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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구라

last modified: 2015-04-11 09:16:32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사건
2.1. 발단
2.2. 아사노의 할복
2.3. 와신상담
2.4. 복수
3. 전설로 승화
4. 추신구라 사건의 의혹
4.1. 여담
5. 내용구성
5.1. 본전
5.2. 기타


忠臣藏(충신장)

1. 개요

일본가부키조루리 극으로 널리 만들어진 테마 중 하나. 매우 인기가 있어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되고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졌다.

2. 사건

2.1. 발단

추신구라의 배경이 된 실제 사건은 1701년 3월에 일어난 일이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고베(神戶) 지역인 아코 번(赤穗藩)의 영주인 아사노 나가노리(淺野長矩)는 도쿠가와 막부의 근거지인 에도성에서 덴노의 조정이 보내오는 사절[1]을 맞이하는 임무[2] 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막부에서 의전을 담당하는 집안인 고케(高家)의 키라 요시히사(吉良義央)는 아사노에게 사신을 대하는 격식에 대해서 나무랐고[3], 이에 격분한 아사노는 사신이 근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칼을 빼들고 휘둘러서 기라 요시히사를 다치게 했다. 쇼군이 집무하는 에도성에서 형식적이지만 쇼군의 상관인 덴노의 칙사 앞에서 칼을 뽑아 휘둘러 상관을 다치게 까지 했으니 이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4] 이에 당시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츠나요시는 3가지 이유를 들어서 아사노에게 자결을 명했는데,

  1. 덴노가를 우대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쇼군의 의지인데 덴노의 칙사가 보는 앞에서 고케인 키라를 해한 죄.
  2. 에도(江戶)성내에서 살아있는 생명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는 생류연령(生類憐みの令)를 어긴 죄.
  3. 명분론을 강조하고 유학을 펴는 문치주의하에서 용납할 수 없는 하극상을 저지른 죄.

2.2. 아사노의 할복

이 세가지 죄목을 이유로 아사노는 타무라 가 저택의 마당[5]에서 할복하였고, 아코 번은 개역되었으며, 그 휘하의 무사들은 로닌(낭인)[6]으로 떨어져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개역된 아코 번은 임시로 인접 번주인 타츠노 번의 와키자카 야스테루[7]와 빗추 아시모리 번의 키노시타 킨사다가 임시로 관리하다, 다음 해 시모츠케 카라스야마 번주였던 나가이 나오히로가 전봉해서 번주를 맡게 되었다.

막부의 명령을 받은 와키자카 야스테루는 아사노가의 가신들이 거세게 반항할 줄 알고 중무장을 하고 접수하러 왔으나, 가로인 오오이시 요시오[8]는 막부에 저항하는 것은 주군의 원수를 갚기는 커녕 무의미하게 죽을 뿐이라고 생각을 하고, 순순히 와키자카에게 성을 명도했다.

2.3. 와신상담

그러나 낭인으로 전락한 무사들은 막부의 조치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막부가 이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키라와 같은 다이묘는 자택 호위병력도 상당한지라.. 그래서 가신들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오오이시 요시오는 아예 기생집에서 주색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감시의 눈을 피했고,[9] 다른 가신들은 에도에 올라와서 쌀집이나 혹은 다른 잡일들을 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 그들은 키라의 자택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주군 아사노의 미망인으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각종 무기를 사들이면서 복수를 계획하고 있었다.

2.4. 복수

1년 뒤인 1702년 12월 14일 밤, 오오이시 요시오(쿠라노스케)를 중심으로 아코 번 출신의 낭인 46명[10]이 키라 요시히사의 저택을 습격. 주군의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저택의 남녀노소를 닥치는 대로 베어버렸다. 키라는 이들에 사로잡혔고, 할복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할복을 거부했고, 이들은 키라의 목을 잘라서 아사노의 묘지에 가져갔다.

이들은 시나가와(品川)의 센카쿠지(泉岳寺)에서 처분을 기다렸고, 막부는 할복 명령을 내렸으며 46명은 모두 할복하여 센카쿠지에 묻히게 된다.

이들은 뭇 백성들의 동정을 샀고, 이에 막부는 아사노의 동생[11]에게 500석의 타모토 작위를 부여하여 아사노씨는 격은 축소되었지만 그래도 가문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3. 전설로 승화

1748년에 조루리(꼭두각시 인형극)으로 가나데혼추신구라(假名手本忠臣藏)가 만들어졌고, 같은 이름의 가부키가 공연되었다. 이때는 막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사건 인물들의 본명을 숨기고 중세후기인 남북조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등장인물도 남북조시대의 인물로 가탁하였다. ex) 키라 코즈케노스케는 고노 모로나오, 야나기와라 스케카도가 아시카가 타다요시등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12]

워낙 유명한 이야기여서 서양에도 잘 알려졌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도 길게 인용되어 있고,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미국 26대 대통령시어도어 루스벨트도 이 이야기를 애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미의 대문호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에서도 이 사건이 들어가고 있다.

기묘한 이야기 극장판에서는 휴대폰 추신구라[13]라는 제목으로 각색되었다. 현대 일본인이 저 시대로 휴대폰을 보내서 오오이시 요시오와 통화한다는 이야기. 여기서는 요시오는 호색적이고 조금 물렁한 인물이었고 거사를 일으킬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이에 낭인이 된 가신들은 그에게 실망하고 있었으나, 우연히 주은 휴대폰과 대화하게 되는데 자신을 위인이라 띄어주며 주군의 복수니 뭐니하며 말하는 대화상대에게 폼내기 위해 할 생각도 없는 거사 계획을 말하는데 이 말을 하필이면 가신들이 단체로 듣고 감동하고 결국 그는 분위기에 휘말려 반강제로 거사를 치룰 준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거사 바로 전 겁에 질린 오오이시는 휴대폰 상대에게 자신의 미래를 묻지만 전화는 끊겨버린다. 이후 잠시 생각에 잠긴 오오이시는 끝내 각오를 굳히곤 일행과 거사를 치루러 간다. 사실 이 통화는 역사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니까 미래에서 역사를 확인하려고 과거로 보낸 전화기가 결과적으로 현재 기록된 역사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기묘한 타임 패러독스. 더불어 일을 마친 그 현대인의 주변에는 상당한 규모의 인원이 그와 같은 일을 한다. 나폴레옹과 통화하는 이도 나오는걸 봐선 아마 여러 나라에서 모여서 하는듯 하다.

4. 추신구라 사건의 의혹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사건에는 의혹이 많다. 우선 이 사건의 발단이된 아사노의 칼부림 사건부터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아사노가 키라에게 칼부림을 하게 된것이 아사노가 키라에게 격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키라에게 모욕을 들어서라고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이전부터 원한 관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사노 가문은 원래 아코 번의 영주가 아니었지만 아코로 영지를 옮겼다[14]. 미카와의 소영주[15]였던 키라 가문은 미카와 키라쵸의 척박한 환경 때문에 농사 대신 소금 제조로 먹고 살던 상황이었다. 키라 가문은 아사노 가문의 아코 정착을 돕기위해 소금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아사노 가문이 독자적으로 개량한 아코 소금을 팔면서부터 키라 가문과 갈등이 생겨났다. 아사노 가문은 아코 소금을 팔기위해 가장 큰 시장인 에도를 개척하려 했고 선전을 위해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에게 소금을 상납했다. 이게 소문이 퍼지면서 에도에서 아코 소금의 판매가 늘어났다. 문제는 그간 에도는 키라 가문의 소금이 독점하던 상황이었던 터라 두 가문이 소금 판매를 두고 서로 앙금이 깊어졌다는 지적이 있다[16].

또한 키라가 아사노에게 미동을 양보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아사노가 그걸 거절한뒤 다른 사람의 부탁에 미동을 얼른 보내버리자 키라가 원한을 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더 웃긴건, 칙사 접대역을 교육하는 코케들에게 적당한 사례금[17]을 주는 것이 관습법적으로 인정되고 있었고, 덤으로 에도 주재 수석가로의 의견도 사례금을 두둑히 주어서 가뜩이나 사이가 안 좋은 판에 예식 교육역이라는 직책까지 받은 키라의 심기를 달래자는 것이었는데, 정작 주군이라는 사람은 사례금을 주자는 의견을 깔아뭉개고 간단한 과자만 선물로 보낸 것.

사건을 처리한 쇼군 츠나요시의 행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쇼군의 칙사인 키라에게 칼부림을 한 것은 용납할수 없다지만 아사노에게 단지 7시간만에 할복을 지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더군다나 아사노에게 할복을 명하고 끝날 수도 있는 일을 굳이 아사노 가문의 아코 번 통치까지 거뒀다는 점은 더 납득하기 힘들다는 말도 있다[18].

세간에 알려진것과는 달리 오오이시를 비롯한 아사노 가문의 가신들이 키라를 참살한것에 대해 쇼군 츠나요시가 가신들에게 할복을 명한것은 사건으로 부터 무려 50여일이 지나서였다. 아사노의 칼부림 사건을 반나절도 안돼서 처리한 것과 비교하면 뭔가 이상할수밖에 없다.

게다가 46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에도에서 돌아다니는데도 막부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른 의견에 의하면 막부는 이미 아사노 가문의 가신들이 키라에 대한 복수극을 펼칠 것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수수방관했다고 보기도 한다.

쇼군 츠나요시가 아사노 가문의 가신들에게 할복을 명하는데 무려 50여일이나 걸렸다는 점에서 츠나요시가 이들을 살리려고 노력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사실 아사노에게 할복을 명한 것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고[19] 가신들의 복수극에 대한 세간의 여론이 동정적이어서 츠나요시도 이들을 살려주려고 했지만 이들을 살려주면 아사노에게 할복을 명했던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시인하는 꼴이 되고, 생류연령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할복을 명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야나기사와 요시야스의 측근이자 막부의 정치고문이었던 오규 소라이는 이 사건을 주군에 대한 사적인 충성으로 용서하게 되면 천하의 법도를 세울수 없기 때문에 천하의 법도를 세우는 차원에서 가신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오규의 주장대로 되었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 사건의 피해자라고 볼수 있는 키라 가문도 결국 가문이 끝장나고 만 것이다. 키라의 양자(실제로는 손자지만 키라의 차남이 죽자 양자로 들어갔다)가 키라를 구하지 않고 도망쳤다는 이유로 막부가 유배를 보내버린 것. 물론 무사의 본분을 다하지 않았다는 명분이 있다고 해도 피해자인 키라 가문을 단절시킨걸 볼때 츠나요시가 여론을 의식했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추신구라 사건의 흑막을 츠나요시의 정실부인(미다이도코로)인 노부코로 보기도 한다. 노부코는 108대 덴노 고미즈오의 손녀로 정3품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츠나요시의 생모인 게쇼인은 교토의 무사가문 출신으로 품계로만 따지면 노부코가 훨씬 위였다. 그러나 시어머니인 탓에 노부코는 게쇼인 앞에서 숙여야만 했고 둘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츠나요시가 자신의 생모인 게쇼인을 위해서 위에 언급된대로 무리한 궁정공작을 통해서 게쇼인에게 정1품의 지위를 내리는 조서를 얻어내는데 성공하자 노부코는 덴노의 손녀인 자신보다 낮은 가문의 게쇼인이 자신보다도 더 높은 정1품의 지위를 받는것에 분개해했고 이를 파토내기 위해서 뒤에서 음모를 꾸몄다고 한다. 평소에 기라와 사이가 좋지 않던 아사노를 조종해서 칼부림 사태를 일으켰고 결국 이 사태로 인해서 게쇼인에게 정1품의 지위를 내리는 것은 연기되었다.

노부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과 친밀한 사이였던 고노에 하루코를 통해 아사노의 가신인 오오이시를 움직여 키라 가문에 복수하도록 부추겼다고 한다. 하루코는 오오이시와 인척지간이었기 때문에 접촉하는데 무리가 없었고 하루코가 오오이시에게 주군의 원수를 왜 갚지 않느냐고 하자 오오이시는 에도에서 무사들이 대규모로 움직이는게 힘들다고 말했고 이에 하루코는 높은분이 도와주면 가능하겠느냐라고 했다는것. 결국 노부코가 배후에서 힘을 쓴 덕에 오오이시는 로닌들을 이끌고 기라가문으로 쳐들어가 사단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노부코가 추신구라를 배후조종한 이유는 이런 사건을 통해 츠나요시의 권위를 실추시켜서 츠나요시를 쇼군에서 끌어내려 게쇼인을 뒷방늙은이로 만드는것이 목적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재미있게도 츠나요시 사후에 쇼군을 승계한 이에노부의 정실부인이 바로 고노에 히루코였다. 게다가 이에노부는 아사노 가문을 사면하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결국 노부코가 흑막이지 않겠느냐는것. 물론 이는 어느 정도 추측성이 강한 주장이다.

4.1. 여담

이 사건으로 엉뚱하게 우에스기 가도 피해를 입었는데, 당시 요네자와 번주 우에스기 츠나노리는 키라 요시히사의 아들로, 우에스기 가에 양자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습격을 받았는데도 움직이지 않은 우에스기 츠나노리는 주군의 복수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건 아코 번사들과 대비되어 서민 사이에서 우에스기 가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사건 당시 츠나노리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나서려 했지만 가신들의 만류로 실패했던 것을 생각하면 억울한 셈.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추신구라지만 에도 대에서 키라 요시히사가 다스렸던 기라초에서는 공연하지 않았다고. 이유인즉, 백성들을 잘 챙겨주시던 자비로운 영주님[20]을 죽인 놈들에게 가뜩이나 화가 나있는 상태인데 그놈들이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연극인줄도 모르고 관람/공연했다가 화가 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극단을 두들겨 팬게 몇 번 일어나면서 그 이후로는 절대 기라초에서 추신구라를 공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막부 말기~ 메이지 초기의 몽사상가였던 후쿠자와 유키치(法治)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사건을 비판했다. 즉, 국법에 호소할 생각은 안하고 일개 사무라이들이 지멋대로 천명이니 뭐니하면서 칼부림을 벌인 일에 불과하며, 아무 가치도 없는 죽음이라고 평했다.

하도 유명한 소재라 오리엔탈리즘 좋아하는 서구인들에게는 대단히 신비로운 떡밥으로 관심을 가지며, 또한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추신구라를 최고의 이야기라고 극찬하며 오륜서와 더불어 그의 애독서였다고.

2006년에 만들어진 일본영화 하나(원제:花よりもなほ)는 메인사건으로 다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스토리가 이 사건과 교차된다. 추신구라를 미화한 다른 일본영화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추신구라를 복수자에게도 아무 이득을 주지 못하고 모두가 공멸하는 어리석은 행위로 묘사한다. 이 영화는 그동안 사무라이 영화의 클리셰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고, 한국에서도 꽤 호평을 받았다.

헐리웃에서 47 로닌(47 Ronin)이란 제목으로 2011년 하반기에 촬영을 시작하여 2억 달러 거액을 들여 만들어졌으나 평론가 시사회에서 전원일치 캐망작, 골든 라즈베리 전관왕급이란 분노어린 악평을 듣고 제작자가 놀라 2012년 11월 개봉이던 걸 2013년 2월로 개봉이 미뤄졌다가 이 편집판조차도 욕처먹고 다시 보강했다. 그리하여 2013년 5월 중 개봉이 확정되는 듯 했으나 또 밀려서 2013년 12월 25일 미국 개봉예정으로 미뤄졌다. 아무래도 일본이 배경인지라 일본 배우들이 많았는데 일본 배우 등장씬을 확 자르고 조연급이던 키아누 리브스를 재출연시키면서 등장씬을 늘리는 무리수로 재편집 중인데 덕분에 계약이 끝난 리브스와 재계약하고 제작비가 2억 3천만 달러급으로 늘어났다. 반대로 일본 배우 등장씬이 대거 삭제되면서(...) 일본에서 불만이 터지는 상황.

그럼에도 워낙에 영화 자체가 엉망이라서 아무리 편집해도 존 카터배틀쉽급으로 흥행 대실패작이 될 듯 하다. 2013년 12월, 일본에서 먼저 개봉되어 역시나 극악의 평과 흥행 부진을 보이며 12월말 미국개봉 흥행이 개판될게 뻔해졌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결국 예상대로 좆망 루트를 타고 있으며 잘 해봐야 1000만 달러나 건질까 하는 수준이었는데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3836만 달러나 벌어들였으며 러시아에서 2800만 달러, 몇몇 해외에서 꽤 흥행에 성공하며 전세계적으로 무려 1억 38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였다!(...) 물론 총제작비 2억 3천만 달러를 생각하면 극장 측과 수익 나누고,세금,광고비, 다른 인건비 여러가지를 생각하면 2배인 4억 6천만 달러를 벌어야 하니까 쫄딱 망한 건 다를 게 없다.

드디어 에로게로도 제작되었다. 사실은 2011년에 동인작품으로 나온걸 서클이 기업화 하면서 정식으로 발매하는 것이다. 타이틀은 ChuSingura 46+1 -忠臣藏46+1- 기존에 동인작으로 냈던 작품에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엔딩까지 집어넣은 완성작. 전투 연출이 너무 격렬한 나머지 저사양에서 안 돌아가는 무서운 미연시가 되었다. 그래서 발매직후 저사양용 연출 간략화 패치가 나올 정도.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추신구라에, 타임슬립요소[21], TS[22]를 섞고서 여기에 대체역사[23]를 끼얹은 물건이다.

여담으로 대관 1편에서도 적으로 나오는데, 참고로 여기서 주인공인 대관을 노리는 이유는 저택 내놓으라고 냅다 죽여서.(사실은 늘 있는 패턴처럼 상인이 대관의 이름을 사칭한 거지만.) 참고로 인원수는 대폭 줄어서 6명(...)

유명한 이야기이니만큼 당연히(?) 마스다 쿄스케의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에피소드로도 각색되었다. 아사노 나가노리가 정체불명의 생물이고 47낭인들 중 두명이 키라의 집주소를 잘못 알아서 엉뚱한 집에 처들어간다는 것만 빼면, 의외로 비교적 원전에 충실한 내용이다. 퍽이나 충실하다

5. 내용구성

일본에서 전해지는 추신구라의 내용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속칭 '본전', 복수에 참가한 아코 로시 개개인의 이야기인 '명명멍멍전', 그 이외의 '외전' 그리고 부정적 또는 다른 시각에서의 작품등으로 나눠진다.

5.1. 본전

  • 키라의 아사노 괴롭힘
  • 참상의 소나무 복도
  • 타무라 저택에서의 이별
  • 아코 성의 대회정
  • 아코 성 넘겨주기
  • 祇園一力 찻집
  • 야마시나 은거
  • 난부 저택 눈속의 이별
  • 복수
  • 센가쿠지로의 행진
  • 47 무사의 최후

5.2. 기타

J9 시리즈 작곡가로 유명한 야마모토 마사유키의 오오우소 추신구라[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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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덴노의 조정은 물론 실권이 없는 형식상의 존재였지만, 아무튼 사절을 보내는 등 형식적인 의전이 있었다.
  • [2] 이 임무는 최대 10만석 이하, 평균 3~5만석을 영지를 가진 소 다이묘들에게 맡겨진 임무였는데, 접대비용을 모두 자기가 부담해야 하는등, 제반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서 다들 기피하고 있던 직무였다. 아사노 나가노리가 이 직무를 맡게 된 것은 소금 판매로 인한 재정개혁이 성공해서 어느 정도 살림이 편 상태였던 데다가, 이전에도 칙사 접대역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중대한 업무를 가지고 오는 칙사를 접대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점도 참작되었다. 그 특별히 중대한 업무라는 게, 측실인 츠나요시의 생모에게 쇼군의 정실부인에게나 수여되는 종일품의 관위를 무리한 궁정공작 끝에 수여하는 파격적인 것이고 보면, 칙사에 대한 실수가 절대 용납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 [3] "이 격식도 모르는 아코의 시골무사가!!!"는 그나마 순화된 표현이다. 실제로는 "붕어 사무라이"라고 몰렸다고.
  • [4] 현대에 미국대통령 영접만찬중에 상관이 준비상태가 나쁘다고 조인트까는것에 열받아서 현장에서 경호용총으로 쐇다고 생각해보자
  • [5] 다이묘를 마당에서 할복시켰다고 말이 많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아사노 나가노리의 본가인 히로시마 아사노 가와 타무라 가의 본가인 센다이 다테 가에서 항의해 결국 할복 감독관이 실각했다.
  • [6] 여기에서의 낭인은 떠돌이를 의미하는 낭인이 아니라 죄인을 의미하는 낭인이다.
  • [7] 유명한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손자.
  • [8] 大石良雄가 본명이지만, 大石內藏助良雄라는 정식이름이 있고, 이 사건을 극화한 것에서는 대부분 쿠라노스케(內藏助)라는 중간 이름으로 불린다.
  • [9] 이때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있기만 했다는 설과 진짜 즐겼다는 설(...)이 있다.
  • [10] 인원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은데 대체 46명 내지는 47명으로 좁혀진 상태다.
  • [11] 아사노가 할복하기 전에 이미 양자로 입적되어 있었다.
  • [12] 당시 가부키의 상인 이야기가 유명한 호상들이 모델인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과 똑같이 다들 누구의 이야기인지는 알고 있었다.
  • [13] 한국 개봉에서는 사무라이 휴대폰.
  • [14] 아코 아사노 가문은 히로시마의 아사노 가문의 분가로, 두 가문의 시조인 아사노 나가마사가 은거하면서 은거료로 받은 영지를 나가마사의 삼남이 계승하면서 생겨난 가문이다. 원래 영지는 히타치(현재의 이바라키 현)에 있었으나, 나가노리의 할아버지 대에 아코 번으로 전봉해 왔다.
  • [15] 정확히는 코케(高家)로, 조정과 막부 간의 중개역이었음. 영지는 4천 2백여 석으로 상당히 작았으나, 무로마치의 명문인 키라 씨와 이마가와 씨의 후손이고, 요네자와 15만 석 대영주인 우에스기 츠나노리의 친아버지였으며, 본인 또한 종사위하 사코노에노곤노쇼쇼(左近衛権少将)로, 웬만한 대영주보다도 신분이 더 높았다
  • [16] 심지어는 키라 집안의 가신들이 소금 제조법을 알아볼려고 염탐하는 현장을 습격하여 포박하고는 온갖 모욕을 주면서 돌려보내는 일까지 발생했다.
  • [17] 사실상 뇌물에 가깝다. 칙사에 대한 예법이 워낙 까다로운 공경예식이라서 영주들이 알고 있는 웬만한 무가예식으로는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코케들에게 미리 사례금을 빙자한 뇌물을 주고 자기가 할 지도 모르는 실수를 미리 교육받아서 막아내거나 실수가 터져도 잘 무마해달라는 교섭을 하는 것이다.
  • [18] 이것은 츠나요시보다도 소바요닌이던 야나기사와가 더 책임이 크다는 의견이 주류이다. 즉 전국시대의 사무라이 풍격을 가졌다는 아사노 나가노리가 좀 살림이 폈다면서 설치는 꼴을 못마땅해 한 문치주의 일변도인 츠나요시의 기분을 살핀 야나기사와가 접대역의 교육을 맡은 키라 요시히사를 충동질하여 아사노를 필요 이상으로 갈군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때의 야나기사와의 행동으로 가부키나 기타 창작물에서 야나기사와가 추신구라의 흑막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 [19] 본디 무가제법도에 따르면 喧嘩両成敗(けんかりょうせいばい)라고 하여, 무사 사이에 상해 이상의 분쟁이 발생하였을 경우,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상해분쟁의 원인이 있다고 간주해 쌍방 모두 동등한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칼질한 아사노는 할복에 개역처분이라는 중징계인데 반해, 칼질당한 키라는 은거처분이 고작이었던 것. 도자마 다이묘들에 대해서 항상 의혹을 가지던 막부내 관료들조차 말도 안되는 판결이라는게 대체적인 의견이었다고 한다.
  • [20] 키라 요시나가는 권선징악적인 연극의 구조상 악인이 되어야 하니 간신 같은 나쁜 이미지도 덮어썼지만, 연구에 의하면 자기 영지를 다스리는데 있어서는 상당히 괜찮은 영주였던 듯 하다.
  • [21] '+1'이 미래에서 과거로 날아온 주인공을 의미한다.
  • [22] 아코 번의 거의 모든 무사를 시작으로 등장인물의 50%이상을 여성으로 모에화(...) 화상으로 등장하는 46무사 중에 단 한명만 제외하고는 전부 여자다.
  • [23] 주인공과 기타의 개입으로 역사가 변한다. 다만 기본적으로 본래의 역사를 따라가며, 마지막 시나리오에 가서야 대대적으로 변한다.
  • [24] 말 그대로 거짓말이 많으니 재밌게 듣기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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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1 09: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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