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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LG 세이커스

last modified: 2015-04-15 09:41:14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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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커스맨
창원 LG 세이커스
Changwon LG Sakers
창단년도 1997년
구단명 변천 경남 LG 세이커스 (1997년 ~ 1998년)
창원 LG 세이커스 (1998년 ~ 현재)
연고지 경상남도 창원시 (1997년 ~ 현재)
모기업 LG전자 (LG Electronics)
구단주 구본준
단장 김완태
감독 김진
홈구장 창원실내체육관 (수용인원 : 6,000명)
2군 구장 이천 LG 챔피언스 파크
홈페이지

LG스포츠
LG 트윈스
(야구)
창원 LG 세이커스
(농구)

KBL 정규리그 우승 팀
2012-2013 2013-2014 2014-2015
서울 SK 나이츠 창원 LG 세이커스 울산 모비스 피버스

Contents

1. 소개
2. 역사
2.1. 이충희-김태환의 시대
2.2. 흑역사 박종천신선우, 강을준의 만년 6강팀 시기
2.3. 김진 시대
3. 팀 관련 사항
4. 선수단
5. 기타

1. 소개

KBL의 프로농구단. LG그룹 산하 스포츠 법인인 LG스포츠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연고지는 경상남도 창원시.

2. 역사

2.1. 이충희-김태환의 시대

창단 감독은 이충희. 고려대 선수들을 주축으로 창단했으며 1997-98 시즌에 처음으로 리그에 참가했다.

프로스포츠의 순수 신생팀으로는 보기 드물게 창단 첫 시즌부터 최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 창단할 무렵에는 양희승이 팀의 주축이 될 것처럼 보였으나, 양희승은 시즌 시작하자 마자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 아웃. 그러나 양희승의 이탈은 결과적으로 팀에 별로 마이너스가 되지 않았다. 이충희는 외국인 선수 버나드 블런트의 득점력을 극단적으로 활용하면서 하나의 창과 네 개의 방패로 된 수비 농구를 구성, 박재헌과 박규현, 박훈근 같은 고려대에서도 준잉여급에 가깝던 선수들을 발굴해 활용했고, 이게 성공을 거두면서 창단 첫 시즌에 리그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공을 거둔다. 용병 의존도가 높은 KBL의 특성과 KBL이 아직 초창기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엄청난 성과였고, 이는 창원 지역 최초의 프로스포츠 구단이라는 메리트와 합쳐져 창원 LG를 지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초인기구단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다른 팀들이 세이커스의 수비 농구에 적응해가고 주축 선수들의 부상 등으로 다음 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는 진출하지만 리그 순위는 5위. 그 다음 시즌에는 팀 공격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던 버나드 블런트가 팀을 무단이탈하면서 팀 전술 자체가 나락에 빠지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한다. (7위)

그러다 2000-01 시즌을 앞두고 김태환을 감독으로 영입했다. 김태환은 트레이드로 조우현, 조성원을 데려오고, 이정래를 드래프트로 뽑고, 외국인 선수로 에릭 이버츠를 뽑는 등 리빌딩이 아니라 재창단 수준으로 팀을 싹 갈아엎은 후, 이전에도 이후에도 KBL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런앤건과 3점 난사를 팀 색깔로 만들어 버렸다. 조성원의 경이적인 득점력과 함께 팀은 20점을 지고 있어도 언제든지 엎을 수 있고 20점을 이기고 있어도 언제든지 엎어질 수 있는데다가, 팀 평균 득점 100점에 100점을 넣으면 이기고 100점을 못 넣으면 지는 이래저래 놀라운 경기력을 보였고, 팀은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한 후 4강에서 외려 더 강호로 보이던 SK 나이츠까지 격파한 후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삼성 썬더스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주희정과 아티머스 맥클래리를 막지 못해 패배한다.

2001-02 시즌, 시즌 전만 해도 세이커스는 우승 후보 중 하나였다. 앞선 시즌의 주요 멤버가 그대로인 데다가 대학농구를 평정한 선수에 대학 시절부터 김태환의 지도를 받은 송영진이 드래프트 1순위로 합류해 팀에 높이를 더할 것으로 보였고, 드래프트 직후 트레이드로 역시 중앙대 출신인 황진원까지 영입하면서 쏠쏠한 활약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

한데 시즌 초반 팀은 반짝하다가 패배를 거듭한다. 팀에서는 송영진에게 힘 좋은 외국인 선수들과 맞서기 좋게 몸을 불릴 것을 요구했는데, 이게 제대로 된 근육 불리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몸만 불린 꼴이 되면서 송영진의 최고 장점이던 운동능력을 깎아먹고 전체적인 신체 균형까지 무너뜨린 꼴이 되면서 송영진이 영 위력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말았다.[1]거기다 상대 팀들이 조성원의 공격 기술을 집중 연구한 후 수비에 나서면서 조성원 개인능력을 이용한 공격은 앞선 시즌만한 위력을 잃어버렸고, 이렇게 되자 세이커스는 앞선 시즌보다 못한 공격력에 앞선 시즌보다 더한 수비 구멍을 드러내며 나락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시즌 도중 코리아텐더와 외국인 선수 둘을 통채로 포함해서 4대4 트레이드를 하면서 팀 분위기를 바꾸고 군에서 제대한 박규현의 활약으로 수비가 강화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 정규시즌 1위팀인 동양 오리온스와 4강 플레이오프에서 2대2까지 가는데 성공하나 결국 패배하며 시즌을 끝낸다.

2002-03 시즌. 다시 한번 팀은 큰 변화를 겪는다. 하나는 울산 모비스에서 최희암에 의해 잉여물 취급당하던 강동희를 트레이드로 데려온 것. 나이 먹어도 강동희강동희였고, 강동희를 통해 세이커스는 이전보다 확연히 좋아진 볼 흐름을 가지게 된다. 또 하나는 외국인 선수로 앞선 시즌의 우승팀인 오리온스에서 최고의 리바운드 능력을 보여준 페리맨의 영입. 오리온스는 공격력이 떨어지는 페리맨보다 더 좋은 센터를 얻겠다고 페리맨을 포기한 것이었지만, 페리맨의 리바운드는 외곽슛 공격이 많은 세이커스에 천군만마같은 힘을 보태었다. 또 다른 외국인 선수 테런스 블랙, 블랙은 인사이더로서는 단신에다 좋은 공격기술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놀라운 운동능력을 통한 탁월한 속공 가담과 팀 플레이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며 맹활약을 했다. 팀의 변화에 방점을 찍은 것은 조성원을 트레이드하고 김영만을 영입한 일이다. 조성원은 수비를 강화하려는 김태환 감독의 의도에 의해 출장시간이 줄어들면서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김영만 역시 SK 나이츠와 삐걱거리며 팀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는지라 양 팀의 요구가 딱 맞으면서 트레이드가 이루어지게 된다.

결국 이를 통해 세이커스는 강동희-조우현-김영만으로 이어지는 중앙대 출신 라인업에 테런스 블랙과 라이언 페리맨, 거기다 식스맨으로서 활약하는 수비 스페셜리스트 박규현까지 이어지는 주전과 벤치가 고른 선수 구성을 가지게 되고, 이를 통해 정규시즌에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모든 게 좋아보이는 상황에서도 한 가지 커다란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인사이더 역할을 하는 두 외국인 선수의 높이가 낮다는 점이었다. 이는 특히 김주성이 가세한 TG삼보에게 번번히 발목을 잡히고 오리온스에게도 종종 패배하는 원인이 된다. 결국 세이커스는 정규시즌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상대 전적에서 오리온스에 밀리며 1위와 승패 차이 없는 2위를 하게 되면서 플레이오프에서 하필이면 TG삼보와 대결하게 되었고, 다 늙어가는 허재의 불꽃과 김주성의 활약 속에서도 2승 2패로 플레이오프를 진행하다 5차전에서 큰 점수차로 앞서며 챔피언 결정전 진출 직전까지 가지만, 거기서 당시 TG삼보의 외국인 슈터 데이비드 잭슨이 KBL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찾기 힘들 정도의 미친 듯한 슛들을 선보이면서 패배,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만다.

2003~2004시즌은 빅터 토마스와 배길태의 맹활약으로 2~3위권을 지켰지만, 막판 11경기에서 1승 10패를 기록하면서 어이없게 6위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오리온스를 6강에서 꺾고 4강에 올랐지만 KCC에 간단하게 스윕당했다. 2003~2004시즌 이후 강동희가 은퇴했다.

2.2. 흑역사 박종천신선우, 강을준의 만년 6강팀 시기

2003-04 시즌을 마치고 김태환 감독이 석연찮은 이유로 재계약에 실패하고 코치였던 박종천이 감독으로 부임한다. 하지만 박종천 체제에서 LG는 2004-05 시즌 초반 16경기에서 8승 8패를 기록하지만 이내 11연패하면서 최하위로 추락했다. 그 이후에도 부진하다가 막판 10경기에서 5승 5패를 하고, 단테 존스 영입 후 15연승을 하던 안양 SBS의 16연승을 저지하면서 개그랜드에 연승에서 앞서 간신히 꼴찌를 면한 9위를 기록했고, 박종천은 당당히 LG의 흑역사 감독으로 등재되면서 사퇴하고 신선우 감독이 부임하게 된다. 신선우 체제에서 첫해인 2005-06 시즌은 제대로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8위로 PO진출에 실패했지만, 2006-07 시즌 여러 꼼수 트레이드를 통해 박지현, 스 민렌드, 조상현, 박규현 등을 대거 영입, 대권을 노리게 된다. 시즌 초반에는 1위를 질주했지만 결국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밀려 2위에 그쳤고, KTF 매직윙스과의 4강 PO에서 용병 비스 파스코의 심판폭행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어이없이 4강에서 물먹고 만다.

이후로는 그저 그런 6강 전문팀 이미지가 굳어가고 있는 상황. 2008-09 시즌 이후 강을준 감독 체제하에서는 3시즌 모두 6강PO 에서 광탈.(정규시즌 성적은 5위-4위-6위, 상대팀은 08-09는 삼성, 09-10/10-11은 동부) 한편, 2009-10 시즌부터 혼혈 드래프트로 영입한 문태영이 대박 쳐주면서 에이스로 활동하고 있다.

2.3. 김진 시대

계약이 만료된 강을준 감독은 재계약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문태영의 마지막 시즌을 대비해 김진 전 오리온스/SK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고 서장훈을 영입하는 등 야심차게 11-12 시즌을 준비했으나, 서장훈은 데뷔 이래 최악의 성적을 찍었고, 서장훈과 더블포스트로 준비했던 루미데 오예데지가 공격력 부재로 퇴출당하는 등 전술이 완전히 꼬이며 망했어요. 결국 시즌 7위를 기록, 4번째로 PO에 진출하지 못하는 시즌을 맞게 되었다.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문태영이 리그 규정상 이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리빌딩이 불가피한 상황. 하지만 당분간은 도 안나오잖아? 안될거야 아마 하지만 2년 뒤 대박 신인이 왔습니다!

2012-13 시즌 KCC와 함께 유력한 2약으로 꼽혔으나, 오프 시즌에 시행한 김현중, 오용준<>김영환, 양우섭의 2:2 트레이드가 대박나면서 시즌 초반 의외로 중위권에서 잘 버텨주고 있다. 하지만 김재박물리법칙을 잊으면 안된다.

그러나 2월에 들어서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하위권으로 처지기 시작했다. SK와 모비스라는 확실한 천적이 존재한 것도 화근이 되었다. 결국 2013년 3월 14일 서울 SK와의 경기를 패(2012-13 시즌 SK전 전패)하고, 15일에 삼성이 KCC를 제압하면서 2시즌 연속 6강 플레이오프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최종 순위는 동부, KT와 공동 7위.

다만, 시즌 중반에 행한 로드 벤슨 트레이드의 상대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맹활약한 김시래로 드러나면서 아주 망한 트레이드는 아니라는 평. 그리고 9월 30일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13년만에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며 김종규를 지명했다. 김종규는 11월 1일에 팀에 합류했다.

2013-14 시즌의 LG는 그야말로 신바람농구를 펼쳤다. 김시래박래훈, 양우섭등의 앞선을 내세워 뛰어난 속공 플레이에 오버페이라 평가받던 문태종이 그야말로 나이를 잊은 맹활약을 보였다. 거기다 김종규의 합류로 안정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졌고 새롭게 선발한 외국인 선수 데이본 제퍼슨과 크리스 매시, 그리고 지난 시즌 주전이었으나 올 시즌 벤치멤버로 출전하는 기승호김영환 등 뎁스도 두꺼워져 작년과는 다른팀으로 변모했다. 젊은 선수들의 경험 부족이 우려되었으나 울산 모비스에 승률과 상대전적에서 동률을 이뤄 상대 득실점차로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그리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KT 소닉붐을 3전전승으로 압살하며 13년만의 챔피언 결정전 진출도 이루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게 2승 4패로 패했다. 3차전까지 2승 1패로 앞섰지만 내리 3연패, 그 중에서 5차전과 6차전은 접전이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시즌이 끝나고 문태종이 MVP, 김종규가 신인왕을 수상하였다.

이후 FA 시장에서는 올해 팀의 주전 스몰포워드로 MVP까지 수상한 문태종을 다시 1년 6억 6천만원에 계약을 맺었고, 2012/13시즌에 에이스로 활약했던 포워드 김영환을 FA로 보수총액 3억 5천만원, 5년 계약으로 계약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송창무와는 계약하지 않았고, 그 자리를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서 전역한 빅맨인 종현을 조건 없이 트레이드로 이적시키며 메웠다.

이후 2014-15 시즌을 앞두고 나름 신인때 유망주였던 형철이 돌아오고, 전력 누수도 외국인 선수로 맹활약한 데이본 제퍼슨과 준수했던 크리스 매시와 재계약했고, 군문제를 해결하러 간 상열, 박래훈김종규의 백업격이었으나 얼마 출장하지 않은 송창무를 제외하고는 큰 전력이탈이 없어서 올해도 우승권을 노려볼 수 있다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시즌 시작전 부상으로 기승호가 3개월정도 개점휴업 상태로 지내게 되었고, 시즌이 시작되니 개막전에서 작년 챔피언 결정전에서 붙은 울산 모비스 피버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승리하며 기분좋은 개막전 승리를 따냈으나, 데이본 제퍼슨의 작년만 못한 몸상태로 인한 부진과 김시래의 부상과 부진, 문태종의 컨디션 난조, 가드들의 부진으로 10월 26일 기준 8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 시기에 박형철은 SK 나이츠로 트레이드되었고, 대신 정성수를 영입했다.

하지만 2015년 들어 1월 27일 울산 모비스, 2월 2일 서울 SK 나이츠 등 상위권 팀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11연승을 기록했다. 원주 동부 프로미에 의해 연승 기록은 깨졌지만 2월 19일 모비스전에서 승리하며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KCC를 잡고 오리온스는 SK에게 패배하면서 LG는 4위로 정규리그를 마감하였다. 같은 계열사 소속 야구팀역대급 UTU를 농구에서도 시전중 6강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 접전 끝에 고양 오리온스를 꺾고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울산 모비스와 맞붙게 되었다. 그러나 6강 플레이오프부터 데이본 제퍼슨이 문제를 일으키는 행동을 일삼기 시작하면서 불안감을 불러왔고, 4강 1차전에서 국민의례를 할 때 몸푸는 동작이 중계화면에 잡히면서 비난을 받자 다음날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한다고 말했으나 회견을 전후해 SNS에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법규를 날린 사진을 올리며 여론이 더 악화되었다. 결국 2차전 직전에 퇴출이 결정되었다. LG는 모비스와의 4강 PO에서 2승 3패로 탈락했다.

3. 팀 관련 사항

창단 이후 모기업과 연고지가 한번도 바뀌지 않은 하지만 원년 참가팀이 아닌 유일한 KBL 구단으로, 연고지 창원은 관중이 가장 많이 오는 곳 중 하나이다. 관중동원에 있어 1997-98 시즌 이후 7시즌 연속으로 관중입장 1위를 하였고, 2005-06 시즌에는 첫 100만관중 돌파, 2007-08 시즌에는 120만명이라는 관중을 동원했다. 그 뿐만 아니라, 경기장 주변 길거리 농구장부터 창원 의창/성산구 주변의 공원에는 실외농구장을 만들어 생활체육으로도 인기를 모으면서 농구도시의 메카로 칭할 정도로 KBL 최고의 인기구단이다. 실제로 2013년 12월 25일 성탄절 창원 홈경기에서 관중 8,689명을 동원하며 다시 한번 인기 구단임을 증명하고있다.[2]
팀 성적은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정규리그에서는 2위 4회명실상부한 크블 공인 콩라인를 포함해 15시즌동안 PO에 못 나간 시즌이 단 4회밖에 없을 정도로 PO 단골 손님으로 통하고, 이에 따라 정규리그 통산 승률도 KBL 전체에서 최상위권에 들어간다. 문제는 PO 성적이 캐안습을 면치 못한다는것. 창단 첫시즌 정규리그 2위를 해놓고 3위 기아에게 PO에서 패한것을 시작으로 안습의 역사를 반복했다. 그 많은 PO 진출 가운데 챔피언 결정전에 나간 것은 2000-01 시즌 단 1회, 그것도 졌다(...). 2006-07 4강 PO 부산 KT 소닉붐(당시 부산 KTF 매직윙스)전에서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용병 퍼비스 파스코가 심판 폭행 사건을 일으켜 영구제명과 구단퇴출 크리를 먹는 흑역사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팀도 그 길로 광탈(...). 그나마 위안이라면 같은 기업에서 운영하는 야구단에 비해 성적은 잘 나온다는 것.(...)[3] 뭔가 없어보이는데 통산 승률은 상위권인게 천조국이 팀과 같다.

유니폼의 경우 빨강과 검정을 사용하다가 자주빛이 나는 빨강과 검정을 혼합한 유니폼으로 바뀌었다.

응원할때 나오는 음악들이 뭔가 같은 기업에서 운영하는 어느 야구단과 상당히 비슷하다.
"셀리오", "LG 없이는 못살아", "승리의 노래" 등의 응원가를 농구단에서도 쓰는게 특징. 마산아재는 어쩌라고

2010-11 시즌 들어 심판의 오심에 유독 많이 당한 구단. 대표적으로 모비스전 2점차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모비스의 송창용의 2점 버저비터가 3점으로 인정되면서 경기가 그대로 역전패로 끝나버린 예가 있다. 리플레이 결과 대놓고 3점 라인을 밟은것으로 확인됐지만 해당 심판에게만 미미한 징계가 내려졌을뿐 끝내 번복되지 않았다. 동부와의 6강 PO 1차전에서는 김주성의 헐리웃 액션에 심판이 속아넘어가 문태영이 5반칙 퇴장당하기도 했다. 당시 LG 감독인 강을준 감독은 농구판에서 매너 좋기로 유명했는데, 이를 두고 혹자는 KBL판에서 감독이 매너 좋아봤자 심판의 호구가 될 뿐이라고 하기도 했다.[4]

이래저래 창단 이래 신인과는 영 연이 닿지 않는 구단이기도 하다. 창단 시즌부터 2위를 하는 등 창단이래 내내 중상위권에 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신인 드래프트 픽과는 영 인연이 닿지 않은 것도 있고[5], 그나마 상위픽을 얻으면 픽 혹은 픽한 신인을 스타급 선수와의 트레이드에 써버린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창단 이래 입단한 대어급 신인이라면 양희승, 송영진 정도인데, 이들도 정작 LG 시절에는 별 활약이 없었다. 양희승은 맞트레이드한 조성원이 초대박을 터트리면서 어느정도 보상을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신인 복 없던 LG도 오랜 기다림끝에 김종규를 얻었지만 아직은 더 두고 볼 일. 일단은 김종규가 출전하면서 SK, 모비스와 함께 3강 자리에 올라왔고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플레이오프에서 KT를 압살하며 챔피언 결정전에서 울산 모비스 피버스와 붙게 되었지만, 김종규가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데이본 제퍼슨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2승 4패로 패퇴하며 시즌을 마쳤다.

최하위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두 팀 중 하나다.(다른 한 팀은 안양 KGC인삼공사)

4. 선수단

2014-15 시즌 창원 LG 세이커스 선수단
감독 김진
코치 강양택, 정재훈
가드 1.정성수 3.유병훈 6.이승배 7.양우섭 10.정창영 21.최승욱 23.박래윤
포워드 4.문태종 9.김영환 11.이지운 12.주지훈 24.배병준 30.백인선 31.기승호
센터 2.크리스 매시 15.김종규 32.류종현

군입대
김시래, 조상열, 안정환, 박래훈, 이관기

5. 기타

대항해시대 2를 접해본 유저들은 세이커라는 단어에 참 의아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세이커는 사거리도 짧고 위력도 없는데다 무엇보다 1문에 금화 5밖에 안드는 있으나마나한 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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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송영진은 2004-05 시즌이 끝난 뒤 현주엽이 FA로 영입되면서 보상 선수로 KTF로 넘어가는 굴욕을 겪게 된다. 이후 시련을 딛고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지만...
  • [2] 서울잠실실내체육관이나 부산사직체육관등 좌석이 1만명 되는 경기장도 있으나, 창원실내체육관은 좌석이 5천석 최대 6천석인 체육관이다. 정규시즌중 텅텅 빈 체육관이 많은 KBL에서 수용인원 100% 이상 관중을 동원했기에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 [3] 그러나 그 야구팀이 2013년 들어 11년만에 비밀번호를 해제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제 농구단이 겹경사를 기록하기 일보 직전이다.
  • [4] 강을준 감독도 시즌 막판엔 이를 절감했는지 점점 항의가 거칠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 [5] 같이 창단한 SK가 서장훈, 현주엽, 임재현등을 얻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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