우의 신경계를 연구했던 의학도로써, 그 길을 계속 유지했다면 신경과학에 나름대로 족적을 남길 가능성도 있었다고 평가하는 축도 있긴 하다. 프로이트가 젊었을 당시엔 두뇌의 신경 구조에 대한 연구가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었는데, 뇌가 연속적으로 연결된 단위들로 구성된 '연결망'인지, 서로 개별적인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 논쟁이 격렬했다. 결국 이 논쟁은 축적된 자료로 인해서 후자가 승리하게 되었고, '뉴런'이란 용어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프로이트 역시 신경세포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했던 축이기 때문. 뭐.. 상상은 자유지만, 프로이트가 독자적으로 내보인 이론도 아니고, 같은 학파 내에서 비슷한 이론도 발견되는 만큼 신경학에서의 프로이트는 "논쟁에 참여했다가 떨어져나간 무수한 학자들 중 하나" 정도의 비중이 있을 뿐이다. 정신분석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시대를 앞서간 천재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회의주의자 사전의 정신분석과 프로이트 항목을 참고해봐도 좋다. 그 회의주의자 사전의 로버트 캐롤 역시 프로이트를 일방적으로 비방하지는 않는다.

여담이지만 프로이트가 쓴 책은 알기 쉽게 쓰여있다고 한다. 하지만 번역판을 보면 이해가 안되는 난해한 말로 쓰여져있는데, 심리학자들은 알기쉬우면 심리학스럽지 못하다면서 용어를 고상하게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라고? 그 문제는 최초로 프로이트 전집을 영문으로 번역한 제임스 스트레이치에게서 시작되는데, 사실 '자아(Ego)' '초자아(Super-ego)' '이드(Id)'는 올바른 번역이 아니다[7] 프로이트가 쓴 원문에는 자아는 Ich, 초자아는 Über-Ich, 이드는 Es라고 되어있다. 번역하자면 '나,' '초월-나'(Über는 영어의 Over에 해당한다'), '그거'이다. 이 단어들은 독일어의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단어들이다. 사실 프로이트 뿐만 아니라 독일어로 쓰여진 다른 사상가들의 글은 한글보다 훨씬 읽기가 쉬운데, 영어나 프랑스어가 고급단어로 갈수록 일상언어 보다는 라틴어 어원의 단어가 많아지는 데 반해 독일어의 추상명사 등은 일상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8] 딱히 프로이트 뿐 아니라 대다수 독일 철학 용어들이 다 그렇다. 이 부분은 한자어로 추상적인 개념어를 정립하려는 학계의 경향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별다른 언급을 남기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사라예보 사건 이후 스트리아 제국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자 이를 지지하며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비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뒤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합병되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영국으로 망명했고, 나치는 그의 책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학을 가르치는 것을 금했다. 반면에 순수 게르만 혈통이던 융의 이론은 아무 제약 없이 가르칠 수 있었다고... 영국으로 망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씹는 담배의 애용으로 인한 구강암으로 사망했다.

참고로 이 때 그의 자식과 손자들도 같이 영국으로 망명가게 되는데, 그 손자 중 하나가 바로 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한 '루시안 프로이트'다. 그의 작품 중 하나는 생존화가 작품으로 최대가를 찍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2011년에 별세.

여담이지만 팀 포트리스 2에서는 1850년대의 블루팀 메딕이였다고 한다(...)

다음은 그의 일대기.
  • 1856년 - 5월 6일, 체코슬로바키아(당시 오스트리아 영토)의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남.
  • 1866년 - 오스트리아 빈의 김나지움에 입학.
  • 1873년 - 빈 대학의 과학부에 들어갔으나, 곧 의학부로 옮김.
  • 1877년 - 가재의 신경 세포에 관하여 오늘날의 세포설에 가까운 이론을 발표함.
  • 1882년 - 7월, 경제적인 이유로 연구 생활을 그만두고, 빈 대학 부속 병원 수련의가 됨.
  • 1884년 - 코카인의 마취 작용에 대한 논문 '코카인에 대하여'를 발표함.
  • 1885년 - 가을, 파리에 유학. 사르코 교수에게 히스테리 이론을 배워 본격적으로 신경증을 연구하게 됨.
  • 1886년
    4월, 빈에서 병원을 열고, 신경증 환자 치료를 시작함.
    9월, 유대인 마르타 베르나이스와 결혼함.
  • 1891년 - 최초의 저서인 <실어증의 이해를 위하여>가 나왔으나, 혹평을 받음.
  • 1895년 - 브로이어와 같이 <히스테리 연구>를 펴냄.
  • 1896년
    정신 분석'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함.'''
    가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정신 분석을 시작함.
  • 1900년 - 자신의 정신 분석과 꿈의 분석을 담은 <꿈의 해석>을 출간함.
  • 1901년 - '일상 생활의 병태 심리'를 발표하여, 우발적 행위의 의미를 명백히 함.
  • 1905년 - '성 이론에 관한 세 논문'과 '위트와 무의식과의 관계'를 집필함.
  • 1906년 - 정신 분석학의 지지자인 카를 융과 만남.
  • 1908년 - 4월, 잘츠부르크에서 제1회 국제 정신 분석학 대회를 개최함.
  • 1909년 - 9월, 클라크 대학에서 정신 분석학을 강연함.
  • 1910년 - 국제 정신 분석 학회가 정식으로 발족됨.
  • 1912년 - <이마고(Imago>를 창간하여 '토템과 터부'를 연재함.
  • 1914년 - <정신 분석 운동사>, <미켈란젤로의 모세>를 출간함.
  • 1915년 - 빈 대학에서 정신 분석학 입문 강의를 시작함.
  • 1917년 - <정신 분석학 입문>을 출간함.
  • 1922년 - 4월, 구개암 수술을 받음. 이후 죽을 때까지 32차례의 수술을 받으면서도 연구와 치료에 힘씀.
  • 1923년 - 4<자아와 원초아>를 저술하여, 자아와 원초아의 개념을 제창함.
  • 1930년 - 괴테 문학상을 받음.
  • 1938년 - 6월,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함.
  • 1939년 - 9월 23일, <정신 분석학 개론>을 집필하던 중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남.
※ 출처 : 만화로 만나는 20세기의 큰 인물(웅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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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독일어 발음은 '지크문트 프로이트(/ˈziːkmʊnt ˈfʁɔʏt/)'에 가까우며, 외래어 표기법으로도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정확하다.
  • [2] 다른 것 다 제외해도 이거 하나만으로도 20세기 사상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다. 근대 모더니즘은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성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 자체에 경악했다.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 탄생에도 한자리 차지한다.
  • [3] 식량 생산량 증가, 항생제 발명, 위생개념 강화에 기인한다.
  • [4] 아니, 사실 프로이트 시절에는 엄밀히 말해서 정신과 의사라는 개념이 없었다. 아직 의학의 분과가 불분명한 시절이었고, 현재 정신질환으로 취급받는 것들은 이 시절에는 다른 질환에 의한 증상/종교적 문제/정상범주/범죄자의 특질 정도로 취급받고 있었다. 프로이트 이후 정신의학이 만들어졌으며, 이후 내과적 방법에 입각한 향정신성 의약품의 개발로 1940-50년대 사이에 정신의학은 다시 한 번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다. 현재의 정신의학의 주류는 바로 이 약물, 그리고 내분비적/신경계적인 반응에 있으며, 정신분석학과 기타 인지치료 등은 비주류인 상태.
  • [5] 일반적인 이미지로는 뉴턴도 아인슈타인이 고전역학을 뒤집은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않다. 자세한 내용은 뉴턴항목 참조. 오히려 프로이트 쪽이 그 이미지에 맞다
  • [6] 과학이론으로써 반증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과학이론이라도 그에 반증하는 실험이나 자료가 나오면 그 이론은 폐기되거나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론은 일단 결과가 나온후 그 이유를 설명하는 식이기 때문에 반증따위 나올 수 있을리가 없다. 그의 저서 꿈의 해석에서는 자신의 이론을 반증하는 꿈을 꾼 환자에 대한 사례에서, 나의 이론이 틀렸으면 하는 무의식적 소망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 [7] 스트레이치는 그래서 나중에 라깡에게 여러모로 까였다. Ego는 라틴어의 1인칭 대명사, id는 영어의 it에 해당하는 라틴어의 중성 3인칭 대명사. 그러니까 이 인간 멀쩡한 독일어로 써 있는 걸 괜히 라틴어로 바꾼 거다.
  • [8] 예를 들면, 하이데거의 개념 중 하나인 '피투성'은 독일어 원어로는 Geworfenheit. 우리말로 풀어쓰면 '내던져짐'. 'geworfen'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던지다(werfen)'의 과거분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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