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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last modified: 2015-09-16 08:22:17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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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7대 종단(한국종교인평화회의)
개신교 불교 천주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국민족종교협의회
대한민국/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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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상징 궁을기(왼쪽)와 궁을 문양(오른쪽). 1905년 처음 만들어진 유서 깊은 상징이다.* 궁을기에서 흰 쪽이 깃대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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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의 모습.* 오른쪽의 빌딩은 천도교 중앙총부가 있는 수운회관.


天道敎
Cheondoism[1]

Contents

1. 개요
2. 특징
2.1. 교리
2.2. 예식
3. 역사
3.1. 일제강점기
3.2. 신구파 갈등과 신파의 친일 행적
3.3. 해방과 군사정권 시기
3.4. 현재
4. 북한에서의 천도교
5. 신자인 유명인
6. 기타

1. 개요

1905년 의암 손병희동학을 개칭해 성립시킨 종교. 따라서 발원지는 경주, 교조는 최제우가 된다. 1908년엔 춘암 인호가 4대 교주에 취임했다.

천도교에서는 포교를 포덕, 집회를 여는 장소를 '교당(敎堂)', 천도교의 최고 책임자를 교령[2], 중요 종교건물을 '수도원'이라고 통칭한다. 또한 천도교 신자들끼리는 서로를 동덕이라 부른다고. 동덕여자대학교가 천도교의 미션스쿨로 출발한 것이다.

'포덕'이라는 말은 연호로도 사용한다. 2015년은 포덕 156년.

2. 특징

2.1.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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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구 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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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발표 후 검토를 거쳐*, 2014년 3월 25일(포덕 155년) 정식 발표된* 천도교의 신 예복.* 왼쪽부터 교역자복(남/녀), 집례복(남), 수련복(남/여), 청수봉전복(여), 설교자복(남)이다.
동학을 계승한 종교답게 기본적인 골격은 동학과 큰 차이가 없다. 최제우 스스로가 "동학은 유교, 불교, 도교가 합일된것이라. 그러나 도인즉 같으나 이치는 다르니라" 고 하였다.

특히 불교적 색채를 가미한 종교답게, 주신인 한울님은 아브라함교와 같은 초월적 절대자의 성격보다는 인간 내면, 더 나아가서는 천지 만물에 근원으로서 잠재한 신격이라는 범신론적인 교리를 갖고 있다. 이것이 인내천(人乃天), 사인여천(事人如天), 시천주(侍天主) 사상. 일종의 니미즘적 성격도 있지만, 일본의 신토와 달리 들을 개별적 객체로 보지 않고 한울님이라는 통합된 표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정확히 말하면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초대 최수운 시절에는 상제와의 문답을 나누거나 신령한 부를 내려받는 등 인격신의 면모가 있었으나 점차 인간 내면에 잠재한 신격을 강조하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최시형, 손병희를 거치면서 사인여천/시천주, 인내천 사상이 나오게 된다.

모태인 동학이라는 종교가 본디 서학인 기독교에 반발해 형성된 만큼, 신을 인간과 분리시켜 절대적 위치로 상정하는 교리에 대해서는 특히 반발하는 입장을 취한다.

세부적인 수행방법 면에서는 동학 시기와 천도교 시기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고종 시기에 편집된 동학서의 기록은 관에서 파악한 동학 문헌인데, 여기에는 주문, 영부(부적) 등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는 현대의 천도교 신자들은 까맣게 모르던 것들도 많이 있다. 초창기에 관에서 동학의 문서를 빈번하게 몰수하였고, 많은 주요 인물들이 순교하여 자료가 유실되고, 이후의 개혁 등이 있어 부적과 주문 같은 세부적인 수행법은 단절되거나 유실된 것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21세기에야 이 같은 기록이 재발굴 되어 천도교에서 해석과 연구 작업이 시작되엇다.

2.2. 예식

모든 천도교 신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5가지 의무인 오관(五款)이 있다. 오관은 주문(천도교의 삼칠주(지기금지원위대강/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수행), 청수(모든 행사에 청수를 모시는 것, 청수봉전(奉奠)), 시일(일주일에 한 번 있는 시일(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시일식(천도교의 종교행사를 말한다)에 참여하는 것), 성미(성금을 내는 것), 기도(한울님에 대해 마음 속으로 기도를 올리는 심고)의 5가지를 말한다.
여담으로 대부분의 백과사전을 비롯한 사전에는 오관 중 성미(誠米)를 설명하면서 '매 끼니마다 쌀 한 숟가락씩 떠서 모아 한 달에 한 번 교단에 바친다'라고 설명하나, 이건 옛날 이야기. 지금은 당연히 돈으로 낸다.(...)[3]
천도교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향아설위(向我設位)라 하여 제사상을 차릴 때 벽 쪽에 위패를 놓고 벽 쪽을 기준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사람을 기준으로 제물을 진설하고 제사를 지낸다.[4] 이는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시천주 사상에 입각해 1897년 4월 5일 동학창도38주년기념식전에서 처음으로 시작하였고, 1900년 <천도교의절>에서 공식화되었다. 다만 일반 가정에서 지내는 차례의 경우 전통 방식대로 제물을 진설하기도 한다.

3. 역사

3.1. 일제강점기

전신인 동학이 구한말 반외세적 성격을 강하게 표출했듯이, 천도교 또한 일제강점기 들어 일제에 맞서 맹활약한다. 가장 유명한 업적으로서 1919년 3.1 운동을 가장 앞장서서 주축이 되어 주도했으며, 1920년부터 1926년 사이에는 기관지인 을 간행하여 민족 정론지로 발돋움시킨다. 참고로 그 당시의 천도교는 기독교의 교세를 가볍게 웃도는 메이저 종교였다.

또한 여성, 어린이인권은 물론 심지어 지구 환경까지 존중(천지부모 일체설)하는 상당한 선구자적 안목을 갖고 있었다. 당시 천도교의 활약은 어린이날 지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대표적인 천도교인이다. 그는 당시 천도교 교주였던 손병희의 셋째 사위였다. 게다가 '어린이'라는 용어 자체가 천도교에서 만든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어린이에게 경어 사용 역시 천도교가 만들고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동덕여자대학교의 전신인 동덕의숙도 천도교에서 설립한 일종의 미션스쿨이었다. 또한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학원도 이용익에게서 인수하여 김성수가 인수하기 전까지 운영하였다.

3.2. 신구파 갈등과 신파의 친일 행적

손병희가 교주에서 물러난 후 연해주로 건너가 1919년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를 창설했다는 점에서, 대한국민의회가 합작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도 연이 닿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손병희 사후 천도교 내부는 엄청난 갈등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것을 신구파 갈등이라고 칭한다. 기존 독립 투쟁 노선을 따르던 손병희 계열의 구파와 민족개조론과 자치론을 주장한 최린 계열의 신파간 갈등이 심했다. 그래도 신구파 갈등이 심각함을 신파와 구파 모두 알고 있어서 1930년대 초반 일시적으로 신구파가 통합됐지만 얼마 안가 다시 분열되었다. 이후 신파가 천도교를 장악해 천도교는 3.1운동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아주 노골적인 친일 종교로 변질되었다. 자치론과 일선동조론을 받아들이며 노골적인 친일파로 전향했고, 그 거두가 최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제에 반감을 가진 일반 신도들을 억지로 동원해가며 일제 말기의 전시체제에 적극 협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최후까지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고 유사종교단체 취급을 당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반민특위에 끌려간 최린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자신의 죄를 참회했다는 말도 있다.[5]

일진회도 엄밀히 말해서 이쪽 계열이다. 애시당초 동학이 이름을 천도교로 바꾼 이유가 손병희가 일진회 창립 멤버인 이용구와 손을 끊으면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구파는 반일적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무인멸왜기도운동을 시도했지만 일제에 적발되어 구파의 세력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신구파가 혁파된 것은 8.15 광복 이후다.

3.3. 해방과 군사정권 시기

해방 후에는 세력이 급속히 미미해져 현재는 꽤나 마이너한 종교가 되었다. 이는 앞에서도 설명했듯 지독한 신구파의 갈등도 있었지만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 와중에서 조직과 세력이 대부분 와해되었고, 신도의 상당수가 북한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한국전쟁 직후 월남한 천도교인들이 많았고[7] 박정희 정권때 박정희 정권의 지원으로 인해 교세 재건을 시도했다.[8] 이 시기 1960~1970년대 당시 천도교는 '반공종교'라는 이름하에 친정부 성향을 가진 종교였다. 그렇기에 불교, 개신교, 천주교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을 때 천도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흑역사가 있다. 1978년 천도교 춘천교구장이 유신정권에 반대해 분신 자살한 것이 거의 유일한 민주화 운동 참여다.

그러나 1986년 최덕신 교령의 월북으로 인해 거의 교세가 무너지게 된다. 거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 1997년 8월 오익제 교령의 월북 사건.

3.4. 현재

현재 국내의 신자 수는 10만 명 정도이다.* 그래도 천도교는 한국 7대 종단[9] 안에 마지막 순위로 들기라도 한다. 한국 7대 종교의 마지막은 한국민족종교협의회로 14개 군소종교의 협의체.

위의 서울교구 중앙대교당만 보면 지금도 교단활동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국내의 민족종교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본부를 제외하면 상황이 상당히 열악하다.* 그러나 천도교와 원불교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에 속하는데, 원불교는 민족종교 중 유일하게 군종장교도 있고3명이라는 건 함정, 천도교는 그래도 민족운동에 기여한 바가 많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동학농민혁명기념관*처럼 수는 적어도 제대로 된 관련 기념시설과 교과서의 인지도라도 있지, 다른 민족종교들은 존재감도 없다.

2014년 12월 현재 서울 서소문 성지화 사업과 관련해 가톨릭과 마찰을 빚고 있다. 가톨릭 항목과 관련 링크 참고.

4. 북한에서의 천도교

북한 지역에서는 도교청우회가 우파 종교정당이 되어 당초에는 막대한 당원을 바탕으로 무시못할 세력이었으나, 1950년 영우회(靈友會) 사건을 비롯한 탄압과 숙청, 지도부 장악을 당한 끝에 어용 위성 정당으로 전락해버렸다. 현재는 천도교청우당이란 이름의 우당으로 사실상 빈껍데기만 남아있다.

북에서 선전하는 내용에 의하면 북에서 가장 신도가 많은 종교는 천도교[10]라고 한다. 이러한 것들도 있고 북에서 천도교에 관한 대우도 (명목상이지만) 좋기 때문인지 남북간 교류가 가장 활발한 종교가 천도교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성격상 북한의 천도교 신자들이 실제 신자일 가능성은 없다.북한의 국교는 주체교니까

6. 기타

고등학생들이 한국근현대사를 배울 때 원불교, 대종교와 이 천도교를 헷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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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영문 웹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다 나오는 개념이다. 심지어 관련 상품도 제작되고 있다. 관련 상품이 천도교의 교리에 맞는지는 가 바람
  • [2] 1955년 1월 13일 천도교 교헌(敎憲)이 나오면서 공식적으로 대표를 교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임기는 3년이며 3년에 한 번 열리는 천도교 전국대의원회의에서 새 교령을 선출한다.
  • [3] 대신 액수가 정해져 있다. 1인당 최소 5,000원. 재화란 물건의 특성상 교단 내부에서도 성미와 관련해 말이 많은 듯 하다.
  • [4] 반대로 일반적인 유교식 제사에서 벽 쪽에 위패를 놓고 위패를 기준으로 제물을 진설하는 것을 향벽설위(向璧設位)라고 한다.
  • [5] 심문장에서 자기변호에 바쁜 이광수를 향해 입 닥쳐!를 외친 걸로도 유명하다.
  • [6] 광복 당시 북한지역에는 천도교도가 150만 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이 수치는 북한의 다른 종교 신자를 합친 수보다도 많은 수였다. 천도교 다음은 37만 5천명의 불교.(북한 "조선중앙연감", 1950).
  • [7] 1920년대까지만 해도 무려 300만이라는 신도 수를 보유했고, 그 이후로 신도 수가 대폭 하락했음에도 60년대 당시 기록에 따르면 무려 60만명이 넘는 천도교인들이 월남했다고 한다.
  • [8] 대표적인 예로 수운회관 건립, 용담정 정비 등이 있다.
  • [9] 불교, 개신교, 천주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및 기타 군소종교.
  • [10] 3만 5000여명의 신도가 있다고(2001년 기준 1만 5천명 정도 참조) 북에서는 자체 선전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불교, 개신교, 천주교와는 달리 공식 교당이 전혀 없다는 점. 신도가 가장 많다면서 교당이 없는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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