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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 핀토스

last modified: 2015-04-11 02:03:25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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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 핀토스
Cheongbo Pintos
인수년도 1985년 5월 1일
팀명 변경년도 1985년 6월 29일
매각년도 1987년 10월 31일
모기업 풍한방직
연고지 인천광역시(1985~1987)
홈구장 도원야구장(1985~1987)
구단명 변천사 삼미 슈퍼스타즈(1982~1985)
청보 핀토스 (1985~1987)
태평양 돌핀스(1988~1995)
현대 유니콘스(1996~2007)
해체

Contents

1. 소개
1.1. 주요 선수
1.2. 역대 성적

1. 소개

지금은 사라진 한국프로야구 옛 구단이며 삼청태현의 한 축을 이루던 구단.
연고지는 인천.

삼미 슈퍼스타즈의 후신으로 조랑말을 마스코트로, 1985년 후기리그를 시작으로 창단... 장명부도 슬슬 삽질을 시작할 때고 해서 성적은 삼미 때와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역대 감독은 김진영, 허구연, 강태정.

야구 해설위원 허구연이 1986년 시즌 청보의 2대 감독직을 맡기도 했으나 15승 2무 40패의 매우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퇴진하였다.

1986cbchangess-moonchas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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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교체시에 을 타고 등장하기도 했다

청보 핀토스의 모회사는 당시 중견 섬유업체였던 풍한방직이었다. 풍한방직이 식품산업에 진출하면서 "청보"라는 상표명을 썼는데, 마침 풍한방직 사장 김정우 씨가 경기고 후배삼미 슈퍼스타즈 구단주 김현철 회장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후배도 도와줄 겸 새로 시작한 식품사업도 홍보할 겸, 전격적으로 프로야구에 참여한 것이다. 이 당시 삼미 구단의 매각대금은 60억원(당초 언론 보도엔 70억원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60억원 이었다고 한다) 이었지만 현금을 지불하는 대신 삼미의 부채를 청보가 대신 떠안는 형태로 청보는 삼미를 인수하였다.[1]

그런데 청보식품은 갑툭튀에 가까운 과정으로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나온 기업이었던 바, 루머가 굉장히 많았다. 군납업체에 선정되어 대량의 라면 납품권을 손에 넣은것을 두고 집권하고 있었던 29만원 가카의 영부인 소유라는 루머가 그럴듯 하게 퍼져있었다.[2] 또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 또는 통일교의 투자라는 루머도 꽤 돌았다. 그러나 군납업체 선정 건은 청보식품 사장이던 우리가 아는 그 가수 아니다 장기하가 예비역 장성에 하나회 출신으로 군 쪽엔 파워가 남아있던 양반이었기 때문이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청보식품의 로고가 팬더였기 때문에 팀명을 팬더스라고 하려고 했으나, 당시 OB 베어스와 이미지가 중복된다고 판단, 김정우 구단주의 아이디어로 북미산 조랑말이란 의미의 핀토스(Pintos)로 바꾸었다.

아무튼 모기업인 청보식품존재감이 없는 식품회사 였던지라[3]

덧붙여 청보의 모회사인 풍한방직은 "핀토스"라는 팀명을 그냥 사장시키기 아까웠던지 청바지 브랜드로 활용하기도 했다. 감독 시절의 허구연이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진의 새바람이 불어온다!)

어쨌거나 1985년 후기리그 부터 리그에 뛰어든 청보는 그 해 후기 4위로 나름 선전했지만 어차피 1985년 시즌 종합성적은 꼴찌 이듬해인 1986년 허구연 신임 감독의 지휘 하에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하위권으로 떨어졌고, 그나마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의 기초공사(?) 덕분에 최하위는 면했다.[4] 그러나 이듬해인 1987년 기어이 최하위로 떨어지며 모기업에 대한 심각한 역 홍보효과를 우려할 수준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앞서 얘기했듯 드럽게 맛없는 라면탓에 청보식품의 라면 사업이 생각보다 확장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1980년대 후반 섬유업계의 구조적 불황까지 겹치며 모기업인 풍한방직이 1987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바람에 야구단 운영은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 결국 1988년 태평양(현 아모레 퍼시픽)에 구단을 매각하여 태평양 돌핀스로 바뀐다.[5]


성적은 무려 667! [6] 이 당시 청보의 매각대금은 50억원(청보가 삼미를 인수한 금액보다 10억이 싸다!) 이었는데 삼미 인수때와 마찬가지로 청보의 부채 50억을 태평양이 떠안고, 대신 그 부채를 8년 거치-7년 분할상환 한다는 조건으로 구단을 인수하였다.[7]

이후 풍한방직은 회생하지 못하고 2003년 완전히 간판을 내려야 했다.

김정우 구단주는 홈 경기때 매일 야구장을 찾을 정도로 야구광 이었는데, 야구단을 매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하며,[8] 인천 시내의 한 호텔에서 선수단과 송별회 겸 해단식까지 마련해 줬다고 한다. 이후 김정우씨는 사업이 안되어 화병을 얻었는지 비교적 젊은 나이인 2005년 61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대재벌 그룹이 아닌 중견회사의 자회사였던 만큼 야구 역사에서도 가장 적은 발자취를 남겼다고 할 수 있는데, 전신인 삼미가 워낙 임팩트있는 불명예 진기록(한 시즌 최저승률, 최다연패, 특정구단 상대 전패, 장명부의 427이닝 혹사 등)들을 많이 남기는 바람에 삼미는 한국 야구계에서 최악의 팀의 대명사격으로 현재까지 야구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이 형편없는 성적을 냈음에도[9] 삼미와의 인지도는 천지차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청보가 2시즌 반 동안 거둔 성적은 97승 169패 5무 승률 0.365, 전신인 삼미가 3년 반 동안 거둔 120승 211패 4무(.365)와 별로 다르지 않다.(...)

1.2. 역대 성적

년도순위/팀숫자팀이름경기수승률
1985[11]6/6삼미 / 청보110397010.358
19866/7청보108327420.302
19877/7108416520.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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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작 풍한방적은 대전광역시를 연고로, 실향민 출신이 세운 기업이었다. 상세는 청보식품문서 참조. 다만 야구단 창단 직전에 대전에 있던 공장을 팔았다고 한다. 대전 오류동의 삼성아파트 일대가 예전에는 풍한방적의 공장터였다고 한다.
  • [2] 청보가 와대 물의 줄임말이라는 말까지 있었으니...
  • [3] 팬더표라고 하면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당시 청보 핀토스는 홈 경기 때마다 자사 제품인 곱배기 라면과 영라면을 관중들에게 나눠줬는데, 성적도 안나오지, 라면은 영국의 맛 맛도 없지 하다보니 뜯지도 않은 라면이 도원야구장 내에 버려진 채로 엄청나게 굴러다녔다고 한다.
  • [4] 이 당시 소년중앙에서 허구연 감독과 빙그레 배성서감독의 대담을 성사시키는 환상적인 일도 있었다
  • [5] 풍한방직은 야구단은 매각했지만 야구와 완전히 발을 끊은 것은 아니어서 당시 유일한 야구전문지였던 '주간야구'를 계속 후원하였다. 그러나 기업이 회생 기미를 보이지 않자 1994년 초 지원을 끊었고 주간야구는 발행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주간야구는 2006년 2월 복간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복간 6주만에 폐간되었다.
  • [6] 더욱 충공깽인 것은, 창단→667→인수 라는 점이다.
  • [7] 기가 막히게도 거치기간이 종료된 1996년에 태평양은 현대그룹에 야구단을 매각했는데 당초 부채 50억에 8년간 붙은 이자 포함하여 총 70억을 현대에 넘기고 별도 매각대금 으로 무려 400억(!)을 받았다. 말하자면 태평양은 8시즌 동안 거의 현금 한푼 안들인 채 인수한 야구단을 운영하며 회계상으로는 적자였겠지만 막대한 홍보효과를 얻었고, 게다가 거액을 받고 구단을 팔았으니 태평양으로선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 [8] 바로 1985년 여름에 삼미가 청보로 매각될때도 삼미 김현철 구단주는 아쉬움에 눈물로 밤을 보냈었다. 역사는 반복된셈..
  • [9] 두 팀은 똑같이 3시즌 동안 존재했는데 사실 삼미는 1983년 전,후기 2위의 성적을 내긴 했지만 삼미의 전설적인 투수 장명부의 원맨쇼에 힘입은 기록이라 순위로는 별 의미가 없다.
  • [10] 전준우의 장인이다. 본명은 김용윤이었으나, 김용운과 혼돈을 피하기 위해 개명했다.
  • [11] 전기리그에서는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이름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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