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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칼라

last modified: 2014-07-06 13:31:36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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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을 팍 쓰고 있는 것이 한 성깔 있어 보인다.


로마의 역대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카라칼라, 게타 마크리누스[1]
세베루스 왕조 세베루스 왕조 세베루스 왕조

Caracalla.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들로서 그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로마제국 황제. 186년 4월 4일 ~ 217년 4월 8일(31세)

본명은 셉티미우스 바시아누스. 카라칼라는 사실 별명으로 이는 당시의 갈리아식 의복을 가리키던 말인데, 그런 별명을 얻은 까닭으로는 그가 카라칼라를 즐겨 입어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가 직접 카라칼라를 디자인한 일이 있어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본래 세베루스 재위시 일찌감치 부제로 임명되어 후계자 지위가 공인되어 있었으나 세베루스 만년에 그와 사이가 나빴던 동생 게타가 경쟁자로 떠올라 갈등이 깊어가던 중, 결국 세베루스 사후 그 무렵에는 사실상 공동 통치자였던 게타를 참살하고(212년 2월) 권력을 독점하기에 이른다.

거대 목욕탕과 같은 문화 시설들을 건립하고 제국 영내 모든 자유민을 로마 시민으로 격상시키는 등[2][3]민심을 얻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쳤다. 마초적인 천재 군주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동경했던 황제였고 그 때문에 여러 기이한 언행을 하면서 조금만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 마구 시민들을 학살하는 괴행태를 저질렀기에 이런 정책의 의미는 반감되지만, 의외로 통치에서는 상당한 자질을 보였다.

사산조 페르시아와 게르만족이 이미 이 시기부터 상당히 강해진 상태였으며 제국의 한계 수익성도 이미 세베루스 시절부터 악화되어가고 있었기에 이로 인한 부작용이 카라칼라 때 닥쳐오는데, 그는 앞서 말했듯 세금을 올리고 화폐의 질을 낮추는 것으로 해결한다. 물론 화폐 가치 절하는 인플레이션을 불러오며 제국의 경제력이 악화되었음을 나타내는 징표지만, 당장 방위 수요는 급속히 늘어나 세금 쓸 데는 빠르게 늘어나는데 그저 재정 지표를 좋게 하자는 이유로 이런 정책을 하지 않는다? 이러면 결국은 군대 반란을 불러오고임오군란이 괜히 터진 것 같은가? 외적이 침입해서 영토를 까먹으며, 경제적 잠재력과 성장률이 대폭 떨어져 결국 경제는 훨씬 더욱 망가질 뿐.돈벌이도 목숨이 보장 되지 않으면 다 헛일이다. 다행히 로마 제국에는 현상만 때려잡고 지표만 좋으면 나는 아무래도 좋다는 비이성적인 정치가는 생각보다 꽤 드문 편이었다.현대 한국에는 넘쳐난다

카라칼라는 어쨌든 자신이 군주임을 자각했기에 재판에도 상당한 열의를 기울였고, 법률에도 꽤 관심이 많아 많은 시간을 들였다. 군사적으로도 대 게르만족 전선에서 상당한 전과가 있었으며 [4] 기동대와 수비대를 분리하여 종심 방어적인 전략 사고를 도입하는 것도 하였고 이는 이후 로마 제국 방어전략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이 모든 재능과 자질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자기통제력 탓에 돌발적인 충동 제어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닮고자 했던 노력과는 무관하게 제국 통치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동생을 죽인 죄책감 탓에 발기 자체가 안 되는 성불구자가 되어 자식도 남기지 못하게 되고 만다.

때문에 원로원 의원들은 당연히 그를 썩 좋아하지 않았으며, 많은 사고를 친 제국 동방에서는 여론이 당연히 최악이었다. 이런 성격적인 결함은 대 페르시아 원정에서 재앙으로 닥쳐오는데, 행군 중에 뭔가 잘못을 범한 두 병사를 여러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심하게 질책했으며 이에 앙심을 품은 두 병사가 진작부터 은근히 황위를 넘보았을 마크리누스를 충동한다. 그래서 잠깐 큰일을 보는 사이 찔려 죽고[5] 마크리누스가 그를 뒤이어 황제가 된다.

여담으로, 미술학도라면 누구나 친숙하게 느낄 석고상 카라칼라는 바로 그의 흉상을 모델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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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마크리누스는 세베루스 일족이 아니었으나 그를 몰아낸 이후 황제들은 세베루스의 피를 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 자체는 여전히 세베루스 왕조에 포함된다.
  • [2]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 시민권자에게는 속주세를 걷을 수 없게 되어 국가 재정을 망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보가 아니었던 카라칼라는 이전과 달리 거주지가 이탈리아가 아니면 시민권자에게도 세금 크리를 먹인다.
  • [3] 또한 카라칼라의 시민권법을 무조건 까기만은 어려운 게 당시의 로마 제국은 이미 계층이 고정화되는 등 동아시아 어느 사회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거대한 사회 불만 세력을 떠안고 가는 건 그 자체로 위험 천만한 행위였음을 고려한다면 카라칼라는 이를 해소하고자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 실제로 이렇게 시민권을 얻은 속주민의 대다수는 로마 제국에 끝까지 충성을 바쳤다.
  • [4] 라인 강과 도나우 강을 잇는 게르마니아 방벽을 보수하고 선제 공격을 감행해 게르만족에게 제법 타격을 줬다. 카라칼라 황제의 방어선 손질로 20여년 간 북방 게르만 전선은 평온했으며 이후 무너진 것도 게르만족이 갑자기 강해져서가 아니라 로마인들 스스로의 내분 및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참패 등으로 전방 경계에 소홀해진 결과였다.
  • [5] 그러나 정작 카라칼라를 죽인 병사들은 마크리누스에게, 황제 시해의 범인으로서 바로 즉결 처분당한다.본디 쓰고 버리는 카드들의 용도가 다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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