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최홍만


Hong Man "Techno Goliath" Choi
崔洪萬

국적 한국
킥복싱 전적 18전 12승 6패
7KO 5판정
2KO 4판정
종합격투기 전적 5전 2승 3패
1KO, 1서브미션
1KO, 2서브미션
생년월일 1980년 10월 30일
신장 / 체중 216cm / 140kg
링네임 "테크노 골리앗"[1]
기타 K-1 2005 서울 그랑프리 우승[2]

2012년 11월 정당에 입당하긴 했지만 정치 이외의 활동으로 유명하기도 하므로 이에 대해서만 서술합니다. 정치와 관련된 내용은 간략한 사실만을 서술하도록 합니다.

한국씨름선수이자 킥복서, 종합격투기 관련 인물

거구의 전직 씨름선수로 한국인 최초로 K-1 이종격투기 선수로 데뷔하며 한국의 격투기 붐을 일으켰다. MMA 무대에서도 활동했으며 일본의 연예계에도 진출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Contents

1. 씨름 경력
2. 격투기 경력
2.1. K-1
2.2. 종합격투기
2.3. 파이팅 스타일
3. 예능 활동
4. 뇌하수체 종양발견과 수술
5. 기타
6. 관련사건
6.1. 사기 고발
7. 미디어 믹스

1. 씨름 경력

2002년 동아대학교를 중퇴하고 LG투자증권 씨름단에 입단하여 프로씨름에 입문했다. 씨름 선수였을 때는 천하장사 1회, 백두장사 3회를 기록하며 나름 우승경력이 좀 되는 선수였지만 강호동 이후부터 시작된 기술을 배제한 힘씨름빨이라고 까이기도 한다. 굉장히 루즈한 진행으로 특히 같은 거인인 김영현하고 붙으면 경기 시간이 씨름인지 축구인지 구별이 안 갔을 정도.

인간극장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본인의 꿈은 자신에게 맞는 집을 지을 돈을 벌고 싶다는 것이였다.[3]

하여간 그 특유의 상품성 덕택에 프로씨름 데뷔조차 하지않았던 대학교 시절부터 TV 등에 나오며 엔터테인먼트성을 쌓았다. 218cm에 140kg이라는 엄청난 체구에 파란색, 노란색으로 눈에 띄게 머리를 염색하여 처음 본 사람도 인상에 남는 외모였고, 씨름에서 이기고 나면 세레모니로 춤을 춰서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져 가던 씨름에 대한 관심을 간간히 지켜가는 역할을 해냈다. 처음 시작이 이런 것을 보면 본래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하여간 씨름판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간 듯 했으나...씨름판이 막장이 되자[4] 다른 업계로 전향을 심각하게 고민한 듯 하다. 때마침 K-1도 한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고민않고 K-1으로 전향.

당시 최홍만과 LG의 팀 메이트들은 프로씨름의 사장화를 크게 우려하면서 길거리로 나가 씨름 팀 해체에 반대하는 전단지를 돌리기도 하고, 씨름선수이면서도 단식투쟁을 하는 등 여러 활동을 벌였으나 결국 사양길로 접어든 씨름판을 살리지는 못했다.

최홍만이 K-1 진출을 선언하자 씨름연맹은 최홍만을 영구제명하고 그간의 타이틀 획득경력도 모두 삭제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한다. 이만기 건 때도 그랬지만 한국의 수많은 병신 협회 중 하나.

하지만 타이틀 박탈에도 불구하고 최홍만은 K-1등에서 한국코즈나로 홍보되고 있다.

2. 격투기 경력

2.1. K-1

등장 신 테마음악은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 라젠카 Save us

엄청나게 큰 덩치와 씨름 선수였을 당시의 경력으로 인해서 꽤 주목을 받았으며, 격투기 실력이야 어떨지 몰라도 일단 등장과 동시에 2005년 3월 서울 토너먼트에서 우승해 아시아 챔피언이 돼 버렸기에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5] 게다가 초창기의 대부분의 시합이 실력이야 어찌됐든 간에, 니킥과 럭키 펀치에 의한 시원한 KO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같은 해 6월 히로시마에서 프로레슬러 '그린베레' 톰 하워드를 1라운드만에 니킥으로 끔살시키면서 '살인니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또한 7월 하와이 대회에서 아케보노와 2차전을 가져 1라운드에 다운만 2번 뺏어내며 연승행진을 이어갔다. 경기 후 관중석에 앉아있던 마이크 타이슨을 도발을 한 것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서울 그랑프리 우승자로써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참가 자격을 가진 최홍만은 9월의 오사카 월드 그랑프리 16강에서는 희대의 괴수 밥 샙과 난타전 끝에 뺨클린치 니킥으로 다운을 뺏으며 2-0 판정승을 거뒀다. 그 후로는 일본에서도 꽤나 괜찮은 흥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1월 도쿄에서 열린 8강전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의 아웃파이팅에 말려들어 로우킥만 40대 정도 허용한 끝에 판정패한다.[6]

이후 2006년 2월 '프레데터' 실베스터 터카이를 상대로 두 차례 다운을 뺏고 피튀기는 난타전과 체력 고갈로 고전한 끝에 판정승을 거뒀다.[7] 2006년 6월 서울에서는 슈퍼 파이트 초청 선수로 참가, K-1 2005 월드 그랑프리 챔피언인 세미 슐트에게 판정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우주괴수 슐트의 무난한 KO승이 예상되었으나 최홍만이 예상외로 선전을 보이며 슐트가 등을 돌리는 장면까지 나오게 만들며 선전했다. 다만 판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크게 일었다. 유효타와 전박적인 경기운영에 앞서나가던 슐트가 잦은 클린치로 인해 감점을 받았기 때문에 연장이 예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슐트의 세컨은 거세게 항의했고[8] 승자인 최홍만과 한국 관중들조차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최홍만의 승리에 환호가 나오다가 경기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에 대해서는 흥행 안되는 절대강자였던 슐트의 상승세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K-1측의 견제였다는 의견이 대세이다.

2006년에도 이렇게 상승세를 끌어 나가다가 전년도 8강 진출자 자격으로 월드 그랑프리 16강에 진출해 제롬 르 밴너와 대결, 연장까지 갔지만 내내 얻어맞으며 끝내 판정패한다. 슐트에게는 석연치않은 승리를 거두었고, 본야스키와 벤너에게 패했으나 K-1 최강자들을 상대로 꽤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선전했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었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흥행을 책임지는 선수였기에 K-1은 여전히 최홍만을 중용하였다. 이때까지가 최홍만의 리즈 시절. 스펙빨이라고 까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래도 톱 파이터들을 상대로 판정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나이도 젊은 편에 속했기에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2007년 3월 요코하마 스페셜 매치에서 그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마이티 모에게 KO패를 당한 것이다. 시합은 최홍만이 긴 리치를 이용하여 공세를 펼치고, 모가 간간히 오버핸드 라이트로 카운터를 노리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2라운드 57초 모의 오버핸드 풀스윙 라이트가 작렬했고 최홍만은 그대로 다운당하며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렸다. 충격적인 첫 KO패.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최홍만이 이 무렵부터 안면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7년 4월과 8월 각각 마이크 말론과 개리 굿리지를 KO로 잡아내며 재기에 성공한 최홍만은 2007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서 마이티 모를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한다. 요코하마에서의 패배를 의식한 듯 가드를 굳히고 로우킥을 내는 전법을 들고 나온 최홍만은 결국 우세한 경기를 펼쳐내며 판정승을 거둔다.[9] 하지만 최홍만이 모에게서 빼앗은 다운이 실은 로블로였다는 것이 드러나며 큰 논란이 되었다. 모는 판정에 큰 불만을 드러냈고 심지어 한국의 팬들 사이에서도 모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반면 최홍만에 대해서는 2차례에 걸친 지나친 어드밴티지와 데뷔 때부터 제자리걸음인 기량 등을 이유로 안티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당시 인터뷰. 마이티모의 표정에서 엄청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마이티 모가 너무 빡친 나머지 판정 결과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며 재판정을 요구를 했으나 K-1측의 답변은 다운이 로블로인건 인정하는데 니가 진건 맞음 ㅋ이었기 때문에 K-1도 상당히 많이 까였다. 2006년 밴너와 레미의 대결 당시 판정 논란이 일자 비디오 판독을 통해 결과를 정정한것과는 반대되는 부분.

이러한 여론은 2007년 12월 8일 월드 그랑프리에서 벤너에게 또 다시 패하면서 가속화된다. 그 와중에 연예계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까이기도 했다. 12월 30일 야렌노카에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보여준 선전으로 잠시 가라앉았으나 2008년 9월 바다 하리전과 2008년 12월 레이 세포전을 계기로 폭발하게 된다. 특히 2008 월드 그랑프리에서는 하락세가 뚜렷한 세포를 상대로 졸전을 벌인 끝에 스피드에서 농락당하며 세포의 굴욕기인 노가드[10]에 관광당하는 굴욕적인 결과를 냈다.

이 무렵을 계기로 그는 입식무대를 떠나 종합선수로 전향을 결행하게 된다. '더 이상 입식에서는 경쟁력이 없으니 종합에서 뛰어라'는 K-1 측의 권고였다.

2.2. 종합격투기

말줄임표가 많은 것 같으면 기분 탓

최홍만의 MMA 데뷔는 2006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입식 뿐 아니라 MMA로의 진출도 시도하고 있던 K-1의 의도에 따라 이벤트성 매치에 얼굴마담으로 출전한 것이다. 상대는 나이지리아의 개그맨 출신 파이터인 바비 올로건이었다. 결과는 11초 초살 KO승으로 데이터만으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입식에서도 잘나가고 있던 때였기에 "최홍만은 MMA로 진출하면 최강자가 될 것이다"라는 떡밥이 한국의 전 격투 커뮤니티를 달구기도 했다.

2007년 12월 야렌노카에서는 '마지막 황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경기를 하는 경험을 얻기도 했다. 효도르의 스피드에 밀리면서도 클린치 싸움에서 2번이나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상위에서 파운딩을 날리는 등 선전했으나 결국 리버스 암바에 걸려 서브미션으로 패하고 말았다. 마이티 모전 패배를 일신하는 계기가 되었고 MMA에서의 기분좋은 선전도 이어나갔다.[11]

2008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8에서는 PRIDE 2006 무차별급 그랑프리 우승자 미르코 크로캅이라는 또 하나의 빅네임과 대결했다. 최홍만은 6분 내내 바디킥과 레그킥에 난타당하다 결국 왼쪽 무릎에 인사이드 레그킥을 맞고 TKO로 패했다. 첨예했던 사전 대립각본과는 달리 거의 일방적인 경기였고 게다가 2007년의 효도르전을 시작으로 MMA과 입식에서 5연패를 기록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호의적인 여론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때쯤 입식무대를 떠나 본격적으로 종합무대로 전환을 감행한다. 그리하여 출전한 것이 MMA 역사에 길이 남을 막장 매치인 DREEM 2009 페더급 그랑프리 속칭 '슈퍼 헐크 토너먼트'였다.

2009년 5월의 2회전에서 그는 쿠바의 전직 야구 선수인 호세 칸세코를 상대했다. 올로건과는 달리 이쪽은 진짜 '일반인'으로 두말할 필요가 없는 희대의 개그매치였다. 프로 격투가인 최홍만으로서는 지면 죽어야 할 정도의 시합. 결과는 1분만에 최홍만의 승리로 끝났다.

2009년 10월 토너먼트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워크' '펑크' 미노와 이쿠히사였다. 자신의 체중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미노와를 상대로 2라운드에 체력난조를 보이며 힐훅으로 패배했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도 졸전 끝에 패배했기 때문에 MMA 파이터로서는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시합내용이었다.[12]

이 시합을 끝으로 최홍만은 잠정적으로 격투계를 떠나 연예활동에 전념한다. 파이터 활동을 그만두고 일본 예능분야에서 활동 중이며, 본인은 인터뷰를 통해 2010년 하반기에 격투기에 복귀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동년 12월 모든 격투기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황이라고 밝혔고, 이후 격투기 경기를 뛰지 않고 있으며, 정치 활동에 사업도 하는 등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격투기계로 복귀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2014년 9월 12일 레볼루션이란 국내대회로 복귀할 예정이었으나...펑크를 냈다. 다만 주최측이 사전계약을 지키지않았고, 대회일정도 멋대로 취소한 전례가 있어 마니아들은 최홍만보다 주최측을 비난하고 있다. #

2015년 말에는 드FC에서 경기를 가진다는 소식이다.

2.3. 파이팅 스타일

216cm에 160kg의 신체 자체가 무기. 리치도 224cm(88인치)나 되는데 이는 현존하는 모든 MMA 선수들을 통틀어 가장 긴 것이다.(흔히들 UFC 파이터인 존 존스가 214.6cm(84.5인치)로 가장 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존 존스의 키가 194cm이다. 리치와 키는 많이 차이나봐야 10cm이내다.)# 피지컬만큼은 최고 수준.

타격에 있어서는 긴 리치 때문에 상대방이 거리를 잡기가 어렵고 안으로 파고들어도 곧바로 위협적인 니킥이 날아온다. 이 니킥이 하이킥 타점으로 날아오기 때문에 뺨 클린치가 허용되던 시절에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전법이었다. 키가 워낙 커서 얼굴을 치는 것 차제가 어렵고, 마이티 모에게 패배한 이후로는 맷집도 강화되었기 때문에 안면을 겨냥해서는 잡기 어렵다.

핵꿀밤, 도리도리 펀치, 오지마 킥 등 개그기술로 악명이 높은데, 실은 리치와 파워가 워낙 사기이기 때문에 이렇게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스탭이 느리고 무엇보다 핸드 스피드가 너무 느려서 톱 클래스 선수들의 디펜스에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거대한 몸이 그의 강점이자 최대의 약점이 된 셈이다.[13] 게다가 파훼법이 너무 뻔해서.

유일한 살 길은 뺨 클린치 니킥인데 마사토를 위해[14] 이게 금지되어버린다. K-1은 단지 펀치, 킥의 숙련도와 스피드 대결 같은 양상으로 변했는데, 그 덕에 예전같은 KO율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힘들게 되어버렸다. 어찌보면 입식에서의 부진은 룰의 변경 탓도 크다. 다만 비슷한 유형의 선수인 세미 슐트가 룰 변경 이후에도 충실한 기본기로 정대강자로 군림하는 것을 보면 룰 탓만 할 일은 아닌 듯.

MMA에서는 여기에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더해진다. 그래플링. 종합 무대에 진출한 입식 선수들이 으례 그렇듯 최홍만 역시 그라운드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3. 예능 활동

데뷔초부터 최홍만은 예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래서 방송 출연이 잦은 것이 격투기 팬들에게는 까이고 있다. 한때는 음반까지 낸다고 해서 가수라고 까이기도 했다. Dcinside격투 갤러리에선 그를 凶物이라고 부른다(…).

2006년 경부터 연예계로 외도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격투기 성적이 시원찮게 되면서 까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2006년부터는 등장할 때 자신의 노래를 부르면서 들어오는 둥 "경기에 관심이 있기는 한 건가." 하면서 까였다. 결국 마이티 모에게 KO당하고 나서야 모든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한국에서만.

여담이지만 노래도 불렀다. 2006년 강수희와 듀엣으로 한 미녀와 야수(…).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이걸 틀고 입장했다. 의외로 2008년 정식 가요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후 국내 연예 활동은 중지했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더욱 활발한 연예 활동을 이어갔다.

2009년 10월에는 미노와 이쿠히사와의 경기를 앞두고 3일 전 일본 쇼프로에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엄청난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2009년 격투기 활동을 잠시 중단한 후 부터는 일본의 쇼프로, 영화 등에서 자주 출연하고 있다. 주로 거구를 살린 악역 겸 개그 캐릭터역을 맡는데, 외모가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자이언트 바바와 닮은 점도 화제꺼리가 되는 등 나름대로 인기가 있다. 본인도 예능 생활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모양. 소질도 이쪽 분야에 더 있는 듯 하다. 심지어 2010년에는 포켓몬스터 관련 TV프로인 켓몬 스매시에도 출연한다(...). 일본어도 나름대로 잘하게 된 모양.[15] 일본 연예인 다 됐다. 사사키 노조미와 사귀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0년 3월 즈음 일본의 괴물군이라는 드라마의 프랑켄 역으로 출연이 결정되었다. 분장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여기 저기서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냐는 악플이 달렸고 촬영을 위해 아예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까이기도 했다.

예능에서 밝힌 바로는 전 여친이 식당에서 밥먹다가 최홍만이 우는 소릴하자 밥상을 엎어버렸다고 한다. 흠좀무.#

2011년부터는 현재는 주점을 운영하면서 조용히 지내는 듯. 그러다가 태국 영화 똠양꿍 2에 나올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3년 5월 무릎팍도사에 출연, 방안을 온통 헬로 키티 굿즈로 도배한 키티 덕후커밍아웃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기사

2013년 슈퍼맨이 돌아왔다 정식방영 6화에서 이휘재의 집에 찾아왔다! 키가 하도 커서 방 전체 잡는 화면에 얼굴이 빈번히 짤려버린다. 애기들을 같이 보는데 아이들이 무슨 조막만한 신생아 같아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났다...무서워하며 애들이 울까 걱정을 했는데 최홍만의 파워 애교로 서준이와 교감까지 시도하는 등 오히려 아주 잘 지낸다.

4. 뇌하수체 종양발견과 수술

미국 네바다 주에서 브록 레스너와의 경기를 가지기 위해 신체 검사를 받다가 뇌하수체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결과가 나와서 경기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16] 최홍만 측에서는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서 검사 결과에 반발했다.

최홍만은 이전부터 인증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뇌하수체의 종양으로 과도한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는 설이 있다.

최홍만 측에서는 거인증 의혹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몇몇 의사는 최홍만의 상태는 심각하며 이대로 놔두면 급사나 수명단축이 우려된다면서 언론을 통해 수술을 권유했다.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며, 얼마동안 시합을 미루고 휴식을 가졌다. 이후로는 별 문제 없이 격투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지금까지의 최홍만은 '호르몬 과잉분비'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도핑을 하고 있었던 것과 다름없으며, 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괴력을 잃게 되었고 이후의 부진은 그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술과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는 변화인지는 의사의 진단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으나, 수술을 전후하여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차이가 보일 정도로 근육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물론 뇌수술과 같은 큰 수술을 받았다면 굳이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신체적으로 부담이 많이 걸릴 것이다.

참고로 1999년도에 이미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는데[17] 이 뇌하수체 종양으로 아예 면제를 받았다.

5. 기타

가장 큰 의의는 한국에 격투기 붐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K-1의 로컬라이징 전략이 크게 성공한 케이스로, 떡밥과 빅매치를 적절히 섞은 후 언론으로 잘 포장하여 어필한 케이스다. 데뷔 초기 한국에서의 반응은 엄청난 것이어서 K-1이 방송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등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가 메이저 컨텐츠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는 2000년대 중반을 계기로 국내 프로 격투단체들이 창설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한명의 스타에게 의지한 흥행이었기 때문에 그가 하락세를 그리면서 격투기 붐도 동시에 수그러들었다.

K-1 마니아들은 K-1 서커스화의 주범이라면서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격투기 경험이 전무한 선수가 갑툭튀해서 주최측으로부터 혜택을 받으며 상위권 강자들과 경쟁을 하는 반면, 유럽에선 선수가 넘쳐서 실력은 좋으나 지역 GP 출전권조차 못 얻을 정도로 조명을 받지 못해 마이너급으로 전락한 파이터들이 수두룩했으니 이걸 마니아들이 좋게 봐줬을리가 없다.

한국 언론에서는 그냥 강한 한국 파이터 정도로 내 보내고 있지만, K-1 내부에서의 역할은 악역 포지션을 맡고 있으며 일부러 건방진 어조나 태도를 보이고 있다(본인 성격이 그런 것은 아니고 프로모터에 의한 것).[18] 때문에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19]에서도 안티가 많은 상태.


하지만 그 거체와 특이한 얼굴 때문에 은근히 팬도 많으며 하라 테츠오가 그린 K-1 포스터에서는 맨 뒤에서 엄청나게 큰 주먹을 쥐고 세미 슐트의 뒤통수를 때리고있는 포즈로 최종보스격인 라오우처럼 나왔다(…).

레미 본야스키와 밥 샙을 검은 이라고 깐 적이 있다. 문제는 그 후로 본야스키와 밥 샙이 각기 분야에서 콩라인이 되어버렸다는 점에 있다(...). 레미는 다른 선수는 다 넘어섰으나 세미 슐트를 넘지 못해서 만년 준우승자 라인에만 머무르게 되었고, 밥 샙은 본인의 괴물캐릭터를 최홍만에게 뺏겨서 TV 프로그램 출연이나 CF 등등도 죄다 최홍만이 독점하는 둥 괴물계(?)의 콩 라인이 되어버렸다. 콩의 저주

바다 하리로부터 "너무 못생겼다"며 꾸준히 까이고 있다. 바다 하리가 데뷔 초의 지나친 독설 기믹을 그만 둔 후에도 정도만 약해졌을 뿐이지 못생겼다는 얘기는 계속 하고 있다. 안티들의 멸칭인 '흉물'도 바다 하리의 발언에서 유래한 것.

한때는 스모 요코즈나인 아케보노와 라이벌 구도가 있었는데 아케보노가 일방적으로 의식하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 이는 최홍만의 홈인 서울에서 한번, 아케보노의 홈인 하와이에서 한번, 아케보노의 제 2의 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삿포로에서 한번, 총 3번에 걸쳐 세 경기 모두 KO로 제압하므로써 끝나게 된다. 그러나 아케보노는 3차전 패배 이후에도 이런 인터뷰를 하면서 의지의 끝을 보여주었다(...).2라운드 프로레슬링으로 해서 이길라고?

2009년 경 부터 샤킬 오닐과의 대립 구도가 생겨 2011년 경기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돈 문제로 무산되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대결을 원하고 있어서 언젠가는 성사될 듯.

2010년 말에 갤럭시 탭 구매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또한 아이패드 미니가 출시되기도 전에 한국의 누군가가 이미 먼저 사용하고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는데 그건 다름아닌...

개그맨 조세호가 그의 성대모사를 잘 하기로 유명하다. 최홍만은 처음엔 자기 성대모사 하는걸 굉장히 싫어해서 우연히 조세호를 직접 만나게 되자 다신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는데 이후 반응이 좋자 자신이 직접 조세호에게 연락해서 계속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었다고 한다(...).

악력을 쟀을때 90kg이 나왔는데 손이 너무 커 새끼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잰 악력이다.

6. 관련사건

6.1. 사기 고발

2015년 10월에 지인에게 약 1억여원의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혐의로 사기 고발을 당했으며, 검찰에서 명수배를 내렸다. 이후 고소인에게 돈을 갚고 합의하여 불구속 입건되었다.연합뉴스

7. 미디어 믹스

----
  • [1] 씨름 선수 시절에 우승 후 추던 춤에서 유래했으며 씨름 선수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닉네임이다.
  • [2] 카오클라이와의 결승전은 2009년 셔독이 선정한 '역대 괴상한 경기 베스트 10(10 Great Freak Matches)'에 8위로 랭크되어 있다.
  • [3] 키가 너무 크기 때문에 보통집 높이로는 모든 생활이 불편하다고 하며 높이가 정말 높은 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 [4] 최홍만의 K-1 진출, 씨름팀들의 잇딴 해체 등으로 씨름판 자체가 존속 자체에 대해 위기가 팽배했고, 그 과정에서 씨름협회 내부에서 파벌싸움이 일어나며 극한 막장상태로 접어들게 됐다. 이 과정에서 혁신세력이었던 이만기가 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하기도 할 정도로 씨름판은 막장 그 자체였다.
  • [5] 근데 이 토너먼트 출전 선수들과 대진표가 막장이었다. 당시 출전했던 선수들중 (그나마)가장 강한 선수가 카오클라이였는데 최홍만과의 체중차이가 거의 80kg 가까이...게다가 최홍만이 있는 토너먼트 블럭에서는 그 유명한 아케보노와 당시 45세였던 심판'''(선수가 아니다!) 카쿠다 노부아키, 40대 스모선수 와카쇼요 등의 사실 선수라고 불러주기 좀 민망한 수준의 파이터들만있던 반면, 카오클라이의 블럭에는 수십 전 이상의 킥복싱 경력이 있는 파이터들인 호리 히라쿠와 이면주 등이 포진해 있었다. 여러모로 최홍만 띄우기 대회라고 팬들 사이에서 적잖이 까였다. 덕분에 최홍만은 지역 대회 우승이라는 나름대로 대단한 경력을 갖고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밥 샙을 이기기 전까지는 한동안 검증 안 된 서커스 파이터 취급을 받았다.
  • [6] 결국 최홍만은 이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어 한동안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본어판 위키피디아의 최홍만 항목에서는 로우킥 부상 부위에 세균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는 반달이 있기도 했다(...).
  • [7] 당시 별 거 아닌 프로레슬러에게 고전했다고 까는 여론이 있었으나, 애초에 터카이는 5일 준비하고 레미 본야스키를 고전 시킬 정도의 포텐셜이 어느정도 있는 파이터였던데다 경기 전 발목 부상이 있었다는게 알려지며 까이는게 많이 줄었다.
  • [8] 루머로는 세컨 중 한명이 저지들의 스코어 보드를 뺏어서 보려고 했다고도 한다.
  • [9] 1차전에서와 같은 오버핸드가 수차례 적중했지만 이때는 쓰러지지 않았다.
  • [10] 세포가 한창 전성기였을 무렵 사용하던 전술로 당시에는 기량의 하락으로 봉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홍만에게 다시 썼다.
  • [11] 훗날 이 경기는 K-1의 농간으로 인해 경기 5일 전에 오퍼를 받아서 거절했다가 결국 3일 전에 오퍼를 수락하고 이틀 훈련해서 경기에 출전하게게 되었던 것이 무릎팍도사 출연을 통해 밝혀졌다. 명불허전 K-1
  • [12] 미노와 이쿠히사는 최홍만 이외에도 많은 헤비급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많은 경기들은 미노와 자신이 패배한 경기 조차 워크 의혹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력있는 선수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런데 최홍만과의 시합에서만큼은 의혹이 전혀 없다...
  • [13] 세미 슐트의 경우는 논외. 최홍만과 비교하기엔 커리어, 재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심지어 피지컬에서도 최홍만을 앞선다.
  • [14] 경량급 낙무아이들의 기량이 넘사벽으로 강했기 때문에 자국 파이터들에게 유리한 룰로 고쳐버렸다. 중량급의 세미 슐트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어느정도 있었을 것이다.물론 이 룰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쁘아까오와 슐트는 복싱 스킬을 향상시킴으로써 더 강해졌다(...). 그럼 주먹질 금지?
  • [15] 일본어는 2006년경부터 잘 하기는 했다.
  • [16] 경기 일주일 전까지는 경기를 치루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하였지만, 3~4일을 앞두고 최홍만을 포함한 대다수 선수가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결장하여 큰 돈을 들인 다이나미이트 미국 대회가 망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일본에서 열었던 대회 때처럼 3~4일전 대회 준비를 하려다가 미국 주 체육위원회의 대회 운영 방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K-1의 병크다.(PRIDE도 미국진출 당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미국 주 체육위원회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국내와 일본 격투 언론들은 UFC의 K-1 진출을 막기 위한 음모다는 음모론 기사를 쏟아내었다.UFC만 조금 봤더라도 그런 소리는 못한다
  • [17] 키가 너무 큰게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 [18] 실제로도 매너가 안좋다(카더라)는 이야기가 많다.
  • [19] 특히 2ch에서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11-18 19:29:43
Processing time 0.9812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