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청진 수용소

last modified: 2014-05-18 22:20:20 by Contributors

청진 수용소
정식 명칭 25호 교화소[1]
영문 명칭 Chŏngjin Concentration Camp
관할 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면적 약 0.08㎢ (약 0.03제곱마일)
위치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동 소재[2]
인근 교통편 남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서 83번 국도와 만남
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함북선 수성역이 있음
수용 인원 3천 명 이상으로 추정
이명 수성 교화소

淸津 收容所 / 淸津 第二十五號 敎化所


1960년대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북한 주민에게는 용평 완전통제구역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공포의 대상. 이곳과 쌍벽을 이룬다는 곳은 평양 시내에 있던 승호 수용소였지만 해당 수용소가 1994년에 국제사면위원회의 폭로 덕분에 폐쇄되면서 이 수용소가 1급 정치범들의 수용소가 되었다. 이때 승호 수용소가 작살나면서 여기에 수감된 사람들이 죄다 이 수용소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데 북한이라면 여기로 옮기는 게 아니라 다 총살했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북한의 구조상 총살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정확한 사실은 불명. 하지만 두 수용소 모두 교화소로 최고급 감옥이었으며 1991년 이전까지 교화소랍시고 있었던 곳은 이 청진 수용소와 승호 수용소 둘밖에 없었다는 사실로 미루어봤을 때 가능성은 매우 높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가로 약 500m, 세로 약 500m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위성 사진상으로 보면 높은 벽이 확실한 경계선을 그어보면 오각형이 나오는데 이 오각형의 가로가 300m, 세로가 250m이다. 평수로 따지면 대략 2만 3천 평 정도 된다. 서대문형무소의 경우 부지가 대략 6만 평이었다고 하니 그 절반 수준. 그야말로 초미니 감옥인 셈이다. 헌데 서대문 형무소의 수감 가능 인원이 3천 명이었으니 얼마나 바글바글 몰려 있을지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범죄자의 가족들이 주로 수감되는 관리소와는 달리 이 청진 수용소는 정치범 본인이 수용되기 때문에 훨씬 크기가 작은 것. 이로 미루어보면 청진 수용소는 교화소가 확실한데 어쩐 일인지 대부분의 외국 기사에서는 관리소로 표기하고 있다.

때문에 아무래도 수용소 감시자는 수용소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사는 모양이며(실제로 수용소 벽 인근에 민가가 몇 채 있다.) 수용소가 협소한 관계로 큰 공장이라든지 화성 수용소처럼 핵 실험장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여기에서는 다른 일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전거 공장이다. 북한에서 나온 자전거 중 '갈매기'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청진 수용소에서 제작된 것.

요덕 수용소의 용평 완전통제구역만큼이나 무시무시한 곳인데 안명철[3]에 의하면 자신이 근무하던 곳은 회령 수용소[4]였는데 이 청진 수용소는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Top-level) 수용소라고 하니 알 만하다.

또한 면적이 적어서 관리하기가 쉽다는 요건 때문인지 이 수용소도 화성 수용소처럼 단 한 명의 탈출자도 허용하지 않았던 곳이다. 하긴 인근 교통편이 적당히 멀어야 추적도 어려울 텐데 이건 가깝다 못해 아예 붙어 있는 수준이라서...

다만 이 무시무시한 곳을 경험했던 사람은 있는데 그 주인공은 유태준. 놀랍게도 그는 1998년 함흥에서 살다가 탈북한 이후 2000년에 부인을 데려오겠다고 무단 입북했다가 그만 여기에 수감되었었는데 이게 국제 문제로 비화되면서 석방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재차 탈북해서 북한을 놀라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2004년에는 정작 '나를 장군님의 품으로 돌려보내달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등 여러 모로 의심스러운 점이 많은 사람이다.

제9회 국제 회의에서 나온 증언에 의하면 주 수감자는 1급 정치범,[5]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특히 기독교도), 평양에서 쫓겨난 자와 그 가족, 의견을 달리하는(다시 말해서 체 사상을 부정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여기에 수감된다고 한다. 1987년 납북된 동진 27호의 선장 임국재가 세 번 탈북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 끝내 여기에 수감되어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기록도 있다.

생활은 말 그대로 비참한 수준.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좌 상태로 앉아 있다가 6시 반에 아침 식사, 식사는 옥수수 주먹밥과 시래기국이 전부이다. 7시부터 밤 10시까지(규정은 6시 반) 강제 노동이 이어진다. 작업 후에는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세로 앉은 감방생활. 20명씩 한 방을 쓰며 무조건(화장실을 갈 때도) 2인 1조로 행동한다.


----
  • [1] 25호 관리소로 검색해야 더 정확히 찾을 수 있다. 이곳이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대표격이라...
  • [2] 대한민국 행정구역 상 위치도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동으로 동일하다.
  • [3] 1994년에 탈북한 사람으로, 일반 수감자도 아닌 정치범 수용소 경비원 출신이다.
  • [4] 외국에서는 일명 Camp 22로 통하는 곳으로 12호 교화소인 회령 전거리 수용소와는 다른 곳이다. 애초에 Camp 22는 관리소니까.
  • [5] 예를들 쿠데타 음모를 꾸민 케이스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4-05-18 22:20:20
Processing time 0.0980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