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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다 요시노리

last modified: 2014-12-22 19:46:50 by Contributors

金田伊功[1]
1952년 2월5일 ~2009년 7월 21일



카나다 요시노리에 대해서 다룬 영상

소개

일본의 애니메이터. 기존의 일본 아니메의 표현기법을 벗어난 신선한 충격을 준 작화로, 일본에서는 아니메계의 혁명아, 아니메의 마술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화는 카나다 요시노리 이전과 카나다 요시노리 이후로 나뉘어진다고 할 정도이다.

약력


1969년 극장용 아니메 영화 늘을 나는 유령선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린 작화에 충격을 받고, 애니메이션 업계로 들어서는 계기가 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노트에서는 당시 좋아했던 택 넘버 원의 여주인공의 일러스트가 다수 그려져 있고, 이때부터 뛰어난 그림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애니메이터 통신교육을 받은 후 토에이에 계약사원으로 들어간 후, 70년대 중반부터는 프리랜서 원화맨으로 활동하면서 개성있는 표현으로 아니메 팬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겟타로보 시리즈나 대공마룡 가이킹, 무적초인 점보트3[2], 무적강인 다이탄3 등의 로봇 애니메이션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이후 은하철도 999 우주전함 야마토 환마대전 극장판 같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에서 메카작화와 특수효과 장면등에서 활약했다.
한편 오프닝 전담으로 만들어낸 오프닝도 여럿 있으며, 그런 오프닝들은 카나다 요시노리다움이 한껏 묻어난다.
당시의 애니메이션 전문잡지에서는 카나다 요시노리를 자주 다루웠고, 애니메이터로써는 이례의 팬클럽까지 결성되는 스타 애니메이터였다.

하지만, 원안과 각본, 디자인, 실질적으로 감독직까지 맡은 OVA용 작품 BIRTH (1984년작)는 실패하고, 애니메이터로는 일급이지만 연출가로써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때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참여하여 많은 명장면들을 만들어냈다. [3][4] 작품 내용상 비행 장면을 넣은 건 미야자키 하야오였지만 그 비행장면들을 감탄 나오게 그려낸 건 카나다 요시노리였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은 1997년의 모노노케 히메까지 원화맨으로 참여했다.

이후,3D라는 CG에 매력을 느껴, CG에서의 새로운 표현영역에 도전한다.
파이날 판타지 극장판으로 스퀘어와 인연이 닿은 이후 애니메이션 쪽을 떠나 스퀘어에닉스의 게임 쪽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2009년 7월 21일, 57세의 아직 이른 나이에 타계.
그의 죽음을 기리며 이마이시 히로유키, 아메미야 아키라, 요시나리 요우 3명의 궁극의 애니메이터들이 추도 동인지를 내기도 했다. 제목은 카나다 요시노리여 영원히


작풍

로봇아니메 등에서는 완급을 이어가며 춤추듯이 움직이는 아크로배틱한 표현이나, 가까운 물체는 대담하게 크게 그려서 원근감을 강조하는 구도와 실사영화의 카메라 렌즈에서만 일어나는 역광(逆光)을 집어넣어 화려함을 주는 표현, 광각렌즈와 어안렌즈로 찍은 듯한 표현, 빛과 연기, 폭발에서의 새로운 표현기법을 개척, 배경과 인물이 같이 질주하는 표현을 통한 강렬한 속도감,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제한된 동화 매수 안에서 만들어내는 절묘한 움직임 등등, 남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해낸 애니메이터이자 남들이 하는 건 더 잘 해낸 애니메이터. 일본 아니메의 표현기법의 영역을 넓힌 그야말로 천재요 본좌. 특히 그의 독특한 섬광 표현은 '카나다 섬광'(金田光り)이라고 불리우며, 이타노 서커스급의 용어로 쓰인다.

카나다 요시노리의 작화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은하선풍 브라이거(銀河旋風ブライガー) 오프닝 (카나다 요시노리 원화)(1981년작)

카나다 요시노리 스타일의 작화를 모아놓은 영상.

카나다 요시노리가 그린 게임 오프닝. 카나다 요시노리답게 일단 달리고 본다.


평가

카나다 요시노리가 그려낸 애니메이션에 충격을 받은 애니메이터들은 그가 그려낸 장면들을 분석 연구했고, (카나다 요시노리가 참여한 신작이 공개되면, 다음날에는 모든 애니메이터가 그것을 흉내내서 따라하고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그것을 통해 전체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화 스타일이 변화하고 한 단계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카나다 요시노리가 등장한 이후 특히 메카닉이나 액션을 그리는 애니메이터들 중에서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카나다 요시노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2000년대에 카나다 요시노리의 스타일을 가장 충실히 계승한 감독/애니메이터로는 이마이시 히로유키가 있다.


기타

즈키 토시오의 회상에 의하면 [5], 카나다 요시노리를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소개하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작진에 합류시킨 것은 스즈키 토시오였다.아니메쥬 편집자 시절부터 알고 지낸(같이 술 마시며 어울렸던 사이). 이미 그 시절 젊은 애니메이터의 선망의 대상인 스타 애니메이터였고, 여하튼 액션과 폭발 씬이 굉장하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흉내내지 못하는) 로봇이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연출로 유명했다. 그래서 카나다 요시노리가 그린 원화는 미야자키 하야오도 고칠 엄두를 못내고 그냥 통과시켰다고, 다만 인물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서툴러서 나우시카의 얼굴 부분만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다시 그렸다고 한다. 심지어는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그림 콘티에도 없는 장면을 원화로 그렸는데 미야자키 하야오도 인정하고 그대로 영화 장면이 된 에피소드도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화 체크에 대해서 엄청 엄격해서 마음에 안드는 원화는 "이건 안돼!"라고 쏘아붙이고는 그 이유도 설명 안해주는 스타일이었는데, 카나다 요시노리가 이건 이래서 안 좋다고 설명해주고 다독이며 애니메이터들을 이끌어가는 형님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도 카나다 요시노리는 높이 평가하고 '카시라'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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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伊功는 한자의 음독으로 읽어서 주로 친한 사람들한테는 '이코우'라고도 불리운다. 본인도 사인을 할 때 IKO라고 쓰기도 했다.
  • [2] http://gjrmsdlek.egloos.com/2881189 카나다의 작화파트 보러가기
  • [3] 이 무렵 타카하타 이사오로부터 원화 카시라(頭)라는 이전까지는 없었던 직책명을 부여받고, 이 후 '카시라'라는 닉네임으로 불리운다.
  • [4]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인연은 토에이 제작의 1982년작 FUTURE WAR 198X年의 메카 디자인 겸 메카 작화감독의 의뢰를 받았는데, 느닷없이 지금까지 일절 면식도 없었던 미야자키 하야오한테 "좀 제대로 된 일을 맡아라"고 충고 전화가 왔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FUTURE WAR 198X年>는 일본 우익사관이 반영된 애니메이션이다. 여하튼 이런 에피소드를 알지 못하는 당시의 일본 애니 오덕들은 카나다 요시노리가 스타일이 정반대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 새로운 매력을 집어넣었다고 평가했다.
  • [5] 출전 :鈴木敏夫のジブリ汗まみれ第98回目『伝説のアニメーターの死を悼む』 http://www.youtube.com/watch?v=vUcWvoWXX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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