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채태인

last modified: 2015-04-11 16:31:25 by Contributors


이때까지만 해도 2011년은 채태인의 해가 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두끝홈의 시초가 된 2013년 6월 7일 홍상삼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친 이후


부산상고 시절 윤성환과 원투펀치를 이뤘다.

삼성 라이온즈 No.17
채태인(蔡泰認)
생년월일 1982년 10월 11일
신체 182cm, 91kg
출신지 부산광역시 서구
학력 대신초-대동중-부산상고
포지션 투수→내야수(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1년 2차지명 10라운드(두산 베어스)
200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보스턴 레드삭스)
2007년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삼성 라이온즈)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2001~2002)[1]
삼성 라이온즈(2007~ )
응원가 등장시: Jessy Matador - 《Bomba》
타격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 -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2]

2007년 한국프로야구 퓨처스리그 올스타전 MVP
2007년 첫 제정 채태인(삼성 라이온즈) 전준우(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4번(2007~2008)
임익준(2007)[3] 채태인(2007~2008)[4] 김건필(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7번(2009~)
전병호(2000~2008) 채태인(2009~) 현역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미국 진출
2.2. 2007~2009 시즌
2.3. 2010 시즌
2.4. 2011 시즌
2.5. 2012 시즌
2.6. 2013 시즌
2.7. 2014 시즌
2.8. 2015 시즌
3. 이야기거리
4. 수비력
5. 기타 이야기
5.1. 응원가와 관련된 트리비아
6. 연도별 성적

1. 개요

삼성 라이온즈의 1루수.이자 모험가[5]. 도박사

원래 입단시에 등번호는 64번이었으나 전병호가 은퇴하자 2009 시즌에는 17번으로 변경했다. 여담이지만 17번은 삼성 마운드의 상징이었는데 그 전에는 원년 멤버인 송진호는 타자를 겸했었고, 부시맨 김성길도 17번을 달고 타석에 들어선 적이 있어서 어색하지 않다.

2. 선수 생활

2.1. 미국 진출

부산상고를 졸업한후 2001년 두산 베어스의 2차 10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보스턴 레드삭스가 계약금 80만 달러의 조건으로 스카웃, 미국으로 진출했다.[6] 당시 포지션은 투수.[7] 하지만 부산상고 시절 입은 어깨로 인해 수술을 받아 재활하게 되어 단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계속되는 재활과 향수병 때문에 결국 보스턴에서 임의탈퇴된 후 귀국하고 2002년 말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후 2005년 보스턴에서 공식적으로 방출되었다. 하지만 야구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아 모교에서 운동을 하다가, 모교를 찾은 김응용 사장의 눈에 띄어[8]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기로 합의했다.[9]

하지만 '1999년 이후 한국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해외로 진출한 선수는 2년간[10] 국내에 복귀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해외파 특별 지명 제도로 구제받은 2007년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뛰지 못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것도 그 때쯤이지만, 그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종두 타격코치가 그의 타격 재능을 읽고 있었던 것. 부산상고 시절 화랑대기 우승 때 타점상을 받은 적이 있었고, 어깨 때문에 투수 기량보다는 타자가 더 낫다고 본 이종두 코치가 그를 타자로 전향시켰다.

2.2. 2007~2009 시즌

2군에서 애초엔 외야수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뜬공을 놓치는 일이 잦아 곧 1루수로 전향했다. 2군에서 중심 타자로 활약하며 시즌 중반 잠시 1군에 올라왔지만 삼진만 당하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반전의 계기가 되었던 것은 2007년에 처음 열린 2군(퓨처스) 올스타전에서 MVP를 받게 된 것. 그 뒤 시즌 후반 1군에 다시 올라와 우규민에게 띵하는 소리와 함께1군 데뷔 첫 홈런을 때렸으며, 조영훈을 밀어내고 삼성의 중심 타선이 되었다. 이후 부상과 맹장 수술로 인해 빠진 적은 있지만 그래도 2008 시즌에는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으며 최형우, 박석민과 함께 삼성 타선에서 세대교체의 한 축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방망이를 본격적으로 잡은 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 전에는 군 복무와 유예기간 공백으로 3년 이상 제대로 된 프로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선수였다는 것. 그럼에도 1루 수비 능력은 이미 리그 최고 수준인데다 타격도 준수했다.[11] 그래서 채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2008년 시즌 종료 후 도박 사건으로 인해 5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고 2009년 4월 10일 KIA전에 복귀하게 됬다. 참고로 100이면 99가 잃는다는 인터넷 도박에서 땄다고 한다. 5,000만원이라고 하는데 5,000만원이면 2008 시즌 채태인 연봉이다.(…천재맞네) 흠좀무.

야구선수 인터넷 도박이 검찰에 걸린 결정적인 이유가 채타짜태인에게 제대로 털린 도박 사이트 주인이 채태인에게 협박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12]

그럼에도 2009년 시즌에는 첫 규정 타석을 채움과 동시에 풀타임 주전 1루수로 활약하면서 좋은 수비와 함께 0.293의 타율과 17홈런, 72개의 타점을 기록하면서 최형우, 박석민과 더불어 작년에 비해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삼성 팬들은 채태인이 앞으로도 삼성의 중심타선으로 맹활약해 줄 것이라 기대하였으나......

2.3. 2010 시즌

2010년 4월 15일 LG전에서 2회 이병규의 1루수 직선타를 다이빙캐치로 잡아낸 후 착지하다가 왼손목을 접질리는 부상을 당했다. 5월 7일 대구 SK전에서는 4-3으로 역전한 5회 말 2사 뒤 타석에서 1루 땅볼을 친 뒤 1루를 밟는 과정에서 오른쪽 발목을 접질렸다.1루수 박정권의 토스를 받기 위해 달려온 투수 게리 글로버와의 충돌을 피하다가 베이스의 가장자리를 밟다가 부상당했다……라고 하는데 끝까지 긴장 안하고 별생각없이 1루로 뛰어간 채태인도 문제지만 글로버가 1루 커버한 후 주자선상에서 비켜주지 않은 것은 비매너에다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채태인이 온몸으로 글로버를 들이받아 날려 버렸어도 할 말 없을 플레이였다.

채태인이 부상당해서 이탈하면 팀이 지고, 복귀하면 이기고, 또 부상으로 이탈하면 지고, 돌아오면 이기고 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탓에 승리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0 시즌 초, 장타보다 단타 위주의 타격을 해서 채똑딱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었으나 이후 홈런포를 자주 쏘아 올리면서 거포 이미지를 되찾는 듯 하다 결국 시즌 끝나고 타점개수가 신명철에게도 뒤지는 우스운 결과를 만들어냈다.[13]

2010년 7월 7일, 문학 야구장에서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3연타석 연속 홈런을 때려내며 이부분 기록을 가지고 있던 박경완 당시 SK와이번스 포수의 기록과 타이를 노릴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송은범정우람에게 다만 삼성 라이온즈가 1점차이로 앞서던 7회 2,3루에서 벤치 싸인으로 고의사구를 기록하며 1루로 나갔다.## 이것에 대해 김성근감독의 자기 선수 기록에 대한 보호였다, 아니다.로 말들이 많았으나...판단은 각자 알아서.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0:1로 앞선 2사 2루 상황에서 볼넷을 얻어 1루로 출루한 뒤, 다음 타자이자 5번타자인 최형우의 2루타가 나왔을 때 홈으로 뛰는 무리한 주루 플레이를 하다가 부상을 당하면서 페이스가 떨어져 버렸고, 결국 5경기 내내 부진한 타격감을 보이며 14타수 2안타 1볼넷 1타점, 타율&장타율 .143, 출루율 .200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부진은 계속되어 5타수 무안타, 출루율 0에 그쳤다. 무엇보다도 택도 없는 공에 따라나가 헛스윙(!)으로 삼진되는 경우가 많았을 뿐더러 삼구 삼진의 비율이 높았다. 상대팀은 대놓고 위기상황에서 앞타자 거르고 채태인 상대하기도 했다. 삼성팬에게는 양심도 없는 새끼, 배알도 없는 새끼라고 가열차게 까였다.
한편 '김현수의 심정을 이해한다.'라는 발언으로 자신과 김현수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다고 하여 역시 채천재라고 칭찬(을 가장한 쌍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채태인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19타수 2안타 1볼넷 1타점, 타율&장타율 .105, 출루율 .1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4. 2011 시즌


2011시즌 채태인의 새 타법
시즌 시작전 새로운 짤방을 제조했다. 이 사람이 정녕 능인이 아닌 구선수란 말인가? 이승엽,오승환,박석민,안지만,양준혁 등 같은 팀에 비슷한 선수들 많다

2011년 광주구장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3삼진 후 극적인 역전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단기까방권을 받았다. 이어서 다음 경기에서도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시즌 이틀째긴 하지만 홈런 공동 1위였다. 이러다 또 내려오겠지 그리고 정말로 내려왔다. 그 후에는 5경기 동안 16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매우 부진하다가, 4월 13일 경기 전 훈련 도중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채태인은 2010년 8월 뇌진탕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아직 그 후유증이 남아있을 수 있었다. 다행히 CT 촬영 결과 별 이상은 없었지만, 정밀검사를 더 해보기 위해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알려진 것과 달리 정말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목욕 도중에도 반쯤 의식이 나갈뻔한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확실치는 않지만 뇌진탕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증세인지를 보여주는 대목. 4월 29일 1군으로 복귀했다.

2011년 5월 3일 사직에서 펼쳐진 롯데와의 주중 3연전 첫 경기에서 신항로를 개척하여 경제적인 주루플레이(…)[14]를 보여주고 아웃처리되었다[15] . 이 병맛 플레이를 본 디씨 갤러들은 그에게 채름길', '채단횡단', '채단횡단보도', '채럼버스', '채단거리', '3루급행(열차) 등의 별명을 붙였다.
당시 상황 캡처[16]

얼마 안 가서 이런 짤방이 나와버렸다. 흠좀무 사진의 열차가 구형 중저항인 것은 일단 넘어가자
그후 2군으로 떨어졌는데 구체적이진 않지만 뇌진탕 후유증으로 추정된다. 최희섭 & 김태균의 예에서 보듯 긴 휴식이 필요할수 있다.

8월 초쯤 1군에 복귀하였고 이후로는 평균은 했다. 다만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는 8월 18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투런홈런을 한 방 쳐서[17] 이겼다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경기가 끝난 후, 문학구장은 무법지대가 되었다.

그후 시즌이 끝날 때까지 류중일 감독의 변함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출전하여 꾸준히 삽을 펐고(…),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20타석 15타수 2안타 4볼넷 1사구(死球) 9삼진 1득점 타율 .133, 장타율 .133, 출루율 .350을 기록하며 12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박한이와 함께 쌍으로 나노 단위로 까였지만, 하지만 2년 후 이 두 사람이 한 일은...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하였다.

2.5. 2012 시즌

이승엽의 국내복귀로 백업이나 2군으로 밀려날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류중일 감독이 양아들로 밀어주면서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삽질출장했다. 하지만 부진을 털어내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5월 6일의 뇌수비[18]로 역적 등극.(...) 여름이 된 후로도 계속 삽질하다 결국 2군으로 내려간 후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채태인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였으나….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 참조.

2.6. 2013 시즌

천재다! 천재가 돌아왔다!
비록 어깨 부상으로 규정타석을 채우진 못하였으나, 0.381의 높은 타율과 함께 OPS 1.001을 기록, 수많은 삼성 팬들을 반성하게 하고, 기쁘게 해 준 시즌이었다.
이승엽이 당해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고 노화로 지명타자밖에 못 뛸때 부활해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시즌인가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 참조.

2.7. 2014 시즌

타율은 그런대로 찍어주고 있지만 작년과 달리 볼넷이 크게 줄어들었다. 5월 19일 기준으로 볼넷은 고작 8개인데 삼진은 28개로 비율이 많이 좋지않다. 타격감이 좋은상태라 공을 다 보지않고 휘두르는 것 같은데 팬들은 좋지 않게 보는중.

5월 29일. 임창용이 흔들리고 있던 2:4 2점차 1사 만루에서 조쉬 벨의 1루쪽 강습 타구를 하이점프캐치로 잡아내고 더블아웃을 잡아내서 경기를 끝냄으로써 과 임창용을 구해냈다.역시 체흐

2013년의 괴물같은 타율만큼은 못하지만, 후반기에 대폭발하면서 연일 자신의 한 경기 최다 안타[19], 타점[20]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7월 25일 기준 타점은 69타점으로 전체 5위이자, 이승엽의 71타점에 이은 팀내 2위 성적. 타율도 3할을 훌쩍 넘기고 있다. 작년에 비해서 BABIP은 0.350으로 정상 범위 안으로 돌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채태인은 2013년을 기점으로 한 단계 높은 타자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최형우가 부상으로 빠지고 박석민도 제 컨디션이 아닌 후반기에는 4번 타자로 출전하여 끝내기 안타만 2번을 기록하는 등 선전하고 있다. 박석민이 선발 라인업에 재합류하고 나서도 5번으로 밀리고 채태인이 4번을 계속 치는 중.

2014년 8월 12일 기준 이승엽과 팀내 타점 1위 경쟁을 할 정도로 타점 생산 능력이 매우 좋다. 특히나 득점권 타율은 무려 .372. 이에 대해 채태인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주자는 다 연봉으로 보인다. 이ㅅ..
흠좀무...#

10월 14일에도 타점을 기록하며 기어이 시즌 97타점을 기록. 3경기 남은 시점이라 경기당 1타점만 적립해도 100타점 기록이 가능한 상황이다. 시즌 최종전에 주자 2루 상황에서 안타를 때려냈으나 박해민이 들어오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99타점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2.8. 2015 시즌

무릎 부상으로 개막전에 합류하지 못했다. 승짱은 이제 불혹을 넘겼고 잔부상도 있기에 수비까지 맡기에는 무리고, 때문에 신인인 구자욱이 개막부터 1루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내야가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구자욱이 거의 1경기 1실책의 페이스로 구더기수비 불안을 나타내면서, 잠실 LG 3연전을 계기로 팬들은 채태인의 1군 복귀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수비의 사람에 익숙해져있던 삼갤러들이 이번이 되어서야 1루 수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카더라

4월 10일 KIA 타이거즈전을 앞두고 1군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당일 경기도중 옆구리에 통증을 호소했고 결국 하루만에 다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류중일감독에 의하면 왼쪽옆구리 근육이 6cm정도 찢어졌으며 3~4일정도 휴식을 취한후 일본[21]에서 치료를 받을예정이고,복귀에는 한달이상 소요될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3. 이야기거리

#
[JPG image (31.12 KB)]

하마를 닮았다고 한다.(...)[22] 작은 하마 이야기

별명으로는 채맹구, 채띵모 광신도와 헷갈리면 매우 골룸하다., 채타짜(위에서 설명), 채천재 등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2011년 5월 3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천재적인 주루센스 덕분에 채럼버스, 채름길, 채단거리, 3루급행(열차) 등 수 많은 별명이 붙어 버렸다.

11시즌 이전에 '맹구'라는 자신의 별명이 별로 맘에 들지 않은 듯 스프링캠프 인터뷰에서 "별명이나 좀 지어주세요. 친화적인 걸로. 잘생겼다 뭐 이런걸로."라는 애절한 부탁을 남겼다. 하지만 이미 채태인의 아이덴티티는 맹구로 굳어져버렸으니… 그리고 설령 맹구에서 벗어나도 그에게는 채띵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포기하면 편하다…. 확실히 2011 시즌 맹구라는 별명에서는 벗어났다. 대신 채름길, 채럼버스로 불리고 있다. 별명이 마음에 안 들어 일부러 그런 짓을 한 건가

2012 시즌에는 채르노빌이라는 적절한 별명이 생겼다.

좋은 모습을 보일 때 디시 갤러리 등에서 채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2013년에 들어서 대활약을 하면서 일반 유저들도 이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채장군이라는 별명은 사실 지역드립이다. 2011년 개막전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치면서 디씨에서 채태인을 전두환에 연관지어서 만들어낸 것.

2013년 페넌트 최종 성적으로 타율 0.381(규타 미달) OPS 1.001이라는 흠좀무한 기록을 내면서 진짜 '장군님' 대접을 받고 있다. 7월 타율 0.412 8월 0.271 9월 0.524 10월 잔여경기 타율 0.875(2경기 8타수 5안타)라는 미친 기록을 보라.

4. 수비력

특유의 허슬플레이 때문에 1루수 중에서는 화려한 수비를 하는 편. 그만큼 뜬금없는 부상이 잦다. 지켜보던 팬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수비 장면도 많다. 예를 들면 그냥 빨리 뛰어가면 충분히 캐치할 수 있는 공을 한두걸음 뒤에서 부웅 날아 캐치한 후 땅과 수평으로 철퍼덕 떨어진다든가(…)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1루수 수비능력은 단연 KBO 최상급으로, 특히 포구 능력은 따라잡을 자가 없다. 키가 커서 높은 볼도 무리없이 처리하며, 유연성이 뛰어나 낮은 볼도 가랑이를 희생하면서 너끈히 잡아낸다. 원바운드볼은 그냥 무난하다 싶을 정도로 잘잡는다. 그 결과 탄생한 짤, 上태인. '지명수비' 제도를 도입하자는 소속팀의 1루수 주전은 일본에서 연속이닝 무실책 기록을 세운 선수다(...) 지명수비 드립은 채태인의 타격을 비꼬는 의미가 강하지만 그만큼 수비에서만큼은 인정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30년 경력의 해설위원도 본 적 없는 본 헤드 플레이를 펼치는데...

사실 다른 팀들의 1루수에 비하면 채태인은 날렵하고 가벼운 몸에 속한다. 다른 팀이라고 다 거구 거포들만 1루에 배치하는건 아니지만, 유격수나 3루수나 할법한 점프 캐치를 1년에 몇번씩은 찍어낸다. 이 무지막지한 수비능력 덕에 붙은 별명이 채흐##

2014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넥센이 채태인 한명을 뚫지 못해 번번히 공격기회가 무산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넥센은 이날 공격기회를 모두 날리고 1득점에 그치는 바람에 패배하게 된다.

5. 기타 이야기


2005년 공익 시절에 하던 사회인 야구 당시 기록. 이때는 심지어 본격적으로 타자 전향을 하기도 전이었다. 사회인 야구에 선출이 가면 어떤 깡패가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 유일한 삼진을 잡은 사람에 의하면 초저속 아리랑볼을 던져서 삼진을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2013 타격왕 먹을 기세의 활약을 보여주는 덕에 이 짤방이 재평가되고있다(...)

뱀발로 큰할아버지가 조계종 총무원장 출신이다.#


여담으로 LA 갈비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모 기사에 따르면 경산볼파크에서 LA 갈비가 나올때 회식하듯이 먹는다는 내용이 있다. 참고로 저 사진이 발굴될때는 한창 삽푸던 시절이라 욕을 많이 먹었지만 환골탈태한 2013 시즌 이후로는 저 사진을 올리면 고기 한 그릇은 더 얹어야지 그거가지고 부족하지 않냐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5.1. 응원가와 관련된 트리비아

이래저래 응원가로 마음 고생 가장 많이 했을 선수가 바로 채태인일 것이다. 누구는 응원가 만나 선수 생활 내내 쓰는데 2012년까지 한 시즌 동안 응원가가 고정된 적이 없으니 말 다했다. 2010년에는 4minute의 Hot Issue를 개사, 머리부터 발끝까지 채.태.인! 최강 삼성 라이온즈 채.태.인 모두 다 채태인~ 난 항상 태인태인태인태인 채채채채채 채태인!으로 불렀고, 6월부터는 현아의 Change를 개사해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 태인! (X3) 오오오오오오 채, 채, 채, 채태인!이라는 전설의 막장 응원가가 탄생했다.채태인 장송곡으로 유명한 응원가는 말할 것도 없다. 자세한 것은 네이버 검색창에 채태인 장송곡을 처보시라

2011시즌 초부터 민요 아리랑을 썼으나 팬들의 강렬한 항의에 부딪혀 얼마 못 가 사장되었다. 이 때문에 '채리랑'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지못미. 그 후로 첫 응원가였던 최강 삼성 채,채태인 최강 삼성 채,채,채태인을 다시 썼다. 채태인이 훅 가는 소리 덕아웃이 달아오르는 소리 삼성 감독 화내는 소리 싫어싫어싫어싫어 채태인이 병살타 치는 소리 채태인이 실책하는 소리 삼성 감독 대타 내는 소리(...)

2012년 새로 바꾼 응원가는 응원가계에서 금기시되는 ABBA의 노래를 사용(조인성 응원가로 쓰였던 댄싱퀸은 제외, 이후 민병헌이 활약하며 민병헌의 응원가인 허니허니도 제외.)하여, 마치 장송곡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분위기로 좋지 않은 성적과 같이 삼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다시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를 응원가로 쓰고 있다(...). 정확히는 2012 시즌 시범경기에 새 응원가가 나와 개막전에 나왔으나...반응이 좋지 않자 그 다음날 바로 원래 응원가로 돌아갔고, 5월 4일 경기부터 다시 새 응원가를 쓰다가 7월부터 또 원래 응원가로 바뀐 것이다. 무슨 응원가가 이렇게 자주 바뀌냐? 응원가가 자주 바뀌는만큼 좀처럼 오르지 않는 성적과 부상 때문에 팀내 입지가 이래저래 흔들리는 채태인의 처지를 대변해 준다고 봐야겠다.

그리고 2013년 새로 부임한 응원단장 김상헌이 기존 응원가를 새로운 스타일로 재녹음한 영향 때문이었을까[23], 2년간의 부진을 씻는 맹활약을 보여줌과 동시에, 삼성 경기가 있을 때 마다 채태인의 응원가는 크게 불리우고 있다.

6.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7삼성 라이온즈 31 77 .221 17 5 0 1 10 6 0
2008 68 248 .266 66 12 1 10 42 32 1
2009 118 368 .293 108 26 2 17 72 58 0
2010 102 356 .292 104 13 0 14 54 48 0
2011 53 182 .220 40 7 1 5 28 25 1
2012 54 135 .207 28 7 0 1 9 15 1
2013 94 299 .381 114 15 0 11 53 52 4
2014 124 492 .317 156 38
(2위)
1 14 99 69 1
통산 644 2157 .293 633 123 5 73 367 305 8

----
  • [1] 공식적으로는 2005년에 방출되었다.
  • [2] 최강삼성 채 채 태인 최강삼성 채 채 태인 최강삼성 채 채 채 태인 좋아좋아좋아좋아 최강삼성 채 채 태인 최강삼성 채 채 태인 최강삼성 채 채 채 태인~
  • [3] 시즌 개막 하루 후 상무 입대
  • [4] 임익준이 시즌 개막 후 입대하고 빈 번호를 채태인이 이어받음
  • [5] 특히 2011년 5월에 있었던 신항로 개척(...)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 [6] 입단식 때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쓰고 갔다고 한다. 채태인의 개그 포텐셜은 이때부터
  • [7] 여담으로 채태인과 동갑인 1982년생 야구선수들이 바로 추신수-김태균-이대호-오승환-정근우….
  • [8] 2005년 1월에 공식 방출되어 이미 유예 기간을 채운 그가 해외파 특별 지명 대상에 뒤늦게 들어간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예 기간은 임의탈퇴가 아닌 진짜 방출됬을 때가 기산점이다.
  • [9] 2007년 초 경찰 야구단 훈련에 합류해 운동했는데 그 때 사진들을 보면 삼성 라이온즈 언더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최형우와 이때 알게 되어 친해진 모양.
  • [10] 소속 팀이 완전히 없어진 시점으로부터 2년이다. 현역/공익 군 복무 기간도 유예 기간에 들어가지만 상무나 경찰청에 입대할 경우 소속 팀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유예 기간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상 입단이 안 된다.
  • [11] 본래 1루수로는 아쉬운 수준이라 외야수로의 컨버전 이야기가 나왔으나 2010 시즌 이후 채태인 없는 1루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참고로 팬들 사이에서는 채태인을 최고의 1루수로 키운건 9할9푼이 3루를 보고 있는 박석민의 개발송구라는 설이 매우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2년 이후로는 박석민의 송구는 상당히 나아졌지만, 이번엔 유격수 김상수가 일렉트로닉 클럽 개발 송구를 남발하는지라...
  • [12] 사실은 검찰이 그 당시 인터넷 불법 도박을 매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 사건 전에 이미 강병규 사건이 터졌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 [13] 신명철 57타점, 채태인 54타점
  • [14] 전에도 주루시 선행 주자를 앞질러 아웃된적이 있다. 주루플레이는 정말 병맛.
  • [15] 사실 이 타석 바로 전 1루 주자였던 라이언 가코가 채태인이 친 2루수 직선 타구로 날라가는 공을 2루수 조성환이 당연히 잡을 거라고 생각하고 1루로 뒤돌아갔는데 조성환은 그 공을 놓쳤다(!). 그런데 가코는 그걸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대로 1루를 향해 헤드퍼스트슬라이딩 시전(!!) 뒤늦게 1루 주루코치의 손짓을 보고 2루로 갔지만 이미 아웃. 디씨 야갤은 가코의 환상적인 플레이에 다들 뒤집어졌으나, 바로 다음 타자였던 신명철이 타석에 들어선 지 몇 분(!!!)도 안 되어서......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16] 여담으로 2루를 밟지 않은 것은 아니다. 1루에서 2루 베이스를 밟고 1루로 되돌아 가다가 3루로 가로질러 간 것. 플라이도 아니고 2루를 밟았는데 왜 돌아간 건지는 본인만이 알겠지... 2루를 밟았는데 3루로 갔다고 누의 공과가 된 이유는 야구규칙상 베이스를 밟았다 해도 돌아갈 행동을 취한 순간 루의 점유권이 소멸되며, 추가진루를 하고자 한다면 2루를 밟은 뒤 3루로 진루해야 한다.
  • [17] 채태인의 투런홈런은 이날, 이 경기에서 유일한 득점이다.
  • [18] 공을 받고 느긋하게 1루 베이스로 향했는데, 김경언이 방심한 틈을 타 재빨리 1루 베이스를 먼저 밟았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 [19] 5안타, 7월 23일 부산 롯데전
  • [20] 6타점, 7월 25일 포항 NC전
  • [21] 요코하마의 이지마 치료원이라는 곳에서 치료를 받는다.2013시즌중 늑골골절 부상때도 요코하마로 갔으며 배영섭,박석민,최형우도 부상치료를 위해 이곳에 갔다와서 빠르게 복귀하였다.
  • [22] 박한이도 하마라는 별명이 있다. 박한이에게 하마라는 별명을 붙여준건 류중일.
  • [23] 비단 채태인 뿐만 아니라, 이승엽과 박석민 등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삼성 선수의 기존 응원가를 새로운 스타일로 재녹음하였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1 16:31:25
Processing time 0.3412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