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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호

last modified: 2015-03-15 10:30:51 by Contributors

Contents

1. 미국의 우주왕복선
1.1. 개요
1.2. 챌린저호의 기록
1.3. 최후의 비행
1.3.1. 마지막 승무원들
1.3.2. 대폭발
1.3.3. 사고의 재구성
1.4. 그 외의 이야기
2. 심해탐사잠수정

1. 미국의 우주왕복선

1.1. 개요

1983년 4월 4일 STS-6 미션으로 데뷔하며 운용되었던 4년동안 어떤 궤도선보다 자주 우주로 나갔고 많은 시간을 우주에서 머무른 미국우주왕복선.
원래 활공시험기 엔터프라이즈와 함께 지상 진동 시험기로 만들어졌지만 우주비행이 가능하게 개조되어 콜럼비아 호에 이은 미국의 두번째 우주왕복선이 되었다.

이 이름은 우주왕복선이 만들어지기 이전, 최후의 달 유인 탐사 미션이었던 아폴로 17호의 달 착륙선에서도 쓰였다.

1.2. 챌린저호의 기록

총 69일을 우주에서 보냈고 지구를 987바퀴 선회했으며 총 60명의 남녀가 챌린저호에 탑승했다.
챌린저호는 야간에 우주로 발사된 첫 우주왕복선이었고 고장난 인공위성우주에서 잡아 보수작업을 처음 성공적으로 수행한 왕복선이다.
우주로 올라간 첫 미국인 여성[1], 우주로 올라간 첫 미국인 흑인, 미국인 여성이 하는 우주유영, 우주왕복선 계획의 첫 우주유영, 탯줄없는 첫 우주유영등의 기록들을 세웠다.

1.3. 최후의 비행

1.3.1. 마지막 승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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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499.09 KB)]


위에서 왼쪽부터

엘리슨 오니즈카 - 우주왕복선 전문 엔지니어,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 우주비행사
크리스타 맥콜리프 - 우주에서 원격수업을 실시할 예정이었던 교사
그레고리 자비스 - 탑승 과학 기술자[2]
주디스 레스닉 - 우주왕복선 운용 기술자, 사상 2번째 미국인 여성 우주비행사

마이클 스미스 - 우주왕복선 조종사
프랜시스 스코비 - 챌린저호 선장
로날드 맥네어 - 우주에서 색소폰을 불 예정이었던 물리학자, 사상 2번째 미국 흑인 우주비행사

1.3.2. 대폭발


수백억 달러짜리 재앙


1986년 1월 28일[3] 10번째 비행인 미션 STS-51-L에서 이륙한지 73초후에 폭발하여 탑승한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모습은 실시간 TV중계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져 더욱 큰 충격으로 인식되었다.

흑역사로 기록될 사건으로 대폭 위축된 미국의 우주 왕복선 산업은 그로부터 2년 뒤에야 왕복선의 발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


이후 챌린저호의 잔해들은 1987년 1월에 폐기한 두개의 미니트맨 미사일 사일로에 넣어져 장기보관 되었다.


이후 이 사고는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도 소개되었다.


1.3.3. 사고의 재구성

영상판독에 의하면, 파일럿들은 우주선 폭발 후에도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고고도에서 물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15km 높이에서 시속 320km의 속도로 추락했다고 한다. 실제로 우주선내에 장착되어있는 비상용 호흡장치 7개중 3개가 활성화 되어있는 상태에서 잔해에서 발견된것으로 보아 살아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후일 영상 판독에서 폭발시 까만 점같은 추락하는 것이 연기와 함께 터져나오는 것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승무원 모듈이었다고...그래서 우주선의 안전장치들중에 생략되는 분위기였던 비상탈출용 로켓[4]이 다시 장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로켓이 달린 건 1회용 우주발사체들이고, 우주왕복선에는 이런 장비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설계상 예산문제로 처음부터 이것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여서 끼워넣기가 바로 안된다는 점이다. 대신 우주왕복선의 문에서 튀어나오는 기다란 장대로 사고가 터지면 우주비행사들은 낙하산을 멘 채 그 장대에 몸을 의지하여 왕복선 밖으로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 추가되었다.[5]

사고의 원인은 로켓연료 부스터의 이음매를 메꾸는 역할을 하는 고무재질의 O-Ring에서 차폐유지가 되지 않은 것. 우측의 고체로켓부스터로부터 나온 고온의 연소가스에 노출되어 타거나 부식되어 실링효과가 떨어진 상태에서 강한 공기저항에 의하여 큰 힘을 받는 상태에서 외부탱크에서 산소가 누출되어 사고가 났다고 하고 있다. O-Ring은 고무재질이 반드시 들어가며, 발사중 빈틈이 발생하면 그쪽을 막으면서 적당하게 변형되어야 했다. 고무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체가 화씨 65도 이하(섭씨 18.5도 이하)의 온도에서는 급격히 탄성력을 잃어버려, 본래의 형태로 돌아올만큼의 충분한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발사당시의 기온은 영하권이었으며, 이로인해 탄성을 잃어버려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한 O-Ring은 뜨거운 부스터 내의 가스로부터 생기는 압력을 계속 받았다. 이것은 O-Ring의 파손, 결과적으로는 계속된 이음새 틈으로의 가스 분출로 우주선의 상실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것은 자명했다. 한마디로 추워서 딱딱한 고무에 금이 갔다. 후대의 추가적인 판독에 의하면(위의 영상 참고) 발사대에서 점화를 시작하자마자 터질 수도 있는 원인인데 바로 터지지 않은 이유는 연료찌꺼기가 구멍을 막아서 O-Ring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6]

이 찌꺼기들이 62초만 더 버텼다면 추진기와 분리된 챌린저호는 무사했겠지만... 허리케인급의 제트기류에 흔들려[7] 이 찌꺼기들이 빠져버리고 연료는 누출, 외부탱크의 산소와 만나고 추진기 상단이 윗쪽 연료탱크와 충돌, 대량의 연료가 한순간에 연소하며 폭발이 일어났다.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는 이것이 단지 O-Ring과 날씨탓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 뜯어보면 이것도 NASA의 다른 실패작과 마찬가지로 명백히 인재에 속한다.

타이오콜 사의 기술자들과 심지어 O-Ring의 설계를 직접 담당했던 로저 보졸리(Roger Boisjoly)는 O-Ring의 개수형이 나오기 전까지 챌린저 호의 발사를 미룰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보졸리는 이전에 발사된 디스커버리 호를 통해 추운 날씨의 발사가 위험함을 깨달았다. 수거된 추진체에서 탄 자국이 발견되었고, 조사결과 O-Ring이 다 타들어가 1mm도 남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었던 것이다. 보졸리는 이를 근거로 제시하며 '영상 11도 이하에서는 절대 발사해서는 안된다'며, 발사 전날은 물론이고 발사 당일 12분 전까지도 발사 연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NASA와 2차 계약을 맺기 직전이었던 타이오콜 사와 챌린저 호의 발사기념 연설을 하기로 되어있던 레이건 대통령을 의식했던 NASA도 이들의 요청을 모두 묵살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대형사고 후에도 타이오콜 사는 2차 계약을 성사시켰으며, NASA측 책임자이자 '그럼 뭐 4월까지 기다리란 말이냐'며 틱틱거린 래리 멀로이는 승진했다. 뭐 이런.

정부의 사고진상조사단엔 말년에 암투병중이던 물리학자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이 있었고, 그의 전기에 따르자면 다른 조사단이 높으신 분들이 하는 일을 하는 사이 관련 기술자를 제외하곤 처음으로 진상을 알아냈다. 그리고,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중에 얼음물에 O링 샘플을 담그는 것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리려고 했다고. 최종보고서에서도 이를 덮으려는 분위기 속에서 계속 우긴 끝에야 O링과 나사의 다른 뻘짓에 의한 인재를 다룬 그의 보고서를 부록으로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남이야 뭐라 하건!'의 뒤쪽에 파인만이 진상조사단에 제출한 보고서의 일부가 부록으로 실려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읽어보면 좋다.


리처드 파인만의 저 유명한 TV 실험 중계 영상

1.4. 그 외의 이야기

사실 이 챌린저호는 중요한 이벤트가 예정돼 있었다. 바로 사상 최초의 우주 원격 수업! 1985년 NASA는 '우주 교사 프로그램(teacher in space program)'를 기획했다. 실제 교사가 우주왕복선에서 직접 과학실험을 하면서 미국 전역의 학교에 원격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무려 12,000명의 교사가 지원했고 치열한 경쟁끝에 '크리스타 매콜리프'라는 여교사가 선발돼서 강훈련끝에 1986년 챌린저호에 탑승했다.

이후 우주 원격 수업은 온갖 우여곡절끝에 2007년 8월 엔데버호에서 55세의 전직 여교사 바버라 모건이 시행하였다.[8] 무려 22년만의 성공. 1985년 자원했던 교사 수천명이 모여서 엔데버호 발사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또한 이 시기는 핼리 혜성이 지구 근처에 오는 기간이라 우주에서 핼리 혜성을 관측한다는 사상 초유의 기회이기도 했다.

세계구급 찌라시로 유명한 위클리 월드 뉴스는 챌린저호 추락 당시의 대화록을 입수했다는 소설 기사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대화록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주선 발사 초기의 압력은 3G~5G, 크면 8G를 넘보는 엄청난 수준의 압력이라[9]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상황 같은 건 애당초 불가능에 가깝다. 초인이라면 모를까. 즉, 우주선 내부의 화재로 타죽더라도 꼼짝없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는다는 소리다. 솔직히, 사망 시 대화내용 녹음테이프보다 이 쪽이 훨씬 끔찍하다.

이상하게도 한국 한정으로 The Final Countdown이 챌린저호 추모곡이라는 도시전설이 퍼져있는데, 전혀 사실 무근의 거짓말이다. 항목 참조. 진짜 챌린저 참사와 관련된 곡은 Owl City의 'Galaxies'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건 아니지만, 앞의 인터루드 제목이 'January 28, 1986'인 걸 감안했을 때 추모곡이 맞는 걸로 팬들은 추정하고 있다.

승무원인 로널드 멕네어(Ronald Ervin McNair)는 우주로 색소폰을 가져가 장 미셸 자르와 공동으로 작곡한 'Rendez-vous Ⅵ'라는 곡을 협연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고로 인해 무산되었고, 이 곡은 맥네어를 기려 'Last Rendez-Vous(Ron's Piece)'로 개명되어 공연되었다.

BBC에서 만든 2013년작 TV 영화 <The Challenger Disaster>가 이때 터진 사고를 수사하는 위원회(라 쓰고 리처드 파인만이라고 읽는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리엄 허트가 파인만을 연기했는데, NASA라던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관료들이라던지 군이라던지 하는 여러 기관을 대표하는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얼굴마담 노릇[10]을 시키려는걸 뻔히 알면서도 수많은 강연을 째고 끌려왔다가 제일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나마 협조적인 공군소장 도널드 쿠티냐 장군은 계급이 낮아서 나라에서 리무진을 안 준다고 툴툴대며 파인만을 정부 소유 자가용 제트기에 태워서 직접 몰고다니기도 한다(...) TV영화라는 점, 우주덕들이나 파인만빠돌이들이나 좋아할법한 영화라는 핸디캡이 제기되면서도 IMDB 7점대의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내용을 첨부한다면, 이미 조사위원회 내부의 상당수와 NASA의 현장실무자들은 O-Ring의 문제라는 심증을 갖고 있었으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침묵하고 있는데, 이중에 몇명이 이런 저런 경로로 파인만에게 힌트와 미묘한 암시아이보리 비누를 주면서 (직접 폭로하면 자기나 동료가 다치니까...)파인만이 진실에 이르도록 유도한다.[11] 최초의 미국 여성 우주인으로 조사위원회 내에선 NASA의 입장을 대변하는 높으신 분 역할을 하고 있던 샐리 라이드가 실제론 최초의 제보자였으며, 라이드로부터 진실을 전해들은 공군 소장 쿠티냐 장군이 겉으로는 공군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높으신 분의 면모를 보이면서 뒤에선 파인만이 진실에 이르도록 은근한 힌트를 계속 던지고, 이와중에 NASA의 현장 실무자들로 추정되는 익명의 제보가 들어온다.

2. 심해탐사잠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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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기록의 주인공 샐리 라이드는 최초의 여성일 뿐만 아니라 미국 최연소 우주비행사이기도 하며, 이 기록은 2014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좀 다른 의미로는 최초의 LGBT 우주비행사이기도 하다.
  • [2] 이전 미션인 STS-61-C에 탑승할 예정이었으나 우주에 정치인을 올려보낸다(...)는 세금낭비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터라 플로리다주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빌 넬슨과 맞바꿨다. 넬슨 의원은 STS-61-C 미션을 마치고 우주에서 돌아온 후 열흘만에 이 참사를 접하고 큰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 [3] STS-61-C가 이런저런 이유로 발사 카운트다운만 쳐도 4전 5기의 도전을 했던 기괴한 미션이었던지라 일정이 너무 늦어져서 발사일이 당초 계획보다 일주일 이상 늦어졌다. 당장 STS-61-C의 착륙으로부터 열흘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에 우주왕복선 발사를 또 강행한 것. 또한 이로부터 19년 하고도 하루 전인 1967년 1월 27일은 아폴로 1호의 테스트 중 화재로 세 우주인이 숨진 날이었기에 NASA는 이후로 1월 말을 공식 추도 기간으로 정했는데, 2003년 2월 1일컬럼비아호가 재돌입 중 폭발하였다. 아무래도 NASA는 이 기간에 웬만하면 우주 미션 자제해야 할 것 같다(...)
  • [4] 엔진이 위치한 우주선 하단이 폭발시, (주로)상단에 있는 유인부분이 분리된 후 탈출할 수 있게 하는, 비상탈출용으로 만들어진 추진장치.
  • [5] 영화 스페이스 카우보이 마지막 부분에 잘 나온다. 물론 이런 장비로 챌린저호 폭발사고와 같은 사태에 대처할 수는 없지만.
  • [6] 연료에 효율성 등을 위해 알루미늄이 추가되었는데, 이런 연료가 연소되면 찌꺼기가 발생한다고 한다.
  • [7] 폭발 직후 연기가 직각으로 꺾였던 것도 이 제트기류 탓이라 한다. 발사 30분 전, 발사지점 상공을 지나가던 항공기가 시속 300여km급의 제트기류를 만나 고도를 낮춘 것이 확인되며 원인이 규명되었다.
  • [8] 매콜리프가 아프거나 해서 우주로 가지 못할 경우의 대체요원으로 훈련받은 사람이다. 유인 우주비행에서는 이런 대체요원이 반드시 준비되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 이 비행을 위해 바버라 모건은 교편을 내려놓고 정식으로 NASA 우주비행사(미션 스페셜리스트)가 되었다. 1회성 이벤트로 올라가는 교사가 아니라 정식 우주 비행사로서 고강도 훈련을 거쳤다는 말.
  • [9] 3G가 어느 정도의 압력이냐 함은, 고압에 약한 사람이면 질식할 정도의 수준인 롤러코스터도 기껏해봐야 2G정도밖에 안 된다. 훈련을 거친 우주비행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5G 이상으로 넘어가면 호흡곤란이나 블랙아웃, 화이트 아웃 등이 오게 되는데, 퍽이나 낮은 수준인 3G 정도의 압력이라면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다.
  • [10] 샐리 라이드닐 암스트롱 같은 NASA의 레전드 우주인들도 NASA에서 시켜서 들어온 거고, 위원회의 여러 관료들도 행정부의 연줄로 들어온 조사관들이라 상호지간 높으신 분들 놀이나 한다.
  • [11] 실제 많은 대형참사, 사건사고의 진실이 이런 식으로 세상에 알려진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 현장 실무자들은 대부분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평범한 소시민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 등등. 황우석 사건에서 보듯이 내부고발이란게 정말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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