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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

last modified: 2015-02-23 00:03:34 by Contributors

占婆, 占城

서기 192년부터 1832년까지 지금의 베트남 중, 남부 지역에 존재했던 참족의 나라.

지역내 강자인 미얀마, 태국, 베트남이 대두되기 전부터 지역의 강자였다. 현 캄보디아의 전신인 크메르제국의 전성기 시절에도 일진일퇴를 주고 받던 국가이다. 앙코르와트에 부조된 갑옷입은 적들이 바로 이들이다.

참파는 베트남인들과는 다른 민족인 말레이계 참인들의 나라였다. 이 말레이인들은 2세기 초반부터 후한령 베트남 남부로 쳐들어와 한나라 관리들을 죽이곤 했다. 그러다가 192년에 구련이 한나라령 베트남 남단에 '임읍(林邑)'이라는 이름으로 건국했다. 초창기에는 중국 문화권에 속했지만 캄보디아로부터 불교, 힌두교, 인도 문화를 도입하면서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 처럼 인도문화권이 되었다.[1]

베트남과는 인종적, 문화적[2]으로 매우 달랐기 때문에 북부에 자리잡은 베트남과 대립하였으며, 자주 전쟁을 벌였다. 일시적으로 베트남을 몰아붙이던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밀렸으며, 몽골의 쿠빌라이칸 시절에 베트남은 그들의 침공을 격퇴시켰으나 참파는 패배하였다.

하지만 잘나갈때는 옆에 있는 캄보디아를 수시로 털었으며 중국 해남도 일대까지 원정 나가기도 했다.

참파의 마지막 부흥기는 봉 응아(制蓬峨 : 제봉아)가 참파의 국왕으로 있었던 때였다. 그는 1360년 즉위하자마자 베트남에 사절을 파견하여 베트남이 빼앗아간 옛 영토의 반환을 요구했고, 1361~1390년에 걸쳐서 30여년동안 끊임없이 당시 베트남의 쩐 왕조를 공격하여 베트남을 크게 몰아붙였다. 특히 1371년에는 당시 왕도였던 탕 롱 성(지금의 하노이에 위치함)을 불태워버리는등 엄청난 패기를 발산한다. 1377년에는 당시 친정에 나서 참파를 공격하였던 쩐 왕조의 황제 주에 똥(睿宗 : 예종)을 전사시킨 뒤 또다시 탕 롱을 털었고, 그 이듬해에도 또 탕 롱을 털었다. 쩨 봉 응아의 재위기간 중 베트남의 수도 탕 롱은 세 번에 걸쳐 약탈당했고, 현재의 베트남 중부지역까지 내려왔던 베트남의 영토는 베트남이 중국의 지배에서 갓 벗어났을 무렵 정도까지 북쪽으로 밀려나 수축될 정도였으니 쩨 봉 응아는 그야말로 참파 왕국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쩨 봉 응아의 활약은 쩐 왕조의 위신을 크게 실추시켰고, 외척인 호 꾸이리가 대두하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참파의 부흥뿐만 아니라 베트남 내부까지 뒤흔들어버린 일대 사건이었다.[3] 그러나 1390년 베트남과의 전투에서 그가 전사한 뒤, 카리스마적인 인물을 잃어버린 참파의 기세는 급속도로 수그러들게 된다.

참파는 그 후 몇 세기에 걸쳐서 서서히 남쪽으로 밀려났다. 18세기 후반에 완전히 밀려 버리면서 그 이후로는 베트남 치하의 종속국으로 형식상으로만 유지되었다. 베트남은 내제외왕 체계였는데 내부적으로 황제를 자칭하려면 지배하는 번국(藩國)이 필요했기 때문. 베트남의 황제들은 소수민족을 형식상 나라로 인정하고 황제 노릇을 했다. 아무튼 1832년에 대충 망해버리고 완전히 소멸.

그 후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도움으로 독립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지금은 베트남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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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5세기부터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였고 현재 참인들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 [2] 베트남은 한자를 사용하고 유교를 받아들이는등 화교가 주민의 대부분인 싱가폴을 제외하면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중국 문화권에 속한다.
  • [3] 이 때문에 베트남의 설화에는 그를 아주 악독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록 베트남 중심주의적인 묘사이나 그만큼 그의 활동이 베트남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반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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