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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총통

last modified: 2015-03-30 09:16:48 by Contributors

천자총통.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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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子總統 天字銃筒
대장군전이 장전된 모습.날개안정분리철갑탄? 정말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다(…). 대함미사일 같이 생겼는데?[1] 실제 아다케부네세키부네 입장에서는 대함 미사일이었을 물건이다.

Contents

1. 설명
1.1. 스펙
1.2. 대형총통류
2. 구조 및 운용법
3. 발사체
4. 실제 운용법
4.1. 함선에서의 운용
4.2. 장거리 화력
4.3. 근접전 화력
4.3.1. 근접해도 강하다!
4.3.2. 당시 세계의 주류
4.4. 평가 : 종합적 무기체계?
5. 임진왜란 이후

1. 설명

1.1. 스펙

조선전기 조선에서 가장 규격이 큰 재래식 화포. 총 길이 131cm, 통신 길이 1.16m, 포구 지름 12.8㎝로써(문화재청) 조선의 대형화포에 해당하는 지자총통, 황자총통, 현자총통 중에서 가장 큰 화포였다. 총통들은 그 양식에 따라 발사방식이나 장전방식이 달랐지만, '-자' 자 돌림의 총통류는 크기만 다를 뿐 발사, 장전양식은 모두 같았다.

최대 사거리는 약 960m정도로 추정되고, 육군 사관학교의 시험에서는 기준량보다 1/3만 넣은 화약을 사용해서[2] 대장군전을 발사했음에도, 400m를 날아가 화강암 석축 사이의 작은 틈바구니를 비집고 80cm 가까이 박혀버렸다. 이건 운이 좋게 틈바구니에 박힌 탓도 있지만 일부 밀덕들 사이에서 "치하 전차도 뚫을 수 있을 듯"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3]

당시 무기들과 비교했을 시 총통류의 유효한 살상 사거리는 대략 2~500m 정도로 추정된다.

1.2. 대형총통류

본 항목에서는 천자총통뿐만 아니라, 대형화기로 분류되는 현자총통 이상급의 총통을 모두 다룬다.

여러 드라마 탓에 "조선의 주력 화포"라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천자총통급은 주력이 아니었다. 화차처럼 천자총통은 그 위력에 비해 화약을 너무나도 많이 잡아먹고 화약낭비가 심하다는 소리가 많았다. 유명한 이순신 함대에서도 천자총통 뿐만 아니라 지자총통과 여타 다른 화약병기도 많이 사용되었으며, 육군 또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1차 사료인 "백사집"과 "정만록"에서도 천자총은 너무 크고 화약을 많이 소모한다고 지적하였으며, 이순신이 대포를 만들 청동을 요구하는 장계에서는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청동의 양만 적혀있다. 이순신의 각종 기록에선 1593년, 그러니깐 개전 1년후부터는 천자총통에 대한 기록이 없다. 학계에서는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을 수군의 주력무기라 추정하고 있다.[4]

  • 한국에서는 구경만 가지고 컬버린급의 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쪽이 통설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 매우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화약 사용량만 해도 천자총통은 30냥으로 이는 2.4 파운드에 해당하는 데 보통의 컬버린 포가 사용하는 화약량은 12파운드다... 포신길이는 천자총통이 1.13m 전장 1.3m 급의 포인데 컬버린은 전장 3미터에 달하며 무게는 300kg대 1200kg 정도로 비교가 안되는 급의 물건이다. 비슷한 크기의 포탄을 훨씬 짧은 포신으로 5분의 1의 화약으로 날리는데 위력이 비슷할리가 없는 것이다. 사정거리의 문제도 물리적으로는 천자총통이 한참 처질 수 밖에 없고 그나마 계산기준의 문제로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것 뿐이다. 사실 천자총통의 화약 사용량 30냥은 미니온포의 3파운드에도 미치지 못한다. [5] 즉 통설로 알려져 있는 조선의 대포와 서양 대포의 비교는 물리적인 제원을 무시한 상태에서의 아주 자의적인 기준을 들이댄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 반론 - 위의 주장은 단순수치로 비교할 때 생기는 문제이다.
    실 예로 해당 항목에도 나와있는 18세기 중후반 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저속고중량대구경 개념으로 설계되어 사용됐던 카로네이드 포의 경우 12파운드포가 구경 114.3mm 전장 0.8m 화약량 1파운드 였는데 위력은 동시대 동일구경의 롱 캐논(전장 2.7m 화약량 4파운드 포중량 1.6 톤)과 같거나 더 효과적이였다(왜인지는 카로네이드 포 항목 참조) 천자총통보다 더 작은 크기인대도 말이다.또 19세기 초반에서 남북전쟁때 사용된 미군의 12파운드 전장식야포와 프랑스제 나폴레옹 9파운드포의 길이도 1.82m 남짓인걸 생각해보면 포의 길이와 화약량이 사거리에는 영향을 주겠지만 카로네이드 포와 조선총통류와 같이 적정비율을 찾았을 경우 위력에는 별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걸 알수 있다. 결국 실제적인 목조선박에 대한 실험 없이 문서상의 수치로만 비교했을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오류이다.그리고 산업혁명이후 생산된 12파운드 철제 롱 캐논[6]도 4파운드의 화약량을 사용했는데 강철제 포가 나오기 전까지 이러고도 항상 포의 폭발 위험성이 상존했는데 16세기 동일구경의 철제주조 컬버린(데미 컬버린)[7]이 12파운드의 화약량을 사용했다면 위력의 증가가 아니라 포의 폭발 위험성 증가일텐데 이역시 실제상황에 대한고려없이 문서상의 수치만 따지는데서 오는 오류이다.


2. 구조 및 운용법

총통들은 크게 화약을 담는 "격실" 약실부분과 탄체 부분사이의 가스누출을 방지하는 격목을 끼우는 "격목통" 포열인 "부리"로 이루어져 있다. 화약을 다져 넣는 약실부분은 포열보다 더 두껍게 만들어졌고 윗부분에는 도화선을 끼우는 구멍이있다.

총통의 발사순서는 1603년 한효순이 쓴 신기비결에 나와있는데, 이 순서는 천자총통에 중형 납탄환 100발을 동시에 넣고 사격하는 순서이다.

  1. 세총 - 총통안을 쓸고 씻는다.
  2. 입약선 - 약선혈(도화선을 넣는 구멍)에 도화선을 밀어넣는다.
  3. 하화약 - 총구로 화약을 넣는다.
  4. 하복지 - 총구에 종이를 넣어 화약을 덮는다.
  5. 하송자경 - 나무자루로 화약과 종이를 살짝 두드려 다진다
  6. 하목마 - 총구에 격목을 넣는다
  7. 하송자 용력타 지약전 - 나무자루로 힘껏쳐 격목을 화약바로 앞까지 밀어넣는다.
  8. 하연자일층 하토 하송자 - 총구에 납탄환 30여발을 넣고 흙을 넣는다.
  9. 하연자일층 하토 하송자 (반복)
  10. 하연자일층 하토 하송자 (반복)
  11. 하합구대연자 일장 하송자 용력타입구평총 - 마지막으로 총구에 맞는 큰 탄환(대연자)을 넣는다. 힘으로 쳐서 총구에 평평하게 넣는다
  12. 방포하라!

3. 발사체

천자총통은 일반적으로 포환 한발만을 장전할 때도 있지만, 여러가지 탄을 함께 섞어서 발사할 때도 있었다. 천자총통에 쓰이는 포탄은 매우 다양한데, 대장군전 같은 대형 화살, 포환, 조란환등 여러가지 탄종을 사용했다.

  • 포환
쉽게 말해 포탄. 조선 시대 화포는 포환으로 쇠로 만든 철환, 돌을 다듬어 만든 단석, 납으로 만든 연환, 철환 표면에 납을 씌운 수철연의환을 주로 사용했는데 천자총통은 수철연의환을 주로 사용했다. 일반적인 철환은 만들기 쉽고, 값도 싸고, 강도가 높은 장점이 있지만, 무겁고 포강을 심하게 마모시킨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수철연의환은 철환 표면에 납을 씌웠기 때문에 포강을 심하게 마모시키지 않으면서 포강과 밀착해서 철환보다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 대형 화살
일반적으로 대형 철환이나 단석을 운용하는 방식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밀덕들을 중심으로 대장군전의 인기나 인지도가 높아진 상태이다. 아무래도 현대 미사일을 연상시키는 폭풍간지를 자랑하는 외형 때문일듯. 실제로도 천자총통을 비롯한 지자, 현자, 황자총통은 대형 화살을 발사하여 적 함선이나 적 시설물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조선의 대함 APFSDS[8]

현재 일본에 구키 요시타카가 가져간 대장군전 실물이 남아있다. 안골포 해전 당시 어립선에 맞은 것을 기념으로 보존한 듯하다. 참고로 이 해전에서 구키 요시타카, 도도 다카토라, 가토 요시아키 등은 42척의 함대로 분전했으나, 상대가 상대인지라 42척의 함선을 전부 잃고 육지를 통해 도망쳐야 했다(...) 그 와중에 이건 언제 챙긴거야


  • 조란환
    조란환은 새알 크기의 철제 탄환으로 가까운 거리에 접근한 적병들에게 끼얹는 산탄 용도로 쓰였다. 샷건... 아니, 샷캐논? 뭐 승자에도 사용됬다고 하니 샷건형태도 있다라고도 볼수 있으려나? 특이한 건 아니고 서양에서도 포도탄(Grapeshot)이라는 식으로 작은 탄 여러개를 묶어서 발사하는 탄이 있었다. 천자총통에서 사용할 때는 400개를 넣고 발포했다고 한다. 불멸의 이순신 마지막회에서도 나오는데 조란환을 계속 근거리의 적선에 대고 쏘자,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호위하고 있던 병사들이 싹 쓸려나간다.(...) 그리고 영화 명량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근접전에서 조란탄으로 바꾸라고 나오는데 그 위력이 가히 크레모아급(...)
    .

4. 실제 운용법

4.1. 함선에서의 운용

우리에게 천자총통이 가장 잘 알려진 이유는 바로 이순신 함대 때문인데, 번동아제의 이글루에 당시 포술 운영을 짐작할 수 있는 사료들을 볼 수 있다. 사료들을 놓고 짐작해 보면 대중형 총통 같은 경우엔 함상에서의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에 200보(약 240m)에서 사격을 시작하고, 100보에 이르게 되면 평저선인 판옥선의 선체를 360도 회전시켜 현측을 개방하는 방식을 사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바다에서 실제 사거리는?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가 짐작하는 사격거리보다 심히, 매우 심히 짧은데, 이것은 이순신 함대가 "우수한 화기를 통한 원거리전"으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통념에 상당한 제한을 가할 수가 있다. 이들 사료에 따르면 100보에 조총, 90보에서 을 사격했다 하니, 사실상 100보 이내에 들어오게 되면 총과 활을 사용하는 근접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결국 판옥선이 200보에서 화포사격을 시작하고 100보에서 측면사격을 시작했다고 하면, 거의 조총이나 활의 교전거리 근처에서 싸웠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 해상에서도 접근전을 병행
판옥선이란 함선이 일본군 함선에 비해 상당히 크기에 근접전에서도 유리한 건 매한가지지만, 이순신의 전술에 대해 "절대 근접을 허락하지 않는다"하는 통념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건 18세기 대양에서 싸우던 전열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16세기 조선에서의 연안 해전에서야...

되려 좋은 목재로 만들어진 튼튼한 함선으로 일본군의 배를 침몰시키진 않았을까라는 해석도 있다. 명량해전의 경우가 대표적인 접근전이다. 오히려 이순신은 접근전에서 판옥선의 가지는 유리함을 최대한 활용하여 왜적을 엿먹였다. 멀리서는 함포없는 호구 왜군의 함선을 신나게 함포로 두들겨 패주고, 접근전이 발생하면 판옥선의 크기를 십분 활용하여 바다의 요새처럼 사용했다.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수군이 중형화포를 중심으로 싸운 이유는 판옥선을 성채처럼 사용하여 몰려드는 일본수군을 요새의 농성전처럼 화포의 위력과 지형적인 유리함으로 찍어누르는 전법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9]

4.2. 장거리 화력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총통의 장거리 화력은 분명히 뛰어난 수준이었다. 어디까지나 현대무기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기준에서, 생각보다 사거리가 짧아보인다는 점이 밝혀진 것뿐이다. 덤으로 바다 위에서 조선군의 총통 사거리가 짧아졌다는 말은, 거꾸로 말하자면 일본군의 화기류도 육지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10]

당시 총통류는 대장군전을 비롯한 화살형 발사체들을 도입하여 사거리와 파괴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있었다. 즉, 당시의 총통류는 외세의 주력부대를 갈아버릴 정도로 뛰어난 장거리 화기가 맞다.

임진왜란 외에도 여진족이나 병자호란에서 싸운 기록을 보면, 조선의 포수들은 우수한 비거리와 파괴력으로 상대의 포대를 저격하여 무너트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링크윤민혁씨의 덧글 참조) 아래 본문에는 홍이포와 호준포의 이름이 혼용되고 있으나, 중근거리 소형 산탄포인 호준포와 달리 모과만한 포탄을 수십 리 날렸다는 점을 보면 홍이포임을 알 수 있다. 천자포는 천자총통의 다른 이름이다.

(전략) 며칠 전에 적이 망월대(望月臺) 밖에 대포를 설치하니 신경진이 사졸들에게 천자포(天字砲)를 쏘도록 하여 오랑캐의 장수와 졸개 몇 명을 맞추니, 적이 흩어져 갔다. 이에 이르러 적이 또 10여 대의 대포를 설치하고 남격대(南隔臺) 밖에 또 7, 8대를 설치하였는데, 대포의 이름을 호준(虎蹲)이라 하고 일명 홍이(紅夷)라고도 하였다. 탄환의 크기는 모과와 같고 능히 수십 리를 날 수 있었는데, 매양 행궁(行宮)을 향해 종일토록 끊임없이 쏘았다. 탄환의 위력은 사창(司倉)에 떨어져 기와집 세 채를 꿰뚫고 땅 속으로 한 자 가량이나 들어가 박힐 정도였다. (후략)

  • 출처 : 한국고전종합 DB <연려실기술> 제 25권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병자노란(丙子虜亂)과 정축 남한출성(南漢出城)# 종종 DB사정으로 검색이 안되거나 링크가 말을 안들을 경우 안정화되기를 기다렸다가 검색어로 천자포, 혹은 신경진 천자포로 검색하면 된다.

최근의 연구로 의외의 사실들이 많이 밝혀지고 있지만, 익히 알려져 있는대로 조선의 화포들은 장거리 운용에 있어서도 무시무시한 무기체계였다는 뜻이다.



4.3. 근접전 화력

4.3.1. 근접해도 강하다!

천자총통의 사거리가 예상보다 짧다고 해서 실제 전장에서 이들의 역할이 미약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선입견으로 당시를 판단한 오류이다.[11] 당시 개인화기 개념이었던 승자총통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의 총통들은 근접한 상태라고해서 딱히 화력이 줄어드는 무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최근의 연구로 보면 조선군의 포수들은 근접사격을 중요한 전술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는 1인 운용무기인 승자총통조차도 20발 이하의 조란환을 쏠 수 있어서 쓸만한 근접화기로 인식되었는데CQB VS CQC, 당시의 대형총통들은 무려 4~50발 이상의 중형 쇠구슬을 조총보다 먼 사거리에서 발사할 수 있었다! 당장 후대 유럽의 대포에서 자주 발사하는 포도탄[12]도 근거리 발사용이지 원거리 포격을 위한 물건은 아니었다. 애초에 조란환과 포도탄 모두 산탄의 개념을 적용한 물건인 만큼 긴 사거리를 가지기는 매우 어렵다. 당장 샷건의 사거리가 왜 짧은지를 생각해보자. 원거리를 사격하려면 둥근 쇳덩어리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포알, 즉 포환이나 대장군전처럼 단일 탄두 형태의 물건이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조란환이나 포도탄이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화포라는 물건이 근접 사격도 상정한 물건임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기록을 보아도 조선초기의 총통들은 엄폐물이 있는 상황(방어전, 해상전)에서 집단으로 기어올라오는 적들에게 산탄을 끼얹어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총통들이 가진 특유의 작고 운반하기 쉬운 모양[13]도 이러한 운용법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4.3.2. 당시 세계의 주류

참고로 이렇게 대구경 화포로 산탄을 끼얹는 방식은, 강선화포가 개발되기 이전까지 세계적으로 주류였던 매커니즘이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대구경 화포에 화약과 쇠구슬을 넣고 정면에서 발사하면, 대인 저지력/명중률/부대 학살까지 전부 커버되는 매우 효율적인 화약무기가 완성된다. 조선의 대형총통도 이런 중세화포의 개념에서 본다면 얼마나 효율적인 무기였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군인들이 천자총통급의 대형 화포를 꺼린 이유도 추측할 수 있다. 산탄을 끼얹는 방식으로 쇄도하는 적군을 막아야 했다고 생각해보면, 대형포탄 한방 쏘는 것보다는 화약을 여러 병사들에게 나누어서 여러 번 사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전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임진왜란에서 사용된 총통류를 밀집대형에 산탄포격을 가하는 화기로 생각해보면 당시의 역사적 전투의 흐름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중세적인 화포 개념은 조선의 개인화기인 승자총통의 성능이 서구식으로 발달한 개인화기인 조총에 비해서 밀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훨씬 거대한 지자총통 이상의 대형 총통들은 여전히 압도적인 산탄포격으로 일본 보병을 죄다 갈아버리는 전과를 올렸던 것이다.

4.4. 평가 : 종합적 무기체계?

조선총통이 당시로서 뛰어났던 이유는 또 한 가지가 있다. 위에서도 보았듯이 총통은 당대 중국이나 서구의 화포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거리에서 사용이 가능한 화기류였다. 일단 장거리 화력 자체는 명나라 군대도 놀랄 정도로 뛰어났다. 게다가 근접한다고 해도 절대로 약하지 않다. 그렇다고 조선의 산탄사격이 무서워 성곽/함선에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맴돌면? 대장군전이나 신기전이 날아온다! 으으아악

즉, 조선의 대형총통은 화약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모든 거리를 커버할 수 있는 무기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때, 조선 총통은 분명히 효율적인 무기체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5. 임진왜란 이후

임진왜란 이후 불랑기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홍이포가 들어오면서 기존 총통류는 비중이 줄어들게 된다. 다만 불랑기포는 구조상 대구경으로 제작될 수 없는 등 구조적 문제로 인해 천자총통을 비롯한 전통 총통들은 조선 후기까지 계속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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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히스토리 채널 다큐멘터리에서 실제로 미사일 드립을 쳤다.
  • [2] 당시의 화약의 순도나 조합비로 인한 현대의 흑색화약과의 성능차를 생각해서, 현대 흑색화약을 당시화약 넣던 양의 1/3만 넣고 쏜 것이다.
  • [3] 보병용 소화기에도 구멍이 뚤릴 정도의 물장갑이니 전면은 몰라도 측면이라면 뚫리거나 함몰되긴 할듯
  • [4] 참고로 현자총통은 팔코넷급, 지자총통은 세이커급(불랑기포), 천자총통은 컬버린급(홍이포) 유럽화포와 크기가 비슷하다. 일단 각 대포의 성능 자체는 같은 시기 유럽화포보다 조금씩 뒤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형에 맞는 운용전술, 다양한 화살형 포탄, 그리고 청동합금을 사용한 덕분에 방열이 쉬운 점 등으로, 이후에 조선식 개조 불랑기포가 나올 때 까지도 그리 심각한 성능 차이는 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5] 대항해 시대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포로 나오는 그 물건이다.
  • [6] 이시기 포제작은 주조로 만든다음 천공기를 이용해서 구멍을 뚫었다.
  • [7] 철로 주조된 대포에 비해 청동제 대포가 더 안정적이다. 위력과 신뢰성이 우수했던 나폴레옹포도 청동제대포이다. 물론 강철제대포와는 비교불가.유럽도 19세기중반때까지 철제대포뿐만 아니라 여유가 되면 청동대포도 계속 사용했다.
  • [8] 엄밀히 말하면 새보(사보)를 사용하진 않으므로 표현하자면 APFS정도로 표현가능 할 듯
  • [9] 즉,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요새 위에서 화포를 퍼부운 거나 다름없다. 조선의 총통이 산탄을 끼얹는 형식으로 운용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개활지에서 잘 싸우던 왜군이 함선/성채에 거치한 대형총통에 줄줄이 죽어나간 이유도 설명이 된다. 갑옷 입고 돌진하는 알보병들 입장에서는 대형 포탄 한발보다 수십발의 산탄이 훨씬 무서웠다! 보병학살 종결자
  • [10] 단, 직선탄도를 가진 직접사격이라는 점, 사수가 피칭과 롤링에 대한 즉각적인 보정이 가능 하다는 점 등은 곡사탄도에 간접사격을 하는 총통과의 명중률 저하 수준에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
  • [11] 당장 조총의 사거리는 50m 미만인데, "뭐야 고작 그 정도로 무슨 새를 잡는 총이야?"라고 무시하는 것은 당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판단미스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조선의 화포도 당시 기준으로는 장거리/근거리를 모두 커버하는 우수한 무기였음을 이해해야 한다. 총통에 박살난 왜군이나 여진족이 바보였던게 아니다!
  • [12] 포도탄은 기병이 접근하거나 근거리에 보병대가 진을 치고 있을 때 포병들이 발악하는 형식으로 많이 써먹었다.
  • [13] 일단 손잡이가 달려있다! 게다가 무게중심이 가운데 쏠려있고, 둥글둥글한 모양 때문에 운반하기가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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