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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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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2. 참고 문서


1. 본문

시위·집회 문화의 한 종류.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걸로 아는 사람이 많으나, 사실 꽤나 역사와 전통이 깊은 비폭력 시위 방법 중 하나이다. 외국에서 일어난 유명한 촛불집회 중 하나는 1978년 샌프란시스코의 시의원이었던 하비 밀크가 총격으로 사망한 후 3만 명이 모여 추모를 한 집회이다.[1]

하지만, 이 시위가 대중화된 것은 1989년에 일어난 슬로바키아 독립요구 촛불집회 때문. 당시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립하기 위해 프라하(체코의 수도)와 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의 수도) 지역에 몰려와서 독립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벌였다. 이 이후 촛불집회가 시위의 한 방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

한국 최초의 촛불집회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월간 말 1997년 6월호(통권 132호)를 보면, 87년 6월항쟁 때 이미 촛불집회가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부산에서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는 촛불시위대가 전경에 맞섰다고 한다. 최소한 87년에 존재했다는 얘기. 이렇게 보면 한국 촛불집회의 역사가 상당히 긴 것을 알 수 있다. 촛불집회의 시초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추가바람.

1992년에는 케텔 유료화에 반대하여 촛불집회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PC통신 초창기에 케텔이 하이텔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때까지 무료였던 서비스가 1달 9900원을 받는 유료로 전환되었고, 그때까지 공짜로 PC통신을 사용하던 유저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웬만한 시위에 백골단이나 화염병(속칭 꽃병)같은게 나도는게 일반적(...)이었던 시절인 데다가 아직 PC통신 이용자가 수십만 명정도에 불과했던 때라 큰 화제는 되지 못하였고 그냥 묻혔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2002년 미선-효순 사건 때,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기자(겸 네티즌[2]) '앙마'가 추모의 촛불을 켜자는 주장을 한 것으로부터 다시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3]

시위에는 흔히 수련회에서 사용하는, 양초에 촛농이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종이컵으로 받침을 해놓은 형태로, 자신이 직접 가지고 나오거나 아니면 시위를 주관하는 단체에서 돌리는 경우가 있다. 단 후자의 경우에는 마지막에 다음 시위 때 쓸 양초 구입을 위해 모금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시위형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를 위한 집회를 기점으로 참여자가 많은 양상을 띠게 되었으며, 이후 2008년 5월 한-미 쇠고기 협상문제로 또 한 번 발생하였고, 2011년 6월 에는 반값 등록금 공약 논란으로 인한 촛불집회가 서울에서 발생했다. 2013년 6월 부터 세월호 침몰 전까지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의혹관련 촛불집회가 열렸다. 현재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관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 촛불집회하면 진보진영에서만 주로 연다는 시각도 있지만[4] 보수진영에서도 촛불집회를 연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참여정부 당시 사학법 개정 반대 촛불집회 등의 경우가 있다.

도시건설 시뮬레이션의 명작인 시저 3에서, 시민들의 지지도가 떨어지면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한다. 촛불인지 올리브유 램프인지 표현이 애매하게 되어 있으나 이 게임에서 올리브유는 대도시를 차릴 때나 나오는 고급자원이고 로마 제국 때도 양초는 있었으니 촛불시위라고 봐도 틀리진 않을듯. 처음에는 길거리에서 시민 한 명(으로 표현된다)이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며 통치자를 규탄하는 문구를 외치지만 (이걸 치안대원이 칼로 찔러 죽인다... ㄷㄷ) 더 발전하면 그런 시민들이 수십명이 몰려나오면서 반달리즘을 시전한다.

2. 참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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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하비 밀크는 게이였으며 동성애자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 [2] 오마이뉴스 자체가 일반 시민(또는 네티즌)과 기자 간의 경계를 없앤다는 언론이기 때문에, 기자이기는 하지만 네티즌인 것이다.
  • [3] 다만 효순, 미선 사건 당시 최초의 촛불추모 자체는 미군 교회에서 시작했다.
  • [4] 다만 2008년 촛불집회나, 2011년 촛불집회의 경우는 경우 민주당이 주도한 건 아니고 상당히 나중에 끼어든 사례로, 특히 2011년에는 옛 열린우리당 정권이 등록금 상승현상을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던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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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5 01: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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