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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델가도

last modified: 2015-01-07 09:06:52 by Contributors


이름 Carlos Juan Delgado Hernández
생년월일 1972년 6월 25일
국적 푸에르토 리코
출신지 Aguadilla, 푸에르토 리코
포지션 1루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88년 자유계약 입단(토론토 블루제이스 입단)
소속팀 토론토 블루제이스(1993~2004)
플로리다 말린스(2005)
뉴욕 메츠(2006~2009)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
2.2. 뉴욕 메츠 시절
3. 사회활동
4.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1. 개요

메이저리그 선수.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풍미한 강타자로 푸에르토 리코 출신 선수로서 가장 많은 홈런과 타점을 기록한 선수다. 아울러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으로 가장 많은 홈런과 타점을 기록한 프랜차이즈 스타. 적극적인 사회 활동과 의사 표현으로 유명한 선수기도 하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80 출루율 0.383 장타율 0.546 473홈런 1512타점.

2. 선수 생활

2.1.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

약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비교적 안락하게 보내면서 푸에르토 리코에서 기량을 쌓았다. 두각을 나타낸 그를 두고 여러 팀에서 군침을 흘리다가 16살의 나이로 캐나다로 건너가 프로야구 선수의 경력을 쌓게 되었다. 바로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으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히 커리어를 쌓으면서 1993년 메이저리그 데뷔에 성공하게 되었다. 다만, 1993년부터 1995년까지는 주로 대타 등으로 나오면서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를 오가던 선수였다.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것은 1996년으로 25홈런 92타점을 기록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이 때부터 토론토의 주포로서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 30홈런을 쳐내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998년 38홈런 115타점을 기록하면서 리그의 엘리트 타자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팀과 장기 계약을 맺은 후, 먹튀화 되지 않고 맹활약했다는 점에서 더욱 뛰어난 선수.

1999년 44홈런 134타점, 2000년 41홈런 137타점, 2001년 39홈런 102타점, 2002년 33홈런 108타점, 2003년 42홈런 145타점, 2004년 32홈런 99타점을 기록하며 토론토의 상징으로 군림했다. 그래서 별명도 킹 카를로스(King Carlos). 1990년대 초반의 영광이 끝나고 몰락한 토론토를 외롭게 지켜내면서 토론토 타선의 중심으로 활약했다. 다만 문제는 토론토의 전략이 워낙 약하고, 이 시기가 하필이면 약물 빤 타자들의 전성시대라서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딱히 임팩트가 없었다는 점. 토론토 시절 올스타 선정도 딱 2번이었고, MVP 투표에서도 2003년 2위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2004년을 끝으로 장기 계약이 끝나자 델가도 자신은 팀에 남기를 원했다. 미국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선수였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했던 것. 하지만, 토론토는 잡을 여력이 없었고, 캐나다 달러 역시 약세를 유지하면서 델가도의 몸값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델가도는 어쩔 수 없이 팀을 떠났고, 그가 선택한 행선지는 고향과 가까운 플로리다 말린스였다.

2.2. 뉴욕 메츠 시절

그런데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계약은 일종의 꼼수였다. 말린스가 부린 꼼수는 4년 5,200만 달러로 계약을 하되, 첫 해에는 400만 달러로 계약을 했다는 것. 2003년 우승을 했던 말린스 입장에서는 델가도를 보강해서 우승에 도전하고, 실패하면 트레이드 카드로 쓸 생각이었다. 말린스에서의 첫 해 아메리칸리그에서 내셔널리그를 옮긴 상황에서도 리그 적응에 훌륭하게 성공하며, 33홈런 115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말린스의 PO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미뤄놓던 고액의 연봉이 나오자 말린스는 미련없이 유망주 3명을 받는 조건으로 그를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시켰다.

2006년 뉴욕 메츠에서 뛰게 된 델가도는 첫 해 팀의 4번 타자로서 38홈런 114타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 해 메츠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위세에 눌렸던 것에서 벗어나 지구 우승에 성공하며 마침내 리그 챔피언십까지 오르게 되었다. 델가도 입장에서는 생애 첫 PO.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LA 다저스 상대로 0.429의 맹타를 휘둘렀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리그 챔피언십에서도 0.304 3홈런 9타점으로 대활약을 했지만, 팀은 7차전 접전 끝에 패하면서 델가도의 PO는 끝났다. 그리고 이게 델가도 야구 경력 유일한 PO이었다.

2007년 부상으로 주춤하며 24홈런 87타점으로 주춤했지만, 2008년 38홈런 115타점을 기록하면서 다시 부활했다. 그러나 부상은 끝내 그의 커리어의 발목을 붙잡으며 2009년 고작 4홈런 23타점에 그치면서 결국 메츠를 떠나게 되었고, 사실상 은퇴하게 되었다.

2010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면서 재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마이너리그에서 성적이 좋지 않자, 마침내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3. 사회활동

델가도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것은 거포로서의 뛰어난 면모도 있지만, 적극적인 사회활동이다. 다른 선수들이 단순히 자선 활동, 지역 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에 그치는 것과 달리 델가도는 좀 더 적극적인 정치적인 활동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고향인 푸에르트 리코 비에케스 섬 사격장 폐쇄 운동. 비에케스 섬은 미군 해군의 사격 연습장이었는데, 1999년 여기서 오폭으로 인해 주민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울러 온갖 신무기, 특히 우라늄탄의 실험장이라 방사능의 영향도 적지 않았고, 지금도 주민들의 각종 질환으로 고생하는 곳이다. 델가도는 1999년 뉴스를 접한 이후로, 매년 사격장의 철수를 위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결국 사격장은 2003년 폐쇄되었다.

아울러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이른바 '애국주의'가 강화되면서 매번 7회마다 신이여 미국을 보호하소서가 연주되었는데, 델가도는 이에 항의해서 이 노래가 나올 때마다 클럽하우스로 들어가 버리는 1인 시위를 행했다. 그리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 의사를 나타냈고, 전쟁에 반대해서 경기 시작 전의 국가 연주에 대해서도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는 등, 정치적인 소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렇다고 자선 활동에 인색한 선수냐면 그것도 아니라서 고향 푸에르토 리코를 위해 많은 활동을 했고, 그 결과로 2006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그가 존경하는 인물은 당연하겠지만, 로베르토 클레멘테다. 2006년 WBC에서 21번 배번을 달라는 제의에 대해 그 번호는 클레멘테의 번호라고 거부한 적이 있다.

4.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분명 한 시대를 풍미한 엘리트 거포였지만, 동시대가 약물을 빤 거포들의 전성시대라서 막상 따낸 타이틀의 개수가 거의 없다. 2003년 아메리칸리그 타점왕 타이틀이 전부. 하지만 분명 홈런도 450개를 넘었고, 2루타 역시 450개를 넘겼다. 부상으로 인한 다소 빠른 은퇴가 아니었다면, 홈런과 2루타를 모두 500개를 넘겼을 것이다.

임팩트 부족도 문제인데, 팀이 전력이 강하지 않으면서 전력이 약했고, 결과적으로 올스타 선정 2회에 MVP 수상은 없었다. 올스타 선정도 굉장히 부족한 편. 약물 문제로 인해 은퇴한 선수들에 비해 가려졌다는 것을 기자들이 인식하고 지지하지 않는 한, 쉽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들어가더라도 몇 차례 투표는 거쳐야 할 듯. 그래도 토론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푸에르토 리코의 최고 거포였다는 점이 임팩트로 작용한다면, 또 다를 것으로 보였지만, 첫 투표에서 3.8%만을 득표하면서 나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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