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초야권

last modified: 2015-04-14 22:10:27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유럽에서의 초야권
3. 중국에서의 초야권
4. 초야권이 실제로 발휘된 예
5. 픽션에서의 초야권

初夜權.
Droit du seigneur (프랑스어, "영주의 권리")
jus primae noctis (라틴어, "초야의 법")
초야의 권리기 아니다!

1. 개요

결혼하는 신부의 첫날밤을 남편이 아니라 그 지방의 영주가 먼저 치르도록 했다는 것. 유럽 중세의 대표적인 떡밥중 하나다. 유럽에서는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영주의 권한이기는 하였으나, 이것이 정말 시행된 적은 거의 없었으며, 실제로는 결혼세를 냄으로서 해소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동양에서는 초야권이 실제로 시행된적이 있다.

2. 유럽에서의 초야권

중세 초야권의 기원을 많은 사람들이 중세 그리스도교십일조와 연관지어서 생각하지만, 사실 초야권은 그리스도교와는 전혀 관계없는 게르만족의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다. 게르만족은 일반적으로, 첫 수확물을 자신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부족장에게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부족장들에 대한 하나의 의무였다. 이러한 전통은 중세에 제도화와, 변질화를 거치게 되었는데. 농노들은 영주들에게 첫 수확물중 일부를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바쳐야 했다.[1] 이것이 여러 종류로 파생 변질된 과정에서 나온 것이 초야권이다.

영주들이 흔히 생각되는 대로 초야권을 남발했으리라 생각하기엔 큰 무리가 있다. "아무리 중세 암흑기라도 영주가 잘살고 깔끔하고 교육 잘 받은 귀족인데, 자기 성의 시녀[2]도 아니고 땅이나 파먹는 천한 농노 놈의 여자를 굳이 취하고 싶을까?"

초야권 건으로 사건이 터저서 아랫도리가 문란한 영주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일은 없다. 그렇다고 아예 시행되지 않았다고 보긴 좀 무리가 있다. 굳이 어느 어느 영주가 자기 농노와 검열삭제했다고 굳이 기록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까? [3]하지만, 민중의 불만을 사서 민란을 일으키는 수준으로 남용되었다면 기록에 한 번쯤은 남았을 것이다.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어도 최소한 민란을 유발해서 해당 영주의 이름을 역사에 길이 남길(...) 수준은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어찌되었든 영주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가능하기는 한 일이다.

여하튼, 영주가 정말로 한눈에 뻑가거나 하지 않은 이상, 초야권은 실질적으론 세금 징수용(...)으로 쓰였던 것이 확실하다. 중세에는 모든게 세금이다. 초야권을 빌미로 결혼세를 뜯는 것이다. 즉, 결혼을 영주에게 허락받기 위해 일정 금액의 세금을 내는 형태로 시행되었다. 그것도 같은 영지안의 농노끼리 결혼하는 경우엔 내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영지에 있는 농노끼리 결혼하는 경우 여자 쪽 소속 영지에선 노동력 상실이므로 이를 청구했고, 대개는 남자 쪽 영지의 주인이 결혼세의 일부를 부담하고 나머지를 남자 농노가 부담하는 형태였다. 그런데 남자 농노측이 그것마저 부담할 경제력이 안될때 여자쪽 영지의 주인이 여자 농노와 초야를 가지고 대신 결혼세를 안 받은 것.

금전 문제 외에 다른 이유를 따저본다면, 초야권은 명목상 모든 영지민들이 영주와 혈연관계를 가지게하는 것, 즉 영지 내의 결속력을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초야권은 영주의 권력의 상징이자 영지의 결속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영지 내의 모든 이들은 영주에게 복속되어있음을 보이는 상징이라는 점에서 썩 달가운 것이 아니긴 하다.

초야권은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어, 볼테르를 비롯한 계몽주의자들에게 사실처럼 뻥튀기되어 역사서에 기술되기 시작했다. 볼테르는 "우리가 중세를 배우는 이유는 중세를 까기 위해서다"라고 발언했을 정도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중세 항목도 같이 참고할 것.

3. 중국에서의 초야권

몽골족원나라한족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할 때, 한족의 반란이 두려워 가한 제재 중 하나이다.

그 당시 원나라가 가한 제재로는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을 금지하거나, 야간통금시간을 지정하기도 하고, 신분제를 만들어 한족을 노예 등급으로 강등시키는 것 등이 있었다. 또 다른 제재가 바로 초야권이다.

10가구의 한인(漢人) 당 1명의 몽골 병사의 시중을 들어야 했는데, 여기서 새로 결혼하는 한족 여성의 초야권은 시중드는 몽골 병사의 몫이 되었다. 실질적으로 한족의 신분이 노예와 다름없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처사였다.

그래서 당시 한인들은 결혼 후 첫째 아이를 무조건 낙태시키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4. 초야권이 실제로 발휘된 예

초야권이 실제로 시행된 사례는 유럽 외부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에티오피아에서 왕에게 받을 선물로 초야권을 얻어내서 그거 행사하려다가 신랑에게 맞아 죽었던 위인이라든가,[4]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이야기라든가. 종종 아프리카중동에서 일어나는 종교적인 초야권은 여성의 처녀혈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길가메시도 초야권을 행사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들에게 SOS를 쳐서 엔키두가 등장. 결국 없앴다. 수천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초야권은 막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티베트몽골에서 신부의 첫날밤은 라마교승려만이 행사할 수 있었다.

5. 픽션에서의 초야권

게임에서 이 초야권을 직접/간접적으로 주장/행사한 캐릭터로는 란스가 있다.

신일숙의 만화 리니지에서 반왕 켄 라우헬은 초야권으로 인해 탄생한 캐릭터.

혜안의 만화 스할름 이야기에서 여주인공인 이본느는 자신을 짝사랑한 젊은 영주 루트에게 초야권을 빌미로 강간당한다.

김세영&허영만의 만화 타짜에서 주인공 장태영이 린다정의 결혼식직전에 화장실로 끌고가 초야권을 행사한다.

우리나라에선 영화 브레이브 하트가 대박을 거두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나온 초야권은 엉터리이다...하긴 영화 자체가 윌레스와 프랑스 공주의 사랑과 임신이라는 터무니없는 전개였으니...

Leslie Stevens의 'The Lovers'에서도 초야권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결혼을 앞둔 마을 처녀를 미치도록 좋아하게된 기사도의 화신이자 전쟁영웅인 영주가 등장한다. 영주는 기독교도이고 영지민들은 노르망디 부근의 이교도로 나온다.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 그에게 동생이 초야권에 대해 알려주며, 영지의 기독교 사제에게 이런게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받는다. 여기서 사제는 '이교도들에게는 이러한 법이 있지만, 이는 그리스도인의 법에는 없고, 심지어 죄악일 수 있다.'고 답한다. 초야권을 행사하러 마을에 가자 촌주는 '그들의 법에는 이런 것이 없지만, 우리의 법에는 존재하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허락한다. 뒷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은 구하기 어려운 이 책보다는 이를 영화화한 찰턴 헤스턴 주연의 'The War Lord(1965년작)"를 보는 것이 낫다.
----
  • [1] 물론 농노들은 영주들의 토지 또한 경작해야 했다.
  • [2] 시녀나 하인처럼 영주나 그 가족과 가까이 있게 되는 직종은 보통 영주의 바로 아래 계급, 즉 기사계급이나 젠트리/부르주아같은 지식과 재산을 갖춘 평민층에서 하는 거지, '천한' 농노는 성에서 일한다고 해도 영주 눈에 띄지 않는 허드렛일이나 하는 게 보통이었다.
  • [3] 사실 한 지역에서 거의 왕이나 다름 없는 영주 입장에서, 자기 눈에 띄는 하층민 여자가 있으면 부모나 본인을 잘 꼬셔서 첩으로 삼거나 하루밤 치르고 대가를 지불하는게 보통이었다. 몇 푼 아껴 보겠다고 복잡한 문제를 야기 할 수 있는 초야권 같은걸 발동시킬 필요는 없다.
  • [4] 그래서 한 번도 못 썼다. 덧붙여 살인죄를 범한 신랑이 왕 잎에 끌려오자 오히려 왕이 무지 미안해 하며 무죄방면해 줬다더라. 옛날 이야기에 가까운 이야기니 믿거나 말거나.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4 22:10:27
Processing time 0.0762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