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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왕

last modified: 2015-03-05 10:49:25 by Contributors

  • 삼국시대 위나라의 황족의 시호인 진사왕(陳思王)을 쓰는 사람은 조식 항목 참고.

백제의 역대 국왕
15대 침류왕 부여침류 16대 진사왕 부여휘 17대 아신왕 부여아방

시호 진사왕(辰斯王)
부여(扶餘)
휘(暉) / 여휘(餘暉,余暉)[1]
생몰년도 음력 345년 ~ 392년 11월 (36세)
재위기간 음력 385년 11월 ~ 392년 11월 (8년)

백제의 16대 국왕/건길지.

생애

백제의 안습시절 스타트를 끊은 왕

침류왕의 동생이자 근구수왕의 차남. 침류왕의 아들인 아신왕이 어리다는 핑계로 즉위했다라곤 하는데 일본서기에는 아신왕에게 돌아가야 할 왕위를 빼앗았다고 전하고 있다.

사람됨이 굳세고 용감하고 총명하고 어질었으며 지략이 많았다고 한다. 왕이 되고 나서도 꽤 괜찮은 정치를 보여주긴 하는데... 나중에 만난 상대가 나빴다.

386년(진사왕 2년) 15세 이상의 백성을 동원하여 청목령(靑木嶺: 지금의 개성)에서 북으로는 팔곤성(八坤城)에, 서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는 관방(關防)을 쌓았다. 또한 390년 달솔(達率) 진가모(眞嘉謨)로 하여금 고구려의 도곤성(都坤城)을 공격하게 하여 200여명을 포로로 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궁궐 증축과 사냥을 통해 왕권 강화를 도모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근초고왕-근구수왕-침류왕(읭?)대로 이어지는 전성기 분위기를 유지할 능력이 되어보이는 괜찮은 왕. 진사왕이 생각해도 고구려가 백제를 개발살낼 일은 낮은 확률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얼마안가 고구려에서 사기캐 광개토대왕이 즉위하고, 멋지게 발렸다. 석현성을 비롯하여 한수 이북의 10성을 빼앗기고[2] 전략요충지 관미성마저 빼앗겨 나라의 북쪽이 제대로 날아갔다.

이 관미성이 핵심이었는데, 광개토대왕 기록을 보면 관미성은 사방이 험한 절벽이고 그 주위에는 바닷물이 있어서 군을 7방면으로 20일동안 총공격해서야 겨우 점령할 수 있었다고 나와있다. 백제의 지원군은.. 어디 있었나? 이 관미성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오두산성(烏頭山城) 혹은 강화도[3]나 황해 옹진반도 어딘가로 추정된다.

광개토왕에게 발리고 있을때, 진사왕은 구원의 행궁에서 사냥을 했다. 이모습이 나라에 외적이 침입했는데 한가하게 사냥이나 즐기고 있는 무책임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고대시대의 사냥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군대 점검 정도로 봐야 한다. 진사왕 나름대로 외침을 극복하기 위해 군대를 수습하고 점검한 것...

삼국사기에는 그냥 구원의 에서 죽었다고 되어 있는데, 일본서기에는 아신왕 세력에게 제거당한 것으로 되어있는듯 하다. 혹은 패전의 책임을 느껴 자살했다는 말도 있는데 이쪽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사냥터란 원래 인적이 드문 곳이기에 유인만 잘 한다면 사람 암살하기엔 더 없이 적합한 장소로 변한다. 재위의 시작과 끝 모두 삼국사기는 애매하고 일본서기는 좀더 정교하다.[4]

백제는 이 때 잃은 황해도 지방과 경기 북부 영토를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

기타

삼국사기에는 진사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고 했지만 일본서기의 기록과 찬성씨록, 일본기 등에 왕인과 함께 입조한 귀수왕[5]의 손자 진손왕(辰爾王)에 대한 기록, 그밖에 관야조신씨, 갈정씨, 반(般)씨 집안[6]에서 근구수왕을 시조라고 하거나 근구수왕의 손자 진손왕을 시조라고 하는 것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알려지게 됐다.

진사왕의 아들 진손왕은 할아버지 근구수왕의 치세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으로 보아 그당시 이미 15세는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진사왕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진손왕은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눌러앉는다.[7]

삼국사기 기록

一年冬十一月 진사왕이 즉위하다
二年 청목령 일대에 관방을 쌓다
二年秋七月 서리가 내려 곡식을 해치다
二年秋八月 고구려가 침입하다
三年春一月 진가모를 달솔로 임명하다
三年秋九月 관미령에서 말갈과 전투를 벌이다
五年秋九月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다
六年秋七月 혜성이 북하 성좌에 나타나다
六年秋九月 진가모가 도곤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다
六年冬十月 구원의 북쪽에서 사냥하여 사슴을 잡다
七年春一月 궁실을 중수하고 연못을 파다
七年夏四月 말갈이 적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다
七年秋七月 서해의 큰 섬에서 사냥하다
七年秋八月 횡악 서쪽 지역에서 사냥하다
八年夏五月一日 일식이 일어나다
八年秋七月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석현성 등을 상실하다
八年冬十月 고구려에게 관미성을 상실하다
八年 구원에서 사냥하다
八年冬十一月 진사왕이 죽다

고구려와 관련된 내용이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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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중국사서에 등장하는 이름으로 부여가 없고 여휘만 나오는데 여기서는 여가 성이다. 하지만 본인 이름이 아닌 아들의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존재.
  • [2]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담덕이 머리에 피도 안마른 나이(18세)에 용병술에 능하다는 말에 쫄아 나가서 막지 못했다고 전한다.
  • [3] 윤명철의 '고구려 해양사', 실제로 강화도의 옛 이름이 '갑비고차'다.
  • [4] 사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록 자체가 빈약한데다가 은유적인 표현이 상당하게 들어갔다. 백제가 망한지도 이미 오래됐고... 그래서 당대에 남은 백제측의 기록을 인용한 일본서기의 기록이 삼국사기보다 자세한 경우도 적지 않다.
  • [5] 그의 아버지 근구수왕의 다른 이름
  • [6] 한국의 반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집안
  • [7] 일본서기에 의하면 진사왕이 일본 천황에게 거만하게 굴자 백제의 조신들이 진사왕을 살해했다 한다. 진사왕은 형 침류왕이 죽자 조카들이 나이가 어려서 왕위를 계승했지만, 아신왕은 삼촌이 찬탈한 것으로 간주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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