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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축구인)

last modified: 2015-04-12 01:05:39 by Contributors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최강희 (崔康熙 / Choi Kang-Hee)
생년월일 1959년 4월 12일[1]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양평군
포지션 수비수
신체조건 176cm
등번호 3번
프로입단 1983년 포항제철
소속팀 한일은행 (1979)
육군 축구단 (1980~1982)
포항제철 (1983)
현대 호랑이 (1984~1992)
지도자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1998~200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코치 (200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3 ~ 2004)
전북 현대 모터스 (2005~201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1~2013)
전북 현대 모터스 (2013~)
국가대표 30경기 0골

1986년 K리그 MVP
문배(럭키금성 황소) 이흥실(포항제철 아톰즈)
최강희(현대 호랑이)
해원(대우 로얄즈)

2009년 K리그 감독상
차범근(수원 삼성 블루윙즈) 최강희(전북 현대 모터스) 박경훈(제주 유나이티드)

2011년 K리그 감독상
박경훈(제주 유나이티드) 최강희(전북 현대 모터스) 최용수(FC 서울)

2014년 K리그 클래식 감독상
황선홍(포항 스틸러스) 최강희(전북 현대 모터스) 2015년 수상자

198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용세
FW
아퐁
FW
득수
MF
상인
MF
이흥실
MF
박항서
DF
장외룡
DF
문배
DF
최강희
DF
김철수
GK
김현태
198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용세
FW
해원
FW
현기
MF
조민국
MF
이흥실
MF
윤성효
DF
영증
DF
평석
DF
최강희
DF
노봉
GK
풍주
198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기근
FW
현기
FW
동철
MF
최진한
MF
김상호
MF
황보관
DF
최강희
DF
태진
DF
형선
DF
태식
GK
연교
199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기근
FW
고정운
MF
김현석
MF
이영진
MF
김주성
MF
최강희
MF
이상윤
DF
용환
DF
현용
DF
테드
GK
풍주


Contents

1. 소개
2. 감독 데뷔
2.1. 2006 챔스 우승 이후
2.2. 2011 시즌
3.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
3.1. 부임 과정
3.2.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4. 전북 현대 복귀
4.1. 2013년
4.2. 2014년
5. 비판
6. 기타

1. 소개

닥공축구의 달인
기성용 팬들의 증오 대상 1호[2]

前 축구선수. 現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 현역 시절 별명개구리였다고 한다.

감독으로서의 별명은 청나라의 황제인 강희제에서 따온 강희대제와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에서 따온 봉동이장이 있다.

경기도 양평군에서 태어나 서울 용두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이영진대구 FC 감독과는 용두초등학교 선후배 사이이다. 우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 대신 곧바로 실업 무대에 뛰어든 그는 한일은행과 육군 축구단을 거쳐 1983년 포항제철에 입단,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포항에서 1시즌을 보낸 후 이듬해 1984년 현대 호랑이의 창단 멤버로 이적하여 은퇴할 때까지 울산 현대에서 뛰었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7세이던 1986년에 포항제철의 이흥실과 공동 MVP로 선정되고 28세이던 1987년에 1988 서울 올림픽 대표 선수로 선발되면서부터로 이후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어 3경기에 풀타임 출장했다. 이른바 대기만성형 선수.

이후 1992년까지 울산 현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1991년 현대의 감독으로 취임한 차범근과 갈등을 빚은 끝에 1992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당시 차범근 감독이 선수단 전원에게 금연령을 내렸는데, 팀 최고참이던 최강희가 '고참과 신입을 똑같이 대하지 말라'면서 공개적으로 반발했고, 결국 차범근 감독과는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이후 현대 시절의 은사이던 김호 감독을 따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트레이너와 코치 생활을 하며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2002년에는 동계 훈련 도중 김호 감독과의 불화로 해고되었다. 이후 절친한 사이인 박항서 감독 밑에서 부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로 합류했다. 2003년부터는 박성화와 함께 성인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발되며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을 보좌했다. 대표팀 코치 시절에는 대한민국 축구에 익숙하지 않은 코엘류 감독에게 조언을 자주 했다고 한다. 유명한 을룡타 사건 당시 이을용의 퇴장 이후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코엘류 감독에게 조언을 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코엘류 감독 본인 및 코엘류 감독이 데려온 외국인 스탭들과 박성화, 최강희 등 한국인 코치사이에는 심각한 불화가 있었다. 최강희 코치는 공공연하게 팀운영에 대한 불평불만을 기자들에게 흘렸으며, 이런 것들이 스포츠신문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3] 최강희 감독 본인은 시간이 흐른 뒤 한 인터뷰에서 코엘류 감독을 해설만 해서 실정을 모른다는 평가를 하는 등 그다지 좋은 감독으로 여기지는 않은 모양이다.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코엘류 감독 밑에서 코치를 하던 시절, 박성화와 더불어 코엘류 감독의 훈련 스케쥴을 무시하면서 개별적으로 작전지시를 하는 등, 대놓고 월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2. 감독 데뷔

2004년 쿠엘류 감독이 오만 쇼크몰디브와 비기는 등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사퇴하면서 감독대행이 된 박성화 코치와 함께 잠시 더 머물다가 조 본프레레 감독이 부임, 코치진이 새로 짜여지자 국가대표팀 코치에서 사임했다. 그 전에 그가 코치로 몸담았었던 수원에서는 김호 감독의 후임으로 하필이면 현역 시절 크게 마찰을 빚었던 차범근 감독이 새로 부임하자 수원으로 돌아가기도 껄끄러워졌다. 그래서 그는 이흥실과 함께 브라질로 건너가 연수를 받았다. 그러던 중 2005년 시즌 중 전북 현대 모터스윤환 감독이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사임하자 전북 구단은 최강희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2005년 7월 3일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2005 FA컵을 우승시켰다. 부임 후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시작한 2006년은 여러모로 전북과 최강희 감독에게 힘든 해였다. 내적으로는 국내 선수들은 부천파와 비부천파[4]로 파벌이 나뉘어져 이들간에 갈등이 있었고 외국인 선수들은 기량이 영 아니올씨다였으며 외부적으로는 구단주이자 모기업의 수장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구속되는 등 악재가 겹쳐 시즌 초반에는 참가 중이던 AFC 챔피언스 리그를 포기하려고까지 했으나 대회 중도 포기를 하면 벌금을 내야되고 또 챔피언스리그에서 예상 외로 선전을 하게 되자 오히려 챔피언스리그에 주력,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부임 2년차에 우승컵이 2개.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강희대제란 별명을 얻었는데 이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국 팀들에게 연달아 이기자 중국 언론들이 그의 이름인 강희가 청나라의 왕 강희제와 한자가 똑같다고 지은 별명이다. 헌데 본인은 그보다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에서 유래된 별명인 봉동이장이라고 불리고 싶어하는 듯. 그 이유인즉슨 강희대제라는 강한 이미지보단 선수/팬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미지를 선호한다고. 특유의 가발같은 2:8 가르마도 이장이라는 별명과 잘 어울린다. 봉동읍에서 실제로 명예이장직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1. 2006 챔스 우승 이후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5억이라는 우승상금 뿐 아니라 우승 자격으로 참가한 FIFA 클럽 월드컵에서 모기업 현대자동차를 전세계에 홍보하는 효과를 거두게 했다.[5]

그동안 애물단지로 여겨지던 전북 현대 구단이 의외로 홍보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게된 현대자동차는 이 때부터 이철근 단장을 필두로 최강희 감독에게 전폭지원을 약속하게 되는데 성적만 봐도 2005년에는 12위, 2006년에는 11위에 그쳤으나 챔스 우승을 한 그 다음 해인 2007년에는 8위, 2008년에는 조재진을 영입하는 상당한 투자를 하며 4위, 이어 2009년에는 이동국과 K리그 최고 용병 중 하나로 뽑히던 에닝요를 영입하며 창단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전까지 K리그의 기업구단치고는 모기업의 지원이 적은 편이었고 K리그 팬들 사이에서 스타 선수 하나 없는[6] 만년 중하위권으로 여겨지던 전북이 최강희 감독 이후로 자타가 공인하는 K리그 강팀이자 인기 팀으로 완전히 변해 버렸다는 것. 이것이 최강희 감독이 전북 팬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받들어지는 이유이다.

2010 시즌에서는 제주 유나이티드에 덜미를 잡혀 리그 3위로 마쳤으나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은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2.2. 2011 시즌

자타공인 2011 시즌 K리그 끝판대장

FA컵과 컵대회에서는 16강 8강에서 탈락했으나 정규리그인 K리그에선 16라운드까지 11승 2무 3패에 무려 38득점(!!) 19점으로 2위 포항 스틸러스와는 승점 5점차로 1위를 독주하고 있으며 이후 포항 스틸러스와 승점차를 3점에서 9점까지 늘였다 줄였다 희망고문만 하다가(...) 29라운드에서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짓고 챔피언 결정전으로 직행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 역시 결승에 순조롭게 선착하여 리그 더블을 노리고 있는 중.

무엇보다 무서운 게 약팀 강팀 안 가리고 매경기 평균 2골 씩 퍼부으며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6강 PO부터 차례로 서울 수원 포항을 깨부수고 올라온 울산의 철퇴축구 기세에 맞서 닥공으로 맞불을 놓았고, 원정 1차전에서 2:1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팀 잎장에서 으레 취하기 마련인 수비적인 전술 대신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와 결국 2:1역전승을 이루어 2011년 우승을 차지한다. 이에 대해 본인은 '어차피 축제의 장을 마련하자고 했기 때문에 비기고 우승하는 것보다는 이기자고 했다. 홈팬들에게 이기는 기쁨을 나눠주고 싶었다. 큰 경기 부담감으로 미흡한 점도 있었지만 이기려는 의지가 강했다'라고 직접 밝혔다.

2011 한시즌동안 최강희 감독의 전북은 정규리그, FA컵, AFC 챔피언스 리그, 컵대회 포함 47경기에서 108골을 기록, 경기당 2.29골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작성하며 닥공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3.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

3.1. 부임 과정

2011년 12월 7일 조광래 국가대표팀 감독이 전격 경질되고 후임 감독으로 국내파중에선 가장 유력한 후보로 검토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본인이 그럴 일 없다고 했다.

하지만 12월 20일 쿠웨이트전만을 맡는 원 포인트 릴리프 감독으로 내정될 것이다'라는 축구계 관계자의 발언을 소스로 한 기사가 터졌고 감독 선임에 대해선 축협은 21일 발표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12월 21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국가대표 감독으로 확정되었다. #

최감독의 선임은 축구협회가 비난의 도마에 오른 가운데 당초 김호곤 울산 감독을 내정하려던 축협이 여론의 뭇매에 항복한 것이라 볼수 있겠지만... 축구팬은 당장 지명도가 높은 최감독 카드를 내밀어 시간을 끌며 면피한다고 여전히 축협을 비난중이다. 하기야 조광래 감독 해임 직후 선임했다면 또 모르겠으나 2주일이나 흐른 뒤에, 그것도 온갖 외국인 감독 이름을 흘리며 언플을 해대다가 뜬금없이 선임했으니 누가 봐도 축협의 정치적 쇼에 불과했으니.

애당초 쿠웨이트 전은 원 포인트 릴리프 형식으로 한 경기만 임시 감독이 맡은 뒤, 최종예선에선 정식으로 후임 감독을 선임하지 않을까 예상이 우세했으나... 최강희 감독을 선임했지만 계약기간은 정하지 않았다는 괴랄한 결과물을 들이대며 무능력 행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언론은 여전히 거수기 불투명한 선임 과정과 절차를 놓고 공세를 퍼부었으나, 축협은 '백의종군'이라는 개드립을 치면서 생깠다. 백의종군은 그런 뜻이 아닐 텐데

결국 축구협회는 '22일부터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하겠지만 브라질 월드컵에 나가면 그때까지 임기를 보장하겠다'며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한마디로 국내파 감독은 일단 질러놓고 보는거냐 급한 김에 최강희 감독 선임부터 해놓고 구체적인 협상은 이후 분위기 봐가며 진행한다는 소리다. 즉 조광래 감독 해임 시점부터 뒷일은 아무런 고민도 준비도 없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인증했다.

해외 유수의 명장들을 기대하던 축구팬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외국인 감독이 단기간 팀을 파악하고 추스리는 일은 불가능한 만큼 국내파 감독 가운데 그래도 믿을 만한 감독이라는 긍정적 반응도 있다. 어쨌든 조광래보단 낫다는 건가

무엇보다 최강희 감독의 국가대표 감독 선임의 최대 피해자는 최강희 본인과 전북팬들. 최강희 감독은 2011년에 아쉽게 놓친 아시아 최강의 자리를 되찾겠다며 열성적으로 준비하던 2012시즌을 포기해야 했고, 전북팬들은 팀을 K리그의 강팀까지 키워놓은 감독을 하루아침에 잃고 말았다.

오히려 축구팬은 대표팀 운영보다 최강희 감독의 장래 커리어를 걱정하는 상황까지 닥쳤다. 전임 조광래 감독 역시 경남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대표팀에선 끝내 낙마하고 말았는데, 프로팀과 대표팀은 운영 방식이 차이가 나는만큼 최강희 감독의 화려한 프로팀 커리어가 결코 대표팀에서 성공을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5년 전 박성화 감독의 실패도 있다. 데자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 사태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부산 감독을 그만두고 올림픽 대표팀을 맡았다가- 끝내 결과를 내는 데 실패, 국내에서 감독 커리어가 절단나버린 과거가 있다. 결과적으로 그때 한 감독의 커리어를 말아먹은 높으신 분들이 아직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시다는 점은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7]

조광래 전임 감독과는 달리 이동국 같은 베테랑들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으며 해외파라도 K리그 선수들과 동급에서 주전경쟁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모든 건 다가오는 쿠웨이트전을 이기고 난 뒤에야 무슨 이야기든 나올 상황이라... 아무리 최감독이 11년 시즌 3패밖에 하지않은 위기관리능력이 뛰어난 감독이라지만 단판에 모든 승부를 걸만큼 베짱이 있을지는 두고봐야 할듯.

최강희 감독이 감독 후보 물망에 올랐을 때 축구팬 사이에서는 전북이니까 놓아준다/놓아줄 리가 없다 의견이 분분히 나뉘면서 현대가 파워가 어떻게 작용할지가 관심사였는데,
본인이 구단 홈페이지에 남긴 글로 미루어보아 본인의 의지보다는 외압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전북 구단측이 감독을 지키는 데 너무나도 무력했던 점을 보아 사실상 현대가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 중론.

그런데 누구도 예상 못한 돌발 변수가 나타났다!
최강희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계약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표팀 거부하겠다'며 2013년 6월, 즉 최종예선까지만 대표팀을 맡고 그 후에는 전북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기간을 앞둔 2013년 5월에도 그 의사는 명확하며, 기자들에게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기사를 써달라, 그래야 내가 아니라 다른 감독을 앉히지 않겠느냐'라고 까지 말할 정도.

이젠 축협으로선 언플이 아니라 진짜로 월드컵 본선을 맡을 외국인 명장을 물색하지 못하면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몰릴 상황. 고것 참 쌤통이다
그런데 외국인 명장은 꿈 홍명보가 후임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3.2.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최강희호는 2012년 2월 2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평가전으로 첫 A매치를 치뤘다. 결과는 4:2 대한민국팀의 승리였다.

2012년 2월29일 쿠웨이트와의 월드컵3차예선에서 2:0으로 승리.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덤으로 일본우즈베키스탄에게 져서 톱시드까지 획득하게 되었다.

이후 월드컵 최종예선 관련 내용은 최강희호 항목을 참조.

당초 이란전이 끝난 후에 6월 23일 전주시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이 복귀 환영식을 열고 6월 26일 수원과의 원정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를 예정이었으나, 이란전 패배 후 복귀 환영식은 취소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대표팀 감독 시절의 애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SNS파동이 일어났던 기성용을 품어주고 후임 홍명보를 옹호하는 대인배적 마인드를 보여주었다. 기사

물론 기성용 측에서의 인터뷰기사에 관련된 것이지만 정말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에 책임감이 있었는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기사하지만 메인으로 까이는건 박주영 이 기사의 한 부분을 보면 최종예선 마지막 이란전에서 제대로된 수비전술조차 마련하지 않은채로 경기를 치루게 했다는 것이 보여진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물론 최강희 감독이 선임되는 과정, 그리고 최종예선까지만 맡겠다는 계약을 생각한다면 최강희 감독이 감독으로서의 일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는 하나, 감독으로서 제대로된 전술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라고 알려져 또다시 기성용 팬들 및 해축팬[8] 들에게 또다시 극딜을 당하나 했으나....

막상 기사를 읽어보면 기사 본문에서 이란이라는 단어 자체가 언급이 안될뿐더러 최종예선 마지막 3연전에서 기성용은 애초에 명단에 소집되지도 않았다. 기사 고로 최강희를 까지 못해 안달난 기빠의 뇌내망상. 그리고 결정적으로 셋피스 전술이 없어요??? 풋 셋피스 훈련이 없다는 건 기레기의 망상에 불과했다.

4. 전북 현대 복귀

4.1. 2013년


6월 27일, 전북 현대는 최강희 감독과 3년 6개월의 계약을 맺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16년까지. 복귀가 약간 지연되어 새롭게 수석코치로 내정된 홍기가 1게임을 감독 대행을 맡아 치렀다. 6월 28일부터 구단에 복귀하였다. 일각에선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가을 즈음 복귀하지 않을까 예상했고, 구단측에서도 내심 복귀를 바라면서도 그동안 최강희 감독의 내적, 외적고생이 극심했음을 아는 터라 쉬고 오라는 분위기였으나 수원전에서의 5:4 패배를 본 최강희 감독 본인이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빠른 복귀를 선언했다. 지난 시즌은 이흥실 수석코치가 감독 업무를 대신했으나, 이번 시즌은 그마저도 놓치고 파비오 피지컬 코치(...)가 감독 업무를 보는 파행이 반년이나 이어졌으니...... 사실 K리그 팬들 사이에선 최강희 감독이 부재 중이던 1년 6개월 사이 전북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평가가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판국이었다. 일부 비관론자들은 전북이 과거 끝판대장 포지션을 되찾으려면 처음 최강희 감독이 취임했던 때처럼 5~6년 세월은 걸릴 것이라 할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단 측에서 감독 부재중인 상황에서도 지난 이적 시장에서 미친듯이 돈을 퍼부어 케빈 오리스, 이승기, 박희도, 송제헌, 정인환, 이규로, 정혁, 이재명 등 좋은 자원들을 꾸역꾸역 끌어모았고 기존 1, 2군 선수들의 기량 역시 리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인지라 이런 막강한 스쿼드를 보유한만큼 이번 시즌에서도 얼마든지 반등을 꾀할 동력 자체는 충분하다.

그리고 6월 30일, 리야 페트코비치 감독 체제로 바뀐 뒤 대전을 6:0으로 대파하며 호조를 보이던 경남 FC를 전주 홈에서 맞이하여 복귀전을 치렀다. 결과는 케빈과 이동국이 각각 2골씩 기록하며 4:0 명량해전대승을 거뒀다. 이를 두고 찌라시들은 닥공부왘부활을 외쳤으나, 사실 경기 내용을 봤을 땐 닥공과 거리가 멀었다. 전후반 내내 주도권을 쥔 쪽은 경남이었는데, 최강희 감독은 상승세의 경남에 맞불을 놓는대신 점유율을 포기하고 대신 공격을 끊었을 때 빠른 역습으로 털어버리는 전북식 철퇴축구를 들고나왔다. 경남으로선 좋은 경기를 했지만 화룡점정-골을 넣을 공격수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분루를 삼켜야했다. 반면 전북이야 이동국 케빈 에닝요 레오나르도 이승기 누구 발이든 찬스가 걸리면 높은 확률로 골을 넣어줄 테니.....이건 미친 짓이야 나는 여기서 나가겠어!

거기에 대표팀 감독 과정에서 심란한 사건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주 출신으로 전북에 입단했으나,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2군에 처박혀 있던 용병인 윌킨슨을 마개조해 최고의 수비수로 만들어 놓지를 않나,칼럼참조 역시 최강희 감독은 전북에 있어야 한다. 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덤으로 해당 선수인 윌킨슨은 호주 국대로 뽑혀 나가 조별 예선 칠레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15라운드를 마친 6월 30일 현재 전북은 승점 24점으로 리그 5위. 4위 제주와 승점은 같지만 득실차로 밀렸다. 한편 1위 포항은 29점, 2위 울산은 27점.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
결국 승점 63점으로 3위로 시즌을 끝마쳐 K리그 최초 AFC 챔피언스리그 5연속 진출 기록을 세웠다.

4.2. 2014년

강희대제의 귀환.
시즌 초부터 대다수 축구인과 팬들에게 1강으로 꼽힌 전북이었고, 예상대로 무난하게 24승 9무 5패 승점 81점을 획득하며 일찌감치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2위 수원이 승점 67점 3위 서울이 승점 58점임을 감안한다면 압도적인 페이스.
한가지 이채를 띈 기록이라면 리그 최다 득점 최소 실점을 동시에 기록했다는 점이다. 시즌 내내 최강희 감독은 전북은 1강이 아니고 올해 전력도 역대급이 아니라고 거듭 밝혔는데[10] 실제로 닥공을 트레이드 마크로 내건 전북이 수비에 역점을 두고 팀을 운영했을 만큼 고민이 깊었던 시기였다.
상세한 내용은 전북 현대 모터스/2014시즌 참조.

5. 비판

그가 K리그에서 쌓은 업적과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인격면에서 싫어하는 사람은 꽤 있는 편이다.[11] 리그베다 위키에서도 일부 최강희를 극도로 싫어하는 위키러들이 이곳 저곳 항목에 최강희에 대해 심하게 안 좋은 소리를 하면서 최강희호는 홍명보호보다 더 최악의 국대였다는 평가를 써놓기도 하면, 기성용은 가만히 있는데 최강희가 멋대로 사과 안 해도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언플한다는 식으로 글을 쓰기도 할 정도로 여전히 그에 대한 안티들은 적지 않게 있다. 안티들이 붙인 그의 별명은 죄강희.

선수시절 울산에 독일식 선수단 관리시스템을 적용하려는 차범근 감독과 흡연 등으로 불화가 생겨 대판 싸우게 되자, 차범근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캐리커쳐를 그리고 동료 선수들이 그 그림에 다트를 던지며 비웃었다고 한다. 상당히 강압적이었던 차범근 감독의 실책도 일정부분 있고 젊은 시절의 치기로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중년이 되어 감독이 된 시점에서도 뻔뻔스레 웃으며 이때일을 언론에 이야기하고 다닌다는 것. 때문에 차범근과의 사이는 아직까지도 소원하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대표팀을 지휘봉을 잡았을때 박성화와 함께 국내 코치진을 맡아 보좌했는데 감독 지시에 사사건건 간섭하며 코엘류 감독과 극심한 불화를 일으켰다. 박성화 코치와 함께 선수들로 하여금, 코엘류 감독의 지시를 무시하고(감독의 지시를 담은 문서를 빼앗았다고 한다.) 자신들의 지도를 받으라고 강요하는 하극상을 저지른다. 참다못한 코엘류 감독이 당신이 감독이냐며 언성을 높였다하며 조셉 아우구스토 피지컬 트레이너가 한국을 떠나며 이같은 월권에 대해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와 폭로한 바 있다. 축협에서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하고 감독-코치간의 반목으로 훈련과 전술운용이 될 리가 없던 엘류호는 오만 쇼크, 몰디브 쇼크를 연달아 맞고 좌초하게된다. 최강희는 후일 어떻게 코엘류같은 사람을 감독으로 데려왔는지 모르겠다면서 비난하기도 했다.

또한 국내감독치고는 꽤 언플이 잦은 편이라 받아들이기에 따라 상대가 불쾌할 수 있거나 그런 의도로 왜곡되기 쉬운 발언을 자주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로 인한 문제가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여러 번 터져나왔고(그나마 상대가 더욱 병크스러운 대응을 한 덕에 묻혔을 뿐. 선발이 아니라 충격먹었다든지, 멀쩡한 다른 선수를 O형으로 만든다든지[12], 생방송으로 주먹감자를 날린다든지.), K리그에서도 이런 언플이 여러 번 있었는데다 전북 현대 모터스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13] 타 팀 팬중에서도 전북 현대 팀 자체와 더불어 감독도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6. 기타

재활공장장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네임벨류는 높지만 먹튀 취급받던, 이른바 '왕년의 스타'들을 재활시키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미들스브러-성남에서 매우 부진했던 이동국이나 '이천수 친구'로만 기억되던 최태욱이 좋은 예. 이러한 선수들을 영입하고 주변의 우려 속에 시작했던 2009시즌은 F4라 불리는 '''이동국-최태욱-루이스-에닝요''를 앞세워 정규 리그 1위로 팀을 이끌었고 그 해 플레이오프에서도 우승하였다.

하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이재성, 이주용이라는 걸출한 라이징 스타를 과감히 키워냄으로서[14] 재활공장장이라는 이미지는 어느정도 씻어내는 데 성공. 하지만 여전히 베스트 일레븐에서는 꽤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편으로서, 기용되는 평균 나잇대가 다소 높은 편. 2014년 현재, 아직 데뷔하지 못한 신인들도 꽤 된다!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순간 셔츠안에 부상당한 김형범선수가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있어 팬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현역 은퇴할 당시 현대 호랑이의 감독이었던 차범근과 사이가 굉장히 나빴다. 최강희 감독 본인의 과실이 있엇다고 비바 K리그 인터뷰[15]를 통해 시인했는데,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던 최강희 감독이 프로 데뷔 후 담배를 6년 간 끊었다가 1992년부터 다시 담배를 피웠는데 때마침 독일 경험을 마쳐서인지 선수들 몸관리에 대해서 대단히 깐깐하기로 유명한 차범근이 부임해 왔다. 차범근은 고참선수에 대해 그다지 간섭을 하지 않던 대한민국 축구의 암묵의 룰을 철폐하고 독일식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했는데 당시 울산 선수들 상당수가 이러한 차범근의 방식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러다 차범근에게 딱 걸렸다. 최강희가 주도해서 라커룸에서 차범근의 모습을 만화로 우스꽝스럽게 그리면 선수들이 거기에 다트를 꽂는 식의 행동이 있었다고 한다. 최태욱, 유병수, 기성용 등이 2000년대 이후에도 감독과의 불화로 비난받았는데, 지금보다도 감독-선수간 위계질서가 보수적이었던 90년대에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

차범근 감독 측의 과실도 있는데 1993년 시즌을 앞두고 차범근 감독이 최강희, 즉 선수와 연봉 협상을 하지 않고 연봉을 감독 마음대로 정하자 이에 반발하여 동계훈련에 불참하는 등의 마찰을 빚으면서 강제 은퇴를 강요받아 본의 아니게 이른 현역 은퇴를 하게 되었다. 최강희도 이때의 결정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후회된다고 회상했다. 국가대표팀 코치를 거쳐 전북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차범근 감독이 전력 외로 분류했었던 에닝요와 루이스를 영입해 차범근이 이끌던 수원을 제압하고 수원을 상대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0년 5월 차범근이 감독으로서 부진하여 사임을 발표한 후 수원 홈구장에서 펼쳐질 고별 무대의 상대팀이 최강희의 전북이었는데 3:1로 대승을 거두며 감정이 담긴 이별의 피날레를 치러주었다.[16]

K리그 최고의 윙덕후 감독으로 꼽힌다. 최강희 감독 자신이 선수시절에 윙백이어서 그런듯. 이 부분은 전북 현대 모터스 항목을 참조바람. 하지만 2011년 챔피언 결정전 이후 인터뷰에서 '미드필드에서 경기 운영을 잘 하는 선수를 영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한 것처럼설마 뼈정우? 측면을 이용한 전술을 선호하지만[17] 무조건 닥치고 윙수집 정도까지는 아니다.

만화에 소질이 있다고 한다. 축구 안했으면 만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18]

인터넷 사용에도 능숙해서 미니홈피나 팬클럽 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해서 소녀팬들이 많은데 봉동에 있는 훈련장에는 선수 팬보다 감독 팬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그런데 2008년 시즌 전에 조재진, 강민수 등 대어를 영입하며 나름 알차게 보강을 했으면서도 수비조직력이 막장을 치달으면서 하위권을 달려 욕을 많이 먹던 중, 9월 8일에 구단 홈페이지에 '성적에 대한 책임은 무조건 내가 지겠다. 믿고 기다려 달라' 는 내용의 장문의 을 올리고 이후로 축구에 집중하겠다며 그때부터 미니홈피와 팬클럽 활동을 줄였다. 그 와중에 선수들이 지금까지도 싸이 카톡 하데질에 빠져있는 모 야구단을 디스하셨다.[19] 참고로 이때부터 연승을 거두며 부진에서 탈출하여 6위로 정규리그를 마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4위로 시즌을 마쳤다.[20] 2009년에는 팀 운영에 주력하기 위해 미니홈피와 팬클럽까지 폐쇄하더니 결국 우승. 그런데 2010년부터 축구계에 하도 트위터바람이 불다보니 그 유혹에 끌리시다가 결국 카카오톡을 하고 계신다는 듯.

동명이인인 탓에 간혹 인터넷에서 '최강희 사진'이란 제목에다 감독 최강희의 사진을 올려놓는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강희 감독이 7년동안 전북을 어떻게 이끌었는가에 대해서는 이 기사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2011년 9월 18일 K리그 25라운드 경남전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감독 개인 통산 100승 감독의 대열에 올라섰다. 이는 역대 11번째 100승 기록이자 역대 최단 기록이다.[21]

2011년 12월 4일 챔피언 결정식 시상 이후 신의 한수준비한 밀짚모자와 장화(!!)를 쓰고 나타나 '봉동이장'이라는 별명을 직접 인증했다. 흠좀무.
본인이 준비한게 아니라 봉동주민들이 챙겨온거라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전북은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끝나는 2013년 6월까지 수석코치였던 이흥실 감독대행 체제로 가게 된다. 그러나 2012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북이 초반 2경기 모두 1:5로 대패하고 결국 전북 팀 역사상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난을 당하자 최강희 감독을 그리워 하는 전북 팬들의 그리움이 짙어지고 있다. 그런데 챔스 탈락 이후 최강희 감독 시절에도 달성하지 못한 구단내 최다 연승 기록인 8연승을 달성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전북에서 대단한 역사를 남긴 탓에 최강희 감독에 대한 전북의 사랑은 엄청나다. 아닌게 아니라 리그제패는 물론이거니와 아시아 무대의 챔피언이 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였던 상위권팀들의 승점자판기보잘 것 없던 양민팀을 나라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강팀이자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아시아 클럽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명장 중에서는 팬에게는 떠받들어져도 보드진에게는 백안시되는 감독들이 어느정도 있는데 업적이 업적인지라 보드진에게도 무한믿음을 받고 있다. 2012시즌, 2013시즌에 전북이 최강희 감독 시절보다 많이 흔들리는데도 감독 대행들이 무사했던 건 '이순신최강희 감독이 돌아오신다'라는 희망으로 서포터들과 구단수뇌부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

이런 최강희 감독에 대한 애정 덕분에 안 그래도 K리그 팬들에게 애증의 대상인 국대는 최강희 감독 부임 이후 전북팬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흔히 FC 코레아 서포터들이라고 불리며 불려 나오면 까이던 국대 팬들은 원수가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늙었다고 국대 팬들에게 욕을 먹는 이동국까지 있어서 전북 팬과 국대 팬들간의 골은 더더욱 커져만 가는 상황.

최강희 스스로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마치고 한 인터뷰에서 "내 개인적으로는 (대표팀이) 좋은 경험이었지만, 대한민국 축구를 퇴보시키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든다. 한 경기 이기는데 급급하다 보니 나도 실망한 부분이 있다"라고 시한부 감독의 한계를 시인했다. 본선 진출이라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사실상 국대 커리어는 실패, 흑역사로 남을 듯 하다. 하지만, 국대감독직을 억지로 떠맡아 수행한 데다가 그 과정에서 위궤양까지 얻었다하니, 그동안의 고충을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기성용윤석영 등 일부 젊은 선수들이 최강희 감독을 무시하고 디스하는 어조의 글을 SNS에 올린 것이 알려지면서 사건이 커지기 시작했으며 기성용의 비밀 페이스북이 공개됨에 따라 그동안 최강희 감독에 대한 조롱등 심각한 하극상의 발언들이 알려지며 해외파벌과의 대표팀 갈등이 심각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이에 대하여 국대 감독 시절이 재조명을 받고 있으며 저런 "건드리지마, 오만한 모습 보이지 않길 바란다. 다친다." 라고 조롱발언을 재미삼아했던 해외파벌 선수들과의 갈등중에서도 턱걸이로나마 월드컵 본선행을 이룬 게 대단한 것이라는 여론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또 한 팀내 불화에 대해 최강희의 지도력 부재를 논하기엔 해외파벌 선수들의 멘탈이 너무 쓰레기란 의견이 압도적.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하여 데뷔경기였던 쿠웨이트전을 치르기전부터 페이스북에 조롱글이 올라왔을 정도니.....

더군다나 MBC의 한기자가 공중파에서 말하길 기자들은 대표팀의 분위기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며 최강희 감독 이전의 대표팀이 해외파벌 갈등이 더 심했다 라는 발언을 꺼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조광래호 시절에 조광래 감독은 해외파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였고 심지어는 1군과 2군을 분리하여 훈련장도 따로 이용해왔다는 것, 이에 국내파 선수들은 해외파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경기에 제대로 나오지 않아도 대표팀에서는 무조건 선발로 세우는 것에 대하여 불만이 팽배하여 있었다고 한다. 이에 조광래 감독이 경질되고 최강희 감독이 부임하며 국내파와 해외파를 다시 경쟁체제를 돌리자 해외파 우대체제에 젖어있던 해외파 선수들이 불만을 가지고 이에따라 더욱더 팀내 불화가 양극화되어 심화, 결론은 조광래호로부터 해외파벌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기자들이 뒷북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각해보자. 기자들이 뒷생각 안하고 이런 불화를 빵빵 터트리면 어떻게 될까? 10bird로 유명한 우충원 기자도 '기자들도 나름대로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인지라 이런 취재거리를 쥐어도 쉽게 못 터트린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저 양반은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하는 기자인데 저 말에 대부분의 기자들이 수긍할 정도였으니 말이 더 필요한가? 라지만 그래봤자 저 말은 기자들의 동료의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얘기에 수긍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알지만 터트리지 않았다는 의미고, 이 얘기에 반발한다는 의미는 아예 몰랐거나 혹은 축구계가 곪는 걸 방치했다는 뜻이므로.

결국 기성용측 소속사에서 비밀 페이스북을 사칭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그게 안되니 기성용 본인이 마지못해 하루가 지나 직접도 아니고 기사로 사과를 발표했고, 이에 대해 "그 얘기는 들었지만 지금까지의 인터뷰에서 누누이 밝혔듯이 어떤 선수도 미워하지 않았다. 기성용도 마찬가지다""내게 사과할 필요는 없다. 축구인은 축구로 진정성을 갖는다. 새롭게 대표팀을 이끌 홍명보 감독을 위해 열심히 축구에 매진하고, 팬들에게 보답하면 된다" 며 다시한번 대인배 인증 하였다.하지만 그 사이 기성용은 비밀 페북의 업뎃을 시도했다 기성용은 큰 일할 선수고, 미워한 적 없다고.[22]리더는 묵직해야한다. 그리고 안아줄 수 있어야한다.

하지만 이후 김남일이 대표팀에 합류한 뒤에 가졌던 인터뷰를 봤을때 최강희 시절 대표팀 내 해외파 파벌논란의 진실은 무엇인지...판단은 당신의 몫이다

수원 삼성 코치 시절에 스타크래프트에 심취해 며칠 동안 밤을 새가며 하신적이 있단다(...). 해당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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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절친한 사이인 덕주 전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대표팀 감독(종철의 후임으로 대구 FC 감독으로 선임됬다.)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는 1957년생이라고 한다.
  • [2] 얼마나 증오가 심한지, 기성용 비밀 페이스북 논란, 파벌 논란이 막 일어날 적에도 최강희는 파벌 따위는 없다며 기성용을 옹호해주는 태도를 일관성 있게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극딜 대상이 되고 있다. 2호는 미카엘 라우드럽인데, 그저 기성용과 싸웠다고 스완지보다 하위권 팀인 선더랜드로 임대 보내고는 정작 자신은 팀을 제대로 꾸리지 못 하고, 경질당해서...
  • [3] 코엘류 감독은 결국 1년만에 "한국인 코치들이 자기를 전혀 따라주지 않고 제멋대로 했다"는 인터뷰를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더불어 당시 조셉 아우구스토 피지컬 트레이너는 박성화 코치가 마치 자신이 감독인양 설쳤다는 디스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코엘류 감독이 선수 개개인에게 개별적 훈련과제를 적어서 메모로 전달했는데, 최강희, 박성화 코치 2명이서 이를 무시하고 전원 집합시켜서 (한국식)단체훈련을 시켰다는 일화도 있다.
  • [4] 부천 감독 출신인 윤환 감독은 전북으로 오면서 부천에 있던 선수들을 영입해서 이들을 주전으로 썼다. 그 중에서도 국가대표 출신 골키퍼 동명을 울산으로 내보내는 대신에 들어온 용발이 대표적 부천파였는데, 부천 시절부터 타고난 패션 센스는 그대로였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플레이와 잦은 실수를 일으켜-특히 2004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알 이티하드와의 1차전 2차전 모두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탈락에 크게 일조, 알 이티하드를 아시아 깡패로 만들어 주었다.(...)- 팀에게 치명타를 안겨 줬다.(...)
  • [5] 게다가 이 클럽 월드컵은 일본 도쿄에서 현대자동차의 경쟁사인 토요타가 메인 스폰서를 하는 대회다.
  • [6] 최진철이 있긴 했으나 2002년에 단물 빠진지 오래였다.
  • [7] 다만 박성화 감독의 경우는 클럽을 맡은지 보름 만에 떠나가 버린 것이 치명적이었고, 이전부터 안티가 많은 인물이었던 원인도 컸다.
  • [8] 이청용 역시 이런 말을 했다는 기사가 떴기에 해축팬들이 합심해서 최강희를 까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참고로 아직도 현재형이다.
  • [9] 이 편지를 썼던 소녀는 최강희 감독의 홈 복귀전에 초청되어 직접 최강희 감독을 만났다.
  • [10] 전북이 순수하게 힘으로 압도한 게 아니라, 경쟁 팀들이 전력 보강에 실패해서 상대적으로 결과가 좋게 나왔다는 뜻
  • [11] 때문에 기성용에 대한 아량은 그가 보살이라서가 아니라 명분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철저한 언플 내지는 아예 용서할 생각이 없음을 에둘러 말한것이라 보는 시선도 상당하다.그리고 기성용은 그런것도 안 하고 그냥 안면몰수하기에 급급했지
  • [12] 다만 O형 사건은 워낙 악질적인 짜집기다 보니, 최강희 감독의 안티들조차 잘 언급하지 않을 정도이다. 인터뷰상으로도 그냥 농담삼아 한말을 진담삼아 한 것처럼 날조하였고, 결정적으로 최강희는 혈액형 드립을 쳤지 구체적으로 O형 드립을 친 것은 윤석영이다. 멀쩡한 다른 선수를 O형으로 만든 것 역시 윤석영인데, 그가 트위터에 올린 수비수들 중에 O형은 정작 윤석영 한 명 뿐이었다(...)
  • [13] 최근 몇 년 사이 전력이 강해지며 유력한 우승후보가 된 것도 있고, 그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비인기팀인거도 있고 해서 강성 서포터로 악명이 높은 팀인데도 역시 강성 서포터로 악명이 높은 타 팀에 비해 이런 이미지가 희석되어 있는 거도 반감을 가진 팬들이 많은 원인이기도 하다. 심하게는 지역드립까지 하다가 까가 빠를 만드는 케이스가 나오기도.....
  • [14] 특히 단순한 윙이었던 두 선수를 모두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는데, 그 결과 이재성은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 미드필더를 뛰면서 중원에 새로운 원동력이 되었고, 이주용은 아예 레프트 백으로 크게 내려갔는데 공격형 풀백으로서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 [15] 2011년 5월 24일 방송분
  • [16] 이 시절 서울, 수원과 일명 파이리, 꼬부기, 이쌍해씨 포지션을 점하고 물고 물리는 관계에 있었다.
  • [17] 최강희 감독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거스 히딩크가 등장하기 전 대한민국 축구는 독일식 축구를 롤 모델로 삼았다. 다만 당시 여러 여건상 독일 축구를 직접 전수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본류와는 다른 자기류로 발전했다. 최강희나 조광래 세대 감독들이 이런 자기류 독일 축구의 마지막 계승자인 셈이다. 프레레 감독 시절 독일을 대파한 것은 이 자기류 독일 축구로 종가 독일 축구를 꺾어버린 일대 사건이었다.
  • [18] 1991.7.18. 경향신문. 2011년 우승이후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만화들을 공개했는데 재미있게도 현재의 닥공과는 달리 어린 시절에는 공격보다는 수비를 강조했었다.
  • [19] 본문 중 'LG야구가 현재 꼴지인데, 리그 36게임 남은거 다 이기면 플레이오프 갈 수 있다는 팬들이 있는데 내가 이런 걸 바란다면 나의 사치겠죠?'가 그 구절이다. 그리고 LG의 추격쥐 전설이 계속되며 이 말은 주목을 받고 있다. LG 선수들은 좀 보고 배워라, 쫌!
  • [20] 전반기 3승 2무 8패, 후반기 9승 1무 3패. 글 초반부의 LG 트윈스 디스처럼 DTD를 시원하게 비웃었다. 김재박, 보고있나?
  • [21] 100승 달성시점 : 224경기 – 차경복(2003년 9월 3일), 최강희(2011년 9월 18일), 261경기 – 박성화(2000년 3월 22일), 269경기 – 차범근(2007년 3월 4일), 271경기 – 고재욱(1997년 5월 4일), 272경기 – 허정무(2006년 8월 30일), 275경기 – 이회택(2000년 8월 30일), 276경기 – 조광래(2004년 5월 15일), 292경기 – 김정남(2002년 11월 17일), 294경기 – 김호(1999년 7월 7일), 329경기 – 박종환(2004년 10월 9일)
  • [22] 그런데 이런 말을 했음에도 여전히 기성용 팬들에게는 좋은 소리 못 듣고 있다.그 팬들은 아이돌 팬클럽 수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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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2 01: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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