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차드

last modified: 2015-04-10 13:21:54 by Contributors

혹시 만화 블리치의 등장인물을 찾아왔다면 사도 야스토라 항목으로...



경고 : 이곳은 철수권고 국가·지역입니다. 이 문서는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여행경보 3단계인 철수권고 또는 특별여행경보 1단계인 특별여행주의보로 지정한 국가 또는 지역에 대하여 기술합니다. 현지에 체류하시는 분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시일 내에 최대한 신속히 귀국해야 합니다. 여행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방문해야 합니다. 또한 자국민들의 탈출 시도도 빈번하게 발생하기에 되도록 방문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행경보 단계는 현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설령 여행경보제도가 적용되지 않은 국가라 할지라도 완전한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해외 여행 시에는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서 해당국에 대한 정보를 반드시 숙지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위 권고사항을 따르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피해나 문제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ɔ) United State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from


(ɔ) Cwolfsheep from


(ɔ) SKopp & others (see upload log) from


République du Tchad[1] (프랑스어)
Republic of Chad (영어)
جمهورية تشاد (아랍어)

면적 1,284,000km²
인구 1032만 9208명(2009)
수도 자메나
민족구성 사라족(27%)이나 마요-케비족(11%) 등 흑인, 아랍인(12%)
종교 이슬람 54%, 기독교 37%
국가수반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 대통령(1990년 말 부터)
1인당 GDP 명목 891$, PPP 1,865$(2011)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자연
4. 경제
5. 언어
6. 문화
7. 외교 관계
8. 국기
9. 기타

1. 개요

아프리카 북부 중앙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수도는 은자메나(N'Djamena).

국토면적 1,284,000㎢(한반도의 약 6.5배), 인구는 2009년 기준으로 10,329,208명. 거의 반세기에 달하는 오랜 내전으로 소말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수단, 남수단 등과 함께 아프리카 최강의 막장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아프리카의 심장쯤에 해당한 위치에 있는 차드를 빗대서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고 할 정도.

2. 역사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사하라 사막 교역로에 위치해 있었다. 차드 호수 주변의 왕국으로선 700년경 카넴 제국이 처음으로 들어섰으며, 이후 14세기의 보르누 제국 등이 차드에 나타났다. 이 외에도 와다이 왕국 등의 몇몇 왕국이 존재했다. 그러다가 수단의 노예상이자 군벌 라비흐 앗 주바이르가 19세기 말 차드 호 주변에 세력을 구축하기도 했으나, 결국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60년 8월 아프리카의 해에 독립했다.차드의 초대 대통령 프랑수아 톰발바이(François Tombalbaye)는 일당 독재 국가를 구축했다. 그리고 북부의 슬람교도 사이에서 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반정부 운동이 일어났고, 1966년 차드 북부의 반정부 단체인 차드 민족 해방 전선(FROLINAT)이 세워짐으로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1975년 군사 쿠데타로 톰발바이가 축출되어 피살당하고 군사정권이 세워졌으나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나고 대통령 암살 사건이 있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1979년 혼란의 끝에 군사정권 지도자였던 펠릭스 말룸(Félix Malloum)이 망명하고 선거가 치뤄졌다. 이에 따라 1979년 8월 FROLINAT의 구쿠니 우에데이(Goukouni Oueddei)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80년 3월 FROLINAT 안에서 우에데이''와 히센 하브레(Hissène Habré)''' 사이의 내분이 일어나 다시 내전이 재발했다. 1980년 우에데이를 지원하던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군대를 보내고 1981년 차드의 합병을 선언했다가 프리카통일기구의 비난으로 철수했고 1982년 아브레가 다시 수도를 점거하고 대통령이 된다. 그런데 이제는...

1983년 리비아가 침공해 토요타 전쟁이 일어난다. 1984년에 이르면 우에데이 파도 분열되어 내전이 더 심해졌고, 마침내...

1986년 정부군은 미국의 지원으로 리비아군 주둔지와 우에데이 파 거점을 점령했다. 1986년 리비아가 지원하던 우마르 파가 패망하고 1987년 정부군은 차드 전체를 통일한 것 같았으나...

1990년 하브레의 군사고문이었던 이드리스 데비 차드 현 대통령이 리비아의 지원으로 다시 애국구원운동당을 만들어 게릴라전을 통해 다시 수도를 점령하고 권력을 잡았다.그리고1998년 남부 반군과의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 내전이 끝나는 듯 했으나...

1999년 다시 반군이 새롭게 일어났다(...).

내전은 현재진행형으로 2008년에는 반군 공세가 강화되면서 은자메나가 장악되어 대통령이 대통령궁에 고립되기도 하였으며, 반군은 쫓겨났지만 2009년에도 동부 지역에서 교전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들 반군은 상당수가 수단에서 지원하거나 수단에 근거지를 둔 이유로 차드가 수단 몇몇 지역의 반군 거점을 폭격하는 등의 행동을 해 수단과의 외교 마찰도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막장 상황에서 차드 반군과 정부군(!)이 소년병을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2015년에는 보코 하람과 싸우기 위해서 나이지리아에 파병을 보냈다. 내전으로 쌓은 경험치 때문인지 보코 하람을 압도적인 사상비로 격파하는 미친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

3. 자연

차드라는 국명도 호수 이름에서 따왔을 만큼 이 나라와 나이지리아, 니제르, 카메룬의 국경사이에 규모가 큰 차드 호가 있다. 차드 호는 아랍의 사하라 사막 무역로가 지나가는 곳으로서 고대부터 그 주변이 크게 번성했을 정도. 그러나 무리한 관개농업과 사막화로 인해 현재는 아랄해와 함께 거의 다 말라 버렸다.
aral-lake-chad-comparisons.png
[PNG image (347.53 KB)]

26,000km²짜리 호수가 1,350km²로 쪼그라들었다.

4. 경제

석유 자원 및 우라늄을 비롯한 광물 자원이 많기에 미국이나 유럽 강대국들과 이웃 리비아내전을 배후 지원하면서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려왔었다. 막대한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수익을 극소수와 강대국들이 가져먹기에 가난에 시달리며 사막화로 그나마 농업생활도 어려움에 빠지고 있는데다가 2008년 수단과 무력 충돌로 국교 단교를 했으며, 나아가 남수단 내 난민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더더욱 가난에 시달리면서 몇 해전 세계적인 논란이 된 개밥 지원 문제로 국제 뉴스로 언급될 정도로 식량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 사건은 뉴질랜드의 개밥 사료 업체가 "개밥이라도 그냥 줄테니까 먹을래?" 라면서 지원한다고 밝혔다가 세계적으로 아주 사람을 개로 본다면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고 그 업체 홈페이지는 비난 및 해킹으로 엉망이 되었으며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그 업체 정문 앞에서 계속 시위를 벌이며 비난했기에 결국 없던 일이 됐던 것인데, 정작 차드 여론은 먹을 게 하나도 없어서 그거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이런 분위기였다고...

5. 언어

인구 절반 이상이 이슬람신도라서, 아랍어가 상당히 많이 쓰인다. 프랑스에게서 독립하여 프랑스어도 아랍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있다. 또한 백 개가 넘는 부족 언어가 사용된다.

6. 문화

7. 외교 관계

프랑스에서 프랑스어가 많이 쓰이는 점을 들먹이며 여러가지 지원에 나서면서 친프랑스 국가로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이 와중에 벌어진 여러가지 일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일부 프랑스인들이 기독교 선교 및 차드 고아들을 기독교화한다는 명분으로 무작정 입양 시도를 했는데 아이들이 친척들이 있음에도 묻지도 않고, 표면적으로는 입양이라고 주장하면서 남자아이 81명과 여자아이 22명을 사실상 납치했다가, 차드 공항 및 국경에서 죄다 걸려 수감되었고 이들은 프랑스로 돌아가서도 수감되었지만 오래지나지않아 곧 나왔다. 이로 인해 반프랑스 분위기가 거세져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차드 대통령에게 사과전화를 할 정도였다. 물론 자원 개발이라든지 영향력 확대라는 점 때문에 물러선 것이지만. 그 책임자인 프랑스인을 오래가지 않아 풀어주는 바람에 차드에서 반프랑스 감정이 심해졌다. 웃기는 건 아이들을 납치하던 주제에 그 프랑스인은 차드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이나 하고 있다는 것. 물론 차드 측은 입국금지시켰고 프랑스 측도 차드 출국을 금지했다. 차드 외교부장관이 차드인이 프랑스 아이들을 103명이나 납치하였다면 너희들이 과연 이럴까? 라며 깠다고...

투아레그족과 갈등이 심각하다. 차드에 거주하는 흑인계 앙헬 족은 과거 투아레그족의 노예가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두 부족의 갈등이 장난아니라서 차드 공화국이 세워지자, 투아레그족을 강제추방하는 보복을 했고 투아레그족도 차드 정부를 인정하지않고 내전을 벌였다. 이 와중에 리비아, 정확히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투아레그족을 지원하는 바람에 차드는 심각한 피해를 입어야 했으며 지금도 우라늄 및 여러 자원 개발 문제를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웃 나라인 수단, 이집트와도 영토 분쟁으로 국경에서 총격전을 벌이며 갈등이 크다. 리비아와는 결국 토요타 전쟁이란 전쟁을 치뤘고, 압승을 거두었다.[2]

8. 국기

루마니아와 국기가 같아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양국은 국기의 색[3]부터 시작해서 배열과 비까지 동일했고, 국기 정중앙의 문장이 있냐없냐로 구분을 했는데 루마니아 공산정권이 붕괴된 이후 루마니아가 국기에서 문장을 삭제했기 때문에 구분이 불가능해진 것.

9. 기타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범아프리카 연맹' 소속국으로, 달 세계가 독립하자 달 세계의 독립를 가장 먼저 승인했다.

----
  • [1] 'Chad'라 쓰면 '샤드'가 된다.
  • [2] 소련제 기갑장비로 중무장한 리비아 기갑부대를 차드군이 테크니컬 병력으로 개발살낸 괴랄스런 전쟁. 당시 리비아군은 사망자가 9000~10000명에 1000여대에 달하는 전차,장갑차가 파괴된 것에 비해 차드군은 1000여명 정도가 사망한게 전부(...) 하지만 나중에 투아레그 족도 테크니컬을 사용해 반대로 차드군을 뭉개면서 차드군 2개 연대가 전멸당하는 대패를 당하였으니 돌고 도는 모양.
  • [3] 다만 자세히 따지면 차드 쪽이 조금 더 어둡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0 13:21:54
Processing time 0.1896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