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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last modified: 2015-04-14 22:30:06 by Contributors

주의 : 이 문서는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 재난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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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고 선박인 세월호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고.
  • 침몰한 선박의 정실명과 함께 해당 내용 기술 가능. (위키 게시판 글)
  • 사망자들에 대한 서술에 대해서도 모든 일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작성을 자제할 것.
  • 정치인에 대한 언급 역시 민감한 사항이니만큼 꼭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한 뒤에 작성할 것. 가능하면 기사나 자료를 첨부할 것.
  • 이 사건에 대한 고인드립, 농담, 악의적 서술을 하지말 것.
  • 이 사건과 아무리 비슷한 현실이나 가상의 요소라 할지라도 가상매체와 비교 등은 작성 전에 반드시 숙고 바람.
  • 수정하는데 확신이 없는 경우 위키 게시판 등을 통해 토론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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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현재 구조 현황
2. 개요
3. 사고 일자 및 시간대별 상황
3.1. 4월 15일
3.2. 상세
4. 사고 배경
4.1. 세월호의 제원
4.2. 선박 개조
5. 사고 상황
5.1. 세월호에 탑승했던 단원고 학생 인원 현황 및 배치
5.2. 침몰 원인
5.3. 선장을 비롯한 선박직 승무원들이 퇴선 지시를 지체한 원인
5.4. 탑승자들이 남긴 말들
6. 구조 및 수습 과정
6.1. 사고 보도 및 가족들의 반응
6.2. 사고 발생 이후 세월호의 상황 및 구조의 어려움
6.3. 인양 크레인선 제원 및 작업 상황
6.4.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
6.5. 해경의 발표
7. 피해 상황
7.1.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피해 상황
7.2. 일반인 & 승무원 피해 상황
7.3. 진도 및 안산 지역 피해 상황
7.4. 그 밖의 피해 상황
8. 수사 상황
8.1. 배 운영과 승무원 관련 논란
9. 형사 사건의 진행
9.1. 1심 판결
10. 각계 반응과 대처
10.1. 실종자 가족들
10.1.1. 정보 전달 체계의 문제
10.1.2. 국가위기 관리 매뉴얼의 축소화 논란
10.1.3. 지나친 관심이 낳은 문제
11. 사회의 어두운 일면들
12. 사건의 여파
13. 도움을 주고 싶다면
13.1. 성금 모금이나 물품 등을 기부하고 싶을 경우
13.2. 자원봉사를 하고 싶을 경우
13.2.1. 4월까지의 상황
13.2.2. 5월 이후의 상황
13.3. 6월 이후의 상황
13.4. 현장의 상황을 알고 싶을 경우
14. 유사 사건·사고
14.1. 유사 해상 사건·사고
14.2. 학생들이 사망했던 비극들


1. 현재 구조 현황

  • 2015년 3월 28일 15:00 기준, 단위: 명
  • 이 항목을 갱신할 때에는 반드시 정보의 출처를 표기할 것.
  • 단원고등학교 학생의 현황에는 단원고의 교사를 제외한다.
  • 4월 22일 이후로 사망자 중에서 탑승 명단에 없는 사람들도 발견되었으나, 공식적인 탑승객 명부의 인원수는 476명에서 변경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사실상 총인원수는 [email protected]인 상황.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승선원 명부의 정확성 문제, 차량탑승 미신고자 등 여러 예측 불가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탑승객 숫자는 언제나 변동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 단원고 사망자의 수는 2014년 10월 30일자 기준으로 갱신되었다. # 학생 피해 집계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아 실제 파악 인원과 차이가 날 수 있다.

전체 단원고 학생
탑승 인원 476 325
사망 295 246
실종 9 4
구조 172 75
출처: 연합뉴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항목
세분화 항목 세월호 제원 관련 정보 청해진해운 선사 관련 정보
선박 개조 논란 침몰 사고 관련 논란
침몰 원인 인양 관련 정보
구조의 어려움 사고 전 메시지들
정부의 대응 각계의 반응
관련 사건·사고 각종 사건·사고 언론에 의한 사건·사고
사기꾼들이 저지른 각종 사기와 범죄 정치인 및 공무원 관련 사건·사고
사건 현장 관련 사건 청해진해운의 횡령과 비리 논란
구조 및 수습 과정 관련 논란 인터넷 커뮤니티 관련 사건·사고
특별법 제정 및 유족 보상 관련 논란 선주 유병언의 도피와 최후
사고 일자 및 시간대별 상황

세월호 참사 각 월별 기록
2014년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2015년 1월 2월 3월 4월 5월 6 7 8 9 10월 11월 12월

세월호 참사 일자별 기록
2015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구호물품 및 자원봉사자 안내
페이스북 페이지
[https]SURVIVE 링크



2.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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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보도한 세월호 1년간의 빅데이터. 한국 사회는 참사의 충격과 상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article|default 기사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인양 방법. 체인을 감기 위해 잠수부들이 직접 들어간다. 2015년 4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이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인양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그러나 인양이 결정돼도 2015년 가을이나 내년 봄 이후에나 착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사기사2

21세기 한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

한국의 선박 안전관리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대한민국에 큰 충격을 몰고 온 사건이다. 절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사건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들들을 보여줬다.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맹골 수도)에서 청해진해운이 운영하는 인천-제주 정기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사고. 2014년에 발생한 재난사고 중 최악의 참사이이며, 대한민국 수학여행 관련 사고 중 역대 최대이자 최악의 참사로 관련 사망자 수 1위를 기록했다. 사주인 유병언 일가의 부도덕한 경영,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부실한 선박 관리와 안전교육, 이러한 현실이 발생하도록 방치한 승무원들, 특히 선장 이준석과 항해사의 판단 착오와 늑장 대응, 그리고 그로 인한 시간 지체, 잘못된 안내 방송과 그 방송을 별다른 의심 없이 수용한 승객들의 안타까운 판단과 대처, 그리고 정부와 관피아의 삽질로 모든 구조 가능성이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린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건. 특히 대형재난의 경우 불특정 다수가 희생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참사는 안산단원고등학교 2학년이 단체 수학여행을 가던 도중에 발생한 사고로, 어린 학생들이 많이 희생되어 전국민을 비통함에 빠져들게 했다. 단원고 학생들의 거주지인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현장인 전라남도 진도군은 이 사고 때문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세월호의 선주사인 청해진해운은 직원수 130명 정도의 규모를 가진 회사로, 1997년 (주)세모(회장 유병언)가 부도난 이후, 1999년 2월 그 아들들(유대균, 유혁기)에 의해 설립되었다.참고자료 실소유주는 유병언 회장으로 추정되고 있다. 천하의 개쌍놈 유병언 회장은 구원파 목사로서, 전두환 정권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과의 친분을 배경으로 한강 유람선 사업권을 따내면서 해운업에 뛰어들었고, 이후 그가 회장으로 있던 세모그룹은 5공 정권의 비호 아래 준재벌급으로 성장하게 된다. 1990년 세모가 운행하던 한강 유람선이 다른 선박과 충돌, 침몰하여 15명이 실종된 바 있는데, 당시 세모는 실종자 수를 축소, 조작해 발표하는 바람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

세월호 출항에 앞서서 선박을 통제해야 하는 선장에 대한 인사변경이 실시되었다. 원래는 이 배를 실제 선장이 항해해야 했으나 실제 선장이 돌연 휴가를 내는 바람에 대리 선장이 선장으로 들어와서 항해를 지휘하게 되었다. 그런데 실제 선장이 휴가를 간 진짜 이유는 세월호를 개조할 당시 세월호의 실제 선장은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그게 묵살되자 운항을 거부하고 휴가를 낸 거였던 걸로 밝혀져서 사람들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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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 세월호에는 차량 150여대와 승무원 29명, 화물기사 33명을 포함해 총 476명이 탑승해 있었다. 이 중에는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전에 발표된 해운사의 브리핑에서는 탑승자가 477명이라 했지만, 오후 브리핑에서 승선권과 탑승명부를 조회한 결과 462명으로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후 23시경 해운사는 475명으로 총인원수를 정정하였다. 이번엔 CCTV로 탑승자를 일일이 헤아렸다고. 그러다가 475명 중에서 2명은 배에 탑승하지 않았다는 게 확인되고, 승선원 명부에는 없지만 그냥 배에 탄 사람들 3명이 확인되어 4월 18일 오후 10시경에는 476명으로 정정되었다. 외국인중국 국적조선족 두 명을 포함하여 총 5명이 탑승했으며 필리핀 가수 2명은 구조되었으나 중국인 이OO와 조선족 이OO와 러시아 출신 학생은 4월 21일 수색작업에서 발견되었다.# 러시아 출신 학생은 단원고 유학생인데, 주니어 수영 선수 출신으로 수영에 매우 능숙했다고 한다.# 객실에서 있으라는 방송만 아니었다면 생존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런데, 실제 탑승객 수가 476명을 훨씬 상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가 있다. 해당 기사의 주장에 따르면 총승객 수로 알려진 476명 중에서 당연히 차량을 가져가지 않은 단원고 학생과 개인 차량을 여객선에 적재하고 다니지 않는 승무원, 차량을 가져가지 않거나, 행사 진행 보조용으로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두세대 이상 가져가지는 않았을 단원고 교사를 제외한 인원은 107명인데 적재된 차량이 150여대라고 한다면 107명의 승객이 1인당 1대 이상의 차량을 가지고 승선한 셈이 된다는 것. 이 주장에 따라 보면, 최소 40여명, 한 차에 여러명이 탄 경우도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하면 그 이상의 승선인원이 파악되지 못한 상태일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세월호 사고의 사망자수가 남영호 사고의 326명을 넘어 국내 최대규모 해난사고가 될 가능성이 있게 되었다.

또한 구조자 숫자도 정확하지 않다는 기사가 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전에 구조된 이용주(69)는 처음엔 구조자 명단에 포함됐다가 갑자기 명단에서 사라졌고 정부가 18일 최종 수정한 구조자 174명 명단에도 빠져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이용주와 같이 해남종합병원으로 이송된 2명(최 모(49), 전 모(17)) 또한 명단에 빠져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22일 현재 구속 수사중인 1등항해사 강 모(42) 또한 구조자 명단에 없어 최소 4명이 누락된 것으로 보여 구조자 숫자는 178명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여전히 중복집계된 인원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많은 수의 일반 승객들이 병원에서 퇴원 후 집으로 되돌아가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이에 대해 공식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단, 위 기사에서는 모든 차량의 운전자가 선박에 탑승했음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제주도행 카페리의 경우 차량만 선편으로 보내고 운전자는 비행기등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즉, 일부 차량은 운전자 없이 차량만 적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미확인 탑승자의 수가 상당할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승선객 명단 외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는 것을 보면, 실제로 실 탑승객이 공식 발표 인원보다 많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1]

사고 당일 오전 8시 58분경 해양경찰이 관매도 인근 남서방 1.7마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한 제주행 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신고를 접수받고 경비정과 헬기를 총동원하여 급히 출동하였고, 군 당국 또한 구조를 위해 현장에 함정 20여 척과 공군 수송기, 해군 SSU, UDT/SEAL, 육군 특전사 잠수요원 등을 투입하였다. 인근 상선이나 어선들도 조난자 구조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인근 해상에 있던 미 해군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본홈 리처드' 함도 헬기를 지원했다고 한다.

타이타닉호와 침몰일이 딱 하루 차이로 비슷하다는 것 때문에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2] 억지로 비교하는 기사들도 있었지만, 사실 타이타닉과 비교당하면서 제일 지적받았던 부분은 무엇보다 사고 발생 후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의 대응 자체가 달랐다는 것이다. 항목에도 있지만 타이타닉의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피난을 돕거나 배를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대부분은 배와 운명을 같이했지만 세월호의 선장과 대부분의 갑판직 선원들은 승객을 버리고 탈출하였다. 서울신문에서는 타이타닉 침몰 사고와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를 이 사건과 비교하며 승객들을 놔두고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트위터에서는 외국인들도 #PRAY FOR SOUTH KOREA 트위터 메시지들이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실종자의 생환과 사망자에 대한 애도에 동참했다. 사고를 보도한 뉴스에도 많은 해외 네티즌들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댓글을 달고 있다고 한다.# 덧붙여 해외 웹에서는 사건 사고와 관련된 한국 자료가 영어로 번역되어 퍼지고 있다. 1 2 3


또한 승무원이 '객실에서 대기하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합니다', '객실이 더 안전하겠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한 것도 상식 밖이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는 잠수가 어렵기 때문에, 침몰하는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면 탈출이 더 어렵다. 물에 빠졌을때 구명 조끼를 입는다면 생존율이 크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구명 조끼를 입어봐야 물이 천장까지 차버리면 무용지물이기 때문. 에티오피아 항공 961편 납치 사건 항목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이타닉(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설계자의 판단에 의해 배의 침몰이 확실시 된 이후에는, 모두 갑판으로 나오라는 선장의 지시가 있었다. 그리고 객실안으로 다시 승객들이 상황을 오판해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궜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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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 조끼를 입은 후에는 일단 폐쇄된 실내에서 빠져나와, 바로 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탁트인 공간으로 나가는 것이 국제 해운계에서 통용되는 기초 상식이다. 그래서 배를 여러 번 타본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방송을 믿지 않고 탈출해 대부분이 구조되었지만(#), 이를 몰랐던 단원고 교사와 학생들은 대부분 안내 방송을 믿고 선내에 있었던 탓에 피해가 늘었다.

실제로 세월호를 구조하러 간 배들 중 가장 먼저 도착한 유조선 두라에이스(2720t)호가 세월호에 200m 지점까지 접근했을 시점인 9시 23분경에, 선장의 퇴선명령이 내려져 승객들이 구명 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들기만 했다면 대부분 구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위의 사진을 보다시피, 9시 23분경에는 배의 좌현 쪽도 거의 침수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태평양 한복판 같은 망망대해도 아니고 육지[3]에서 가깝고 당시 구조하기 위해 경비정과 근처에 있는 수십척의 배들 대부분이 세월호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선원들의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대처와 승객들(특히 단원고 교사진)의 해난 긴급 상황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인해 일어난 판단 착오가 대형 참사를 부른 것이다. 일종의 권위가 만들어낸 오판과 참사라고 볼 수 있다.

침몰 직전에 객실 안에서 촬영된 동영상.# 화질이 나쁘지만 같은 영상. 단원고 학생 대부분은 안내 방송을 신뢰하고 구명조끼를 입고 객실 안에 대기하고 있었다.

참고로 마침 9일 뒤인 4월 25일에 스페인에서 여객선에 불이 나는 바람에 긴급 회항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때 선원과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객실 밖에 나와 있으라고 했고 침착하게 대피시켰으며, 전원 구조되었다.# 이 사건과 비교해 언론 등에서 비난을 하기도 했다.

버스와 달리 배에는 창문을 깨고 탈출하기 위한 탈출용 망치가 없었기에 피해자가 많았던 거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며칠 뒤, 원래 세월호에는 탈출용 망치가 있었으나 학생들이 탈출용 망치를 가지고 장난칠 것을 우려해서 제거했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후에 밝혀졌는데, 애초에 몇명 혹은 혼자서 주먹으로 세게 내리치면 세월호의 유리창은 손쉽게 깰 수 있다고 한다.


  • 세월호에 승객들이 탑승한 시점부터 마지막 구조와 침몰 때까지의 영상을 종합한 세월호 94분간의 영상 기록. #


  • 2014년 9월 21일, 일본 후지TV의 시사 프로그램 Mr.Sunday는 '생존고교생이 말하는 "기적의 생환" ~한국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방송했는데 이 방송이 올라간 유튜브에 우리말 자막이 덧붙여져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


  • 2014년 12월 20일, 미국 뉴욕WCC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있는 오스틴 오레쵸(Austin Orecchio)가 제작한 다큐영상 'Day of the Living Dead', 우리말 자막이 덧붙여졌다.#

3. 사고 일자 및 시간대별 상황


세월호 참사 각 월별 기록
2014년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2015년 1월 2월 3월 4월 5월 6 7 8 9 10월 11월 12월

세월호 참사 일자별 기록
2015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해당 일자가 종료된 후에 하위 항목으로 분할해 주시기 바랍니다.

3.1. 4월 15일

  • 관련 기사나 링크에서 구체적인 시간이 나와있는 경우만 타임라인에 넣습니다.

2015년 4월 15일
시 분

3.2. 상세


4. 사고 배경

4.1. 세월호의 제원

  • 상세 내용은 세월호 항목을 참고.

세월호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의 하야시카네선거(林兼船渠)에서 건조한 카 페리선이며, 건조 후 일본 마루에이 훼리(マルエーフェリー)사에서 18년 넘게 'Ferry Naminoue(フェリー波之上, 페리 나미노우에/나미노우에마루)'라는 이름으로 가고시마~오키나와 나하간 운항하다가 2012년 10월 1일을 마지막으로 퇴역되어 중고 선박 시장에 매물로 나온 것을 청해진해운이 2012년 10월에 매입하여 개수작업을 거친 후 '세월호(世越號)'라는 이름으로 2013년 3월부터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하고 있었다.

세월호와 오하마나호는 유일하게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였다. 인터넷에서 세월호나 오하마나호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그 이유. 그러나 청해진해운이 면허 취소가 되고 사실상 회사가 사라지게 되어서 더이상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는 없다.

명칭인 세월호는 (世)상을 넘는다(초(越)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름은 유병언 회장이 직접 지었고.작명을 사유로 한번 출항시 수천만원의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참고로 흔히 말하는 그 세월은 한자로 歲月(해 세 + 달 월)이라고 쓴다. 당초에는 정확한 한자표기가 알려지지 않아 가장 흔한 단어로 음차한 명칭인 歲月號라는 명칭으로 일본, 중국, 대만 등지에서 보도되었으나 정확한 한자 명칭이 나오고 나서부터는 수정 보도되고 있다. 중국 방송의 수정 보도(중국어 링크): 한국 조선일보를 인용하였다고 되어 있다. 원래 중국어권에서는 표음문자의 특성상 외국어의 정확한 명칭을 알아낼 때까지는 가칭을 쓴다.

4.2. 선박 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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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노우에마루 시절 세월호 시절
승객 더 태우려 선박 개조?.."구명보트 오작동" 결함 의혹이란 기사에 따르면, 당초 600명 정도[4]가 타는 배였는데 300여명 정도를 더 태우기 위해 배 뒤쪽을 개조했다는 전직 세월호 기관사의 증언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객실을 증축하면서 세월호의 무게는 퇴역하기 직전보다 239톤이 증가했다. 또한 이게 첫 개조가 아니었는데 일본에서도 이미 1994년 건조한 지 불과 한달만에 589톤이 증가했었다. 결국 맨 처음 개수했을 당시 5,997톤이었던 선박은 총합 838톤이 늘어서 사고 당시 순수 선박의 무게가 6,835톤에 달했다.

상세 내역은 선박 개조 논란 쪽을 참조.

5. 사고 상황

5.1. 세월호에 탑승했던 단원고 학생 인원 현황 및 배치


연합뉴스 측에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학생들은 위와 같이 선실에 배정되었다고 한다. 도면상으로 확인되는 선실 대부분의 출입구 방향이 선체가 기울어진 쪽 반대 방향이다.

선체가 90도 이상 기울면서 출입구쪽 벽면이 천장으로 바뀌었고, 아래 후술하지만 벽을 타고 올라갈수가 없는 구조였기때문에 대피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5] 하지만 수사 상황을 보면 대피를 못했다기 보다는 승객들이 안내 방송을 믿고 대피를 안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무리 배가 기울어져도 승무원의 퇴선명령(지시)가 있었고, 승객들이 적극적으로 탈출하려 했다면, 창문을 깨는 방법 등으로 출구를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탈출 선원들 "구조순서 밀릴라"…승객대피 안 시켜

2주 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휴가 중이었던 선장은 선박의 복원력이 저하됐다고 사측에 의견을 제시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부)는 전했다.#

5.2. 침몰 원인

배가 완전히 인양되어 조사가 되기 전까지 확실한 원인을 파악하긴 힘드며 특히 3천톤 이상 국제 여객선과 화물선을 제외한 배는 선박용 블랙박스 설치 의무가 없어 정확한 판단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4월 17일 13시 30분 기준 해경은 급선회로 인해 선박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그대로 침몰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자세한 내용은 /침몰 원인 항목 참조.

5.3. 선장을 비롯한 선박직 승무원들이 퇴선 지시를 지체한 원인

선장 이준석이 구속될 때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사고 해역은 맹골수도로 물살이 굉장이 빠른 지역이다. 구조선이 도착하기 전에, 지나치게 빨리 바다에 뛰어들 경우 빠른 조류의 영향으로, 사고 지점에서 상당히 멀리 떠내려가서 생존 확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세월호 침몰 당시, 사고 해역의 수온은 약 11~12도 정도로 추정되며, 그 정도의 수온에서는 구명조끼를 입어서 물에 떠있는다 하더라도, 생존 시간이 일반적으로는 1시간, 최대 2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조류로 떠내려갈 경우, 바다에서 1시간 이내에 다른 선박에 발견되어 구조되기는 지극히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09시 20분경, 사고 지점에 최초로 도착한 유조선 두라에이스호는 2700톤급 선박으로 작은 가 아니다. 충돌 우려 때문에 세월호에 가까이 붙여서 구조할 수 있는 배는 아니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명정은 모두 불량이어서 펴지질 않는 상태였다. 따라서 선박직 승무원들은 구조선이 도착한 이후에도 500여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이기 때문에 승무원 신분인 자신들이 구조 우선 순위에서 밀릴 것이라는 우려와 구명정 승선절차 없이 그냥 퇴선 명령을 내려서 바다에 500여명이 구명조끼만 대충 입고 뛰어든다면, 비록 어느 정도는 구조된다고 하더라도, 조류에 밀려 떠내려가는 인원을 감안하면, 최소 수십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면서 판단을 지체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배는 더욱 기울었고, 결국 자신들이라도 먼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대피 방송이고 뭐고 일단 빠져 나오는데 급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선원들이 승객들의 구조에 대해서 일단은 고려해보긴 했을 것이다라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나온 것이고,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순직한 서비스직 승무원 박 아무개가 무전으로 계속 퇴선명령 여부를 조타실에 문의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무전기는 무전기를 가진 전원에서 송수신 내용이 다 들리기 때문에 못 들었다거나 고장났다거나 하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즉 자신들의 목숨 이외의 선박직 이외의 다른 승무원을 포함한 승객들은 자신들이 구조되는데 걸리적대는 장애물로밖에 보지 않았던 정황이 드러나는 것이다. 결국 이들 선박직 선원들은 해경 123정의 보트에 의해 기관직 승무원들 다음 두 번째로 구조되었지만 자신들의 안전이 확실히 확보된 이후에도 승객 퇴선 명령은 내리지 않았고 해경에 그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승무원 중 1등 항해사 강 아무개는 구조된 이후에 자기 휴대폰을 챙기려 배에 다시 올라갔다 오면서도 퇴선명령을 끝내 내리지 않았다.

그냥 아무 지시도 없이 줄행랑을 친 것도 아니고 안내방송으로 승객들의 발을 묶어놓고 자신들은 안전하게 구조된 이 행동이 어찌나 기이했는지 처음 사고소식을 듣고 현장에 출동했던 어선의 선장은 갑판 위에 나온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사고현장상황을 배가 화물선이어서 승선인원이 얼마 안 되거나 이미 상당수 인원이 구조되었단 상황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긴 상식적인 상황이라면 이렇게 판단하는게 무리가 아니다.

안내방송을 담당한 승무원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안내방송 담당 서비스직 직원 강 아무개는 사고 최초시점에서 기운 배에서 움직이면 위험할 거 같아서 자기판단하에 첫 안내방송#을 했고 이후 조타실 지시에 따라 선내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했다. 그리고 9:30분 이후 선원들이 탈출하여 더 이상 추가지시가 없음에도 대기하라는 내용의 방송을 10시까지도 되풀이했다. 결국 침수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시점(=직접 위험인지)이 되서야 탈출명령은 전파되었으나, 이미 배는 심하게 기울고 물은 급격히 들어와 다수의 내부승객들이 탈출의 적기를 놓쳐버렸다.

이번 참사에서 인명피해가 극대화된 가장 어이없는 원인이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었음을 생각할 때 안내방송 담당자의 책임도 가볍지는 않다. 선박직 승무원은 아니지만, 안내방송을 한 강 아무개는 1년이상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사람이었지만 선박안전에 대한 지식에선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일반인만 못했다. 기울어진 배에서 움직이면 넘어지거나 움직이는 물체에 부딪쳐 다칠 수 있다는 안전교육 내용은 떠올려서 자기판단으로 방송을 했지만 '배가 복원한계를 넘어가 기울면 결국 침몰하며 기울수록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지식은 갖고 있지 못했다. 탈출지시여부를 물었으나 선박직 선원들에게서 어떠한 응답도 없는 상황에서 승객들이 동요하자, 동요를 막기 위해 (자기도 상황파악을 못하면서) 방송을 되풀이했다.# 조타실의 추가 지시가 없는 상황에서 아예 안내방송을 하지 않았다면 승객들은 알아서 각자 살길을 찾았을 것이다. 퇴선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다고는 하지만, 시시각각 배가 기우는 것을 몸으로 느꼈을 상황에서 대기지시후 무대응으로 일관한 선박직 승무원들에게 무언가 사고로 인해 신상에 이상이 생긴 것 정도로 자체판단하고 탈출을 지시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안내방송을 안할 수는 없었는지 두고두고 안타까운 부분이다. 안내방송 담당 직원들은 승객과 떨어진 채 고립된 곳에 있었던 게 아니라 3층 로비에서 일반인 및 일부 학생승객들과 함께 있었다. 배침몰 상황에 대한 안전교육을 받거나 관련 지식이 있었다면 기울어져 움직이기 힘든 상황을 보고도 대기명령을 그대로 따르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사고초기 인터뷰 내용을 보면 사고책임을 의식했는지 안내방송의 정확한 경위에 대하여 얼버무리는 모습도 보인다.

배식을 담당하던 주방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이 직원은 성실하지만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고 한다. 안내방송 담당 강 아무개도 결국 검찰에 구속되었다. # 조타실과 안내방송 지시의 주체와 경위에 대한 수사 필요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의미에서 보면 이 직원은 대기지시를 믿고 착실하게 따른 탓에 참사를 당한 학생&교사들과 더불어 지시 매뉴얼을 믿고 고지식하게 따른 탓에 결과적으로 악마의 방송을 해 버린 피해자로 보는 시각도 가능하다.

그 외에 배안에서 대기하라고 한 추가적인 이유는 과거 세모그룹 시절 너무 일찍 물속에 뛰어들어 희생자를 많이 낸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구조선이 올 때까지 배안에서 기다리라는 것이 청해진 해운 회사 내부 지침이었다고 전해진다. 하필 또 이 사고 당시의 승무원 중 하나가 이준석이었다. 즉 이준석에게 사고났을 땐 배에 대기시키는게 안전하다란 잘못된 경험칙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6. 구조 및 수습 과정

6.1. 사고 보도 및 가족들의 반응


4월 18일 저녁부터 5월 8일까지 팩트TVGO발뉴스가 공동으로 취재하며 세월호 사고 현장을 생중계(대부분 시간은 현장 방송을 재방송으로 방송중)했다. 5월 8일 이후 합동생방송을 종료하고 각자 보도하고 있다.

다른 방송은 여기(욕설이나 실신등 자극성이 심한 장면이 찍힐경우 방송이 잠시 끊기기도 한다). 아무런 지원이나, 방송사 관계 없이 한 남성분이 독자적으로 방송하고 있으며, 방송 중간에 상황설명에 대한 코멘트를 하고있는데 사고자 가족들의 감정이 북받쳐 울음바다가 될 때마다 방송진행자 역시 울먹이며 방송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혼자 방송하기 때문에 힘든점이 많다고 토로하고 있으나, 현장에 뛰어들어가 방송하기보다는 사고자 가족들의 상황을 담담히 전하고 싶다고 4월 19일 오후 방송 중에 밝히기도 했다. 차이점은 카메라 각도와 소리가 좀 작고, 계속 현장 상황만 중계한다는 것. 4월 22일 오후에 방송을 중단하고 현재 서울광장 합동 분향소를 중계하고 있다.

현재 사고자의 가족들이 강당에 모여서 구조 관련 소식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 급하게 현장으로 달려온 학부모님들이 많은 관계로 현장에 생필품 등이 부족하였으나 각지에서 구호품이 도착하였고, 4월 19일 이후로 개인 구호품은 접수받지 않고 있다.

사고 당시 구조된 사람들은 정신적 충격이 심해서 외부면회가 통제된 상태이며 특히 단원고 학생들의 정신적 충격이 특히 심각했다. 단원고 학생들 중 구조된 학생들 중에서 거의 PTSD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이에 따라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단원고 1학년과 3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PTSD 검사를 실시했다.# 배에 탑승한 2학년 학생들의 PTSD 증상이 매우 심한 관계로 교육부에서는 학교가 아닌 병원에서 수업을 하도록 조치했으며 수업과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학부모들은 현장 상황이 언론이 전파하는 상황과 많이 다르다고 주장 중이다. 수색이 지지부진한건 둘째치고 의지조차 있는거냐며 학부모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오죽하면 현장책임자가 경비정에 탑승하고 있는 학부모들을 통해 상황파악을 하고 있을 정도라고... 현장에서 한 학부모와의 인터뷰 내용 결국 여러 가지 일로 실종자 가족들은 불신이 커졌고, 4월 20일에 청와대로 가겠다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수학여행 총책임자 자격으로 세월호에 동승했던 단원고등학교 교감이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되었다. 경찰에 의하면 학생들을 구하지 못하고 자신만 구조된 것에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그동안 단원고 교감은 "나만 구조됐다"며 자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교감의 지갑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이러한 자책의 감정이 담겨있어,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또한 단원고 교감이 사고 당시 가능한 한 생존자들을 구하며 배에 늦게까지 남아있다가 탈출했다는 것이 밝혀져 더욱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버락 오바마의 명령에 의해 세월호 사고 현장 구조작업에 투입된 주한미군"아직 포기할 단계가 아니다, 실종자들을 충분히 구조할 수 있다."고 말하며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했고 구조작업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6.2. 사고 발생 이후 세월호의 상황 및 구조의 어려움

6.3. 인양 크레인선 제원 및 작업 상황

6.4.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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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세월호 3등칸의 모습. 여학생들이 탄 선미 부분의 대형실들이다. 잡을 것 하나 없는 형태로 되어 있어, 배가 기울었다면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참고로 세월호만 이런 건 아니고 국내 여객선 3등칸은 대개 저런 형태다. 더 자세한 내부 사진은 이 링크[6]를 참고.

선박 사고 특성상 일단 가라앉은 뒤에는 구조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히 사망자 수로만 따지면 남영호 침몰사고보다는 적지만, 사망자 중 대다수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안산단원고 학생들이기 때문에 사회적 파장을 감안한다면 한국 역사상 최악의 선박 사고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사고 발생 후 100시간 이상 경과해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가정하면 이미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의 인명 피해를 넘어섰다. 무임승차한 인원의 규모를 알 수는 없지만 남영호 사고의 사망자 숫자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상황이 좀 다르지만 2013년에 대서양에서 선박 전복 사고로 바다 밑에 갇혀있던 선원이 선내에 남아있는 공기(에어 포켓.air pocket)로 연명하다 3일만에 구조된 경우(한글기사 / 영어기사)[7]도 있기 때문에 최종결과가 나오기까지 모두 사망했다는 판단은 금물이라는 주장이 구조 초반에는 지지를 얻었다. 에어포켓 관련기사

하지만 에어포켓 생존자설은 허구였던 것이 일단 하나하나 설명을 하자면 위의 사례는 비교적 따뜻한 바다였고, 유속도 느리고 무엇보다도 배가 작아서 수색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잠수부가 비교적 빠르게 3일안에 진입할 수 있었다. 세월호는 훨씬 큰 배이기 때문에 구조 작업 자체가 훨씬 어려워서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그리고 이런 에어포켓 주장은 이미 천안함 피격사건에서도 이미 전국민을 3일간 감쪽같이 속인 전력이 있다. 당시 천암함은 두쪽난 채로 침몰했기 때문에 에어포켓이 형성될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언론은 지속적으로 에어포켓이 형성되었을 경우 내부의 사람들이 69시간 동안은 생존할 수 있으니 69시간이 골든타임이라는 주장을 일관적으로 내보냈다. 그나마 "천안함은 에어포켓이 형성될 수 있는 수밀격벽 구조이긴 하지만, 자동으로 격실벽문을 닫혀 폐쇄되는 구조가 아니라 수동으로 닫아야만 하는 구조인데 과연 그 급박한 상황에서 문을 닫을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는 하였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 희생자들이 침몰 직후 거의 바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자, 그제서야 언론은 "잠수함도 아닌데 물속에서 어떻게 3일동안이나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겠는가?" 또는 "수밀격벽은 맞지만 환풍통로가 차단되어 있지 않아 환풍구를 통해 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결국 완벽한 수밀 구조는 아니다." 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뒤늦게 보도하였다.

이번 역시 에어포켓 주장은 여전했다. 차이점은 천안함은 처음부터 두쪽나면서 가라앉았기 때문에 수밀이 애초부터 불가능했지만, 온전하게 가라앉은 세월호는 에어포켓이 존재할 가능성이 분명 존재하기는 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뒤집혀서 가라 앉은 세월호는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물위에 떠 있었다. 이것이 에어포켓 존재설의 결정적인 증거였다.

에어포켓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사람은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인데, 그는 내부에 에어포켓이 존재할 테니 빨리 생존자들을 구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잘 알려진 미디어들 중에서는 오직 JTBC만이 사건 초기부터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분석하는 전문가의 인터뷰를 보도[8]했다. JTBC 9시 뉴스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에어포켓은 온몸 전체가 그 공간 안에 있을 때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몸의 일부는 물 속에 있는데 머리 위에 숨 쉴 공간 약간만 존재하는 형태로는 산소 부족의 문제는 없을지 몰라도 체온이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생존이 불가능하며, 온 몸 전체가 들어갈 만한 에어 포켓은 형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9]

기본적으로 세월호는 잠수함이 아니기 때문에 에어포켓이 존재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배가 한 시간에 걸쳐서 180도 회전하면서 침몰하는 바람에 골고루 물이 차올랐기에 천장 쪽에 에어포켓이 생기는 것도 여건상 불가능했다. 생존자들이 촬영한 영상에 의하면 배가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탈출하려 할 때 열려있는 문 쪽에서 물이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 것이 확인된다. 다시 말하자면, 배가 누운 상태에서 문은 천장에 해당한다. 이미 이 천장까지 물이 차올랐던 것이다. 즉 한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배는 이미 물이 가득 찼고, 심지어 해경이 찍은 영상 중에는 배 안에서 물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영상까지 존재한다. 이런 정황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마저 착각하게 만든 요인은 세월호의 뱃머리가 떠있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 부분에 에어포켓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이곳은 원래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가 채워져야 할 공간이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 결과, 세월호는 평형수를 권고 기준의 4분의 1 정도만 채운 것으로 드러났다. 평형수가 부족한 사실을 몰랐던 상황에서 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이유를 에어포켓에서 찾게 된 셈이다.#

언론의 에어포켓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국민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상대로 한 희망고문과 구조방식의 왜곡이라는 좋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특히 후자의 경우, 사건 초기에 민간인 잠수사가 창문으로 사망자를 확인한 뒤 창문을 깨고 시신을 인양하려고 했으나 창문을 깨면 바닷물이 들어가 에어포켓이 사라진다는 논리로 시신 구조를 막은 일, 에어포켓을 유지하기 위해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며 수색에 지장을 준 일 등이 벌어졌다.

최종적으로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뒤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애시당초 실종자들이 당일 거의 사망했을 거라는 사실이 표면화되었다. 설령 배 안에 생존자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공기와 물 등이 충분치 않기 때문.[10] 그 동안 잠수사 한명이 순직했을 정도로 철저했던 수색 작업에도 불구하고[11] 여지껏 단 한명의 생존자도 발견하거나 구조하지 못했으며, 실종자 중 생존이 보고된 사람도 없었던 만큼 잔혹하고 슬프게도 모든 실종자들이 사망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사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당시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선내의 사람들이 다 사망했을 것이란 걸 직감으로 알았다. 하지만 논리적인 판단을 중시하는 서구와는 달리 감성적인 면을 중요시하며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여 분위기에 어긋나는 행동을 금기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이를 표출했다가는 몰매를 맞기 쉬웠기 때문에 섣부른 표현을 안했을 뿐이다

6.5. 해경의 발표

23일, 해양경찰은 민관군 합동 다이버팀의 수색결과 에어포켓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우울한 소식을 전했다.

에어포켓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발표에 구조작업을 포기하고, 시신이라도 제대로 회수 할 수 있도록 인양작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성되자, 대책본부는 끝까지 구조한 후 인양작업을 하겠다는 발표를 급히 내놓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곳의 정조 시각을 최대한 활용해 탐색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7. 피해 상황

7.1.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피해 상황

학급 생존자 수 교사생존
2-1반 19명 X
2-2반 11명 X
2-3반 8명 X
2-4반 9명 O
2-5반 9명 X
2-6반 13명 X
2-7반 1명 X
2-8반 2명 X
2-9반 2명 X
2-10반 1명 O
총 75명 생존
총 246명 사망
총 4명 실종
2학년 학생 325명(남 175명, 여 150명)과 인솔자 14명(단원고 교감 1명+일반 교사 12명+여행사 인솔 담당 직원 1명)이 수학여행에 참가했는데, 학생 325명 중 75명(남 34명, 여 41명)만이 구조되고 인솔자는 14명 중 3명(교감+단원고 일반교사 2명)만이 구조되었다.

참고로 1~3반은 인문계 여자반, 4~6반은 인문계 남자반, 7~8반은 자연계 남자반, 9~10반은 자연계 여자반이다. 숫자가 높은 반으로 갈수록 생존자가 적어지는 이유는, 각 반 본래 정원이 자연계열 반이 인문계열 반보다 적었으며, 자연계열 학급은 배의 안쪽 객실을 배정 받아서 빠져 나오기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단원고 2학년 학생 중 비행기편으로 제주도에 갔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안산으로 복귀한 특수반 학생들과 수학여행 대신에 탁구 대회에 참가한 탁구부 여학생 3명, 그리고 항암 치료로 수학여행에 불참한 남학생 1명 등 13명만 이 사고를 경험하지 않았다.

단원고 수학여행단의 책임자였던 강모 교감(51세, 윤리 전공 교사)은 구조되었으나, 학생들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4월 18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당시 사고 현장에서 최소 7~8명을 구조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

그런데 후에 공개된 휴대전화 영상으로도 확인되듯이, 학생들에게 배가 침몰 중이라는 사실과 심각성은 제대로 전파가 안되었다. 애진이의 4월16일 세월호 탈출기 그외에 바다에서 보내온 편지라고 하여 유족들이 희생된 아이들의 스마트폰에서 복구된 동영상이나 사진등을 JTBC에 제공하여 시리즈로 총 8편이 보도되었다.

주의 : 사고 상황이 심각한 데도 불구하고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순수하게 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안타깝게 담겨있는 동영상이므로 시청 후 크게 우울해 질 수 있습니다. 또한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들은 시청하지 마시기 바랍니다.[12]

단원고 학생들의 생존율은 불과 23% 였다. 일반 승객에 비해 턱없이 낮았는데, 이는 일반 승객들은 안내 방송을 듣고 침몰 중임을 직감하고 자체 판단을 해서 생존 대책을 강구했지만, 단원고 학생들은 안내 방송과 그 안내 방송을 믿고 따른 교감 및 각반 담임 교사의 지시를 그대로 이행해 침몰 직전까지도 학생 대부분이 꼼짝 안하고 객실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 대부분은 구명조끼를 입고 객실 안에서 대기할 때, 배가 침몰 중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 받거나,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학교나 선사 측에서 학생들을 집결하여 간단한 선박 안전교육이라도 했었다면 수 십명이라도 더 살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의견을 표하기도 한다.

인솔교사 11명의 교사진 중에 단 3명만이 구조되었고, 희생된 교사들 중엔 학생들을 구하려고 갑판에 나왔다 다시 객실로 들어갔다 변을 당한 분들이 있었으며, 자살하신 교감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현재 무기한 병가를 내고 학교로 복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6반 학생들이 인접 학급에 비해 비교적 많이 생존했는데, 이는 6반 담임 교사가 '선실에 있지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생존학생 수는 75명으로 이 중 추가치료가 필요한 4명을 제외한 70명이 4월 30일 부모와 함께 안산 합동분양소를 찾아 희생된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넋을 위로했다.# 의료진은 말렸지만, 분향소가 마련된 시점부터 학생들은 조문을 원했다고.

5월 12일부터는 2학년 생존학생 69명이 병원에서 퇴원하여 6교시 교과수업을 안산 내 모 시설에서 받기 시작했다. 치유수업은 방과후에 진행하고 있으며 부모와 함께 합숙하는 형태이다. #

이전에는 실종상태인 학생들의 사망이 시신인양으로 완전히 확인되어야 교실에 남은 학생들의 물품을 처리하기 때문에 단원고 교정으로는 돌아가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6월 25일에 생존 학생들이 단원고 교정에 복귀했다.#

7.2. 일반인 & 승무원 피해 상황

세월호 탑승객 중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인솔진 14명을 제외한 일반인 승객은 104명이었다.[13] 이중 생존인원은 71명으로 약 69%의 생존율을 보였다.# 일반인 승객의 생존율이 단원고 학생에 비해 높았던 것은 일반인들은 사고 당시 인원통제를 받지 않고 개별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였고 성인이어서 사회경험&자기판단에 따라 안내방송을 믿지 않고 각자 살길을 찾아 행동했던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세월호를 자주 이용했던 화물차기사들은 30명중 29명이 구조#되었는데, 이들이 세월호를 여러번 타는 과정에서 배의 문제점을 평소에 느끼고 있었고, 배 구조에 익숙하여 비상상황에서 초행길일 다른 승객들보다 탈출로를 찾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희생자중에 단원고 학생들이 워낙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일반인 승객들은 인원집계등의 구조작업에서부터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과 배려를 받아온 측면이 있으며, 안산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서 일반인 승객들은 영정등의 배치등에서 배려를 받지 못해 일반인 유족들이 이의제기를 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세월호 참사의 같은 희생자로서 동등한 대우와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

향후 설치될 세월호 추모공원의 대상에서도 일반인 유족들이 대상에서 제외되어 일반인 유족들이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실정. #

승무원들의 경우 33명중 23명이 구조되었고 10명이 사망 또는 실종상태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선박직 중심의 일부 승무원들의 막장행각이 워낙에 큰 공분을 일으켰는지라, 승무원 희생자 또는 실종자의 유가족들은 세월호 승무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죄인이 된 심정으로 숨죽이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사고 초기 서비스직 박OO나 양00 사무장의 영웅적 일화와 이후 비선박직 승무원들이 선박직 승무원들에게 사고정황을 전해듣지 못한 채 처절히 버려졌던 정황이 드러나면서 같은 피해자로 보는 상황.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등은 알바라는 이유로 청해진해운으로부터 장례비 지급도 거부당하여 청해진해운에게 맹비난이 쏟아졌다.

7.3. 진도 및 안산 지역 피해 상황

사고가 난 지역인 진도해역에서는 사고 직후부터 인근 어민들이 구조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어 귀중한 생명을 살렸으나, 어민들로서는 사고 때문에 정상조업을 할 수 없어 나날이 경제적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만큼 구조활동에 우선적으로 전력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 현지주민들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때문에 피해는 어업조업 이외에 인근 양식장까지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아직 실종자 수습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기름방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팽목항에 실종자 가족및 구조인원이 들어서면서 종래 인근 섬으로 운항했던 여객운항이 하루 두 차례로 줄어 낙도 주민들 또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상황.#

이번 사고로 가장 많은 인원이 희생된 안산 지역의 경우, 희생자들이 모두 같은 학교이자 그 인근지역에 거주하는 관계로 해당지역에는 인명피해를 입은 가정이 집중되어 있고 이웃,친족등의 혈연 지연관계로 연계되어 있어 지역적,집단적으로 안산시는 심각한 심적 트라우마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마침 고등학교 평준화 된 이후(공교롭게도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을 비롯하여 안산지역 97년생들은 안산 평준화 1세대이다)라 집 가까운 고등학교를 가게 된 상황이여서 심한 경우 한 아파트에서 8가구의 희생자가 나온 경우도 있다. 특히 단원고 인근인 고잔1동과 와동은 두세 집에 한 집 꼴로 초상이 난 상태라 동네 분위기 자체가 침울한 상태이다.

또한 경제활동도 극도로 위축되어 50%수준으로 축소되었다. 전국적으로도 그렇지만 진도와 안산 두 지역은 특히 소비심리 및 경제활동이 극히 위축되고 있고, 대형사고의 부정적 이미지가 지역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하고 있다. 국가에서 소기업, 상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공제 사업만해도 안산, 시흥 지역에서 폐업 해지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늘었으며 이는 사업 출범 후 유례없는 일이라고한다. 100일이 경과하며 더욱 늘어나고 있다.

진도 안산 두 지역은 4월 20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으며, 진도,안산의 경제활동 회복을 위하여 금융지원등의 추가 대책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안산시에서는 피해 유족에 대한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해주고 있으며,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유품(옷가지, 책, 책상)을 유품 정리 신청받는대로 무상으로 수거하여 시내 소각장에서 무료로 소각해주고 있다.#[14]

7.4. 그 밖의 피해 상황

배를 이용한 수학여행, 나아가 수학여행 자체가 금지되었으며, 이 때문에 국내 단골 수학여행지로 꼽히는 제주도, 경주, 설악산 등의 관련업체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어 해당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관광, 전세버스 업체도 마찬가지로서 4월무렵이 수학여행으로 이들 업체의 성수기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 영업은 거의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결국 단순한 사고여파로 감수(甘受)하기에는 연쇄적 피해가 현저하자, 안전을 전제로 수학여행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특히 수학여행 관련 업체이라기보다는 사고이후 관광업계 전반이 꽤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사고 시일이 지나면서 조금 경황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면서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

국가적 차원에서 세월호 사고 수습에 들어가는 비용은 직접피해보상액만 최소 5500억#에 달하며, 직간접적 비용을 합친 총비용은 2조원에 달한다는 견해#까지 있다. 도주및 책임회피중인 유병언 일가를 붙잡아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비용을 모두 커버하기에는 모자랄 수 밖에 없으며, 국세로 충당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들이 있는 재산을 순순히 내놓을 위인들도 아니라서...처리과정에서도 지난한 법적 절차와 더불어 온갖 추하고 짜증나는 꼴을 보게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세월호 사건 여파로 파생되는 각종 사안이 사회 전분야로 확산되고 있으므로, 직간접으로 예상치 못하는 분야의 사람들이 불이익[15][16]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세월호 사고는 이를 지켜보았던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도 깊은 정신적 상처로 남았다. 나름 구조시간과 구조기회가 있었음에도 거듭된 삽질대처와 어른들 말을 잘 따른 결과로 학생들이 어이없이 천천히 수장되는 모습을 TV방송으로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희생자들과 비슷한 자녀를 가진 부모들,현직교사들중에서는 TV뉴스등을 보면 눈물을 흘리거나 우울감을 겪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세월호 안내방송으로 상징되는 위급상황에서 정보를 쥔 관리자측의 기만과 그 결과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비슷한 상황 또는 유사한 상황에서 대중의 관리자측 또는 권위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8. 수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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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해양경찰에 의해 진행된 수사로 선장 이준석과 항해사, 조타수, 기관사 등 배의 운항과 관련된 선박직 직원 15명은 전원 구속 수감되었다. (주)청해진 해운의 물류부장 김모와, 물류팀장 김모, 청해진해운 해무 담당 이사인 안모, 그리고 한식 대표이사도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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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사장 한식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

세월호의 구명정 정비업체인 '한국해양안전설비'의 대표도 구속되었다. 구명정이 펴지지 않는 불량 상태였는데도, 양호하다고 허위로 기재한 검사 결과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유병언 회장의 측근인, (주)아해 전 대표 이강세, 오경석(53세) 헤마토센트릭라이프연구소 대표, 김동환 (주)다판다 감사(48세)도 구속되었다.

유병언의 장남인 유대균(44세)는 검거시 일계급 특진 조건을 걸고 A급 지명 수배가 되었다. 그의 자택에 체포 영장을 들고 강제 진입했지만 유대균은 없었다. 그러나 7월 25일, 경기도 용인에서 검거되었다.

유병언의 장녀 유섬나가 5월 말, 프랑스에서 인터폴에 의해 체포되었다. 현재 인터폴은 유병언을 수배중이다.

미국에 체류 중인 유병언의 측근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 김필배 전 문진미디어 대표에 대해서는 여권 무효화 조치와 함께, 체류자격 취소를 미국 국토안보조사국(HSI), FBI에 요청했다.관련기사

미국 국세청(IRS)이 "미국 구원파교회 헌금 유용 의혹"제보와 신고, 각종 고소·고발이 있어 자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관련 뉴스

8.1. 배 운영과 승무원 관련 논란

우선, 4월 17일 시점에서 수사본부에서 조사중인 혐의는 다음과 같다. 선장은 만약 배가 급회전으로 넘어진 게 사고 원인일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있고,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선박법 위반 혐의도 추가된다. 다른 승선원들은 선장 지시 없이 선박을 떠났거나 인명 구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선원법 위반 혐의가 있다.#

불과 11일 전에 같은 회사-청해진 해운의 배에서 사고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 이번 사고와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은 상황.

해경의 발표에 따르면, 사고 당시 본래의 선장이 휴가 중이어서 다른 선장인 이준석이 대리 운항을 했다고 한다. # 하지만 선장의 대리 운항은 자격 조건만 되면 흔히 있는 일인지라 무조건 대리 운항 자체를 나쁘게 보는 건 지양해야 한다. 또한 이후 이준석 선장은 원래 세월호와 오하나마호를 오가며 전문적으로 대리운항을 했던 사람이라는 증언이 나오면서 선장으로서의 능력과 경험은 충분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정적으로 한 달에 절반은 ‘1선박 2선장’ 지휘체계 산으로 갔던 세월호라는 증언이 나와 이준석 선장은 대리운항이 필요할 때만 탄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서 한달에 15일은 세월호를 탔던 전문가라는 점이 입증되었다. 원래의 선장은 신모로, 신 선장은 배의 복원성 문제와 과적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평상시에도 계속 본사와 인천항만공사에 문제제기를 하였으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고 당일 휴가를 냈다는 설이 있다. 신 선장은 사건 초기부터 JTBC와 인터뷰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세월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에 반해 이준석 선장은 청해진해운에서 퇴직한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다가 다시 계약직으로 채용된 대리 운항 전문 선장으로 평소 회사에 고분고분했다고 한다. 이는 이준석 선장이 구원파 신자이기 때문에 특혜차원에서 이루어 졌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막상 재판에 들어가니 원래 선장인 신선장이 "나는 수습 보조 선장일뿐 원래 선장은 이준석 선장"이라고 주장 했다. 그러나 신선장은 사건 초기부터 언론사와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했었는데 그때부터 자신의 보조선장 설을 일관되게 주장하면 모르겠지만 재판에 와서 처음 주장하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다만 신선장 말이 사실이라면 왜 잉여인 이준석 선장이 평상시에도 신선장과 함께 배를 탔는지 의문이 해결되기는 하다. 처음 일본에서 세월호를 몰고 왔을 때 이준석이 선장이었고, 신선장이 1등항해사였다. 이 둘은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사건 초기 이준석은 사고 원인을 묻는 질문에 “암초 충돌은 아니다. 갑자기 가라앉았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다”고 답했다.[17] 이준석은 부상을 당해 옆 침상에 누워있던 경기 안산시 단원고 학생들이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 귀를 세워 듣기도 했다. # 자신이 선장이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선장이 아니라 선원이라고 발뺌했던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도의적 책임 논란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또한 꼬리뼈에 부상을 입었다며 치료를 원했지만 병원에서는 이상 없다고 돌려 보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부상을 호소하는등 계속해서 면피성 발언만 하고 있다.

사건 초기에 이준석 선장이 상의는 스웨터를 입고 하의는 팬티만 입고 탈출하였는데 그 이유로는 3가지가 꼽힌다.[18]

첫째로는 선원인 사실을 숨기기 위해 급히 선원복을 벗고 탈출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다른 승무원들도 사복으로 갈아 입고 탈출했으니 일견 합당해 보인다. 그러나 모두가 이준석 선장처럼 팬티만 입고 탈출한 것은 아니다. 사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승객들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객실을 지나서 옷을 갈아입고 유유히 돌아온 선원도 있는데다가, 조타실에 모여 있다가 탈출할 때까지 한시간 가량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두르다 그렇게 되었다기보다는 갈아입을 사복이 없었다는 쪽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또한 사복을 입고 있어 선원인지 모르고 구조했다는 해경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언론이 그대로 받아 적다보니 그런가 보다 했지만, 해경에서 찍은 구조순간의 영상을 보면 다른 선원들은 작업복을 입고 있어서 누가 선원인지 알 수 있었다. 즉 모든 선원들이 사복을 입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결과론적이지만 선원복을 입고 있어도 해경은 조타실부터 배를 붙여서 선원부터 구조했을 것이다.

둘째로는 술에 취해 늦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옷을 제대로 갈아입을 시간이 부족했을 거라는 추측이다. 이준석 선장 본인은 사고 당시에 대해 담배를 피우느라 자신이 조타실을 잠시 비운 동안 배가 급격히 기울어 조타실로 급히 돌아왔다고 진술했으나 #, 선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사고 전까지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평상시에도 술에 자주 취해 있었고, 항해기간 내내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자느라 식당에 늦게 나타나 아침을 혼자 먹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고 당일 그는 식당에 늦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고, 이로 미루어 볼때 줄곧 늦잠을 자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조타실을 지켰다는 진술은 당연히 거짓이다. 그러나 해경에 의해 구조된 직후 해경이 선원이냐고 묻자 아니라고 거짓 대답하는 바람에 음주측정이 이뤄지지 않아 그의 음주 여부는 추측에 그친다. 다만 이 선장이 술에 취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300명이 물에 빠져 죽는 순간을 TV로 시청하며 태연하게 곰탕에 밥말아 먹거나 방송사의 카메라들 앞에서 유유자적하게 걸어다녔던 등의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 어느 정도 아귀가 맞는다.
당시 여러증언들을 보면 사건 발생 이후 사건을 일으킨 3등 항해사는 구석에서 울고만 있었고[19] 실질적으로 1등 항해사가 지휘를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준석이 술에 취해 지휘 능력을 잃은 것은 선장실에 가서 바지도 못 갈아 입을 정도로 몸을 가누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세번째는… 전기세가 아까워 간단히 설명하자면 필리핀 여가수랑 방에서 검열삭제를 하다가 갑작스러운 사고에 놀라서 팬티만 입고 도망쳤다는 것인데 필리핀 여가수의 남편도 배에 함께 탑승해 있었고, 특히 여가수는 선원들이 자신들을 구조할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증언하였기 때문에 이쪽은 언론사들이 기사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지어낸 낚시용 루머로 보인다.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이들은 조타실 바로 뒤에 객실이 있어서 선장과 함께 1차로 구조되었다. 애초에 필리핀 여가수 라는 이유로 문란하거나 돈을 위해 몸을 팔것이라고 넘겨짚는 자체가 인종차별적인 매우 저열한 발상이다. 필리핀 정부한테 직접 항의 먹어도 찍소리도 못할 수준.

사고 시각 당시 배의 운항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은 선장인 이준석이 아니라 20대의 3등 항해사인 25세의 여성 박 모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 사건 초기 대부분의 언론들은 왜 경험없는 3등 항해사에게 조타실을 맡겼냐고 집중적으로 추궁했고 심지어 키를 잡은 것이 조타수라는 점에 놀라 비난했다. 하지만 이것은 선박의 운전대를 선장이 파이프 담배를 물고 운전한다고 생각하는 막연한 이미지에서 생긴 오류다. 일반적으로 선장은 조타실, 기관실은 물론 탑승객들까지 배 전체를 관리하고 1,2,3등 항해사들은 조타수 C,B,A와 각각 짝을 지어 시간대별로 3교대로 운항하는 것이 전세계 표준이다.[20][21] 그렇기 때문에 사건 초기에 전문가들은 이런 운항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언론에서 설명 하였다. 그러나 이후, 해경 조사에 의하면 위험지역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선장이 지휘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이 부분을 고려하면 완전히 제대로 운항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세월호의 매뉴얼에는 이러한 규정이 빠져 있다고 한다.
문제가 되는 3등 항해사 박은 총 경력 1년 남짓에 해당 노선의 운항 경험은 4개월 정도에 지나지 않은 초짜라는 부분도 언론에 의해 집중적으로 추궁되었으나, 항해사 경험자들에 의하면 항해사들은 이미 해양대에서 실습을 통해 수많은 경험을 쌓는데다가 하루에 8시간씩 운전하니 1년이면 100일만 운항해도 800시간을 조함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경험면에서는 충분하다고 한다. 그런 데다가 3등 항해사는 조타수 중에서 가장 경험이 많고 노련한 조타수 A(12년 경력)가 짝지어져 보좌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언론에서 문제삼고 있는 또다른 부분은 다음과 같다. 원래대로라면 국내에서 2번째로 조류가 센 맹골수로는 시간상 1등 항해사가 조함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사고 전날 안개로 인해 출항이 늦춰져 3등 항해사가 조함하는 시간에 맹골수로를 통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항해사 출신들의 인터뷰에서는 해당 시간에 3등 항해사가 조함하는 것은 전세계 공통임으로 큰 문제가 없으며, 그보다는 위험한 수로에서는 선장이 조타실에서 직접 조함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즉, 경험이 적은 3등 항해사가 하필이면 맹골수로에서 조타실을 맡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위험한 항해 구간에서 선장이 조타실에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선장이 조타실에 있었을 경우 항해가 문제 없이 이뤄졌을거냐면...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세월호는 맹골수로에서뿐만이 아니라 원래 심하게 흔들렸다고 한다. 거기서 사건 첫날 인근에서 조업중이던 어선에서 당시 맹골수로가 안개도 없고 호수같이 잔잔 했다고 증언했다. 결국 1등 항해사가 조함했느냐 3등 항해사가 조함했느냐, 혹은 선장이 조타실에 있었냐 없었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닐 수도 있다.

3등 항해사 다음으로 문제가 된 것은 12년 경력의 55세의 조타수A 조모였다. 조모는 평상시에도 험하게 운전해왔고, 이전에 조타와 관련된 문제를 일으켜 일시적으로 조타 금지를 당한 전력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성격이 험해 직원들과 불화가 심했기 때문에, 이번 항해를 마지막으로 오하나마호로 보내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22] 항해사 출신 전문가들은 왼쪽으로 5도 틀거나 오른쪽으로 5도 틀라고 항해사가 지시하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조타수이기 때문에 경험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듯 하다.(작은 상선의 경우는 조리원이 조타수도 하는등 무경력 초보자도 조타를 한다고 한다.)

사건 초기에는 세월호가 과적 상태인데다가 평형수도 1/4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사고 당시의 항적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조타수가 키를 135도로 무리하게 꺾는 바람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알려졌다. 조타수 조모는 구속 당시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키를 많이 꺾기는 했지만 실제로 꺾은 것보다 조타기가 더 많이 돌아갔다고 증언해, 이때에는 선박 조함 장치에 결함이 있어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정설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후에 세월호 항적 기록이 복원되면서 키는 135도가 아니라 45도밖에 꺾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23]과적 사실과 평형수 문제도 연이어 밝혀지면서 조타수의 평상시보다 조타기가 더 돌아갔다는 말은 면피를 위한 위증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조타수 조모가 자신의 막내딸 뻘인 3등 항해사 박모와 사이가 좋지 않아 사고 당일 아침에도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을 목격했다는 탈출 선언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조타수 박모가 3등 항해사 박모의 지시를 듣고도 일부러 조타기를 더 무리하게 꺾었을 가능성도 점치고 있는 판국이다. 그러나 3등 항해사 박모가 아직까지도 검찰 조사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어 현재로서는 위의 이야기들은 모두 추측일 뿐이다.[24]

배가 침몰되는 와중에도 선장 및 항해사들에게 조기 탈출 의혹이 있는 점과 승객들에게 객실에 들어가있으라는 방송을 내보낸 점과 승무원이 도망갔다는 점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25] 그리고 생존자 한 명이 말하기로는 배에 탔을 때 비상대피 방법에 대해 전혀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배에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실질적인 지휘는 1등 항해사 A가 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선박의 항해직은 비정규직 선장 이준석, 경험많은 1등 항해사 A 강모, 그날 처음 세월호를 탄 견습 1등 항해사 B, 2등 항해사 오모, 3등 항해사 박모로 이뤄져 있었는데 선장은 현재로서 추정되는 바로는 술에 취한 채 잠들어 있느라 지휘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때문에 차선임자인 1등 항해사 A가 지휘를 맡은 듯하다. 선원들이 책임 회피를 위해 입을 맞춘 정황이 포착되어 정확한 내막이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 실질적인 지휘를 맡은 1등 항해사도 다른 항해사들과 조타수들이 조타실에 모여 사복으로 갈아 입고 구명조끼까지 입은 채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객실 사무장에게 구조선이 없어 위험하니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후 객실 승무원들이 10여차례 무전으로 탈출여부를 물었으나 답변을 하지 않은 점을 볼때 딱히 지휘랄 것을 한 것 같지는 않다.[26] 1등 항해사로부터 객실 내에 대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게 아니라 객실 승무원이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지금 밖으로 나가면 위험할 것 같아 전원 객실 내에서 대기하라고 자의적 판단 하에 방송한 후 위로부터의 추가 지시를 기다렸으나 끝내 지시가 없었다는 약간 다른 버전의 기사도 존재하지만, 어쨌든 탈출한 승객들은 공통적으로 객실 직원들이 지시를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무전기에서 답변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재판중에 선장인 이준석이 2차례에 걸쳐서 승객들은 객실내에 있으라고 지시했다는 말이 나왔다. 선장, 1등항해사, 객실직원이 서로 자신이 생각해서 방송을 했다고 하니 혼란스럽다. 어쩌면 10여차례 방송을 했으니 극 초기에는 1등 항해사가 방송하고 이후 술취한 선장이 뒤늦게 나타나 2차례 방송 지시를 하고, 이후 객실 직원이 무전으로 어떻게 할지 지시를 묻는데 답이 안오니 자신의 판단에 의해 객실에 있으면 안전할 것 같아서 배가 가라앉기 직전까지 방송 한걸 수도 있다. 다만 사건 초기엔 여자목소리로 모두 배 밖으로 뛰어내리라는 방송이 가라앉는 순간 나왔다고 해서 또 다른 객실 직원 박지영이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에 대한 후속 기사를 찾기 힘들다. 월간조선 2014년 6월호에는 객실 직원 박지영이 9시 35분 경비정 123정이 도착한 이후 3층 안내데스크 부근에서 큰소리로 "모두 탈출하라!"라고 소리 질렀다고 하는 정도.

이 일련의 사태에는 선장 외의 다른 선박직 직원들에게도 책임이 크다. 침몰시에는 대피방송이나 통신, 구명정, 의료지원 등 각 직군이맡아야 할 업무가 있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사고 직후 한 조타수는"객실에 어떻게 가냐. 정말 이 사람들 희한한 사람들이네"라는 태도를 보이며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다만 이 인터뷰에서는 퇴선지시를 선장이 내렸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1등 항해사 A와 선장 중 누가 당시 지휘를 하고 있었는지 불분명한 점이 있다. 이들이 승객과 객실 직원들을 버려두고 도망친 사이, 객실 직원들은 선장 등의 탈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계속 무전을 통해 탈출 여부를 물었으나 당연히 지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객실승무원인 22세의 여성 승무원 박모가 자신의 독단으로 전체 방송을 통해 전부 밖으로 뛰어내리라고 방송하면서, 이때가 되어서야 백여명의 승객들이 밖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다. 이 시점은 선장 등 선박직 선원 15명 전원은 이미 탈출하여 팽목항으로 가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객실직원이 직접 판단하여 탈출 방송을 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박모인지는 아직 의문이다.[27]

한편 위에서 언급된 선장과 항해사 등의 8명 외에도 기관실에는 기관장 등 7명의 직원들이 있었다. 이들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선장의 어떠한 지시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장의 판단에 따라 배의 엔진을 끄고 탈출한다. 일각에서는 그들이 배의 상황을 알 수 없는 배의 가장 밑바닥, 기관실에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을 때까지 남아 있다가 위기의 순간에 어쩔 수 없이 배를 버리고 탈출한 것이 아니냐고 그들을 바라보았고, 기관실 직원들 또한 이런 시각에 힘입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언론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배가 침몰할 때 보통은 엔진을 끄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가 침몰하는 경우, 조금이라도 수심이 낮은 곳에서 배가 좌초되어야 탈출 및 구조에 유리하기 때문에 기관실 직원들은 침몰시에도 각자 맡은 곳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직무를 팽개치고 자신들만이 아는 통로를 이용하여 탈출하였다. 이 선원용 통로는 배의 가장 밑바닥인 기관실에서 배의 최상단에 위치한 조타실까지 한번에 이동할 수 있는 통로로, 이곳을 이용한다면 배의 바닥쪽에 있던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전혀 구호활동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탈출 중 객실 직원들인 조리원 2명이 돈까스를 튀기다가 배가 기우는 바람에 부상을 입고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보고도 못본 척 했다는 증언마저 나오고 있다. 이후 해경 123정이 도착하자 이들은 제일 먼저 도망쳤다. 선장이 가장 먼저 도망친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기관실 직원 7명이 선장 등 8명조차 버린 채 제일 먼저 도망쳤고, 그 뒤 두번째로 선장 일행이 도망친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에서 문제를 삼는 부분은 정규직인 기관장이 비정규직인 선장을 평상시에도 무시하였고, 이번 역시 어떠한 지시 없이 독단적으로 탈출했다는 사실이다. 세월호는 항해사 이하 선원들이 대부분 외국인인 다른 선박들과는 달리 임금을 적게 주면서도 착취할 수 있는 구원파 출신들을 선호하였다는 증언이 있고,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15명의 선박직 선원중 단 4명만 정규직이었다. 심지어 퇴직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던 이준석을 불러들여 270만원이라는 턱없이 적은 돈을 주면서 비정규직 선장을 맡겼다.(정규직 선장은 400만원) 이 때문인지 이준석은 항해 중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방에서 자거나 술을 마시면서 보냈고, 실질적으로 기관장이 선장 노릇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원래 선장이었던 신 선장이 운항할 때도 이준석 역시 배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한 배에 지휘자가 2명도 아니고 3명인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15명의 선박직 선원들은 기관장을 중심으로 한 기관사 7명이 먼저 해경 123정을 타고 도망가고, 1등 항해사 A를 중심으로 한 선원 8명은 2차로 해경 123정을 타고 탈출하였다. 이들은 선원복을 벗어버리고 선원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름까지 속이고 다 함께 팽목항으로 가서 자원봉사자들이 주는 곰탕을 맛있게 먹은 후 후식으로 커피까지 받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선원들은 자신은 해경과 함께 구조를 도왔다거나 탈출을 지시하는 방송을 했다거나, 5도 밖에 꺾지 않았다고 하거나, 잠깐 담배피러 나왔을 뿐 조타실을 비운적이 없다는 등의 밑도 끝도 없는 면피성 거짓말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이미 외신을 통해 세월호의 악마로 규정되었다.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언행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바, 이들이 전원 구원파의 신도들이며 이 교리에 의해 이런 일을 저지른 건 아닐까 의심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즉 자신들은 이미 구원받았으니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알바가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이에 대해 구원파측에서는 선원들 대부분은 구원파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 부분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다만 이준석 선장의 아내를 포함한 주변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이준석은 술을 좋아할 뿐 광신교도적인 면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주변인 인터뷰이니만큼 걸러 들어야겠지만, 그냥 자기들끼리 아는 사람이므로 다른 사람들의 목숨보다 자신들의 유대관계를 우선해서 탈출했을 가능성이 높다. 선장과 관련 직원들의 탈출은 그냥 부도덕한 책임회피이고, 사이비 종교랑 엮는 이상한 선동성 글들은 이들을 악마처럼 묘사하는 병맛 글들이 넘쳐나니 주의.

일반직(객실) 직원 14명은, 선박직 직원 15명과는 판이하게 다른 행동을 보였다. 사무장, 사무원, 조리원4명, 아르바이트 불꽃놀이 담당(아르바이트는 총 6명) 등으로 이루어진 14명의 객실 직원들은 무려 10명이 사망하고 4명만이 생존하였다.(이중 조리원 1명, 알바생 1명등 2명은 양사무장이 구해주어, 양사무장의 의로움에 대해 증언 하였다.) 선장 등 책임자에게 조기 탈출 의혹이 있는 와중에, 23세의 여승무원 박지영은 끝까지 남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었는데 한 여고생이 왜 언니는 탈출 안하냐고 묻자 "선원은 제일 마지막이다. 언니는 친구들 다 구해주고 나중에 나갈게." 라는 선원으로서 매우 상식적이며 지당한 대답을 마지막으로 이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28] 그리고 사무장 양모(45세)는 가족에게 "통장에 있는돈은 애들 학비로 쓰라. 나는 승객을 구하러 가니 전화를 이만 끊겠다."라고 이미 살기를 포기한듯한 발언을 하며 끝까지 남아 승객들의 대피를 돕던 중 사망하였다. # 또는 아르바이트에 불과한 불꽃놀이 담당인 김모마저 객실직원이자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함께 목숨을 걸고 수많은 승객들을 구한 업적을 인정받아 둘이 함께 의사자로 지정되었다.[29] 즉 객실 직원들은 끝까지 승객들을 구하다가 대부분이 실종되거나 사망하였다. 선실 내에 대기하고 있으라는 방송 역시 이들이 한 것인데 어디 안전한 곳에 숨어서 방송한 것이 아니라 선장 등에게 버려진 채 승객들과 함께 로비에서 벽에 드러누운 채로 최후까지 방송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기적적으로 탈출하였으나 대부분은 결국 승객들과 함께 사망하였다. 때문에 살아남은 4명의 객실 직원들은 같은 직원이지만 선박직 직원들과 달리 아무도 비난하지 않으며, 사망/실종된 객실 직원 중 대부분은 의사자로 지정되었거나 지정될 예정이다. 심지어 아르바이트생들의 부모들조차도 "내 아들은 수영 선수 출신이니 제 몸만 건사하자고 하면 탈출을 못했을 리가 없다. 아들은 끝까지 학생들을 구조하려다가 탈출하지 못한 것이다. 장하다, 내 아들아!" 라고 말할 정도로 전원이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

여러가지 정황상 일반직(객실) 직원은 배 운항과 관련된 정보를 바로 접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직 객실 직원 14명 중 대부분은 선장, 항해사, 기관사 등 배의 운항을 담당해서 배의 침몰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던 선박직 직원들에게서 같은 회사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언질을 받지 못한 채로 선내에 남아있다가 승객들과 함께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그보다 중요한건 객실 직원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식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고, 선박직 직원들은 상식을 초월하는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여서, '한번 구원을 받았으면 이후 어떠한 악행을 해도 상관 없다'는 구원파의 교리에 따라 선박직 직원들이 행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찌라시까지도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하지만 이건 어디서 이걸 구원파의 악마적인 교리(...)가 문제라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일부 정치/종교 커뮤니티들의 선동성 주장이고, 선박직 직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 앞에서 도망친 평범한 리더들이었다고 보는 편이 상식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유대인 학살의 나치 범죄에 협력했던 독일군 장교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본 정치철학자 아렌트가 사용하여 유명해진 ‘악(惡)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차용해 선박직 직원들의 행동을 해석하는 의견도 제기되었는데, 이 논리가 매우 유사하며 대부분의 신문에서 아이히만과 선원들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사고 선장의 2004년 신년 인터뷰가 갑자기 화제가 되고 있다. 원본 또한 사고 선장은 2010년에는 OBS, 2012년에는 Channel A에서 직원들의 지시만 따르면 자신의 배가 안전하다고 인터뷰 했다.#

외신들도 이 부분에 대해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해당 기사

사고 당시 세월호에게 먼저 다가간 유조선 두라에이스(2720t)호의 선장은 배가 기울어가는 데도 탈출하려는 승객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위쪽에 있는, 두라에이스호가 찍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세월호 선장이 탈출명령을 내렸다는 진술이 더더욱 신빙성을 잃었다. #

2014년 4월 28일을 기준으로, 생존한 선원 전원이 경찰에 의해 구속되었다.

그런데 4월 29일에 세월호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국정원 지적 사항'이라 명시된 문건이 발견되면서 제기된 세월호와 국가정보원의 관계를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국정원은 일단 '일정 규모 이상 선박은 국가보호장비로 지정한다'고 해명했지만, JTBC는 28일 <뉴스9>에서 "취재진이 2000톤급 이상 여객선 17척의 유사시 보고계통을 모두 파악한 결과, 세월호만 '국정원 보고'가 명시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JTBC는 "국정원은 '보고계통이 담긴 선박 운항규정은 해운사가 자체적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세월호만 보고체계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또 "세월호의 첫 출항일은 지난해 3월 15일인데, 세월호에서 국정원 지적사항이란 문건이 작성된 건 그보다 앞선 지난해 2월 27일"이라면서 "이때문에 세월호 가족대책위와 야당은 국정원이 세월호의 불법 증·개축을 알았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한다"고 유가족 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JTBC는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에는 직원들의 휴가계획서, 작업수당 보고서까지 작성하도록 돼 있어 가족대책위나 민변 측은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질적 소유주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원들의 처벌 수위와 유사 사례, 각종 논란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논란을 참조.

9. 형사 사건의 진행

9.1. 1심 판결

2014년 11월 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는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의 선원 15명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진행하였다. 이 선고공판에서 이준석 선장은 업무상과실 선박매몰죄와 선원법 위반, 해양관리법 위반, 유기치사상 혐의가 인정되어 36년 형을 선고받았다. 당초 논란이 되었던 살인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고 검찰의 사형 구형도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피소된 주요 선원인 박 모 기관사[30]의 경우 세월호에서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부상당한 조리원들을 방치한 혐의로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가 일부 인정되었다.

일단 가장 논란이 되었던 이준석 선장에 대한 판결에는 세 가지 쟁점이 있다. 먼저, 이준석 선장의 퇴선 명령이 있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준석 선장이 퇴선명령을 내리지 아니 하였다고 입증할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즉, 퇴선 명령을 했다고 주장하는 이준석 선장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에 앞서 이준석 선장은 검찰 조사에서는 퇴선 명령을 하지 아니 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정작 공판에서는 이러한 진술을 번복하며 퇴선 명령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왜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을 번복하는가를 이준석 선장에게 질문했고, 이에 대해 이준석 선장은 "나 혼자 살아야겠다. 승객을 다 죽여야겠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살아야겠다는 진술은 죄책감에서 자포자기상태로 한 것이다"라고 답변했고, 다른 선원들도 비슷한 취지로 법정에서 진술했다. 이에 대해서 검찰은 '선원들이 입을 맞추었다', '검찰에서의 진술이 다르다'라는 식으로만 대응할 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쉽게 이야기해서 검찰은 이준석 선장의 퇴선 명령 쟁점에 대해서 이준석 선장이 스스로 한 진술에 의존해서 재판을 진행한 것이고, 이에 대한 직접적 증거나 방증 자료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특별히 논란이 되는 쟁점에 대해서 충분한 물질적 증거가 없는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해당 공소 요건은 인정되지 않는다[31].

다음으로 살인죄를 적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단 재판부는 이준석 선장의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같은 날 선고된 박 모 기관사의 판결과 대조되는 것으로, 이준석 선장이 세월호를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방치하지 아니하였는가가 문제가 된다. 그런데 여기도 첫번째 쟁점과 마찬가지로 이준석 선장이 세월호를 빠져나오면서 승객을 방치하고 나왔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증거가 없으므로[32],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쟁점, 검찰이 제기한 주요 공소 요건의 입증 실패가 있다. 일단 검찰이 제기한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퇴선 지시가 있었는가', '수난구호법을 적용할 수 있는가', '세월호가 침몰한 항행지점에 사고 위험성이 존재하는가'하는 것이다.
퇴선 지시와 관련된 부분은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으므로 생략한다. 수난구호법 적용은 재판부에서 아예 인정을 하지 않았다. 재판부에서는 수난구호법을 '두 선박이 해양에서 충돌했을 때, 책임이 있는 선박의 선원에게 적용하는 법'이라고 설명하면서, 검찰의 법 적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서 수난구호법을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역시 적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편, 세월호가 침몰한 항행지점에 사고 위험성에 대해서 재판부는 '사고 위험성이 없었으므로 선장이 반드시 조타할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하였다. 즉, 세월호가 항해할 당시 기상이 불순하지 않았고, 다른 선박이 통과하지도 않았다며 그동안 제기되었던 위험수역 문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재판부는 검찰이 애초에 제기했던 주요 공소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준석 선장에게 적용된 유기치사상죄가 원래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검찰은 위에서 기술한 사항으로도 이준석 선장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살인죄를 이끌어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고 자신하면서 재판을 진행해 왔는데, 이러한 가운데 재판부가 검찰에게 유기치사상죄도 추가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만일 검찰이 이러한 재판부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준석 선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되거나 아주 경미한 처벌만이 이어졌을 수도 있다.

이러한 판결과 관련하여 유가족들과 많은 국민들은 형량이 부족하다, 재판부의 판결이 잘못 되었다고 많은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법률적으로는 기본적 원칙에 입각한 매우 정련된 판결이라 할 수 있다. 형사 재판은 단순히 피고인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검찰이 공소 제기한 사실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이고, 그러한 공소 사실에 대해서 입증할 책임은 전적으로 검찰에게 있다. 하지만 검찰은 국민의 법감정, 공분에만 기대어 무리하게 법 적용을 하려했고, 결정적으로 그러한 법 적용을 뒷받침할만한 사실적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서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형사 재판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수사를 바탕으로 한 정교한 법리로 하는 것'이라는 기본적 원칙을 망각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검찰에서는 일단 항소하겠다고 밝혔으나[33], 법조계에서는 형사 사건에서 1심 판결의 결과가 상급심에서 크게 뒤바뀌지 않는 점[34]을 들어 향후 재판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내다보고 있다.

10. 각계 반응과 대처

각계의 반응은 이 항목을,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은 이 항목을 참조할 것.

10.1. 실종자 가족들

실종자 가족들은 굉장히 불안해 하고 흥분해 있는 상황이다. 현장을 방문한 정부 관계자는 사고 초기에 실종자 전원 구조라고 알린 것(#) 등의 정부의 잘못된 정보 제공 등으로 격앙된 실종자 가족에게 뺨을 맞기까지 했으며 홍원 국무총리는 물 세례도 받기도 했다.#

심지어 KBS 아침방송에서 기자가 생방송으로 리포트 중이었는데 누군가가 난입해 욕설을 마구 쏟아내 그대로 방송을 타 버렸다.

10.1.1. 정보 전달 체계의 문제

이 상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정보전달 체계 문제다. 이미 관련 부서에서는 부정된 배를 들어올릴 것이라는 내용을 사고자 가족에게 계획으로 설명하거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산소공급을 했다고 통보했는데 이후 아직 장비가 도착하지 못해 주입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생존 인원과 실종 인원의 숫자가 크게 변동되는가 하면, 선체 내부에 진입했다고 했다가 하지 않았다고 하는 등, 중앙대책본부의 번복이 심각하게 잦다. 과거 해군과 국방부로 명령-보고 체계가 일원화되었던 천안함 피격 당시와 달리 이번 사고에서는 중앙대책본부와 해경이 같은 조직이 아니어서 정보 공유나 전달 체계가 미비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에 대해 자세한 문제점들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만 한 사실 역시 문제로 꼽혔다. 사고자 가족들을 안정시키는 것 역시 정부 당국의 역할임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중대사안의 번복은 여러모로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결국 당국은 상황 전달에 혼선이 잦았던 이유로 사고 현장 브리핑 창구가 분산되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결국 4월 18일 밤 브리핑 창구를 서부해양경찰청으로 단일화하겠다고 발표했다. # 또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혼선이 있었던 사실에 대해 사과하였다.#

이를 갑작스러운 사고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그 대상이 이를 감안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경황이 없고 사소한 소식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사고자 가족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관련 작업 및 통보들이 보다 세심하게 이뤄지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 결국 일련의 사태는 정보 전달 체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소리이므로 대참사 앞에서 부실한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이 드러났다는 소리가 된다. 결국 21일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의 초동조치 미흡과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에 대해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의 모두발언에서 지적하였다.

10.1.2. 국가위기 관리 매뉴얼의 축소화 논란

국가위기 관리 매뉴얼을 이명박 정부에서 폐기하고 NSC를 축소, 분산시켰다는 지적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 안보와 사회 재난까지 포괄하는 체계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청와대 지하벙커에 위기관리 센터를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어느정도 강력한 위기관리 통제력을 갖고 있냐면 정부의 총 27개 안보, 재난 및 안전 관련 상황 정보가 센터 상황실에 연결되어 있어 대통령 필요시에 언제든 국가의 상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안보/재난 상황시 정부 주무부처가 어디인가를 알려주는 총 33개의 위기 유형에 대비한 국가 위기관리 기본지침과 운영 매뉴얼이 있었다. 심지어 27개의 상황정보중에서 선박 관제 시스템이 있어 500톤급 이상의 선박에 대해 전 세계 어디서든 조난이 발생하더라고 즉각 청와대가 이를 파악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좌파정부가 만든 모든 부서와 정책을 부정한다는 국정기조에 따라 NSC 사무처와 함께 위기관리 센터 역시 폐지되었다. 당시 센터장을 맡고 있던 류희인 소장은 어떻게든 센터 해체만은 막아야 했다. 류 소장이 김병국 외교안보수석에게 센터의 기능을 설명하며 해체를 막아달라고 도움을 청하자, 김 수석은 이를 경청했다. 김 수석이 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하도록 한 때는 4월 초였다. 당시 위기관리센터에 근무하던 김형근 행정관은 이 대통령 앞에서 정부의 총 27개 안보·재난 및 안전 관련 상황 정보가 센터 상황실과 연결되어 있어 대통령이 필요시에 언제든 국가의 상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더불어 안보 위기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 주무 부처가 어디인가를 알려주는 총 33개의 위기 유형에 대비한 국가 위기관리 기본지침과 운영 매뉴얼도 소개했다. 그런데 브리핑을 다 듣고 난 이 대통령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돈 많이 들였으면 잘 써먹어야지.”그리고 다음날 전격 해체 시킨다. 지하 벙커는 각종 물가지수나 증권지수를 표기하는 비상경제상황실로 바뀌었다. 위기 관리 센터 직원들은 이명박 대통령 방문 다음날 보직 해임 통보와 중앙공무원연수원에 입교해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후 교육도중 KBS,MBC 카메라가 들이닥쳐 그날밤 9시 뉴스에 "정부가 무능한 퇴출 공무원을 재교육한다"라며 방송 되었다. 시설을 용도변경하고 관련직원들은 전부 보직 해임한 이후 남은것은 위기 관리 매뉴얼 뿐이었다. 이 위기관리 매뉴얼은 없애지 못하니 트럭에 실어 행정안전부로 보내버렸다. 오늘날 그 매뉴얼의 일부는 어디론가 유실되어 찾지도 못하고 있다.

이후 매뉴얼은 이명박 정부는 물론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부처 개편을 하면서 방재청 업무가 안전행정부로 이관이 됐는데 현장 전문성이 부족한 행정직이 지휘중이라는 의견이 요점이다.# 또한 각 부처별로 재난 관련 부서가 분리되어 있는 등 기존 참여정부가 의도한 일원화된 재난대책 구성과는 차이가 난다는게 또 하나의 쟁점.# 박근혜 정부에선 이명박 정부 시절 폐지한 NSC 사무처를 다시 부활해 상설화# 시켰지만 다원화된 구조 속에서 매뉴얼과 관련조직이 실제 초기대응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사고 발생 3일차인 18일 밤에서야 이런 단일화를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 초기대응에 있어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참여정부는 포괄적 안보라는 개념하에 국방 뿐만 아니라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사회시설 마비등에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로서 대비했었지만 이명박 정부 때 안보라는 개념이 국방으로 좁아졌고, 박근혜 정부가 이를 그대로 계승했기에 기존의 매뉴얼이 힘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35] #

10.1.3. 지나친 관심이 낳은 문제

그 외에 사고 관련인들에 대한 배려 없이 자극하는 행위도 문제다. 일부 정치인들이 별다른 대책도 없이 재난 지역을 방문하여 사실상의 유세 활동을 벌인 것은 물론, 앞선 총리의 경우도 사고자들의 가족들이 있는 체육관 안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강행하다 그들을 분노케 했음이 누출 영상에서 드러났다. 생방송 중 욕 먹은 기자 역시 구조가 지연되는 와중에 지난 밤의 상황을 진척 상황이랍시고 전달하다 욕을 먹었다. 답보 상태에 빠진 현 상황을 전달하는 것과, 전날의 사태 추이를 마치 지금 벌어지는 것처럼 전달하는 건 엄연히 다른 것임에도,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해하는 피해자들의 가족들을 전혀 배려치 않은 셈이다. 결국 20일 새벽에 실종자 가족들과 유가족들이 직접 청와대로 찾아가서 항의를 하겠다는 소동이 일어났다.

당연하지만 사고자 가족들 외에 일부 여론이 공무원들이나 구조팀에 비난을 퍼붓거나 그들에 대한 음모론을 펼치는 것은 도를 넘은 행위임에 분명하다. 사고자 관련인들을 제하면 이 상황에서 가장 애태우는 것이 바로 구조팀이다. 실제로 위에서 이야기했듯, 진도, 해남 근처 해역은 예로부터 물살이 거세 과거 삼별초의 항쟁시에 몽골군과 전투를 치르면서 몽골군이 곤욕을 치룬 장소 중 하나며 이순신 장군이 명량 해전에서 활용한 지형 중 하나다. 당시 왜군이 외해를 돌아서 공격하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위험한 수역이다. 때문에 물살이 다소 약해진 현 시점에서도 동력선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수준. 이러한 상황에서 구조팀을 닦달하거나 비난하는 건 그들의 마음만 조급하게 하고 추가 인명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키울 뿐이다. 실제로 천안함 피격사건 때 여기보다 더 물살이 약했던 서해에서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던 건 이런 여론의 닦달 때문에 각종 안전 기준을 넘은 상태에서 기를 쓰고 구조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고로 여론과 천안함 유가족들은 한주호 준위의 유가족에게 사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

5월 6일 결국 일이 터졌다. 민간 잠수사중 한 명이 기뇌증으로 사망했다.

단원고 학생 이외의 일반인 탑승객에 대한 소홀한 관리 또한 문제다. 세월호 선원 등을 제외한 구조된 일반인 탑승객들은 약 80명 남짓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그마저도 퇴원한 50여명의 위치/행방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뉴스 링크를 부탁합니다) 학생들에 비해 나머지 실종.사망자들의 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치료도 자비를 하며 합동분향소에도 없는등, 그 수가 학생들에 비해 적다보니 묻히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일반 승객들의 대한 뉴스조차 적으며 그나마 있는 것도 묻혔다.

세월호 침몰 당시 구출된 6세 여아의 연고자를 찾는다는 트위터가 올라왔는데(#), 17일에 나오기로는 다행히 친척들과 연락이 되었다고 한다. 이 아이는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가는 중이었다고 하며, 다른 가족들은 여전히 실종 상태이나 친척들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한다.# 24일에 아이 어머니의 시신이 발견됐다. 아버지와 오빠는 아직 실종 상태이다. # 구조 당시 가족 중 7세 오빠가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아이에게 입혀줬다고 하며, 현재 오빠는 실종 상태이다. 태국의 한 네티즌은 Prayforsouthkorea 캠페인에서 이 사연을 그림으로 그려서 올렸다. #[36]

11. 사회의 어두운 일면들

사고도 사고지만, 이 사고가 도화선이 되어 한국 사회의 병든 일면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전후상황을 살피지 않고 구조 작업의 진전에 대해 비난하거나, 음모론을 펼쳐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든가 하는 일이 일어났으며, 이 사고의 국민적 관심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려 하는 행위까지 벌어질 정도로 큰 문제가 드러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이 평범해보일 정도로 여기저기서 사건들이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상세내용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사건사고를 참조. 논란이 될수 있기 때문에 이 항목에 개인적인 주장이나 견해를 적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이 그동안 고도성장을 추구하면서 안전 등 사회안전망 구축에 미흡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12. 사건의 여파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 사건의 초동 대응 실패와 정경유착 등 구조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을 해체할 것을 발표하였다. 해양경찰의 수사, 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이관되고 구조, 해안 경비 기능은 신설되는 국민안전처로 이관했다. 경찰은 18년 만에 독립했던 해양경찰의 수사와 정보 업무를 흡수하게 된다.

13. 도움을 주고 싶다면

13.1. 성금 모금이나 물품 등을 기부하고 싶을 경우

혹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진도군청 기획조정실(061-540-3107)로 우선 문의해보고, 필요한 물품이나 성금 등을 지원하도록 하자. 지원물품의 파악 때문에 일단 알려주고 보내주는 편이 좋다고 한다. 당장은 휴지, 칫솔, 면도기, 속옷, 수건, 핫팩 등의 생필품이 급하다고 한다. 여기서 알아둘 점은 생필품을 보내는 것은 좋지만, 상할 가능성이 있는 음식이나 약 등은 보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처리하는 데에 인력만 낭비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럴 일은 절대 없어야 하지만 사용하지 못할 물품을 보내는 일은 하면 안 된다. 물품들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생존자들이 발견되기 전에 학부모들이 다급하게 달려오느라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들 밤을 새느라 녹차나 커피 믹스 등도 보내주었으면 한다고. 만약 지원물품들을 보내고 싶다면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철마길 25 진도군청 주민복지과로 보내면 된다. 우정사업본부는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진도군, 안산시에 대한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맞춰 4월 21일부터 3개월간 구호우편물을 무료로 배송해준다. 일반 개인도 가능하며 우편물 표면에 '구호우편'이라고 표시해 우체국에 접수하면 된다. 물품을 보낼 때에는 우체국 택배를 이용하는 것이 분류하는 데 손이 덜 간다고 한다. 담요와 우비, 여성용품(생리대 등)은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이미 상당한 양의 물자가 확보되었고, 더 급한건 자원봉사자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진도체육관이 남극 같은 격오지도 아니고 인구 4만 명의 넘는 군의 중심지에 있기 때문에 사람 사는데 필요한 건 다 구할 수 있다. 현금만 있으면 필요한 물건은 다 구할 수 있다. 때문에 물품 지원 보다는 현금 지원이 정말 도움이 된다. 위에도 언급이 되어 있듯이 물품 지원은 그 자체로 분류, 운반, 배분, 저장, 폐기 등 불필요한 업무를 파생시키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꼭 필요한 물건을 바로 바로 구입할 수 있는 현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다.

4월 20일 일요일 새벽 01시 30분에 진도 구호물품 접수처와 통화한 결과,
1. 소진용 물품(쌀, 양말, 담요)을 큰 단위로 모아서 보내는게 좋다고 한다. 작은 박스에 여러가지 물품을 섞어서 보내면 분류하는 시간이 필요해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밖에 따로 빼놓는다고 한다.
2. 기부금은 인터넷을 믿지 말고 꼭 접수처로 직접 전화해서 안내받은 계좌에만 입금하라고 한다.
3. 자원봉사자의 경우 주로 구호물품을 분류하는 일을 하는데 이번 주말에는 많지만 다음 주중에는 적어서 월요일부터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을 계속 접수받는 중이라고 한다.

의료후원물품이 필요합니다. 파스, 물파스, 개비스콘, 겔포스, 스트렙실, 종합감기약, 속청, 오메가 3, 세노비스 루테인, 토비콤에스, 면봉, 후시딘, 베일밴드, 스프레이용 파스, 우황청심원, 인사돌, 복합 우루사, 영양제, 비타민제 등

  • 상자에 뭐 들었는지 기재 후 보낼 것!!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183-1 진도군실내체육관 주민복지과
수취인 진도군청 주민복지과 061-540-3107


이러한 정보 또한 올라온 바 있다.

성금 모금의 경우, 자제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성금 모금은 책임을 덜어줄 수 있다책임질 자를 탈탈 털고 난 다음에 모금하여도 늦지 않다고 하고 있다. 성금에서 의사자 피해 보상금이 공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체국 택배의 협조를 통해, 재난구호품이라고 미리 알린 후 물품을 발송할 경우 무료로 배송해준다고 한다.

13.2. 자원봉사를 하고 싶을 경우

13.2.1. 4월까지의 상황

자원봉사를 하고자할 경우에는 단체를 통해 가는 것이 더 도움이 되므로, 각 지자체별로 설치된 자원봉사센터에 문의하길 바란다. 차례를 기다려 배치받을 수 있다. 주말보다는 평일에 더 빨리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목포 관광도시 락 페이스북 내용에 따르면 항구 쪽 자원봉사자들은 충분한 듯하다.

페이스북 페이지 SURVIVE는 구호물품과 자원봉사자 외에도 스쿠버 다이버 모집을 하는 중이며 자세한 내용은 페이지에 광고가 게재되고 있다. 스쿠버 다이버 마스터 이상의 지원자만 받는다고 하며, 4월 19일 전·후 기준으로 민간 다이버는 1진이 철수한다고 알려졌다. 현장에 상당히 많은 다이버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체력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대로 휴식을 취하지만 다이버용 구호물품 중 담요나 속옷 등이 부족해서 휴식하기에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진도 가족 건강상태관리를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도 올라왔다.

4월 21일 이후로는 선박 내로 구조 작전이 집중되면서 마스터급 다이버들은 선내에 진입할 수가 없게 됐다. 현장의 민간 잠수부 인력은 철수가 시작된 상태다. 그리고 4월 24일, 선내 진입작전에 필요한 다이버 공고가 올라온 상태이다.

★ 04.24 베테랑 민간다이버 긴급 공지 ★ 황대영 회장님의 게시글 인용합니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사고, 자원봉사 민간다이버로 구조작업에 참여하실 베테랑 경력자 다이버분만을 모집합니다. 수심 47m, 침몰선 시야 20cm 등의 고도로 전문화된 베테랑 잠수사가 필요하답니다. 고도의 전문 인력을 요하는 만큼, 다소 먼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행여있을 마주잡음에 희망 다시 걸어 공유합니다. SNS를 통해 정보나눔과 공유 부탁드립니다~ 연락처는 아래 첨부된 한국수중환경협회장 황 대영 회장님의 연락처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긴급 공지 진도 세월호 자원봉사 구조 다이버 모집
수심 47m/침몰선 시야 20cm 등의 환경에서 잠수 능력있는 전문 베테랑 잠수사 필요합니다. 연락처 010.5222.9414


13.2.2. 5월 이후의 상황

5월 2일 진도군 자원봉사센터, 진도체육관 상황실, 안산시청 재난상황실, 안산시 자원봉사센터 측과 통화한 결과와 현지의 정보를 합쳐 기재한다.

  • 자원봉사는 25세 미만의 경우에는 받지 않는다. 실종자와 비슷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슷한 이유로 가족봉사는 통제되고 있다.
  • 단체의 경우 안산시 자원봉사센터에서 진행하는 밥차 봉사를 통하여 진도에서 자원봉사를 진행할 수 있으며, 인원수는 최대 45명이라고 한다. 단, 개인은 신청받지 않는다. 이의 경우 차편은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출발한다.
  • 개인의 경우 안산에서 진도체육관으로 운행하는 버스에 탑승할 수 있으며 도착한 뒤 진도체육관에서 현지 등록 후 봉사가 가능하다. 단, 봉사처가 없을 수도 있고 봉사처가 날 때까지 대기할 수 있으며 실제로 장시간 대기자가 발생하나 한 나절 정도를 기다리면 일감이 나오는 편이니 안내소에 항의하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도록 하자.
  • 개인이 탑승할 수 있는 버스는 안산 올림픽기념관 앞에서 매일 07시, 08시, 10시, 11시 30분, 14시, 15시, 17시, 19시, 21시(막차)에 출발한다. 따로 확인절차는 없다고 하나, 자원봉사에 뜻이 있는 이들만이 탑승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 첫번째 정보를 제외한 위의 정보는 수도권에 대한 정보이며, 전국 각지의 경우 해당 지역 자원봉사센터에 문의하면 더 정확한 정보를 받을 수 있다.
  • 개인 자원봉사자 모임은 09시 30분, 21시 30분(심야 봉사 및 익일 팽목항 봉사)에 정문의 자원봉사 안내소에서 진행된다. 이 때 간단한 브리핑을 받은 뒤 일감을 배분받는다.
  • 개인의 경우 쓰레기 줍기나 진도체육관 정리/청소, 팽목항 구조팀 지원 등의 봉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감은 그렇게 많지는 않고 현장에서는 되도록 봉사자를 감축하려 하고 있으니 참고바란다. 체육관 청소의 경우에는 여성을 선호한다고 하며, 배식 봉사 또한 그러하다. 걸레, 고무장갑, 목장갑 등을 지참하고 가면 좋고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가져가면 좋다고 한다.
  • 숙박은 자원봉사자 대기소에서 무료로 제공하며 모포, 침낭, 배개, 핫팩 등이 비치되어 있다. 따로 숙박시설에 투숙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 모임 시간 이전에 결원이 발생할 경우에는 대기소의 봉사자가 우선적으로 충원된다.
  • 각 기관의 전화번호는 061-542-9985, 061-543-9387(진도군 자원봉사센터), 061-543-8972(진도체육관 상황실), 031-481-3379(안산시청 재난상황실), 031-411-1365(안산시 자원봉사센터) 등이다.
  • 진도의 밤은 춥다. 절대로 옷을 대강 입고 오지 말자. 낮이야 더우니 반팔을 입는다해도, 강풍이 부는 밤에 재킷 하나 없으면 정말 고역일 것이다.
  • 빈 손으로 그냥 오지는 말자. 구호물품을 싸들고 오라는 의미가 아니라, 최소한의 준비물품이 있으면 여러 사람 편해진다는 의미이다. 목장갑, 고무장갑, 걸레, 우비 등을 챙겨와서 주위 봉사자들과 나누면 한정된 구호물자를 절약할 수 있어 좋다.

코레일의 협조로, 자원봉사자들이 확인서를 지참할 경우 열차편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목포역을 오가는 무료 셔틀편이 운행되고 있다. 진도로 오는 열차도 무임승차가 가능하며, 이 경우에는 일단 표를 끊고 도착 후 진도체육관에 위치한 코레일 부스에 문의하면 된다.

13.3. 6월 이후의 상황

5월 19일부로 진도와 목포역을 오가는 셔틀 운행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시외버스를 타고 목포역에서 확인서를 제출하면 열차 이용이 가능하다. 열차는 무궁화호부터 KTX까지 모두 가능하다.

팽목항에서 근무하는 경우 여름에 접어들면서 모기들이 많아졌으므로 얇은 긴팔을 준비하자. 6월 29일 현재 안산에서 진도로 가는 셔틀버스는 7시, 11시, 14시, 17시에 출발한다.

13.4. 현장의 상황을 알고 싶을 경우

4월 16일부터 21일까지 관련 소식을 단원고 3학년 학생이 본인의 트위터로 전했다. 해당 트위터에는 피해자의 친구들, 조카 및 기타 친척, 제자들이 실종자를 찾는 트윗들이 많이 올라왔다. 17일에는 힘든지 알림도 끄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하며 앞으로 사진 트윗은 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4월 22일 이후로 이 트위터 계정은 폐쇄되었다. 대신 한 대학생이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14. 유사 사건·사고

14.1. 유사 해상 사건·사고


  • 코스타 콩코르디아 호 좌초사고
    선장이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했다는 점에서 이 사고와 유사하다. 이 선장은 징역 2697년을 구형당하고 2014년 현재에도 재판 중. 다른 점은 항만 당국자가 탈출한 선장에게 '배로 돌아가라'고 여러 차례 명령했다는 것과, 사망자가 승객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오세아노스호 침몰 사고
  • 토야마루호 침몰 사고
  • 에스토니아호 침몰사고
  • 해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침몰사고
  •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언론의 추악한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 대한민국 영해에서 발생한 역대급 선박 사고라는 점에서 이 사고와 유사점이 많다. 다만, 페리호의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피난시키다 전원 배 안에서 사망해, 먼저 탈출한 세월호의 대다수 승무원과는 큰 차이가 있다.
  • 남영호 침몰사고
  • 한성호 침몰사고
    1973년 1월 25일 목포한일기선 소속의 한성호가 진도군 지산면 앞바다에서 침몰한 사고로 61명의 승객이 희생되었다. 원인은 승객과 화물을 초과해서 실었음이 지적되었다. 구명대는 제공되지 않았고, 파도가 심하여 선실 문을 밖에서 잠가 희생자가 많았다고 보도되었다. 세월호 사고와 침몰한 위치와 원인, 이후 정부 대처가 비슷하다는 점 때문인지 국민TV 뉴스K는 8월 29일 '참사의 대물림…1973년 한성호, 세월호와 판박이'라는 기사를 실었고, 국민라디오 '주진우의 현대사 시즌2' 첫회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대본
  • 고창 심원면 거룻배 전복 사고
    1986년 7월 30일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 앞바다에서 29명이 탄 거룻배가 전복된 사고. 이 사고로 김을 따러 바다에 나갔던 용기리 주민 21명이 사망했다. 사고 거룻배는 최대 9~10명까지 탈 수 있는 것이었는데, 최대 정원의 3배에 달하는 인원이 무리하게 탑승한 게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 도나 파즈호 침몰 사고
    세월호처럼 일제(日製) 선박이다. 그리고 선장과 승무원들의 막장 대처로 인해 승객들을 더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사망자가 늘어났다.
  • 르 줄라호 침몰사고
  • 천안함 피격사건
  • 마할리카 2호 침몰 사고
  • 노르만 아틀란틱호 화재 사건

14.2. 학생들이 사망했던 비극들

아래의 사고들은 세월호 사건과 같이 학생들이 집단으로 사망했던 안타까운 사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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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국내 최대 항구도시인 부산이나 무비자 때문에 밀입국, 불법체류 위험성이 높은 제주도를 제외한 국내 여객선 노선은 탑승객 심사가 엄격하지 않다. 제주발 본토행은 제주도 한정 무비자로 입국 가능한 사람이 본토로 넘어가 불법체류할 위험성이 있어 심사가 엄격하겠지만, 본토발 제주행은 제주도 한정 무비자 국적자라도 본토에서 체류하려면 비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불법체류 관련 위험성이 적어 그렇게 엄격하지 않다. 게다가 제주 한정 무비자 입국 자격을 갖는 외국인들의 경우 본토에서 활동하기 위해 정식 비자를 받고 입국하는 경우 제주국제공항을 이용하지 않고 저렴한 항공편이 풍부한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정부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침몰사고 발생시 정확한 인원집계가 힘들다. 몰래 숨어탄 사람을 정부가 알아낼 수는 없으니까. 이런 경향은 옆나라 중국도 마찬가지인데 한국과 중국은 선령을 법으로 제한하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 [2] 다만 시차 차이가 좀 있다. 타이타닉1912년 4월 15일 영국표준시(=UTC) AM 2시 20분(한국시간 AM 11시20분)에 침몰, 세월호2014년 4월 16일 영국표준시 AM 3시20분(UTC AM 2시 20분, 한국시간 AM 11시 20분)에 침몰했다. (1912년 시차 +9시차와 달리 2014년에는 영국 서머타임제 때문에 +8시차가 난다.) 정확하게 24시간 차이가 나므로 같은 날이 될 수가 없다.
  • [3] 가장 가까운 육지는 섬인 동거차도로 불과 1.5km.
  • [4] 2014년 4월 17일 일본 테레비 아사히의 보도 스테이션 보도 내용에 따르면 일본에서 운영시에는 약 800여명이 정원이었다 한다.
  • [5] 실제로는 배의 기울기가 20도가 넘어가는 시점부터 사람의 이동은 크게 제한된다고 한다. 20도가 뭐 대수인가 하시는 분들은 이 그림을 보시라. 원본 문서는 이쪽을 참고.
  • [6] 사고 26시간 전에 포스팅 되었으며 해당 블로그 작성자는 3월 27일에 배를 탔다.
  • [7] 이 생존자는 약 60시간 정도 생존이 가능한 공기가 압축되었던 에어포켓 속에 있었으며, 물이 아니라 매트리스에 올라타 있었으므로 저체온증을 피할 수 있었다. 물을 찰박거리던 손이 목격되어 구출되었다고.
  • [8] 이때 손석희 사장이 눈물을 흘리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장면이 큰 화제가 되었다.
  • [9] 다만 에어포켓의 존재 가능성을 들어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던 전문가들도 더이상 생존자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할 정도로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대부분 의견을 바꿨을 때도 JTBC는 아직도 에어포켓과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알파인 이종인 대표와의 인터뷰를 보도하기도 했다.
  • [10] 생존의 333 법칙. 즉 공기 없이 3분, 물 없이 3일, 식량 없이 3주가 지나면 생존이 어렵다. 안타깝게도 공기는 3분, 물은 3일, 식량은 3주를 넘긴지 너무 오래되었다. 공기의 경우는 선박 내 침수로 인해 공기가 빠져나가 에어포켓 범위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데다, 에어포켓 부위에 있더라도 호흡에 필요한 산소가 바닥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나마 물이라도 섭취할 수 있다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더 늘어나겠지만, 침몰한 선내에서 맑은 물이 보관된 구획으로 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바닷물을 마시면 되지 않겠냐 하겠지만, 바닷물은 염분이 포함된 소금물이기 때문에 마시면 탈수 현상을 일으켜서 안 마신 것보다 못하다.
  • [11] 사망원인은 기뇌증으로 추정된다 관련기사 http://newstapa.org/10742
  • [12] 동영상 내용 중에 갑판 위에 올라와 있는 친구들을 걱정하는 내용이 나와 있다. 하지만 정작 갑판 위로 바람쐬러 나온 학생들 대부분은 살아남고 객실에 머무른 자신들은 영영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는 점이 안타까운 대목이다.
  • [13] 인솔진중 1명은 여행사 직원이었기 때문에 단원고 소속이 아니라 일반인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105명이 된다
  • [14] 2014년 현재 화장장의 유품 소각로가 폐쇄된 지 10여년이 지났고 환경 관련 법률로써 개인적인 유품 소각이 금지되어 있어, 오늘날의 유족들은 유품을 일부만(옷가지 위주로) 불법 소각하거나(사찰에서 49제 할때 사찰 자체 소각로에서 태우는 경우 포함) 전문 소각업체에 돈을 주고 위탁하고 나머지 유품은 일반 폐기물로 버려지거나 헌옷수거함에 버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청 차원에서 희생자의 옷가지는 물론이고 대형 유품인 책상의 소각까지도 시가 운영하는 대형 소각시설을 통해 무상으로 소각 처리해준다는 것은 유족한테는 적지 않은 지원이 될 수 있다.
  • [15] 예를 들어 사고수습에 책임이 있는 해경의 해체는 제껴놓더라도 직접관련없는 소방방재청이 독립청에서 신설될 국가안전처 산하 본부로 격하되면서 사고와 직접 무관한 일선 소방관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관피아 문제로 불거지면서 그 해결책으로 5급 고시비율을 50%로 줄이고 민간경력자를 50%선발하겠다고 하여 고시준비생에게는 날벼락으로 돌아왔다
  • [16] 선박, 관청과는 무관한 분야에서도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광역버스 입석금지. 입석을 금지하여 교통사고 시 생존율을 높이자는 것이 취지였긴 하나 결과적으로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대중교통을 통해 가는 모든 길은 헬게이트가 열렸고, 자동차전용도로를 이용하던 도시형 버스는 일반도로로 빙 둘러가게 되어 많은 시민들의 원성을 샀다.
  • [17] 사건 초기에는 이준석이 바닷물에 젖은 5만 원짜리 2, 3장과 1만 원짜리 10여 장을 치료실 온돌침상에 말리고 있었다가 다른 승무원 1명이 5만 원을 빼앗아가면서 “내가 갖겠다”고 하자 막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어서 정신상태를 의심케 했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돈을 말린 것은 다른 승무원임이 밝혀 졌다.
  • [18] 초기에는 처음부터 팬티만 입고 탈출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방송 화면 상으로는 상의는 입고 있는데 하의는 담요로 두르고 있거나 바지를 갈아입는 것으로 보여, 온몸이 물에 빠지지 않고 하체만 젖은 채 나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물 한방울도 젖지 않고 안전하게 퇴선한 것이 확인되었다.
  • [19] 구속후 포토존에서 사과를 하던 선장, 1등 항해사와 달리 3등 조타수는 울기만 하느라 인터뷰를 안했다. 이후 언론에 의하면 검찰조사에서 울기만 하느라 조사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한다
  • [20] 즉 전세계 어디서나 똑같이 3등항해사는 오전8시~낮12시, 2등항해사는 낮 12시~오후4시, 1등항해사조는 오후 4시~오후8시 순으로 근무하며 그 다음은 다시 3등항해사부터 반복된다. 이렇게 되면 1,2등항해사가 가장 어려운 야간항해를 하게 되며 3등항해사는 상대적으로 편한 주간 근무만 2번 하게 된다. 즉 비교적 경험이 적은 3등항해사에 대한 배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3등항해사는 운명의 8시 44분에 조타수 C와 조를 이루어 배를 운전하게 된다.
  • [21] 일반적인 선박의 운항체계에 대해 설명하자면 조타실은 항해장이 지휘하고 기관실은 기관장이, 객실은 사무장, 기타 잡일은 갑판장이 책임자이다. 이 모든 부서를 관리하는 것이 선장이다. 다만 앞서 말한 항해장과 언급 안한 통신장은 없어지는 추세이다. 대신 1등항해사가 조타실을 관리하며 기관장과 같은 레벨로 취급된다.
  • [22] 다만 그가 초짜 조타수여서 경험이 적은 3등 항해사와의 조합이 잘못됐다는 증언도 발견되는 등 반되대는 기사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데로 가장 경험 많은 조타수 A와 가장 경험이 적은 3등 항해사를 함께 묶는 것이 세계적인 표준이다. 물론 세월호가 평상시에도 한배에 선장이 2명이 있는 상식을 초월한 배라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 [23] 이후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적게 꺾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최종 결과가 나오면 수정 바람
  • [24]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45도든 135도든 무리하게 꺾은 게 문제가 아니라 세월호 자체의 복원성이 없었던 게 문제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세월호는 과적 상태인데다 평형수도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서도 얼마든지 가라앉을 위험성이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군함의 경우 좌현전타, 우현전타가 다반사이지만 아무 문제가 없는 것에 비추어 봐도 그렇고. 그러나 신상철 대표는 천암한 사건에 이어 이번에도 에어포켓을 주장하며 국민들을 상대로 희망고문을 한 전과가 있어서 걸러서 들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유람선은 좌현이든 우현이든 5도까지만 꺾는게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또한 세월호는 워낙 상태가 안좋아 평상시에는 좌우로 5도씩만 조심 조심 꺾는다는 기사도 있다.
  • [25] 또한 참사의 큰 원인이 선장(기관사)의 조종 과실인 것도 있다. 지하철 참사 당시 정작 불이 나기 시작한 안심행 1079호보다 얼마 뒤 도착한 반대편의 진천행 1080호에서 사상자 대부분이 발생하였으며, 1080호는 전 역인 대구역에서 출발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출발했다. 진천행 열차가 중앙로를 향해 출발하지 않았다면 대구역을 통해 승객들이 빠져나가 사상자가 크게 줄었을 것이다.
  • [26] 2등항해사 오모가 바로 선장의 지시로 초단파무선통신으로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구조 요청한 사람이다. 승객들의 생명은 안중에 없고 오직 자신이 살기 위해 무전으로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만 외친 전형적인 답정너.
  • [27] 왜냐면 박모를 포함 객실직원들의 거의다 사망해서. 그러나 10여차례 객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했던 객실직원은 최후의 순간 기적으로 탈출했고 이후 여자 목소리로 탈출하라는 방송이 나왔다고 하니 정황상 박모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 [28] 안내데스크에서 승객들에게 모두 탈출하라고 외친 것고 박이고, 모두 배 밖으로 뛰어내리라고 방송 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박모이고, 다친 사람들에게 휴지를 건네주고 편의점 출입문을 잡아주어 탈출을 도와준 것도 박이다.
  • [29] 사건초기에는 김모 집에서는 예비며느리가 탄 배가 가라앉았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나중에야 자신의 아들이 알바로 세월호에 탄 것을 알았다고. 이후 이 둘은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 [30] 실명을 표기해도 되는 경우 실명으로 표기 바람
  • [31] 이는 법정증거주의를 중시하는 한국 사법부의 기조상, 대부분의 형사 및 민사 사건에서도 해당한다. 즉, 어떤 자연인의 증언보다는 물질 증거의 가치를 훨씬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100명의 증인이 어떤 증언을 한다고 해도 그러한 증언들과 배치되는 단 하나의 물적 증거가 나온다면 100명의 증언은 어떠한 효력도 갖지 못한다. 다만, 물적 증거가 전무한 사건이나 일명 뺑소니, 강간 사건 등과 같이 특정인이나 목격자의 증언이 특별히 중요한 경우에는 극히 이례적으로 증언이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우가 있다.
  • [32] 이준석 선장이 탈출하는 장면이 담긴 해경 측 동영상에는 이러한 쟁점을 오히려 정면으로 반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는 이준석 선장이 조타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선실이나 선내를 거치지 않고 바로 탈출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살인죄를 구성할 만한 요건을 완전하게 탄핵한다. 실제 재판에서도 해당 증거는 이준석 선장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었다.
  • [33] 일단은 검찰에서 항소하겠다고 밝혀서 큰 문제는 없겠으나 만일 검찰이 항소하지 않고 이준석 선장만 항소하는 경우 불익변경금지원칙에 따라 상급심에서는 1심의 형량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할 수 없게 된다.
  • [34] 대법원이 파기한 민간법원 형사사건 비율은 2008∼2012년 5년 평균 2.8%에 그친다. 2008년 3.9%에 달했으나 추세적으로 낮아져 2011년 2.1%, 2012년 2.3% 등 2% 초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 [35]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건, 화산 폭발 등의 사건이 터지면 군이 재난구조 작업을 수행한다. 세월호 침몰 사건의 경우에도 관련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해군 구조부대이며, 해경은 관련 자원이 없다.
  • [36] 태국 네티즌들은 비영어권 국가 중에선 이례적으로 뉴스나 사진을 스스로 번역해서 공유하고 있다.
  • [37] 어학연수를 가던 학생들이 변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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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22: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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