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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비

last modified: 2015-04-02 20:35:09 by Contributors


생몰년도 미상.

서진, 고구려의 인물. 최염의 증손자. 왕준[1]의 처남.

영가의 난이 일어나면서 왕준이 중국의 동북지방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311년에 동이교위(東夷校尉) 봉석(封釋)이 사망하자 왕준이 그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중원의 난리를 피해 동북으로 유입되는 인재들을 끌어모으려 했지만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비가 아닌 모용외에게 의탁했다. 콩라인

그의 후원자였던 왕준이 313년 석륵에 의해 죽임당하고 그 세력도 와해되면서 최비는 요동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으며, 그 때문에 317년에는 사마예를 황제로 추대하는 데 동참했고 이 덕분에 동이교위에서 평주자사(平州刺史)로 승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자적인 세력으로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인재들이 모용외에게로 유입되자 최비는 마침내 고구려와 선비족의 우문부, 단부를 꾀어서 연합군을 만들어 모용부를 공격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했으며, 이에 연합군은 모용선비의 중심지인 극성을 포위했지만, 모용외의 이간계로 실패하고 오히려 자신이 배후에 있다는 것까지 드러났다. 이에 모용외는 "항복하는 것이 상책, 도망가는 것이 하책"이라면서 요동으로 밀고 들어왔다가 최비는 319년 12월에 수십 기병만 거느리고 단신으로 고구려에 망명했다.

훗날 모용황은 그의 딸을 장수 선우량(鮮于亮)과 혼인시켰다.

김진명의 소설 '고구려'에서 엄청난 왜곡이 수반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280년에 오나라 정벌 때 오나라 장강 방어선을 무력화시킨 일을 왕준이 아닌 최비가 두예 휘하를 지내던 최비가 한 것으로 나오며, 원목중걸과 함께 사마염의 총애를 받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298년에 사마월의 권세에 등을 업고 낙랑군을 감찰하러 가다가 그 태수를 죽이고 낙랑을 점령했으며, 팔왕의 난을 조장한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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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문은 妻舅인데, 오늘날 중국어의 용례로는 처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다만 권중달 교수는 자치통감 번역 과정에서 이를 처삼촌이라고 풀이해서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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