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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맨슨

last modified: 2015-04-10 13:57:34 by Contributors

젊은 시절

Charles Manson
날 경멸의 눈길로 보면 바보로 보일 거고
경배의 눈길로 보면 으로
그리고 똑바로 쳐다보면 너 자신이 보일거야

Contents

1. 소개
2. 맨슨 패밀리
2.1.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
3. 기타

1. 소개

미국의 연쇄살인범. 20세기 최악의 살인마 중 하나 히피 문화를 몰락시키는데 일조한 사회악. 사진을 잘 보면 미간에 하켄크로이츠 문신도 했는데 재판이나 옥중에서 극우로 전향한 듯 하다. 원래는 그냥 X자를 새겼다고 한다.

1934년 11월 12일 오하이오 신시내티 출생으로, 어릴 때 이름은 찰스 마일즈 매독스이다. 나중에 아버지인 윌리엄 맨슨의 이름을 따라 개명하게 된다.

맨슨은 어린 시절부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위탁 가정에 맡기려 하다가 실패한 뒤 가톨릭도원에 맡겨졌으나, 얼마 안돼 탈출하여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다가 소년원에 수감되게 된다. 결국은 어떠한 위탁 가정에서도 그를 맡으려고 하지 않아 어머니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후 길거리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이후로도 강도, 강간 등 여러 가지 강력범죄를 일으키며 맨슨 패밀리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 17년을 연방교도소에서 썩게 된다. 원래부터 비틀즈의 광팬이던 그는 교도소 시절 기타를 배워 상당한 수준까지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교도소 내에서 다른 동료들의 성적 노리개 취급을 받아 성적으로 학대당했으며, 이후 맨슨 역시도 다른 재소자들을 성적으로 학대한다.[1]

이후 17살 연상의 신부와 결혼하게 되지만, 그 이후로도 자동차 절도를 저질러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고, 당시 임신 중이던 신부 로절리 진 윌리스는 트럭 운전사와 도망가서 그 곳에서 아들을 낳는다. 이후 아들은 38세의 나이로 자살한다.

그후 출소한 맨슨은 당시 널리 퍼져있던 히피문화를 추종하는 패거리와 어울리게 되고, 강한 카리스마로 그들을 휘어잡게 되어 이후 미국 전역을 경악에 빠뜨린 맨슨 패밀리를 만들게 된다.

2. 맨슨 패밀리

찰스 맨슨은 히피 문화의 화두였던 '사랑'을 적절히 이용하여 자신을 신격화했으며, 머리카락수염을 길러 자기 자신을 예수처럼 보이게 했다. 당시 맨슨 패밀리는 마약인 LSD를 상시 복용하며 난교파티를 했는데, 맨슨은 그들에게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남녀 가릴 것 없이 맨슨과의 성관계를 원했다고 한다.

이후 맨슨 패밀리는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살게 되는데, 이 때 거처를 제공받는 대가로 맨슨 패밀리 안의 여자들을 성적 상대로 제공했다고 한다. 맨슨은 비틀즈와 같은 음악가가 되고자 음반도 내보고 했으나, 별 신통한 반응은 없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비치 보이즈 멤버들하고 안면을 트기도. 물론 비치 보이즈 멤버들은 그들이 엄청난 막장인줄 몰랐다고 한다. 데모 테이프 주고 받고 데뷔 기획하다가 엎어진게 관계의 전부라는게 정설.

2.1.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

맨슨 패밀리가 저지른 범죄는 수없이 많아서 언급조차 힘들 정도지만 가장 유명한 사건은 역시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으로, 그가 좋아하던 비틀즈의 유명한 곡 '헬터 스켈터'의 날이 왔다는 이름 아래, 자신을 열렬히 추종하는 맨슨 패밀리[2]와 함께 환각제인 LSD에 취한 채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처들어가 그의 임신 8개월이던 부인 샤론 테이트와 시중드는 10대 소년인 스티븐 패런트, 그리고 상속녀 아비게일 폴더와 그녀의 애인인 영화 제작자 프라이코스키, 헤어 디자이너 제이 세브링 등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이다.

스티븐은 권총 4방과 칼질 1방으로 즉사시켰다. 돈을 줄 테니 살려달라는 제이는 1번의 총탄과 칼 7번의 난도질을 당함과 동시에 샤론과 함께 시체가 거실에 목매달렸으며, 아비게일은 28차례의 칼 난도질, 프라이코스키는 2번의 총탄과 13번의 칼질을 머리에 맞고 51차례의 칼질을 몸에 당해 즉사했다.

마지막 피해자였던 샤론 테이트가 "뱃속의 아기라도 살려달라."고 빌었을 때에 그의 열렬한 추종자인 앳킨스는 "넌 살아봐야 소용 없어. 죽어서 더 쓸모가 있을 거야."라면서 16번의 칼질로 잔혹하게 살해한다.

더 황당한 것은, 그들은 그들이 죽인 사람들이 유명인인 줄도 모르고 찰스 맨슨의 지시로 보복 살인만을 위하여 들어간 것이었고, 나중에 조사 과정에서 유명인을 죽였다는 것을 알게되자 더 주목받을 수 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원래 폴란스키가 범행의 대상이 아니라 그 집의 전주인이었던 음반 제작자가 맨슨의 데모 테이프를 듣고 혹평했다는 이유로 살인의 대상이었는데 이들은 그 사람이 다른 곳으로 이사간 사실을 모르고 습격했다는 것. 이사를 잘못 와서 풍비박산 났다.

결국 이 사건을 포함 여러 차례의 연쇄 살인으로 체포되었고 수전 앳킨스, 패트리샤 크렌빈켈, 찰리 왓슨 등과 더불어 사형이 확정되었으나[3] 1972년 사형이 전격 폐지되면서 무기징역으로 형이 감형되어 현재까지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물론 사회 영구 격리가 필요한 흉악범을 생명만 살려준 것이므로 최근 2012년 78세의 나이로 신청한 가석방도 실패했고, 다음 가석방 심사는 2027년 93세가 되는 해에 열릴 예정이라 사실상 교도소에서 인생을 마칠 것으로 확실시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찰스 맨슨 본인도 수십년째 가석방이 거부되는 중인 패트리샤 크렌빈켈과 찰리 왓슨의 현실로 보건대 주동자인 자신이 살아서 사회로 나가지는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가석방 신청은 하되 심사위에 출석조차 않는 등 비협조로 일관하며 휴대폰을 소지하다가 적발당하기도 하는 등 그나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의 기미를 보이는 추종자들과는 달리 교화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나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분명히 인식하고 반성하며 교정당국의 교화 프로그램에도 참여중인 찰리 왓슨, 패트리샤 크렌빈켈과 달리 맨슨은 아직도 교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석방을 거절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며, 현재는 팬들에게 지원을 받아 교도소 내에서 음반 작업을 하고 책도 출판하는 등 외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4]

이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집은 나중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리더인 트렌트 레즈너가 사들여 튜디오로 이용하기도 한다. 마릴린 맨슨도 이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레즈너가 앨범작업중 흉흉한 경험을 겪고난 뒤 집을 철거했기 때문에 지금 이 저택은 없어졌다.


기자 :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
찰리 맨슨 : 아무도 아냐. 난 그 누구도 아냐. 부랑자, 거지, 떠돌이 일꾼, 박스 카, 와인통. 네가 나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온다면 날카로운 면도칼이 될 수도 있지. [5]

3. 기타

  • 마릴린 맨슨의 이름은 이 사람에게서 따온 것이다.

  • 어떤 이는 이들을 롤링 스톤즈알타몬트 공연과 엮어 히피의 몰락의 신호탄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 건즈 앤 로지스는 'The Spaghetti Incident?' 앨범히든 트랙으로 이들의 노래커버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리플을 보면 죄다 악플 일색이다. 액슬 로즈 이 개객기야 신발놈아가 베스트 리플에 올라있다(...). 일단 그동안 녹음했던 음반은 소규모로 풀리긴 했다. 2009년에 'Manson My Name Is Evil'이란 이름의 DVD를, 2010년에 'Air'란 이름의 앨범을 낸 것 같다. 음악적 재능 자체는 상당한 듯 하며, 교도소 내에서 이익이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작업을 하는 걸 보면 나름 이 분야에 자부심이 있는 모양.

  • 2012년까지 13번의 가석방을 신청했으며, [6] 당연하지만 매번 기각되었다. 재판부가 그나마 가석방을 좀 공정하게 심사하기 위해서 맨슨에게 직접 출석을 요청했지만 거절했다고. 부하들도 가석방이 안 되고 있는 판이니 살아서 감옥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듯 싶다.

  • 2012년 9월 5일, 팬들의 지원에 힘입어 곧 앨범이 발매될 것이란 뉴스가 나왔다. 제작비 모금이 진행된 웹사이트에 따르면 27명의 지지자가 미화 4099달러(2015년 기준으로 약 461만원)를 기부했으며, 게다가 1000명 가까운 인원이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찍었다고 한다.



  • 2014년 11월, 무려 감옥속에서 80번째 생일까지 보냈지만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질 않는 것 같다. 위 사진 속의 여자 애프턴 일레인 버튼이라는 26세의 여성과 옥중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 한다. 버튼은 맨슨의 열렬한 추종자였으며 오직 그를 위해 살던 주까지 옮겨가면서 통화와 면회등의 옥바라지를 하였다고 한다. 이번 결혼의 목적이 단지 애정을 넘어서 맨슨의 결백을 입증할만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라고(...)[7] 캘리포니아주(州) 킹스카운티가 지난 7일 맨슨과 예비 신부 애프턴 일레인 버튼의 결혼허가증을 발급했으며, 90일 이내에 이들이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당연히도 당시 피해자인 샤론 테이트의 여동생 데브라 테이트는 이 소식을 듣고 '말도 안된다'라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사실 흉악범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껴 구애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일은 딱히 엄청 특이하거나 한 현상은 아니며hybristophilia라는 이런 현상을 정신적 증후군으로 정의내리는 용어도 있을 정도로 꽤 오래 전부터 알려진 현상인데, 실제 버튼의 목적은 그런 정신나간 행동이 아닌 돈벌이를 할 계획이었는데, 맨슨의 수명을 감안하면 길어도 5~10년 내에는 교도소에서 병사하게 되면 배우자인 버튼에게 넘어올 텐데 그 시신을 방부처리한 뒤 전시해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꾸몄던 것.[8] 그러나 젊은 여성이 맨슨과 굳이 결혼까지 하는 이유를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의 조사로 결국 들통났고, 이를 알게 된 맨슨은 파혼은 물론 자신이 "불사신"이라며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http://m.sports.khan.co.kr/view.html?category=5&artid=201502131630113&code=562901 이 사례는 2015년 3월 20일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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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어찌보면 이 시기부터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듯이 연쇄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조건을 쌓아가고 있던 셈. 이런 자들에 대한 관리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결국 미국 교도소 측은 그를 교화시키는 데 실패했고 이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 [2] 정확히는 4명으로 찰리 왓슨, 수전 앳킨스, 패트리샤 크렌빈켈, 린다 카사비앙이다.
  • [3] 린다 카사비앙의 경우는 증언을 조건으로 기소가 면제되었다.
  • [4] 참고로 교도소 재소자가 책을 쓰거나 음반을 만든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범죄와 관련된 서적을 출판했다면 그 수익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돌아가는 식으로 실질적인 이익은 보지 못하게 막을 뿐인데 어차피 교도소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이 큰 의미가 없으니 이런 데 크게 신경쓰진 않는 듯 하다.
  • [5] 아예 아무도 아니라고 말한 건 아니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는 식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을 수도 있다.
  • [6] 맨슨이 사형 선고를 받을 당시 미국의 형벌 제도는 지나친 장기형이 드물고 사형과 수십 년 정도를 복역한 뒤 가석방이 가능한 일반적인 무기징역. 그리고 다소 긴 유기징역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수백년, 수천년 등의 장기형이 일반화된 것은 1970년대 이후 엄벌주의 여론에 의한 것이다.
  • [7] 결혼으로 가족관계를 맺은 후 가족만이 열람할 수 있는 자료를 분석하여 무죄를 입증할 생각이다.
  • [8] 실제로 비슷한 선례가 있는데, 물론 살인범이라는 걸 알고 행한 것은 아니고 인형이라고 생각했던 거라 이번 건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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