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유사에 기록된 인물 ¶
나라가 태평을 누리자 왕이 879년에 개운포(開雲浦:지금의 울산) 바닷가로 놀이를 나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덮이면서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졌다. 갑작스런 변괴에 왕이 놀라 좌중에 물어보니 일관이 말하되 “이것은 동해 용의 짓이므로 좋은 일을 행하여 풀어야 합니다”고 하였다. 왕이 용을 위하여 절을 짓도록 명한 즉, 바로 어두운 구름은 걷히고(이로부터 이 곳을 개운포라 하였다),
동해 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으며 그 중 하나가 왕을 따라오니, 곧 그가 처용이었다. 왕을 따라온 처용은 달밤이면 거리에 나와 가무(歌舞)를 하였다 하며 왕은 그를 미녀와 짝지어 주고 급간(級干) 벼슬을 주었다.
비형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여 비형랑과 연관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용모에 대한 묘사를 근거로 그가 중동사람, 혹은 이를 모델로 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있다. 신현준? 참고로 이 학설을 최초로 제기하신 분이 나름대로 유명한 사람. 실제로 신라까지 아라비아 상인이 찾아왔다는 기록도 많아서 역사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가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아랍 상인은 너무 비약된 주장이라며 처용은 단지 울산 인근의 호족 아들일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