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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삼국지)

last modified: 2015-04-14 17:34:46 by Contributors

Contents

1. 삼국시대 나라의 인물이자 서진의 역사가
1.1. 진수는 진식의 아들이다?
2. 서진의 인물

1. 삼국시대 나라의 인물이자 서진의 역사가

陳壽. 역사서 '삼국지'의 저자. 생몰년도 233년 ~ 297년. 는 승조(承祚).

파서 안한 사람으로 어려서 학문을 좋아해 같은 군의 초주를 스승으로 섬겨 촉에서 벼슬하면서 관곽영사가 되었지만 황호가 위세와 권력을 제멋대로 하자 굴복하지 않다가 자주 좌천되거나 파면되었으며, 촉이 에게 멸망한 뒤 서진의 사마염이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진의 관리가 되었다.

여러모로 불우한 삶을 살았는데 아버지 상중에 병이 나서 약을 먹었는데 당시 부모의 상중에는 아프든 말든 계속 슬퍼해야 되는것이 도리라서 불효자라고 욕을 먹었고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어머니를 고향에 매장하지 않은 것 때문에 또 욕을 먹었다. 이런 악명 때문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촉한정통론자들에게 욕을 먹기 일쑤였으니 참으로 불행한 운명이라 할수 있겠다.

벼슬길에 오르고 제갈량의 저술을 모아 제갈량집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역사 저술에 힘썼다. 제갈량의 저술로 시작한 것으로 알 수 있듯이 그가 제갈량까라는 건 어폐가 있다. 사실 제갈량전에서 제갈량의 열전 마지막에 "임기응변은 제갈량이 장기가 아니었다"라고 하는 부분도 "우리 승상님이 임기응변만 잘했으면 다 이기는 건데..."하는 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정사의 제갈량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대신 제갈첨의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좋은 일이 일어나면 제갈첨의 것이라고 했다라는 말을 해서 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에서는 장화가 중서랑으로 천거하려고 했지만 순욱이 장화를 꺼리면서 진수를 시기해 이부에 이야기해 진수를 장광태수로 옮기게 했는데, 모친이 연로함을 핑계로 취임하지 않았고 두예의 천거로 어사치서에 임명되었다가 모친의 상으로 관직에 물러났다. 모친의 유언에 따라 낙양에 안장했고 다시 모친을 돌려보내 장사 지내지 않은 것에 연좌되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삼국시대 때의 여러 저작들을 모아서 역사서 삼국지를 썼으며, 진수가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은 진의 신하였기에 삼국지를 쓸 때 위를 정통으로 썼다. 하지만 그는 과거 촉의 관리이기도 했기 때문에 촉에 대해서도 많은 기록을 할 수 있었으며, 오가 망하자 오의 학자들과 공통으로 오의 역사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의 정사 삼국지는 문장이 미려하고 깊이가 있어서 뛰어나다고 평가를 얻었지만 지나치게 내용이 간략한 점이 있었으며, 결국 약 1세기가 넘은 뒤 나라 문제 유의륭은 대장추 배송지를 시켜 주석을 달게 했고 배송지의 주석은 이 후 삼국지연의 창작에 큰 밑거름이 된다.

성격이 강직한 학자 타입이라 출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여러번 모함을 받았다고 하며, 일찍이 초주는 진수에게 재주와 학문으로 명성으로 떨칠 것이니 중도에 실패해도 불행이 아니므로 깊이 삼가야 한다고 했다. 또다시 폐해졌다가 수년 후 태자중서자로 기용되었지만 사양했고 297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후대에 나온 나관중소설 삼국지연의와 구분하기 위해서 진수가 쓴 역사서 삼국지는 흔히 정사 삼국지라고 부른다. 물론 이 후에 삼국시대 관련 각종 민담들이라든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역시 진수가 쓴 정사를 바탕으로 창작한 이야기들.

당연히(?)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 등장한다. 첫 등장인 삼국지5에서는 진식의 아들로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데 자기네들도 말이 안되는걸 아는지 후기작에서는 부자관계는 설정되어있지 않다[1].근데 능력치는 C-D급이고, 등장시기도 247년이라서 비중은 공기에 가깝다.

삼국지 5에서는 첫 등장이라서 그런지 31/88/79/60의 능력치에 고무, 수습, 내분, 혼란, 진화, 점술의 장수들이 능력이 떨어지는 후기라는 걸 감안하면 꽤 준수한 능력치다. 그런데 갈수록 상향평준화되어가는 후기작으로 갈수록 능력치가 너프되어 가기 때문에 위의 언급처럼 능력치가 떨어져 보인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15/22/60/75... 혼란은 있지만 지력이 너무 낮다. 내정용으로나 쓰자.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15/22/60/71/39에 특기는 혼란 단 1개 뿐. 장수별 엔딩 중에 사서 편찬 엔딩이 있는데 이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조건을 달성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통일 당시 남아있는 장수의 67% 이상과 관계가 면식 이상, 특기 지리 소유, 지력+정치 100 이상, 사서 1권 이상 보유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진수는 사서도 안가지고 있고, 지리 특기가 없기 때문에 그냥은 이 엔딩을 볼 수 없고 계략, 첩보 경험을 올려야 하는 아스트랄한 상황이 발생한다(계략경험600, 첩보경험 400이상...). 지리 특기가 보유자가 적긴 한데 활용도가 대단한 특기도 아니고 그냥 특기로 주면 안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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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저자이다보니 삼국지 11에서는 진수를 참수하면 이런 대사가 뜬다.
뭔가 이상해 보이는 건 무시하고 넘어가자
가 새로 쓰고 있으니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결국 삼국지 12에선 삭제되었다. 거기에 PK에서도 끝내 추가되지 않았다. 이보시오 내가 삭제라니! 그럼 누가 삼국지를 기록하지? 스승 초주? 선배 나헌? 아무리 후반기 무장이라고 하지만...

삼국지ds2[2]에서는 지력이 80에 정치가 78인 군사형인 능력치을 가지고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sp무장이라서 얻으려면 조건을 클리어을 해야 한다.

생몰년도상 문제로 보통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이외에는 서브컬처계에서 삼국지를 다룰 때 네임드로 다룰 이유가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21세기 작품으로는 SD건담 삼국전에서 진수 자쿠가 등장한 것이 그나마 있는 희귀한 예제 중 하나.

삼국전투기에서는 알다시피 최훈이 고도의 촉까라고 까고 있다. 진짜 진수 본인한테는 억울하다. 삼로 전투 11에서 상조가 죽은 컷 다음 컷에 삼국지 11의 모습으로 등장. 염소수염에 회색 한푸를 입고있으니 삼국지 11의 모습이 맞다. 그리고 왕쌍이 고자가 될 그 전의 컷이다.

1.1. 진수는 진식의 아들이다?

230년에 제갈량에게 처형당한 의 장수인 진식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진식이 죽었다는 해인 230년에는 촉군이 전쟁을 하지 않았으며 진식에 대한 기록과 진서 진수전의 기록이 어긋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연의의 명나라 판본에는 진수가 진식의 아들이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이것이 사실인 양 퍼졌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이다. 다만 부친이 가정전투에서 패배해 참수당한 마속의 부하였기 때문에 곤(髡, 머리를 깎이는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진서 진수전에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다. 제갈첨과 사이가 나빴다는 설도 있었는데 이런 설들이 생긴 이유는 진수가 기록한 기록에서 제갈량과 제갈첨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훈나관중과 비교하면서 고도의 촉까라는 평을 내렸다. 하지만 진수가 속한 시대 상황을 전혀 생각치 않은 근시안적인 평가이며,[3] 진수가 삼국지를 썼을때 그가 진의 관리였고 위를 정통으로 썼는데도 촉을 그 정도로 써줬다는 것을 생각하면 촉까라는 말은 절대 못한다.[4]
그러나 배송지가 단 주에 따르면 진수가 제갈첨에게 치욕을 받아서 제갈첨에 대해 안좋게 썼다는 의혹이 있었음이 언급되고 있다. 또한 진수는 초주의 제자였는데, 초주는 점성술의 일종인 도참설의 신봉자로 진수 역시 도참설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초주 항목에도 언급되지만 진수의 기록을 약간 과장하자면 초주는 "울 황제님 이름이 재수가 없어 나라가 망하게 생겼네요. 망하는 건 운명이니 쓸데없이 저항하지 말죠."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를 공개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았겠지만, 진수를 비롯한 초주 계열의 인물들이 제갈량 계열의 인물들과 대체로 대립각을 세웠으며 중용되지도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초주가 얼굴때문에 제갈량에게 치욕을 당한 것은 덤이다. 진식은 아니지만 어쨌든 선대로부터 이어진 원한.

2. 서진의 인물

秦秀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인물. 자는 현량(玄良). 진랑의 아들.

신흥 사람으로 진나라에서 박사를 지내면서 278년에 하증이 죽자 그에 대해 논의하면서 오만하고 사치해 천하에 이름이 있었지만 만약 시호를 주는 규정을 엄격하게 따른다면 명성과 실제가 부합되지 않으며, 품행이 방탕한 것을 추(醜)라 하므로 그에게는 추무공(醜繆公)이라는 시호를 줘야 한다고 혹평했다.

280년에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할 때 왕혼왕준을 모함하자 표문을 올려 왕준의 억울함을 올렸으며, 282년에 가충이 죽으면서 그의 시호에 대해 논의할 때 가충은 예법을 위반하고 개인적인 정에 빠져 윤리를 어지럽혔다고 했다. 또한 거나라와 증나라에 대한 관한 일[5]을 얘기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제 사를 단절시켜 조정에 혼란이 일어났다면서 가충은 기강과 절도를 혼란시켰기 때문에 시호를 황공(荒公)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무시되었다.

283년에 사마염사마유를 봉국으로 보내면서 태상에게 명령을 내려 사마유를 높여주는 데 하사할 물건을 의논하게 하자 박사 유부, 태숙광, 유돈, 무울, 곽이, 부진 등과 함께 사마유를 봉국으로 보내는 것을 반대하는 표문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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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대신 삼국지 11에선 같은 집안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 [2] 삼국지 4를 닌텐도 게임으로 리메이크한 게임
  • [3] 애초에 촉빠위빠니 하는 한참 후대의 개념을 진수에게 적용하는 게 언어도단이다. 공자가 이기이원론을 지지하는지 일원론을 지지하는지 논쟁하는 것과 같다.
  • [4] 그리고 호칭들은 위나라 전통으로 쓰지만 조조를 무제(武帝)로, 조비를 문제(文帝), 조예를 명제 등으로 호칭했고 촉한은 유비, 유선을 각각 선주(先主), 후주(後主)로 불렀다. 그러나 얄짤없이 오나라는 모두 그냥 이름으로 불렸다. 이렇게 위나라가 정통이지만 촉나라는 오나라보다 더 권위있게 표현했다. 조조가 위왕에 오를 때는 깔끔하게 위왕이 되었다고만 썼지만 유비가 한중왕이 될때는 온갖 조표에 문서를 들어 좀 더 비중있게 표현한다. 즉 이말은 그렇다고 촉까는 아니다. 애초에 촉나라 사람이니...그러나 정작 오나라는 호칭이 없고 이름만 나오니 촉까는 100% 아니지만 고도의 오까아닌가?
  • [5] 거국에서 후계자를 취했다가 거국의 딸이 증국의 부인이 되면서 그 출신을 세웠다가 거국이 증국을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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